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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성 목회자3

金炯民 대학연합교회 목사

“지도자의 희생이 있어야 청년들이 따릅니다”

글 : 이근미  월간조선 객원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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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지 않는 우울하고 자존감 낮은 청년들에게 ‘일어서라, 빛을 발하라’고 외치는 김형민 목사.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시대에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의 교회가 배우려는 대학연합교회의 부흥 비결은 언행일치와 현장성이다.

⊙ 대형집회 초청 1순위 목사, 젊은 세대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교계 주목받아
⊙ “너는 사모가 아니라 목사감이다. 목사 안수를 받아라”(시아버지 오관석 목사)
⊙ 1994년부터 7년간 회교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목숨 내놓고 선교
⊙ 유물론(唯物論)과 인본주의 사고에 물들어 있는 대학을 선교지로 삼아
⊙ 청년들에게 애국과 복음 강조, 애국은 공심에서, 복음은 동심에서 나온다

金炯民
⊙ 51세. 미국 사우스웨스트 뱁티스트대학, 골든게이트 침례신학대학원 졸업.
⊙ CTS TV <김형민 목사의 청년독수리> 진행자. 사우디아라비아 선교사 역임.
⊙ 저서: 《사도행전 29장》.
  ‘이 시대의 나약한 청년들을 강한 정신력과 믿음으로 무장시키는 교회’.
 
  대학연합교회가 내세운 세 가지 슬로건 중 하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건국대 새천년관을 찾았을 때 850석이 꽉 차 간이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건국대 새천년관 예배는 500석의 국제회의실과 성수성전에 위성중계된다. 일요일에 세 번의 예배가 열리는데 1부와 2부는 김형민 목사가 설교하고 3부는 제자 목사들이 돌아가면서 설교한다. 평일예배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성수성전에서 열린다.
 
  아담한 체형의 김형민(金炯民) 목사는 오전 11시 2부 예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폐부를 찌르다가 눈물을 흘리는 등 자신의 감정을 설교에 가감없이 실었다.
 
  “최고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힘들어도 끝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방향을 올바로 잡고 될 때까지 노력합시다.”
 
  고저장단이 적절한 데다 대화체를 자주 사용해서인지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김 목사는 “한때 ○○적, ○○적 하면서 유식한 척 설교하자 다들 안 듣더군요. 우리 교회는 교수, 의사, 유학파 등 배우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은 오히려 골치 아픈 설교를 안 좋아하세요. 쉬운 설교, 체험이 있는 설교를 하려고 애쓰죠. 지식이 아닌 진리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라고 했다.
 
  예배 참석자의 대부분이 청년이었는데 장년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청년과 장년의 비율이 7:3 정도 되고 남녀의 비율은 5:5 정도라고 한다.
 
 
  세련됨이 목사를 망친다
 
  1부와 2부 설교를 마친 김형민 목사는 새천년관 세미나실로 옮겨 새 신자들을 위한 체인지(Change) 집회를 인도했다. 이 교회는 일요일이면 식당과 스카이라운지 등 여러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체인지 집회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설교, 5시부터 두 시간 동안 기도, 7시부터 세례식으로 이어진다. 세례 받은 사람은 다음날 새벽기도에 참석한다. 대학연합교회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처음 온 사람들이 소화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김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매주 30~40명 정도의 새 신자가 옵니다. 오늘 온 새 가족이 다음 주에 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젊은 친구들은 예쁘고 건강하지, 날씬하지, 미래가 창창하지, 아쉬운 게 없어요. 바퀴벌레 10마리 세우는 것보다 청년들 세우는 게 더 어렵다잖아요. 매년 세대 차이를 더 느껴요. 다음 세대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진다는 긴박성과 절절한 마음으로 새 신자 예배를 이끄는 겁니다.”
 
  그날도 김 목사는 새 신자들 앞에서 자신이 교회 다니게 된 계기에서부터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시간 제한 없이 설교하기로 유명한 김 목사가 집회에서 가장 길게 설교한 기록은 무려 11시간이라고 한다.
 
