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한 중소기업인 대상으로 통영 죽도에서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운영
⊙ 3차례에 걸쳐 49명 ‘힐링’, 그중 6명은 정부 재창업자금 지원대상 확정돼
⊙ “정부가 우리 경제 버팀목인 40~50대 재기 돕는 시스템 만들어야”
田圓泰
⊙ 63세. 부산대, 연세대 대학원 졸업.
⊙ MS가스·MS ENG·MS코프 대표이사.
⊙ 3차례에 걸쳐 49명 ‘힐링’, 그중 6명은 정부 재창업자금 지원대상 확정돼
⊙ “정부가 우리 경제 버팀목인 40~50대 재기 돕는 시스템 만들어야”
田圓泰
⊙ 63세. 부산대, 연세대 대학원 졸업.
⊙ MS가스·MS ENG·MS코프 대표이사.
- 전원태 회장은 “기업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며 중소기업인의 재기는 국가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장기불황·실업사태 등과 함께 생활고를 비관해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대한민국 30~50대 가장들의 소식이 연일 뉴스에서 끊이질 않는다. 대동맥(대기업)에 이어진 핏줄처럼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야 할 중소기업들이 하나둘씩 스러지고 있다. 연 1500여개의 법인이 부도를 맞고 있다. 왕성한 경제활동에 나서야 할 40~50대에게 남은 것은 빚과 부양가족뿐이다. 정부는 늘 창업을 권유하고 일자리 창출에 노력한다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런 현실을 타개해 보고자 나선 한 중소기업인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실패한 중소기업인의 재기(再起)를 돕는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한 기업인 전원태(田圓泰) MS가스 회장이다.
“죽을 결심 안 해 본 중소기업인 없을 것”
부산에서 40여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며 7개 계열사에 직원 350여 명을 고용하고 연 12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견기업인인 전 회장을 부산 사상구의 MS ENG 사무실에서 만났다. 주차장도 따로 없는 작은 건물이었다. 부산에서는 꽤 잘나가는 알짜기업임에도 외관상으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젊을 때는 여느 기업인처럼 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없어졌다”며 “이제는 후배 기업인들을 돕고 싶어 이런 기관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전 회장의 이야기다. “중소기업 경영하는 사람 중 죽을 결심 한 번 안 해본 사람 있겠습니까. 어디론가 혼자 떠나서 머리를 식히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빚쟁이는 모여들지, 가족은 부양해야지, 돈 나올 곳은 없지 … 그러다가 대부분 가정은 파괴되고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속출합니다. 물론 이런 고비를 이겨낸 사람들은 더 큰 성공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혼자서 고비를 이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전 회장은 대학졸업 후 가스회사를 창업해 40년 동안 운영해 왔고, 기업 경영을 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70년대에 가스회사를 운영하다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해 어려운 시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사망자 사돈의 팔촌까지 다 나타나서 살려 내라고 시위하고 엄청난 돈을 배상하라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보험이 있던 시절도 아니지 않습니까. 손해도 크고 욕도 먹고 명예도 잃고 … 어떻게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내 왔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입니다.” 또 당시 잘나가던 모 유지(油脂)회사에 원료를 납품하다 그 회사가 무리한 팽창으로 부도를 맞는 바람에 전 회장 역시 엄청난 타격을 받기도 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현재 모기업인 MS가스 외에 MS종합가스, MS ENG, MS헬스케어, MS코퍼레이션(MS코프) 등 7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는 회사가 궤도에 오르자 죽기살기로 사업에만 힘쓰던 예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세대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자수성가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우상이었어요. 기업을 일으켜 국부를 창출하는 것만큼 사나이로서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냐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었죠. 친구들은 모이면 김우중 회장을 비롯해 자수성가한 기업인 얘기로 꽃을 피웠고, 기업인이 잘나가고 기업인이 우대 받아야 나라가 잘살고 힘이 생길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CEO 출신이 대통령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인은 계속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하나둘 쓰러지면 국가가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건 물론이고, 그들의 가정이 무너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나부터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자에겐 머리 식힐 시간이 필요
1990년대 이후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와 증여 등으로 처분한 전 회장은 2011년 8월 사재 3억원을 들여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설립했다. 실패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인의 재기를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경남 통영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죽도의 한 폐교를 구입해 연수원으로 꾸몄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연수원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가슴까지 시원한 통영 앞바다를 볼 수 있다.
