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정당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아는 것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하고 그 속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기존 정당들은 이런 새로운 정치 관심층, 특히 젊은 신진 정치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이들은 의견을 내고 싶은데 들어 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치경험은 없지만 말을 잘 들어 주는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예전 정치세력은 정치인이 주창하는 정책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최근 정치세력은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들에게 모여들고 있는 것입니다.”
⊙ 해적당 대표인 세바스티안 네츠는 지금 대학원 졸업시험 준비중
⊙ 당의 입장은 미리 정하지 않고 당원들과 난상토론 거쳐 확정하는 오픈 시스템
⊙ 2013년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1차적 목표
⊙ 해적당 대표인 세바스티안 네츠는 지금 대학원 졸업시험 준비중
⊙ 당의 입장은 미리 정하지 않고 당원들과 난상토론 거쳐 확정하는 오픈 시스템
⊙ 2013년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1차적 목표
40살만 넘은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인터넷을 무기로 정치를 할 생각을 했을까.
막강한 조직과 자금, 인력을 투입해야만 하는 정치판에 겁 없는 젊은이들이 뛰어들었다. 우리나라 얘기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최근 ‘안철수 현상’이 상징하는 젊은이들의 특징적인 정치성향이 온통 화제다. 이게 비슷한 현상인지 아닌지는 전문가들이 좀 더 분석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개인 안철수씨가 미는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후보 야권 경선에서 대한민국 제1야당의 박영선 후보를 눌렀다는 사실이다. 어떤 힘으로 이겼을까. 인터넷, SNS 등 다양한 인터넷 네트워크의 위력이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을 무기로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사례, 이건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한 대상이다.
그래서 2011년 9월 독일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의 득표율을 올리며 의회 진출에 성공한 무서운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바로 해적당(海賊黨)이란 것이다. 기성 정치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름도 괴상하다. ‘민주’ ‘정의’ ‘보수’ ‘진보’ 따위가 아니라 ‘해적’을 당 이름에 붙이다니.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해적당을 키웠다”
이 젊은이들이 해적이란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인터넷 사용과 직결된다. 공식 명칭은 피라텐 파르타이(Piraten Partei)다. 그대로 번역해도 해적의 정당이다. ‘해적’이란 이름은 불법 음반·영화 자료들을 ‘해적판’이라고 부르는 데서 따왔다고 한다. 불법 복제를 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 용도의 복제(複製) 권리 보장을 주장하고 인터넷 검열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해적당 대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나간 곳은 베를린 중앙역 옆 호스텔. 10월 4일 오후 3시(현지 시각)였다.
검은 정장에 빨간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왼쪽 깃에는 해적당을 상징하는 깃발 배지를 달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해적당 대표 세바스티안 네츠(28)였다.
튀빙겐 공과대학 학생인 그는 석사 논문을 마치고 현재 졸업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도 하며 해적당 대표까지 겸업하고 있던 그는 최근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인터뷰·토론회 일정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도 튀빙겐에서 인터뷰, 뮌헨에서 TV 토론을 하고 왔으며, 다음 날은 영국 BBC 방송을 비롯한 방송사 4곳과 라디오 프로그램 두 곳의 인터뷰가 있다고 했다.
해적당의 지방의회 진출 이후인 10월 초 실시한 주간지 《슈테른》 여론조사에서 해적당은 전국 지지율 8%를 기록했다. 집권 기민당과 기사련의 연정 파트너인 163년 역사의 자유민주당(FDP), 동독의 집권 정당이었던 통일사회당의 후신 좌파당을 모두 제친 것이다. 자민당은 독일 정치사상 최장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으나 최근 지지율이 2%로 추락해 위기를 맞고 있다. 이 28살의 정당 대표에게 궁금증을 물었다.
―해적당은 2006년 9월 10일 불과 수십 명의 젊은이로 창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딱 5년 됐고, 더구나 프로 정치인들도 아닌데 베를린 선거에서 8.9%를 얻었습니다. 경이적인 기록인데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이번 지방선거로 의회에 진출할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렇게 높은 득표율을 기록할 줄은 몰랐습니다. 5% 정도로만 생각했죠(독일은 득표율 5%가 넘으면 의석 수를 확보할 수 있다).
