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략적으로 일본을 활용하려는 생각이 부족해요. 일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국·중국과의 관계에서 損益이 갈라져요. 韓日관계를 잘 만들어 가면 독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급성장·대지진·원전사고 등이 일본 우익 주장에 힘 실어줘
⊙ 독도연구소 설립한 李明博 대통령의 ‘실천적 역사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
⊙ 일본의 독도 도발 수위 높아질 것… 독도 교육 강화해야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정재정
⊙ 60세.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 대학원 한국사학 석사, 서울대 국사학 박사.
⊙ 방송대·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시립대 박물관장·인문대학장·대학원장, 한일관계사학회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총간사, 제2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 중국의 급성장·대지진·원전사고 등이 일본 우익 주장에 힘 실어줘
⊙ 독도연구소 설립한 李明博 대통령의 ‘실천적 역사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
⊙ 일본의 독도 도발 수위 높아질 것… 독도 교육 강화해야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정재정
⊙ 60세.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 대학원 한국사학 석사, 서울대 국사학 박사.
⊙ 방송대·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시립대 박물관장·인문대학장·대학원장, 한일관계사학회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총간사, 제2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한국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칭)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다, 1905년 다케시마는 시마네현에 편입됐다,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해결을 거부하고 있다.”
올해 3월 검정(檢定)을 통과한 일본 사회과(社會科) 교과서와 최근 확정된 방위백서에 기술된 내용이다. 이와 함께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妄言)·망동(妄動)이 잇따르고 있다.
심해지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 8월 15일 광복절 당일 밤,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정재정(鄭在貞) 이사장을 만나 해법(解法)을 들어 봤다. 정 이사장은 한일관계사(韓日關係史)를 공부한 역사학자다. 그는 3박4일간 러시아 크라스키노 발해유적 발굴현장을 둘러본 뒤 이날 오후 늦게 귀국했다. 그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 났다.
반성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
2006년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중·일(韓中日) 등 동북아(東北亞)지역의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공공기관이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부의 대응논리와 전략을 마련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2008년 7월에는 동북아역사재단 내에 독도연구소가 설치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한 지 올해 5년째입니다. 주변국과의 역사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일본의 역사왜곡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재단이 선제적 대응을 잘해 왔다고 봅니다. 사실 최근에 나타나는 일본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2006년부터 알고 있었어요. 당시 일본 정부가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면서 ‘애국심 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우리는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우리의 의사를 계속 전달했어요. 국내적으로는 독도 관련 부교재를 만들어 각급 학교에 보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독도의 진실’이라는 책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우리 재단이 발간한 책을 반박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의식한다는 얘기죠.”
―일본 교과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일본 지도층이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태생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어렵습니다.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과서’를 이용하고 있죠. 1990년대 이후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를 비롯한 우익의 선동이 사회·경제적 침체와 맞물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어요. 최근 들어 중국의 급성장에 따른 위기감, 지진·원전사고 등이 우익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있어요.”
―지난 3월 일본 검정교과서 발표 후 현재 일본에서는 교과서 채택이 진행 중입니다. 최근 요코하마시(市)의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에서 보듯이 우익교과서의 채택률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일본의 교과서 채택은 지자체의 교육위원회가 교과서 선택권을 갖습니다. 교육장을 포함한 교육위원은 지자체의 장(長)이 임명하죠. 우익 성향의 지자체장이 역시 우익 인사(人士)를 교육위원회에 포진시키면 우익계 교과서 채택이 쉬워져요. 이번 요코하마의 교과서 채택이 이런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차원의 대응책은 뭡니까.
“일본의 역사왜곡 현상이 복잡한 양상을 띠는 만큼 해결도 지난(至難)합니다. 재단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연구와 대화를 계속하고 있어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국제적 공감대도 만들고 있습니다.”
