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만4000여 회원의 국내 최대 학술·친목 단체, 창립 60주년 맞아 토목인의 위상 정립하는
다양한 기념행사 준비 중
⊙ 수교 이전 중동에 진출한 토목인들은 외화 획득의 첨병이자 민간외교관으로 활동
⊙ 세계는 우주 개발 전쟁 중,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달 복제토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달 콘크리트 공법까지 개발
⊙ 미국토목학회에 우주건설위원회가 있다면 대한토목학회에는 ‘극한우주건설위원회’ 있어
이태식
⊙ 1953년생.
⊙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메디슨) 건설경영 석·박사.
⊙ BK21 건설기술 분야 사업단장, 한국건설지도자포럼 공동대표, 한국건설관리학회 회장,
한국구매조달학회 회장, 한국철도학회 회장 역임.
⊙ 現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미국토목학회(ASCE) 석학회원, 한국공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
한국건설문화원 공동대표.
⊙ 저서 : 《과학기술자의 윤리》 《공학법제》 《엔지니어의 윤리학》 등.
⊙ 상훈 :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대통령 표창) 등 다수.
다양한 기념행사 준비 중
⊙ 수교 이전 중동에 진출한 토목인들은 외화 획득의 첨병이자 민간외교관으로 활동
⊙ 세계는 우주 개발 전쟁 중,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달 복제토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달 콘크리트 공법까지 개발
⊙ 미국토목학회에 우주건설위원회가 있다면 대한토목학회에는 ‘극한우주건설위원회’ 있어
이태식
⊙ 1953년생.
⊙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메디슨) 건설경영 석·박사.
⊙ BK21 건설기술 분야 사업단장, 한국건설지도자포럼 공동대표, 한국건설관리학회 회장,
한국구매조달학회 회장, 한국철도학회 회장 역임.
⊙ 現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미국토목학회(ASCE) 석학회원, 한국공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
한국건설문화원 공동대표.
⊙ 저서 : 《과학기술자의 윤리》 《공학법제》 《엔지니어의 윤리학》 등.
⊙ 상훈 :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대통령 표창) 등 다수.
대한토목학회는 2만4000여 명의 토목기술인을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학술·친목 단체다. 이 단체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전후(戰後) 복구와 국가 재건을 목적으로 내무부 토목국이 중심이 되어 결성됐다.
이후 고속도로와 항만, 댐과 발전소 등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근간이 된 사회 인프라 시설 건설을 주도했다. 세계 1,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0년대 토목인들은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한편 놀라운 적응력과 친화력으로 민간외교관 역할까지 수행했다. 전후 황폐화된 조국과 낯선 열사의 땅에서 흘린 이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과 근면함으로 한국을 토목 강국으로 만든 배경에 대한토목학회가 있다. 토목인들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정책적으로 독려해 온 이 단체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지난 1월 1일 임기 1년의 새 수장에 취임한 이태식(李泰植) 대한토목학회장을 서울 오금동 토목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해인 만큼 토목인들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회 사무실에는 역대 회장을 지낸 42명의 토목인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안경모(安京模·16대) 전 교통부 장관, 최종완(崔種浣·20대) 전 건설부 장관, 정명식(丁明植·24대) 전 포항제철 사장, 선우중호(鮮于仲皓·31대) 전 서울대 총장, 김수삼(金修三·35~36대) 전 한양대 부총장, 곽결호(郭決鎬·40대) 전 환경부 장관 등이 눈에 띄었다.
‘토목=노가다’라는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역대 회장 중 대학총장과 공기업 CEO, 정부부처 수장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가 많아 놀랐다. 올해 43대 수장에 오른 이태식 회장은 “토목은 지구를 조각하는 종합예술”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분들은 토목공학을 제왕학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왕들이 하는 가장 큰일이 치산치수(治山治水)였기 때문이죠. 여기서 치산은 국토 개발을 의미하고, 치수는 물의 자원화를 말하죠. 제가 생각하는 토목공학은 오행(五行)의 학문입니다. 오행에서 토목(土木)은 단순히 ‘흙과 나무’가 아니죠. 오행에서 ‘토’는 지구를, ‘목’은 인공·자연 시설물을 뜻합니다. 고로 토목은 지구를 조각하는 일이며, 우주 전체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개발연대의 상징성 탓인지 토목이라고 하면 ‘노가다’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일본에서는 ‘노가다’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쁜 말이지만 건설은 리스크 부담이 큰 벤처 사업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표현이기도 하죠. 자연과 싸우는 도전정신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사람이 편하게 살게 하는 실험정신이 발현되는 기술이 토목이니까요.”