  “그날 변화될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죠. 세련됨이 목사를 망칩니다. 제자들한테 제가 교만하고 느끼하면 강단에서 바로 끌어내리라고 했어요. 처음 온 분한테 떡이나 주고 간단하게 인사하고 그래서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요즘 교회가 성장하지 않자 구약·신약에다 쥐약이라도 먹겠다고 하는데, 새 가족을 붙들고 씨름하면 절대 마이너스 성장하지 않습니다.”
 
  청년들과 호흡하는 김형민 목사는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달랐다. 싱싱하고 젊은 감각이 묻어났다. 체인지 집회가 끝난 후 성수동의 성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크리스마스 저녁이지만 연말연시에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여 저녁 인터뷰를 강행했다.
 
 
  기독교 명문가 며느리
 
  대학연합교회는 본부를 비롯하여 국내외 17개 대학교회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 내에 예배 장소를 마련한 곳도 있고 교회 바로 앞에 장소를 마련하여 교회를 꾸민 곳도 있다. 대학교회를 개척하면 김형민 목사의 제자들을 파송하여 지원한 후 자립이 가능할 즈음 독립시킨다. 현재 몇 군데를 제외하고 다 독립한 상태이고 독립한 교회에 대해서는 재정을 비롯한 일체의 운영사항을 간섭하지 않는다.
 
  대형집회 초청 1순위 목사인 그녀는 젊은 세대를 이끌어 가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기독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CTS TV 토크쇼 ‘김형민 목사의 청년독수리’ 사회자로 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 목사이기도 하다. 그녀의 집안은 기독교 명문가다. 기독교침례회 총회장을 지낸 부흥사 출신 오관석 목사가 시아버지이고 하늘비전교회 오영택 목사가 남편이다. 목사 부인이라면 ‘사모님’ 역할을 하며 조용히 내조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정서이다. 김형민 목사는 시아버지 오관석 목사의 권유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신학교 졸업하고도 목사 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너는 사모가 아니라 목사감이다. 목사 안수를 받아라’고 강하게 권하셨어요. 영적 혜안이 있으신 분이어서 순종했지요.”
 
  오영택 목사는 집회에 가면 교인들에게 “여러분 청년독수리 보세요?”라고 광고할 정도로 아내를 자랑스러워한다.
 
  “시아버지는 부흥사이시고 남편은 장년목회를 하고 저는 청년목회를 하니 함께 모이면 서로의 목회 방식에 대해 경청합니다. 남편이 1년에 한 번 우리 교회 새벽예배에 와서 설교해 주세요. 저도 1년에 한 번 정도 남편 교회에 가죠. 그러면 다들 ‘사모님 오셨다’며 환영해 주세요. 저 대신 시어머니께서 남편을 도와주십니다.”
 
 
  기적적으로 신학교 입학
 
김형민 목사(오른쪽)는 매년 1월 1일이면 청년 신도들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전달한다.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오관석 목사가 전화하여 며느리 김형민 목사를 격려해 주었다.
 
  김형민 목사는 유교 집안에서 자라 20세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대학에 떨어지자 미션스쿨 다닐 때 채플에 자주 빠져 벌 받은 거라고 생각했고, 하나님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 앞날이 풀릴 것 같아 무작정 교회를 찾아 나섰다.
 
  “버스에서 교회 앞이라는 안내방송을 하길래 내려서 들어간 곳이 여의도순복음교회였어요.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제가 첫날 큰 감동을 받고 ‘저 단 위에 있는 목사님처럼 되고 싶어요. 저를 미국에 가서 공부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무슨 일이든 감동을 받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인지라 북을 구입해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노래를 부르며 전도에 나섰다. 일요일에 북을 치면서 동네를 돌면 100여 명의 아이가 교회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재수를 하면서도 전도를 쉬지 않았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때 다방에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크게 외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자기는 아버지가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인데도 전도를 못해 봤다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느냐고 하더군요. 그게 인연이 되어 스물세 살 때 결혼하고 유학 가는 남편 따라 미국 미주리주(州)로 갔죠.”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아 “나도 학교에 다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저 좀 밀어 주세요. 투자하시면 절대 후회 안 하십니다. 하늘나라 공무원 되겠습니다. 절대 배신 안 할게요, 이런 기도를 하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요. 백인 남자가 비를 피하려고 우리 집 처마 밑에 서 있다가 제가 우는 걸 보신 거예요. 저한테 왜 우느냐고 하시는데 영어를 잘 못할 때여서 그냥 ‘스쿨, 스쿨, 스쿨’이라고 했어요. 제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내일 찾아오라며 주소를 남기고 가셨어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 사우스웨스트 침례대학교 총장이었고, 다음날 그녀에게 4년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1980년대 초 토플점수도, 학생비자도 없는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입학해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은 파출부, 쿠키가게 점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골든게이트 침례신학대학원에 다녔다. 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교회집회에 초청받아 설교를 하고 방송에서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우디에서 목숨 걸고 선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부목사로 목회 활동을 시작한 남편 오영택 목사가 갑자기 중추신경이 전기선처럼 벗겨지면서 하반신이 마비되는 희귀병에 걸렸다. 다른 사람 등에 업혀 단에 올라가 강대상을 붙잡고 설교할 정도로 증세가 나빠졌다. 나중에 눈과 귀가 멀고 결국 뇌가 마비되면서 식물인간이 되어 죽는 병이라고 했다.
 