독도 관련 ‘정치 쇼’ 증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배운 학생들이 계속 늘어날 텐데요.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독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계속 이 문제를 건드니까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제 ‘독도 문제’는 일부 정치인이나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의 문제로 대두할 겁니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구체적인 증거와 논리, ‘독도영유권’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독도 교육을 강화해야 해요.”
―얼마 전 일본 자민당 의원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소동을 벌이고 돌아갔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한 역사학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번 소동이 일어난 것은 지금 일본에 정치리더십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정운영이 갈팡질팡하니까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올라갈 것 아닙니까. 이럴 때 가장 손쉽게 불평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민족주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죠. 관료통제가 사라진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과거에는 관료들이 기본 노선을 설정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현재 민주당 정권의 ‘정치 주도’ 노선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자민당 의원들의 입국 거부 사태가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됐는데, 이것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빌미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우리 정부로서는 이들의 입국을 막아야 했습니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일본 의원들은 이번 일로 자국(自國) 내에서 정치적 이익을 취했고, 국제사회에 ‘독도는 분쟁지역’이라고 알리는 효과도 일부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묻고 싶군요.”
―과거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해 ‘조용한 대응’ 전략을 썼는데, 이번에는 대통령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지리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대응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쇼’를 하는 일본 의원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밖에요.”
―얼마 전 친한파(親韓派) 일본 정치인을 만났는데 우리의 입장과 독도의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완강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죠. 특히 독도 문제는 영토 갈등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인들로서는 ‘한국땅’이라 인정할 수가 없지요. 과거사 문제에 가장 전향적인 일본 공산당조차 독도 문제에 대해 별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북아(東北亞)공동체를 들고 나섰던 일본 민주당 정부도 독도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기대하기 어렵겠군요.
“작년 9월 센카쿠열도 어선충돌 사건 때 민주당 내각이 중국에 미숙하게 대응하자, 자민당이 집중적으로 공격했어요.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있었지요. 최근에는 쿠릴열도에서 러시아에 밀리는 듯하자, 자국민에게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 상황에 비춰 과거보다 강도 높은 ‘독도 도발’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병대 없어도 독도수호 가능
―일본 정치인은 “일본과 한국이 독도 주변에서 물리적 충돌을 벌일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럴 경우 일본으로서는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클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평화국가’를 자처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지금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성과를 그런 식으로 잃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일본 입장에서는 센카쿠열도 문제가 훨씬 중요해요. 중국이 생각보다 빨리 성장하고 힘이 세기 때문이죠.”
―독도를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은 독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크게 세 부류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한국 땅인데 일본이 러일전쟁 때 침탈했다’고 보는 시각, ‘독도는 한국도 일본도 주인이 아니다’라고 보는 시각,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다’라고 보는 시각으로 나뉘죠. 비율은 서로 비슷해요.”
―지난 8월 14일 홍준표(洪準杓) 한나라당 대표가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시키자”고 했습니다.
“외교적으로 영토분쟁을 겪는 나라는 수없이 많습니다. 최근 일본의 도발 수위가 올라가긴 했지만 군대 주둔은 부정적인 면이 커요.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됩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현재 경찰이 경비를 하니까 일본도 그에 맞게 해양 순시선을 보내는 겁니다. 만약 해병대를 보내면 일본은 자위대로 대응할 겁니다. 우리가 일부러 그런 결과를 초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독도 도발에 우리가 과도하게 흥분하는 측면이 있나요.
“흥분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요. 어느 나라 국민이 자국 영토를 넘보는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특히 독도는 일제 식민주의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의 아픔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국민들은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과거 식민지시대의 잔혹함과 불법성을 떠올립니다. 이런 내막을 잘 알면서도 도발을 감행한 일본 정치인들이야말로 이웃 국가를 배려하지 않는 정치꾼이죠. 비판받아 마땅해요. 일본은 ‘한국이 독도 문제로 흥분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센카쿠열도 문제가 나오면 우리보다 훨씬 더 흥분합니다.”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센카쿠열도를 이용할 수는 없을까요.