이 회장은 부정적 표현에 담긴 뜻을 긍정적으로 끌어낼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많은 이가 토목을 ‘노가다’로 인식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건설산업 인력 200만명 중 140만명이 기능인입니다. 나머지 60만명이 기술협회에 등록된 기술인이죠. ‘노가다’라는 말은 기술인보다 기능인 이미지가 대두되면서 나온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능인이건 기술인이건 한국 경제 발전에 이들이 공헌한 부분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크죠. 건설산업이 좋은 인력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1, 2차 세계 오일쇼크에도 대한민국은 오히려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경제개발의 주역인 정주영(鄭周永), 김우중(金宇中), 최원석(崔元碩) 등도 전공은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토목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중 정주영 회장의 경우 1997년 토목학회 명예회원이 됐다. 정 회장은 토목학회 회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죽을 때까지 명예회원증을 책상 맨 앞에 놓고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해외에 가면 현지인으로 산 것이 경쟁력
오늘날 한국의 토목 기술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선도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등 플랜트 분야에서는 시공에서부터 유지 관리까지 종합서비스가 가능한 기술을 지니고 있어 독보적이다. 짧은 시간 한국이 세계 최고의 토목 기술을 보유하게 된 비결을 그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으로 요약했다.
첫째, 전후 복구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건설 분야에 투신했다. 서울대와 한양대의 경우 토목과ㆍ건축과ㆍ광산과가 가장 먼저 생겼고, 이후 오랫동안 공대 내 리딩그룹으로 각광받았다. 훗날 토목과 출신이 공기업 사장이 되고 과기부 장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산업이 아무것도 없던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경제발전을 견인한 것은 건설산업이었다.
둘째, 토목은 기계, 전기, 건축, 중공업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산업이다. 토목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기계, 전기, 건축, 중공업의 발전까지 견인했다. 한국의 산업 발전을 선도해 온 리딩그룹으로 달려온 것이다.
셋째, 토목은 우리 국민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분야였다. 한국의 토목인들은 아프리카에 가면 흑인이 되고, 중동에 가면 더운 낮에 쉬고 시원한 밤에 일을 할 정도로 현지 적응 능력이 뛰어났다. 한국 근로자들은 미국이나 일본 근로자들처럼 현지인과 따로 놀지 않고 그 나라에 동화됐다. 일종의 생존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 청년들의 낮은 문맹률과 군인 정신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으로 꼽혔다. 젊은 토목인들은 ‘하면 된다’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중동 건설 현장에 있던 근로자들은 모두 애국자이자 외교관이었다.
―토목인들에게는 중동 건설 붐이 일었던 1970~80년대가 황금기였겠네요.
“그 시기 토목인들에게 중동은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외교관이 아니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던 시절이라 보통 사람으로서 중동 건설 현장은 해외문물을 깨치는 좋은 통로이자 교육의 장이었죠. 중동에 갔다가 현지에 남아 무역이나 농사를 지어 성공한 사람도 꽤 됩니다. 제가 아는 토목인 중에는 현지에서 건설 관련 사업을 하며 국내 건설업체의 수주에 힘을 실어주는 분도 있어요.”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근로자들에 한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우대 정책을 펴던 시절이라 기능공들에게 중동은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최상의 일터였다. 중동 근무 1년 만에 내 집을 장만하는 이들도 많았고, 사업 기반을 다진 이도 상당수였다. 요즘도 개인택시를 하는 기사 중에는 중동에서 번 돈으로 생활 기반을 다졌다고 말하는 이가 제법 된다.
―국내에 외화가 넘치던 시절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공사를 수주하면 선급금이라는 것이 있어서 공사대금의 10~20%를 먼저 받았습니다. 그 돈을 한국에 풀면 외화 가동률이 높아져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니까 재경부에서 못 풀게 했죠.”
1970년대만 해도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그대로 한국에 들여올 수 있었다. 현지에서 쓰고 남은 잔금만 가져올 수 있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가치가 컸다. 이태식 회장은 “2003년까지만 해도 토목은 해외 수출에서 전자나 기계보다 비중이 높았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의 시설물에 토목인들의 흔적 새길 터
―우리 손으로 건설한 시설물 중 지금도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 있습니까.
“많지요. 사막을 낙원으로 만든 리비아 대수로, 말레이시아의 명소가 된 페낭대교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대만의 랜드마크가 된 101빌딩 등에는 지금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근에 건설한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도 마찬가지고요. 이 밖에 도로와 댐은 물론 고속철도와 각종 플랜트 시설도 자랑할 만하지요.”