  “척수를 뽑아서 세계 유명병원에 보내 검사를 의뢰했지만 대책이 없다는 답변이 왔어요. 남편은 병실에 누워 창밖을 보며 마음대로 배설하는 비둘기를 부러워했어요. 남편과 얘기를 하던 중에 16세 때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서원했다는 걸 알았어요. 이대로 죽느니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도 지키자고 하루 9번씩 먹던 약을 버리고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를 탔어요. 걷지도 못하는 남편을 죽이려 한다며 다들 난리였지요.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 간 지 얼마 안되어 남편이 축구를 할 정도로 회복되었어요. 지금은 완쾌가 되었고 다리를 약간 저는 정도예요.”
 
  1994년부터 7년간 회교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목숨을 내놓고 선교했다.
 
  “공사 현장이 거의 철수해서 교민이 많지 않을 때였어요. 남은 교민 가운데 3분이 1이 우리 교회에 나왔어요. 주일예배는 270명 정도, 새벽기도에는 100명 정도 출석했죠. 굉장히 뜨거웠어요.”
 
  유치원을 경영하면서 그곳을 예배장소로 삼았다. 교인들은 교민모임 참가나 유치원 학부모로 위장하여 태권도복을 입고 유치원에 왔다. 밖에서 망을 보던 사람이 낌새가 이상할 때 벨을 누르면 성경책을 던져서 바로 숨기고 남녀가 따로 앉는 식으로 고비를 넘기곤 했다.
 
  “당시 성경공부하던 필리핀인 두 명을 마약사범으로 뒤집어씌워 사형시켰어요. 우리나라 사람도 성경공부하다 잡혔지만 나중에 무사히 나왔어요. 국가가 부강하면 다른 나라에서 함부로 못한다는 걸 선교 현장에서 느꼈죠.”
 
  밤중에 사막으로 나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크게 소리내어 기도하다가 순찰차가 돌 때면 얼굴을 모래에 묻고 죽은 듯이 있었다. 예식장을 빌려 가슴졸이며 전도대회를 하고 성찬식은 돌잔치처럼 위장해서 치렀다.
 
  “그때 소망은 사우디에서 선교하다가 죽는 거였어요. 시어머니는 빨리 한국에 돌아오라고 재촉하셨지요. 제가 사우디에 뼈를 묻을 거라고 하니까 ‘너나 묻어라, 우리 아들은 못 묻는다’ 그러셨어요(웃음). 사우디 정보기관에 들통이 나서 더 버티지 못하고 7년 만에 귀국했습니다.”
 
대학연합교회 주일 예배 모습.
 
  건국대에 깡통교회 세워
 
  한국에 돌아와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알던 교수의 소개로 건국대 신우회 교목을 맡았다. 그게 인연이 되어 2001년 1월 건국대학교 내에 컨테이너를 이어 붙인 깡통교회를 세웠다.
 
  “우리나라 각 교파에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할 때였는데 저는 유물론(唯物論)과 인본주의 사고에 물들어 있는 대학을 선교지로 삼자는 비전을 세웠어요. 청년 때가 가장 총기 있고 힘 있고 용기 있잖아요. 최상품일 때 훈련시키면 30~40년 활동할 수 있어요. 가족이 있고 지킬 게 많은 기성세대는 움직이기 힘들어요.”
 