당원들의 평균 나이는 31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지역색’과 ‘기성 정치에 대한 회의’입니다. 먼저 베를린은 유럽 내에서는 드물게 개발이 진행 중인 대도시입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들이 새로운 것을 찾는 욕구에 우리가 맞아떨어진 것이라 봅니다.
두 번째는 기존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과 의심입니다. 시민들은 기성 정치인들이 정치를 투명하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책결정 과정이나 논의가 비밀스럽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리는 당 내의 모든 의견과 결정 과정들을 공개할 수 있는 ‘오픈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시스템인가요.
“우리는 굳이 당원이 아니더라도 당이나 정치현안에 대해 의견을 갖고 있거나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수시로 ‘당의 날’이라는 것을 개최합니다. 인터넷이나 다른 루트들을 통해서 ‘당의 날’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당원이 아니더라도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기발한 의견도 나오고 현 정책의 새로운 문제점도 보입니다. ‘브레인 스토밍(brainstorming)’ 식의 형태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면 나눠서 진행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의회를 통해 반영할 현안이나 정책들도 이런 방식으로 정할 것입니다. 또 해적당은 베를린 시의회에서 모든 입법활동을 웹캐스팅(인터넷 방송)으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2006년 9월 다름슈타트 공대생들이 ‘인터넷의 자유’를 외치며 창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잘못 알려진 부분입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 60여 명이 베를린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름슈타트 공대생도 있었고 서점 주인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냥 맥주를 마시며 정치적인 주제 등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죠. 그러자 이들의 불만이 ‘인터넷의 자유와 인프라 확충’에 집중됐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하다가 이미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해적당’(2006년 1월)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갖고 온 것입니다. 스웨덴의 해적당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는 인터넷 외 외교·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도 주도할 계획입니다.”
―당원 모집은 어떻게 합니까. 본인은 어떻게 당에 가입하게 됐나요.
“당원 모집 활동을 특별히 하는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 보면 인터넷 등을 통해 해적당을 알게 되거나 친구들을 통해 가입하게 됩니다. 굳이 당원이 아니어도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등록된 당원보다 더 많은 수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2009년 입당했는데 역시 마찬가지 경로였습니다. 직업이나 전공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성정당, 수십 년간 같은 말만 하고 귀를 닫아
현재 독일 인터넷은 야한 동영상이 있으면 웹사이트 접근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야하다’는 부분이 애매합니다. 업무와 관련해 웹사이트에 접속을 하려다 보면 전혀 ‘야한 동영상’과는 관계가 없는데 접근 불가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독일 경찰 측에서 유연성 있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방법을 찾다가 해적당의 존재를 알게 됐고 당원으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하게 가입한 사람들로, 현재 평균 나이는 31세, 당원 수는 1만4000명입니다.”
―당 성향은 어떻게 됩니까. 각종 정책 분야가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입장을 정했습니까.
“우리는 성향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사회자유주의 정당’입니다. 각 분야에 대해 많은 사람과 ‘난상토론’을 하다 보면 가장 바람직한 방향과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각 주제별 방향에 대해서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이 해적당의 정체성입니다.
전 기존 정당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당 성향 때문에 입장까지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거대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여당)과 사회민주당(SPD·제1야당)은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그 정당들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도 오래됐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 전부터 같은 테마에 대해 같은 의견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기민당이니깐 경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야 돼’, ‘우리는 사민당이니깐 안보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해야 돼’라는 식이죠.
내가 실감하기로 그들은 20년 전에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루는 주제도 방식도 동일합니다. 이들은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이슈나 의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시민들과 주파수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수십 년간 같은 말만 반복하고 귀는 닫아 버린 정당에 대해 사람들은 기대와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죠.
이는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자유민주당(FDP)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묻지 않아도 한 이슈가 나오면 기존 정당들의 입장을 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자민당은 자신들의 기존 입장인 ‘친(親) 기업’ 입장만 강조하다 보니 정작 시민들의 권리를 무시해 외면당했습니다.”
“당은 소통의 도구”
―30년 전 창당해 현재 전국 지지율 3위로 우뚝 선 녹색당과 많이 비교되는데요.
“녹색당과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둘 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당입니다. 기존 정당에 대해 신뢰가 떨어진 시점에 창당했다는 점도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녹색당은 당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원자력 반대 운동 등 환경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정당입니다.