실패한 기업인에게는 무엇보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 회장은 생각했다. 재단을 만든다는 큰 목적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실패자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큰 어려움이 왔을 때는 정말 딱 한 달, 안 되면 일주일이라도 혼자 지내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더라고요. 집에 있는다고 당장 돈 생길 구멍이 나는 것도 아니고, 집안 분위기는 험악하고,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하거든요. 그런데 망한 사람이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괜히 관광지나 시골에 머물겠다고 찾아갔다가 사기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요. 떠날 돈도 없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게 죽도 연수원입니다.”
전 회장의 소박한 바람은 주변인과 지역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고,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이 생기면서 재단의 틀을 갖춰 2011년 10월 중소기업청에서 설립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으로 출범하게 됐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은 작년 11월 1차 캠프를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죽도 연수원에서 ‘재기중소기업 경영자 힐링캠프’를 진행했다. 4주간 진행하는 캠프의 참가비는 무료다. 개발원은 전국의 신청자 중 재기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서류-면접 심사를 통해 선정했고, 회당 20여 명의 경영자가 캠프에 참가했다. 현재까지 캠프를 거쳐 간 기업인은 총 49명. 오는 10월 초에는 4기 캠프가 시작될 예정으로, 현재 신청자를 모집 중이다.
“신청자격은 제조업 등 기업을 운영하다 실패한 사람에 한정했어요. 요식업 등 자영업자까지 포함시키면 너무 방대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의부도나 횡령, 사기 등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에 한정했고, 중소기업청 등에서 실시하는 정부 재창업자금 신청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습니다. 재기과정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받지 않은 거죠. 무료로 운영하는 것이니만큼 악용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자기반성과 자신감 회복이 주제
캠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캠프는 흔히 볼 수 있는 재창업교육과는 아예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힐링으로 재기의 발판 마련하기’가 주제다. 4주 동안 여는 캠프에서는 1주차 자기반성과 통찰, 2주차 성공을 위한 의식 업그레이드, 3주차 자신감 회복, 4주차 사업아이디어 구상 및 실행력 강화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낮에는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섬 정상에 1인용 텐트를 치고 홀로 밤을 새우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했다. 4주차에는 자기 소망을 적어 실천을 다짐한다. 힐링캠프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현실적인 창업교육 같은 것은 짜 놓지 않았다.
“창업컨설팅 같은 내용은 외부 각지에서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들으러 여기에 오라는 게 아닙니다. 첫 주에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하고, 마음이 다스려지면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실행력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이죠. 캠프에는 강연이 몇 가지 포함돼 있는데, 주로 심리학자, 심리치료사, 종교인 등이 강사입니다. 사업체를 잃거나, 큰 돈을 잃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다시 일어날 수 없어요. 그 부분을 도와주고자 하는 겁니다.”
연수원 생활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가 40여 명에 불과한 섬인 만큼 빗물을 받아 생활해야 하고, 식사도 조금 모자란 듯한 양이다. 텃밭에서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해 먹기도 한다. 심리적인 안정에 디톡스(detox·몸의 독소제거)는 덤으로 주어지는 혜택이다.
죽도 인구는 48명에 불과하고 평균 70대다. 연수원은 마을과 한참 떨어져 있어 주민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 연수생들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다. 연수원 일대에는 개구리, 고라니, 반딧불이 등이 사람보다 많이 돌아다닌다.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해 볼 만한 경험이다.