“영토 문제는 제3국이 관여할 사안이 아닙니다. 다만 고도(高度)의 외교 전술 차원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일본이 독도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센카쿠열도’라고 불러 주고 시비를 계속 건다면 중국 명(名) ‘댜오위다오’로 부르는 겁니다. 아무튼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을 적으로 만들어 유리할 게 없다는 걸 인식시켜야 해요.”
病因요법·對症요법·生活요법
―확실한 독도 문제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독도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병인(病因)요법입니다. 근본을 치유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역사 연구를 심화하고 기본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해야 합니다. 이런 자료는 상대방과 역사논쟁을 벌일 때, 제3자를 설득할 때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걸 바탕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정책을 개발해야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아요. 매번 문제가 돼요. 이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필요한 것이 대증(對症)요법입니다. 소화가 안될 때 소화제를 먹고 머리가 아플 때 두통약을 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본에서 왜곡 교과서가 나오면 그 결과를 분석해 국민에게 알리고, 일본에 시정을 요구하는 거죠. 일본이 시비를 걸 때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에서 역사의식을 갖는 겁니다. 저는 이걸 생활(生活)요법이라고 해요. 평소에 독도 교육을 실시하고 교재를 만들어 꾸준히 보급하는 겁니다. 일본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 가르치는 것이죠.”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볼 때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아는 것 같습니까.
“크게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는 일본을 ‘왜(倭)’ ‘작은 나라’로 무의식 중에 생각해요. 무시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일본은 대국(大國)입니다. 면적도 남한의 네 배, 바다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수십 배에 달합니다. GDP는 다섯 배, 인구도 남한의 세 배입니다. 이렇게 큰 나라를 우리가 제대로 ‘이용’하지 않아 손해를 볼 때가 많아요. 우리는 전략적으로 일본을 활용하려는 생각이 부족해요. 미국과 중국을 대할 때 일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손익(損益)이 갈라져요. 일본은 중국공포증이 있어요. 한일(韓日)관계를 잘 만들어 가면 독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2008년 7월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 독도연구소가 설치됐습니다.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무렵에도 일본의 독도 도발이 있었어요. 당시 대통령께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독도수호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후 1개월 만에 설립됐습니다.”
―역사학자로서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평가한다면 ….
“어느 나라든지 최고지도자가 역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역사를 정치적·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의 지도자에 비해 신중함을 보이는 것은 큰 다행입니다.”
정재정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은 한마디로 ‘실천적 역사관’이다”고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입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이 자국(自國)의 학습지도해설서에 ‘북방영토와 같은 수준으로 독도를 가르치라’고 하자, 대통령은 곧바로 ‘장기적·종합적·체계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단기적 대응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독도연구소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했던 거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입니다. 첫 만찬 회의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는데 효과가 대단했어요. 각국 정상들에게 보일 국보(國寶) 20점을 골라 회의장에 배치했어요. 우리 역사에 대해 구구절절(句句節節)이 얘기하는 것보다 박물관에서 직접 보여준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이렇게 문화적 뿌리가 깊은 나라인지 몰랐다’며 감탄했습니다.”
동해 표기 위해 외교전쟁
동북아역사재단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독도·동해의 표기명칭 시정업무도 맡고 있다. 외교부 소속 국제표기명칭대사가 재단에 파견돼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국제표기명칭대사의 구체적인 업무는 동북아역사재단과 외교부 등 정부 관련기관과의 정책 조율, 재단 내(內) 표기명칭 시정업무 총괄지휘, 관련 국제기구·각국 정부기관·민간기구와의 교섭 등이다. 다자협상과 국제법에 전문성을 갖춘 외무공무원이 대사직을 맡고 있다.
―동해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우리 정부는 어떤 일을 해 왔습니까.
