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애슈턴(John Ashton)
⊙ 1977년 케임브리지대 이론물리학과 졸업.
⊙ 1978년 영국 외교부 입부. 베이징 대사관 과학담당관·정무관, 크리스 패튼 홍콩 총독 자문관 역임.
국제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위한 비영리단체 E3G 창설.
⊙ 2006년 영국 외교장관 직속 기후변화 특별대사.
⊙ 1977년 케임브리지대 이론물리학과 졸업.
⊙ 1978년 영국 외교부 입부. 베이징 대사관 과학담당관·정무관, 크리스 패튼 홍콩 총독 자문관 역임.
국제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위한 비영리단체 E3G 창설.
⊙ 2006년 영국 외교장관 직속 기후변화 특별대사.
“영국도 한국처럼 탄소를 덜 소비하는 방식의 경제성장을 추진 중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일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일주일여 앞두고 방한한 존 애슈턴(John Ashton) 영국 기후변화 특별대사가 11월 3일 <조선일보>를 방문해 김창기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와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저탄소 녹색성장’ 논의를 꾸준히 지켜봤다. 이 논의는 한국인과 한국경제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관한 글로벌 논쟁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도 국가인 영국의 ‘기후 외교’를 책임진 외교관답게, 그는 인터뷰 내내 매우 명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며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G20 회의를 비롯해, 당면한 경제위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것 아닌가?
“기후변화는 이미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매우 큰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다. 사실 작년 코펜하겐 유엔 총회는 기후변화 논의 진행과정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낳았다.
G20은 앞으로도 이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 G20회의는 당면한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긴장을 줄이고 인류의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거시 경제적 전략적 방법을 찾기 위한 매우 유용한 플랫폼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이 그들을 옥죄던 가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구조적 결과도 수반된다.
2008년 국제유가가 150달러를 넘어 치솟았을 때를 떠올려 보라. 수입하는 화석(火石)연료에 의존하는 모든 나라가 고통을 받았다. 15억명의 새로운 소비자들이 높은 품질의 상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 금속과 같은 원자재 가격도 국제시장에서 급속히 올랐다. 이런 흐름의 뒤에 있는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기후변화도 그중 하나다. 지난 세대 이후 영국 정부는 ‘경제성장의 방향성’과 같은 문제는 시장이 결정할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됐다. 이제 어떤 종류의 성장을 원하는지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저(低)탄소 녹색성장’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이와 관련해 영국이 한국의 경험에서 배우고, 또 영국의 경험이 한국에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영국, 재생에너지로 2020년까지 電力 수요의 34% 충당 계획
―저탄소 녹색성장 담론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화석연료를 소비하지 않고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가?
“가능하다. 정치적으로 어려울 뿐이다. 핵에너지를 선호한다면 그걸 쓰면 된다.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고 싶다면 탄소 포집(捕執)기술을 활용해 발생하는 탄소를 처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쓰는 방법도 있다. 현재 영국은 재생에너지로 전력(電力) 수요의 3~4% 정도를 충당한다. 대부분 풍력이다. 2020년까지는 이 비율을 34%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이를 실현시킬 기술은 항상 가능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화석에너지를 소모하는 대표적 분야인 운송 부문에서 빠른 속도로 전기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 선두주자인 LG가 대표적이다. 또 최근 한국의 기업 컨소시엄이 세계 최대 리튬 매장국인 볼리비아와 손을 잡고 개발을 시작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중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탄소 배출이 없는 미래형 자동차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난방 에너지 분야도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 난방에 주로 천연가스를 사용한다. 이 가정 난방 분야도 전기로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누가 돈을 댈 것이냐의 문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의 탄소경제 구조에 안주하지 않고 저탄소 경제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비용을 2020년까지 10년간 10조 달러 이상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매우 큰 비용이지만, 탄소 배출 상쇄(offset)를 통한 이득도 감안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석유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발생하는 이익은 8조5000억 달러다. 결국 약 1조5000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이 비용을 경제 주체들에 어떻게 분담시키느냐의 미시경제적 문제가 있을 뿐이다. 저탄소 경제는 일반적 성장보다 더 강도 높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저탄소 성장 모델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체적으로 봐서 진보(moving forward)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매우 거대한 비전과 신념(conviction)을 보여줬다. 사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담론은 일종의 거대한 정치적 아이디어다. 저탄소 성장이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고방식이며, 이 대통령은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을 비롯해 영국 정부 내의 내 동료들에게 한국과 함께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한국의 자원은 국민들의 재능뿐이다. 에너지와 자원은 모두 수입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세련된 지식기반 상품을 생산한다. 모두 사람의 힘으로 이룬 것이다. 그런 나라는 세상에 별로 없다. 저탄소 성장을 이룰 아이디어들에 기반한 더욱 강력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기후변화는 국제적·정치적 문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기후변화는 전(全)지구적 현상이다. 기후변화의 결과에 의해서건, 혹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정책에 의해서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거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결책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할 때 높은 수준의 자발적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정부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들이 이 부분에 아이디어를 짜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에너지 효율 높은 냉장고나 탄소 배출이 적은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여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집중적으로 탄소 배출을 하는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대형 소매체인 테스코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탄소 발자국(이 경우 제조 유통과정에서의 총 탄소 배출량을 의미)’을 알려주고 있다. 이 분야의 개척자다. 소비자들에게 탄소 배출이 적은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이다. 이런 것이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소비자의 선택, 중앙·지방정부의 선택, 기업의 선택, 이렇게 세 가지가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이뤄 서로서로 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 인도로 대표되는 많은 신흥경제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선진국들에 더 많은 기금 조성과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탄소를 배출해 온 서방국가들이 개발도상국에 탄소 감축을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런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중국이나 인도는 서방국가들에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빈국들의 기후변화 대응에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뿐이다. 어느 나라가 책임을 맡을 것인가의 문제다.