전 회장의 이야기다. “첫 일주일은 참가자들의 얼굴이 대체로 어둡고 말도 없어요. 그 심정 제가 뼈저리게 이해합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일주일쯤 지내고 나면 사람들의 얼굴이 신기하게 밝아집니다. 2주차가 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반성과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해요. 3주차가 넘어가면 많은 분이 재기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됩니다. ‘3년 만에 웃어 봤다’는 분도 있었어요. 그냥 내버려 뒀으면 술이나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3주차부터는 재기한 중소기업인이 강의에 나선다. 유사한 경험을 한 선배 기업인에게서 실패자들은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얻는다. 전 회장은 “참가자들은 다른 어떤 강의보다 재기한 선배 기업인의 강의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실패자들, 陽地로 나와야”
이 ‘힐링캠프’에 처음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아니다. 전 회장은 “양지(陽地)로 나와야 재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캠프 참가자 대부분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었으며, 이혼한 경우도 절반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실패한 기업인은 사람들 앞에 나서길 두려워해요. 제가 그 심정을 압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던 사람도 많고, 돈 있을 땐 주변에 몰려들던 사람들이 망하고 나자 하나같이 등을 돌렸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주변사람들을 만나면 자기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니 사람을 피하게 되죠. 사실 실패자들을 이 캠프로 끌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그런데 3기 캠프를 마치고 신문과 방송 등에 소개되고 나니 입소문이 나서 주변인들의 권유로 들어오기도 하고, 스스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신청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전 회장은 “거쳐 간 사람들은 거의 다 주변의 실패자들에게 이곳을 강력 추천하겠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의 참가자들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코스닥에 상장했던 기업의 대표도 있었고, 연매출 1000억원이 넘었던 업체의 대표도 있었다. 여성 기업인도 3명이 캠프를 거쳐 갔고, 부부가 함께 참가한 적도 있다.
“참가했던 사람들이 현재 모두 경제적으로 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부부관계와 가족관계 회복에는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1기생 한 분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업실패 후 온가족이 방 두 칸짜리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딸은 대학을 자퇴하고 본인은 1년을 두문불출했으며 온가족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본인이 캠프 후 재기의 의지를 보이자 온가족이 희망을 갖게 됐고, 아들은 전액장학금에 딸은 외국계은행에 취직하는 등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사업에 온전히 재기한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 감사하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단순한 기업 재기뿐만이 아니라 이런 사례를 들을 때 보람이 정말 큽니다. 가장이 희망을 가지고 재기에 노력한다면 빈곤이나 소통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수많은 사회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 회장은 새 연수원 구상에도 착수했다. 현재 8000여 평인 죽도 연수원의 위치 때문이다. 워낙 땅끝이라 타 지역 지원자가 참가하기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 회장은 그래서 최근 경남 청도에 4만5000평 규모의 땅을 샀다. 여기에 새 연수원을 짓겠다는 것이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의 향후 과제는 이들을 ‘치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캠프를 거쳐 간 49명 중 6명이 중기청과 중진공·신보 등에서 지원하는 재창업자금 지원대상으로 확정됐다.
개발원은 지방중소기업청과 연계를 통해 일자리를 알선할 예정이며, 포스코 삼성생명 아산재단 멕시카나 등 기업체들이 일자리 제공과 강의 등의 지원을 약속한 상태라고 한다.
사실 기업인에게 일자리 제공이라니 낯선 느낌이 없지 않았다. 전 회장의 얘기다. “준비가 덜 돼서 전문분야에 지식을 더 쌓으면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고, 태생적으로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모든 사람이 사업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 연수원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으라고 권유합니다.”
