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평균 46일 이상 파업하던 강성노조, 정 이사장 재임 중 파업 안 해
⊙ 복지부의 허위·부당 청구 방지 위한 현지조사권 건보공단에 위탁해야
⊙ 吳世勳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투표는 지자체장으로서 딜레마
⊙ 보건복지위를 선호하는 야당의 복지 이슈 선점은 당연… 여당은 朴槿惠 前 대표 정도
⊙ ‘李會昌 대세론’과 ‘朴槿惠 대세론’은 내용이 다르다
정형근
⊙ 66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국제법 법학석사. 미국 미시간대 형사법 법학석사.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 제12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검 검사. 고등검찰관.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 복지부의 허위·부당 청구 방지 위한 현지조사권 건보공단에 위탁해야
⊙ 吳世勳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투표는 지자체장으로서 딜레마
⊙ 보건복지위를 선호하는 야당의 복지 이슈 선점은 당연… 여당은 朴槿惠 前 대표 정도
⊙ ‘李會昌 대세론’과 ‘朴槿惠 대세론’은 내용이 다르다
정형근
⊙ 66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국제법 법학석사. 미국 미시간대 형사법 법학석사.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 제12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검 검사. 고등검찰관.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지난 7월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8-9번지 소재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도 장맛비가 내렸지만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시원함을 기대하고 이사장실이 있는 6층을 찾았지만 건물 밖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안내를 맡은 노타이 차림의 건보공단 이원길 홍보실장은 “섭씨 28도가 넘어야 냉방기를 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직원들 방이야 그럴 수 있지만 이사장실은 몰래 냉방기를 가동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직접 체험해 보라”고 했다.
기자 일행이 겉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이사장 접견실은 더웠다. 후텁지근한 접견실로 정형근(鄭亨根) 이사장이 나왔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취임 3주년이 되는 오는 9월 19일까지다.
―연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3년 했으면 됐지요. 어떤 점에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게, 현재 가장 중요한 사회 이슈인 보건의료복지 문제와 IT 분야에 문외한으로 비슷했는데 눈을 뜨게 됐다는 점입니다.”
―건보공단의 특성상 보건의료복지 문제는 이해되는데 IT 분야에도 눈을 뜨게 됐다는 게 선뜻 와닿지 않습니다.
“우리 공단에서 그동안 차세대시스템, 통합경영시스템, 4대보험 징수통합시스템 등 많은 시스템 구축 사업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IT에 눈을 뜨게 된 거죠. 우리나라는 IT(정보기술) 강국이 아니라 IC(정보소비) 강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OS) 등 소위 부가가치 높은 핵심기술과 부품은 모두 수입품입니다. 큰 것은 모두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IT가 닷컴 버블 이후 침체되었다가 제2의 변혁기를 맞은 변곡점을 2007년으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IT산업과 관련, 과거 정부의 문제는 차치하고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면 정책기능 측면에서 정보통신부를 폐지하고 원천 과학기술 개발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정통부의 폐지는 IT 자체를 주력산업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산업을 도와주는 보조산업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IT정책을 선제적으로 주도하고 육성할 책임 있는 부처가 없었던 결과 IT기술 주도권을 경쟁국에 넘겨주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 기술인 와이브로가 LTE(유럽식 4세대 이동통신)에 밀린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원천 과학기술 개발 분야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신약(新藥)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인 수준에 미치는 제약사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국제적인 제약사가 10개나 됩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양성과 산업육성에 너무 소홀히 한 탓이죠.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슈, 노바티스 등 제약사의 핵심 기술자는 생물화학 등 기초학문을 전공한 독일인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양성과 산업육성에 너무 소홀하여, 그나마 일부 유능한 인재들도 모두 외국 연구소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천기술은 학교와 벤처에서 나오고 응용은 제약사에서 하여야 합니다. 현 정부가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면서 과학기술 기능만 가져갔지 제대로 된 과학기술 분야 일은 못한 겁니다. 차기 정부는 교육과학기술부를 분리해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을 집중 추진해야 할 겁니다.”
낙하산으로 왔지만 우주선이 되겠다
정 이사장을 인터뷰하기 직전 건보공단 직원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이사장님이 오신 후 우리 건보공단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강성으로 유명했던 노동조합과의 분규도 없었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공부를 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직원들을 전문가로 만든 거죠. 이전에는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정책을 수립할 때 우리의 의견은 아예 무시했지만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후임자로는 어떤 분이 왔으면 합니까.
“제가 여기에 올 때 낙하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낙하산으로 왔지만 떠날 때는 우주선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공부를 해서 건강보험 관련 제도를 잘 알고 리더십이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깥에서 보던 건보공단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제가 국회 보건복지위원이었습니다. 그때 제게 비친 공단의 모습은 불친절 기관, 상시파업 기관, 노쇠한 공룡조직 등 방만경영의 대표기관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질 높고 광범위한 건강보장 서비스를 요구하면서도 경제위기로 보험료 인상에는 반대하고 의사, 약사 등 공급자들의 수가·약가 인상 요구도 점차 커지는 상황으로서 한마디로 골칫덩어리 공공기관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와서 보니 어떻던가요.