“우리 정부는 1991년 민관(民官)전문가 회의를 거쳐 이듬해 대통령 특별보고를 통해 ‘East Sea’를 동해의 공식 영문명칭으로 결정했습니다. 각국 정부, 지도제작사, 언론, 국제기구 관계자를 꾸준히 만났습니다. 그 결과 2009년 현재, 세계 각국 지도의 동해표기(단독 또는 병기) 비율은 28%로 2000년에 비해 10배 가량 늘어났습니다.”
―최근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제수로기구에 냈습니다. 현재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와 명칭》에는 동해가 공란으로 돼 있는데 내년 4월 국제수로기구가 총회를 열어 동해 명칭을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은 아닌가요.
“국제수로기구에서 한참 논의 중입니다. 국제수로기구는 동해와 관련해 한일 양국이 합의로 해결했으면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3국의 의견을 묻는 겁니다.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바로 대응할 테니까요. 아무튼 우리 정부는 다방면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걸로 압니다. 외교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국제수로기구 대표들을 자주 만난다고 해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동북아역사재단은 동해 병기(倂記)를 위해 그동안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재단 산하 독도연구소가 이 업무를 맡고 있는데 동해·독도 표기오류 시정사업, 설득논리 개발, 중장기 대응방안 마련 등의 일을 해 왔습니다. 동시에 ‘동해·독도 표기 확산’을 위해 관련국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조사와 홍보 업무도 계속했어요.”
―동해·독도를 제대로 표기하기 위한 방안은 뭡니까.
“일반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입니다. 재단은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일반 국민들에게 나눠 전(全) 국민이 ‘외교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재단은 반크(VANK·사이버외교사절단)와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활동자료의 제작·배포를 지원하고 있어요. 또 지난 7월에는 영어와 기타 제2외국어(중국어·불어·스페인어·러시아어·아랍어 등 총13개 언어)가 가능한 대학생 150명을 선발해 ‘글로벌 역사외교 대사 1기’ 발대식을 가졌습니다. 재단은 이들과 함께 동해·독도 관련 업무를 계속 추진해 갈 예정입니다.”
중국의 역사왜곡도 치밀히 대응해야
동북아역사재단은 2006년 설립 당시 “정부가 나서기 힘든 역사·외교활동을 맡아 역사 주권을 수호한다”는 취지에서 출범했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응하는 ‘고구려연구재단’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바른역사기획단’의 기능을 통합해 재단을 만들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배경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크게 작용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풀고 있습니까.
“2006년 당시 중국이 동북공정 연구 결과물을 발표했는데, 우리 재단은 곧바로 관련 서적을 입수해 우리말로 번역, 대응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중국의 주장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알려 왔어요. 학술대회도 계속 열고 있습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계와 연구기관에 지원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러시아·베트남·몽골 등의 주요 연구기관들과 교류하며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있어요.”
2009년 9월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을 맡아 온 정재정 이사장은 그동안 해 온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취임한 2009년은 3·1운동 90주년이 되는 해였고, 작년은 한국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만큼 바빴어요. 재단 이사장으로서 역점을 두었던 일은 독도 영유권 수호를 위한 각종 사업이었습니다.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시정하고자 노력했고요. 한일 역사화해를 위해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한일 시민단체 공동선언대회’ 등 다양한 사업도 벌였습니다.
성과도 조금 있었어요. 특히 지난해 7월 한일의원연맹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당시 논의됐던 내용이 한 달 뒤(8월)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 내용에 대부분 반영됐죠. 같은 달, ‘한일시민 공동선언’을 통해 ‘독도는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는 과정에서 침탈한 것이므로 교과서 기술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한중(韓中) 역사관계도 매우 중요해요. 취임 후 중국 역사교과서를 꾸준히 분석해 왔고 중국 지린성(吉林省) 사회과학원과 학술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복원해 해외에 알린 일도 기억에 남는군요.”