그는 “세계 곳곳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시설물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을 건설한 토목인들을 기억할 장치가 없어 안타까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는 삼청터널과 음성-제천 간 철도와 제주항만을 건설한 토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시설물 건설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요. 아버지 생존 당시 이야기로 들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흔적은 없고 시설물만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셈이죠. 저는 위대한 시설물은 후대가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건설에 참여한 이들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들이 존경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엔지니어 강국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술자들의 흔적을 어떻게 남기겠다는 건가요.
“우선 올해가 토목학회 창립 60주년이니까 우리 손으로 건설한 국내외 시설물 60개를 선정해 건설에 참여한 기술자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발굴할 계획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들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시설물에 부착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메모리얼파크처럼 찾아와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추억할 수 있고, 세계에 한국인의 위대함을 알릴 수 있어 좋을 거예요.”
토목기술인들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사실 그가 최초로 시도하는 일은 아니다. 조선시대 건립된 건축물에 대한 공사일지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 기록물에는 건축 기법에서부터 재료비, 인건비는 물론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 이름까지 등장한다. 이태식 회장은 “조선시대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인 수원성 공사에 대한 기록물을 보면 당시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시대 토목공사는 왕이 직접 관장해 비교적 기록이 세세합니다. 수원성 공사지에는 투입 장비와 재료는 물론 인부들 이름과 처음 일당을 지급한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부들의 경우 3분의 1은 성과 이름이 나오고, 3분의 1은 성만 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성명이 없었던 듯 남남대(남쪽에 있는 큰 남자), 북남소(북쪽에 있는 작은 남자) 등 인디언식 이름으로 표기돼 있지요.”
도로의 폭과 넓이를 그림과 숫자로 나타낸 시방서까지 전해져 온다고 한다. 토목공사에 대한 공사지와 시방서가 그야말로 시대를 읽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蘇東坡도 시인이면서 토목기술자
이 회장이 두 번째로 준비하는 기념사업은 ‘시(詩)와 토목의 만남’이다. 그는 “토목을 주제로 한 시를 시인들에게 청탁해 시집을 엮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시를 통해 토목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분야인지 알리고 싶습니다. 사실 역사 속 인물 중에는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처럼 과학과 예술의 접목을 통해 더욱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들이 많지요. 중국 북송 시대 최고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소동파(蘇東坡)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시인이면서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든 토목기술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거예요. 소동파가 농촌 마을에 저수지를 만들어주자 그곳 주민들이 정성껏 요리한 돼지고기로 보답한 데서 유래한 음식이 동파육입니다.”
이태식 회장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토목인이면서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는 프로급 배우이자 학회 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이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러 가지 물체를 넣어 환상적인 색깔과 무늬를 빚어내는 만화경이 떠올랐다. 그는 다소 엉뚱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실험 정신이 강한 과학자처럼 보였다.
―토목기술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바다 위에 콘크리트 부유체(浮游體)를 띄워 신(新)공간을 창출하는 메가플로트(mega float)나 달에 빌딩을 짓고 기지를 건설하는 우주 개발이 더욱 활성화되겠지요. 미래 토목으로 일컬어지는 이 분야는 미국과 캐나다가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달 복제토와 달 콘크리트를 연구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프로젝트가 가동돼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메가플로트의 경우 제주도 앞바다에 콘크리트 공항을 건설한다는 구체적인 기획안을 2005년 국토해양부에 제출해 전체 860개 과제 중 13위를 차지했다. 그는 “1조5000억원이 드는 프로젝트였는데, 예산이 12위까지만 배정돼 시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달에는 핵융합 발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헬륨3을 비롯해 엄청난 자원이 묻혀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달을 개발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달 개발의 최대 관건은 유인탐사를 위한 기지 건설이다. 2006년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 기지를 2020년 착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지 건설에는 콘크리트가 필수지만 모래와 자갈, 시멘트, 물 등의 재료를 갖고 갈 수는 없다. 1kg의 자원과 장비를 우주선에 실어 달로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5만~10만 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연구 방안이 현지자원활용시스템(In Situ Resource Utilization, ISRU)이다. 이 회장이 이끄는 한양대 연구팀은 2009년 달의 토양과 입자 크기가 유사한 복제토(KOHLS-1)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그 흙으로 ‘물 없는 콘크리트’를 만드는 것까지 성공했다. 달 복제토는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에 이어 한국이 다섯 번째로 개발했다.
달 복제토 NASA에 수출할 계획
―달 복제토는 뭐로 만드나요.
