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에서 改憲은 불가능”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공상에 불과.
4년 중임제도 현실을 몰라서 나오는 소리”
⊙ 사회주의 혁명 꿈꾸다 실패와 좌절 거듭하며 자유민주주의자로 변신
⊙ “젊은 시절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감옥 간 사람이 50명 넘어”
⊙ ‘묻지마 무상급식’은 현실성 없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 세상에서 가장 퇴보한 세력이 親北세력
⊙ 공무원 보고서는 밥상에 오른 회 한 토막, 현장은 살아 있는 물고기.
회 100조각 모은다고 물고기 안돼
金文洙
⊙ 1951년 경북 영천 출생.
⊙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민중당 노동위원장, 15~17대 국회의원(경기 부천소사),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 등 역임.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공상에 불과.
4년 중임제도 현실을 몰라서 나오는 소리”
⊙ 사회주의 혁명 꿈꾸다 실패와 좌절 거듭하며 자유민주주의자로 변신
⊙ “젊은 시절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감옥 간 사람이 50명 넘어”
⊙ ‘묻지마 무상급식’은 현실성 없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 세상에서 가장 퇴보한 세력이 親北세력
⊙ 공무원 보고서는 밥상에 오른 회 한 토막, 현장은 살아 있는 물고기.
회 100조각 모은다고 물고기 안돼
金文洙
⊙ 1951년 경북 영천 출생.
⊙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민중당 노동위원장, 15~17대 국회의원(경기 부천소사),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 등 역임.
운동권 출신 정치인, 혁명을 꿈꾸던 사회주의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전향자. 기자들로부터 ‘소신 있는 국회의원’, ‘일 열심히 하는 도지사’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반인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사람.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다.
그런 그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시민(柳時敏)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19만 표 차이로 이겼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단일후보로 유 전 장관이 결정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대결을 ‘2012년 대선(大選) 전초전’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자 중 한 사람이 김문수 지사다.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은둔,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이 야당 후보에게 고전하고 있는 사이 김 지사는 유시민 후보에게 여유 있게 앞서며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군 중의 한 사람’으로 선명하게 부각됐다.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만난 김 지사는 전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다. 얼굴은 검게 그을러 있었고, 약간 피곤해 보였다. 그는 “선거를 치르고 나니 몸무게가 5㎏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김 지사에게 “한나라당은 패했지만 김 지사가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라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그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 오히려 억울하다”고 했다.
“저는 4년 동안 도지사를 하며 바닥을 다졌는데 유시민 후보는 한 달 유세하고도 200만 표 이상을 받았습니다. 득표율도 5%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났어요. 유 장관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은 분 아닙니까.”
―선거 과정에서 제일 큰 이슈는 뭐였습니까.
“수도권 규제 문제를 놓고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유 장관은 ‘김 지사가 한 게 뭐 있느냐, 규제 풀어서 된 것이 뭐냐’고 공격했죠. 저는 ‘대학생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대응했어요. 물론 인신공격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한때 같은 생각, 같은 고민을 하며 지낸 선후배 사이거든요. 저와 유 장관의 차이라고 한다면 저는 철이 들었고 유 장관은 아직 ‘젊은 청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죠.”
등 떠밀리다시피 출마
―이번 선거를 앞두고 김 지사는 도지사 출마냐, 아니면 한나라당에 복귀해 2012년 대선으로 직행할 것이냐를 놓고 오래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지사는 대선으로 가는 길의 날개이면서 동시에 십자가’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아는데, 도지사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사람들이 경기도지사 자리는 ‘정치인의 늪’이라고 해요. 서울시장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죠. 주위에서 ‘재선(再選)한 경기지사는 없다. 이번 선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많았어요. 저도 당(黨)과 청와대에 ‘내가 경기도지사에 다시 출마할 생각이 없으니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뜻을 전했는데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분이 없었어요. 경기도지사 후보도 서울시장처럼 몇 명이 나와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정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한나라당에서 출마를 원하는 분이 없으니 어떡합니까.”
그는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경기도지사 출마를 했다는 뜻을 전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선거 전날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낙승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결과가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현장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경기도는 서울시민들보다 불만이 많고, 지역 성향도 다양합니다. 특히 서울 외곽지역인 부천, 안산, 구리에서 고전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나 야권연합의 ‘승리’라기보다는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한나라당과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죠.”
바닥 훑는 현장활동
김 지사는 지난해 7월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를 예견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나라당이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할지 의문입니다. 위험해요. 특히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요. 현장에 다녀 보면 몸으로 느껴요. 경제가 어렵다 보니 현 정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답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늘고 있고. 특히 20~30대 젊은 사람들의 지지도가 문제입니다.”
김 지사의 상황판단은 바닥을 훑는 현장활동에서 나왔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경기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민심 흐름을 체크하고, 도정(道政)방향을 잡아 왔다. 그동안 그가 현장을 뛰어다닌 거리가 30여만km다. 지구 한 바퀴 거리가 약 4만km니까 그는 재임 중 지구 8바퀴를 도는 거리만큼 경기도 곳곳을 다니며 규제완화, 교통혁신, 서민복지를 추진해 왔다.
“정책은 교과서에 없다. 보고서에도 없다. ‘현장’은 살아 있는 보고서이며 교과서다.”
이것이 김 지사의 현장중심주의 행정철학이다. 김 지사는 한여름의 뙤약볕에서 힘겹게 모내기를 하는 농민들에게 농정(農政)에 대한 불만을 들었고, 그린벨트에 묶여 공장부지에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공장 주인의 하소연을 들으며 수도권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김 지사는 법 규정 하나를 고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하이닉스를 사례로 들었다.
