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계올림픽·아시안게임 앞둔 金仁建 태릉선수촌장

“김연아 金 확신, 쇼트트랙 등에서 金 6개 자신”

  • : 곽창렬  lions363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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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보이’ 박태환은 태릉에서 훈련해야”
⊙ 코칭스태프에 물으면 대충 感이 와
⊙ 국가대표 선수 폭행 보고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경찰에 고발

金仁建
⊙ 1944년 서울 출생.
⊙ 경복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 1986년·90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감독,
    SBS 프로농구단 감독 등 역임. 現 태릉선수촌장.
⊙ 상훈: 국민훈장 석류장, 체육훈장 기린장.
“8초8, 8초7.”
 
  밴쿠버 동계올림픽(2월 12일 개막)을 한 달여 앞둔 국가대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김기훈(金琪焄) 감독의 목소리가 태릉선수촌 국가대표 빙상 훈련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대회가 임박한 탓에 훈련 중인 국가대표 남자선수 5명과 김기훈 감독 얼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김인건 태릉선수촌장은 이날도 어김없이 훈련장을 찾았다. 선수들의 훈련 지원을 총책임지는 김 촌장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김 촌장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가볍게 목례만 하고 10분 동안 훈련 장면을 본 뒤 훈련장에서 빠져나왔다.
 
  김인건 태릉선수촌장은 1966년 태릉선수촌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22세의 나이로 국가대표 농구선수가 돼 선수촌에 들어왔다. 이후 아시아 농구스타로 이름을 떨쳤고, 국가대표 농구 감독, 실업농구와 프로농구 감독 등을 지내고 나서 태릉선수촌장이 됐다.
 
  2002년 1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이미 선수촌장을 한 차례 역임한 김 촌장은 두 번째 임기를 맡고 있다. 전임 이에리사 선수촌장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마치고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물러나자 당시 이연택(李衍澤) 대한체육회장은 그에게 잔여임기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고, 2008년 10월부터 다시 선수촌장이 됐다. 새로 대한체육회장이 된 현 박용성(朴容晟) 회장도 김 촌장에게 계속 선수촌장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김 촌장은 “2월에 열리는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11월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국가대표선수들의 선전을 확신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선수촌장만 두 번째인데요.
 
  “한 번 해 봤기 때문에 그전보다 더 못하면 안되잖아요. 어떻게 보이지 않게 선수단을 잘 지원할까 하는 고민이 지난번보다 더 많이 됩니다. 제가 먼저 촌장직을 맡을 때보다는 시설도 좋아졌고 선수들 급식 상태도 많이 나아져서 그건 다행입니다.”
 
  ―태릉선수촌장의 일과는 어떤가요.
 
  “여기서 먹고 잡니다. 집이 서울 반포에 있는데 주중에는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숙식을 합니다. 주말에만 집에 가죠. 선수들은 춥든 덥든 상관없이 보통 아침 6시부터 훈련을 시작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5시30분 정도에 일어나죠. 내가 선수들하고 같이 눈비비고 나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5시 정도에 일어나서 씻고, 정리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아침 운동도 선수들과 함께하죠. 그러고 나서 오전에 행정 업무를 보고, 오후엔 모든 종목 훈련 상황을 점검합니다.”
 
  ―태릉선수촌장의 원래 역할이 뭡니까.
 
  “선수들을 지원하는 거죠. 이곳에는 최대 400~450명까지 들어올 수 있는데 현재 300여 명의 선수가 들어와 훈련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는 대한체육회 직원도 60여 명, 전기나 보일러 등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식당 요리사 등 용역을 통해 일하는 인원이 100여 명이나 됩니다. 굉장히 많은 인원이죠. 이 많은 인원이 따로따로 움직이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유기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게 저의 역할이죠. 항상 직원들에게 얘기합니다. ‘당신 여기 왜 있느냐?’고. 여기 근무하는 건 대표선수가 메달 따 오고 좋은 성적 내도록 지원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메달 따 오면 ‘아, 내가 저 사람들 지원해서 메달 땄구나’ 하면서 대리만족도 얻어야죠. 체육관이나 시설에 불이 꺼지면 관리팀이 빨리 와서 고치라고 제가 하는 거죠. 또 성적을 잘 내지 못한 종목에 관심을 가져 주고 기 살리기도 해야 합니다. 저는 선수들 위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초반에는 제가 운동장 다니는데 선수들이 ‘코치 선생님 어디 가셨고, 감독 선생님 어디 가셨고’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랬죠.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라’고요. 제가 출석체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 줬죠.”
 
  ―프로농구 감독이나 단장도 많이 하셨는데 선수촌장이라는 자리도 국가 대사인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전체 금메달 수나 종합순위에 따라 거취에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까.
 
  “제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태릉선수촌장을 하면서 큰 대회는 아테네 올림픽을 치렀는데요. 뭐 지금까지는 거취에 관한 얘기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는 많이 받죠. 여기서 선수 전체를 종합적으로 훈련을 시켰지 않습니까. 물론 개별적으로 운동하고 종목마다 코치 감독이 있고, 연맹이 지원하지만 모든 국가대표는 태릉선수촌장이 책임을 져야죠. 그런 각오로 하고 있습니다.”
 