“달에 있는 흙과 성분이 유사한 화산 현무암으로 만들었습니다. 국내에는 화산 현무암이 김포, 화천, 경주, 포항, 제주도 등에 분포하죠. 저희 연구팀은 지질 분석을 통해 경주와 포항의 것이 달 토양과 가장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 지역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달 복제토는 이 지역에서 채취한 화산 현무암을 분쇄기로 분쇄한 후 6가지 크기로 분류되는 체에 걸러 달 토양과 입자 크기가 유사하게 혼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달 토양과 물리적 성질이 같은 복제토를 우리 기술과 재료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양대 연구팀이 만들어낸 이 달 복제토는 제조비용이 저렴해 경쟁력이 크다. 이 회장은 “지난해 NASA에서 6명의 달 토양 전문가들이 방문해 물리적인 특성이 달 토양과 유사한지 검사했는데, 최고 책임자가 한국에서 만든 기계적인 복제토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달 기지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한 미 항공우주국은 여러 가지 실험을 위해 50만 톤의 달 복제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물리적 성질이 같은 달 복제토는 톤당 가격이 1만6000달러이고, 화학적 성질까지 같으면 6만 달러나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 NASA는 달 복제토 50만 톤을 입찰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우리가 만든 복제토를 NASA에 납품할 수 있을 거예요.”
―화학적 성분까지 같은 복제토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건가요.
“지구상의 토양은 산소와 물이 많은 환경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생성된 반면 물이 없는 달 표토는 운석의 충돌로 생성되었습니다. 이후 대기층이 없어 방사능에 노출돼 왔고요. 이런 차이 때문에 달 토양에는 지구에 없는 특수한 성분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 성분과 유사한 화학적 복제토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개발에 성공한 곳이 없지요.”
화학적 성분이 같은 달 복제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고 한다. 한양대 연구팀은 이 과제들을 수행하는 한편 달 복제토에 플라스틱 섬유를 넣고 1600~1800℃의 고온을 가해 접착시키는 일명 ‘물 없는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이 회장은 “지구에서 콘크리트를 굳히는 데 일주일~28일이 걸리지만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달 콘크리트는 단 15분이면 굳는다”고 말했다.
‘물 없는 콘크리트’ 개발은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미국 앨라배마대의 후삼 투탄지 교수가 달의 흙에서 추출한 황을 접착제로 쓰는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이 콘크리트는 지구에서 느끼는 기압의 170배에 해당하는 17메가파스칼의 압력도 견뎌냈다.
한양대 연구팀이 개발한 콘크리트는 강도 면에서 이것만 못하지만 제조가격이 저렴해 실용화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은 “달 복제토나 달 콘크리트는 지구상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달 콘크리트는 시멘트가 아닌 돌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새 집 증후군이나 아토피 피부염을 일으킬 염려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벌써부터 건축자재로 쓰고 싶어하는 건설사가 많지요. 또한 빨리 굳기 때문에 달과 유사한 환경의 극한 지역, 그러니까 북극이나 남극, 혹은 사막이나 해저에 구조물을 건설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한 토목, 열린 토목, 세계 속의 토목으로
한양대 연구팀은 달 콘크리트 개발 후 NASA에 “달에 직경 25m의 콘크리트 공항을 만들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미국에서는 높은 열을 가해 흙을 녹이는 신터링(Sintering) 기술을 적용하려 했는데 한국에서 콘크리트 포장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회장은 “달에 콘크리트 공항을 만들기 위해 콘크리트 로버(Rober·로봇이 장착된 우주 탐사 자동차)를 2단계까지 개발한 상태”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로버는 기존에 개발된 로버와 달리 우주 탐사뿐만 아니라 인력(引力)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이나 화성에서 건설까지 가능한 로봇입니다. 이 로버 개발이 성공하면 우주 개발 계획이 크게 바뀔 겁니다.”
우주 개발은 이제 어느 한 국가가 전담하기보다는 분야별로 나누어 연구한 뒤 공조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달 토양에서 물과 산소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한국은 그 물과 산소를 저장할 저장고 건설을 연구하는 식이다. 한국이 맡은 분야는 그가 이끄는 한양대 연구팀이 전담하고 있다.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태식 회장은 세계 토목학회와 우주학회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40여 편의 전문 학술지 논문, 30여 편의 연구보고서, 250여 편의 국내외학술발표대회 논문 등 쉼 없는 연구 활동 덕분이다. SCI급과 SSCI급 논문만 해도 12편에 이를 정도다. 이러한 연구 업적과 사업 실적이 인정되어 1999년에는 위스콘신대 자랑스런 동창인상을 받았고, 2002년에는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을 수상했다. 토목인으로서 젊은 공학인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진대제(陳大濟)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민화(李珉和) 전 메디슨 대표 등 주로 IT와 바이오 분야 선구자들이 받던 상을 건설 분야에서 수상하자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대한토목학회뿐만 아니라 미국토목회 석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09년과 2010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우주 심포지엄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2009년 말 차기 토목학회장을 뽑는 선거 때에도 일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그는 “NASA 최고 책임자와 함께 초청받은 자리라 낙선할 각오로 다녀왔다”고 말했다.