지난 몇 달간의 사례를 보자. 러시아가 가뭄과 열파(熱波·heat wave)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의 밀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까지 밀 수출을 금지시켰고, 국제시장에서 밀 가격은 폭등했다. 한 나라의 불안정이 어떻게 세계로 확산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에도 여러 나라에서 식품가격 상승에 분노한 도시 빈민들의 폭동을 겪었다. 기후변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中, 청정에너지 분야에 7000억 달러 지원
파키스탄의 홍수를 보자. 국제사회가 수십 년간 지원하고 현지인들이 피땀 흘려 일군 경제사회적 인프라가 한순간에 떠내려가 버렸다. 수천억 달러어치다. 여기에다 정부의 비효율적인 대응으로 국민 불만이 커지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들이 번성할 정치적 환경까지 조성됐다.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지구적 차원의 근거를 원한다면 더 큰 신뢰를 쌓아야 한다. 더 많은 모멘텀이 필요하다. 각각의 나라들이 좀 더 빨리 움직여줘야 한다. 각자 나라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면 더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호주는 2년 전 기록적 가뭄 피해를 입었다. 2008년 식량가격 폭등은 일부 고유가 탓도 있었지만 일부 호주의 가뭄으로 인한 밀 수확량 감소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호주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문제가 정치인들의 가장 큰 화두가 됐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매우 커졌다.
기후 안보와 에너지 안보, 저탄소 경제체제의 건설은 모두 깊숙이 연관된 문제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역동성을 창출해야 한다. 정치 상황을 더 우호적으로 바꾸면 운신 폭도 더 넓어질 것이다.
중국 역시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또 가장 큰 규모로 저탄소 경제를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청정에너지 기술과 산업에 지원하는 돈이 7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를 통해 대륙을 관통하는 고속철과 같은 매우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하지만 중국은 동시에 석탄화력 발전소도 계속해서 짓고 있다. 값싼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탄소 포집기술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탄소 포집기술이 과연 에너지 효율과 비용 효율 측면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복잡한 기술의 조합을 실제로 최적화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비용은 물론 더 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ies)도 늘어난다. 충분히 해볼 만한 해결책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위로부터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매우 공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갈수록 더 많은 중국인이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변화가 일종의 가속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정한 수준의 확신과 믿음을 갖고 있다. 세계는 지금 생명체처럼 변화하는 거대한 문제의 소우주(microcosm)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의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됐다. 당신과 당신 아이들의 미래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내려진 결정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존재론적인 도전이다. 영국과 한국은 매우 외향적인 국가다. 경제성장을 위해 외부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특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런 문제 해결에 분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만들어야
―11월 말부터 10여 일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회의에 대해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이 아니라 좀 덜 포괄적인, ‘자발적인 국가 연대(coalition of willing)’ 형태가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칸쿤회의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하는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게 아닌, ‘정치적으로 구속력 있는(politically binding)’이란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평범한 시민인 우리 어머니도 잘 알고 있다. 역사는 정치인과 정부가 내놓은 바로 그 ‘정치적으로 구속력 있었던’ 약속들과 그것들을 무참하게 깨뜨린 사례로 가득 차 있다. 말장난이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오도돼선 안 된다.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만드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 덜 포괄적이고 구속력도 적은 합의로 가자는 주장은 세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은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는 시행 착오를 겪을 여유가 없다. 지금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도 지구의 대기에는 온실가스가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멈추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전투 개시 신호(commence)가 내려진 것처럼 대응해야 한다.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범위로 억제하는 것과 같은 구속력 있는 합의를 해야 한다.