“최근 정부는 환경부 고시를 개정해 경기도민과 기업체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이천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허용했어요. 하이닉스 이천공장은 상수원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환경부 고시에 따라 구리 배출 시설의 입지가 금지된 곳입니다. 초정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기존의 알루미늄 공정을 구리 공정으로 전환해야 해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방위로 뛰었습니다. 현장을 수차례 방문했고, 경기도민 결의대회도 10차례나 열었지요. 청와대, 정부, 국회를 방문해 건의한 것이 32차례, 범도민 1000만명 서명운동·대책회의·공청회·토론회를 27차례나 열었어요. 마침내 환경부 고시를 바꿈으로써 그 결실을 맺은 겁니다.”
하이닉스 사례에서 보듯 김 지사는 도지사 재임 중 수도권 규제 철폐의 선봉장이었으나 원하는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에게 “현재 규제완화 수준은 얼마나 되는가”라고 물었다.
“저는 규제완화의 기준을 싱가포르나 중국과 경쟁해서 밀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제 생각과 현 정부의 규제완화 수준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내 생각의 30% 정도 완화됐다고 봐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께서 많은 규제를 풀었는데, 아마 지난 30년 동안 가장 많이 규제를 완화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겁니다. 그런데 나머지 70%를 푸는 일이 쉽지 않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요. 저는 취임 초기에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수차 요청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회 100조각 모은다고 물고기 되는 건 아니다”
―현장 행정을 강조해 왔는데, 집무실에서 서류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 다릅니까.
“밥상에 오른 회 한 토막을 보는 것과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보는 것처럼 완전히 다릅니다. 회 100조각을 모은다고 물고기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김 지사는 현장을 중시하는 탓에 밤 늦게 공관에 돌아와 서류를 결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료와 결재서류를 살펴보고 이메일에 답장을 하다 보면 12시를 넘기는 일이 흔하다. 컴퓨터 책상 앞에 밤늦게 매달려 있는 김 지사에게 부인 설난영씨는 “이런 게 바로 김문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현장에 대한 집착은 20대(代)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면서부터 생겨났다. ‘현장’은 청년 김문수의 전부였다. 현장은 이념의 기반이었고 혁명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김문수가 왜 이토록 현장을 챙기는지는 그의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1970년 서울대생이 된 김문수는 용두동 판잣집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당시 대학 선배인 심재권(沈載權) 전 의원의 연설을 듣고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그해 11월 노동자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이 터지면서 김문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김문수의 過去
그는 1971년 서울 영등포에 있는 재봉공장에 위장 취업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에 연루돼 제적됐다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또다시 제적됐다. 학교를 떠난 그는 사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했다.
당시 그는 진정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불과 몇 년 사이 안전관리기사 2급, 열관리기능사, 환경관리기사 2급 등 자격증 8개를 땄다. 김 지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노동운동은 밤새 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하는 학생운동과 같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기계와 씨름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동료 노동자와 더불어 고민하고 모색하는 실천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지사는 1978년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4년에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이 됐다. 1985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을 주도했다.
그는 1986년 인천 5·3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구속돼 2년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한다. 그 당시 노동자 김문수는 노동자·농민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김 지사의 말이다.
“정치를 공부하거나 뜻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오로지 혁명만을 생각했습니다. 혁명은 삶과 죽음의 줄타기입니다. 그것도 사심에 의해서 될 수는 없습니다. 뜻하지 않게 제가 저주했던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하고 경기도지사까지 됐는데, 제가 경기지사가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시 저는 혁명가가 될 생각밖에 없었어요. 멋있는 혁명가가 돼 세상을 기가 막히게 바꾸겠다는 생각이 온 머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혁명은 실패하고 정치인이 됐으니 좀 기괴한 인생이죠.”
김 지사는 한때 자신에 대해 “정치를 공부하거나 수업을 받지 않은 기괴한 정치인, 눈치도 없고 융통성도 없어 정치에 부적합한, 사회와 시대가 낳은 변종 정치인”이라 자평(自評)하기도 했다.
姜三載의 제의로 민자당 입당
김 지사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따르다 감옥에 간 사람이 50명이 넘는다고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시민 장관의 동생 유시진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운동하다 구속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망하고 동구권이 차례로 붕괴됐어요.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고, 대한민국도 바뀌었어요. 안타깝게도 지금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게 되냐? 우리가 생각하던 혁명의 세상보다 한국은 더 잘살고 있다. 어딜 가든 음식이 넘치고 옷도 넘친다. 우리는 이미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감옥에서 나온 김문수는 장기표(張琪杓)씨가 1990년에 창당한 민중당에 들어가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위원장과 민중당 노동위원장을 지냈다. 1992년 민중당 대표를 지낸 김낙중씨의 간첩행위가 적발되면서 그는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다.
그는 1994년 강삼재(姜三載) 민자당 기획조정실장의 제의로 입당한다. 김 지사의 민자당 입당 변은 이렇다.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 보니, 적어도 민자당이 군사독재 청산과 자유민주주의 길을 여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은 ‘왜 그쪽으로 들어갔나’고 비난하더군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은 민주당에 있어야 한다는, 독선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어요. 자기들에게 안 오면 ‘변절’이라고 생각했죠. 난 두 정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문수 지사는 이듬해 경기도 부천소사 지역구에 출마, ‘생활정치’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수도권의 하루 출퇴근 인구가 300만명, 서울·경기 간 하루 이동인구가 100만명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유권자에게 “지옥철을 해결하겠다”며 “지옥철, 대통령도 같이 타 봅시다”고 제안했다. 경인선 복복선화에도 그의 노력이 컸다.
