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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성 목회자1

徐英嬉 한중사랑교회 목사

“유물사관으로 무장한 중국동포에 기독교 정신을 가르칩니다”

글 : 이근미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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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동포들에게 친정 같은 교회, 누적 등록 교인 9500명
⊙ 중국동포 가사도우미로 채용, 성경 가르치다 교회 설립하게 돼
⊙ 신도 중에는 중국에서 대학교수, 의사, 교장 등으로 활동한 지식층 많아

徐英嬉 목사
⊙ 54세. 고려대 교육학과 졸업. 총신대 신학대학원 신학과, 한국성서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선교학
    전공(Th.M).
⊙ 現 법무부 지정 동포체류지원센터 대표.
  한중사랑교회를 찾기 위해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공단사거리에 내려 지나가는 중년여인에게 교회 위치를 물었더니 진한 중국 연변 말투로 “따라오시요. 나도 거기 가는 길이요”라고 했다. 어떤 교회냐고 슬쩍 물어보자 “친정 같은 곳이지요. 목사님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친정 같은’ 한중사랑교회를 이끄는 서영희(徐英嬉) 목사는 중국동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입국하는 동포들이 바로 이 교회로 찾아올 정도이다.
 
  지난 8월 28일 예배에 참석했다. 일반 교회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바닥에 앉아 예배를 봤다. 서영희 목사가 설교를 하다가 “동포 여러분”이라고 하는 것도 특이했다. 일반교회에서는 목사의 설교에 “아멘, 할렐루야”로 호응하는데 한중사랑교회 교인들은 달랐다. 서로간의 대화 형식으로 예배가 이루어졌다. 서 목사가 “에덴동산에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어떻게 했지요?”라고 물으면 “돌로 쳐서 죽였어요”, “왜 그랬을까요?”라고 질문하면 서로 다른 각자의 생각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식이다. 목사와 청중이 호흡하니 설교시간에 졸거나 한눈파는 사람이 없었다.
 
  2001년 2월 가리봉동의 가정집에서 4명으로 시작한 한중사랑교회에 지금까지 등록한 누적 교인 숫자는 9500명이다. 중국으로 돌아간 사람이 많아 요즘 출석하는 인원은 약 2500명이다. 주일예배에는 보통 700~800명이 참석한다.
 
 
  매년 중국동포 1500명씩 등록
 
  서 목사는 교인이 50명이던 2002년 7월 현재의 오피스텔 3칸을 구입해 한중사랑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 300명이 앉을 수 있는 본당이 얼마 안 가 꽉 차는 바람에 1층 상가와 10칸의 오피스텔에 비디오를 설치해 예배를 보고 있다.
 
  10칸의 오피스텔은 한국에 처음 온 중국동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사랑의 집’이라고 부른다. 한 달에 6만3000원만 내면 하루 세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평균 120여 명이 기거하는데 대개 6개월이면 일자리를 찾고 거주할 곳도 마련한다. 중국동포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체류 활동을 돕기 위해 사단법인 한중사랑을 설립하여 의료·법률·행정·취업·고충처리 분야의 자원봉사도 펼치고 있다.
 
  서른두 살부터 교회에 본격적으로 출석한 서영희 목사는 새 신자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어 중국동포들을 이해하기 쉬웠다고 한다.
 
  “교회에 처음 나갔을 때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잘 모르고 청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는데 뒤에서 흉을 보는 겁니다. 무안했지요. 그때 생각을 하면서 새 신자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안 들도록 매사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상담하고 진료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해 새 신자와 접촉점을 많이 만들고 누구나 편안하게 올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교인들이 전도를 열심히 하여 1년이면 1500명씩 새로 등록한다.
 
