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불교 조계종 종단에서 가장 존경받는 禪僧古愚 큰스님 : 월간조선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던 2010년 12월 초, 고우(古愚) 스님을 만나러 서울 성북동 육화사(六和寺)로 향했다. 5월 초 스님의 처소인 경북 봉화의 금봉암에서 처음 만난 후 7개월 만의 재회다. 육화사는 고우 스님이 법회나 강연을 위해 상경할 때마다 묵는 곳이다.

스님이 ‘우리 집’이라고 말하는 금봉암은 문수산(해발 1206m) 기슭에 자리한 아담한 암자. 계곡을 따라 산사(山寺)로 향하는 길목은 온통 사과밭이다. 햇살이 눈 부신 그 봄, 스님을 찾아가는 길엔 사과 꽃이 눈송이처럼 날렸었다. 이 겨울 도심 사찰 육화사로 가는 길엔 눈발이 사과 꽃처럼 흩날렸다. 스님과는 뭔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듯하다.

고우 스님은 불교 조계종 종단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승(禪僧)이다. 2008년 대종사(大宗師·세속 나이 60세 이상, 승랍 40년 이상의 뛰어난 승려) 품계를 받은 원로 스님이기도 하다. 세상을 보는 지혜와 통찰력이 뛰어나고, 부처의 가르침을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내 이에 감화한 승려와 신도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1937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25세 때 폐결핵을 앓다 김천 청암사에서 출가했고, 이후 40대 때 봉암사와 축서사 주지를 잠깐씩 지냈을 뿐 어느 문중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 교구 본사 주지는 물론 종단 고위직을 맡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이가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모여든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조계사에서 갖는 금강경(金剛經) 강의에는 200여 명의 재가불자(在家佛子)들이 참석하고, 매월 넷째 주 목요일 금봉암에서 열리는 법회에는 100여 명의 신도들이 찾아든다.

새해를 맞으며 첩첩산중 산사에서 마음 밭을 일구고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불교계 큰 어른, 고우 스님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공생선원 선원장 무각(無覺) 스님이 동석했다. 무각 스님은 고우 스님을 “연세가 지긋하신데 불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분”이라며 “스님을 통해 세상을 보는 혜안(慧眼)을 키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틈을 보이니 연평도 포격 같은 공격을 받는 것”

―2010년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습니다.

“내부적으로 결속되지 않고 틈을 보이니 공격을 받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틈이란 이념·세대·계층·노사(勞使) 간의 갈등이 빚어내는 다툼과 분열이지요. 갈등은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극렬히 대립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진보나 보수는 그 나라와 그 나라 국민이 잘되게 하려고 만든 제도(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이 제도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오해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요. 그 싸움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고 사회가 혼란을 겪고 있으며 경제발전이 더딘 겁니다. 북한이 비집고 들어올 약점을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격이지요.”

북한에 대응하기에 앞서 공격의 기회를 준 것을 반성하고 내부 결속부터 다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스님은 “더욱 심각한 것은 진보와 보수를 통해 개인의 욕망을 성취하려고 하는 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치인들은 진보와 보수가 수단인지 목표인지도 분간하지 못할뿐더러 한 발짝 더 나가 진보와 보수를 이용해 자기 욕망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싸움이 끝이 없는 거예요.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과정에 생기는 다툼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국민을 위한 투쟁인 양 떠드는 정치인을 보면 ‘나쁜 놈’이라는 욕이 절로 나옵니다.”

스님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론하고 화합하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으며, 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다”며 부처와 관련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인도의 라즈기르에 있는 영축산(그라드라)은 불교 8대 성지 중 하나다. 고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 시절 부처는 이곳에서 1만2000명의 대중을 앞에 두고 법화경(法華經)과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설법했다.

