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金秉準 교수 : 월간조선

노무현(盧武鉉)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金秉準) 국민대 교수의 인터뷰를 기획한 것은 3월이었다. 문재인(文在寅)·이해찬(李海瓚) 국회의원 당선자, 한명숙(韓明淑) 전 대표 등 친노(親盧) 세력이 민주통합당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김 교수만 변방(邊方)에 머물러 있는 점이 궁금했다. 김 교수야말로 대표적인 ‘노무현 맨’ 아니었던가. 그는 1993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3월 초 첫 번째 만났을 때 김 교수는 인터뷰가 어렵다고 했다. “《조선일보》와 간단한 인터뷰를 했는데 폭탄 메일 수백 개가 쇄도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비보도를 전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가 마음을 바꿨다. 총선 직후 만나자고 했다. “동지(同志)들이 금기(禁忌)시하는 것을 하면 오해받을까 걱정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선’을 그어 놓고 행동하는 것이 내 철학과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통합당의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한명숙 대표가 사퇴를 선언한 다음 날인 14일 국민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친노 세력은 원래 《조선일보》 쪽과는 아예 만나려고 하질 않더군요. 김 교수께서는 좀 트인 분이라 생각해 요청을 했던 것인데.

“《조선일보》와 지난 2월 8일 인터뷰를 했어요. 평소 아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와 한·미 FTA와 몇 가지 물어보길래 대답했죠. 기사가 크게 나갔더군요. 그 이후에 악성 이메일(e-mail)과 문자 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노무현 팔아서 장사하느냐’라는 내용의 메일을 읽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죠. 그런데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선’을 긋는 것 자체가 ‘분노의 정치’입니다. 분노의 정치를 하지 말자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3월 25일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 전면거부와 출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같은 달 23일 ‘경기동부연합’과 관련한 기사가 자신들에게 ‘악의적’이라는 이유를 댔다. 경기동부연합은 자주파의 핵심이다. 통합진보당은 ‘친노깃발’을 내건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쳐진 당이다. 당내 대표적 친노 인사로는 유시민(柳時敏) 공동대표와 천호선(千皓宣)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있다.

“《조선》인터뷰 거부도 분노정치”

―최근 분노의 정치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는데 분노의 정치가 무엇입니까.

“상대를 욕하고 적으로 규정한 다음, 적을 향한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분노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은 뒤 권력을 획책(劃策)하려고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정치를 하려는 것이죠. 분노의 정치가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긴지 아십니까.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담론을 만들지는 않고 역대 대통령들에게만 십자가를 다 지게 했어요. 그런데 세상은 변했나요? 다음 대통령도 1~2년 지나면 또 비판의 대상이 될 겁니다. 근본적인 대안이 없으니 피해를 본 사람,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고, 이들이 또 분노할 테니까요.”

―분노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방안이 있나요.

“분노의 정치가 출발하는 구조는 대의정치 자체가 작동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농경, 초기산업시대에는 변화의 흐름 속도가 현재에 비해 훨씬 느렸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의제를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었죠. 하지만 현재는 흐름의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국회가 이 속도를 따라가질 못합니다. 중요 의제를 토론할 만하면 또 다른 중요 현안이 등장하죠. 국민의 기대 수준과 국회의 작용이 어긋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 의사의 부단한 수렴 및 참여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통해 대의정치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일반 대중 전체가 문제를 해결할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부, 토론하는 문화가 우선 형성돼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씀이지만 뿌리 깊숙이 내려온 분노정치가 사라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오직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때문입니까?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 심판론’을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대통령만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인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비판받던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었는데 더 어려워졌으면 어려워졌지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김 교수를 만난 4월 14일은 4·11 총선이 끝난 첫 주말이었다. 언론들은 총선 결과에 대한 분석기사를 쏟아냈다. 김 교수에게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물었다.

“한명숙 전 총리는 FTA 말 바꾸면 안 돼”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한 한명숙 전 대표.

―민주통합당 문재인 당선자가 이른바 ‘낙동강 벨트’를 구축하지 못했는데요.