 
  의기소침한 종목은 氣 살려야
 
   ―아무리 종목별로 선수들이 따로 훈련하고 시합에 나가더라도 선수촌 내 전체적인 분위기나 질서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물론입니다. 선수촌 전체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개인 종목과 단체 종목의 차이에 빗댈 수 있죠. 개인 종목 선수들은 유아독존이 돼야죠. 자기가 성적을 내야 하고 아니면 끝나는 거니까요. 그런데 단체 종목은 자기가 못하더라도 팀이 잘해서 이기면 잘되는 거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전체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단체 종목과 마찬가지로 팀워크가 필요합니다.”
 
  ―종목마다 경쟁이 있죠.
 
  “그렇죠. 선수촌 내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종목 간 라이벌 경쟁이 있습니다. 당연한 거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나가서 A 종목은 금메달 2개를 땄는데 함께 주목받았던 B 종목은 하나도 못 따면 B 종목은 침체가 됩니다. 물론 저는 이 두 종목 선수단을 똑같이 대해 줘야죠. 성적을 잘 내지 못할 경우는 임원이나 코칭스태프가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럴 경우 선수단은 의기소침하게 됩니다. 목소리도 크게 못 내고 합니다. 그럴 경우 저는 해당 종목 코치·감독하고 식사도 하고 주말에 나가서 소주 한잔 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기(氣)를 살려주는 거죠. 한집안 식구처럼 해 줍니다. 여기 사실 어떻게 보면 고달픈 곳이거든요. 코치·감독들은 가정 다 버리고 이곳으로 나와 있죠. 새벽부터 나가서 운동 체크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성적이 나빠 의기소침하게 되면 참 힘이 많이 듭니다.”
 
  ―어떤 종목이 그랬나요.
 
  “레슬링 같은 경우가 그랬습니다. 사실 지난 1966년 태릉선수촌 짓고 나서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종목이 레슬링입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양정모(梁正模) 선수죠.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레슬링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어요. 그래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당연히 나오리라 다들 생각했죠. 그런데 나오질 못했어요. 선수단 전체로는 금메달 13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는데 레슬링은 거기서 빠졌죠. 화려한 조명 뒤에 설 수밖에 없었죠. 종목이 남자 자유형, 남자 그레코로만, 여자까지 해서 3개나 됐는데 얼마나 풀이 죽었겠어요. 그래서 같이 만나서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가 뭐냐 물어봤죠.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레슬링 룰이 변했죠. 전에는 누적 점수로 했는데, 지난 올림픽에서는 각 회에서 점수를 많이 따는 사람이 그 회를 이기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배구나 탁구 세트제하고 같은 경우죠. 그러다 보니 체력을 아껴 둘 필요가 없고 덤벼야죠. 거기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훈련이 좀 부족한 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극한 훈련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건데요. 레슬링 협회에서 지원 같은 것은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히 자주 가서 사기 살려 주고 그런 방향으로 가죠. 선수들이나 코치들이 탁 보면 압니다. ‘아, 나한테 관심 가지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여기 들어오는 선수나 코치·감독들은 얼마를 받나요.
 
  “코치진의 경우 380만원 혹은 330만원을 국가로부터 받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거나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380만원 받고, 소속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330만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걸로는 솔직히 좀 부족합니다. 자기 인생을 여기에 모두 바치는데요. 여기에서 세금 빼버리고 4대 보험비나 이것저것 다 빼버리면 실제론 얼마 안됩니다. 선수들의 경우는 훈련하는 날에만 3만원의 수당을 받습니다. 훈련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당이라 세금을 제하지는 않죠. 박태환 선수도 선수촌에서 훈련하면 3만원을 받습니다. 제일 처음 수당이 생겼을 때는 5000원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축구 같은 종목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죠. 축구는 국가대표가 월드컵이나 이런 곳에 나가면 하루에 10여만 원 정도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몇백만 원이죠. 여기서는 죽자 살자 운동해도 5000원밖에 못가져가죠. 생각해 보세요 하루에 5000원을 받아 한 달 내내 운동한다고 해도 얼마예요. 몇만 원 안되죠. 그래서 개선되고 해서 지금에 이른 겁니다. 직장이나 소속팀을 가진 선수들은 별문제가 안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수당이 중요합니다. 훈련하다 나가면 부모님 인사도 드리고 친구들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놀고 싶잖아요. 수당이나 보수 인상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하는 것도 제 몫이죠.”
 
  ―선수촌 안에서 연애하는 경우는 없나요.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잘 모릅니다. (웃음) 파악이 안돼요. 양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경모(朴敬模)-박성현(朴成賢) 선수가 결혼했잖아요. 올림픽 이후에 연인임을 선언했는데요. 정말로 아무도 몰랐습니다.”
 
  발등의 불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만 6개를 따내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번 올림픽에 거는 기대수준은 그만큼 높다. 하지만 이번 쇼트트랙 선수들의 경기력은 지난 올림픽에 비해 약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연아 金 확신, 봅슬레이 올림픽 출전은 대단한 사건
 
  ―이제 곧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선수촌 전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감이 오나요.
 