전 회장은 실패한 기업인들을 다수 만나면서 명확한 결론을 얻게 됐다고 했다. 실패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실패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망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어요. 출발이 엉성했던 것입니다. 기업을 창립하면 3년 안에 판가름이 나요. 10년 가는 기업은 전체의 10%도 안됩니다. 근데 문제는 기업이 망하면 혼자 망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은행 돈과 세금이 날아가는 것도 문제고, 그동안 친지 친구들 돈까지 다 끌어오다 보니 가정도 인간관계도 다 망가집니다. 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수렁으로 떨어지면서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하게 되지요. 실패는 죄가 아니라 경험일 뿐입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구제할 방법이 절실합니다. 저의 작은 움직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가장들을 구제하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죽을 결심 안 해 본 중소기업인 없을 것”
부산에서 40여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며 7개 계열사에 직원 350여 명을 고용하고 연 12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견기업인인 전 회장을 부산 사상구의 MS ENG 사무실에서 만났다. 주차장도 따로 없는 작은 건물이었다. 부산에서는 꽤 잘나가는 알짜기업임에도 외관상으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젊을 때는 여느 기업인처럼 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없어졌다”며 “이제는 후배 기업인들을 돕고 싶어 이런 기관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전 회장의 이야기다. “중소기업 경영하는 사람 중 죽을 결심 한 번 안 해본 사람 있겠습니까. 어디론가 혼자 떠나서 머리를 식히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빚쟁이는 모여들지, 가족은 부양해야지, 돈 나올 곳은 없지 … 그러다가 대부분 가정은 파괴되고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속출합니다. 물론 이런 고비를 이겨낸 사람들은 더 큰 성공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혼자서 고비를 이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전 회장은 대학졸업 후 가스회사를 창업해 40년 동안 운영해 왔고, 기업 경영을 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70년대에 가스회사를 운영하다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해 어려운 시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사망자 사돈의 팔촌까지 다 나타나서 살려 내라고 시위하고 엄청난 돈을 배상하라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보험이 있던 시절도 아니지 않습니까. 손해도 크고 욕도 먹고 명예도 잃고 … 어떻게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내 왔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입니다.” 또 당시 잘나가던 모 유지(油脂)회사에 원료를 납품하다 그 회사가 무리한 팽창으로 부도를 맞는 바람에 전 회장 역시 엄청난 타격을 받기도 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현재 모기업인 MS가스 외에 MS종합가스, MS ENG, MS헬스케어, MS코퍼레이션(MS코프) 등 7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는 회사가 궤도에 오르자 죽기살기로 사업에만 힘쓰던 예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세대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자수성가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우상이었어요. 기업을 일으켜 국부를 창출하는 것만큼 사나이로서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냐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었죠. 친구들은 모이면 김우중 회장을 비롯해 자수성가한 기업인 얘기로 꽃을 피웠고, 기업인이 잘나가고 기업인이 우대 받아야 나라가 잘살고 힘이 생길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CEO 출신이 대통령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인은 계속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하나둘 쓰러지면 국가가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건 물론이고, 그들의 가정이 무너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나부터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자에겐 머리 식힐 시간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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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죽도의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연수원 전경(위).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연수원은 통영 죽도의 폐교를 매입해 만들었다(아래). |
실패한 기업인에게는 무엇보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 회장은 생각했다. 재단을 만든다는 큰 목적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실패자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큰 어려움이 왔을 때는 정말 딱 한 달, 안 되면 일주일이라도 혼자 지내면서 좋은 공기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더라고요. 집에 있는다고 당장 돈 생길 구멍이 나는 것도 아니고, 집안 분위기는 험악하고,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하거든요. 그런데 망한 사람이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괜히 관광지나 시골에 머물겠다고 찾아갔다가 사기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요. 떠날 돈도 없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게 죽도 연수원입니다.”