대한토목학회는 올해 미국토목학회와 공동으로 우주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학회 내에 ‘극한우주건설위원회’를 만들었다. 미국토목학회에는 우주건설위원회가 있다.
대한토목학회 해외 지부도 개설할 계획이다. 토목 선진국인 미국, 유럽, 일본은 한국에 자국의 토목학회 지부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창립 60주년을 맞은 올해 대한토목회가 내건 슬로건은 ‘강한 토목, 열린 토목, 세계 속의 토목’이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토목인들의 위상과 한국 토목의 비전을 얘기할 때는 사뭇 진지해지다가도 우주 개발을 논할 때면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소년처럼 신이 났다. 이 ‘흰머리 소년’은 “아버지 시대에 토목이 지구를 조각하는 일이었다면 우리 시대의 토목은 우주를 조각하는 3D 버전의 종합예술이고, 꿈과 미래를 건설하는 작업”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후 고속도로와 항만, 댐과 발전소 등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근간이 된 사회 인프라 시설 건설을 주도했다. 세계 1,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0년대 토목인들은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한편 놀라운 적응력과 친화력으로 민간외교관 역할까지 수행했다. 전후 황폐화된 조국과 낯선 열사의 땅에서 흘린 이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과 근면함으로 한국을 토목 강국으로 만든 배경에 대한토목학회가 있다. 토목인들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정책적으로 독려해 온 이 단체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지난 1월 1일 임기 1년의 새 수장에 취임한 이태식(李泰植) 대한토목학회장을 서울 오금동 토목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해인 만큼 토목인들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회 사무실에는 역대 회장을 지낸 42명의 토목인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안경모(安京模·16대) 전 교통부 장관, 최종완(崔種浣·20대) 전 건설부 장관, 정명식(丁明植·24대) 전 포항제철 사장, 선우중호(鮮于仲皓·31대) 전 서울대 총장, 김수삼(金修三·35~36대) 전 한양대 부총장, 곽결호(郭決鎬·40대) 전 환경부 장관 등이 눈에 띄었다.
‘토목=노가다’라는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역대 회장 중 대학총장과 공기업 CEO, 정부부처 수장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가 많아 놀랐다. 올해 43대 수장에 오른 이태식 회장은 “토목은 지구를 조각하는 종합예술”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분들은 토목공학을 제왕학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왕들이 하는 가장 큰일이 치산치수(治山治水)였기 때문이죠. 여기서 치산은 국토 개발을 의미하고, 치수는 물의 자원화를 말하죠. 제가 생각하는 토목공학은 오행(五行)의 학문입니다. 오행에서 토목(土木)은 단순히 ‘흙과 나무’가 아니죠. 오행에서 ‘토’는 지구를, ‘목’은 인공·자연 시설물을 뜻합니다. 고로 토목은 지구를 조각하는 일이며, 우주 전체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개발연대의 상징성 탓인지 토목이라고 하면 ‘노가다’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일본에서는 ‘노가다’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쁜 말이지만 건설은 리스크 부담이 큰 벤처 사업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표현이기도 하죠. 자연과 싸우는 도전정신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사람이 편하게 살게 하는 실험정신이 발현되는 기술이 토목이니까요.”
이 회장은 부정적 표현에 담긴 뜻을 긍정적으로 끌어낼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많은 이가 토목을 ‘노가다’로 인식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건설산업 인력 200만명 중 140만명이 기능인입니다. 나머지 60만명이 기술협회에 등록된 기술인이죠. ‘노가다’라는 말은 기술인보다 기능인 이미지가 대두되면서 나온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능인이건 기술인이건 한국 경제 발전에 이들이 공헌한 부분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크죠. 건설산업이 좋은 인력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1, 2차 세계 오일쇼크에도 대한민국은 오히려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경제개발의 주역인 정주영(鄭周永), 김우중(金宇中), 최원석(崔元碩) 등도 전공은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토목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중 정주영 회장의 경우 1997년 토목학회 명예회원이 됐다. 정 회장은 토목학회 회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죽을 때까지 명예회원증을 책상 맨 앞에 놓고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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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목인의 날’(3월 30일) 행사에 참석한 국내외 토목 인사들. 왼쪽 두 번째부터 정명식 전 회장, 장기창 전 회장, 편종근 전 회장, 황정규 전 회장, 일본토목학회 대표, 정경수 전 회장, 대만 대표, 곽결호 전 회장. |
해외에 가면 현지인으로 산 것이 경쟁력
오늘날 한국의 토목 기술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선도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등 플랜트 분야에서는 시공에서부터 유지 관리까지 종합서비스가 가능한 기술을 지니고 있어 독보적이다. 짧은 시간 한국이 세계 최고의 토목 기술을 보유하게 된 비결을 그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으로 요약했다.
