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회사 연수성적·영업실적 꼴찌가 세일즈 왕이 된 비결, ‘6개월간 미쳐 일하기’
⊙ 거래처 약국을 찾아가 무조건 청소부터 시작. 2개월 뒤 신규거래 약국 생겨나
⊙ 인간관계를 만드는 ‘3·3·3 법칙’… 3년 동안은 투자하고 3년은 기다리고 3년은 확실히 도움을 받아라!
⊙ 사원일 때 과장의 눈으로, 과장일 때 CEO의 눈으로 일과 세상을 바라보라
李希九
⊙ 62세. 경남 거창 대성고, 명지대 국문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연세대 보건대학원 재학중.
경남대 경영학 명예박사.
⊙ 대웅제약 영업본부장, 동부약품 대표이사 회장, 초대 인천시의원, 인천시 공직자윤리위 부위원장
역임. 현 한국의약품 도매협회 회장.
⊙ 한국 샐러리맨 대상, 내무부 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 보사부 장관 표창, 교육부 장관 표창 수상.
⊙ 거래처 약국을 찾아가 무조건 청소부터 시작. 2개월 뒤 신규거래 약국 생겨나
⊙ 인간관계를 만드는 ‘3·3·3 법칙’… 3년 동안은 투자하고 3년은 기다리고 3년은 확실히 도움을 받아라!
⊙ 사원일 때 과장의 눈으로, 과장일 때 CEO의 눈으로 일과 세상을 바라보라
李希九
⊙ 62세. 경남 거창 대성고, 명지대 국문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연세대 보건대학원 재학중.
경남대 경영학 명예박사.
⊙ 대웅제약 영업본부장, 동부약품 대표이사 회장, 초대 인천시의원, 인천시 공직자윤리위 부위원장
역임. 현 한국의약품 도매협회 회장.
⊙ 한국 샐러리맨 대상, 내무부 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 보사부 장관 표창, 교육부 장관 표창 수상.
“돈도 배경도 학벌도 스펙도 필요 없다. 6개월만 미쳐라. 반드시 인생이 바뀐다.”
국내 최대 의약품 물류그룹 ㈜지오영 이희구(李希九·62) 회장의 말이다. 무일푼으로 상경,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성공신화를 쓴 이 회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6개월간 미친’ 덕분이라고 말한다. 6개월만 미치면 이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현재 지오영은 전국 16개 계열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 전국 도매 거점화를 이뤄 냈다. 2008년 매출액이 6940억원이었으나 2009년 1조3936억원으로 곱절 뛰더니 2010년에는 1조8797억원에 달했다. 제약업계와 의약품 유통업계 처음으로 2조원 매출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 회장은 제약영업계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당시만 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서울약품 계열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겨주기는커녕 불청객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약사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 ‘미쳤더니’ 전국 매출실적 1위를 기록했다. 한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자 초고속 승진을 거듭, 서른 살에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말처럼 ‘미쳐서’ 이뤄낸 결과라면, 제대로 미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기자는 지난 3월 28일 서울 영등포 지오영 본사를 찾아가 세일즈 왕의 성공스토리를 들었다. 제약영업계의 ‘괴물’은 그저 소박해 보였다. 그는 “타고난 세일즈맨이란 없다”고 단언했다.
“학벌이나 스펙은 미래의 성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로 세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방법, 끊임없이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달성해 가는 땀만이 성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그가 들려주는 제약업계 영업 37년의 노하우는 거창한 신화(神話)가 아니라 진솔한 인간학(人間學)이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1974년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할 당시 이희구 회장이 택할 길은 많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가 고향인 경남 거창에 학교(혜성여중)를 세웠었다. 낙향하면 교사 자리는 구할 수 있겠다 싶어 짐을 꾸렸다. 일단, 모교인 거창중학교에서 임시교사 자릴 구했다. 하지만 8개월이 안돼 사표를 던졌다. 어머니를 버리고 두 집 살림을 하던 아버지와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도저히 같이 살기 어려워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며 다시 상경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무역회사에 입사했으나 외국어가 ‘맹탕’이라 배겨낼 수 없었다. 사표를 던지고 제약회사 영업 일을 시작했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상경계열도 아닌 제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어요. 제약사 영업부는 공부 못한 사람도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 입사원서를 냈지요. 평범한 대학 국문과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보험사와 제약사 영업밖에 없었습니다.”
이 회장은 서울약품 계열사인 아세아양행에 입사했다. 간신히 직장을 구했지만, 입사 연수성적은 꼴찌였다. 게다가 회사는 신생사인 데다 가격 덤핑을 일삼아 약사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했다. 약사들은 대놓고 영업사원을 무시했다. 약사들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니 아무리 좋은 상품이 있어도 팔 수가 없었다.
당시 그가 맡은 영업구역은 서울 관악구 관내 200여개 약국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노량진에서 시작해 장승배기, 봉천동, 신반포를 거치면 하루에 적게는 40곳, 많게는 50곳까지 약국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관악구는 영업사원들의 무덤으로 통하는 기피지역이었다. 워낙 영세한 약국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영업실적은 꼴찌였다. 더는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생각했다.
“약사들이 저를 좋아하긴 했지만 ‘아세아양행에서 왔다’ 하면 인상부터 구겨져요. 약사에게 말도 못 붙이니 약을 팔 수가 있어야지요.”