그가 경기도지사가 된 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GTX는 지하 40~50m의 터널을 뚫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32분, 강남에서 동탄까지 18분이면 충분하다. 경기도의 끝과 끝을 1시간 내에 연결할 수 있다.
김 지사는 2년에 걸쳐 연구용역을 끝낸 후 2008년 국토해양부에 GTX 프로젝트를 건의했다. 그는 “국토해양부가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지방의 눈치를 살피느라 사업이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전략기획위원장·노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매년 국정감사 베스트 의원, 국회 출입기자단이 뽑은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배지를 단 뒤에도 국회의원회관보다는 ‘현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맨홀 뚜껑 들추다 미친 사람 취급당해
2003년 여름 지역구인 소사초등학교 앞 개울이 밤새 내린 비로 범람했다. 하천 정비를 통해 복개를 했는데도 비가 많이 오면 저지대 지하 셋방 주민들이 침수 피해를 입곤 했다. 불안해진 그는 새벽에 개천을 살펴본 후, 물이 얼마나 찼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로 맨홀 뚜껑을 열고 들여다봤다. 캄캄한 새벽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맨홀 뚜껑을 들춰보고 다니니까 지나가는 주민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고 한다.
그는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어느 해 자신의 수행비서로부터 “의원님. 제가 지난 365일 중 360일을 출근했습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혁명을 꿈꾼 그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99년 전국보육시설협회와 결식아동 돕기 운동을 펼쳐 ‘김결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경기도지사로 취임한 후 결식아동을 가장 먼저 챙겼다. 그가 추진해 온 ‘무한돌봄’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취약계층을 ‘무제한·무기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였다. 현재 2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무한돌보미’가 돼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서고 있다. 탤런트 최불암, 가수 인순이, 배우 박해미씨가 무한돌보미 홍보대사다.
김 지사는 최근 민주당과 일부 교육감들이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잣집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무상급식을 하자는 ‘묻지마 무상급식’은 현실성이 없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입니다. 부잣집 아이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하기 위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지원비를 줄어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 중심의 혁명가적 발상은 ‘택시기사 김문수’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09년 1월 그는 택시기사가 됐다. 도지사로 있으면서 택시기사 자격증을 딴 것이다. 그는 1년 넘게 주말을 이용해 경기도 26개 시·군(市郡)에서 택시 운전을 했다. 하루 7~12시간씩 총 173시간 동안 2368km를 달렸다. 그는 “택시 면허증은 주민 생활과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허가증”이라고 했다.
“경기도지사는 8600여 명의 공무원을 지휘하고 8500가지의 업무를 결재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떤 보고서도 생생한 민심의 실상을 알려주지 못해요. 택시면허는 도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핸들을 잡아보니 저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어요. 현장은 최고의 보고서이자 교과서이고, 손님들의 지적은 언제나 따끔하고 정확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김 지사의 택시 운전을 ‘정치적 쇼’라고 비판합니다.
“혹자는 ‘쇼 그만하라’고 하는데 이런 쇼는 얼마든지 해야 해요. 쇼는 분명하지만 열두 시간씩 차를 몰아야 하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쇼입니다. 저는 도지사는 물론, 대통령도 꼭 해 봐야 할 쇼라고 생각해요. 택시를 몰며 하루종일 땀을 흘려 보면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택시기사와 똑같은 조건에서 일했어요. 교대시간도 그대로 따랐어요.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12시간 택시를 몰기도 했습니다. 택시는 도정(道政)의 종합체험장이자 달리는 집무실, 찾아가는 집무실이었습니다.”
골프 못하는 골프도(道) 지사
<조선일보>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김 지사는 취미란에 등산·독서, 그리고 특기란에 배드민턴이라고 되어 있다. 그는 골프를 못 치면서도 ‘골프 지사’라 불린다. 골프에 얽힌 김 지사의 얘기다.
“1996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선배 의원들이 ‘골프를 시작하라’고 권유했어요. 골프를 못 치면 큰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안 했어요. 국회의원 가운데 자기 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 접대였죠. 대신 등산과 배드민턴을 했습니다. 도지사가 된 후 골프 권유는 더욱 강해졌지만 아직까지 배우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김 지사는 도지사 취임 후 경기도에 모두 36건의 골프장 허가를 내주었다. 태국이나 필리핀, 중국, 일본으로 나가는 골프 이용객을 국내에 잡아 두기 위해서였다.
“골프 외유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한해 2조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이것을 보고 저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골프장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그랬더니 골프를 못 치는 제게 ‘골프에만 관심 있는 지사’라며 비난하더군요.”
김문수 지사는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엘리트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제도권에 안주하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보수주의 정치인으로 전향한 계기는 대학 스승이었던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다 보수 우파 쪽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뭡니까.
“개인의 실패와 좌절, 세계사적인 사회주의의 실패, 그리고 한반도 북쪽의 기형적 사회주의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사회주의는 원래 굉장히 이상적인 사상입니다. 만인이 평등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 일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해도 되고, 언론의 자유도 무궁무진하고, 문화예술도 꽃 피우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요.”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보수우파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북한을 보는 시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북한 인권에 눈감고 있는 친북세력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세력입니다. 북한에는 가난과 고립, 정치적 억압밖에 없어요. 그게 무슨 진보입니까.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진보와 우리나라의 진보는 완전히 달라요. 친북세력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명칭의 대혼란이 야기한 언어 사기(詐欺)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라는 바이블 만들어야
―한나라당의 이념적 지향점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라는 정통 바이블을 만들어야 해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의 적(敵)은 누구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파악해야 해요. 그 다음에 그런 바이블을 가르칠 수 있는 목사, 전도사를 양성하여 전국에 파견해 전도를 해야 합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격퇴해 통일까지 이루자”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폭침 대응전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천안함 사건은 아주 교묘한 테러였기 때문에 즉시 반격도 못하고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도발 즉시 대응이 어려웠죠. 우리 정부는 확성기를 전방에 달아 대북(對北) 심리전을 실시하겠다고 했다가 북의 반발이 예상되자 흐지부지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탈북자들이 주축이 된 대북방송과 민간인들의 삐라 살포가 훨씬 효과가 있다고 봐요. 정부는 그런 방송이나 삐라 살포를 물밑으로 지원해 주면 됩니다.”
