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張璣鵬前 대통령경호실 교육훈련부장이 지켜본 5명의 대통령들 : 월간조선

지난해 대통령 경호처가 의혹의 중심에 놓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사저(私邸)’ 때문이다. 경호처(이하 경호실)의 기본 임무는 대통령과 가족, 그 외 법령이 정한 요인(要人)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경호실은 피(被)경호인의 신변(身邊)에 이상이 없다면 시끄러울 일이 없는 곳이지만, 역대 정부에서 크고 작은 스캔들에 얽힌 일이 많았다.

“崔圭夏는 紳士, 태평성대 지도자형”

현재 경호실은 힘이 약해졌지만, 과거에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최고권력자의 지근거리에서 근무하므로 그와 관련된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숨’이라는 연결고리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이유로 근접 경호원은 외부에 알려진 모습과 다른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경호원으로서 지켜본 대통령의 모습은 어땠을까. 20년간 청와대 경호관으로 일한 장기붕 전(前) 대통령경호실 교육훈련부장은 “경호실은 대통령의 비공식일정까지 챙겨야 하므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경호원은 자연스레 대통령의 여러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웅산테러 현장에서 수십 개의 파편(破片)을 맞고도 생존해, 10ㆍ26에서 살아남은 박상범 전 경호실장과 함께 ‘청와대 불사조(不死鳥)’로 불린다. 그가 청와대 경호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 5월. 당시 경호실은 10ㆍ26사건 후 공백 상태였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대대적인 문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육군 중위로 복무하던 장 전 부장은 충무요원 공채 5기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충무요원이란 최규하(崔圭夏) 대통령 때 청와대 경호요원을 부르던 말이다.

“제대할 때쯤에 화장품 회사에 취업이 됐습니다. 어느 날 사단장 호출을 받고 갔더니 ‘충무요원 지원을 하라’면서 추천서를 주는 겁니다. 시험을 보고 합격은 했는데 출근할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영등포 화장품 회사로 가기로 결심하고 버스를 탔는데, 청와대 앞에서 동기 한 명이 ‘왜 안 내리냐’고 해서 따라 내렸습니다. 제 미래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죠.”

―경호실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뭡니까.

“각종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경호훈련을 받았습니다. 무의식중에 몸이 반응하도록 감각계를 훈련합니다. 예를 들어 미세한 소리부터 풍선 터지는 소리, 다이너마이트나 폭음같이 총성과 비슷한 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당황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합니다. 우발적인 상황에 경호관의 신체가 동물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죠.”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국보위원장에게 대장 계급장을 달고 있다. 장 전 부장은 “최 대통령과 전 국보위원장이 독대할 때 경호 문제로 보안사와 마찰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참 시절부터 대통령 수행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본 최규하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신사(紳士)였습니다. 실권자가 따로 있었지만, 삼군(三軍)을 통솔하는 국가원수는 대단한 자리잖아요. 그런데도 스스로 과도기를 수습하는 관리자라고 생각하고 나서지 않았죠. 그리고 항상 고뇌(苦惱)하셨어요. 군부의 지지를 얻은 것도 아니고, 국민이 선출한 자리도 아니니까 운신의 폭이 좁았겠죠. 온화하신 분이라 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때를 잘못 만난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태평성국이 됐을 때 적합한 지도자상입니다. 영부인 홍(洪) 여사도 서민적 풍모로 청와대 직원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실권자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경호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청와대 분위기가 흉흉했어요. 전두환(全斗煥) 국보위원장이 대통령을 독대(獨對)하러 올 때마다 보안사 요원들하고 마찰이 있었습니다. 청와대 보안은 우리 소관이고, 더구나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인데 전 위원장 경호를 따로 하겠다고 하니까요. 그때 군인들의 권위의식을 보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全斗煥은 가장 열심히 일한 대통령”

1982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이 서울시경을 시찰하며 근무자를 격려하고 있다.

―그 후로 경호실에 계속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참 역설적입니다. 제가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 전두환이었어요.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그의 진면목을 보고 존경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입니다.”

―전 대통령의 진면목이 뭡니까.

