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평화의 날’ 선포 30주년 맞은 趙正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 월간조선

“‘세계평화의 날’을 제정한 지 벌써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미소(美蘇) 냉전시기에 ‘세계평화의 구현’을 모토로 1981년 6월 코스타리카 산호세에 세계대학총장들이 모여 평화의 날 제정을 결의했고, 유엔은 1981년 제36차 유엔총회에서 안건을 통과시켜 매년 ‘9월 셋째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의 날’을 만든 취지를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지구촌 봉사를 통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WTF 조정원(趙正源·63) 총재는 “유엔이 ‘세계평화의 날’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지구 상에서 냉전시대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나름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은 1975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4차 대학총장회의(IAUP)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희대 총장이던 조 총재의 부친인 조영식(趙永植·88) 현 경희학원장이 밝은사회운동(GCS)을 제창하면서 시작됐다. GCS 운동은 선의(Goodwill)·협동(Cooperation)·봉사-기여(Service) 등 3대 정신을 모토로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실천적 사회운동이다. 그는 경희대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의 장남이며, 경희대 총장을 지냈다. 그의 말이다.

“당시 600여 명의 세계대학총장들은 ‘보스턴 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부친(조영식 박사)을 중심으로 마카파칼 전 필리핀 대통령,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허킨스 시카고대 총장, 드라마타 국제적십자사 총재, 레반도스키 전 유엔사무차장, 가야세이치 전 도쿄대 총장 등 세계 77명의 석학들이 모였습니다. ‘라이온스클럽’이나 ‘국제로타리클럽’처럼, GCS인터내셔널은 1979년 한국 주도로 만든 국제NGO기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1981년 GCS인터내셔널은 대학총장회의(IAUP)와 제휴해 유엔에 ‘세계평화의 날’과 ‘세계평화의 해’를 제안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조영식 경희학원장은 이 공로를 평가받아 1998년 4월 ‘간디평화재단’이 주는 ‘올해의 간디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 총재는 WTF와 GCS인터내셔널 총재를 함께 맡고 있다. 그는 “올해는 추석연휴를 피해 9월 28일 국립국악원 강당에서 해외 석학들을 초청해 기념식과 축하공연, 리셉션 등을 할 것”이라며 “현재 43개 가입국이 참가해 1년간의 봉사활동을 보고하고, 국제평화를 위해 새로운 사업들을 논의한다”고 했다.

“GCS한국지부는 라오스·캄보디아 등 40여 개국에서 초등학교를 건립해 주는 등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경희대와 연계해 해외의료봉사 활동도 하고 있고요. WTF와 GCS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WTF 191개 가맹국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프리카, 중남미(中南美), 중동 등지에 태권도 용품(用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워크숍에서 ‘스포츠평화봉사단’ 구상 밝혀

세계 각국의 태권도 수련생이 모여 기량을 연마하는‘2010 조선대 국제태권도아카데미’가 2010년 7월 19일 광주에서 열렸다. 독일ㆍ말레이시아ㆍ캐나다ㆍ오스트리아 등 16개국의 수련생 및 지도자 100여 명이 참석해 7박8일간 태권도 수련을 받고 돌아갔다.

조 총재는 GCS인터내셔널과 WTF 두 기관의 총재를 맡으면서 연계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2009년 9월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을 만들어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4인1조로 구성된 태권도평화봉사단원 350여 명은 WTF를 통해 2008년 7월 중순부터 러시아, 파라과이, 인도, 아프리카, 파키스탄, 중국 등 78개국에 파견됐다. 조 총재는 “태권도평화봉사단은 올림픽 스포츠인 태권도를 통해 올림픽 이념인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게 목적”이라며 “태권도평화봉사단 활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유엔 또는 IOC와 함께 모든 올림픽 종목을 망라한 ‘스포츠평화봉사단’을 발족시키는 게 꿈”이라고 했다.

WTF는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을 기해 대학생 및 일반인 중 태권도 3단 이상의 능력을 가진 지원자를 대상으로 태권도평화봉사단을 선발한다. WTF는 언어담당 봉사단원도 별도로 선발하고, 봉사기간을 2개월로 확대했다.

“2007년 9월 벨기에에서 열린 ‘스포츠와 평화워크숍’에서 ‘스포츠평화봉사단’ 구상을 밝혔더니 반응이 좋았어요. IOC는 하계(28개)와 동계(7개)를 합쳐 35개 종목을 갖고 있습니다. IOC의 긍극적 목표는 ‘체육을 통한 세계평화 구현’입니다. 체육을 통해 청소년 범죄를 줄이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취지로 IOC 35개 정식종목에 ‘평화봉사단(Sports Peace Corps)’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에게 체육을 가르치자고 발표했죠. 그 일을 유엔과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입소문이 퍼져 그해 12월 모나코에서 열린 ‘국제평화와 스포츠포럼’에서 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조 총재는 “올림픽 정식종목인 태권도가 ‘태권도평화봉사단’을 창설해 파일럿(pilot) 케이스가 되겠다고 발표했고, 2008년 7월 처음으로 봉사단을 발족해 파견했던 것”이라고 했다.