  10여 명의 학생이 건설현장의 창고 같은 컨테이너에 모여 교회가 시작되었다. 김 목사는 밥솥을 사서 밥을 해 먹이고, 학생들이 나태해지면 회초리로 자신의 등을 때리게 하는 등 사랑과 감동을 베풀며 신앙훈련을 시켰다. 초창기 김 목사에게 훈련받은 학생들이 후일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현재 대학연합교회 부목사와 전도사가 되었다.
 
  학생들이 70명까지 늘어나고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도 많아졌을 때 학교당국으로부터 대학깡통교회를 철거하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다른 시설물이 들어선다는 말에 학교 내 산중턱 숲속으로 컨테이너를 옮기기 위해 땅을 파고 나무를 옮겨 심었다. 그 과정에서 나무가 손상되자 학교 게시판에 항의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급기야 김형민 목사와 열심히 도운 두 교수가 고발당해 법정에 서는 사태로 번졌다.
 
  결국 건국대에서 철수를 하고 몇 달 동안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예배를 진행했다. 교인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교회 임차 장소를 구하기 위해 김형민 목사와 학생들은 유해전파차단기를 팔러 다니기도 했다. 딱한 소식을 들은 타 교회 교인들이 헌금을 해 주고 남편 오영택 목사 교회에서 1억2000만원을 도와주어 2억원을 마련, 건국대 앞에 있는 건물을 임차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청년세대
 
  2002년 7월, 신도 30명으로 재출발한 대학연합교회는 6개월 만에 280명으로 늘어 40평 예배장소가 비좁아졌다. 학교 강당을 비롯해 좀 더 큰 장소를 얻으려고 알아봤으나 임차료가 만만치 않았다. 몇 개월을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자 자체 건물을 사기로 결심했다. 성수 전철역 옆에 있는 건물 5, 6층을 20억원에 분양받기로 했다. 당시 서울시립대 앞에 대학교회를 개척했고, 건국대 앞 성전은 그대로 운영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교회가 가진 건 3000만원이 전부였어요. 계약금만 3억원인데 95%의 교인이 학생이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저는 늘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해요. ‘어떻게 하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됐다. 20억원을 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생각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데 의사고시를 준비 중이던 건국대 의학과 학생이 5000만원을 내겠다고 나섰다. 의사는 5000만원을 대출해 준다는 전단지를 보고 그런 결심을 한 것이다. 간호사는 3000만원 대출이 가능했다. 그러자 의사고시와 간호사고시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다 헌금을 내겠다고 작정했고, 제대로 시험 준비를 못한 학생들이 그해 모두 고시에 붙어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김형민 목사의 지인들이 감동을 받아 헌금을 하면서 건물을 무난히 구입할 수 있었다.
 
  2004년 7월 성수성전에 입당하면서 교회가 안정되자 김형민 목사는 밖으로 눈을 돌렸다. 3년여 동안 매년 2개 이상의 대학교회를 개척하고 대학교에 ‘샤인랜드’라는 동아리를 개설하느라 바빴다. 해외 대학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해외 나들이도 잦았다.
 
  “산토끼를 잡으러 다니다 보니 집토끼가 달아나 교회가 한때 침체되었어요. 2008년에 3개월간 매일 교회에서 기도회를 열고, 각 구역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찾아다니는 심방(尋訪)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서서히 회복이 되더군요.”
 
  교회는 다시 빠르게 성장했고 지난해 8월 건국대 새천년관을 예배장소로 사용하면서부터 교인이 더욱 늘었다. 깡통교회에서 고생할 때가 엊그제 같다는 김 목사는 새천년관을 사용하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한다.
 
  김형민 목사는 요즘 학생들의 특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념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움직입니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좌파 쪽으로 쏠리는 건 사실이지만 확실한 이념이 있는 건 아니에요. 10년 전에는 이거 아니면 저거, 딱 구분이 됐고 아니라고 하면 바로 돌아섰는데, 지금은 아예 듣지를 않아요. 자기 안에 고집이 있어서 의도성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되면 설득을 안 당하려고 해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자존감이 낮고 우울증을 앓는 학생들이 많아요. 한마디로 나도 남도 그 누구도 안 믿는 애들입니다. 신앙으로 변화해야 하나가 돼요.”
 
