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흔들리는 司法府의 首長李容勳 대법원장 : 월간조선

사법부가 흔들리고 있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몰아주기 배당 논란으로 촉발된 단독판사들의 집단행동부터 강기갑(姜基甲) 민주노동당 대표의 공중부양·전교조 시국선언·MBC PD수첩 광우병 조작 보도에 대한 잇단 상식 밖 무죄 판결, 용산사건 수사기록 열람 허용 등 최근 법원은 ‘사건’의 연속이다. 도대체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원에 최근 들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 중심에 이용훈(李容勳) 대법원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보수적인 법관 사회에서 늘 ‘진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 대법원장. 그는 올해 초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판결 자체에 대한 언급을 피한 채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켜내겠다”며 ‘문제 판사’를 두둔했다. 이 대법원장은 흔들리는 사법부의 주역인가, 아니면 방관자인가.

암기력 좋고 판결문 잘 쓰는 판사

‘이용훈 판사’는 변호사 생활을 했던 기간을 빼면 올해로 법관 37년째다. 판사 생활 시작은 1968년 대전지법에서 했다. 이용훈 판사가 대전지법 강경지원에서 근무하던 1969~70년 당시 강경지원장인 박대균(朴大均)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 외운 것을 머릿속에 그대로 집어넣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더라고요. 사법고시 붙은 사람들 다 머리 좋다는 얘기 듣는데, 이용훈 판사는 당시 같이 있던 법원 사람들도 머리가 좋다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공부도 지독하게 많이 했고. 당시 법전은 일본어로 된 것이 많았는데 (이 판사는) 일본어를 빨리 익혀 일본 법전도 대단히 빨리 이해하더라고요. 당시 강경지원은 까다로운 곳이었는데 판결문을 잘 썼죠. 그래서 (지금) 대법원장으로 있는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서 이 대법원장을 모셨던 배석(陪席)판사들도 ‘핵심을 재빠르게 파악할 줄 알고 정말로 머리가 좋고 판단이 빠른 판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2005년 ‘이용훈 판사’가 대법원장이 됐을 때만 해도 법조계 내부에서 판사로서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법원장으로 지명되기 전 당시 청와대가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대법원장감 1위’로 꼽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윤관(尹?)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났을 때 이 대법원장은 처음으로 대법원장 물망에 올랐다. 강원도 출신으로 이 대법원장보다 고등고시 사법과 두 기수 선배인 최종영(崔鍾泳) 대법관과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같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등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때부터 이 대법원장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변의 말이다.

“대법원장 한 차례 고배 뒤 각종 모임에 참가”

한 법원장급 인사의 설명이다.

“원래는 정치적인 면이 거의 없으셨던 분인데 한 차례 대법원장 후보로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생각이 변하셨을 거예요. 정치적인 모임도 거의 안 가셨던 분인데 대법관직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있으면서 호남 지역 (출신 인사들의) 모임도 참가하고, 정치인들도 만나고 하셨죠.”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소추를 당하자 변호를 맡아 노 대통령과의 인연을 맺고, 이후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마침내 제14대 대법원장에 취임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 대법원장이 하늘에서 내려준 관운(官運)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이 대법원장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광주서중과 광주일고, 서울법대를 나와 1962년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이영애(李玲愛) 자유선진당 의원의 남편인 김찬진(金贊鎭) 변호사가 그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면서 동시에 고시도 함께 합격한 막역한 사이고, (주)삼양사 대표이사를 지낸 박종헌(朴鍾憲)씨 등도 광주일고와 서울법대를 함께 나왔다.

그의 동창생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인물은 광주지방법원장을 끝으로 법원을 떠난 박영식(朴英植) 변호사다. 전남 목포 출신인 박 변호사는 이 대법원장과 광주일고, 서울법대, 15회 고시 사법과 동기다. 이 대법원장과 박 변호사 모두 주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실제 성적도 우수했다.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지만 둘은 묘한 라이벌 관계였다. 거의 동일한 출신 배경을 지니고 있으면서 같은 길을 걷는 둘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운명과도 같은 ‘동행인’이었다.