“최종 결과는 민주당이 부산 2석(사상, 사하을), 경남 1석(김해갑) 등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기는 했지만 낙선한 후보들도 40~45% 정도로 유례없이 높은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꼭 패배라고 볼 수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문재인 바람’을 막기 위해 박근혜 위원장이 부산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그 때문에 박 위원장이 수도권에 ‘올인’할 수 없었어요. (문 당선자가)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래도 승리는 과반을 확보한 새누리당이 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내세우면서도 노 대통령의 주요 공약(한·미 FTA,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은 부정했습니다. 이런 이중성을 국민이 심판한 것이지요. 이해가 잘 안되지 않습니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앞장서 그 정책을 추진하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달라졌는지. ‘그 당시에는 노 대통령이 압박을 넣어서 할 수 없이 찬성했다’고 말하는 게 차라리 떳떳한 거 아닌가요? 총리였던 한명숙 전 대표는 진짜 그러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FTA와 강정마을에 대한 방정식은 다차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비판에도 한·미 FTA를 추진한 것은 남북통일 문제, 산업구조 조정, 행정혁신, 국가와 시장 간의 권력배분 등 여러 가지 사안을 감안해서 결정한 것입니다. 제가 외교안보 전문가가 아니라서 과정을 확실히는 모르지만 강정기지의 경우도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주요 전쟁터가 중·일, 러·일 갈등에서 중립국이었으며 사실상 비무장 상태였던 조선의 땅과 바다였다는 처절한 역사를 기억하며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일차방정식의 시각에서 반대합니다. 일차원적 논리로 노 전 대통령이 잘 결정했다, 잘못 결정했다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FTA와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이야기가 나와서 질문하겠습니다. 한명숙 전 대표와 문재인 이해찬 당선자, 김진표(金振杓) 이용섭(李庸燮) 의원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왜 입장을 바꿨다고 봅니까.

“이해찬 전 총리는 FTA와 관련해서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김진표 이용섭 의원은 당과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재인 당선자는 FTA 체결하는 데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은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을 바꾸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자서전인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를 보면 권력의 무서움에 대해 나옵니다. 엄청난 책임감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권력을 잡고 나면 재미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권력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무거운 역사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나 정부 내에서 구체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책임론’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무거운 책임감에 몸서리친 적이 많았습니다.”

“문재인, 민정수석을 했는데 순수하기만 할 수 있겠나”

김병준 교수는 문재인 실장이 순진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사진은 문 당선자가 당선인사를 하는 모습.

―문재인 당선자도 권력 가운데 있었던 인물입니다. 권력이 무섭다는 것을 잘 알 텐데요.

“문 당선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한마디만 하자면 문 당선자는 민정에 계셨던 분입니다. 민정은 모든 사람이 앞에 와서 고개를 숙입니다. 남의 목을 칠 수 있는 자리니까요. 어느 정부에서도 언론이나 사회단체가 민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내려친 적이 없습니다.”

―권력의 쓴맛보다는 달콤한 것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겉보기에 순수한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는 거군요.

“민정수석을 맡았던 분인데 순수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시던 분이 불명예스럽게 하늘나라로 갔는데,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네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것은 아니고요. 대선주자가 된다든가 당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는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문 당선자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지지도가 요동치고, 과거 관계가 좋았던 사람들과 어색해지기도 하고요. 바늘방석일 것입니다.”

―문재인 당선자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미래 화두를 쥐는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아직 미래 화두를 선점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꼼수’ 멤버로 노원갑에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은 김용민(金容敏)씨의 막말 파문이 총선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생각할 때 김용민씨는 우리나라의 문화게릴라로서 훌륭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분을 꼭 국회로 끌어들여야 했을까요?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까지 영입하는 것은 ‘천박한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김씨의 막말 파문이 총선 결과에 영향을 줬느냐고 물었는데 영향을 미쳤겠죠. 김종민씨 아시죠? 이 친구가 전화를 해서 김용민이랑 이름이 비슷하다 보니 표가 매우 많이 깎였다고 하소연하더라고요. 안타까웠습니다.”

안희정(安熙正) 충남도지사의 20년 지기(知己)로 정무부지사를 지낸 김종민(金鍾民)씨는 충남 논산·계룡·금산 지역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섰지만, 자유선진당 이인제(李仁濟) 후보에게 2.5%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방송사 출구조사에서는 김씨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었다.

―정치참여는 안 할 것입니까.

“안 한다고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다만 정치를 하고 싶어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저는 제 정책적 소신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받아 주겠습니까. 민주통합당과 저는 FTA는 물론이고 서비스산업 육성, 산업구조조정 등 정책적인 측면에서 어긋나는 점이 많습니다.”