“도시와 농촌 의료통합 등 2차에 걸친 조직통합 과정에서 인력감축으로 인력구조가 기형화·고령화돼 있었습니다. 2002년 이후 신규채용 단절로 직원들 평균 나이가 45세입니다. 신진대사는 단절되고 5급 직원이 10년 넘도록 진급 못하는 극도의 인사적체 등으로 직원사기는 형편없었습니다. 앞으로 2016년에서 2020년까지 5년간 전 직원의 34%인 3807명이 퇴직합니다.”
―제도적 측면에서는요.
“제도운영의 기본 틀과 정책결정은 복지부에서 하고 있고 우리 공단에는 단순집행 기능만 위탁돼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공단은 열심히 보험료를 징수해서 병원에서 청구하는 대로 지급하는 기계적 역할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험재정 적자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공단으로 화살이 집중됩니다. 우리로서는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건보공단 노조는 과거 연평균 46일 이상 파업을 벌였지만 정 이사장 취임 후에는 단 한 번도 파업이 없었습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우리 공단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핵심 역할을 하는 2개의 강성노조가 존재합니다. 노조위원장이 ‘1, 2급은 이사장의 부하이고 3, 4, 5, 6급은 노조위원장의 부하라고 생각하시오’라고 할 정도로 노조 지향적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노조에 대해 과거에 있던 이면합의는 없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노조 간부들과 소통도 강화했습니다. 1차로 노조 전임자를 36명에서 25명으로 축소하였고, 2차로 11명으로 축소 추진 중에 있습니다. 노조활동 시간도 20% 이상 줄였습니다. 건강보험 통합 이후 단 한번도 전보되지 않은 노조 간부에 대해 지난 5월 1일자로 전원 전보 조치했습니다. 물론, 원칙을 지켜 가면서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노사간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정한 건 물 한 잔도 안 먹었다
―지출구조, 전달체계 등 건강보험제도 개편이 논의되고 있는데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진료비 증가율을 보면 OECD 평균이 연평균 4.2%인데 우리나라는 10% 이상입니다. 약품비도 29.3%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습니다. 최근 일반의약품을 수퍼에서 판매하는 작은 문제를 놓고도 이해관계자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만 봐도 지불체계 개편이나 전달체제 개편 등 보건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개혁은 어느 하나도 순조롭게 되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해법은 갖고 있습니까.
“현재 보건복지부의 미래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저는 그 개선안을 과연 합의로 이끌게 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공단에서는 이미 선진화위원회를 만들어서 오랫동안 논의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결조건은 경쟁력 있는 공공병원 확보입니다. 의료산업의 모델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공공병원 비율이 80%이고 완전 시장의료 방식인 미국도 공공병원 비율이 28%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겨우 11% 수준입니다. 보건의료에서 전달체계와 지불체계 개편, 그리고 영리병원 등 의료산업화를 위해서는 공공병원 점유율을 50% 이상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단의 방만경영을 문제 삼는 사람이 많은데요.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공단의 방만경영에 대해 가장 많이 지적하고 문제 삼았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점이 방만경영의 빌미 제공, 개인정보 누수, 보험자로서의 역할 소홀이었습니다. 제 자신부터 비리와 부정과는 단절, 투명 경영을 통해 부패와 방만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정한 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배우자 과거 궁금하면 건보공단에 조회하라
―개인정보 누수는 무슨 말입니까.
“결혼을 위해서 배우자에 대한 과거가 궁금하면 공단에 조회하면 모든 이력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공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는 방대하고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정보 관리도 허술했습니다. 제가 부임 후 개인정보 유출의 근원을 없애고자 개인정보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어서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무단 조회한 직원은 파면을 포함해 53명을 중징계했습니다. 친인척이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경우 정보유출의 원천을 차단하기 위해 요양시설 소재지 및 생활 연고지와 관계없는 원거리로 인사조치까지 했습니다.”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기관이 많습니까.
“많죠. 부임 초 쌀 직불금 문제로 우리 공단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친 일이 있습니다. 금감원 등에서 보험사기 적발을 위해 공단 질병정보를 강력히 요구하는데도 끝까지 반대한 것은 국민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지켜 내는 것이 우리 공단의 숙명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 제공 원칙이 있습니까.
“외부기관에 제공되는 개인정보는 ‘사회보험의 관리운영’이라는 고유 목적과 재판상 법원 제출, 개인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제공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공단이 갖고 있는 개인정보들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방안은 없습니까.