약국 청소해 주며 신뢰 쌓아
우연히 동네 구멍가게 앞을 지나다 청소용 타월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약국 앞 빈병 박스를 치우고 진열대를 정리했다. 양복을 입은 채로 청소 타월을 들고 약국 구석구석을 닦았다. 약 사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청소만 하고는 후닥닥 가버리니 “별 싱거운 사람 다 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한 약국에서 10~15분간 치우는 ‘청소 순례’를 몇 달간 계속하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약국엔 여자 약사들이 많잖아요. 남자 일손이 필요한데 제가 처리하니 좋게 봐주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도움을 청하더군요.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들어 주고, 망치를 들고 못질해 주고, 형광등도 갈아 끼워 주었지요. 결국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게 하던 약사들이 신규거래를 터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입사 6개월 만에 전국 매출실적 1위를 기록했다. 청소 타월로 약국 청소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하루 평균 약국 2~3개씩 신규거래가 트이더니 두세 달이 되자 대부분의 약국이 그의 약을 사겠다고 했다. 전국 영업사원 300명 중 최고실적을 올리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괴물의 등극
“괴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니까요. 아무도 주목 안 한 꼴찌가 어느 날 갑자기 일등이 되니 괴물 소리를 들을 만했지요.”
실적이 크게 늘자 회사는 영등포로 발령을 냈다.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라는 명령이었다. 가장 어렵다던 관악구를 뚫었는데 영등포는 식은 죽 먹기였다. 보통 입사 후 빨라야 5~6년 뒤에 영업소장이 되는데 그는 1년도 안돼 소장이 됐다. 연수성적 꼴찌에서 영업실적 전국 1위, 영업소장까지, 입사 첫해에 모두 일어난 일이었다.
“제 인생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하나, 일에 미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의약품 유통업계 1위의 저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입사 후 6개월간 죽기 살기로 뛰어다닌 덕분이라고요.”
그는 가끔 지오영의 영업사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6개월만 미쳐라”고.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말고, 정말 일에 목숨을 걸고 6개월간 미쳐 보세요. 6개월만 남들보다 잠자는 시간 줄여 2시간 더 일해 보세요. 잠자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고민해 보세요. 그렇게 열심히 하면 평생이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해 몸값을 올려놓으면 이후에 직장생활이 수월해집니다.”
그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운 날엔 더워서, 추운 날엔 추워서 거래처 가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노닥거릴 틈만 노린다”고 했다. 그는 6개월 미친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일에 한번 미쳐 보고 나니 세상과 일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어요. 세상에는 쉬운 일도 없지만 덤벼들면 이루지 못할 일도 없다는 자신감, 그전에는 모르던 일의 재미, 성과를 내본 사람만이 갖게 되는 도전의식,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연애와 영업의 공통점
협상 테이블에 두 사람이 있다. 으레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는 쪽이 갑(甲), 물건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은 을(乙)이다. 을은 갑에게 매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협상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갑을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이 회장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영업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기보다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갑의 위치에 서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해 먼저 알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거래 약사들의 뒷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약사가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지, 어떤 제약회사 약품을 주로 쓰는지, 도매상은 어디와 거래하는지, 고향과 출신학교, 가족관계까지 파악했다.
“쉽지는 않지만 비즈니스 상대를, 사랑하는 이성처럼 틈날 때마다 생각하고 탐구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짝사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한 정보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래서 누구와 친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게 됩니다. 연애와 영업의 공통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업사원은 만능(萬能)일 필요가 있다. 어떤 고객에게는 호탕하고 활발한 모습으로 접근해야 하고, 어떤 고객에는 세심하고 부드럽게 다가가야 한다. 때론 우직하고 진중해야 하고, 매몰차게 속도를 내야 하며,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스타일이건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대하면 누구나 마음을 열게 돼요. 친화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존심이 세다’고들 하는데, 돈을 벌려면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을 이룰 수만 있다면 고개가 아니라 허리마저 90도로 꺾고 목표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건 자존심이 아닙니다. 사업이 뭔지를 아는 사람의 생활자세입니다.”
영업 초년 시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부탁하는 일은 ‘영업 달인’에게도 고역(苦役)이었다. 거래처 약사들에게 형님, 누님처럼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실제 그의 누나와 매형이 약사다) 혹시라도 잘못해 약사에게 혼이라도 나면, 누나와 형에게 호된 질책을 들었다고 생각하니 영업일이 한결 쉬워졌다. 영업을 연애와 같이 생각한 덕분이었다.
혼자 앞서 나가는 것은 下策
영업을 시작한 이후 실적은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정작 몸담고 있던 회사는 흔들리고 있었다. 자금압박이 심해진 데다 신약개발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운영자금이 대부분 부동산 매입에 들어가고 있다는 소문마저 들렸다. “진심이 배반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웅제약은 품질이 좋고 인지도가 높아 영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입사 후 처음엔 동료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봐란 듯 실적으로 보답했다. 입사 두 달 만에 전국 1위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리고 서른 살 나이로 ‘국내 최연소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영업실적 면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이뤄내자 대웅제약 윤영환(尹泳煥) 회장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론,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고속 승진을 하고 회사 실력자가 되어 가는데 신경 쓰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회사 내 동료의 지지와 호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부서의 장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갖고자 노력했다. 먼저 다가가 “○○○ 부장님, 수고가 많으시죠. 애쓰시는 덕분에 회사가 잘 돌아갑니다”, “△△△ 과장님, 좋은 기획이네요. 덕분에 영업하기 편해졌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잘한 일이 있으면 먼저 찾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로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엄두도 못 낼 만큼 혼자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을 함께 끌고 나가면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에 매진하다가 가끔은 한 번씩 주위를 둘러보세요. 나 혼자 너무 앞서는 것은 아닌지, 의욕이 지나쳐 주위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비즈니스는 사람에서 시작
새로운 회사에서 영업을 시작했을 때 실적이 좋은 이유는 이전에 일하면서 맺은 인간관계 덕이었다. 대웅제약에 와서 맡은 지역이 관악구와 영등포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서울약품 시절 발이 부르트도록 다져 놓은 지역이었다.
