⊙ 대학 시절 反정부운동 하다가 7년간 투옥, 현재 反정부단체 ‘시리아국가건설’ 이끌어
⊙ “시리아 叛軍 역량 과장돼, 시리아 정권으로부터의 이탈자들은 핵심세력 아니다”
⊙ “시리아 內 다양한 종족·政派·宗派가 무슬림형제단 집권 용납 안 할 것”
⊙ “시리아 叛軍 역량 과장돼, 시리아 정권으로부터의 이탈자들은 핵심세력 아니다”
⊙ “시리아 內 다양한 종족·政派·宗派가 무슬림형제단 집권 용납 안 할 것”
이건 너무 심하다. 1년 반이 넘도록 민주화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WR)는 10월 14일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이 장악한 서북부 알 누만 마아라트 마을과 인근 고속도로 주변에 항공기와 헬기를 동원해 집속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집속탄은 항공기에서 투하된 후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수백 개의 자탄(子彈)을 넓은 장소에 흩뿌려 한꺼번에 축구장 2~3개의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무기다.
지난 9월 26일에는 AFP통신이 이날 하루에만 시리아 전역에서 최소 34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3월 이후 시리아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는 3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시위 진압이 아니라 전쟁 수준이다. 하기야 반정부세력 역시 평화적 시위 수준을 넘어서 무장을 하고 지방도시를 점령하고, 수도 다마스쿠스 진입을 시도했었다. 시리아는 지금 내전(內戰) 중이다. 여기에 더해 시리아는 이웃 터키와 포격전까지 벌이고 있다. 이런 내우외환(內憂外患)에도 불구하고 한때 금방이라도 몰락할 것 같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아직까지 권좌(權座)를 지키고 있다.
작년 1월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와 중동(中東)을 휩쓸었던 재스민혁명의 물결은 시리아에서 멈추고 말 것인가? 혹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면 시리아에는 어떤 체제가 들어설까? 이란 같이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신정(神政)체제일까, 아니면 터키처럼 의회민주주의와 이슬람 전통이 공존(共存)하는 세속(世俗)국가일까?
“아사드 정권 지지층 상당히 넓어”
이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10월 8일 시리아의 반(反)정부단체인 ‘시리아국가건설’의 지도자 루아이 후세인(52) 씨를 만났다. 후세인 씨는 10월 5~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21차 한국중동학회·제9회 아시아중동학회 공동국제회의에 참석해 시리아 정세를 설명하기 위해 방한(訪韓)했다.
루아이 후세인 씨는 다마스쿠스대학 철학과 재학 중 공산노동당이라는 불법정당에 가담해 학생운동을 벌이다가 1984~1991년 옥고(獄苦)를 치렀다. 출옥 후 특별한 조직활동은 하지 않고 레바논의 《사피르》 《알 하야트》 《안나하르》 등의 매체에 시리아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해 왔다. 작년 9월 다마스쿠스에서 대학교수, 변호사, 언론인, 대학생, 의사, 재야운동가들을 규합해 ‘시리아국가건설’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후세인 씨는 ‘시리아국가건설’이 국외 시리아 망명단체들의 연합체인 시리아국가평의회, 국내 반정부단체들의 연합체인 민주개혁전국조정위원회와 함께 시리아의 3대 반정부단체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후세인 씨는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자냐?”는 질문에 “마르크스주의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장하기 훨씬 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이 가지 않았어요. 지금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한때 반군(叛軍)이 다마스쿠스 진입을 시도하고, 바샤르 정권과 군부(軍部)의 주요 인사들이 반군에 가담하는 등 바샤르 정권의 종말이 임박한 듯했는데, 바샤르 정권이 의외로 오래 버티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그동안 반군의 수(數)나 힘에 대해 언론이 과장보도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반군의 힘은 정부군보다 훨씬 약합니다. 아사드 정권에서 이탈한 사람들도 정권의 핵심인사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망명한 리야드 파리드 히잡 총리는 시리아 내에서 정치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 욕망 때문에 총리직을 받아들였다가 이내 망명길에 오른 인물이죠.
시리아는 민중시위로 정권이 바뀐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다릅니다. 시리아의 정치체제는 바샤르 대통령과 군(軍), 정보보안기관이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샤르 정권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고, 데모를 진압할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現) 정권에 대한 지지층이 상당히 넓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바샤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시리아 민주화운동가들이 많이 지쳐 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아사드 정권이 가혹하게 탄압한 것은 이슬람세력”
후세인 씨는 “현재 시리아에는 반군을 가장한 폭력세력도 있으며, 이들이 노트북 등 값나가는 전자기기를 가진 사람들을 납치해 물건을 강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도 그런 폭도들에 잡혔다가 시민들의 도움으로 풀려난 적이 있다고 했다.