“과거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 되풀이”
정재정 이사장은 “재단 설립 5주년을 맞아 동북아역사재단을 공신력 있고 국제적 수준의 ‘연구 정책개발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했다.
“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3단계 사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재단 전체가 지향하는 중장기 과제를 통해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해요. 먼저 내년에 ‘동아시아 역사지도’를 완성시킬 예정입니다. 방대한 작업이죠. 중국·일본을 통해 우리 역사·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겁니다.
외국과의 공동연구조사도 활발히 벌여야 해요. 몽골,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등지에 퍼져 있는 암각화를 통해 우리와 북방민족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입니다. 삼국사기를 새로 쓰는 일이 될 겁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이 생각났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독도·동해는 우리에게 과거를 잊지 말라는 상징적인 존재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어쩌면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좋은 ‘가르침’인지 모른다.⊙
올해 3월 검정(檢定)을 통과한 일본 사회과(社會科) 교과서와 최근 확정된 방위백서에 기술된 내용이다. 이와 함께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妄言)·망동(妄動)이 잇따르고 있다.
심해지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 8월 15일 광복절 당일 밤,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정재정(鄭在貞) 이사장을 만나 해법(解法)을 들어 봤다. 정 이사장은 한일관계사(韓日關係史)를 공부한 역사학자다. 그는 3박4일간 러시아 크라스키노 발해유적 발굴현장을 둘러본 뒤 이날 오후 늦게 귀국했다. 그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 났다.
반성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
2006년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중·일(韓中日) 등 동북아(東北亞)지역의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공공기관이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부의 대응논리와 전략을 마련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2008년 7월에는 동북아역사재단 내에 독도연구소가 설치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한 지 올해 5년째입니다. 주변국과의 역사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일본의 역사왜곡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재단이 선제적 대응을 잘해 왔다고 봅니다. 사실 최근에 나타나는 일본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2006년부터 알고 있었어요. 당시 일본 정부가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면서 ‘애국심 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우리는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우리의 의사를 계속 전달했어요. 국내적으로는 독도 관련 부교재를 만들어 각급 학교에 보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독도의 진실’이라는 책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우리 재단이 발간한 책을 반박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의식한다는 얘기죠.”
―일본 교과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일본 지도층이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태생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어렵습니다.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과서’를 이용하고 있죠. 1990년대 이후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를 비롯한 우익의 선동이 사회·경제적 침체와 맞물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어요. 최근 들어 중국의 급성장에 따른 위기감, 지진·원전사고 등이 우익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있어요.”
―지난 3월 일본 검정교과서 발표 후 현재 일본에서는 교과서 채택이 진행 중입니다. 최근 요코하마시(市)의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에서 보듯이 우익교과서의 채택률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일본의 교과서 채택은 지자체의 교육위원회가 교과서 선택권을 갖습니다. 교육장을 포함한 교육위원은 지자체의 장(長)이 임명하죠. 우익 성향의 지자체장이 역시 우익 인사(人士)를 교육위원회에 포진시키면 우익계 교과서 채택이 쉬워져요. 이번 요코하마의 교과서 채택이 이런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차원의 대응책은 뭡니까.
“일본의 역사왜곡 현상이 복잡한 양상을 띠는 만큼 해결도 지난(至難)합니다. 재단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연구와 대화를 계속하고 있어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국제적 공감대도 만들고 있습니다.”
독도 관련 ‘정치 쇼’ 증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배운 학생들이 계속 늘어날 텐데요.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독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계속 이 문제를 건드니까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제 ‘독도 문제’는 일부 정치인이나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의 문제로 대두할 겁니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구체적인 증거와 논리, ‘독도영유권’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독도 교육을 강화해야 해요.”