첫째, 전후 복구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건설 분야에 투신했다. 서울대와 한양대의 경우 토목과ㆍ건축과ㆍ광산과가 가장 먼저 생겼고, 이후 오랫동안 공대 내 리딩그룹으로 각광받았다. 훗날 토목과 출신이 공기업 사장이 되고 과기부 장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산업이 아무것도 없던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경제발전을 견인한 것은 건설산업이었다.
둘째, 토목은 기계, 전기, 건축, 중공업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산업이다. 토목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기계, 전기, 건축, 중공업의 발전까지 견인했다. 한국의 산업 발전을 선도해 온 리딩그룹으로 달려온 것이다.
셋째, 토목은 우리 국민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분야였다. 한국의 토목인들은 아프리카에 가면 흑인이 되고, 중동에 가면 더운 낮에 쉬고 시원한 밤에 일을 할 정도로 현지 적응 능력이 뛰어났다. 한국 근로자들은 미국이나 일본 근로자들처럼 현지인과 따로 놀지 않고 그 나라에 동화됐다. 일종의 생존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 청년들의 낮은 문맹률과 군인 정신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으로 꼽혔다. 젊은 토목인들은 ‘하면 된다’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중동 건설 현장에 있던 근로자들은 모두 애국자이자 외교관이었다.
―토목인들에게는 중동 건설 붐이 일었던 1970~80년대가 황금기였겠네요.
“그 시기 토목인들에게 중동은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외교관이 아니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던 시절이라 보통 사람으로서 중동 건설 현장은 해외문물을 깨치는 좋은 통로이자 교육의 장이었죠. 중동에 갔다가 현지에 남아 무역이나 농사를 지어 성공한 사람도 꽤 됩니다. 제가 아는 토목인 중에는 현지에서 건설 관련 사업을 하며 국내 건설업체의 수주에 힘을 실어주는 분도 있어요.”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근로자들에 한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우대 정책을 펴던 시절이라 기능공들에게 중동은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최상의 일터였다. 중동 근무 1년 만에 내 집을 장만하는 이들도 많았고, 사업 기반을 다진 이도 상당수였다. 요즘도 개인택시를 하는 기사 중에는 중동에서 번 돈으로 생활 기반을 다졌다고 말하는 이가 제법 된다.
―국내에 외화가 넘치던 시절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공사를 수주하면 선급금이라는 것이 있어서 공사대금의 10~20%를 먼저 받았습니다. 그 돈을 한국에 풀면 외화 가동률이 높아져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니까 재경부에서 못 풀게 했죠.”
1970년대만 해도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그대로 한국에 들여올 수 있었다. 현지에서 쓰고 남은 잔금만 가져올 수 있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가치가 컸다. 이태식 회장은 “2003년까지만 해도 토목은 해외 수출에서 전자나 기계보다 비중이 높았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의 시설물에 토목인들의 흔적 새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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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을 낙원으로 바꿔 놓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 |
“많지요. 사막을 낙원으로 만든 리비아 대수로, 말레이시아의 명소가 된 페낭대교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대만의 랜드마크가 된 101빌딩 등에는 지금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근에 건설한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도 마찬가지고요. 이 밖에 도로와 댐은 물론 고속철도와 각종 플랜트 시설도 자랑할 만하지요.”
그는 “세계 곳곳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시설물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것을 건설한 토목인들을 기억할 장치가 없어 안타까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는 삼청터널과 음성-제천 간 철도와 제주항만을 건설한 토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시설물 건설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요. 아버지 생존 당시 이야기로 들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흔적은 없고 시설물만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셈이죠. 저는 위대한 시설물은 후대가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건설에 참여한 이들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들이 존경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엔지니어 강국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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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물산이 시공, 세계 최고층 빌딩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
“우선 올해가 토목학회 창립 60주년이니까 우리 손으로 건설한 국내외 시설물 60개를 선정해 건설에 참여한 기술자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발굴할 계획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들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시설물에 부착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메모리얼파크처럼 찾아와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추억할 수 있고, 세계에 한국인의 위대함을 알릴 수 있어 좋을 거예요.”