그와 함께 거래처를 방문해 본 직원들이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떻게 거리낌 없이 약국 조제실에 드나들 수 있는지, 구멍가게 같은 작은 약국 사정에도 밝은지, 약사들의 경조사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챙기는지 감탄했다.
“필요할 때만 만나는 사이였다면 그런 깊은 관계는 가능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비즈니스 관계가 없을 때도 인간적 교류를 계속해 왔기에 신뢰관계를 가질 수 있었지요.”
이런 일도 있었다. 신규 거래처 확장회의 도중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경기도 용인 나환자촌에 약국이 크고 지급상태도 양호한데 세일즈맨이 도통 가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과 한 궤짝을 들고 당장 달려갔다. 자신을 ‘대웅제약 강남영업소장 이희구’라고 소개하고선 약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약사 역시 한센병 환자였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 회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평생 처음 일반인과 악수한 것이었다.
“이후 모든 거래가 타결됐습니다. 다음날부터 용인 나환자촌에 우리 회사 약품이 들어갔어요. 용인에서 거래가 시작되면서 다른 나환자촌에서도 우리 회사 물건을 쓰게 되어 매출이 크게 올랐지요. 지금도 나환자 거주지에서 대웅제약 물건을 먼저 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약국 확장공사 직접 도와
그와 거래하는 약국 중에는 더러 건물을 확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어느 약사가 “확장공사를 하는데 닷새나 걸려 큰일”이라는 넋두리를 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일처럼 인부를 설득, “주말을 끼고 이틀 정도만 문을 닫으면 공사를 끝낼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그는 인부들과 이틀 밤을 새워 가며 땀을 흘렸다. 물론 정해진 날에 약국은 문을 열었다.
“영업사원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업사원 업무의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제 거래처의 일은 제 일이라 여겼고, 제 능력이 되는 한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요.”
약국이 확장 개업한 뒤 덩달아 그의 영업매출도 올랐다. “실적이 오른 것보다 제가 고객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고 했다.
“그냥 친한 관계, 호감을 가진 관계를 넘어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을 잘 돕는 특징이 있지요. 영업할 때 거래처 문 앞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용건만 말하는 정도로 일해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좀 더 잘하는 사람은 약국 조제실까지 들어가 깊은 대화를 나누지요. 그 차이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 관계인가에 달렸다고 봅니다.”
그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3·3·3 법칙’을 지인들에게 곧잘 이야기한다. 3·3·3 법칙이란, 처음 3년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다음 3년은 도움이 될 듯 말 듯 다가서고, 그다음 3년은 확실히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회장은 “처음엔 이익을 위해 접근했어도 3년 이상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그런 계산은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저 사람이 좋아 만나고, 그러다 보니 돕고, 결국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3년을 세 번, 9년을 쏟을 필요는 없다.
깊이 사귀지 못할 때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도 같고, 아무리 애써도 반응이 없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란 길게 봤을 때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면서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도와야 할 일이 생기면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세요. 내가 누군가를 도울 능력이 있어 다행이고,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돼서 좋고, 그럼 깊은 관계가 시작돼서 더욱 좋습니다.”
큰 회사 가서 빌빌대지 마라!
이 회장은 일류기업 대신 작은 회사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했지만, 회사 이름에 기대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일류기업 직원이 갖는 자긍심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출발이 조금 더 유리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금 더 유리한 현실에 안주해 버리면 좋은 출발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출발이 약간 험난해도 노력과 열정을 다 바치면 생각보다 더 큰 보상이 뒤따르는 법이다.
“요즘 젊은 사람을 보면 중소기업에 안 가려고 해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큰 회사 가서 빌빌대며 겨우 모가지 걸쳐 놓느니, 작은 회사 가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자기 인생에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엔 사람이 없어 난리인데 재수, 삼수 해서 대기업 입사하려 다들 난리입니다. 그게 우리나라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명문대 나왔다고 일 잘하고, 못 나왔다고 일 못하는 것 아닙니다. CEO가 돼 사람을 써 보니, 학벌과 스펙에는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일류 사원인지, 아니면 삼류 사원인지는 자신이 결정하지 절대로 회사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 회장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 다녔지만, 업무 현장에서만큼은 일류회사 못지않게 일했다. 그저 그런 회사의 영업사원이라 낙담하며 기가 죽었다면 오늘의 ‘세일즈 왕, 이희구’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회사가 아닌 스스로를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얘기한다. “화려한 직장만 고집할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회사로 눈을 돌려라”고. “대기업의 평범한 직원보다 중소기업의 일류 직원이 되는 것이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고 마음껏 능력을 펼치기에도 좋다”는 것이다.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며 노력 안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죠.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키우세요. 잠재된 자신의 역량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발전시키세요.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이 만든 잣대로 스스로를 규정짓지 마세요. ‘나’라는 브랜드는 내 안의 열정과 헌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희구 회장은 서른세 살에 대웅제약을 그만둔다. 나이 서른에 국내 최연소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라 일찌감치 성공신화를 쓴 뒤 창업을 선언한 것이다. 198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여섯 동생을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기 위해선 장남의 월급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1983년 1월 아파트를 판 8300만원으로 ㈜동부약품을 인수했다. 회사 건물과 땅을 담보로 빚을 냈다. 부친의 유산에는 기대지 않았다고 한다.