―작년 3월 이후 3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상당부분 과장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 모두가 반정부세력도 아니고요. 아마 그중의 60% 정도는 반정부세력, 30% 정도는 반정부세력에 의해 죽은 친(親)정부인사나 군경(軍警), 그리고 나머지는 혼란의 와중에 생사가 파악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내 반정부세력들은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현재 아사드 정권은 무장반군을 토벌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비폭력 재야(在野)세력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입니다. 아마 반군소탕이 끝나면, 다시 감시가 강화되겠지요.”
―국민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내전을 피해 해외로 이주하거나 국내를 떠도는 난민이 300만명에 이르고(시리아 인구는 작년 기준 2430만명), 건물의 10% 정도가 파괴되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은 지역도 많습니다. 특히 아사드 정권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해 1만명에 달하는 아기들이 백신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세인 씨는 “한국 정부도 시리아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 주고 있지만, 지원을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지원하고 이를 시리아인들에게 잘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1982년 ‘하마의 학살’을 자행한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 현 대통령의 아버지)도 그랬지만, 인권이나 민주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중동에서도 아사드 정권의 반정부운동 탄압은 유별나게 잔혹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리아 정권이 특별히 더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역시 대단히, 그리고 더 잔혹하게 평화적으로 반대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탄압했습니다.
하페즈가 가혹하게 탄압한 것은 무장세력과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이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에 속하지 않은 반정부 인사들은 투옥하기는 했어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민중시위가 본격화한 작년 3월 이전의 바샤르 대통령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자유를 허용했었습니다.”
“터키 같은 世俗국가 지향”
―‘시리아국가건설’을 비롯한 시리아 민주화운동 세력이 추구하는 미래의 국가상은 무엇입니까.
“아직 시리아인들은 모두가 공유(共有)하는 국가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또 많은 시리아인들은 민주국가 건설이 자유선거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성적(性的)·종교적·인종적 차별 없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견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세우기를 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권력구조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대통령과 국회가 공존하는 대통령제입니다. 물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강력한 권한을 주면 또 다시 폭압적인 정권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와 같은 나라에는 그러한 체제가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종합적인 계획이 절실할 뿐 아니라, 시리아인들이 마음속에 ‘강력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은 국회와 행정부에 의해 견제받아야 합니다. 권력의 분산과 배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경제체제는 어떤 경제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투명성과 적절한 개입을 전제로 한 자유시장경제 제도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히 독재자의 축출과 민주화운동가의 집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바탕,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동의 경우, 작년 재스민혁명 이전까지는 수천 년 동안, 통치자가 국가 전체를 사유(私有)재산처럼 여기면서 통치해 왔고, 국민들은 여기에 길들여져 왔다. 작년에 민중봉기(재스민혁명)로 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야말로 초유(初有)의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후세인 씨가 꿈꾸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가 시리아에서 가능할까?
이에 대해 후세인 씨는 솔직하게 “시리아인들에게는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도, 민주적 방법으로 경쟁하고 투쟁하는 정치문화도 없다”고 인정했다.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 시리아가 자유로운 의회선거를 해 본 것은 1949년 첫 번째 쿠데타 후 짧은 기간뿐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전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사회적 활동들은 철저히 봉쇄당했습니다. 시리아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알라, 시리아, 아사드 세 단어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와 문화의 결여는 현재 모든 시리아 정치운동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입니다.”
“바샤르의 ‘개혁’에 환상 갖지 말아야”
―아사드 퇴진 이후 시리아가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후 이라크처럼 되지는 않을까요.
“아사드의 퇴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정파(政派)와 종파(宗派)들 간의 충돌이 고조되고, 폭력이 난무하고, 그런 갈등이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는 우리 시리아가 사담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가 아니라, 아예 중앙정부 없이 폭력으로 점철된 소말리아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화한 시리아는 이란 같은 신정국가와 터키 같은 세속국가 가운데 어느 쪽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까.