  “중국동포들은 고구마 줄기처럼 다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의 제자를 철저히 훈련시키는 것이 전도 전략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고 자녀 된 도리가 뭔지, 정확히 가르치는 게 중요합니다. 중국에서는 아프고 못사는 사람이 주로 교회에 다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유명한 사람들, 잘사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니 진짜 좋은 게 있으니 다니겠지, 그런 생각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한중사랑동포잔치. 올해는 경기도 안양천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공산주의와 기독교주의 충돌
 
  서 목사는 중국동포들은 한국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고 전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유물사관(唯物史觀)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에 온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래된 교인이 교회 주변의 담배꽁초를 줍고 청소를 깨끗이 하자 입국한 지 얼마 안 된 동포가 “왜 돈도 안 주는데 그런 일 하나. 그러면 사람들이 바보라고 한다. 돈 안 받고 일하는 사람은 웃기는 사람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중국동포들은 ‘관계중심적인 한국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속적인 관계를 위해 대놓고 싫다는 말을 못하는 게 우리나라 정서라면 중국동포들은 관계를 일시에 끊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매사에 부딪치는 편이다. 교회 창립 초창기에 제직회 모임 때면 몹시 시끄러웠다고 한다.
 
  “공산주의의 세계관과 하나님의 진리가 부딪쳐서 공동체 화목의 개념이 성립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초기 얘기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신 직선적인 성격이어서 옳다고 생각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전진합니다. 몽골 기마(騎馬)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어요. 순수하고 열정적이죠. 저도 비슷한 성격이어서 동포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신나요. 동포들과 생체리듬이 맞아서 말 타고 가듯이 마구 달립니다.”
 
 
  투병 아이 때문에 교회 나가
 
  서영희 목사는 원래 수줍음이 많고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26세에 결혼하면서 시어머니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고부(姑婦) 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다니는 척만 했다.
 
  “둘째가 뇌에 물이 차는 뇌수증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생후 100일 만에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겁이 나서 ‘아이만 무사하게 해주면 교회에 다니고, 아들을 목사로 만들겠다’고 기도했어요. 수술은 잘 끝났지만 머리에 호스를 꽂아 물을 빼내는 장치를 했고, 10년마다 호스를 갈아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 돌보느라 교회 가는 걸 까맣게 잊고 지냈지요.”
 
  수술 후 아이가 기침만 해도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하여 바로 병원에 달려가곤 했다.
 
  “2년을 거의 매일 병원에 들락거리다 보니 제가 노이로제에 걸렸어요. 애가 일주일 동안 온몸이 굳기도 하고 감기가 크루프(croup·급성폐쇄성후두염)로 번져서 목이 잠기고, 바람 잘 날이 없었어요. 원래 제가 자아(自我)가 강하고 고집이 센 성격인데 아이한테 매달려 있다 보니 우울증이 와서 피폐해졌어요. 내 힘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교회에 나갔죠.”
 
  1988년 그는, 좋은 교회를 고르기 위해 당시 살고 있던 월계동에서부터 동대문까지 모든 교회를 돌며 설교를 들어보았다. 까다롭게 고른 교회가 월계동의 대광교회였다.
 
  “목사님이 설교를 굉장히 논리적으로 차근차근하셨는데 그게 저랑 잘 맞았어요. ‘하나님은 왜 못사는 사람과 부자를 나누는가. 착한 사람을 왜 구원 안 하시나’ 그런 궁금증이 생기면 밤 10시에도 목사님께 전화했어요. 성경이 참 재미있지만 천국과 부활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군요. 어느 날 고린도후서 5장 5절의 ‘부활의 보증수표로 성령(聖靈)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씀을 읽을 때 의문이 풀리더군요. 우울하고 괴로웠던 제 마음을 바꾼 것이 성령이고 그 성령이 보증한다면 천국과 부활을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아이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히 병원에도 덜 가게 되었다. 13세 때 아이 머리에 장치한 호스를 바꾸러 병원에 갔을 때 더 이상 머리에 장치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완쾌 판정을 받았다.
 
 
  평신도 때 180명 전도
 
중국동포들을 상대로 한 상담사역.
  그는 대광교회에서 2년간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성경공부를 확실하게 했다. 한 번 빠지면 몰입하는 성격대로 교회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제자훈련을 마치고 전도대에 들어갔어요. 낯가림이 심하고 옆집에 놀러도 못 가는 성격이라 낯선 사람한테 말 걸기가 어렵더라고요. 기도를 많이 하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열심히 기도도 했지요. 1996년에 전도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자원해서 전도대장을 맡았어요. 1997년과 1998년 상반기까지 전도를 많이 하여, 그 가운데 180명에게 1:1로 성경을 가르쳤어요.”
 