감옥보다 더 답답한 곳이 청와대
―작년 6월 한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은 초식동물이 모인 정당’, ‘영혼이 없는 집단’, ‘웰빙정당’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이 같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한나라당은 비전이 뭔지, 시대적 과업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종교로 말하면 경전도 없고, 신학교도 없고, 설교도 없고, 전도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선거에 나가면 바로 깨지는 거죠. 한나라당은 13년 동안 역사성을 유지하고 정체성이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원 교육이 너무 안돼 있어요. 4대강도 이게 뭔지, 홍보도 안되고 방어도 안돼요. 세종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안이냐, 수정안이냐 하는데 이건 대한민국 수도 분할이냐, 유지냐가 본질 아닙니까.”
―지방선거 이후 대통령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시야를 넓게 갖고 감동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촛불시위의 여파로 조심스러워하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대통령이 위축되면 통 큰 리더십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실력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정신을 가다듬어 넓게 포용하는 리더십을 펼친다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보다 용기가 없어진 것 같다는 지적들이 있는데요.
“서울시청은 울타리도 없고 경호도 없습니다. 시청은 항상 열려 있지만 청와대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감옥에 몇 년 살아 봤는데 감옥보다 더 답답한 곳이 청와대입니다. 어찌 보면 감옥보다 소통이 더 안되는 곳이 청와대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민생 현안을 접하기 어려운 자리이죠.”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지금 이 시점에 국민에게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시점인데 선거 패배를 놓고 청와대 책임론이니 당의 책임론이니 하며 책임회피를 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얻어야죠.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저는 모든 선거에서 완전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봐요. 소통도 부족해요. 청와대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둬야 합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를 청와대에 전진배치할 필요가 있어요. 국정홍보처도 부활해야 합니다.”
‘대통령 물러나라’고 할 힘 있으면 ‘김정일 물러나라’고 해야
―만약 지금 대통령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선 박근혜 전 대표와 좀 더 진지하게 얘기를 해야 하겠죠. 대통령께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이게 잘 안 됐어요.”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참모진의 인적 쇄신을 들고 나왔습니다.
“인적쇄신보다 국회의원 호주머니에 있는 시장, 군수, 구청장, 도의원, 시의원 공천권부터 국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번 기회에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첫째, 대통령은 국회와 당의 운영에서 손을 떼는 정치적 분권, 두 번째 지방분권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앙에서 관리를 선발해 지방에 내려보내 통치하는,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중앙집권 역사가 1000년 이상 지속돼 온 나라입니다. 이제 지방자치 역사가 15년여에 불과한데 과연 지방분권이라든가, 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의 권력을 분할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제가 도지사를 하면서 역시 한국은 중앙집권국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만, 대통령 권한이 우리처럼 강한 곳은 북한 김정일 말고는 없어요.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 한 지방발전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순은 계속될 것입니다.”
―분권을 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국회의원 공천방식을 예로 들면, 의지만 있으면 쉽게 바꿀 수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국회의원이 과도한 권력을 가진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방교육에 관한 것도 국회의원이 다 결정하고 지방세칙, 세목도 100% 국회가 정합니다.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되는 과정을 보세요. 주민이 살고 있는 시(市)가 없어지는데 중앙에서 결정하여 주민투표조차 안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지방선거 후 여권에서는 개헌(改憲)을 추진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개헌이 되겠습니까.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공상에 불과해요. 우리 국민이 그런 생소한 제도를 받아들이질 않아요. 4년 중임제도 현실을 몰라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물러나지 말라고 해도 5년이 되면 자동으로 물러나는 대통령에게 ‘MB 아웃’, ‘이명박은 물러나라’고 합니다. 그런 주장 할 힘이 있으면 차라리 ‘김정일 물러가라’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김문수 지사의 화법은 간략하고 명쾌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밑바닥을 중시하는 리더십, 현장과 서민 중심의 리더십,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글로벌 리더십”이라고 했다.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컸죠. 저는 늘 ‘잔이 넘친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여한이 없어요. 그런데 이 나라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좀 더 잘해 줬으면 해요.”
朴槿惠 전 대표 잘되기를 진심으로 희망
―이번 선거를 통해 자의든 타의든 2012년 대선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선거가 끝나니까 대선 질문을 많이 하더군요. 대선 출마는 아직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자리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국회의원이 되겠다’, ‘도지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이번 선거에서도 나타났습니다만, 한나라당이 젊은 층의 지지를 못 받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저는 젊은이들을 낙관적으로 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완전히 골수 반동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변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식은 변할 가능성이 많아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겠죠.”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고 침묵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지역구(달성)에서만 선거운동을 도왔는데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지는 바람에 모양새가 좀….”