전 회장의 소박한 바람은 주변인과 지역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고,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이 생기면서 재단의 틀을 갖춰 2011년 10월 중소기업청에서 설립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으로 출범하게 됐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은 작년 11월 1차 캠프를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죽도 연수원에서 ‘재기중소기업 경영자 힐링캠프’를 진행했다. 4주간 진행하는 캠프의 참가비는 무료다. 개발원은 전국의 신청자 중 재기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서류-면접 심사를 통해 선정했고, 회당 20여 명의 경영자가 캠프에 참가했다. 현재까지 캠프를 거쳐 간 기업인은 총 49명. 오는 10월 초에는 4기 캠프가 시작될 예정으로, 현재 신청자를 모집 중이다.
“신청자격은 제조업 등 기업을 운영하다 실패한 사람에 한정했어요. 요식업 등 자영업자까지 포함시키면 너무 방대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의부도나 횡령, 사기 등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에 한정했고, 중소기업청 등에서 실시하는 정부 재창업자금 신청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습니다. 재기과정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받지 않은 거죠. 무료로 운영하는 것이니만큼 악용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자기반성과 자신감 회복이 주제
캠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캠프는 흔히 볼 수 있는 재창업교육과는 아예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힐링으로 재기의 발판 마련하기’가 주제다. 4주 동안 여는 캠프에서는 1주차 자기반성과 통찰, 2주차 성공을 위한 의식 업그레이드, 3주차 자신감 회복, 4주차 사업아이디어 구상 및 실행력 강화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낮에는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섬 정상에 1인용 텐트를 치고 홀로 밤을 새우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했다. 4주차에는 자기 소망을 적어 실천을 다짐한다. 힐링캠프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현실적인 창업교육 같은 것은 짜 놓지 않았다.
“창업컨설팅 같은 내용은 외부 각지에서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들으러 여기에 오라는 게 아닙니다. 첫 주에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하고, 마음이 다스려지면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실행력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이죠. 캠프에는 강연이 몇 가지 포함돼 있는데, 주로 심리학자, 심리치료사, 종교인 등이 강사입니다. 사업체를 잃거나, 큰 돈을 잃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다시 일어날 수 없어요. 그 부분을 도와주고자 하는 겁니다.”
연수원 생활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가 40여 명에 불과한 섬인 만큼 빗물을 받아 생활해야 하고, 식사도 조금 모자란 듯한 양이다. 텃밭에서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해 먹기도 한다. 심리적인 안정에 디톡스(detox·몸의 독소제거)는 덤으로 주어지는 혜택이다.
죽도 인구는 48명에 불과하고 평균 70대다. 연수원은 마을과 한참 떨어져 있어 주민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 연수생들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다. 연수원 일대에는 개구리, 고라니, 반딧불이 등이 사람보다 많이 돌아다닌다.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해 볼 만한 경험이다.
전 회장의 이야기다. “첫 일주일은 참가자들의 얼굴이 대체로 어둡고 말도 없어요. 그 심정 제가 뼈저리게 이해합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일주일쯤 지내고 나면 사람들의 얼굴이 신기하게 밝아집니다. 2주차가 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반성과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해요. 3주차가 넘어가면 많은 분이 재기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됩니다. ‘3년 만에 웃어 봤다’는 분도 있었어요. 그냥 내버려 뒀으면 술이나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3주차부터는 재기한 중소기업인이 강의에 나선다. 유사한 경험을 한 선배 기업인에게서 실패자들은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얻는다. 전 회장은 “참가자들은 다른 어떤 강의보다 재기한 선배 기업인의 강의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은 9월 15일까지 ‘제4기 재기중소기업 경영자 힐링캠프’를 개최, 참가자를 모집한다. 캠프는 10월 8일(월)~11월 2일(금) 총 4주 기한으로, 통영 죽도 재기중소기업개발원에서 열린다. 숙박비와 교육비는 전액 무료이며, 신청기한은 9월 15일까지다. 인터넷(http://www.jaegi.org)이나 전화(051-316-4050)로 문의,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격은 ▲부도 및 폐업을 완료하고 재창업을 준비 중인 자 ▲고의부도, 회사자금 횡령, 사기 등 부도 및 폐업의 사유가 부도덕하지 않은 자 ▲정부 재창업 정책자금 신청시 결격사유가 없는 자 ▲경영위기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 경영실권자 중 중대결심이 필요한 자이다. 신청시 제출해야 할 자료는 폐업확인증, 사업자등록증, 신용등급확인증, 재창업 준비자료(사업계획서) 등이다. 참가자는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심사를 통해 30명 전후로 선정된다. |