골드만삭스도 투자한 지오영
사업가로서 제2의 인생은 순조로웠다. 영업을 하며 겪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했다. 얼마 후 대신약품과 협성약품을 인수했고 우전약품과 병원전문 성창약품을 설립, 인천 지역의 도매업체를 하나로 통합했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 16개 계열사가 한식구가 되기까지 인수합병이라는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2002년 5월 이 회장은 ‘국내 대표 의약품 네트워크’를 기치로 ㈜지오영을 설립했다. 설립 8년 만에 이 제약물류 회사는 매출액 1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지오영의 역동성에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가 2009년 국내 의약품 관련 업체 중 최초로 4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현재 지오영 그룹의 계열사는 ㈜지오영네트웍스, ㈜남산약품, ㈜청십자약품, ㈜경남청십자약품, ㈜강원지오영, ㈜호남지오영, ㈜대전지오영, ㈜변동시장, ㈜익수제약, 네오헬스㈜, ㈜지오엠디코리아, 성창약품㈜, 가야약품㈜, 동부약품㈜, ㈜한국칼캠, ㈜제주지오영 등 16개사에 이른다.
―사업확장을 할 때나, 새 투자를 할 때 어떤 원칙이 있나요.
“대웅제약 시절, 윤영환 회장에게 의사결정 비결을 배웠지요. 그것은 작은 문제를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평행선처럼 보이는 두 개의 선도 길게 늘여 보면 점점 벌어져 나중에는 큰 차이가 나지요. 지금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5년 혹은 10년이 지나면 엄청난 차이가 생길 수 있지요. 매사 일을 확대해 보면서 그 차이를 알아보고 무게를 재는 것이 의사결정의 핵심이지요.”
사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차이가 확실하다면 누구나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것들 사이에서 바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평행선처럼 나란히 서 있지만 크게 확대해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대상의 차이를 가늠하는 것을 ‘무게 달기’라고 부른다. 의사를 결정할 때 마음속으로 무게를 달아 보고, 현재의 미미한 차이가 미래에 어떤 값어치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무게 달기란, 현재의 이익과 미래에 거둘 이익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투자란 현실적인 성과가 중요하지요. 명분만 가지고는 할 수가 없어요. 지금의 투자가 언제 얼마만한 결과로 돌아올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능력이 지금 없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직접 발로 뛰어다닌 현장 경험, 관련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애정 등이 시야를 트게 합니다. 오랜 경험이 쌓여 눈이 떠집니다.”
현재 지오영의 사원 1000명 중 영업직원은 300명 정도다. 이 회장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서인지 동종업계 영업사원보다 몇 곱절 실적이 좋다고 한다. 물론 이 회장의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
―영업사원의 기준이라는 게 따로 있나요.
“보통 영업사원이라면 활달하고 언변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말 잘하고 화려한 사람을 더 경계합니다. 그런 사람은 설득력이 없지요. 말이 어눌해도 정곡을 찌르고 진실하면 성공합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오히려 큰 영업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영업사원 중에 내성적인 사람도 있나요. 의외네요.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데 남다른 성격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왁자지껄하게 설레발치지 말고, 정석으로 설득하라’고 얘기합니다. 세일즈의 핵심은 진실되게, 그리고 핵심을 찌르고, 업무파악에 능한 것입니다. 이 3가지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죠. 외향적인 모습은 처음 영업할 때 도움이 되겠지만 중요한 영업이나 큰 비즈니스를 할 때는 도움이 안됩니다. 상대를 진실하게 설득하는 힘이 중요하지, 분위기 맞추고 요란한 영업은 안됩니다.”
―영업사원 뽑을 때 뭘 중시하나요.
“학과, 전공 불문하고 뽑습니다. 사실 대학시절 성적도 안 봐요. 그저 참고만 하지요. 그것보다 인성이나 기질을 봅니다. 성적은 연구직이 아니면 별 필요가 없더군요.”
―그럼 뭘 보나요.
“30여 년 사람을 상대하니 척 보면 알게 돼요. 일단 성격이 밝은 사람을 뽑습니다. 또 생활관이 뚜렷한 사람을 고릅니다. 흐리멍텅한 사람과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차이가 있지요. 각오가 새로운 사람, 일을 시켰을 때, 소극적으로 답하는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을 뽑습니다. 일단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직원은 거의 이직이 없습니다. 그게 자랑거리입니다.”