토목기술인들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사실 그가 최초로 시도하는 일은 아니다. 조선시대 건립된 건축물에 대한 공사일지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 기록물에는 건축 기법에서부터 재료비, 인건비는 물론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 이름까지 등장한다. 이태식 회장은 “조선시대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인 수원성 공사에 대한 기록물을 보면 당시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시대 토목공사는 왕이 직접 관장해 비교적 기록이 세세합니다. 수원성 공사지에는 투입 장비와 재료는 물론 인부들 이름과 처음 일당을 지급한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부들의 경우 3분의 1은 성과 이름이 나오고, 3분의 1은 성만 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성명이 없었던 듯 남남대(남쪽에 있는 큰 남자), 북남소(북쪽에 있는 작은 남자) 등 인디언식 이름으로 표기돼 있지요.”
도로의 폭과 넓이를 그림과 숫자로 나타낸 시방서까지 전해져 온다고 한다. 토목공사에 대한 공사지와 시방서가 그야말로 시대를 읽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蘇東坡도 시인이면서 토목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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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
“시를 통해 토목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분야인지 알리고 싶습니다. 사실 역사 속 인물 중에는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처럼 과학과 예술의 접목을 통해 더욱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들이 많지요. 중국 북송 시대 최고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소동파(蘇東坡)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시인이면서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든 토목기술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거예요. 소동파가 농촌 마을에 저수지를 만들어주자 그곳 주민들이 정성껏 요리한 돼지고기로 보답한 데서 유래한 음식이 동파육입니다.”
이태식 회장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토목인이면서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는 프로급 배우이자 학회 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이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러 가지 물체를 넣어 환상적인 색깔과 무늬를 빚어내는 만화경이 떠올랐다. 그는 다소 엉뚱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실험 정신이 강한 과학자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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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의 랜드마크가 된 101빌딩. |
“바다 위에 콘크리트 부유체(浮游體)를 띄워 신(新)공간을 창출하는 메가플로트(mega float)나 달에 빌딩을 짓고 기지를 건설하는 우주 개발이 더욱 활성화되겠지요. 미래 토목으로 일컬어지는 이 분야는 미국과 캐나다가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달 복제토와 달 콘크리트를 연구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프로젝트가 가동돼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메가플로트의 경우 제주도 앞바다에 콘크리트 공항을 건설한다는 구체적인 기획안을 2005년 국토해양부에 제출해 전체 860개 과제 중 13위를 차지했다. 그는 “1조5000억원이 드는 프로젝트였는데, 예산이 12위까지만 배정돼 시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달에는 핵융합 발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헬륨3을 비롯해 엄청난 자원이 묻혀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달을 개발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달 개발의 최대 관건은 유인탐사를 위한 기지 건설이다. 2006년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 기지를 2020년 착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지 건설에는 콘크리트가 필수지만 모래와 자갈, 시멘트, 물 등의 재료를 갖고 갈 수는 없다. 1kg의 자원과 장비를 우주선에 실어 달로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5만~10만 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연구 방안이 현지자원활용시스템(In Situ Resource Utilization, ISRU)이다. 이 회장이 이끄는 한양대 연구팀은 2009년 달의 토양과 입자 크기가 유사한 복제토(KOHLS-1)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그 흙으로 ‘물 없는 콘크리트’를 만드는 것까지 성공했다. 달 복제토는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에 이어 한국이 다섯 번째로 개발했다.
달 복제토 NASA에 수출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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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말레이시아의 페낭대교 |
“달에 있는 흙과 성분이 유사한 화산 현무암으로 만들었습니다. 국내에는 화산 현무암이 김포, 화천, 경주, 포항, 제주도 등에 분포하죠. 저희 연구팀은 지질 분석을 통해 경주와 포항의 것이 달 토양과 가장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 지역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달 복제토는 이 지역에서 채취한 화산 현무암을 분쇄기로 분쇄한 후 6가지 크기로 분류되는 체에 걸러 달 토양과 입자 크기가 유사하게 혼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달 토양과 물리적 성질이 같은 복제토를 우리 기술과 재료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양대 연구팀이 만들어낸 이 달 복제토는 제조비용이 저렴해 경쟁력이 크다. 이 회장은 “지난해 NASA에서 6명의 달 토양 전문가들이 방문해 물리적인 특성이 달 토양과 유사한지 검사했는데, 최고 책임자가 한국에서 만든 기계적인 복제토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달 기지 건설 프로젝트를 발표한 미 항공우주국은 여러 가지 실험을 위해 50만 톤의 달 복제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물리적 성질이 같은 달 복제토는 톤당 가격이 1만6000달러이고, 화학적 성질까지 같으면 6만 달러나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 NASA는 달 복제토 50만 톤을 입찰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우리가 만든 복제토를 NASA에 납품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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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
“지구상의 토양은 산소와 물이 많은 환경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생성된 반면 물이 없는 달 표토는 운석의 충돌로 생성되었습니다. 이후 대기층이 없어 방사능에 노출돼 왔고요. 이런 차이 때문에 달 토양에는 지구에 없는 특수한 성분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 성분과 유사한 화학적 복제토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개발에 성공한 곳이 없지요.”