법조계 인사들은 “그런데 박 변호사가 이 대법원장에게는 큰 장벽이었다”고 말한다. 둘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의 증언이다.

“정말 막역한 친구지만 강력한 라이벌 관계였죠. 박 변호사는 당시 이 대법원장보다 더 후(厚)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대법원장이 초임(初任)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발령받은 데 비해 박 변호사는 서울지방법원으로 발령받았잖아요(법원에선 초임을 중앙에서 하는 것이 더 잘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이 대법원장에겐 친한 친구면서도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아마 박 변호사는 이 대법원장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어요. 둘 다 실력으로 훌륭하지만, 박 변호사는 성격도 좋고 대인관계도 원만해 신망까지 두터웠습니다. 같은 지역에 학교까지, 게다가 사법시험까지 함께 붙은 동기가 저만큼 치고 나가는데 (이 대법원장의) 스트레스가 심했을 거예요. 끝까지 간다면 자신의 자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경쟁자의 갑작스런 낙마로 행운

지난 2005년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후 국회 인사청문회서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용훈 대법원장.

박 변호사의 법원 내 신망이 여전히 두터운 상황에서 이 대법원장을 둘러싼 여건은 좋지 못했다. 바로 제3차 사법파동이 발생했던 것이다. 서울 지역 소장 단독판사들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채택하고, 법관 회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나서자 박 변호사의 뒤를 이어 1992년 8월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을 맡은 이 대법원장은 이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 대법원장은 당시 이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은 내가 막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며 젊은 판사들 편에 서 후배 법관들의 신망을 얻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김덕주(金德柱) 당시 대법원장의 눈 밖에 나게 됐다. 강력한 라이벌인 박 변호사가 건재한 데다 대법원장의 눈 밖에까지 났으니 이 대법원장의 앞날은 그야말로 캄캄했다.

그러던 중 정권이 바뀌어 김영삼(金泳三) 정권 때인 1993년 상황이 급반전한다. 김덕주 대법원장과 당시 광주지방법원장이던 박영식 변호사가 동시에 법원을 떠나게 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고위공직자 재산을 공개하자 김덕주 대법원장은 변호사 개업 시절 경기도 일대 임야를 당시 미성년자인 장남 등의 명의로 매입했다는 투기 의혹을 받았고 결국 잔여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박영식 법원장도 부인이 농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불법 사실이 있었다는 의혹을 안고 법관 생활을 접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가릴 것 없이 불어닥친 이른바 ‘재산 파동’이었다. 미처 의혹을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혁명 같은 상황이었다.

어찌됐든 이 대법원장의 앞날에 끼었던 구름이 한꺼번에 걷혔다. 앞날에 장애가 될 것이 뻔한 대법원장과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이 동시에 법원을 떠나버렸으니 말이다.

이 대법원장의 운(運)은 계속됐다. 1993년 9월 새 대법원장으로 광주고등학교를 나온 호남출신인 윤관 대법관이 임명됐다. 윤관 대법관은 평소 이 대법원장이 따르던 인물이다. 윤 대법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이 대법원장을 대법관 1순위인 법원행정처 차장에 임명했다. 이듬해 이 대법원장은 1994년 마침내 대법관 자리에 오르게 된다. 법원 관계자는 “앞날이 캄캄했던 사람이 불과 2년 만에 구름을 뚫고 햇살을 받게 된 것은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박영식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하고 직접 사무실까지 찾아갔지만 “적절하지 못하다”며 거절당했다.