노 전 대통령과 김 교수는 각별한 사이다. 김 교수는 1993년 노 전 대통령이 운영하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강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뒤 브레인 역할을 해 왔다. 노무현 정부 관계자 중에는 “‘노무현 바람’을 등에 업고 일약 대권 주자로 발돋움한 문 당선자보다 김 교수가 훨씬 노 대통령과 가까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그를 아꼈다. 그에게 국무총리직을 제의하기도 했다. 당내에서 TK(대구·경북) 출신의 김 교수가 총리로 임명되는 것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지만 않았어도 37대 국무총리 이름이 바뀌었을 수 있다. 37대 국무총리는 한명숙 전 대표가 맡았다. 김 교수에게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존재였을까.

2007년 대선 출마하려 했던 이유

2006년 10월 24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이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준 뒤 이야기를 나누며 간담회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제가 참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대통령 집무실 안 작은 방에서 둘이 차를 마시는데 갑자기 코피가 나는 거예요. 제가 코피가 잘 안 나는 편인데. 노 대통령이 보고 깜짝 놀라더니 휴지를 가져와서 막 닦아 주더라고요. 그때 이후 한 달 동안 대통령이 제 눈치를 보더라고요.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말은 무뚝뚝하게 해도 참 인간적인 분이었습니다.”

2007년 김 교수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책임 없는 경선출마로 체급 올리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2007년 6월 26일 《뉴스메이커》(현 주간경향) 기사는 그의 경선 출마에 대해 “상당수의 주자는 승부 자체보다는 경선출마를 통한 ‘체급 올리기’에 관심이 큰 것 같다. 일단 후보경선에 뛰어들어 거물급과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정치적 체급이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라고 썼다.

그에게 출마 이유를 묻자 “살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100% 후보가 안될 줄 알았다. 당연한 것 아니냐. 그러나 대권 경선에 나가 패배하면 그 명분으로 당에 들어가 ‘친노’가 숨 쉴 수 있는 영역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때는 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모두 등을 돌린 상태였다.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어떤 일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어떤 일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선택이라고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도 예상했습니까.

“당연히 했습니다. 저도 조사를 받았는걸요. 제 주위 분들까지도요. 아마 이명박 정부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도 정권이 끝나면 조사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도 예상했겠군요.

“검찰 조사까지는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나 정부, 시민사회로부터 적지 않은 압박과 비난이 있을 것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보고드렸고요.”

―어떤 목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돈거래가 있었던 건 사실 아닙니까.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도 확신하는 것은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는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대통령은 저에게 이런 문제와 관련,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분이 검찰조사 받고 ‘정말 몰랐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권양숙 여사가 개인적으로 받은 것입니까.

“네.”

―노 전 대통령이 굉장히 원망했겠습니다.

“원망요? 안 했을 겁니다. 대통령이 평생 정치인으로 살면서 집에 생활비 한 번 가져다준 적이 없습니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평 없이 내조를 잘해 온 것을 노 대통령은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원망을 하겠습니까. 노 대통령 성격상 ‘내가 잘 챙겨 주지 못하고 못 벌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하며 미안해했겠지요.”

이 답변을 하는 와중에 김 교수의 전화가 울렸다. 김 교수는 “퇴원했다고? 몸은 괜찮니?”라며 연신 안부를 물어댔다. 통화가 끝나고 “누구냐”고 묻자 딸이라고 했다. “어디가 편찮았던 모양이다”고 하니 “내 어머니와 딸과 손녀가 병원에 6~7개월씩 입원해 있었다”며 “만약 내가 공직에 있었을 때 내 와이프가 병원비 때문에 기업인 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내가 원망할 수 있겠느냐. 노 대통령도 나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정동영 때문에 마음고생

―노무현 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과 가장 각을 세운 정치인이 누구입니까.

“정동영 의원입니다. 대권 주자라 많이 배려하고 우선시했는데 정 의원은 대통령의 제안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06년 7월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 출마 거부를 말하는 것입니까.

“네. 노 대통령은 떨어져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출마해야 한다고 권유했습니다. 아무래도 차기 대권 주자였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셨죠. 정 의원은 출마하지 않았지만요.”

당시 보도된 《조선일보》 기사의 일부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에게 오는 26일 실시되는 서울 성북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었다고, 열린우리당 핵심 관계자가 7일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관계자는 ‘당 의장에서 사퇴한 정 전 의장이 지난달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면담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직접 출마를 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이 이를 고사하자, 노 대통령은 일부 여당 인사들에게 정 전 의장 출마를 고려해 달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정 전 의장에게 출마 권유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 전 의장 측은 “출마 권유 여부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일도 있었나요.