“있죠. 우리 공단은 개인별 진료내역, 건강검진 자료 등 보건의료 분야의 데이터를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게 축적,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활용해서 오리지널 고가약(高價藥) 및 항생제 사용률, 청구액 상위기관 등 진료내역 등을 다양한 팩터로 분석할 수 있는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해 보험재정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공공기관 평가 문제 있다
―최근의 공공기관 평가에서 보통 수준의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요.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공공기관을 평가하고 있는데, 저도 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시장형, 준시장형, 기금형 등 속성상 작동원리, 기능, 사이즈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방법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2010년 경영평가의 중점지표가 성과연봉제였는데 기획재정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기관에 대해서는 모든 지표에 페널티를 주어서 평가순위를 매겼습니다.”
―그렇다면 기획재정부 권고사항을 이행하면 될 문제 아니었나요.
“속성이 다른 수백 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성과연봉 20% 이상, 차등폭 2배 이상, 총연봉 차등 20% 이상 등 획일적으로 정하고 이를 노조와 합의해서 시행하라고 하는데 합의는 ‘기브 앤드 테이크’가 기본 아닙니까. 합의가 안될 경우 강력히 밀어붙여서 구조조정과 함께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끌고 가 노조를 굴복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고 노사 관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탓입니다. 노조에서는 성과연봉제를 태생적으로 반대하고 심지어 지급받은 성과급도 노조에 반납해 다시 똑같이 재분배하는 실정입니다.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합의가 될 수 없을뿐더러 단기간에 밀어붙이기식 노조관리는 반드시 더 큰 후유증을 낳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기관목표 대비 실적을 평가하되 그에 따른 기관운영의 상당한 자율권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평가절차와 방법을 대폭 손질해야 할 겁니다. 저도 국정운영을 해 본 정통관료 출신으로서 제가 이 조직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노사현실을 경험해 보지 않은 기획재정부가 온갖 조직운영에 대해 좌지우지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공단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모든 사회보험을 하나로 통합하고 사회보험청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건강보험료 부과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자주 제기되는데요.
“합리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재산과표 3억원을 초과 보유하고 있는 형제자매를 피부양자에서 제외했고 연간소득 500만원 이하 세대의 20세 미만 자녀의 보험료를 산정에서 제외했습니다. 직장 가입자의 자격 요건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완화했습니다. 금년 8월부터는 재산과표 9억원 초과자도 피부양자에서 제외해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형평성과 공정성을 도모할 예정입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재산 100억원에 건보료가 2만원, 월급은 시늉만, 수상한 직장인들’이라는 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도록 할 겁니다.”
높아진 고객만족도
―2008년 7월부터 시행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안착되고 있는 겁니까.
“제도시행 만 3년이 지난 현재 전체 노인인구의 12%인 65만명이 장기요양을 신청해 32만명이 등급인정을 받았고 이 가운데 28만명이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제도 시행으로 약 10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발생했습니다. 최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민만족도 조사에서도 86.9%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저소득층의 본인부담금 과중 등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 외에도 지역별 인정률 편차와 기관별 서비스 수준의 차이 발생, 장기요양기관의 불법·부당행위 등 제도 안정화를 해치는 문제들이 적지 않게 발견됐습니다.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갈 생각입니다. 특히 장기요양과 관련된 공단 인력이 부족합니다. 2009년 1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인력진단에서 1679명의 추가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산정됐습니다. 공단 자체 조사에서도 약 1500명 이상의 인력충원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요양기관의 허위·부당 청구가 끊이질 않는데요.
“허위·부당 청구의 지능화에 대응해 IT를 활용, 현장경험에 통계분석을 가미한 시스템을 개발해 보험재정 누수방지에 기여했습니다. 요양기관의 허위·부당 청구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하는데 복지부는 조사인력의 한계로 전체 요양기관의 약 1%만 현지조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공단에서 복지부로부터 현지조사권을 반드시 위탁받아 의료공급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건보공단의 고객만족도는 낮은 수준이죠?
“2~3년 전만 해도 공공기관 중 최하위 수준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부 한 곳만 운영하던 고객센터를 전국 6개 지역본부로 확대하는 등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결과 2008년 ‘미흡’에서 2010년에는 ‘양호’로 도약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악화되는 건강보험 문제 공론화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영은 보험자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지난해 초 재정추계 결과 약 1조8000억원의 당기적자가 예상됐을 때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개했습니다. 정부에 재정위기를 인식시켜 정책의제화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공론화시킴으로써 각종 제도 개선과 개혁추진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고강도 자구노력을 추진한 결과 5346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함으로써 당기 재정 적자 규모를 당초 1조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줄였습니다. 지난 5월 말 현재 금년 목표의 61% 수준인 3700여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했고 연말까지 ‘비상경영’에 이은 ‘위기경영’을 통해 흑자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건보공단 이사장이라는 자리가 힘든 자리인 것 같은데 이곳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유럽에서는 복지 문제가 사회적·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저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핵심 이슈도 결국 복지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상의료,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이 벌써 이슈로 등장했잖아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복지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민주당은 중진들이나 야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서민을 위한 복지나 교육, 노동 이런 분야에 대해 공부도 하고 연구도 많이 했어요.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따라가면서 복지 관련 정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이죠. 유럽에 가서 보고 배웠는데 복지나 교육은 재정이 허용하는 한 전 국민에게 다 해 주고 또한 평등하게 해 주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유럽에서는 그런 것들을 개인의 천부적 권리, 헌법적 기본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은 진정성이 미흡해 보입니다.”