부처가 영축산에 머물고 있을 당시 마갈타국의 국왕은 아세사였고, 수상은 바사카라였다. 그 무렵 아세사는 바지국의 수도 바이샬리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지국은 그때 이미 대의정치를 실현한 북인도 최초의 공화국이다. 수도 바이샬리는 고대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로 번창하였던 곳이다. 세계 최대 불교 대학으로 꼽히는 나란다 사원이 위치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바이샬리 점령을 꿈꿔온 아세사는 어느 날 바사카라에게 “영축산에 있는 부처를 찾아가 우리가 바이샬리를 침공하면 승리할 수 있는지 여쭤봐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바사카라는 그 길로 부처를 찾아가 국왕의 말을 전했다.

부처는 바사카라는 상대도 하지 않고 시좌 아란에게 “바이샬리가 지금도 공화제를 잘하고 있느냐, 무슨 일이 생기면 신하들이 모여 서로 의논하고 토론해서 결론을 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란은 지체 없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부처는 “서로 의논해서 민주적으로 정치를 하는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승산이 없으니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었다. 스님의 이야기다.

“공자(孔子)에게 자공(子貢)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잘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식량(경제), 군비(군사력),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지요. 또한 이 세 가지 요건 중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처는 이 세 가지보다 더 근원적인 핵심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공화제를 잘하고 있으면 경제도 잘되고 군비도 튼튼할 것이며 군신(君臣) 간이라든지 국민과 위정자(爲政者) 간 소통이 잘돼 일치단결하게 되므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죠.”

조계사에서 열린 선원장 초청 대법회에서 고우 스님이 법문하고 있다.

“우리 공무원부터 할 일이 뭔지 몰라”

부처는 국방이 군비나 경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정신, 곧 국가와 사회와 가정을 안정화시키는 정신이 바로 서 있으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한다. 스님은 그 정신으로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을 꼽았다.

“우리 사회에 대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점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배제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해서 과연 우리가 잘살 수 있느냐, 절대 잘살 수 없습니다.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죠. 그러다 보면 부정부패가 나오고, 계층 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겁니다.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 전체가 잘살려면 공공의 이익을 전제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스님은 “대통령부터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 같다”며 “정치, 경제, 법조, 언론, 종교 등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오피니언 리더들조차 이기주의화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중에서도 정치인이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치인들은 이제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서 발화돼 사회 각 분야로 번지는 분열과 다툼 때문에 한국의 갈등지수가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갈등으로 인해 1년에 없어지는 돈이 GDP의 27%라고 하더군요. GDP 1000조원 중 27%면 270조원으로, 1년 예산(2009년 기준 300조원)과 거의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 돈으로 우리가 1년에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 각 분야의 갈등 봉합에 쓰는 돈으로 복지도 하고, 6ㆍ25 때 신세진 나라 중 가난한 나라를 도와 은혜를 갚을 수도 있습니다.”

스님은 “공무원들도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결여돼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암자에 있으면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이 인사하러 찾아옵니다. 그분들께 나는 ‘공무원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아느냐’고 묻곤 합니다. ‘공무원’(公務員)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쓰는 사람 아닙니까. 우리 공무원의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더군요. 그냥 생존 수단으로 공무원의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선진국과 거리가 있습니다.”

―선진국은 우리와 달리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럼요,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면에서 이미 선진국이지만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면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가 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느끼겠더군요.”

“파리에서 일주일 보내니 왜 프랑스가 선진국인지 알게 돼”

수해 전 스님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주일 동안 머문 적이 있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 스님은 ‘선진국이라면서 서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네’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파리 시내 교통질서나 청결 상태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님이 현지 안내를 맡은 한 미술 유학생에게 “선진국이라는 게 별 차이 없네”라고 말하자 이 유학생은 피식 웃었다. 그러곤 “스님께서는 세속인과 생각하는 깊이가 다르니 아마 일주일만 계시면 이곳이 선진국이라는 게 눈에 보이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도로가 잘 닦여 있고,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니 말이다. 스님 역시 한국인이라 프랑스의 도로망과 한국을 비교하며 새삼 자부심을 느꼈다. 동시에 파리 시내 교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짜증을 냈다.