―얼마 전 일본 자민당 의원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소동을 벌이고 돌아갔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한 역사학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번 소동이 일어난 것은 지금 일본에 정치리더십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정운영이 갈팡질팡하니까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올라갈 것 아닙니까. 이럴 때 가장 손쉽게 불평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민족주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죠. 관료통제가 사라진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과거에는 관료들이 기본 노선을 설정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현재 민주당 정권의 ‘정치 주도’ 노선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자민당 의원들의 입국 거부 사태가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됐는데, 이것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빌미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우리 정부로서는 이들의 입국을 막아야 했습니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일본 의원들은 이번 일로 자국(自國) 내에서 정치적 이익을 취했고, 국제사회에 ‘독도는 분쟁지역’이라고 알리는 효과도 일부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묻고 싶군요.”
―과거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해 ‘조용한 대응’ 전략을 썼는데, 이번에는 대통령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지리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대응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쇼’를 하는 일본 의원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밖에요.”
―얼마 전 친한파(親韓派) 일본 정치인을 만났는데 우리의 입장과 독도의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완강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죠. 특히 독도 문제는 영토 갈등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인들로서는 ‘한국땅’이라 인정할 수가 없지요. 과거사 문제에 가장 전향적인 일본 공산당조차 독도 문제에 대해 별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북아(東北亞)공동체를 들고 나섰던 일본 민주당 정부도 독도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기대하기 어렵겠군요.
“작년 9월 센카쿠열도 어선충돌 사건 때 민주당 내각이 중국에 미숙하게 대응하자, 자민당이 집중적으로 공격했어요.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있었지요. 최근에는 쿠릴열도에서 러시아에 밀리는 듯하자, 자국민에게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 상황에 비춰 과거보다 강도 높은 ‘독도 도발’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병대 없어도 독도수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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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해양경찰서 소속의 경비함 5001 함(5000t급)이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도 주변을 경비하고 있다. |
“그럴 경우 일본으로서는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클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평화국가’를 자처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지금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성과를 그런 식으로 잃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일본 입장에서는 센카쿠열도 문제가 훨씬 중요해요. 중국이 생각보다 빨리 성장하고 힘이 세기 때문이죠.”
―독도를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은 독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크게 세 부류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한국 땅인데 일본이 러일전쟁 때 침탈했다’고 보는 시각, ‘독도는 한국도 일본도 주인이 아니다’라고 보는 시각,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다’라고 보는 시각으로 나뉘죠. 비율은 서로 비슷해요.”
―지난 8월 14일 홍준표(洪準杓) 한나라당 대표가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시키자”고 했습니다.
“외교적으로 영토분쟁을 겪는 나라는 수없이 많습니다. 최근 일본의 도발 수위가 올라가긴 했지만 군대 주둔은 부정적인 면이 커요.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됩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현재 경찰이 경비를 하니까 일본도 그에 맞게 해양 순시선을 보내는 겁니다. 만약 해병대를 보내면 일본은 자위대로 대응할 겁니다. 우리가 일부러 그런 결과를 초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독도 도발에 우리가 과도하게 흥분하는 측면이 있나요.
“흥분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요. 어느 나라 국민이 자국 영토를 넘보는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특히 독도는 일제 식민주의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의 아픔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국민들은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과거 식민지시대의 잔혹함과 불법성을 떠올립니다. 이런 내막을 잘 알면서도 도발을 감행한 일본 정치인들이야말로 이웃 국가를 배려하지 않는 정치꾼이죠. 비판받아 마땅해요. 일본은 ‘한국이 독도 문제로 흥분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센카쿠열도 문제가 나오면 우리보다 훨씬 더 흥분합니다.”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센카쿠열도를 이용할 수는 없을까요.
“영토 문제는 제3국이 관여할 사안이 아닙니다. 다만 고도(高度)의 외교 전술 차원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일본이 독도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센카쿠열도’라고 불러 주고 시비를 계속 건다면 중국 명(名) ‘댜오위다오’로 부르는 겁니다. 아무튼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을 적으로 만들어 유리할 게 없다는 걸 인식시켜야 해요.”