 
  시위 현장에서 애국심 호소
 
남편 오영택 목사와 함께.
  김 목사는 그때그때 현장으로 나가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2000년대 중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모 후보가 “하나님은 없다. 기독교는 마약”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자 해외 일정을 취소하고 학생들과 함께 해당 지역구로 항의하러 갔다. 전단지 1만장을 뿌리자 결국 그 후보가 한기총(한국기독교총회)에 가서 무릎 꿇고 사과했다.
 
  2004년 3월 15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기 위해 10만명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기독교인들까지 네 편 내 편 갈라져 데모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 목사는 50여 명의 학생과 함께 시청으로 달려갔다.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크리스천 젊은이들이여,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가서 김 목사의 칼럼을 담은 전단지를 나눠 주었다. ‘초대교인들처럼 중심을 잡고 사상이나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위에 앉지 않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자’는 요지의 글이었다.
 
  “살벌한 구호가 오가는 곳에 앉아 소리 높여 기도하자 ‘너희들 어느 쪽이냐’며 위협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랑곳하지 않고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고 왔죠. 분위기가 정말 험악했습니다.”
 
  김 목사는 편을 갈라 싸우는 정치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한 달 후 부활절에 애드벌룬을 띄우기로 결심했다. 1000만원의 경비를 어렵게 마련하고 당국의 허가를 힘들게 받아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호를 잠실 종합운동장 위에 띄웠다.
 
  “옳다고 생각하면 달려 나갈 뿐 저는 정치목사가 아닙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청년들에게 바른 가치를 심어 주고 시대상을 똑바로 분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줄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말을 해야 할 때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맥아더 장군 동상을 훼손한 일이 발생했을 때도 학생들에게 그 사실을 똑바로 알렸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경찰 한 명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미국을 무조건 쫓아가자는 게 아니다. 6·25 때 미국 젊은이 수만 명이 우리나라에 와서 피 흘린 걸 기억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해 줬습니다.”
 
  감사를 가르치기 위해 동대문 보훈회관에서 1년 넘게 할아버지 할머니 몇 백 명에게 매일 점심을 대접한 일도 있다.
 
  “청년들이 직접 밥을 해 할아버지들께 대접하면서 국가관을 배우고 앞선 세대의 공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 없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나요? 목사들이 하나님 나라와 국가는 생각하지 않고 개개인에게만 집중하면 안 됩니다. 축복받으라는 말만 할 게 아니라 결정적일 때 알려야 할 것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그런 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기도 했지만 저 자신을 다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김형민 목사의 할아버지(김성련)는 가업(家業)이던 철광산을 정리하여 김구(金九) 선생의 독립자금을 댔고, 노무현 정부 때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주변에서 김 목사에게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 같다는 말들을 한다.
 
  김형민 목사는 자신이 결심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주는 교인들이 고맙다고 한다. 이 교회는 장로가 되면 의무적으로 국내외 개척교회에 나가 선교를 해야 한다. 나이 많은 교인들도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이 대학연합교회의 특징이다.
 
 
  사랑의 회초리가 필요한 시대
 
캄보디아 선교 현지에서 세례하고 있는 모습.
  김형민 목사는 청년사역에서 중요한 것은 ‘구호와 반복’이라고 했다. 그래서 평소 구호를 통해 정체성과 자존감 훈련을 시킨다.
 
  “돈 앞에 담담하고 사람 앞에 당당하고 신앙생활 단단히 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존감 회복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겸손을 가장하면 혼납니다. 누가 ‘멋지다’고 했을 때 ‘아니 뭘요’라고 하는 건 교만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고맙습니다. 그대로 받겠습니다. 저는 멋진 사람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샤인(Shine) 정신을 강조하는 대학연합교회의 공식 인사말은 “샤인하세요”이다. 빛을 비추면 어둠이 떠나가듯이 ‘예수 안에 다 있으니 순결과 정직으로 세상을 바꾸고 이미 완성된 미래를 바라보며 항상 웃자’는 의미이다. ‘샤인 7000’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실천의지를 다지고 있다. ‘목회는 교육이 생명’이라는 모토 아래 국내에서 대안학교인 샤인 인터내셔널스쿨을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초등학교, 내년에 중학교를 개교한다.
 