출장 때도 반경 100㎞ 내 교회 찾아가 예배

이 대법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정평이 나있다. 대법원에선 “원장님은 예수님하고 대화하신다”는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 대법원장은 청소년기까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이 되면서 기독교 신자이던 어머니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그의 신앙심에 대해 지독하다는 표현을 쓴다. 대법원장으로 외국 출장을 가더라도 교회가 출장지의 반경 100㎞ 이내에 있으면 반드시 찾아가 예배를 한다고 한다. 만약 교회가 없으면 스스로 가족 예배를 올릴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의 변호도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부장관과 문재인(文在寅) 변호사 등이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두 차례나 거절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기도를 올리고 나서 맡게 됐다고 한다. 이 대법원장을 옆에서 보좌했던 K 변호사는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몰랐는데 원장님을 보면 ‘신앙심은 단순히 믿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어떤 실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대법원장 측근들에 따르면 이 대법원장은 국회에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앞두고도 기도를 했는데 그때 212표를 눈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이 대법원장은 실제 국회 표결에서 212표의 찬성표를 받았다. K 변호사는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 종교를 강요하거나 하는 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료였던 판사가 변호사 돼도 안 봐줘

그를 잘 아는 한 법조인은 “그는 좌(左)도 우(右)도 아니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원칙이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 변호를 맡은 그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民辯) 등 일부 진보 진영에서 반대했던 것도 그가 ‘이념’보다는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대법원장이 부장판사를 했을 때 배석판사를 했던 한 변호사의 말이다.

“정(情)도 많으신 분이지만 고집으로 비칠 만큼 원칙주의자입니다. 굉장히 가깝게 지내신 고등법원 부장판사님이 계셨는데요. 그분은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해 나가셨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변호하는 중요한 효력정지사건이 저희 재판부에 들어왔습니다. 상당히 이해관계가 큰 사건이었는데 고심하다가 결국 그 효력정지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상당히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잘 알아도 원칙은 원칙이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현재 이 대법원장 밑에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맡고 있는 강일원(姜日源) 판사는 “예산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보면 원장님이 결벽증이 있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엄격하신 분입니다. 돈 관리 정말 철저하게 하시는 분이죠. 원장님실에 소파가 있었는데 전임 최종영 대법원장이 쓰시던 거라 천이 뜯겨 나가고 허름했습니다. 그거 그냥 다른 소파로 바꾸면 되는데 그런 거 안 하고 천만 갈라고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배석판사 출신 한 변호사도 일화를 털어놨다.

“예전 원장님이 지금의 고등법원 특별부장(지금의 행정부) 시절이었습니다. 행정사건 가운데 토지수용사건을 많이 처리했습니다. 사방에서 신도시 개발하면서 없던 제도가 생겨났고 보상금 액수를 다투는 경우가 많았죠. 이 때문에 토지에 대한 감정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판사들이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죠. 이 경우 꽤 많은 출장비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갑갑한 법원에서만 일하던 판사들이 모처럼 법원을 떠나 바람도 쐬고 아껴 쓰면 돈도 좀 남으니까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특별부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리고 실제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면 1박2일로 다녀왔다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이 들어오고 나서 출장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원장님은 ‘그거 직접 갈 필요가 있나. 시간도 없는데 판사들이 왜 가느냐’라고 말씀하셨죠. 사실 원장님 말씀대로 감정인(鑑定人)으로부터 자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거였거든요.

이후 토지수용사건 맡는 게 원장님이 들어오셔서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죠. 그러다 보니 토지수용사건을 맡고 있던 다른 재판부도 출장을 못 가게 됐습니다. 덕분에 돈 절약은 됐지만 판사들은 좀 그랬죠.”

변호사 시절 수임료 신고 누락

이 대법원장은 2006년 서울중앙지법이 대검 중수부가 청구한 론스타 관련 영장을 잇달아 기각해 본인의 변호사 시절 외환은행 측 사건 수임 경력이 논란이 되자 “수임료 중 10원이라도 탈세를 했다면 대법원장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수임료 일부에 대해 국세청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밝혀져 탈세 의혹을 받기도 했다. 변호사 시절이던 2003년 4월~2005년 6월까지 진로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세나인베스트먼트(골드만삭스 계열) 측 대리인을 맡으며 선임료 및 성공보수금으로 8차례에 모두 2억5000만원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성공보수금으로 받은 5000만원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종합소득세, 주민세 등 세금 2000여만 원을 내지 않은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세무사 직원이 관련 내용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5000만원을 누락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 대법원장을 아는 다수의 법원 관계자는 이 해명을 믿는 분위기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만약 뭔가가 있었으면 검찰 쪽에서 가만히 있었겠어요. 진작에 다 까발려졌겠죠”라고 말했다. 강일원 기조실장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 점에 대해 제가 정말 자신이 있습니다. 저처럼 모셔본 사람들은 절대로 원장님이 그렇게 하실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할 겁니다”고 했다.