CEO처럼 일하고 생각하라
그는 지독한 노력가다. 요즘도 공부하고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차제에 박사과정에 진학할 생각이다. 영업사원 시절부터 야간에는 대학원에 다녔다. 지금까지 이수한 대학원 및 최고 고위자 과정만 6곳에 이른다. 또 사이버 대학교에서 경영학도 배웠다.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못 간 것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자극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보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남들보다 책상에 오래 앉았어요. 사실, 학력 콤플렉스를 느낄 때가 잦았지요. 오히려 그것이 예순이 넘은 나이까지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이 회장은 정치에 잠깐 손을 댄 적이 있다. 지방의회가 발족하던 1991년 인천광역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초대 시의원이 됐다. 그 뒤 무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낙선하고선 정치와 담을 쌓았다.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공천을 준다기에 철석같이 믿었는데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기로 무소속에 나갔다가 떨어졌지요. 그 후 정치하고 손을 끊었는데 잘됐다 싶어요. 솔직히 국회의원 못 한 한(恨) 같은 게 남아있지만, 지금은 나이가 많아 틀렸습니다.”
이 회장은 CEO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라고 충고한다. 어느 조직에나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 이렇게 두 타입이 있다. 업무성과가 좋고 승진이 빠른 사람은 100% 후자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사원일 때 과장의 눈으로 보고, 과장일 때 CEO의 눈으로 일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업무를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하면 무엇이 중요하고 급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 일의 꽁무니만 쫓으면 하는 일이 의미 없고 지겹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가 팀장이라면 혹은 사장이라면 부하직원이 어떻게 할 때 가장 만족할까? 내가 하는 이 업무에서 상급자는 어떤 결과를 기대할까? 내가 상급자라면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하고 생각해 보세요. 상급자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남들보다 앞서 갑니다. 앞서 가기 위해선 남들과 똑같은 눈높이로 봐서는 안 됩니다. 더 높고 넓은 안목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성장은 자신의 눈높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CEO 같은 자세로 일하면 일의 성과가 좋은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훌쩍 성장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나중에 꿈을 이루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국내 최대 의약품 물류그룹 ㈜지오영 이희구(李希九·62) 회장의 말이다. 무일푼으로 상경,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성공신화를 쓴 이 회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6개월간 미친’ 덕분이라고 말한다. 6개월만 미치면 이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현재 지오영은 전국 16개 계열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 전국 도매 거점화를 이뤄 냈다. 2008년 매출액이 6940억원이었으나 2009년 1조3936억원으로 곱절 뛰더니 2010년에는 1조8797억원에 달했다. 제약업계와 의약품 유통업계 처음으로 2조원 매출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 회장은 제약영업계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당시만 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서울약품 계열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겨주기는커녕 불청객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약사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 ‘미쳤더니’ 전국 매출실적 1위를 기록했다. 한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자 초고속 승진을 거듭, 서른 살에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말처럼 ‘미쳐서’ 이뤄낸 결과라면, 제대로 미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기자는 지난 3월 28일 서울 영등포 지오영 본사를 찾아가 세일즈 왕의 성공스토리를 들었다. 제약영업계의 ‘괴물’은 그저 소박해 보였다. 그는 “타고난 세일즈맨이란 없다”고 단언했다.
“학벌이나 스펙은 미래의 성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로 세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방법, 끊임없이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달성해 가는 땀만이 성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그가 들려주는 제약업계 영업 37년의 노하우는 거창한 신화(神話)가 아니라 진솔한 인간학(人間學)이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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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세아양행 영업사원 시절.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희구 회장이다. |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상경계열도 아닌 제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어요. 제약사 영업부는 공부 못한 사람도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 입사원서를 냈지요. 평범한 대학 국문과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보험사와 제약사 영업밖에 없었습니다.”
이 회장은 서울약품 계열사인 아세아양행에 입사했다. 간신히 직장을 구했지만, 입사 연수성적은 꼴찌였다. 게다가 회사는 신생사인 데다 가격 덤핑을 일삼아 약사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했다. 약사들은 대놓고 영업사원을 무시했다. 약사들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니 아무리 좋은 상품이 있어도 팔 수가 없었다.
당시 그가 맡은 영업구역은 서울 관악구 관내 200여개 약국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노량진에서 시작해 장승배기, 봉천동, 신반포를 거치면 하루에 적게는 40곳, 많게는 50곳까지 약국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관악구는 영업사원들의 무덤으로 통하는 기피지역이었다. 워낙 영세한 약국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영업실적은 꼴찌였다. 더는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생각했다.
“약사들이 저를 좋아하긴 했지만 ‘아세아양행에서 왔다’ 하면 인상부터 구겨져요. 약사에게 말도 못 붙이니 약을 팔 수가 있어야지요.”
약국 청소해 주며 신뢰 쌓아
우연히 동네 구멍가게 앞을 지나다 청소용 타월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약국 앞 빈병 박스를 치우고 진열대를 정리했다. 양복을 입은 채로 청소 타월을 들고 약국 구석구석을 닦았다. 약 사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청소만 하고는 후닥닥 가버리니 “별 싱거운 사람 다 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한 약국에서 10~15분간 치우는 ‘청소 순례’를 몇 달간 계속하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약국엔 여자 약사들이 많잖아요. 남자 일손이 필요한데 제가 처리하니 좋게 봐주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도움을 청하더군요.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들어 주고, 망치를 들고 못질해 주고, 형광등도 갈아 끼워 주었지요. 결국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게 하던 약사들이 신규거래를 터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입사 6개월 만에 전국 매출실적 1위를 기록했다. 청소 타월로 약국 청소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하루 평균 약국 2~3개씩 신규거래가 트이더니 두세 달이 되자 대부분의 약국이 그의 약을 사겠다고 했다. 전국 영업사원 300명 중 최고실적을 올리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괴물의 등극
“괴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니까요. 아무도 주목 안 한 꼴찌가 어느 날 갑자기 일등이 되니 괴물 소리를 들을 만했지요.”