“WTF 산하 국가들의 파견요청이 쇄도했습니다. 한국으로선 태권도를 통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가르칠 좋은 기회도 됐고요. 6·25전쟁을 통해 미국의 인상이 각인(刻印)됐듯, 우리의 태권도를 배우는 그 나라 청소년들은 ‘한국’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겁니다.

봉사단이 연례사업으로 확대되면서 2009년 9월 외교통상부의 정식인가를 받아 별도의 재단법인으로 만든 겁니다. 올해도 정부의 지원을 포함,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남아공(南阿共)과 캄보디아,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 제5기 봉사단 110명을 파견했습니다. 앞으로 WTF 5개 대륙연맹과 191개 회원국에 지부를 설립하고 네트워크화할 겁니다.”

그는 “태권도를 좋아한다는 것은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라며 “최근 텔레비전을 통해 ‘한류바람’이 불고 있지만, 태권도는 한류의 원조(元祖)격”이라고 했다.

“1960년대부터 해외에 태권도를 보급한 사범들이 큰 공을 세운 겁니다. 특히 중남미나 중동, 아프리카 등 북한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나라들과 수교(修交)할 때, 태권도 사범들의 역할이 컸죠. 대통령이나 왕실 경호실을 지도하며, 고위급 인사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겁니다. 이란은 태권도 인구가 200만명, 도장은 3600개가 있어요. 테헤란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60%가 프라이드 등 국산차입니다. 태권도 하는 사람들은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다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태권도 경기에 ‘히잡’ 허용

지난 2월 1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왼쪽)에게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태권도복을 선물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태권도 품새를 보여주고 있다.

조정원 총재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태권도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 8월 28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한 주일 동안 열린 13개 격투종목 대회인 ‘제1회 컴뱃게임(SportsAccord Combat Games)’을 참관하고 돌아왔다. 스포츠어코드 컴뱃게임은 국제경기연맹총연합(GAISF)이 주최하는 행사다.

컴뱃게임에는 태권도, 유도, 복싱, 레슬링 등 하계올림픽 종목 4개를 포함한 총 13개 스포츠 종목이 참가한다. 비(非)올림픽 종목에는 아이키도, 주짓수, 가라테, 검도, 킥복싱, 무에타이, 삼보, 스모 그리고 우슈 등이 참가한다. 일명 ‘무술올림픽’이라 불린다.

그는 “태권도 경기는 9월 2일 베이징과기대체육관에서 열렸고, 총 26개국에서 58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면서 “태권도는 WTF시범단이 화려한 태권도 시범을 펼쳐 관중의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

김운용(金雲龍) 총재에 이어 2004년부터 WTF 수장(首長)으로 일해 온 그는 태권도를 재미있고 공정한 스포츠로 만들어 가면서 ‘장애인 태권도’ 경기와 ‘품새경연’을 독자적인 세계 규모 대회로 확대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올림픽 직후 열리는 장애인올림픽에 태권도가 곧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 총재는 “스포츠는 계속 진화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는 “태권도가 중국이 미는 우슈나 일본의 가라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총재는 이를 위해 경기방식과 경기복, 전자호구(電子護具) 등 태권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놓고 여러 전문가를 초빙, 원점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91개국 7000만명(추정)이 수련하는 태권도는 이제 더이상 한국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다”면서 “태권도도 각국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측면에서 보급·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66개국이 태권도에 출전해 26개국이 메달을 가져갔습니다. 그렇다면 30개국 정도의 실력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양궁 종주국이 아닌 한국이 양궁 메달을 휩쓸지 않습니까? 태권도도 그럴 날이 머지않았다고 봐요.”

2004년 WTF 조 총재가 총재에 취임하자, 이슬람권에서는 “히잡을 쓰고 경기를 출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한다. 그는 “태권도는 헤드기어를 쓰고 경기하기 때문에 문제 없다며 2004년 9월 허용해 주었다”면서 “그러자 이슬람권 여성들의 태권도 인구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는 경제적 요인으로 태권도 보급률이 떨어진다”면서 “태권도는 호구나 도복 등을 갖춰야 하는데 이러한 용품과 실내도장을 갖출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권도가 축구 다음으로 스포츠 인구가 많다는 것을 아세요? 아프가니스탄, 요르단을 가면 축구보다 태권도를 좋아합니다. 아프리카도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말리, 남아공 등 10여 개국은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誤審 근절방법 찾았다

조정원 총재는 “이제는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되느니 하는 얘기가 쏙 들어갈 것 같다”며 “지난 9월 초 막을 내린 싱가포르 청소년 올림픽에서 전 세계의 태권도 열기를 직접 느꼈다”고 했다.