“노인 폄하 발언으로 인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라고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를 제안했는데 절대 못 맡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 김근태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정 의원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했는데 원래는 반대였습니다. 그 사건 이후 대통령이 굉장히 언짢게 생각했습니다.”

―최근 총리실의 불법사찰 문제가 불거졌는데 노무현 정부 때도 불법사찰이 있었습니까.

“제 눈으로 확인을 못했으니 100% 확신을 갖고 있었다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노 전 대통령은 사람에 대한 정보 자체를 보고받기 싫어했습니다. 보고하지 말라고 했지요. 대통령이 싫어하는 정보를 캐내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참여정부에선 (반대파에) 인위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식의 사찰은 없었습니다. 정권유지 차원에서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특정 집단을 몰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감행된 사찰이나 감찰은 없었습니다.”

―2003년 10월 17일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이광재(李光宰) 전 강원도지사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한다는 이유로 경질을 요구했는데요. 독점한 정보가 사찰로 인한 정보 아니었습니까.

“사찰로 인한 정보가 아니었음은 물론 정보가 이광재 전 지사에게 집중되지도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시스템론자입니다. 정보의 독점이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을 가장 잘 아는 게 노 전 대통령이었지요. 만약 이 전 지사가 권력을 독점했다면 저부터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겁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는 막았어야”

김 교수는 경제전문가다. 노무현 정부 때의 굵직한 핵심 정책 중에는 그의 손을 거친 게 많다.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문제가 되는 대기업들의 싹쓸이식 기업행태의 출발점이 언제부턴지 아나? 원래 대기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못 넘어오게 만든 제도는 박정희 대통령 때 생겼다. 그게 어느 정도 지켜져 오다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때다. 진보라고 하면서도 대통령 주변을 포위한 경제적 신자유주의자들에게 홀딱 넘어가 대기업들에 길을 터준 거다. 참여정부의 과도한 기업 간 경쟁유도 정책이 양극화를 키운 기본 원인이다. 그거 하나만 봐도 노 대통령은 경제정책 면에서 대통령 될 준비가 전혀 안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며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교수의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정운찬 전 총리가)그렇게 이야기하면 안되는데, 하지만 원죄(原罪)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 전 총리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고유업종을 우리가 많이 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는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 막지 못했나요.

“당시 저는 정책실장이 아니었습니다. 한 발 물러나 있었죠. 아마 정책실에서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고 건의했을 겁니다. 정책실의 ‘산업정책’ 비서관이 중소기업 담당이었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는 구조였습니다. 막지 못해서 재벌 회사 계열사는 대폭 늘어나고 수천 개의 중소기업은 대거 쫓겨났습니다.”

“논문표절 얘기때 노 대통령이 결백 편지 써 주겠다 했다”

최근 언론에 김 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새누리당 문대성(文大成) 당선자가 박사논문 표절 의혹을 받으면서다. 언론들은 앞다퉈 2006년 교육부총리로 내정된 김 교수를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시킨 새누리당이 문 당선자에 대해서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논문 표절 의혹은 김 교수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논문 표절 의혹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저는 논문을 표절한 적이 없습니다. 표절 의혹을 받는 논문은 87년 11월 초순 완성돼 12월 행정학회에서 발표됐습니다. 제가 표절했다는 신모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88년 2월에 통과됐고요. 87년 11월 초순 완성돼 12월 행정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88년 《한국행정학회보》 6월호에 실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신씨는 현재 고인이다.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안타까워했을 텐데요.

“내 표절 여부에 대해 학교는 물론, 청와대 민정에서도 다 조사했습니다. 결론은 아닌 것으로 나왔고요. 노 대통령이 ‘말 위에 있는 임금을 쏘고 싶은데 임금을 쏘지 못해 말을 쐈다’며 가슴 아파하셨죠. 그러더니 저의 결백을 이야기하는 편지를 써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은 제가 세월과 싸워 가며 찾아가야 할 명예입니다. 대통령이 편지를 써 주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했지요. 내 가족 내 동료 제자들이 저를 믿고 제가 떳떳한데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오후 5시40분이 되니 김 교수는 6시에 선약이 있어 나가 봐야 한다고 했다. 1시에 김 교수를 만났으니 꽤 시간이 흐른 터였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그는 전날(13일)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으니 “아무리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같은 편에 있던 분들이 폄훼(貶毁)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 인터뷰하는 것이니 오해하시지 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예정을 미리 통보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