실적이 크게 늘자 회사는 영등포로 발령을 냈다.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라는 명령이었다. 가장 어렵다던 관악구를 뚫었는데 영등포는 식은 죽 먹기였다. 보통 입사 후 빨라야 5~6년 뒤에 영업소장이 되는데 그는 1년도 안돼 소장이 됐다. 연수성적 꼴찌에서 영업실적 전국 1위, 영업소장까지, 입사 첫해에 모두 일어난 일이었다.
“제 인생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하나, 일에 미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의약품 유통업계 1위의 저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입사 후 6개월간 죽기 살기로 뛰어다닌 덕분이라고요.”
그는 가끔 지오영의 영업사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6개월만 미쳐라”고.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말고, 정말 일에 목숨을 걸고 6개월간 미쳐 보세요. 6개월만 남들보다 잠자는 시간 줄여 2시간 더 일해 보세요. 잠자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고민해 보세요. 그렇게 열심히 하면 평생이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해 몸값을 올려놓으면 이후에 직장생활이 수월해집니다.”
그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운 날엔 더워서, 추운 날엔 추워서 거래처 가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노닥거릴 틈만 노린다”고 했다. 그는 6개월 미친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일에 한번 미쳐 보고 나니 세상과 일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어요. 세상에는 쉬운 일도 없지만 덤벼들면 이루지 못할 일도 없다는 자신감, 그전에는 모르던 일의 재미, 성과를 내본 사람만이 갖게 되는 도전의식,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연애와 영업의 공통점
협상 테이블에 두 사람이 있다. 으레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는 쪽이 갑(甲), 물건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은 을(乙)이다. 을은 갑에게 매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협상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갑을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이 회장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영업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기보다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갑의 위치에 서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해 먼저 알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거래 약사들의 뒷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약사가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지, 어떤 제약회사 약품을 주로 쓰는지, 도매상은 어디와 거래하는지, 고향과 출신학교, 가족관계까지 파악했다.
“쉽지는 않지만 비즈니스 상대를, 사랑하는 이성처럼 틈날 때마다 생각하고 탐구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짝사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한 정보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래서 누구와 친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게 됩니다. 연애와 영업의 공통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업사원은 만능(萬能)일 필요가 있다. 어떤 고객에게는 호탕하고 활발한 모습으로 접근해야 하고, 어떤 고객에는 세심하고 부드럽게 다가가야 한다. 때론 우직하고 진중해야 하고, 매몰차게 속도를 내야 하며,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스타일이건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대하면 누구나 마음을 열게 돼요. 친화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존심이 세다’고들 하는데, 돈을 벌려면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을 이룰 수만 있다면 고개가 아니라 허리마저 90도로 꺾고 목표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건 자존심이 아닙니다. 사업이 뭔지를 아는 사람의 생활자세입니다.”
영업 초년 시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부탁하는 일은 ‘영업 달인’에게도 고역(苦役)이었다. 거래처 약사들에게 형님, 누님처럼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실제 그의 누나와 매형이 약사다) 혹시라도 잘못해 약사에게 혼이라도 나면, 누나와 형에게 호된 질책을 들었다고 생각하니 영업일이 한결 쉬워졌다. 영업을 연애와 같이 생각한 덕분이었다.
혼자 앞서 나가는 것은 下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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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거창 대성고 시절의 이희구 회장. |
이 회장은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웅제약은 품질이 좋고 인지도가 높아 영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입사 후 처음엔 동료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봐란 듯 실적으로 보답했다. 입사 두 달 만에 전국 1위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리고 서른 살 나이로 ‘국내 최연소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영업실적 면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이뤄내자 대웅제약 윤영환(尹泳煥) 회장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론,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고속 승진을 하고 회사 실력자가 되어 가는데 신경 쓰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회사 내 동료의 지지와 호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부서의 장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갖고자 노력했다. 먼저 다가가 “○○○ 부장님, 수고가 많으시죠. 애쓰시는 덕분에 회사가 잘 돌아갑니다”, “△△△ 과장님, 좋은 기획이네요. 덕분에 영업하기 편해졌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잘한 일이 있으면 먼저 찾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로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엄두도 못 낼 만큼 혼자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을 함께 끌고 나가면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에 매진하다가 가끔은 한 번씩 주위를 둘러보세요. 나 혼자 너무 앞서는 것은 아닌지, 의욕이 지나쳐 주위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비즈니스는 사람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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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제약 도매상 대회에 참석한 이희구 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주)지오영은 매출액 2조원 달성을 앞두고 있다. |
그와 함께 거래처를 방문해 본 직원들이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떻게 거리낌 없이 약국 조제실에 드나들 수 있는지, 구멍가게 같은 작은 약국 사정에도 밝은지, 약사들의 경조사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챙기는지 감탄했다.
“필요할 때만 만나는 사이였다면 그런 깊은 관계는 가능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비즈니스 관계가 없을 때도 인간적 교류를 계속해 왔기에 신뢰관계를 가질 수 있었지요.”
이런 일도 있었다. 신규 거래처 확장회의 도중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경기도 용인 나환자촌에 약국이 크고 지급상태도 양호한데 세일즈맨이 도통 가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과 한 궤짝을 들고 당장 달려갔다. 자신을 ‘대웅제약 강남영업소장 이희구’라고 소개하고선 약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약사 역시 한센병 환자였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 회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평생 처음 일반인과 악수한 것이었다.