해적당 같은 경우는 소수의 사람이 모여 ‘당(黨)’을 만든 이후에 주요 테마를 정했습니다. 녹색당이 주제를 정한 다음 그를 이루기 위해 당을 만들었다면, 우리 해적당은 소통의 도구로 당을 만든 다음 주요 주제로 인터넷을 정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녹색당도 창당한 지 30년이 지나면서 기존 정당들의 잘못을 반복하는 부분이 보입니다. 선거 때 내건 공약들을 지키지 않거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지지한다고 했다가 반대한다고 하는 등 말을 번복하고 있습니다. 실수하는 부분입니다.”
―기존 정당들이 고전하는 건 정당정치의 쇠퇴 때문으로 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정당’이 아닌,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않는 정당’이 쇠퇴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당을 만든 것 아닙니까. 과거 그리스 아테네 직접민주주의 시대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당정치’란 형태가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정당들의 문제점에 대해 예를 들자면, ‘원전 폐쇄 문제’입니다. 기민당이 최근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원래는 ‘원전 유지’였습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원전 폐쇄’입니다. 이들은 원래부터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기민당이 왜 원전 유지 정책을 주장했는지, 사민당과 녹색당은 왜 늘 원전 폐쇄를 주장하는지 국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민당이 왜 원전 유지 정책을 뒤집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여론 때문인가요? 정책이라는 것이 일관성 없이 여론 때문에 뒤집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분명 나름대로 정당마다 회의하고 분석하고 토론해서 내린 결론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우린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일 뿐”
―하지만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정당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상이 분명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해적당처럼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시민운동가나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회사 출신의 최고경영자(CEO)가 기성 정당의 후보들을 누르거나 추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도 보이는데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국에서도 해적당을 만들고 싶다고 최근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BBC에서 토론하게 될 주제도 이 부분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젊은이들, 혹은 인터넷 애호층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달입니다.
인터넷만 켜면 당신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SNS), 혹은 인터넷 뉴스 및 동영상 등을 통해 현재 정치이슈와 정치인들의 입장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독일 정치뿐 아니라 전세계 정치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아는 것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하고 그 속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기존 정당들은 이런 새로운 정치 관심층, 특히 젊은 신진 정치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이들은 의견을 내고 싶은데, 들어 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치경험은 없지만 말을 잘 들어 주는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예전 정치세력은 정치인이 주창하는 정책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최근 정치세력은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들에게 모여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 정치로만 변질되는 것 아닙니까.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정치권력을 잡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정치세력으로 커진 것입니다. 커진 과정은 우리가 정치세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닙니다. 현 시대와 맞아떨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진 것이죠.
해적당은 앞으로도 이렇게 운영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당원들을 모으면서 새로운 의견을 듣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형태로 유지할 것입니다.”
―앞으로 정당정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정당들이 해적당처럼 돼야 한다고 봅니까.
“해적당의 형태가 앞으로도 맞을 것이라는 건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았다는 것뿐입니다. 앞으로 정당정치가 어떻게 변해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죠. 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당이 커지면 해적당의 ‘오픈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우린 이미 당이 갑자기 커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2000명이 넘지 않던 당원이 2009년 갑자기 증가해 1만명을 넘어섰습니다(당시 해적당은 사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이던 요르크 타우스가 선거 3개월 전에 해적당에 입당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때 해적당은 일시적으로 하원 의석을 가지게 됐다. 2009년 연방 하원 선거운동과 유럽의회 선거 등을 치르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당시 웹사이트 접근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지며 회원 수가 급증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시스템을 바꿀 일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당의 날’에 한 도시에서 날짜를 잡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콘퍼런스를 갖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물론 그 아이디어는 당원에게서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당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해적당 본래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당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색을 오렌지색으로 선택한 이유
―당색(黨色)이 오렌지색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재정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웃으며) 다른 당들이 주요 색들을 모두 차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 재정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 스폰서들이 내는 기부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충분합니다(2009년 연방 하원 선거 결과가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 기준인 2%를 충족함에 따라 2009년에 8만4554.51유로의 국가의 정당보조금을 받았다).”
―앞으로 계획을 밝힐 수 있을까요.