칸쿤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중간 단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칸쿤회의는 코펜하겐에서 쓰러진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다시 트랙 위에 올려놓을 기회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일주일여 앞두고 방한한 존 애슈턴(John Ashton) 영국 기후변화 특별대사가 11월 3일 <조선일보>를 방문해 김창기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와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저탄소 녹색성장’ 논의를 꾸준히 지켜봤다. 이 논의는 한국인과 한국경제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관한 글로벌 논쟁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도 국가인 영국의 ‘기후 외교’를 책임진 외교관답게, 그는 인터뷰 내내 매우 명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며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G20 회의를 비롯해, 당면한 경제위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것 아닌가?
“기후변화는 이미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매우 큰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다. 사실 작년 코펜하겐 유엔 총회는 기후변화 논의 진행과정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낳았다.
G20은 앞으로도 이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 G20회의는 당면한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긴장을 줄이고 인류의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거시 경제적 전략적 방법을 찾기 위한 매우 유용한 플랫폼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이 그들을 옥죄던 가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구조적 결과도 수반된다.
2008년 국제유가가 150달러를 넘어 치솟았을 때를 떠올려 보라. 수입하는 화석(火石)연료에 의존하는 모든 나라가 고통을 받았다. 15억명의 새로운 소비자들이 높은 품질의 상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 금속과 같은 원자재 가격도 국제시장에서 급속히 올랐다. 이런 흐름의 뒤에 있는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기후변화도 그중 하나다. 지난 세대 이후 영국 정부는 ‘경제성장의 방향성’과 같은 문제는 시장이 결정할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됐다. 이제 어떤 종류의 성장을 원하는지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저(低)탄소 녹색성장’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이와 관련해 영국이 한국의 경험에서 배우고, 또 영국의 경험이 한국에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영국, 재생에너지로 2020년까지 電力 수요의 34% 충당 계획
―저탄소 녹색성장 담론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화석연료를 소비하지 않고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가?
“가능하다. 정치적으로 어려울 뿐이다. 핵에너지를 선호한다면 그걸 쓰면 된다.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고 싶다면 탄소 포집(捕執)기술을 활용해 발생하는 탄소를 처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쓰는 방법도 있다. 현재 영국은 재생에너지로 전력(電力) 수요의 3~4% 정도를 충당한다. 대부분 풍력이다. 2020년까지는 이 비율을 34%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이를 실현시킬 기술은 항상 가능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화석에너지를 소모하는 대표적 분야인 운송 부문에서 빠른 속도로 전기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 선두주자인 LG가 대표적이다. 또 최근 한국의 기업 컨소시엄이 세계 최대 리튬 매장국인 볼리비아와 손을 잡고 개발을 시작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중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탄소 배출이 없는 미래형 자동차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난방 에너지 분야도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 난방에 주로 천연가스를 사용한다. 이 가정 난방 분야도 전기로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누가 돈을 댈 것이냐의 문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의 탄소경제 구조에 안주하지 않고 저탄소 경제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비용을 2020년까지 10년간 10조 달러 이상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매우 큰 비용이지만, 탄소 배출 상쇄(offset)를 통한 이득도 감안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석유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발생하는 이익은 8조5000억 달러다. 결국 약 1조5000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이 비용을 경제 주체들에 어떻게 분담시키느냐의 미시경제적 문제가 있을 뿐이다. 저탄소 경제는 일반적 성장보다 더 강도 높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저탄소 성장 모델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체적으로 봐서 진보(moving forward)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매우 거대한 비전과 신념(conviction)을 보여줬다. 사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담론은 일종의 거대한 정치적 아이디어다. 저탄소 성장이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고방식이며, 이 대통령은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을 비롯해 영국 정부 내의 내 동료들에게 한국과 함께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한국의 자원은 국민들의 재능뿐이다. 에너지와 자원은 모두 수입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세련된 지식기반 상품을 생산한다. 모두 사람의 힘으로 이룬 것이다. 그런 나라는 세상에 별로 없다. 저탄소 성장을 이룰 아이디어들에 기반한 더욱 강력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기후변화는 국제적·정치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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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가 열리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 앞에서 최열 환경재단 대표(왼쪽) 등 한국 환경운동가들이 획기적인 지구온난화방지대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기후변화는 전(全)지구적 현상이다. 기후변화의 결과에 의해서건, 혹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정책에 의해서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거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결책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할 때 높은 수준의 자발적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정부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들이 이 부분에 아이디어를 짜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에너지 효율 높은 냉장고나 탄소 배출이 적은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여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집중적으로 탄소 배출을 하는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대형 소매체인 테스코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탄소 발자국(이 경우 제조 유통과정에서의 총 탄소 배출량을 의미)’을 알려주고 있다. 이 분야의 개척자다. 소비자들에게 탄소 배출이 적은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이다. 이런 것이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소비자의 선택, 중앙·지방정부의 선택, 기업의 선택, 이렇게 세 가지가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이뤄 서로서로 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 인도로 대표되는 많은 신흥경제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선진국들에 더 많은 기금 조성과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탄소를 배출해 온 서방국가들이 개발도상국에 탄소 감축을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런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중국이나 인도는 서방국가들에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빈국들의 기후변화 대응에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뿐이다. 어느 나라가 책임을 맡을 것인가의 문제다.