  성경 공부를 할 때 신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처음 은혜를 받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든다”는 주변의 말에 그냥 눌러놓고 있었다. 1998년에 먼저 신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이 “더 늦기 전에 신학 공부를 하라”고 권유했다. ‘마흔두 살인데 이제 가서 뭘 하겠나’ 하는 회의가 들었지만 미련이 남아 기도원에 갔다. 기도하는 가운데 마태복음 4장 19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이 귀로도 들리고 눈에도 보이는 체험을 하고 진학을 결심했다.
 
  전도대장 자리를 내놓고 독서실에 다니면서 두 달 반 동안 준비하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에 진학했다. 명문대 졸업생이 몰려 기본적으로 세 번은 떨어진다는 신학대학원에 합격하자 주변에서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전체 합격생 900명 가운데 여자는 50명이었다. 주중에는 용인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집에 왔다. 당시 중국동포 가사도우미를 구하면서 오늘날의 한중사랑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가사도우미로 구한 분이 연변에서 17년 동안 초등학교 교장선생을 했던 분이었어요. 주말에 집에서 그분에게 성경을 가르쳤어요. 불법체류자여서 늘 불안했다는 그분이 성경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었다며 올케 두 분을 모시고 왔어요. 주일에 함께 교회에 갔는데 설교가 어렵다며 그냥 내가 하는 게 이해가 잘된다는 거예요. 2001년 2월 가리봉동의 가정집에서 4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교회가 시작되었죠.”
 
  2002년에 교인이 50명으로 늘었을 때 남편 이상부(李相富) 장로가 오피스텔 3칸을 사서 교회 처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때는 넓어서 헤엄을 칠 정도였죠. 처음부터 성경을 가르쳤어요. 중국동포들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가르쳤지요. 제가 교사 출신이어서 가르치는 건 좀 자신 있습니다.”
 
  제자훈련 하기가 수월했던 것은 중국에서 대학교수, 의사, 교장선생 등의 활동을 한 지식층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체 교인 가운데 40% 정도는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제자훈련은 2년에 걸쳐 실시된다.
 
  2년의 제자훈련 과정을 마친 사람에 한해 집사 직분을 주는데 현재 178명이 집사로 임명받았다. 집사들이 35개 교구의 교구장을 맡고 있다. 교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단위가 아니라 교구장들의 인맥에 따라 교구가 구성되어 있다. 교인의 70%, 집사의 90%가 여자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소속으로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교단 가운데 여자 목사 배출 제도가 없는 곳이 많아 여자 목사가 매우 적은 편이다. 목사 안수를 못 받으면 세례를 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고심 끝에 2005년에 카이캄(KAICAM·한국독립교단연합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카이캄은 교단에 관계없이 정규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해주는데 현재까지 1500여 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그 가운데 30% 정도인 500여 명이 여자 목사이다. 카이캄 관계자는 “힘든 사역지에서 감동적인 목회를 하는 서영희 목사는 카이캄 출신 목사들에게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잘 알려진 분”이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주일마다 100만원 헌금하는 동포도 있어
 
  한중사랑교회는 설립한 지 10년이 되었고, 출석교인이 2500명에 이르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자립을 못 했다. 2005년 이후부터 교인이 크게 늘어 1층 상가와 ‘사랑의 집’을 늘려가면서 경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다. 서 목사는 교인들의 믿음이 확고히 서기 전에 헌금 부담을 느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헌금을 강조하지 않았다. 이제 교인들에게 자립을 가르칠 때라고 판단하여 작년부터 헌금을 강조했는데 현재 십일조(수입의 10분의 1) 헌금을 바치는 교인이 120명에 이른다.
 
  “100만원을 헌금하는 분이 일주일에 한 분 정도는 꼭 있어요. 이분들한테 100만원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1000만원, 1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에요.”
 