속 생각 담아두지 못해… 관훈클럽 토론도 나가려고 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임기 초반 각종 튀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9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법원이 재판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밀실에서 비공개 진술을 받아 놓은 조서를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놓느냐”고 말한 것 등이 그것이다.

지인들은 이 대법원장의 이런 발언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한 고법 부장판사의 얘기다.

“굉장히 솔직하고 순수하신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죠. 어떤 말을 하면 복선을 깔거나 꾸미지 않습니다. 그럴듯하게 좋은 말로 포장하거나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을 잘 아는 사람은 어떤 말씀을 하더라도 오해하지 않을 텐데 잘 모르는 사람이 만약 어떤 말을 들으면 오해하기 십상이죠. 그러다 보니 임기 초반에 검찰과 갈등을 일으키는 발언을 하시거나 그러셨잖아요. 원래 성격이 그러신 분인데 초반에는 그게 아마 제대로 통제가 안되셨을 거예요.”

이 대법원장 밑에서 배석판사를 한 Y 변호사의 말이다.

“솔직하고 굉장히 인정도 많은 분입니다. A라는 생각을 담아두고 B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분이죠. 이러다 보니 상대방한테 얘기할 때 상대방 기분은 생각 안 하고 불쑥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배석판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자기 생각을 담아두지 않고 있는 대로 다 드러내는 분이니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거죠.”

또 다른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호불호(好不好)가 무척 강한 분입니다. 한번 좋아한 사람은 철저히 신임하지만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은 완전히 찍어 놓죠. 본인이 그렇다 보니 밑에 있는 사람들이 직설적으로 말해도 별로 오해하지 않더라고요.”

배석판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판단력이 빠르시고 두뇌가 좋다 보니까 어찌 보면 성격이 좀 급한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배석판사들이 판결문을 써서 부장(이 대법원장)님께 검토를 받으러 가면 원장님에게 1분이 멀다 하고 계속 불려갔습니다. 판결문 읽어내려 가시다가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김 판사, 이 판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가서 말씀드렸죠. 그러다가 바로 아랫부분에 궁금증이 생기시면 1분도 채 되지 않아 또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배석판사들이 ‘부장님, 의문이 생길 때마다 부르시지 마시고 다 검토하시고 나서 한꺼번에 말씀을 좀 해주세요’라고 건의했습니다. 부장님과 방이 떨어져 있는데 구두 갈아신고 양복 입고 이러면 보통 불편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기억이 납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해석이다. “약간 성급하시죠. 구술주의나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빨리 성과를 냈으면 하는 대법원장님의 성격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빨리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고등법원 다른 부장판사는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그분의 페이스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뭐든 빨리빨리 하는 스타일이시죠. 그러다 보니 신중치 못하다는 표현도 나올 수가 있겠죠.”

헌법재판소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했다. “생각나면 참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데 쉽게 말하는 측면이 있으시죠.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하고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말을 해서 사고가 몇 번 있었잖아요. 지금은 많이 조심하시면서 그런 문제가 없죠. 처음에는 논란이 꽤 됐었는데 그대로 했다가는 장난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 대법원장은 2006년 10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대법원장으로선 처음으로 참석하려고 했다. 북한 핵실험만 아니었다면 관훈클럽 토론에 나선 첫 대법원장으로 기록될 뻔했다.

대중 연설 잘하고 말하는 것 좋아해

이 대법원장은 토론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 부분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그를 보좌했던 한 고법 부장판사의 말이다.