―진정성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한나라당에는 복지 문제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야당에는 진정성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나라당 의원들은 상임위를 선택할 때 화려한 위원회로 몰리는데 야당은 이해찬 전 의원, 유시민 참여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런 무게감 있는 의원들이 환경노동이나 보건복지, 교육 등을 선택해요.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유일해 보입니다.”
―그래도 민주당의 무상의료는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닙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 혹은 가치와 그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은 구분해서 접근해야겠죠. 재정이 충분하다면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선별·선택적 복지형태, 재정의 선후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더구나 의료영역의 보편적 복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진정성이 부족한 정치인이었다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투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자체장으로서는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들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재정에 큰 문제가 없다면 미래의 희망인 우리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다시 정치로 돌아갈 생각입니까.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진정성입니다. 정치 현장에서 4~5년 떨어져 있다 보니까 정치를 할 때 진정성이 다소 부족했다는 후회를 갖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행정부에서 일도 해 보고 하는 식으로 서로 교류를 해야지 국회에만 머무는 정치인은 많은 것을 놓치기 쉽다는 생각입니다.”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정 이사장에게서 활기가 느껴졌다.
―두 번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선거 전문가로서 과거 ‘이회창(李會昌) 대세론’과 최근 ‘박근혜(朴槿惠) 대세론’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라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과는 다소 다릅니다. 이회창 후보 대세론의 내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여론조사에서 호감도를 중요시하는데 당시 호감도 등을 여론조사해 보면 밖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상대방 후보에게 다소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전 대표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앞서 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거죠.”
―‘박근혜 대세론이 독’이라는 분도 있던데요.
“대세론이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한나라당 내부 경선입니다. 이재오(李在五) 특임장관도 분명 후보로 나올 겁니다. 경선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박근혜 후보가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야당 경선이 한나라당 경선보다 더 재미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손학규(孫鶴圭), 정동영(鄭東泳) 후보도 있지만 유시민(柳時敏) 후보도 간단치 않은 사람입니다. 그 외에도 김두관(金斗官), 한명숙(韓明淑), 이광재(李光宰) 등 한나라당보다 풀 영역이 흥미진진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야당 지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년 총선 전망이 한나라당에 비관적인 흐름인데요.
“과거에는 총선에 지면 국민들의 견제심리가 발동해 대선에서는 이긴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총선 결과가 대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전망이 비관적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총선까지 많은 시간이 있고 민주당도 당내 사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변곡점들을 잘 넘어가면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봐요.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 총선에 임해야 합니다. 대선은 총선과 다릅니다. 대선은 20, 30대 투표율이 90%가 넘을 것입니다. 이 점을 유념하여 젊은 층에 취약한 한나라당은 그들을 끌어들일 정책개발 등에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7·4 한나라당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한나라당이 환골탈태했다는 느낌을 받습니까.
“뭔가 불안합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서민을 위한 제반정책을 선점하려는 노력은 잘하는 거라고 봅니다. 안 하는 것보다 이슈를 내놓는 게 좋은 거죠. 그러나 지도부의 무게감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무총장 인선 문제로 집권 여당이 저런 내분을 겪는 일은 과거 집권여당의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던 일입니다. 대립하면 결과가 뻔한데,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심정입니다.”
―홍준표 대표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 대표를 안상수 대표에서 홍준표 대표로 바꾼 것과 유승민 의원이 새로 들어온 걸 제외하면 변화가 없다고 봅니다. 홍준표 대표를 중심으로 잘해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 구성된 최고위원회는 내년에 실시되는 총선과 대선을 관리하기 위한 체제이므로 당내 화합과 단결이 중요한데, 최고위원 모두가 개성이 강한 분들이라 그게 염려스럽습니다.”
건보공단에 실질적 권한과 의무 부여해야
남북한 문제 등 정 이사장의 사회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북한을 꾸준히 동질화해야 합니다. 북한과의 교류가 민간 차원이든 어느 차원이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북한이 평화공세를 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북한보다 GDP가 약 60배 이상 높고 수출규모는 약 10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내부적으로 안보는 튼튼히 하되 대통령은 프리핸드로 북한에 대해 평화정책을 설파하고 포용소통정책을 과감하게 펴야 합니다. 북한 경제의 70% 이상이 중국에 예속돼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해서 미국과의 공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잘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천안함 폭침(爆沈),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사과가 없어도 남북이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까.
“그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가 돼야 합니다. 정상회담 어젠다를 설정할 때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도록 해야죠. 물론 재임 시에 단기성과 주의로 정상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통일 문제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풀어 가야 할 문제이니까요. 제가 국정원을 나온 지 20년이 더 됐는데 그때부터 북한이 망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직도 안 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망한다 망한다, 노래만 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고 왜 아직도 안 망하는지 그 이유를 차분히 규명해야 합니다.”