病因요법·對症요법·生活요법
―확실한 독도 문제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독도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병인(病因)요법입니다. 근본을 치유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역사 연구를 심화하고 기본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해야 합니다. 이런 자료는 상대방과 역사논쟁을 벌일 때, 제3자를 설득할 때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걸 바탕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정책을 개발해야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아요. 매번 문제가 돼요. 이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필요한 것이 대증(對症)요법입니다. 소화가 안될 때 소화제를 먹고 머리가 아플 때 두통약을 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본에서 왜곡 교과서가 나오면 그 결과를 분석해 국민에게 알리고, 일본에 시정을 요구하는 거죠. 일본이 시비를 걸 때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에서 역사의식을 갖는 겁니다. 저는 이걸 생활(生活)요법이라고 해요. 평소에 독도 교육을 실시하고 교재를 만들어 꾸준히 보급하는 겁니다. 일본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 가르치는 것이죠.”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볼 때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아는 것 같습니까.
“크게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는 일본을 ‘왜(倭)’ ‘작은 나라’로 무의식 중에 생각해요. 무시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일본은 대국(大國)입니다. 면적도 남한의 네 배, 바다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수십 배에 달합니다. GDP는 다섯 배, 인구도 남한의 세 배입니다. 이렇게 큰 나라를 우리가 제대로 ‘이용’하지 않아 손해를 볼 때가 많아요. 우리는 전략적으로 일본을 활용하려는 생각이 부족해요. 미국과 중국을 대할 때 일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손익(損益)이 갈라져요. 일본은 중국공포증이 있어요. 한일(韓日)관계를 잘 만들어 가면 독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2008년 7월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 독도연구소가 설치됐습니다.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무렵에도 일본의 독도 도발이 있었어요. 당시 대통령께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독도수호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후 1개월 만에 설립됐습니다.”
―역사학자로서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평가한다면 ….
“어느 나라든지 최고지도자가 역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역사를 정치적·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의 지도자에 비해 신중함을 보이는 것은 큰 다행입니다.”
정재정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은 한마디로 ‘실천적 역사관’이다”고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입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이 자국(自國)의 학습지도해설서에 ‘북방영토와 같은 수준으로 독도를 가르치라’고 하자, 대통령은 곧바로 ‘장기적·종합적·체계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단기적 대응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독도연구소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했던 거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입니다. 첫 만찬 회의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는데 효과가 대단했어요. 각국 정상들에게 보일 국보(國寶) 20점을 골라 회의장에 배치했어요. 우리 역사에 대해 구구절절(句句節節)이 얘기하는 것보다 박물관에서 직접 보여준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이렇게 문화적 뿌리가 깊은 나라인지 몰랐다’며 감탄했습니다.”
동해 표기 위해 외교전쟁
동북아역사재단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독도·동해의 표기명칭 시정업무도 맡고 있다. 외교부 소속 국제표기명칭대사가 재단에 파견돼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국제표기명칭대사의 구체적인 업무는 동북아역사재단과 외교부 등 정부 관련기관과의 정책 조율, 재단 내(內) 표기명칭 시정업무 총괄지휘, 관련 국제기구·각국 정부기관·민간기구와의 교섭 등이다. 다자협상과 국제법에 전문성을 갖춘 외무공무원이 대사직을 맡고 있다.
―동해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우리 정부는 어떤 일을 해 왔습니까.
“우리 정부는 1991년 민관(民官)전문가 회의를 거쳐 이듬해 대통령 특별보고를 통해 ‘East Sea’를 동해의 공식 영문명칭으로 결정했습니다. 각국 정부, 지도제작사, 언론, 국제기구 관계자를 꾸준히 만났습니다. 그 결과 2009년 현재, 세계 각국 지도의 동해표기(단독 또는 병기) 비율은 28%로 2000년에 비해 10배 가량 늘어났습니다.”