“2013년 총선거까지 전국 지지율을 7%로 만들어 중앙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앙정치가 내세우는 경제·외교·안보 등 모든 테마를 함께하며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지금보다 단계적으로 당 시스템도 바꿀 것입니다. 의회에 진출하기 전 정당과 진출 후 정당이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바꾸겠지만 해적당 본래의 색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당과의 연정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해적당에 투표한 시민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적당 소속 의원 수는 15명입니다. 굳이 연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해적당이 커진 만큼 과반수 득표를 못한 사민당이나 기민당이 해적당의 도움 없이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첫 의회 출석일은 10월 27일입니다.”
―본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욕심도 갖고 있습니까. 총리를 해 보면 어떻습니까.
“(웃으며) 정치라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꿈이 정치라고 확고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일단 목표는 2013년 연방의회 진출입니다. 그 이후에도 정치를 할지, 아니면 본업인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돌아갈지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강한 조직과 자금, 인력을 투입해야만 하는 정치판에 겁 없는 젊은이들이 뛰어들었다. 우리나라 얘기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최근 ‘안철수 현상’이 상징하는 젊은이들의 특징적인 정치성향이 온통 화제다. 이게 비슷한 현상인지 아닌지는 전문가들이 좀 더 분석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개인 안철수씨가 미는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후보 야권 경선에서 대한민국 제1야당의 박영선 후보를 눌렀다는 사실이다. 어떤 힘으로 이겼을까. 인터넷, SNS 등 다양한 인터넷 네트워크의 위력이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을 무기로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사례, 이건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한 대상이다.
그래서 2011년 9월 독일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의 득표율을 올리며 의회 진출에 성공한 무서운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바로 해적당(海賊黨)이란 것이다. 기성 정치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름도 괴상하다. ‘민주’ ‘정의’ ‘보수’ ‘진보’ 따위가 아니라 ‘해적’을 당 이름에 붙이다니.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해적당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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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당 홈페이지. 해적당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기존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
해적당 대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나간 곳은 베를린 중앙역 옆 호스텔. 10월 4일 오후 3시(현지 시각)였다.
검은 정장에 빨간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왼쪽 깃에는 해적당을 상징하는 깃발 배지를 달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해적당 대표 세바스티안 네츠(28)였다.
튀빙겐 공과대학 학생인 그는 석사 논문을 마치고 현재 졸업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도 하며 해적당 대표까지 겸업하고 있던 그는 최근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인터뷰·토론회 일정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도 튀빙겐에서 인터뷰, 뮌헨에서 TV 토론을 하고 왔으며, 다음 날은 영국 BBC 방송을 비롯한 방송사 4곳과 라디오 프로그램 두 곳의 인터뷰가 있다고 했다.
해적당의 지방의회 진출 이후인 10월 초 실시한 주간지 《슈테른》 여론조사에서 해적당은 전국 지지율 8%를 기록했다. 집권 기민당과 기사련의 연정 파트너인 163년 역사의 자유민주당(FDP), 동독의 집권 정당이었던 통일사회당의 후신 좌파당을 모두 제친 것이다. 자민당은 독일 정치사상 최장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으나 최근 지지율이 2%로 추락해 위기를 맞고 있다. 이 28살의 정당 대표에게 궁금증을 물었다.
―해적당은 2006년 9월 10일 불과 수십 명의 젊은이로 창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딱 5년 됐고, 더구나 프로 정치인들도 아닌데 베를린 선거에서 8.9%를 얻었습니다. 경이적인 기록인데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이번 지방선거로 의회에 진출할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렇게 높은 득표율을 기록할 줄은 몰랐습니다. 5% 정도로만 생각했죠(독일은 득표율 5%가 넘으면 의석 수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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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덴하임에서 열린 금년도 해적당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이 거수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
당원들의 평균 나이는 31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지역색’과 ‘기성 정치에 대한 회의’입니다. 먼저 베를린은 유럽 내에서는 드물게 개발이 진행 중인 대도시입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들이 새로운 것을 찾는 욕구에 우리가 맞아떨어진 것이라 봅니다.
두 번째는 기존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과 의심입니다. 시민들은 기성 정치인들이 정치를 투명하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책결정 과정이나 논의가 비밀스럽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리는 당 내의 모든 의견과 결정 과정들을 공개할 수 있는 ‘오픈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시스템인가요.