―이사장직을 물러나면서 어떤 점들이 아쉽습니까.
“공단을 건강보험제도의 실질적 운영주체이자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올려놓지 못한 점입니다. 향후 점점 더 중요해질 보험급여 지출과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공단이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보험자로서 실질적인 권한과 의무를 부여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정 이사장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점심 약속 때문에 인터뷰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 몹시 아쉬운 것 같았다. 기자는 1년 후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안내를 맡은 노타이 차림의 건보공단 이원길 홍보실장은 “섭씨 28도가 넘어야 냉방기를 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직원들 방이야 그럴 수 있지만 이사장실은 몰래 냉방기를 가동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직접 체험해 보라”고 했다.
기자 일행이 겉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이사장 접견실은 더웠다. 후텁지근한 접견실로 정형근(鄭亨根) 이사장이 나왔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취임 3주년이 되는 오는 9월 19일까지다.
―연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3년 했으면 됐지요. 어떤 점에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게, 현재 가장 중요한 사회 이슈인 보건의료복지 문제와 IT 분야에 문외한으로 비슷했는데 눈을 뜨게 됐다는 점입니다.”
―건보공단의 특성상 보건의료복지 문제는 이해되는데 IT 분야에도 눈을 뜨게 됐다는 게 선뜻 와닿지 않습니다.
“우리 공단에서 그동안 차세대시스템, 통합경영시스템, 4대보험 징수통합시스템 등 많은 시스템 구축 사업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IT에 눈을 뜨게 된 거죠. 우리나라는 IT(정보기술) 강국이 아니라 IC(정보소비) 강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OS) 등 소위 부가가치 높은 핵심기술과 부품은 모두 수입품입니다. 큰 것은 모두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IT가 닷컴 버블 이후 침체되었다가 제2의 변혁기를 맞은 변곡점을 2007년으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IT산업과 관련, 과거 정부의 문제는 차치하고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면 정책기능 측면에서 정보통신부를 폐지하고 원천 과학기술 개발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정통부의 폐지는 IT 자체를 주력산업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산업을 도와주는 보조산업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IT정책을 선제적으로 주도하고 육성할 책임 있는 부처가 없었던 결과 IT기술 주도권을 경쟁국에 넘겨주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 기술인 와이브로가 LTE(유럽식 4세대 이동통신)에 밀린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원천 과학기술 개발 분야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신약(新藥)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인 수준에 미치는 제약사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국제적인 제약사가 10개나 됩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양성과 산업육성에 너무 소홀히 한 탓이죠.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슈, 노바티스 등 제약사의 핵심 기술자는 생물화학 등 기초학문을 전공한 독일인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양성과 산업육성에 너무 소홀하여, 그나마 일부 유능한 인재들도 모두 외국 연구소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천기술은 학교와 벤처에서 나오고 응용은 제약사에서 하여야 합니다. 현 정부가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면서 과학기술 기능만 가져갔지 제대로 된 과학기술 분야 일은 못한 겁니다. 차기 정부는 교육과학기술부를 분리해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을 집중 추진해야 할 겁니다.”
낙하산으로 왔지만 우주선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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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근 이사장이 2008년 10월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의 쌀 직불금 수령 명단과 관련된 질문을 듣고 있다. 정 이사장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의원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
“이사장님이 오신 후 우리 건보공단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강성으로 유명했던 노동조합과의 분규도 없었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공부를 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직원들을 전문가로 만든 거죠. 이전에는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정책을 수립할 때 우리의 의견은 아예 무시했지만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후임자로는 어떤 분이 왔으면 합니까.
“제가 여기에 올 때 낙하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낙하산으로 왔지만 떠날 때는 우주선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공부를 해서 건강보험 관련 제도를 잘 알고 리더십이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깥에서 보던 건보공단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제가 국회 보건복지위원이었습니다. 그때 제게 비친 공단의 모습은 불친절 기관, 상시파업 기관, 노쇠한 공룡조직 등 방만경영의 대표기관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질 높고 광범위한 건강보장 서비스를 요구하면서도 경제위기로 보험료 인상에는 반대하고 의사, 약사 등 공급자들의 수가·약가 인상 요구도 점차 커지는 상황으로서 한마디로 골칫덩어리 공공기관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와서 보니 어떻던가요.
“도시와 농촌 의료통합 등 2차에 걸친 조직통합 과정에서 인력감축으로 인력구조가 기형화·고령화돼 있었습니다. 2002년 이후 신규채용 단절로 직원들 평균 나이가 45세입니다. 신진대사는 단절되고 5급 직원이 10년 넘도록 진급 못하는 극도의 인사적체 등으로 직원사기는 형편없었습니다. 앞으로 2016년에서 2020년까지 5년간 전 직원의 34%인 3807명이 퇴직합니다.”
―제도적 측면에서는요.