이 대목에서 김 지사는 “저는 박근혜 대표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잘돼야 한나라당도 좋아요. 박 대표마저 안되면 한나라당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어요. 대선이라는 게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아무나 막 나간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라이벌이 잘돼야 상대도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북한보다 앞서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自由
―젊은 시절의 꿈이 사회주의 혁명이었다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뭡니까.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 통일국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중국에 밀리지 않고 일본을 능가하는 당당한 선진 일류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기업 하기 어려운 사람이 한국에서 기업활동하기 위해 오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병들고 아픈 이들이 한국에 와서 병을 고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희망합니다. 인간이 꿈꾸는 자유를 가장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희망합니다. 이런 게 제가 꿈꾸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김문수 지사는 곧장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달려갔다. 그리스와 격돌한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김 지사는 경기장의 대형 스크린을 쳐다보며 목이 쉬도록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날 한국팀은 그리스를 상대로 2대(對)0 완승했다.⊙
<정리=白承俱 月刊朝鮮 기자>
그런 그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시민(柳時敏)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19만 표 차이로 이겼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단일후보로 유 전 장관이 결정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대결을 ‘2012년 대선(大選) 전초전’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자 중 한 사람이 김문수 지사다.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은둔,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이 야당 후보에게 고전하고 있는 사이 김 지사는 유시민 후보에게 여유 있게 앞서며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군 중의 한 사람’으로 선명하게 부각됐다.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만난 김 지사는 전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다. 얼굴은 검게 그을러 있었고, 약간 피곤해 보였다. 그는 “선거를 치르고 나니 몸무게가 5㎏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김 지사에게 “한나라당은 패했지만 김 지사가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라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그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 오히려 억울하다”고 했다.
“저는 4년 동안 도지사를 하며 바닥을 다졌는데 유시민 후보는 한 달 유세하고도 200만 표 이상을 받았습니다. 득표율도 5%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났어요. 유 장관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은 분 아닙니까.”
―선거 과정에서 제일 큰 이슈는 뭐였습니까.
“수도권 규제 문제를 놓고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유 장관은 ‘김 지사가 한 게 뭐 있느냐, 규제 풀어서 된 것이 뭐냐’고 공격했죠. 저는 ‘대학생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대응했어요. 물론 인신공격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한때 같은 생각, 같은 고민을 하며 지낸 선후배 사이거든요. 저와 유 장관의 차이라고 한다면 저는 철이 들었고 유 장관은 아직 ‘젊은 청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죠.”
등 떠밀리다시피 출마
―이번 선거를 앞두고 김 지사는 도지사 출마냐, 아니면 한나라당에 복귀해 2012년 대선으로 직행할 것이냐를 놓고 오래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지사는 대선으로 가는 길의 날개이면서 동시에 십자가’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아는데, 도지사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사람들이 경기도지사 자리는 ‘정치인의 늪’이라고 해요. 서울시장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죠. 주위에서 ‘재선(再選)한 경기지사는 없다. 이번 선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많았어요. 저도 당(黨)과 청와대에 ‘내가 경기도지사에 다시 출마할 생각이 없으니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뜻을 전했는데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분이 없었어요. 경기도지사 후보도 서울시장처럼 몇 명이 나와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정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한나라당에서 출마를 원하는 분이 없으니 어떡합니까.”
그는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경기도지사 출마를 했다는 뜻을 전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선거 전날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낙승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결과가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현장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경기도는 서울시민들보다 불만이 많고, 지역 성향도 다양합니다. 특히 서울 외곽지역인 부천, 안산, 구리에서 고전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나 야권연합의 ‘승리’라기보다는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한나라당과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죠.”
바닥 훑는 현장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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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지방선거에서 치열히 경쟁을 벌였던 김문수(왼쪽) 지사와 유시민 전 장관. 두 사람의 대결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2012년 대선 전초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
“저는 한나라당이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할지 의문입니다. 위험해요. 특히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요. 현장에 다녀 보면 몸으로 느껴요. 경제가 어렵다 보니 현 정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답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늘고 있고. 특히 20~30대 젊은 사람들의 지지도가 문제입니다.”
김 지사의 상황판단은 바닥을 훑는 현장활동에서 나왔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경기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민심 흐름을 체크하고, 도정(道政)방향을 잡아 왔다. 그동안 그가 현장을 뛰어다닌 거리가 30여만km다. 지구 한 바퀴 거리가 약 4만km니까 그는 재임 중 지구 8바퀴를 도는 거리만큼 경기도 곳곳을 다니며 규제완화, 교통혁신, 서민복지를 추진해 왔다.
“정책은 교과서에 없다. 보고서에도 없다. ‘현장’은 살아 있는 보고서이며 교과서다.”
이것이 김 지사의 현장중심주의 행정철학이다. 김 지사는 한여름의 뙤약볕에서 힘겹게 모내기를 하는 농민들에게 농정(農政)에 대한 불만을 들었고, 그린벨트에 묶여 공장부지에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공장 주인의 하소연을 들으며 수도권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김 지사는 법 규정 하나를 고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하이닉스를 사례로 들었다.
“최근 정부는 환경부 고시를 개정해 경기도민과 기업체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이천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허용했어요. 하이닉스 이천공장은 상수원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환경부 고시에 따라 구리 배출 시설의 입지가 금지된 곳입니다. 초정밀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기존의 알루미늄 공정을 구리 공정으로 전환해야 해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방위로 뛰었습니다. 현장을 수차례 방문했고, 경기도민 결의대회도 10차례나 열었지요. 청와대, 정부, 국회를 방문해 건의한 것이 32차례, 범도민 1000만명 서명운동·대책회의·공청회·토론회를 27차례나 열었어요. 마침내 환경부 고시를 바꿈으로써 그 결실을 맺은 겁니다.”
하이닉스 사례에서 보듯 김 지사는 도지사 재임 중 수도권 규제 철폐의 선봉장이었으나 원하는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에게 “현재 규제완화 수준은 얼마나 되는가”라고 물었다.