“세속국가가 아니고서는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는 불가능합니다. 시리아의 다양한 종족·종교·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 국가는 종교, 믿음체제, 사상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만 합니다. 나는 터키식 체제가 낫다고 봅니다. 이란 체제는 평등을 열망하는 시리아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동지역에서 세속주의와 이슬람원리주의의 대립은 뿌리가 깊다.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는 지난 50~60년간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세속주의 독재정권이 통치해 왔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하지만 재스민혁명 이후 독재정권이 무너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았다. 시리아도 그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후세인 씨는 “시리아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고려해 볼 때 시리아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에는 아랍인(시리아인) 이외에도 쿠르드인, 아시리아인, 샤르카스(체르케스)인, 아르메니아인 등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수니파와 시아파 외에 알라위파(시아파에 속한 소수 종파로 아사드 정권의 기반), 드루즈파, 이스마일파 등 다양한 소수 이슬람 종파와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을 불신하는 소수 종파 사람들은 그들의 집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동안 무슬림형제단이 폭력적 정치투쟁을 벌여 왔기 때문에 알레포 다마스쿠스 등 대도시 주민들도 이슬람운동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리아인들은 성향상 사우디아라비아인들처럼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속주의적인 터키와 성향이 비슷합니다.”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 대통령이 된 후, 그리고 작년 3월 이후 시장경제 도입, 복수(複數)정당제 도입, 언론의 자유 확대, 대통령 임기 제한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는 현재 중동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하면 매우 선진적인 것입니다. 귀하가 전망하는 ‘우울한 민주화’보다는 차라리 바샤르 치하의 ‘점진적인 개혁’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국제 언론, 특히 유럽과 레바논 언론은 그동안 바샤르를 가장 좋은 중동지도자 중 하나로 치켜세워 왔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중동의 지도자들은 결코 훌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도자에 대해 호감이나 기대를 가지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시리아 등 중동의 낡고 폭압적인 지도자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나 그들이 말하는 ‘개혁’에 대해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한국인들, 진정으로 시리아사태 걱정”
현재 프랑스 등은 시리아 해외망명 세력을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한편 반군세력을 적극 지원하려 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군은 터키와 포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후세인 씨는 외국의 개입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화 이후 미국, 프랑스, 터키 등 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후 시리아 국토인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적(敵)입니다. 이스라엘이 강점하고 있는 시리아 영토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미래 시리아의 어떠한 정치체제도 이스라엘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어떻습니까.
“시리아에서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한국이 발전한 나라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우리 시리아도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도 과거 독재체제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방한 기간 중 만난 한국인들이 시리아의 상황에 대해 진정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건 하지 않건 간에 시리아 국내에서 합법적 정당을 결성해 민주화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시리아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나갈 젊은 지도자들의 양성에 힘을 쏟고자 합니다.”
(이 인터뷰는 김종도 명지대 교수의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후세인 씨는 인터뷰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이메일로 답변을 보내 왔으며,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이를 번역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WR)는 10월 14일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이 장악한 서북부 알 누만 마아라트 마을과 인근 고속도로 주변에 항공기와 헬기를 동원해 집속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집속탄은 항공기에서 투하된 후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수백 개의 자탄(子彈)을 넓은 장소에 흩뿌려 한꺼번에 축구장 2~3개의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무기다.
지난 9월 26일에는 AFP통신이 이날 하루에만 시리아 전역에서 최소 34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3월 이후 시리아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는 3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시위 진압이 아니라 전쟁 수준이다. 하기야 반정부세력 역시 평화적 시위 수준을 넘어서 무장을 하고 지방도시를 점령하고, 수도 다마스쿠스 진입을 시도했었다. 시리아는 지금 내전(內戰) 중이다. 여기에 더해 시리아는 이웃 터키와 포격전까지 벌이고 있다. 이런 내우외환(內憂外患)에도 불구하고 한때 금방이라도 몰락할 것 같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아직까지 권좌(權座)를 지키고 있다.
작년 1월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와 중동(中東)을 휩쓸었던 재스민혁명의 물결은 시리아에서 멈추고 말 것인가? 혹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면 시리아에는 어떤 체제가 들어설까? 이란 같이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신정(神政)체제일까, 아니면 터키처럼 의회민주주의와 이슬람 전통이 공존(共存)하는 세속(世俗)국가일까?
“아사드 정권 지지층 상당히 넓어”
이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10월 8일 시리아의 반(反)정부단체인 ‘시리아국가건설’의 지도자 루아이 후세인(52) 씨를 만났다. 후세인 씨는 10월 5~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21차 한국중동학회·제9회 아시아중동학회 공동국제회의에 참석해 시리아 정세를 설명하기 위해 방한(訪韓)했다.