“제도운영의 기본 틀과 정책결정은 복지부에서 하고 있고 우리 공단에는 단순집행 기능만 위탁돼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공단은 열심히 보험료를 징수해서 병원에서 청구하는 대로 지급하는 기계적 역할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험재정 적자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공단으로 화살이 집중됩니다. 우리로서는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건보공단 노조는 과거 연평균 46일 이상 파업을 벌였지만 정 이사장 취임 후에는 단 한 번도 파업이 없었습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우리 공단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핵심 역할을 하는 2개의 강성노조가 존재합니다. 노조위원장이 ‘1, 2급은 이사장의 부하이고 3, 4, 5, 6급은 노조위원장의 부하라고 생각하시오’라고 할 정도로 노조 지향적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노조에 대해 과거에 있던 이면합의는 없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노조 간부들과 소통도 강화했습니다. 1차로 노조 전임자를 36명에서 25명으로 축소하였고, 2차로 11명으로 축소 추진 중에 있습니다. 노조활동 시간도 20% 이상 줄였습니다. 건강보험 통합 이후 단 한번도 전보되지 않은 노조 간부에 대해 지난 5월 1일자로 전원 전보 조치했습니다. 물론, 원칙을 지켜 가면서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노사간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정한 건 물 한 잔도 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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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최고위원 시절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정형근 이사장. |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진료비 증가율을 보면 OECD 평균이 연평균 4.2%인데 우리나라는 10% 이상입니다. 약품비도 29.3%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습니다. 최근 일반의약품을 수퍼에서 판매하는 작은 문제를 놓고도 이해관계자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만 봐도 지불체계 개편이나 전달체제 개편 등 보건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개혁은 어느 하나도 순조롭게 되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해법은 갖고 있습니까.
“현재 보건복지부의 미래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저는 그 개선안을 과연 합의로 이끌게 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공단에서는 이미 선진화위원회를 만들어서 오랫동안 논의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결조건은 경쟁력 있는 공공병원 확보입니다. 의료산업의 모델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공공병원 비율이 80%이고 완전 시장의료 방식인 미국도 공공병원 비율이 28%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겨우 11% 수준입니다. 보건의료에서 전달체계와 지불체계 개편, 그리고 영리병원 등 의료산업화를 위해서는 공공병원 점유율을 50% 이상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단의 방만경영을 문제 삼는 사람이 많은데요.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공단의 방만경영에 대해 가장 많이 지적하고 문제 삼았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점이 방만경영의 빌미 제공, 개인정보 누수, 보험자로서의 역할 소홀이었습니다. 제 자신부터 비리와 부정과는 단절, 투명 경영을 통해 부패와 방만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정한 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배우자 과거 궁금하면 건보공단에 조회하라
―개인정보 누수는 무슨 말입니까.
“결혼을 위해서 배우자에 대한 과거가 궁금하면 공단에 조회하면 모든 이력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공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는 방대하고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정보 관리도 허술했습니다. 제가 부임 후 개인정보 유출의 근원을 없애고자 개인정보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어서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무단 조회한 직원은 파면을 포함해 53명을 중징계했습니다. 친인척이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경우 정보유출의 원천을 차단하기 위해 요양시설 소재지 및 생활 연고지와 관계없는 원거리로 인사조치까지 했습니다.”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기관이 많습니까.
“많죠. 부임 초 쌀 직불금 문제로 우리 공단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친 일이 있습니다. 금감원 등에서 보험사기 적발을 위해 공단 질병정보를 강력히 요구하는데도 끝까지 반대한 것은 국민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지켜 내는 것이 우리 공단의 숙명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 제공 원칙이 있습니까.
“외부기관에 제공되는 개인정보는 ‘사회보험의 관리운영’이라는 고유 목적과 재판상 법원 제출, 개인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제공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공단이 갖고 있는 개인정보들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방안은 없습니까.
“있죠. 우리 공단은 개인별 진료내역, 건강검진 자료 등 보건의료 분야의 데이터를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게 축적,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활용해서 오리지널 고가약(高價藥) 및 항생제 사용률, 청구액 상위기관 등 진료내역 등을 다양한 팩터로 분석할 수 있는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해 보험재정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공공기관 평가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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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에서 한명숙 당시 총리를 상대로 질의를 하고 있는 정형근 이사장. |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공공기관을 평가하고 있는데, 저도 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시장형, 준시장형, 기금형 등 속성상 작동원리, 기능, 사이즈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방법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2010년 경영평가의 중점지표가 성과연봉제였는데 기획재정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기관에 대해서는 모든 지표에 페널티를 주어서 평가순위를 매겼습니다.”
―그렇다면 기획재정부 권고사항을 이행하면 될 문제 아니었나요.