“우리는 굳이 당원이 아니더라도 당이나 정치현안에 대해 의견을 갖고 있거나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수시로 ‘당의 날’이라는 것을 개최합니다. 인터넷이나 다른 루트들을 통해서 ‘당의 날’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당원이 아니더라도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기발한 의견도 나오고 현 정책의 새로운 문제점도 보입니다. ‘브레인 스토밍(brainstorming)’ 식의 형태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면 나눠서 진행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의회를 통해 반영할 현안이나 정책들도 이런 방식으로 정할 것입니다. 또 해적당은 베를린 시의회에서 모든 입법활동을 웹캐스팅(인터넷 방송)으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2006년 9월 다름슈타트 공대생들이 ‘인터넷의 자유’를 외치며 창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잘못 알려진 부분입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 60여 명이 베를린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름슈타트 공대생도 있었고 서점 주인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냥 맥주를 마시며 정치적인 주제 등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죠. 그러자 이들의 불만이 ‘인터넷의 자유와 인프라 확충’에 집중됐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하다가 이미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해적당’(2006년 1월)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갖고 온 것입니다. 스웨덴의 해적당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는 인터넷 외 외교·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도 주도할 계획입니다.”
―당원 모집은 어떻게 합니까. 본인은 어떻게 당에 가입하게 됐나요.
“당원 모집 활동을 특별히 하는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 보면 인터넷 등을 통해 해적당을 알게 되거나 친구들을 통해 가입하게 됩니다. 굳이 당원이 아니어도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등록된 당원보다 더 많은 수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2009년 입당했는데 역시 마찬가지 경로였습니다. 직업이나 전공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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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당 당원들이 검은 깃발이 그려진 당기를 앞세우고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
기성정당, 수십 년간 같은 말만 하고 귀를 닫아
현재 독일 인터넷은 야한 동영상이 있으면 웹사이트 접근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야하다’는 부분이 애매합니다. 업무와 관련해 웹사이트에 접속을 하려다 보면 전혀 ‘야한 동영상’과는 관계가 없는데 접근 불가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독일 경찰 측에서 유연성 있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방법을 찾다가 해적당의 존재를 알게 됐고 당원으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하게 가입한 사람들로, 현재 평균 나이는 31세, 당원 수는 1만4000명입니다.”
―당 성향은 어떻게 됩니까. 각종 정책 분야가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입장을 정했습니까.
“우리는 성향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사회자유주의 정당’입니다. 각 분야에 대해 많은 사람과 ‘난상토론’을 하다 보면 가장 바람직한 방향과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각 주제별 방향에 대해서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이 해적당의 정체성입니다.
전 기존 정당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당 성향 때문에 입장까지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거대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여당)과 사회민주당(SPD·제1야당)은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그 정당들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도 오래됐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 전부터 같은 테마에 대해 같은 의견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기민당이니깐 경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야 돼’, ‘우리는 사민당이니깐 안보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해야 돼’라는 식이죠.
내가 실감하기로 그들은 20년 전에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루는 주제도 방식도 동일합니다. 이들은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이슈나 의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시민들과 주파수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수십 년간 같은 말만 반복하고 귀는 닫아 버린 정당에 대해 사람들은 기대와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죠.
이는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자유민주당(FDP)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묻지 않아도 한 이슈가 나오면 기존 정당들의 입장을 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자민당은 자신들의 기존 입장인 ‘친(親) 기업’ 입장만 강조하다 보니 정작 시민들의 권리를 무시해 외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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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해적당원들의 모임. 해적당은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가지는 ‘오픈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
“당은 소통의 도구”
―30년 전 창당해 현재 전국 지지율 3위로 우뚝 선 녹색당과 많이 비교되는데요.
“녹색당과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둘 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당입니다. 기존 정당에 대해 신뢰가 떨어진 시점에 창당했다는 점도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녹색당은 당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원자력 반대 운동 등 환경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정당입니다.
해적당 같은 경우는 소수의 사람이 모여 ‘당(黨)’을 만든 이후에 주요 테마를 정했습니다. 녹색당이 주제를 정한 다음 그를 이루기 위해 당을 만들었다면, 우리 해적당은 소통의 도구로 당을 만든 다음 주요 주제로 인터넷을 정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녹색당도 창당한 지 30년이 지나면서 기존 정당들의 잘못을 반복하는 부분이 보입니다. 선거 때 내건 공약들을 지키지 않거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지지한다고 했다가 반대한다고 하는 등 말을 번복하고 있습니다. 실수하는 부분입니다.”