“이후 모든 거래가 타결됐습니다. 다음날부터 용인 나환자촌에 우리 회사 약품이 들어갔어요. 용인에서 거래가 시작되면서 다른 나환자촌에서도 우리 회사 물건을 쓰게 되어 매출이 크게 올랐지요. 지금도 나환자 거주지에서 대웅제약 물건을 먼저 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약국 확장공사 직접 도와
그와 거래하는 약국 중에는 더러 건물을 확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어느 약사가 “확장공사를 하는데 닷새나 걸려 큰일”이라는 넋두리를 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일처럼 인부를 설득, “주말을 끼고 이틀 정도만 문을 닫으면 공사를 끝낼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그는 인부들과 이틀 밤을 새워 가며 땀을 흘렸다. 물론 정해진 날에 약국은 문을 열었다.
“영업사원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업사원 업무의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제 거래처의 일은 제 일이라 여겼고, 제 능력이 되는 한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요.”
약국이 확장 개업한 뒤 덩달아 그의 영업매출도 올랐다. “실적이 오른 것보다 제가 고객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고 했다.
“그냥 친한 관계, 호감을 가진 관계를 넘어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을 잘 돕는 특징이 있지요. 영업할 때 거래처 문 앞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용건만 말하는 정도로 일해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좀 더 잘하는 사람은 약국 조제실까지 들어가 깊은 대화를 나누지요. 그 차이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 관계인가에 달렸다고 봅니다.”
그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3·3·3 법칙’을 지인들에게 곧잘 이야기한다. 3·3·3 법칙이란, 처음 3년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다음 3년은 도움이 될 듯 말 듯 다가서고, 그다음 3년은 확실히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회장은 “처음엔 이익을 위해 접근했어도 3년 이상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그런 계산은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저 사람이 좋아 만나고, 그러다 보니 돕고, 결국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3년을 세 번, 9년을 쏟을 필요는 없다.
깊이 사귀지 못할 때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도 같고, 아무리 애써도 반응이 없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란 길게 봤을 때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면서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도와야 할 일이 생기면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세요. 내가 누군가를 도울 능력이 있어 다행이고,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돼서 좋고, 그럼 깊은 관계가 시작돼서 더욱 좋습니다.”
큰 회사 가서 빌빌대지 마라!
이 회장은 일류기업 대신 작은 회사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했지만, 회사 이름에 기대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일류기업 직원이 갖는 자긍심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출발이 조금 더 유리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금 더 유리한 현실에 안주해 버리면 좋은 출발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출발이 약간 험난해도 노력과 열정을 다 바치면 생각보다 더 큰 보상이 뒤따르는 법이다.
“요즘 젊은 사람을 보면 중소기업에 안 가려고 해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큰 회사 가서 빌빌대며 겨우 모가지 걸쳐 놓느니, 작은 회사 가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자기 인생에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엔 사람이 없어 난리인데 재수, 삼수 해서 대기업 입사하려 다들 난리입니다. 그게 우리나라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명문대 나왔다고 일 잘하고, 못 나왔다고 일 못하는 것 아닙니다. CEO가 돼 사람을 써 보니, 학벌과 스펙에는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일류 사원인지, 아니면 삼류 사원인지는 자신이 결정하지 절대로 회사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 회장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 다녔지만, 업무 현장에서만큼은 일류회사 못지않게 일했다. 그저 그런 회사의 영업사원이라 낙담하며 기가 죽었다면 오늘의 ‘세일즈 왕, 이희구’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회사가 아닌 스스로를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얘기한다. “화려한 직장만 고집할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회사로 눈을 돌려라”고. “대기업의 평범한 직원보다 중소기업의 일류 직원이 되는 것이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고 마음껏 능력을 펼치기에도 좋다”는 것이다.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며 노력 안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죠.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키우세요. 잠재된 자신의 역량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발전시키세요.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이 만든 잣대로 스스로를 규정짓지 마세요. ‘나’라는 브랜드는 내 안의 열정과 헌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희구 회장은 서른세 살에 대웅제약을 그만둔다. 나이 서른에 국내 최연소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라 일찌감치 성공신화를 쓴 뒤 창업을 선언한 것이다. 198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여섯 동생을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기 위해선 장남의 월급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1983년 1월 아파트를 판 8300만원으로 ㈜동부약품을 인수했다. 회사 건물과 땅을 담보로 빚을 냈다. 부친의 유산에는 기대지 않았다고 한다.
골드만삭스도 투자한 지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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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구 회장은 독서광이자 메모광이다. (주)지오영 회장 집무실에 쌓아둔 책들과 그의 사진. |
2002년 5월 이 회장은 ‘국내 대표 의약품 네트워크’를 기치로 ㈜지오영을 설립했다. 설립 8년 만에 이 제약물류 회사는 매출액 1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지오영의 역동성에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가 2009년 국내 의약품 관련 업체 중 최초로 4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현재 지오영 그룹의 계열사는 ㈜지오영네트웍스, ㈜남산약품, ㈜청십자약품, ㈜경남청십자약품, ㈜강원지오영, ㈜호남지오영, ㈜대전지오영, ㈜변동시장, ㈜익수제약, 네오헬스㈜, ㈜지오엠디코리아, 성창약품㈜, 가야약품㈜, 동부약품㈜, ㈜한국칼캠, ㈜제주지오영 등 16개사에 이른다.