  초창기에는 교인의 95%가 학생이었으나 이제는 직장인 비율이 더 높아졌다. 그만큼 재정이 튼튼해졌으나 대학연합교회는 매년 마지막 날이면 재정이 제로가 된다.
 
  “돈이 쌓이면 타락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는 돈과 이성과 명예욕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든 재정을 남김없이 선교에 사용합니다.”
 
  지난해 캄보디아대학교회에 3억원을 지원하여 학교와 병원을 지을 땅을 구입했다. 국내 대학교회 중에 자립이 안된 곳을 지원하고 폴란드와 동남아시아 쪽 대학교회는 재정, 사역자 사례비, 렌트비, 활동비를 계속 지원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한 대학연합교회를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지난해 10월 ‘목회자를 위한 샤인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콘퍼런스에 참석한 100여 명의 국내 목회자들이 궁금해한 것은 이 교회에 청년들이 몰려드는 이유, 개척교회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 제자훈련 방법, 여성목회자의 강점 등이었다. 이론보다는 생생한 사례 공개로 콘퍼런스를 이끈 김형민 목사가 강조한 것은 “젊은이들은 자신을 던져서 불사를 대상을 찾으면 웃으면서 고생한다. 진리로 솔선하고, 말과 행동이 같아야 젊은이들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내 생애 내일은 없다
 
  개척교회 성공비결은 김 목사의 별명 ‘뚜러뻥’ ‘브레이크 투르(Break through)’로 대변할 수 있다. 대학 신우회 초청으로 설교를 하는 등 기회가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한 뒤 결단하면 바로 행동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이 교회의 제자훈련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길 체험’이다. 현장을 모르면 사역이 불가능하다는 경험 아래 이 교회는 밖으로 나가 훈련을 한다. 현장을 중시하는 ‘남성적 목회’이다 보니 한동안 남녀 비율이 7:3이었다. 당시 남학생들의 기도 제목이 “여학생들 오게 해 주세요”였다고 한다.
 
  여성목회에 대해 김형민 목사는 이런 견해를 밝혔다.
 
  “요즘 시대에는 감성적 리더십이 맞습니다. 여성의 감성으로 청년들을 감싸 안아야죠. 열쇠는 사심(私心)이 아닌 공심(公心)과 동심(童心)입니다. 우리 교회는 청년들에게 애국과 복음을 강조합니다. 애국은 공심, 복음은 동심에서 나옵니다. 지도자의 희생이 있어야 청년들이 따릅니다.”
 
  초창기부터 사비를 들여 학생들을 보살폈던 김형민 목사는 최근에 와서야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기 시작했다. 콘퍼런스 참석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체인지 집회’였다. 김 목사는 체인지 집회를 ‘엎어치기 집회’라고 소개했다. 이 교회는 2002년에도 외부의 요청으로 새벽기도, 각종 예배, 새 가족 케어, 전도, 심방, 교제 등의 방법을 담은 ‘구역장 목양매뉴얼’을 공개한 바 있다.
 
  올해 1월 1일 예배에서 김형민 목사는 전 교인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지급했다. 이는 초창기부터 내려오는 이 교회의 전통이다. 김형민 목사는 회초리를 지급하면서 “부모의 권위가 세워지면 다음 세대가 축복받는다. 명문가를 만들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 가족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아빠가 때리면 엄마는 말리지 않고 자녀들은 그대로 따르겠다”는 서약을 하게 했다. 사랑의 회초리는 잠언 13장 24절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성실하게 자식을 징계한다’는 말씀에 의거해 만든 것이다.
 
  김형민 목사는 요즘, 제자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많이 주는 등 교회운영을 시스템화하고 있다.
 
  “큰 교회 만들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안락해지니까 야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답답해요. 목회에 있어서 야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총기와 힘이 있고 도전정신이 있을 때 선교를 더 하고 싶어요.”
 
  ‘내 생애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달린다는 김형민 목사는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슴졸이며 선교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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