“퇴근 무렵이 되니까 파리 시내 교통체증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좁은 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밀렸어요. 왕복 4차선 도로의 차선 하나씩을 줄여 화단으로 꾸민 후부터 교통체증이 심해졌다고 하더군요. 답답한 마음에 제가 ‘저거(화단) 확 뜯어내 버리면 소통이 시원하게 잘될 텐데’라고 불평하니 가이드를 맡은 유학생이 ‘픽’ 웃더군요. 왜 웃는지는 스스로 깨달으라는 듯 가르쳐주지 않습디다.”

며칠 후 그 유학생은 스님에게 파리 동쪽 바르비종에 있는 밀레의 아틀리에에 가자고 제안했다. 바르비종은 유럽 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 밀레가 명작 <이삭줍기>와 <만종>을 그린 곳이다. 스님은 바르비종에 도착하는 순간 밀레의 그림 속 배경과 똑같은 마을 풍경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림이 그려진 지 10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마을 풍경이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제가 ‘어, 그림하고 똑같네, 들녘 너머 성당까지 그대로네’라며 감탄했더니 그 유학생은 또다시 웃기만 하더군요.”

바르비종에 갔다 파리로 돌아오는 도중 유학생이 “잠시 쉬어 가자”며 차를 세웠다. 그러곤 차에서 내려 멀리 보이는 파리 시내를 가리키며 “스님, 저기 파리가 보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꽤 먼 거리임에도 파리 시내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였다. 스님은 “와, 맑네! 도심인데도 대기가 참 깨끗하네”라고 말하자 그 유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바로 저겁니다. 스님께서는 화단 때문에 차가 막힌다고 불평하셨죠. 파리 시민들은 그 화단 덕분에 많은 이가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차가 막혀도 불평불만 없이 기다리죠.”

“요즘은 나한테 公心을 묻는 사람도 없어”

파리에서 생활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자 처음과 달리 서울과 파리의 극명한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던 파리의 교통질서와 청결 상태가 그 이면(裏面)을 알고 나니 엄청 다르게 보였다”고 스님은 말했다.

“서울과 파리의 차이는 타율이냐 자율이냐의 차이더군요. 서울의 교통질서와 청결 상태는 경찰이나 거리에 설치된 CCTV 덕분에 유지되는 반면 파리는 이런 감시 기능 없이 시민의 자율적인 참여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서울 시민들의 경우 초등학생 수준이라면 파리 시민들은 대학생 수준이었어요.”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는 게 우리 민족의 장점 아니었던가요.

“역사적으로 고려시대까지는 분명 공동체 의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조 500년을 거치며 희미해졌죠.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고 사색당파가 만들어지면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이익이 극대화된 결과입니다.”

스님은 “일제치하와 남북분단 및 6·25를 거치며 공공의 이익에 대한 국민 의식이 결여됐고, 민주화 이후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면서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 결여는 가정에까지 침투해 가족 구성원까지 분열시키고 있다고도 했다. 가정에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돼 전통적인 가족사회가 붕괴되고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 내에서도 개인의 이익이 극대화되다 보니 부부는 물론 부모 자식 간에도 분열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몰라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도 많고요. 제가 알기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과 이혼율이 가장 높습니다. 북한은 우리 사회의 분열을 극대화하고자 공격했을 것입니다. 분열을 봉합하고, 북한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을 회복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타파하는 길뿐입니다. 대통령은 물론 교육, 정치, 언론, 법조 등 우리 사회를 리드하는 계층부터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이 하루빨리 회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 나,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모두가 추구하는 목적은 하나입니다. 국가와 국민이 잘되고, 나아가 인류가 잘되는 것이죠. 이처럼 분명한 목적을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먼저 인식하고 국민들에게 각성시켜 줘야 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목적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투쟁 방법이 달라질 겁니다.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싸울 것이기 때문이죠.”