루아이 후세인 씨는 다마스쿠스대학 철학과 재학 중 공산노동당이라는 불법정당에 가담해 학생운동을 벌이다가 1984~1991년 옥고(獄苦)를 치렀다. 출옥 후 특별한 조직활동은 하지 않고 레바논의 《사피르》 《알 하야트》 《안나하르》 등의 매체에 시리아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해 왔다. 작년 9월 다마스쿠스에서 대학교수, 변호사, 언론인, 대학생, 의사, 재야운동가들을 규합해 ‘시리아국가건설’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후세인 씨는 ‘시리아국가건설’이 국외 시리아 망명단체들의 연합체인 시리아국가평의회, 국내 반정부단체들의 연합체인 민주개혁전국조정위원회와 함께 시리아의 3대 반정부단체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후세인 씨는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자냐?”는 질문에 “마르크스주의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장하기 훨씬 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이 가지 않았어요. 지금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한때 반군(叛軍)이 다마스쿠스 진입을 시도하고, 바샤르 정권과 군부(軍部)의 주요 인사들이 반군에 가담하는 등 바샤르 정권의 종말이 임박한 듯했는데, 바샤르 정권이 의외로 오래 버티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그동안 반군의 수(數)나 힘에 대해 언론이 과장보도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반군의 힘은 정부군보다 훨씬 약합니다. 아사드 정권에서 이탈한 사람들도 정권의 핵심인사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망명한 리야드 파리드 히잡 총리는 시리아 내에서 정치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 욕망 때문에 총리직을 받아들였다가 이내 망명길에 오른 인물이죠.
시리아는 민중시위로 정권이 바뀐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다릅니다. 시리아의 정치체제는 바샤르 대통령과 군(軍), 정보보안기관이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샤르 정권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고, 데모를 진압할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現) 정권에 대한 지지층이 상당히 넓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바샤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시리아 민주화운동가들이 많이 지쳐 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시리아는 잦은 쿠데타에 시달리다 1970년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 정권이 2000년까지 권좌를 유지했다. 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는 하페즈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다마스쿠스의대를 나온 안과의사다. 하페즈의 후계자였던 형 바실이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후계자로 지명되어 후계수업을 받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후 권력을 승계했다. 그는 집권 후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등 나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 왔다. 재스민혁명 후인 작년 3월 시리아 남부 디르아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어 왔다. 시리아 국내외의 반정부세력들은 현재까지 3만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은 반정부세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시아파 이슬람국가인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루아이 후세인은 ‘시리아국가건설’이란 반정부단체를 이끌고 있다. |
“아사드 정권이 가혹하게 탄압한 것은 이슬람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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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 반정부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졌던 디르아에서 시민들이 아사드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작년 3월 이후 3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상당부분 과장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 모두가 반정부세력도 아니고요. 아마 그중의 60% 정도는 반정부세력, 30% 정도는 반정부세력에 의해 죽은 친(親)정부인사나 군경(軍警), 그리고 나머지는 혼란의 와중에 생사가 파악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내 반정부세력들은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현재 아사드 정권은 무장반군을 토벌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비폭력 재야(在野)세력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입니다. 아마 반군소탕이 끝나면, 다시 감시가 강화되겠지요.”
―국민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내전을 피해 해외로 이주하거나 국내를 떠도는 난민이 300만명에 이르고(시리아 인구는 작년 기준 2430만명), 건물의 10% 정도가 파괴되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은 지역도 많습니다. 특히 아사드 정권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해 1만명에 달하는 아기들이 백신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세인 씨는 “한국 정부도 시리아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 주고 있지만, 지원을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지원하고 이를 시리아인들에게 잘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1982년 ‘하마의 학살’을 자행한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 현 대통령의 아버지)도 그랬지만, 인권이나 민주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중동에서도 아사드 정권의 반정부운동 탄압은 유별나게 잔혹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리아 정권이 특별히 더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역시 대단히, 그리고 더 잔혹하게 평화적으로 반대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탄압했습니다.
하페즈가 가혹하게 탄압한 것은 무장세력과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이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에 속하지 않은 반정부 인사들은 투옥하기는 했어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민중시위가 본격화한 작년 3월 이전의 바샤르 대통령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자유를 허용했었습니다.”
“터키 같은 世俗국가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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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
“아직 시리아인들은 모두가 공유(共有)하는 국가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또 많은 시리아인들은 민주국가 건설이 자유선거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성적(性的)·종교적·인종적 차별 없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견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세우기를 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권력구조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대통령과 국회가 공존하는 대통령제입니다. 물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강력한 권한을 주면 또 다시 폭압적인 정권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와 같은 나라에는 그러한 체제가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종합적인 계획이 절실할 뿐 아니라, 시리아인들이 마음속에 ‘강력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은 국회와 행정부에 의해 견제받아야 합니다. 권력의 분산과 배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경제체제는 어떤 경제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투명성과 적절한 개입을 전제로 한 자유시장경제 제도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히 독재자의 축출과 민주화운동가의 집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바탕,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동의 경우, 작년 재스민혁명 이전까지는 수천 년 동안, 통치자가 국가 전체를 사유(私有)재산처럼 여기면서 통치해 왔고, 국민들은 여기에 길들여져 왔다. 작년에 민중봉기(재스민혁명)로 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야말로 초유(初有)의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후세인 씨가 꿈꾸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가 시리아에서 가능할까?