“속성이 다른 수백 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성과연봉 20% 이상, 차등폭 2배 이상, 총연봉 차등 20% 이상 등 획일적으로 정하고 이를 노조와 합의해서 시행하라고 하는데 합의는 ‘기브 앤드 테이크’가 기본 아닙니까. 합의가 안될 경우 강력히 밀어붙여서 구조조정과 함께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끌고 가 노조를 굴복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고 노사 관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탓입니다. 노조에서는 성과연봉제를 태생적으로 반대하고 심지어 지급받은 성과급도 노조에 반납해 다시 똑같이 재분배하는 실정입니다.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합의가 될 수 없을뿐더러 단기간에 밀어붙이기식 노조관리는 반드시 더 큰 후유증을 낳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기관목표 대비 실적을 평가하되 그에 따른 기관운영의 상당한 자율권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평가절차와 방법을 대폭 손질해야 할 겁니다. 저도 국정운영을 해 본 정통관료 출신으로서 제가 이 조직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노사현실을 경험해 보지 않은 기획재정부가 온갖 조직운영에 대해 좌지우지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공단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모든 사회보험을 하나로 통합하고 사회보험청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건강보험료 부과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자주 제기되는데요.
“합리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재산과표 3억원을 초과 보유하고 있는 형제자매를 피부양자에서 제외했고 연간소득 500만원 이하 세대의 20세 미만 자녀의 보험료를 산정에서 제외했습니다. 직장 가입자의 자격 요건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완화했습니다. 금년 8월부터는 재산과표 9억원 초과자도 피부양자에서 제외해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형평성과 공정성을 도모할 예정입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재산 100억원에 건보료가 2만원, 월급은 시늉만, 수상한 직장인들’이라는 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도록 할 겁니다.”
높아진 고객만족도
―2008년 7월부터 시행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안착되고 있는 겁니까.
“제도시행 만 3년이 지난 현재 전체 노인인구의 12%인 65만명이 장기요양을 신청해 32만명이 등급인정을 받았고 이 가운데 28만명이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제도 시행으로 약 10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발생했습니다. 최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민만족도 조사에서도 86.9%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저소득층의 본인부담금 과중 등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 외에도 지역별 인정률 편차와 기관별 서비스 수준의 차이 발생, 장기요양기관의 불법·부당행위 등 제도 안정화를 해치는 문제들이 적지 않게 발견됐습니다.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갈 생각입니다. 특히 장기요양과 관련된 공단 인력이 부족합니다. 2009년 1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인력진단에서 1679명의 추가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산정됐습니다. 공단 자체 조사에서도 약 1500명 이상의 인력충원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요양기관의 허위·부당 청구가 끊이질 않는데요.
“허위·부당 청구의 지능화에 대응해 IT를 활용, 현장경험에 통계분석을 가미한 시스템을 개발해 보험재정 누수방지에 기여했습니다. 요양기관의 허위·부당 청구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하는데 복지부는 조사인력의 한계로 전체 요양기관의 약 1%만 현지조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공단에서 복지부로부터 현지조사권을 반드시 위탁받아 의료공급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건보공단의 고객만족도는 낮은 수준이죠?
“2~3년 전만 해도 공공기관 중 최하위 수준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부 한 곳만 운영하던 고객센터를 전국 6개 지역본부로 확대하는 등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결과 2008년 ‘미흡’에서 2010년에는 ‘양호’로 도약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악화되는 건강보험 문제 공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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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근 이사장의 경영방침 중 하나가 현장경영이다. 정 이사장이 건보공단 지부를 방문해 현지 직원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영은 보험자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지난해 초 재정추계 결과 약 1조8000억원의 당기적자가 예상됐을 때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개했습니다. 정부에 재정위기를 인식시켜 정책의제화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공론화시킴으로써 각종 제도 개선과 개혁추진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고강도 자구노력을 추진한 결과 5346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함으로써 당기 재정 적자 규모를 당초 1조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줄였습니다. 지난 5월 말 현재 금년 목표의 61% 수준인 3700여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했고 연말까지 ‘비상경영’에 이은 ‘위기경영’을 통해 흑자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건보공단 이사장이라는 자리가 힘든 자리인 것 같은데 이곳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유럽에서는 복지 문제가 사회적·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저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핵심 이슈도 결국 복지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상의료,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이 벌써 이슈로 등장했잖아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복지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민주당은 중진들이나 야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서민을 위한 복지나 교육, 노동 이런 분야에 대해 공부도 하고 연구도 많이 했어요.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따라가면서 복지 관련 정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이죠. 유럽에 가서 보고 배웠는데 복지나 교육은 재정이 허용하는 한 전 국민에게 다 해 주고 또한 평등하게 해 주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유럽에서는 그런 것들을 개인의 천부적 권리, 헌법적 기본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은 진정성이 미흡해 보입니다.”
―진정성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한나라당에는 복지 문제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야당에는 진정성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나라당 의원들은 상임위를 선택할 때 화려한 위원회로 몰리는데 야당은 이해찬 전 의원, 유시민 참여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런 무게감 있는 의원들이 환경노동이나 보건복지, 교육 등을 선택해요.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유일해 보입니다.”