“애국심에 감복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수해(水害)가 날까 봐 걱정하고, 가뭄이 들면 비가 언제 오나 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새벽 2~3시쯤에 인터폰이 울립니다. ‘지금 빗소리가 나는데 강우량이 얼마냐?’고 묻는 대통령의 전화입니다. 현재 강우량, 누적 강우량, 수해지역 상황 등을 꿰고 있어야 했습니다. 또 민정시찰을 자주 했습니다. 새벽에 ‘차를 대기시켜라’ ‘헬기를 대기시켜라’라면서 현장으로 가서 직접 문제점을 확인하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행사항을 꼭 확인했죠. 확인행정의 달인(達人)이었습니다. 제가 모신 대통령 다섯 분 가운데 가장 일을 열심히 한 대통령입니다.”

―경호원으로서 전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이 피곤하진 않았습니까.

“스케줄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경호 차원에서는 전 대통령처럼 예고 없이 움직이는 게 더 안전합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니까 동선(動線)이 알려지지 않잖아요. 언제 수행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용변 문제로 난감했던 적은 있었어요. 그래도 꾹 참고 해야죠.”

―군인들의 권위의식이 싫다고 했는데, 전 대통령은 그 전형 아닌가요.

“겸손한 분이십니다. 군인이니까 ‘내가 뭘 알아’라면서 가장 유능한 사람을 쓰려고 했어요. 반면에 재벌총수들과의 회동에서는 카리스마가 대단했어요. 듣는 사람들은 오금이 저렸을 겁니다.”

―재벌총수들과의 회동이 잦았나요.

“전두환 대통령 재임 때 우리나라 경제가 안정된 성장을 했잖아요. 사람들은 세계적인 호황이었다고 말들을 하는데, 당시 경제성장에는 전 대통령의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대통령은 재벌과의 회동에서 항상 물가, 부동산값 안정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장 전 부장은 전두환 대통령 경호 기간 죽음의 문턱에 간 적이 있었다. 1983년 북한이 전 대통령을 살해하려고 저지른 아웅산테러가 그것이다.

1981년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다. 세계역사상 최초로 개발도상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전두환 정부는 이를 계기로 10ㆍ26과 12ㆍ12, 5ㆍ18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에서 확고한 통치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서울올림픽이 성공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ㆍ김정일에게 서울올림픽은 당연히 파탄을 내야 할 대상이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 제3세계 국가들에 서울올림픽 불참을 종용하는 외교적 노력을 펼쳤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방해 공작에 들어갔다.

北 공작원이 애국가 바꿔치기도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의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한국 대표단. 사진 촬영 직후 테러가 발생했다.

장 전 부장에 따르면 당시는 테러 외에도 우리 외교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공작이 심했다고 한다. 1982년 8월 전 대통령의 세네갈 방문 때 일이다. 타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했을 경우 의전상 그 나라의 국가를 연주한다. 전두환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오는데 애국가가 아닌 정체불명의 노래가 연주됐다. 장세동 경호실장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야, 북한 국가가 왜 나오는 거야! 빨리 중지시켜!”라고 지시했다. 원인을 조사한 결과 북한 공작원이 악보를 바꿔치기해서 생긴 일로 밝혀졌다.

1983년 10월 8일 전 대통령은 서남아 및 대양주 공식 방문을 위해 김포공항을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출발했다.

첫 방문지는 버마(현 미얀마) 양곤. 전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1박을 한 후, 버마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묘소인 국립묘지를 오전 10시30분에 참배할 예정이었다. 9일 오전 전 대통령은 버마 외무장관을 기다렸지만, 그는 약속시각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시간관념이 투철한 전 대통령은 화가 나 의도적으로 5분을 지체했다.

영빈관에서 출발한 시각은 10시25분. 장 전 부장은 당시 경호팀장으로서 숙소 야간 근무 후 아웅산묘소에 도착해 현장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대통령이 영빈관을 출발했다는 무전이 왔다. 10시32분 이계철 주버마 대사가 탄 벤츠 승용차가 묘소에 도착했다. 이를 지켜보던 북한공작원 세 명은 이 대사의 차에 전 대통령이 탔다고 오판했다.

같은 시각 장 전 부장은 대통령 하차 지점으로 이동했다. 그는 하차 예상지점에서 버마 의전 및 경호요원들에게 대통령의 통과지점을 통보하고 최종적인 준비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때 진혼곡 나팔소리가 울렸다. 3초간의 나팔소리와 함께 “꽝”하는 폭발음이 귀를 때렸다. 북한 공작원이 참배가 시작됐다고 생각해 발파 스위치를 누른 것이다. 전 대통령은 아직 도착 전이어서 무사했다. 대신 한국 정부의 장·차관급 관료 및 취재기자 등 17명이 죽었다.