“싱가포르 청소년올림픽 태권도경기를 참관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태권도에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어요. 누가 봐도 완벽하게 대회를 치러내 태권도가 올림픽 영구종목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고 봅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판정시비가 단 한 건도 없었고, 차등점수제 적용으로 경기가 박진감 넘치게 진행돼 태권도에 대해 문외한(門外漢)이던 싱가포르 관중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고 했다.

“축구 등 심판이 있는 경기는 근본적으로 오심(誤審) 문제가 없을 수가 없어요. 태권도가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것 인정합니다. 그걸 막고자 최근 ‘전자호구’ ‘비디오 리플레이 시스템’을 도입하고, 심판교육도 철저하게 합니다. 이제부턴 최고의 선수가 심판에 따라 메달 색깔이 바뀌는 불행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경기의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 신체 부위마다 점수를 차등화하고, 역전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차등점수제’를 도입해 베이징올림픽 직후부터 시행하고 있다”면서 “경기장도 기존(12m×12m)보다 훨씬 줄여 권투링(6m×6m)보다 조금 큰 ‘8m×8m’ 사이즈로 만들어 도망다니는 게 어렵도록 했다”며 웃었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태권도 경기를 잘 치를 필요가 있다”면서 “요즘 ‘태권도가 IOC 정식종목으로 계속 남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에겐 ‘안 되는 이유를 대라’고 말한다”고 했다.

조 총재는 해외출장을 다녀와도 당일 서울 강남 선릉의 WTF사무실로 곧바로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에 주는 큰 선물”이라며 “작년 스위스 로잔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만든 ‘태권도연맹 연락사무소’를 국제스포츠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해 내년 4월 확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일각에서 “WTF 총재가 IOC위원이 아니라 태권도가 올림픽 영구종목이 되기 힘들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해, “올림픽 종목은 늘 평가를 받을 뿐 아니라, ‘영구종목’이란 없다”면서 “우리는 2005년 회의에서 잔류할 수 있도록 올인했고, 결국 살아남았다”고 했다.

당분간 외국인 회장은 ‘곤란’

2000년 9월 19일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유엔제정 제19회 ‘세계평화의 날’ 기념식. 맨 왼쪽이 조정원 당시 경희대 총장, 그다음이 조영식 세계대학총장회 명예총장이다. 기념식에는 오스카 루이지 스칼파로 전 이탈리아 대통령, 세계질서모델연구회의 사울 멘드로비치 회장, 로이 웨더포드 교수 등 900여 명의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참석했다.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4년 9월 4일 파리총회 때였다. 태권도 회원국들은 이날을 ‘태권도의 날’로 정했다. 조 총재는 1980년 초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경희대에 태권도학과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교수들이 “농구학과, 축구학과도 만들 거냐”며 반발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반대하는 문교부를 설득해 1983년 태권도학과를 만들었다.

“현재 국내 대학에 40여 개, 체육학과 내 태권도 전공까지 합하면 70여 개나 됩니다. 이후 미국·우즈베키스탄에 생겼고, 중국·터키·멕시코는 준비 중입니다. 태권도 도장은 성인사회로 들어가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과목에도 태권도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종주국다운 면모지요. 중국 쓰촨성과 후난성, 인도네시아는 정식교과목으로 가르치니까요. 우리 시도교육청에서 적극 검토하길 바랍니다.”

그는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정부와 국내 글로벌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해외에 진출한 삼성·현대·LG 등 한국의 글로벌기업들이 WTF의 스폰서를 외면하는 가운데, 국내기업(성동조선해양)이 스폰서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아쉬워했다.

조 총재는 올 들어 13차례, 약 120여 일간을 태권도와 관련한 해외출장을 다녔다고 한다. 그는 “WTF 총재를 꼭 한국인이 맡을 이유가 있는가”라고 하자, “언젠가 외국인 회장이 맡을 날이 오겠지만, 전 세계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을 관장하려면 당분간 한국인 총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자가 “총재가 무도인(武道人)이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데 문제가 없나”라고 묻자, 그는 “FIFA 회장이 축구선수가 아닌 것처럼 총재는 CEO로서 조직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 직책”이라며 “나는 무도(武道)로서의 태권도보다 올림픽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를 맡고 있다”고 했다.⊙

(취재지원=李彩炫月刊朝鮮 인턴기자)

사진 : 서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