―그래도 민주당의 무상의료는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닙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 혹은 가치와 그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은 구분해서 접근해야겠죠. 재정이 충분하다면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선별·선택적 복지형태, 재정의 선후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더구나 의료영역의 보편적 복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진정성이 부족한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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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연말 직원들과 함께 ‘사랑의 연탄 기증’ 행사에 참석해 연탄을 나르고 있는 정형근 이사장. |
“지자체장으로서는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들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재정에 큰 문제가 없다면 미래의 희망인 우리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다시 정치로 돌아갈 생각입니까.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진정성입니다. 정치 현장에서 4~5년 떨어져 있다 보니까 정치를 할 때 진정성이 다소 부족했다는 후회를 갖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행정부에서 일도 해 보고 하는 식으로 서로 교류를 해야지 국회에만 머무는 정치인은 많은 것을 놓치기 쉽다는 생각입니다.”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정 이사장에게서 활기가 느껴졌다.
―두 번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선거 전문가로서 과거 ‘이회창(李會昌) 대세론’과 최근 ‘박근혜(朴槿惠) 대세론’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라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과는 다소 다릅니다. 이회창 후보 대세론의 내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여론조사에서 호감도를 중요시하는데 당시 호감도 등을 여론조사해 보면 밖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상대방 후보에게 다소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전 대표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앞서 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거죠.”
―‘박근혜 대세론이 독’이라는 분도 있던데요.
“대세론이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한나라당 내부 경선입니다. 이재오(李在五) 특임장관도 분명 후보로 나올 겁니다. 경선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박근혜 후보가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야당 경선이 한나라당 경선보다 더 재미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손학규(孫鶴圭), 정동영(鄭東泳) 후보도 있지만 유시민(柳時敏) 후보도 간단치 않은 사람입니다. 그 외에도 김두관(金斗官), 한명숙(韓明淑), 이광재(李光宰) 등 한나라당보다 풀 영역이 흥미진진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야당 지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년 총선 전망이 한나라당에 비관적인 흐름인데요.
“과거에는 총선에 지면 국민들의 견제심리가 발동해 대선에서는 이긴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총선 결과가 대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전망이 비관적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총선까지 많은 시간이 있고 민주당도 당내 사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변곡점들을 잘 넘어가면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봐요.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 총선에 임해야 합니다. 대선은 총선과 다릅니다. 대선은 20, 30대 투표율이 90%가 넘을 것입니다. 이 점을 유념하여 젊은 층에 취약한 한나라당은 그들을 끌어들일 정책개발 등에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7·4 한나라당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한나라당이 환골탈태했다는 느낌을 받습니까.
“뭔가 불안합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서민을 위한 제반정책을 선점하려는 노력은 잘하는 거라고 봅니다. 안 하는 것보다 이슈를 내놓는 게 좋은 거죠. 그러나 지도부의 무게감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무총장 인선 문제로 집권 여당이 저런 내분을 겪는 일은 과거 집권여당의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던 일입니다. 대립하면 결과가 뻔한데,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심정입니다.”
―홍준표 대표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 대표를 안상수 대표에서 홍준표 대표로 바꾼 것과 유승민 의원이 새로 들어온 걸 제외하면 변화가 없다고 봅니다. 홍준표 대표를 중심으로 잘해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 구성된 최고위원회는 내년에 실시되는 총선과 대선을 관리하기 위한 체제이므로 당내 화합과 단결이 중요한데, 최고위원 모두가 개성이 강한 분들이라 그게 염려스럽습니다.”
건보공단에 실질적 권한과 의무 부여해야
남북한 문제 등 정 이사장의 사회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북한을 꾸준히 동질화해야 합니다. 북한과의 교류가 민간 차원이든 어느 차원이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북한이 평화공세를 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북한보다 GDP가 약 60배 이상 높고 수출규모는 약 10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내부적으로 안보는 튼튼히 하되 대통령은 프리핸드로 북한에 대해 평화정책을 설파하고 포용소통정책을 과감하게 펴야 합니다. 북한 경제의 70% 이상이 중국에 예속돼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해서 미국과의 공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잘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천안함 폭침(爆沈),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사과가 없어도 남북이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까.
“그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가 돼야 합니다. 정상회담 어젠다를 설정할 때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도록 해야죠. 물론 재임 시에 단기성과 주의로 정상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통일 문제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풀어 가야 할 문제이니까요. 제가 국정원을 나온 지 20년이 더 됐는데 그때부터 북한이 망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직도 안 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망한다 망한다, 노래만 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고 왜 아직도 안 망하는지 그 이유를 차분히 규명해야 합니다.”
―이사장직을 물러나면서 어떤 점들이 아쉽습니까.
“공단을 건강보험제도의 실질적 운영주체이자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올려놓지 못한 점입니다. 향후 점점 더 중요해질 보험급여 지출과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공단이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보험자로서 실질적인 권한과 의무를 부여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정 이사장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점심 약속 때문에 인터뷰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 몹시 아쉬운 것 같았다. 기자는 1년 후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