스님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공심(公心)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불교에서도 이 말을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출가 후 저는 공심이라는 말을 노스님과 선배 스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공심은 불가의 기본 정신이자 화두지요. 제가 공심 공심 하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 스님들이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곤 했는데, 요즘에는 아예 묻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님은 “승려들조차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어느 분야든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면 사회가 역동적이고 건강하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문수산 기슭에 자리한 금봉암. 고우 스님은 이곳에서 홀로 수행, 깨달음의 길을 가고 있다.

“가르침을 얻으며 싫은 사람도 존중하게 돼”

―스님께서는 공심의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깨쳤습니까.

“저는 도인이 아닙니다. 절에 와서 부처가 뭘 깨닫고,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이나 승려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지 생각해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올 것입니다. 공심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심을 실천하면 내 마음이 기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죠. 부처가 이를 깨닫고, 많은 이가 공심을 갖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어언 2600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공심을 갖기는커녕 부처님 정신마저 실종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공심의 출발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이가 ‘공공의 이익을 배제하고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스님은 “그런 이기적인 사랑은 물질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만족을 줄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불안감과 공허감만 안겨준다”고 말했다.

“가령 공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 부정부패를 통해 좋은 집과 차를 장만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외형상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지만 내면은 한없이 불안하고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그러다 취하면 여자를 건드리는 등 별의별 나쁜 짓을 다 하죠. 그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형적 풍요보다 내면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죠.”

―스님을 찾는 분 중에는 현실을 버거워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오는 분이 많죠. 요즘에는 부부 갈등 때문에 오는 분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저는 ‘상대가 왜 나를 괴롭히는지 그 원인부터 파악하라’고 조언합니다. 내가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의 여지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죠. 사람이란 상대가 나를 이해해 주고 존중해 주면 변하게 마련입니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항하고 이기려 들면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회복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가는 일이 많죠.”

스님은 “어떤 인연이든 서로에 대해 100% 만족하는 경우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는 나도 마음에 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서 만났습니다만 나이가 들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쌓이면서 싫은 사람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사는 게 훨씬 편해지더군요.”

―출가할 때와 현재의 스님은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당연히 다르지요. 출가할 무렵 저는 불교와 기독교는 반대되는 종교 집단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나와 사이가 좋은 사람은 좋은 감정으로 대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게 대했지요. 사상이나 종교, 혹은 정치적 이념이 나와 다른 사람은 배척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형상만 다를 뿐 인간의 본질은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든 인정하고 받아들이지요.”

“남과 나눌 수 있는 富라면 축적해도 좋아”

―스님의 새해 화두는 무엇입니까.

“공심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서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지요. 나만 잘살자고 들면 사회적 갈등이나 대립으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전체가 잘살도록 나누고 베풀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죠. 불가에서 말하는 무소유(無所有)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유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남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죠.”

―대중이 아는 무소유의 개념과 좀 다른 듯합니다.

“흔히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며 부자에 대해 부정적인데,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남과 나눌 수 있는 부라면 더 축적해도 좋다고 장려하셨죠. 다만 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하는 깨끗한 재산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재산을 모두 보시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은 생활을 떠나 불교를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기 수입의 4분의 1은 생활에 쓰고, 4분의 1은 자기 하는 일에 재투자하며, 4분의 1은 저축하고, 나머지 4분의 1은 보시하라고 하셨죠.”

가진 게 있어야 나눌 수 있다는 말이었다. 스님은 “얻어먹는 데 습관을 들이면 사람을 오히려 망치기 때문에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는 말도 했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눈은 소리 없이 내려 쌓였다. 스님은 “공공의 이익에 대한 의식 찾기 운동을 요란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용히 전개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님과의 인터뷰는 그렇듯 공심으로 시작해 공심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