이에 대해 후세인 씨는 솔직하게 “시리아인들에게는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도, 민주적 방법으로 경쟁하고 투쟁하는 정치문화도 없다”고 인정했다.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 시리아가 자유로운 의회선거를 해 본 것은 1949년 첫 번째 쿠데타 후 짧은 기간뿐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전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사회적 활동들은 철저히 봉쇄당했습니다. 시리아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알라, 시리아, 아사드 세 단어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와 문화의 결여는 현재 모든 시리아 정치운동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입니다.”
“바샤르의 ‘개혁’에 환상 갖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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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9일 시리아군 전차들이 시리아의 상업중심도시 알레포 중심가를 지나가고 있다. |
“아사드의 퇴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정파(政派)와 종파(宗派)들 간의 충돌이 고조되고, 폭력이 난무하고, 그런 갈등이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는 우리 시리아가 사담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가 아니라, 아예 중앙정부 없이 폭력으로 점철된 소말리아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화한 시리아는 이란 같은 신정국가와 터키 같은 세속국가 가운데 어느 쪽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까.
“세속국가가 아니고서는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는 불가능합니다. 시리아의 다양한 종족·종교·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 국가는 종교, 믿음체제, 사상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만 합니다. 나는 터키식 체제가 낫다고 봅니다. 이란 체제는 평등을 열망하는 시리아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동지역에서 세속주의와 이슬람원리주의의 대립은 뿌리가 깊다.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는 지난 50~60년간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세속주의 독재정권이 통치해 왔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을 혹독하게 탄압했다. 하지만 재스민혁명 이후 독재정권이 무너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았다. 시리아도 그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후세인 씨는 “시리아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고려해 볼 때 시리아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에는 아랍인(시리아인) 이외에도 쿠르드인, 아시리아인, 샤르카스(체르케스)인, 아르메니아인 등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수니파와 시아파 외에 알라위파(시아파에 속한 소수 종파로 아사드 정권의 기반), 드루즈파, 이스마일파 등 다양한 소수 이슬람 종파와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을 불신하는 소수 종파 사람들은 그들의 집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동안 무슬림형제단이 폭력적 정치투쟁을 벌여 왔기 때문에 알레포 다마스쿠스 등 대도시 주민들도 이슬람운동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리아인들은 성향상 사우디아라비아인들처럼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속주의적인 터키와 성향이 비슷합니다.”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 대통령이 된 후, 그리고 작년 3월 이후 시장경제 도입, 복수(複數)정당제 도입, 언론의 자유 확대, 대통령 임기 제한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는 현재 중동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하면 매우 선진적인 것입니다. 귀하가 전망하는 ‘우울한 민주화’보다는 차라리 바샤르 치하의 ‘점진적인 개혁’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국제 언론, 특히 유럽과 레바논 언론은 그동안 바샤르를 가장 좋은 중동지도자 중 하나로 치켜세워 왔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중동의 지도자들은 결코 훌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도자에 대해 호감이나 기대를 가지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시리아 등 중동의 낡고 폭압적인 지도자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나 그들이 말하는 ‘개혁’에 대해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한국인들, 진정으로 시리아사태 걱정”
현재 프랑스 등은 시리아 해외망명 세력을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한편 반군세력을 적극 지원하려 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군은 터키와 포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후세인 씨는 외국의 개입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화 이후 미국, 프랑스, 터키 등 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후 시리아 국토인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적(敵)입니다. 이스라엘이 강점하고 있는 시리아 영토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미래 시리아의 어떠한 정치체제도 이스라엘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어떻습니까.
“시리아에서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한국이 발전한 나라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우리 시리아도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도 과거 독재체제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방한 기간 중 만난 한국인들이 시리아의 상황에 대해 진정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건 하지 않건 간에 시리아 국내에서 합법적 정당을 결성해 민주화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시리아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나갈 젊은 지도자들의 양성에 힘을 쏟고자 합니다.”
(이 인터뷰는 김종도 명지대 교수의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후세인 씨는 인터뷰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이메일로 답변을 보내 왔으며,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이를 번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