“대법원장님은 ‘소통’하고 ‘국민을 섬겨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회식을 주재하시면 전원에게 모두 다 발언을 시킵니다. 그 얘기 듣고 나면 받아서 (발언을) 하시는 거죠.”

이 대법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대법원장 전용 식당을 만들었다. 보통 대법원장은 특별히 약속이 없으면 식당에서 음식을 대법원장실로 가져다 먹는데 그는 여러 법원관계자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법 부장판사의 계속된 설명이다.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법관 연수하면 본인이 직접 얘기하고 싶어하는데 젊은 판사들이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고 간부들이 말리기도 했습니다. 판사들 가운데는 조용한 분들이 많은데 좀 특이하게 대중 연설을 잘하시고 좋아하시죠. 연설 실력에 감탄하는 판사들이 많습니다.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말할 때도 법원행정처 처장이나 차장을 통해서 말할 수도 있는데도 직접 불러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죠. 섬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교회 다니는 분들이 많이 쓰는 말인데,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법원이 국민을 섬긴다는 데에 일부 판사들의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 근엄하고 묵직한 대법원장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했던 선배 판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당시 이런저런 말 때문에 구설수에도 올랐죠. 원래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데 좀 근엄하거나 대법원장으로서 보여야 할 무게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 좀 있었죠. 그래서 내가 취임 초기에 만날 일이 있을 때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어요. 그러니까 알겠다며 묵묵하게 들었습니다. 지금은 문제가 없잖아요. 훌륭하게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모셔 보면 보수적인 분”

2010년 1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법부 개혁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원칙주의자라고는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우리법’ ‘진보’ ‘노무현 스타일’ 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변호를 맡았고 노무현 정부 청와대 386과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직간접 도움으로 대법원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 대법원장 스스로는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정말 중도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생각을 보수, 진보, 중도의 3분(分)법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용훈 부장판사’ 밑에서 배석을 했던 한 변호사의 말이다.

“판사 생활을 40년 하셨는데 진보적이 될 수 있겠어요 언제 진보적인 판결을 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잘못된 거나 관행을 개선하려다 보니까, 노력하다 보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죠. 옆에서 모셔 보면 보수적인 분입니다.”

다른 변호사는 약간 시각이 달랐다. 이 변호사는 “그분 세대의 잣대로 보면 약간 진보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가 내린 판결을 보면 보수적인 판결도, 진보적인 의견도 모두 있다. 1999년 7월 민변이 “북한주민 접촉신청을 불허한국가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이 대법원장은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북접촉창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판결은 지금 ‘한나라당 노선’과 비슷하다. 남편의 잦은 폭행으로 ‘황혼이혼’ 소송을 낸 70대 여성에게 “혼인생활의 강요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에만 이혼할 수 있다”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 어린이 살리기 의약품지원본부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북한이 반국가 단체라는 사정이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구호와 지원을 금지할 명분은 못 된다”며 이 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386과 우리법연구회 판사 지지로 대법원장 돼 어쩔 수 없을 것”

그렇다면 이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는 어떨까. 그는 대법원장 취임 후 “우리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난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용기가 요구된다”며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진상 조사에 힘을 보탰다. 실제 대법원이 과거 시국·공안사건의 판결문 재검토에 들어가기도 했다. 원칙을 말한 것 같지만 그러한 시점에 그 같은 말을 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를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한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를 맞췄다는 소리를 듣게 할 수도 있다.

현직에 있는 한 법원장의 말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보수적이라는 점은 알지만 결국은 태생(胎生)적인 한계가 있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고,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의 지지를 받아 대법원장에 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다수 중견법관의 불만이 예상됐던 일부 대법관을 임명한 거고요.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쪽의 지지를 받아 대법원장에 올랐고,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죠.

지금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에게 어쩌지 못하는 것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본인이야 골치 아프고 해체시키고 싶겠지만 태생적 한계가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시끄러워도 그냥 이렇게 뾰족한 수가 없이 임기(2011년 9월 만료)를 마치실 거예요.

보수적이고 원칙을 지켰던 분이라고 하더라도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고, 우리법연구회 같은 면에서는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