장 전 부장이 폭음을 듣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하늘 높이 솟아오른 폭연과 잔해물이 보였다. 동시에 폭풍이 그의 뒤를 덮쳐 앞으로 넘어졌다. 이때 그는 직경 1mm 정도의 쇠구슬 파편 30개를 맞았지만, 방탄복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장 전 부장은 부상자를 후송하고 시신 수습을 도왔다.

“10ㆍ26 때 경호원 6명이 죽었는데, 방탄복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박상범 당시 수행과장은 방탄복을 입지 않으면 근무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일 양곤 시내 온도가 40℃여서 벗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방탄복 때문에 살게 된 거죠.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웅산테러 이후 인생관이 바뀌었겠네요.

“제가 권위적인 걸 싫어합니다. 군인들이 경호실에 들어오니까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조만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웅산테러를 겪고 달라졌습니다. 죽을 뻔한 목숨이었는데 살게 됐으니까 평생 경호원으로 살아야겠다는 직업의식이 생겼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치밀하고 老獪한 신사”

1993년 7월 방한한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우리 측 경호책임자였던 장 전 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하단에 클린턴의 친필 서명이 있다.

―경호원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노태우(盧泰愚) 대통령의 북방정책으로 소련, 중국 등과 수교를 맺을 당시, 정부대표단에 참여해 경호임무를 논의하고 이를 잘 수행했던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현장에도 경호책임자로 참석했거든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모스크바 방문도 수행했다고 하던데요.

“1990년 12월 노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 수행요원으로 갔습니다. 하루 전에 도착해 대통령 동선을 점검하는데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궁까지 태극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요. 그것도 북한이 개입한 걸로 알고 있는데, KGB 책임자에게 전화해 다시 걸어달라고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을 경호하면서 실패한 적은 없습니까.

“노 대통령이 방미해서 뉴욕 아스토리아 호텔에 묵을 때였습니다. 대통령이 이동하기 전에 출구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30대 남성이 썩은 계란을 던지더라고요. 잡아서 업어치기를 했는데, 미국 시민권자니까 문제가 생긴 겁니다. FBI 수사를 받다가 무마됐는데, 나중에 보니 이 남자가 호남향우회 사람이었어요. 대통령과 경호원이 한통속이니까 던졌다고 하던데, 어쨌든 외교 문제가 될 뻔했었죠.”

―노 대통령도 군인 출신이지만, 전 대통령과 스타일은 많이 달랐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은 일반인들이 아는 것처럼 부드럽고 합리적인 분이셨어요. 언행(言行)도 신중하셨고요. 또 성실함이 몸에 배 있어서 일을 열심히 하셨어요. 그건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밀한 분이었어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노회(老獪)한 신사라고 할까요.”

―YS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시네요.

“개인적으로 그분이 야당을 이끌 때는 제일 존경했지만, 곁에서 본 이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성수대교 붕괴를 군사독재정권이 썩어서 그랬다며 책임을 미루지 않았습니까. 전날 취임했더라도 현직 대통령에게 국정의 총책임이 있으니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그땐 정말 총 풀고 사표(辭表)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최근에도 그분이 청와대 금고 얘기를 하던데, 그런 걸 볼 때마다 정말 실망스러워요.”

장 전 부장이 말하는 청와대 금고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됐던 금고를 말한다. 지난해 ‘조선뉴스프레스’가 출간한 《노태우 회고록》에 따르면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갈 때 YS에게 주기 위해 100억원 이상을 넣어뒀다던 금고다. 이 금고에 대해 YS는 자신의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청와대에서의 첫 집무가 시작된 1993년 2월 25일 나는 앞으로 5년 동안 내가 일할 대통령 집무실을 둘러보다가 집무실 한쪽 모퉁이의 조그마한 방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방 전체가 하나의 금고였다. 방에 일부러 짜맞춘, 천장까지 높이가 닿는 엄청나게 큰 금고가 설치돼 있었다. 대통령 집무실의 초대형 금고. 나는 집무실에까지 그렇게 큰 금고를 설치해 놓은 것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중략) 과거 청와대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고 갔는지 알게 해주는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

장 전 부장은 “북방외교를 펼치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 가장 보람이 있었던 때”라고 밝혔다

“경호원은 특정인에게 충성하면 안 돼”