―사업확장을 할 때나, 새 투자를 할 때 어떤 원칙이 있나요.
“대웅제약 시절, 윤영환 회장에게 의사결정 비결을 배웠지요. 그것은 작은 문제를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평행선처럼 보이는 두 개의 선도 길게 늘여 보면 점점 벌어져 나중에는 큰 차이가 나지요. 지금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5년 혹은 10년이 지나면 엄청난 차이가 생길 수 있지요. 매사 일을 확대해 보면서 그 차이를 알아보고 무게를 재는 것이 의사결정의 핵심이지요.”
사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차이가 확실하다면 누구나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것들 사이에서 바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평행선처럼 나란히 서 있지만 크게 확대해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대상의 차이를 가늠하는 것을 ‘무게 달기’라고 부른다. 의사를 결정할 때 마음속으로 무게를 달아 보고, 현재의 미미한 차이가 미래에 어떤 값어치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무게 달기란, 현재의 이익과 미래에 거둘 이익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투자란 현실적인 성과가 중요하지요. 명분만 가지고는 할 수가 없어요. 지금의 투자가 언제 얼마만한 결과로 돌아올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능력이 지금 없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직접 발로 뛰어다닌 현장 경험, 관련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애정 등이 시야를 트게 합니다. 오랜 경험이 쌓여 눈이 떠집니다.”
현재 지오영의 사원 1000명 중 영업직원은 300명 정도다. 이 회장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서인지 동종업계 영업사원보다 몇 곱절 실적이 좋다고 한다. 물론 이 회장의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
―영업사원의 기준이라는 게 따로 있나요.
“보통 영업사원이라면 활달하고 언변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말 잘하고 화려한 사람을 더 경계합니다. 그런 사람은 설득력이 없지요. 말이 어눌해도 정곡을 찌르고 진실하면 성공합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오히려 큰 영업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영업사원 중에 내성적인 사람도 있나요. 의외네요.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데 남다른 성격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왁자지껄하게 설레발치지 말고, 정석으로 설득하라’고 얘기합니다. 세일즈의 핵심은 진실되게, 그리고 핵심을 찌르고, 업무파악에 능한 것입니다. 이 3가지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죠. 외향적인 모습은 처음 영업할 때 도움이 되겠지만 중요한 영업이나 큰 비즈니스를 할 때는 도움이 안됩니다. 상대를 진실하게 설득하는 힘이 중요하지, 분위기 맞추고 요란한 영업은 안됩니다.”
―영업사원 뽑을 때 뭘 중시하나요.
“학과, 전공 불문하고 뽑습니다. 사실 대학시절 성적도 안 봐요. 그저 참고만 하지요. 그것보다 인성이나 기질을 봅니다. 성적은 연구직이 아니면 별 필요가 없더군요.”
―그럼 뭘 보나요.
“30여 년 사람을 상대하니 척 보면 알게 돼요. 일단 성격이 밝은 사람을 뽑습니다. 또 생활관이 뚜렷한 사람을 고릅니다. 흐리멍텅한 사람과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차이가 있지요. 각오가 새로운 사람, 일을 시켰을 때, 소극적으로 답하는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을 뽑습니다. 일단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직원은 거의 이직이 없습니다. 그게 자랑거리입니다.”
CEO처럼 일하고 생각하라
그는 지독한 노력가다. 요즘도 공부하고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차제에 박사과정에 진학할 생각이다. 영업사원 시절부터 야간에는 대학원에 다녔다. 지금까지 이수한 대학원 및 최고 고위자 과정만 6곳에 이른다. 또 사이버 대학교에서 경영학도 배웠다.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못 간 것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자극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보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남들보다 책상에 오래 앉았어요. 사실, 학력 콤플렉스를 느낄 때가 잦았지요. 오히려 그것이 예순이 넘은 나이까지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이 회장은 정치에 잠깐 손을 댄 적이 있다. 지방의회가 발족하던 1991년 인천광역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초대 시의원이 됐다. 그 뒤 무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낙선하고선 정치와 담을 쌓았다.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공천을 준다기에 철석같이 믿었는데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기로 무소속에 나갔다가 떨어졌지요. 그 후 정치하고 손을 끊었는데 잘됐다 싶어요. 솔직히 국회의원 못 한 한(恨) 같은 게 남아있지만, 지금은 나이가 많아 틀렸습니다.”
이 회장은 CEO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라고 충고한다. 어느 조직에나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 이렇게 두 타입이 있다. 업무성과가 좋고 승진이 빠른 사람은 100% 후자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사원일 때 과장의 눈으로 보고, 과장일 때 CEO의 눈으로 일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업무를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하면 무엇이 중요하고 급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 일의 꽁무니만 쫓으면 하는 일이 의미 없고 지겹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가 팀장이라면 혹은 사장이라면 부하직원이 어떻게 할 때 가장 만족할까? 내가 하는 이 업무에서 상급자는 어떤 결과를 기대할까? 내가 상급자라면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하고 생각해 보세요. 상급자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남들보다 앞서 갑니다. 앞서 가기 위해선 남들과 똑같은 눈높이로 봐서는 안 됩니다. 더 높고 넓은 안목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성장은 자신의 눈높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CEO 같은 자세로 일하면 일의 성과가 좋은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훌쩍 성장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나중에 꿈을 이루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