화학적 성분이 같은 달 복제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고 한다. 한양대 연구팀은 이 과제들을 수행하는 한편 달 복제토에 플라스틱 섬유를 넣고 1600~1800℃의 고온을 가해 접착시키는 일명 ‘물 없는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이 회장은 “지구에서 콘크리트를 굳히는 데 일주일~28일이 걸리지만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달 콘크리트는 단 15분이면 굳는다”고 말했다.
‘물 없는 콘크리트’ 개발은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미국 앨라배마대의 후삼 투탄지 교수가 달의 흙에서 추출한 황을 접착제로 쓰는 콘크리트를 개발했다. 이 콘크리트는 지구에서 느끼는 기압의 170배에 해당하는 17메가파스칼의 압력도 견뎌냈다.
한양대 연구팀이 개발한 콘크리트는 강도 면에서 이것만 못하지만 제조가격이 저렴해 실용화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은 “달 복제토나 달 콘크리트는 지구상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달 콘크리트는 시멘트가 아닌 돌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새 집 증후군이나 아토피 피부염을 일으킬 염려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벌써부터 건축자재로 쓰고 싶어하는 건설사가 많지요. 또한 빨리 굳기 때문에 달과 유사한 환경의 극한 지역, 그러니까 북극이나 남극, 혹은 사막이나 해저에 구조물을 건설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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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2월, 토양 환경이 달과 유사한 하와이 마우나케아(해발 4205m) 화산 분화구에 미 항공우주국(NASA), 캐나다 항공우주국 연구원들이 우주 탐사 관련 각종 장비 실험을 위해 모였다. 이태식 회장은 미래 협력자로 초청되어 한양대 연구팀을 이끌고 이 행사에 참석했다. |
강한 토목, 열린 토목, 세계 속의 토목으로
한양대 연구팀은 달 콘크리트 개발 후 NASA에 “달에 직경 25m의 콘크리트 공항을 만들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미국에서는 높은 열을 가해 흙을 녹이는 신터링(Sintering) 기술을 적용하려 했는데 한국에서 콘크리트 포장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회장은 “달에 콘크리트 공항을 만들기 위해 콘크리트 로버(Rober·로봇이 장착된 우주 탐사 자동차)를 2단계까지 개발한 상태”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로버는 기존에 개발된 로버와 달리 우주 탐사뿐만 아니라 인력(引力)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이나 화성에서 건설까지 가능한 로봇입니다. 이 로버 개발이 성공하면 우주 개발 계획이 크게 바뀔 겁니다.”
우주 개발은 이제 어느 한 국가가 전담하기보다는 분야별로 나누어 연구한 뒤 공조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달 토양에서 물과 산소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한국은 그 물과 산소를 저장할 저장고 건설을 연구하는 식이다. 한국이 맡은 분야는 그가 이끄는 한양대 연구팀이 전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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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한양대 70주년 기념 행사로 ‘다산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국내외 우주 탐사 분야 석학 20명을 초청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가 됐다. |
대한토목학회뿐만 아니라 미국토목회 석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09년과 2010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우주 심포지엄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2009년 말 차기 토목학회장을 뽑는 선거 때에도 일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그는 “NASA 최고 책임자와 함께 초청받은 자리라 낙선할 각오로 다녀왔다”고 말했다.
대한토목학회는 올해 미국토목학회와 공동으로 우주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학회 내에 ‘극한우주건설위원회’를 만들었다. 미국토목학회에는 우주건설위원회가 있다.
대한토목학회 해외 지부도 개설할 계획이다. 토목 선진국인 미국, 유럽, 일본은 한국에 자국의 토목학회 지부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창립 60주년을 맞은 올해 대한토목회가 내건 슬로건은 ‘강한 토목, 열린 토목, 세계 속의 토목’이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토목인들의 위상과 한국 토목의 비전을 얘기할 때는 사뭇 진지해지다가도 우주 개발을 논할 때면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소년처럼 신이 났다. 이 ‘흰머리 소년’은 “아버지 시대에 토목이 지구를 조각하는 일이었다면 우리 시대의 토목은 우주를 조각하는 3D 버전의 종합예술이고, 꿈과 미래를 건설하는 작업”이라며 활짝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