1993년 2월 취임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고 해체작업을 지시했다. YS는 “금고가 워낙 커서 부품들을 기중기로 날라야 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장 전 부장은 이를 두고 “보안에 무지(無知)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겉봉에 ‘대통령 친전(親展)’이라고 적힌 서류는 대통령 이외에 그 누구도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군 출신 대통령들은 보안의식이 철저했습니다. 청와대 금고가 돈을 보관하는 데도 쓰였겠지만, 기밀서류 보관이 주용도였습니다. 그런데 YS 때부터는 비서들도 거리낌없이 ‘대통령 친전’을 뜯어봤습니다. 이전 대통령들 같으면 불벼락이 떨어질 일이거든요. 그런데 김 대통령도 중요 문서들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다닐 만큼 보안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불만을 갖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경호가 됐나요.

“그건 경호원의 직업의식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격발음(擊發音)이 들리면 일반인들은 몸을 움츠리지만, 경호원은 몸을 최대한 확장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선을 찾습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요. 끊임없이 본능을 억제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직업의식이 있는 경호원이라면 본능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윗사람에게 충성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호실 전체가 물갈이돼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요직만 교체될 뿐이에요. 경호원은 특정인에게 충성하면 안 됩니다. 충성하는 건 정책적 보좌진의 몫이고,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라는 임무만 수행하면 될 뿐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경호실장이 제게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라’고 해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습니다. 차지철 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서 10ㆍ26사건 때 몸을 숨기려 했던 건 아니잖아요. 낙하산 인사들이 경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직업의식을 강조한 거고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지도자 덕목 아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도중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지모씨에게 피습당해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역대 경호실장 15명 중 군 출신은 11명, 경찰은 2명이다. 경호실 내부에서 승진해 실장이 된 사례는 박상범(김영삼 정부), 염상국(노무현 정부) 실장뿐이다. 장 전 부장은 “경호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맡게 되면 실패한다”며 YS 페인트 투척 사건,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테러 등에 대해 언급했다.

1999년 6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첫 외국출장을 나가다가 71세 노인 박모씨가 던진 ‘페인트 달걀’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공항 귀빈주차장에서 환송 나온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던 도중 인파에 끼어 있던 박씨로부터 붉은색 유성 페인트가 든 달걀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박씨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재개에 반대하기 위해 달걀을 투척했다”고 밝혔고, 김 전 대통령 측은 당시 “눈에 맞았을 경우 실명될 수도 있었던 정치적 테러사건”이라고 규정했다.

2006년 5월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50대 지모씨에게 피습당한 일이 있었다. 지씨는 한나라당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유세 일정 등을 확인하고, 사전에 현장에 도착해 문구용 칼을 샀다. 그는 이날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차 박 대표가 단상에 오르는 순간, 칼로 얼굴을 그었다. 박 대표는 오른쪽 뺨에 깊이 1~3㎝, 곡선 길이 11㎝ 규모의 깊은 상처를 입고, 60여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경호업무를 하려면 군사, 행정, 사회, 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또 공간과 기후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상황판단력도 필요하고요. 한마디로 종합예술인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페인트 투척 사건이나 박근혜 위원장 테러 사건은 경호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겁니다. 전문경호원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장 전 부장에 따르면 경호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촉수(觸手)거리 유지의 원칙 ▲체위(體位) 확장의 원칙 ▲경호지휘권 단일화의 원칙이다. 촉수 거리 유지의 원칙이란 손을 뻗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피경호인을 두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직위가 높다는 것만으로 경호원이 피경호인과 큰 거리를 두고 경호를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걸 좋아합니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걸 탈권위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피경호인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하지만 원칙만은 지켜야 합니다. 근접경호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방어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누가 가장 경호하기 어려운 대통령이었습니까.

“경호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누가 쉽고, 어렵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쇼맨십이 강해서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이 원칙을 무시한 요구나 지시를 할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경호원은 이를 슬기롭게 회피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경호도 실패사례라고 할 수 있죠.”

―20년 동안 5명의 대통령을 지켜본 결과 나름 생각한 ‘대통령상’이 있습니까.

“전문가가 아니라 말을 하기 어렵지만, 대통령의 기본 덕목은 신중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원수의 언행이 가볍고 이벤트성 정책이 많으면 국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사람을 잘 써야 합니다. 군인 출신 대통령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배치했습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은 아닌 것 같아요. 이번 대선에서는 신중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