“실패자들, 陽地로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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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원에서 실패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전원태 회장. |
“실패한 기업인은 사람들 앞에 나서길 두려워해요. 제가 그 심정을 압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던 사람도 많고, 돈 있을 땐 주변에 몰려들던 사람들이 망하고 나자 하나같이 등을 돌렸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주변사람들을 만나면 자기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니 사람을 피하게 되죠. 사실 실패자들을 이 캠프로 끌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그런데 3기 캠프를 마치고 신문과 방송 등에 소개되고 나니 입소문이 나서 주변인들의 권유로 들어오기도 하고, 스스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신청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전 회장은 “거쳐 간 사람들은 거의 다 주변의 실패자들에게 이곳을 강력 추천하겠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의 참가자들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코스닥에 상장했던 기업의 대표도 있었고, 연매출 1000억원이 넘었던 업체의 대표도 있었다. 여성 기업인도 3명이 캠프를 거쳐 갔고, 부부가 함께 참가한 적도 있다.
“참가했던 사람들이 현재 모두 경제적으로 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부부관계와 가족관계 회복에는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1기생 한 분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업실패 후 온가족이 방 두 칸짜리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딸은 대학을 자퇴하고 본인은 1년을 두문불출했으며 온가족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본인이 캠프 후 재기의 의지를 보이자 온가족이 희망을 갖게 됐고, 아들은 전액장학금에 딸은 외국계은행에 취직하는 등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사업에 온전히 재기한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 감사하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단순한 기업 재기뿐만이 아니라 이런 사례를 들을 때 보람이 정말 큽니다. 가장이 희망을 가지고 재기에 노력한다면 빈곤이나 소통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수많은 사회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 회장은 새 연수원 구상에도 착수했다. 현재 8000여 평인 죽도 연수원의 위치 때문이다. 워낙 땅끝이라 타 지역 지원자가 참가하기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 회장은 그래서 최근 경남 청도에 4만5000평 규모의 땅을 샀다. 여기에 새 연수원을 짓겠다는 것이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의 향후 과제는 이들을 ‘치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캠프를 거쳐 간 49명 중 6명이 중기청과 중진공·신보 등에서 지원하는 재창업자금 지원대상으로 확정됐다.
개발원은 지방중소기업청과 연계를 통해 일자리를 알선할 예정이며, 포스코 삼성생명 아산재단 멕시카나 등 기업체들이 일자리 제공과 강의 등의 지원을 약속한 상태라고 한다.
사실 기업인에게 일자리 제공이라니 낯선 느낌이 없지 않았다. 전 회장의 얘기다. “준비가 덜 돼서 전문분야에 지식을 더 쌓으면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고, 태생적으로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모든 사람이 사업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 연수원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으라고 권유합니다.”
전 회장은 실패한 기업인들을 다수 만나면서 명확한 결론을 얻게 됐다고 했다. 실패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실패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망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어요. 출발이 엉성했던 것입니다. 기업을 창립하면 3년 안에 판가름이 나요. 10년 가는 기업은 전체의 10%도 안됩니다. 근데 문제는 기업이 망하면 혼자 망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은행 돈과 세금이 날아가는 것도 문제고, 그동안 친지 친구들 돈까지 다 끌어오다 보니 가정도 인간관계도 다 망가집니다. 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수렁으로 떨어지면서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하게 되지요. 실패는 죄가 아니라 경험일 뿐입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구제할 방법이 절실합니다. 저의 작은 움직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가장들을 구제하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