“저는 규제완화의 기준을 싱가포르나 중국과 경쟁해서 밀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제 생각과 현 정부의 규제완화 수준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내 생각의 30% 정도 완화됐다고 봐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께서 많은 규제를 풀었는데, 아마 지난 30년 동안 가장 많이 규제를 완화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겁니다. 그런데 나머지 70%를 푸는 일이 쉽지 않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요. 저는 취임 초기에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수차 요청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회 100조각 모은다고 물고기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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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경기지사가 지난 5월 26일 동두천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
“밥상에 오른 회 한 토막을 보는 것과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보는 것처럼 완전히 다릅니다. 회 100조각을 모은다고 물고기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김 지사는 현장을 중시하는 탓에 밤 늦게 공관에 돌아와 서류를 결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료와 결재서류를 살펴보고 이메일에 답장을 하다 보면 12시를 넘기는 일이 흔하다. 컴퓨터 책상 앞에 밤늦게 매달려 있는 김 지사에게 부인 설난영씨는 “이런 게 바로 김문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현장에 대한 집착은 20대(代)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면서부터 생겨났다. ‘현장’은 청년 김문수의 전부였다. 현장은 이념의 기반이었고 혁명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김문수가 왜 이토록 현장을 챙기는지는 그의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1970년 서울대생이 된 김문수는 용두동 판잣집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당시 대학 선배인 심재권(沈載權) 전 의원의 연설을 듣고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그해 11월 노동자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이 터지면서 김문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김문수의 過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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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노동운동을 할 무렵의 김 지사. 철저한 현장주의자, ‘김문수 스타일’은 이때부터 생겨났다. |
당시 그는 진정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불과 몇 년 사이 안전관리기사 2급, 열관리기능사, 환경관리기사 2급 등 자격증 8개를 땄다. 김 지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노동운동은 밤새 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하는 학생운동과 같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기계와 씨름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동료 노동자와 더불어 고민하고 모색하는 실천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지사는 1978년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4년에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이 됐다. 1985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을 주도했다.
그는 1986년 인천 5·3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구속돼 2년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한다. 그 당시 노동자 김문수는 노동자·농민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김 지사의 말이다.
“정치를 공부하거나 뜻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오로지 혁명만을 생각했습니다. 혁명은 삶과 죽음의 줄타기입니다. 그것도 사심에 의해서 될 수는 없습니다. 뜻하지 않게 제가 저주했던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하고 경기도지사까지 됐는데, 제가 경기지사가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시 저는 혁명가가 될 생각밖에 없었어요. 멋있는 혁명가가 돼 세상을 기가 막히게 바꾸겠다는 생각이 온 머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혁명은 실패하고 정치인이 됐으니 좀 기괴한 인생이죠.”
김 지사는 한때 자신에 대해 “정치를 공부하거나 수업을 받지 않은 기괴한 정치인, 눈치도 없고 융통성도 없어 정치에 부적합한, 사회와 시대가 낳은 변종 정치인”이라 자평(自評)하기도 했다.
姜三載의 제의로 민자당 입당
김 지사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따르다 감옥에 간 사람이 50명이 넘는다고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시민 장관의 동생 유시진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운동하다 구속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망하고 동구권이 차례로 붕괴됐어요.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고, 대한민국도 바뀌었어요. 안타깝게도 지금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게 되냐? 우리가 생각하던 혁명의 세상보다 한국은 더 잘살고 있다. 어딜 가든 음식이 넘치고 옷도 넘친다. 우리는 이미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감옥에서 나온 김문수는 장기표(張琪杓)씨가 1990년에 창당한 민중당에 들어가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위원장과 민중당 노동위원장을 지냈다. 1992년 민중당 대표를 지낸 김낙중씨의 간첩행위가 적발되면서 그는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다.
그는 1994년 강삼재(姜三載) 민자당 기획조정실장의 제의로 입당한다. 김 지사의 민자당 입당 변은 이렇다.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 보니, 적어도 민자당이 군사독재 청산과 자유민주주의 길을 여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은 ‘왜 그쪽으로 들어갔나’고 비난하더군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은 민주당에 있어야 한다는, 독선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어요. 자기들에게 안 오면 ‘변절’이라고 생각했죠. 난 두 정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문수 지사는 이듬해 경기도 부천소사 지역구에 출마, ‘생활정치’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수도권의 하루 출퇴근 인구가 300만명, 서울·경기 간 하루 이동인구가 100만명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유권자에게 “지옥철을 해결하겠다”며 “지옥철, 대통령도 같이 타 봅시다”고 제안했다. 경인선 복복선화에도 그의 노력이 컸다.
그가 경기도지사가 된 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GTX는 지하 40~50m의 터널을 뚫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32분, 강남에서 동탄까지 18분이면 충분하다. 경기도의 끝과 끝을 1시간 내에 연결할 수 있다.
김 지사는 2년에 걸쳐 연구용역을 끝낸 후 2008년 국토해양부에 GTX 프로젝트를 건의했다. 그는 “국토해양부가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지방의 눈치를 살피느라 사업이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전략기획위원장·노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매년 국정감사 베스트 의원, 국회 출입기자단이 뽑은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배지를 단 뒤에도 국회의원회관보다는 ‘현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맨홀 뚜껑 들추다 미친 사람 취급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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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29일 용인에서 택시 대기줄에 차를 세워 놓고 동료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그는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어느 해 자신의 수행비서로부터 “의원님. 제가 지난 365일 중 360일을 출근했습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혁명을 꿈꾼 그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99년 전국보육시설협회와 결식아동 돕기 운동을 펼쳐 ‘김결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경기도지사로 취임한 후 결식아동을 가장 먼저 챙겼다. 그가 추진해 온 ‘무한돌봄’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취약계층을 ‘무제한·무기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였다. 현재 2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무한돌보미’가 돼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서고 있다. 탤런트 최불암, 가수 인순이, 배우 박해미씨가 무한돌보미 홍보대사다.