―최근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제수로기구에 냈습니다. 현재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와 명칭》에는 동해가 공란으로 돼 있는데 내년 4월 국제수로기구가 총회를 열어 동해 명칭을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은 아닌가요.
“국제수로기구에서 한참 논의 중입니다. 국제수로기구는 동해와 관련해 한일 양국이 합의로 해결했으면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3국의 의견을 묻는 겁니다.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바로 대응할 테니까요. 아무튼 우리 정부는 다방면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걸로 압니다. 외교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국제수로기구 대표들을 자주 만난다고 해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동북아역사재단은 동해 병기(倂記)를 위해 그동안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재단 산하 독도연구소가 이 업무를 맡고 있는데 동해·독도 표기오류 시정사업, 설득논리 개발, 중장기 대응방안 마련 등의 일을 해 왔습니다. 동시에 ‘동해·독도 표기 확산’을 위해 관련국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조사와 홍보 업무도 계속했어요.”
―동해·독도를 제대로 표기하기 위한 방안은 뭡니까.
“일반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입니다. 재단은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일반 국민들에게 나눠 전(全) 국민이 ‘외교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재단은 반크(VANK·사이버외교사절단)와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활동자료의 제작·배포를 지원하고 있어요. 또 지난 7월에는 영어와 기타 제2외국어(중국어·불어·스페인어·러시아어·아랍어 등 총13개 언어)가 가능한 대학생 150명을 선발해 ‘글로벌 역사외교 대사 1기’ 발대식을 가졌습니다. 재단은 이들과 함께 동해·독도 관련 업무를 계속 추진해 갈 예정입니다.”
중국의 역사왜곡도 치밀히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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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7월 29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자민당 의원들의 방문 계획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배경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크게 작용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풀고 있습니까.
“2006년 당시 중국이 동북공정 연구 결과물을 발표했는데, 우리 재단은 곧바로 관련 서적을 입수해 우리말로 번역, 대응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중국의 주장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알려 왔어요. 학술대회도 계속 열고 있습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계와 연구기관에 지원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러시아·베트남·몽골 등의 주요 연구기관들과 교류하며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있어요.”
2009년 9월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을 맡아 온 정재정 이사장은 그동안 해 온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취임한 2009년은 3·1운동 90주년이 되는 해였고, 작년은 한국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만큼 바빴어요. 재단 이사장으로서 역점을 두었던 일은 독도 영유권 수호를 위한 각종 사업이었습니다.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시정하고자 노력했고요. 한일 역사화해를 위해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한일 시민단체 공동선언대회’ 등 다양한 사업도 벌였습니다.
성과도 조금 있었어요. 특히 지난해 7월 한일의원연맹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당시 논의됐던 내용이 한 달 뒤(8월)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 내용에 대부분 반영됐죠. 같은 달, ‘한일시민 공동선언’을 통해 ‘독도는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는 과정에서 침탈한 것이므로 교과서 기술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한중(韓中) 역사관계도 매우 중요해요. 취임 후 중국 역사교과서를 꾸준히 분석해 왔고 중국 지린성(吉林省) 사회과학원과 학술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복원해 해외에 알린 일도 기억에 남는군요.”
“과거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 되풀이”
정재정 이사장은 “재단 설립 5주년을 맞아 동북아역사재단을 공신력 있고 국제적 수준의 ‘연구 정책개발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했다.
“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3단계 사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재단 전체가 지향하는 중장기 과제를 통해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해요. 먼저 내년에 ‘동아시아 역사지도’를 완성시킬 예정입니다. 방대한 작업이죠. 중국·일본을 통해 우리 역사·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겁니다.
외국과의 공동연구조사도 활발히 벌여야 해요. 몽골,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등지에 퍼져 있는 암각화를 통해 우리와 북방민족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입니다. 삼국사기를 새로 쓰는 일이 될 겁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이 생각났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독도·동해는 우리에게 과거를 잊지 말라는 상징적인 존재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어쩌면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좋은 ‘가르침’인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