지난 몇 달간의 사례를 보자. 러시아가 가뭄과 열파(熱波·heat wave)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의 밀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까지 밀 수출을 금지시켰고, 국제시장에서 밀 가격은 폭등했다. 한 나라의 불안정이 어떻게 세계로 확산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에도 여러 나라에서 식품가격 상승에 분노한 도시 빈민들의 폭동을 겪었다. 기후변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中, 청정에너지 분야에 7000억 달러 지원
파키스탄의 홍수를 보자. 국제사회가 수십 년간 지원하고 현지인들이 피땀 흘려 일군 경제사회적 인프라가 한순간에 떠내려가 버렸다. 수천억 달러어치다. 여기에다 정부의 비효율적인 대응으로 국민 불만이 커지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들이 번성할 정치적 환경까지 조성됐다.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지구적 차원의 근거를 원한다면 더 큰 신뢰를 쌓아야 한다. 더 많은 모멘텀이 필요하다. 각각의 나라들이 좀 더 빨리 움직여줘야 한다. 각자 나라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면 더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호주는 2년 전 기록적 가뭄 피해를 입었다. 2008년 식량가격 폭등은 일부 고유가 탓도 있었지만 일부 호주의 가뭄으로 인한 밀 수확량 감소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호주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문제가 정치인들의 가장 큰 화두가 됐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매우 커졌다.
기후 안보와 에너지 안보, 저탄소 경제체제의 건설은 모두 깊숙이 연관된 문제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역동성을 창출해야 한다. 정치 상황을 더 우호적으로 바꾸면 운신 폭도 더 넓어질 것이다.
중국 역시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또 가장 큰 규모로 저탄소 경제를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청정에너지 기술과 산업에 지원하는 돈이 7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를 통해 대륙을 관통하는 고속철과 같은 매우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하지만 중국은 동시에 석탄화력 발전소도 계속해서 짓고 있다. 값싼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탄소 포집기술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탄소 포집기술이 과연 에너지 효율과 비용 효율 측면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복잡한 기술의 조합을 실제로 최적화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비용은 물론 더 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ies)도 늘어난다. 충분히 해볼 만한 해결책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위로부터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매우 공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갈수록 더 많은 중국인이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변화가 일종의 가속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정한 수준의 확신과 믿음을 갖고 있다. 세계는 지금 생명체처럼 변화하는 거대한 문제의 소우주(microcosm)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의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됐다. 당신과 당신 아이들의 미래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내려진 결정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존재론적인 도전이다. 영국과 한국은 매우 외향적인 국가다. 경제성장을 위해 외부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특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런 문제 해결에 분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만들어야
―11월 말부터 10여 일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회의에 대해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이 아니라 좀 덜 포괄적인, ‘자발적인 국가 연대(coalition of willing)’ 형태가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칸쿤회의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하는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게 아닌, ‘정치적으로 구속력 있는(politically binding)’이란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평범한 시민인 우리 어머니도 잘 알고 있다. 역사는 정치인과 정부가 내놓은 바로 그 ‘정치적으로 구속력 있었던’ 약속들과 그것들을 무참하게 깨뜨린 사례로 가득 차 있다. 말장난이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오도돼선 안 된다.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만드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 덜 포괄적이고 구속력도 적은 합의로 가자는 주장은 세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은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는 시행 착오를 겪을 여유가 없다. 지금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도 지구의 대기에는 온실가스가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멈추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전투 개시 신호(commence)가 내려진 것처럼 대응해야 한다.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범위로 억제하는 것과 같은 구속력 있는 합의를 해야 한다.
칸쿤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중간 단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칸쿤회의는 코펜하겐에서 쓰러진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다시 트랙 위에 올려놓을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