김 지사는 최근 민주당과 일부 교육감들이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잣집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무상급식을 하자는 ‘묻지마 무상급식’은 현실성이 없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입니다. 부잣집 아이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하기 위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지원비를 줄어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 중심의 혁명가적 발상은 ‘택시기사 김문수’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09년 1월 그는 택시기사가 됐다. 도지사로 있으면서 택시기사 자격증을 딴 것이다. 그는 1년 넘게 주말을 이용해 경기도 26개 시·군(市郡)에서 택시 운전을 했다. 하루 7~12시간씩 총 173시간 동안 2368km를 달렸다. 그는 “택시 면허증은 주민 생활과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허가증”이라고 했다.
“경기도지사는 8600여 명의 공무원을 지휘하고 8500가지의 업무를 결재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떤 보고서도 생생한 민심의 실상을 알려주지 못해요. 택시면허는 도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핸들을 잡아보니 저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어요. 현장은 최고의 보고서이자 교과서이고, 손님들의 지적은 언제나 따끔하고 정확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김 지사의 택시 운전을 ‘정치적 쇼’라고 비판합니다.
“혹자는 ‘쇼 그만하라’고 하는데 이런 쇼는 얼마든지 해야 해요. 쇼는 분명하지만 열두 시간씩 차를 몰아야 하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쇼입니다. 저는 도지사는 물론, 대통령도 꼭 해 봐야 할 쇼라고 생각해요. 택시를 몰며 하루종일 땀을 흘려 보면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택시기사와 똑같은 조건에서 일했어요. 교대시간도 그대로 따랐어요.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12시간 택시를 몰기도 했습니다. 택시는 도정(道政)의 종합체험장이자 달리는 집무실, 찾아가는 집무실이었습니다.”
골프 못하는 골프도(道)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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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지사의 멘토역할을 하고 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
“1996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선배 의원들이 ‘골프를 시작하라’고 권유했어요. 골프를 못 치면 큰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안 했어요. 국회의원 가운데 자기 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 접대였죠. 대신 등산과 배드민턴을 했습니다. 도지사가 된 후 골프 권유는 더욱 강해졌지만 아직까지 배우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김 지사는 도지사 취임 후 경기도에 모두 36건의 골프장 허가를 내주었다. 태국이나 필리핀, 중국, 일본으로 나가는 골프 이용객을 국내에 잡아 두기 위해서였다.
“골프 외유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한해 2조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이것을 보고 저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골프장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그랬더니 골프를 못 치는 제게 ‘골프에만 관심 있는 지사’라며 비난하더군요.”
김문수 지사는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엘리트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제도권에 안주하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주의 혁명가에서 보수주의 정치인으로 전향한 계기는 대학 스승이었던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다 보수 우파 쪽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뭡니까.
“개인의 실패와 좌절, 세계사적인 사회주의의 실패, 그리고 한반도 북쪽의 기형적 사회주의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사회주의는 원래 굉장히 이상적인 사상입니다. 만인이 평등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 일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해도 되고, 언론의 자유도 무궁무진하고, 문화예술도 꽃 피우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요.”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보수우파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북한을 보는 시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북한 인권에 눈감고 있는 친북세력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세력입니다. 북한에는 가난과 고립, 정치적 억압밖에 없어요. 그게 무슨 진보입니까.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진보와 우리나라의 진보는 완전히 달라요. 친북세력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명칭의 대혼란이 야기한 언어 사기(詐欺)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라는 바이블 만들어야
―한나라당의 이념적 지향점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라는 정통 바이블을 만들어야 해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의 적(敵)은 누구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파악해야 해요. 그 다음에 그런 바이블을 가르칠 수 있는 목사, 전도사를 양성하여 전국에 파견해 전도를 해야 합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격퇴해 통일까지 이루자”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폭침 대응전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천안함 사건은 아주 교묘한 테러였기 때문에 즉시 반격도 못하고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도발 즉시 대응이 어려웠죠. 우리 정부는 확성기를 전방에 달아 대북(對北) 심리전을 실시하겠다고 했다가 북의 반발이 예상되자 흐지부지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탈북자들이 주축이 된 대북방송과 민간인들의 삐라 살포가 훨씬 효과가 있다고 봐요. 정부는 그런 방송이나 삐라 살포를 물밑으로 지원해 주면 됩니다.”
감옥보다 더 답답한 곳이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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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지사는 친북세력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입장이다. 천안함 46용사의 49재에 참석해 순국 장병의 명복을 빌고 있는 김 지사. |
“한나라당은 비전이 뭔지, 시대적 과업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종교로 말하면 경전도 없고, 신학교도 없고, 설교도 없고, 전도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선거에 나가면 바로 깨지는 거죠. 한나라당은 13년 동안 역사성을 유지하고 정체성이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원 교육이 너무 안돼 있어요. 4대강도 이게 뭔지, 홍보도 안되고 방어도 안돼요. 세종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안이냐, 수정안이냐 하는데 이건 대한민국 수도 분할이냐, 유지냐가 본질 아닙니까.”
―지방선거 이후 대통령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시야를 넓게 갖고 감동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촛불시위의 여파로 조심스러워하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대통령이 위축되면 통 큰 리더십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실력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정신을 가다듬어 넓게 포용하는 리더십을 펼친다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보다 용기가 없어진 것 같다는 지적들이 있는데요.