―기존 정당들이 고전하는 건 정당정치의 쇠퇴 때문으로 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정당’이 아닌,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않는 정당’이 쇠퇴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당을 만든 것 아닙니까. 과거 그리스 아테네 직접민주주의 시대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당정치’란 형태가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정당들의 문제점에 대해 예를 들자면, ‘원전 폐쇄 문제’입니다. 기민당이 최근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원래는 ‘원전 유지’였습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원전 폐쇄’입니다. 이들은 원래부터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기민당이 왜 원전 유지 정책을 주장했는지, 사민당과 녹색당은 왜 늘 원전 폐쇄를 주장하는지 국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민당이 왜 원전 유지 정책을 뒤집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여론 때문인가요? 정책이라는 것이 일관성 없이 여론 때문에 뒤집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분명 나름대로 정당마다 회의하고 분석하고 토론해서 내린 결론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우린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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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당 집회에서 연설하는 네츠 대표. |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국에서도 해적당을 만들고 싶다고 최근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BBC에서 토론하게 될 주제도 이 부분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젊은이들, 혹은 인터넷 애호층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달입니다.
인터넷만 켜면 당신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SNS), 혹은 인터넷 뉴스 및 동영상 등을 통해 현재 정치이슈와 정치인들의 입장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독일 정치뿐 아니라 전세계 정치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아는 것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하고 그 속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기존 정당들은 이런 새로운 정치 관심층, 특히 젊은 신진 정치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이들은 의견을 내고 싶은데, 들어 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치경험은 없지만 말을 잘 들어 주는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예전 정치세력은 정치인이 주창하는 정책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최근 정치세력은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들에게 모여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 정치로만 변질되는 것 아닙니까.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정치권력을 잡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정치세력으로 커진 것입니다. 커진 과정은 우리가 정치세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닙니다. 현 시대와 맞아떨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진 것이죠.
해적당은 앞으로도 이렇게 운영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당원들을 모으면서 새로운 의견을 듣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형태로 유지할 것입니다.”
―앞으로 정당정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정당들이 해적당처럼 돼야 한다고 봅니까.
“해적당의 형태가 앞으로도 맞을 것이라는 건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았다는 것뿐입니다. 앞으로 정당정치가 어떻게 변해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죠. 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당이 커지면 해적당의 ‘오픈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우린 이미 당이 갑자기 커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2000명이 넘지 않던 당원이 2009년 갑자기 증가해 1만명을 넘어섰습니다(당시 해적당은 사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이던 요르크 타우스가 선거 3개월 전에 해적당에 입당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때 해적당은 일시적으로 하원 의석을 가지게 됐다. 2009년 연방 하원 선거운동과 유럽의회 선거 등을 치르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당시 웹사이트 접근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지며 회원 수가 급증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시스템을 바꿀 일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당의 날’에 한 도시에서 날짜를 잡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콘퍼런스를 갖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물론 그 아이디어는 당원에게서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당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해적당 본래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당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색을 오렌지색으로 선택한 이유
―당색(黨色)이 오렌지색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재정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웃으며) 다른 당들이 주요 색들을 모두 차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당 재정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 스폰서들이 내는 기부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충분합니다(2009년 연방 하원 선거 결과가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 기준인 2%를 충족함에 따라 2009년에 8만4554.51유로의 국가의 정당보조금을 받았다).”
―앞으로 계획을 밝힐 수 있을까요.
“2013년 총선거까지 전국 지지율을 7%로 만들어 중앙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앙정치가 내세우는 경제·외교·안보 등 모든 테마를 함께하며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지금보다 단계적으로 당 시스템도 바꿀 것입니다. 의회에 진출하기 전 정당과 진출 후 정당이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바꾸겠지만 해적당 본래의 색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당과의 연정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해적당에 투표한 시민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적당 소속 의원 수는 15명입니다. 굳이 연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해적당이 커진 만큼 과반수 득표를 못한 사민당이나 기민당이 해적당의 도움 없이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첫 의회 출석일은 10월 27일입니다.”
―본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욕심도 갖고 있습니까. 총리를 해 보면 어떻습니까.
“(웃으며) 정치라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꿈이 정치라고 확고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일단 목표는 2013년 연방의회 진출입니다. 그 이후에도 정치를 할지, 아니면 본업인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돌아갈지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