  인건비와 교회 운영비를 합쳐 1년에 7억~8억원이 드는데 2009년에는 필요경비의 33% 정도 들어왔다. 작년에 51%가 들어왔고 올해는 60%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적자가 나는 경비는 남편인 이상부 장로가 마련했다. 이상부 장로의 지인(知人)이 가끔 5000만원, 3000만원을 헌금해 주어 빚 없이 꾸려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고려대 캠퍼스 커플이다.
 
  “작년에 의료봉사 오신 분들이 사용한 약값이 1700만원이었어요. 그것도 제약회사에서 50% 할인해 준 가격입니다. 그동안 그런 돈은 교회에서 지불했는데 이번에 ‘우리가 쓴 약값을 우리가 내도록 하자’고 했더니 2300만원이 모였어요. 한 번도 약을 타간 적 없는 분이 127만원을 가져와 감동했지요.”
 
  중국동포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갖게 된 건 큰 변화라고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 모든 허물을 나한테서 찾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라는 공동체 생활의 기본을 가르쳤습니다. 단체가 잘되기 위해서는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죠.”
 
한중사랑동포잔치에서 장구춤을 추고 있는 중국동포 여성들.
 
  법무부 직원 ‘접시꽃 목사’라 불러
 
  서 목사는 중국동포들이 입국과정에서 한국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국에 더 빨리 오기 위해 편법을 쓰고 욕심을 냈던 걸 회개하자”고 가르칠 정도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당의 지시에 따라 살았던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오면 모든 면에서 혼란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 와서 공산당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안 데다 따라야 할 중심사상이 없어져서 공허한 거죠. 절대적인 통제사회가 무너지면 가치관의 공황상태가 옵니다. 공허한 마음이 기독교 가치관으로 차오르면서 이분들의 삶이 변하고 있습니다.”
 
  서영희 목사의 활동은 2008년까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해에 한중사랑교회 교구장이 불법체류자로 잡혀가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이 ‘사랑의 집’에 와서 불법체류자를 체포해 가는 일도 있었다.
 
  “경찰과 법무부 출입국에 가서 ‘교회에 와서 사람을 체포해 가면 되느냐’고 항의하고 우리 교인을 데리고 왔어요. 그때 우리 교회 현황을 설명하면서 중국동포들이 얼마나 묵고 있고, 경비가 늘 모자라 남편이 충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서영희 목사는 2008년 제1회 세계인의 날에 법무부장관상 개인상을 받았고, 제2회 세계인의 날에는 국무총리상 단체상을 수상했다. 서 목사의 사연에 감동한 법무부 출입국 직원이 ‘이름없이 사랑으로 헌신하는 접시꽃 목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하는 바람에 MBC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다.
 
  그때 인연으로 법무부 지정 동포체류센터 대표와 서울출입국사무소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법무부에서는 한중사랑교회에서 중국동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을 보고 한중사랑교회 자체를 법무부 지정 동포체류지원센터로 정하고 법이 바뀌면 바로바로 통보해 준다.
 
 
  북한 복음화에 큰 역할 기대
 
  해마다 여는 한중사랑동포잔치 때면 온 교인이 1박2일 여행을 떠난다. 그때마다 대광교회에서 돼지고기 1500근을 지원해 준다고 한다. 인원이 3000명에 육박하면서 숙소를 구하기 힘들어 올 봄에는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현재 부목사와 강도사, 전도사 8명이 이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 교회 출신으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동포가 5명에 이르는데 중국동포가 직접 사역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으로 돌아가 교회를 설립한 집사도 있어 내년부터 선교사를 파송하여 중국 교회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중사랑교회 표어는 ‘한 사람의 새 신자가 한 사람의 선교사로 양육되고 파송되는 교회’이다. 중국선교가 중요한 것은 북한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동포들은 북한과 자유왕래가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예수 믿은 중국동포들이 중국사회를 바꾸고 있는데, 앞으로 북한까지 바꿀 것이 확실합니다. 중국동포들은 직선적이고 담대하여 북한 복음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제 소원은 북한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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