“서울시청은 울타리도 없고 경호도 없습니다. 시청은 항상 열려 있지만 청와대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감옥에 몇 년 살아 봤는데 감옥보다 더 답답한 곳이 청와대입니다. 어찌 보면 감옥보다 소통이 더 안되는 곳이 청와대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민생 현안을 접하기 어려운 자리이죠.”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지금 이 시점에 국민에게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시점인데 선거 패배를 놓고 청와대 책임론이니 당의 책임론이니 하며 책임회피를 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얻어야죠.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저는 모든 선거에서 완전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봐요. 소통도 부족해요. 청와대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둬야 합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를 청와대에 전진배치할 필요가 있어요. 국정홍보처도 부활해야 합니다.”
‘대통령 물러나라’고 할 힘 있으면 ‘김정일 물러나라’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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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김문수 경기지사가 분당선 연장 공사구간인 지하 45m 한강하저터널 내부를 둘러보며 GTX건설에 필요한 지하터널 시공 기술을 확인하고 있다. |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선 박근혜 전 대표와 좀 더 진지하게 얘기를 해야 하겠죠. 대통령께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이게 잘 안 됐어요.”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참모진의 인적 쇄신을 들고 나왔습니다.
“인적쇄신보다 국회의원 호주머니에 있는 시장, 군수, 구청장, 도의원, 시의원 공천권부터 국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번 기회에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첫째, 대통령은 국회와 당의 운영에서 손을 떼는 정치적 분권, 두 번째 지방분권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앙에서 관리를 선발해 지방에 내려보내 통치하는,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중앙집권 역사가 1000년 이상 지속돼 온 나라입니다. 이제 지방자치 역사가 15년여에 불과한데 과연 지방분권이라든가, 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의 권력을 분할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제가 도지사를 하면서 역시 한국은 중앙집권국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만, 대통령 권한이 우리처럼 강한 곳은 북한 김정일 말고는 없어요.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 한 지방발전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순은 계속될 것입니다.”
―분권을 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국회의원 공천방식을 예로 들면, 의지만 있으면 쉽게 바꿀 수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국회의원이 과도한 권력을 가진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방교육에 관한 것도 국회의원이 다 결정하고 지방세칙, 세목도 100% 국회가 정합니다.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되는 과정을 보세요. 주민이 살고 있는 시(市)가 없어지는데 중앙에서 결정하여 주민투표조차 안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지방선거 후 여권에서는 개헌(改憲)을 추진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개헌이 되겠습니까.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공상에 불과해요. 우리 국민이 그런 생소한 제도를 받아들이질 않아요. 4년 중임제도 현실을 몰라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물러나지 말라고 해도 5년이 되면 자동으로 물러나는 대통령에게 ‘MB 아웃’, ‘이명박은 물러나라’고 합니다. 그런 주장 할 힘이 있으면 차라리 ‘김정일 물러가라’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김문수 지사의 화법은 간략하고 명쾌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밑바닥을 중시하는 리더십, 현장과 서민 중심의 리더십,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글로벌 리더십”이라고 했다.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컸죠. 저는 늘 ‘잔이 넘친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여한이 없어요. 그런데 이 나라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좀 더 잘해 줬으면 해요.”
朴槿惠 전 대표 잘되기를 진심으로 희망
―이번 선거를 통해 자의든 타의든 2012년 대선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선거가 끝나니까 대선 질문을 많이 하더군요. 대선 출마는 아직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자리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국회의원이 되겠다’, ‘도지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이번 선거에서도 나타났습니다만, 한나라당이 젊은 층의 지지를 못 받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저는 젊은이들을 낙관적으로 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완전히 골수 반동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변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식은 변할 가능성이 많아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겠죠.”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고 침묵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지역구(달성)에서만 선거운동을 도왔는데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지는 바람에 모양새가 좀….”
이 대목에서 김 지사는 “저는 박근혜 대표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잘돼야 한나라당도 좋아요. 박 대표마저 안되면 한나라당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어요. 대선이라는 게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아무나 막 나간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라이벌이 잘돼야 상대도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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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1월 신한국당 이재오, 이우재, 김문수, 홍문종 의원(사진 왼쪽부터) 등 초재선의원 20여명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DJP 단일화 합의문’ 서명을 규탄하고 ‘내각제 개헌음모’를 비판했다. |
북한보다 앞서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自由
―젊은 시절의 꿈이 사회주의 혁명이었다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뭡니까.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 통일국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중국에 밀리지 않고 일본을 능가하는 당당한 선진 일류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기업 하기 어려운 사람이 한국에서 기업활동하기 위해 오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병들고 아픈 이들이 한국에 와서 병을 고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희망합니다. 인간이 꿈꾸는 자유를 가장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희망합니다. 이런 게 제가 꿈꾸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김문수 지사는 곧장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달려갔다. 그리스와 격돌한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김 지사는 경기장의 대형 스크린을 쳐다보며 목이 쉬도록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날 한국팀은 그리스를 상대로 2대(對)0 완승했다.⊙
<정리=白承俱 月刊朝鮮 기자>
| ▣ 숫자로 본 김문수 지사의 택시운전 기록 ⊙ 택시운행 누적거리 173시간 동안 2368km ⊙ 요금 총액 132만원, 가스비와 사납금을 뺀 순수입 20만6000원 ⊙ 하루 최고 수입 4만3900원 ⊙ 태운 승객 수 400여 명, 최장거리 운행은 수원에서 충남 아산까지 ⊙ 전국 개인 및 법인택시 기사들이 주는 ‘2009 택시희망상’ 수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