  “그렇죠. 저는 매일 운동장을 쭉 돌아요. 그리고 종목별 코칭스태프에게 물어봅니다. ‘상황이 어떠냐, 필요한 게 뭐냐’ 이렇게요. 그러면 대강 답이 나옵니다. ‘아, 이 팀은 어떻게 훈련하고 굴러가고 있구나’ 하고요. 또 선수촌에 체력훈련을 전문적으로 체크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분들 얘기 들어봐도 답이 나와요. ‘이 선수는 근력이 이 정도 되니까 이번에는 어느 정도 성적 거둘 것 같다’ 정도의 답을 들을 수 있죠.”
 
  ―그러면 이번 동계올림픽은 어떨 것 같나요.
 
  “지난 토리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 6개로 7위를 했죠. 지금까지 동계올림픽 금메달은 쇼트트랙에서만 나왔습니다. 동계올림픽 선수들은 여기 입촌한 선수들도 있지만 들어와 있지 않은 선수들도 있어요. 그래서 해당 종목 연맹 등에도 꾸준히 확인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쇼트트랙에서 조금 경기력이 떨어졌어요. 여자 선수 가운데 경기력이 좋은 진선유 선수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해요. 여자 쪽에서 1개 정도 해서 쇼트트랙 다 합쳐 4개 정도가 가능할 거 같고요.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피겨스케이팅에 김연아 선수가 있죠.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을 목에 걸 거라고 예상해요. 그리고 스피드스케이팅이 있는데 이강석 선수와 이규혁 선수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규혁 선수의 경우는 올림픽에 다섯 번 나갔는데 금메달은 없어요. 그래도 세계선수권 같은 데서는 1위를 차지했거든요. 지금 기록도 좋고요. 또 혼자가 아니고 둘이라서 거기서 1개 정도를 기대하거든요. 그래서 금메달 6개로 보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예상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언제 보셨습니까.
 
  “2년 전인가 제가 프로농구(KBL) 이사로 있을 때 SK 농구단에서 초청해서 처음 봤죠. 그때는 지금처럼 뜨지는 않았을 때인데 아주 야무지고 개성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지난해 말 인사차 왔을 때도 봤죠. 그때는 더 성숙해졌더라고요.”
 
2009년 김연아가 프랑스 파리에서 치러진 2009-2010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다.
  ―김연아 선수에 대해 우려하는 점도 있죠.
 
  “그렇죠. 어린 선수잖아요. 이게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이 좀 걱정이 됩니다.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미셸 콴 선수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얘길 했죠. 즐기면서 시합을 해야지, ‘내가 꼭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면 안돼요. 콴 선수는 기록으로 보면 세계선수권대회 5번이나 우승했는데 올림픽에선 한 번도 우승을 못했어요. 그만큼 올림픽은 심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거죠. 밤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 받고 주위에서도 ‘너 금메달 꼭 따야지’ 하는 부담이 굉장하대요. 김연아 선수가 그걸 이겨내야 합니다. 아사다 마오 선수나 그런 선수가 경쟁자가 아니라 진정 경쟁자는 자신입니다. 기량이야 세계 어느 선수도 김연아 선수를 따라오지 못하니까 본인 스스로 실수를 줄여야죠. 작년 말에 있었던 세계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엉덩방아를 찧고 한 적이 있죠. 그때 보니까 근육이 경직돼 있었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올림픽 개인 종목은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출전권 땄다가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끝나 버립니다. 전날 잠이 오겠어요? 전에는 오히려 김연아 선수가 편했을 거예요. 아사다 마오 선수 같은 라이벌도 있고 이겨야 할 목표도 있었는데 이제는 정상에 선 선수가 됐잖아요. 이제는 올림픽이라는 커다란 무대서 디펜딩 챔피언(Defending Champion)이니 어떻겠어요.”
 
  ―금메달 후보 종목들 말고 어떤 종목을 눈여겨봐야 할까요.
 
  “그 외 종목은 사실 메달에 도전해 볼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와 수준차가 있죠. 그런데 최근 일본을 제치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봅슬레이와 스키점프 등에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종목은 출전 자격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우리나라 동계 스포츠의 여건이 별로 좋지 않은데 어떻게 여기까지라도 가능한가요.
 
  “엄청난 노력이죠. 봅슬레이나 스키점프 선수들 정말 대단하게 노력한 겁니다. 유럽지역은 나라도 많고 봅슬레이나 스키 관련 시설이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설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용 때문에 유럽에 가서 연습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 걸 넘어서서 열 몇 나라가 나가는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것은 대단한 거죠.”
 
  지난해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가 로마 수영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하면서 수영계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대회가 끝나자 현지 적응에 실패했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박 선수의 훈련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인 박 선수가 한국 코치를 대동하지 않은 채 미국 전지훈련을 떠났고 이 때문에 적절한 통제를 받지 않아 제대로 훈련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라고 김 촌장은 분석했다.
 
 
  박태환 선수의 로마세계수영대회 예선탈락은 연습 부족 탓
 
2009년 7월 로마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레이스를 끝낸 뒤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박태환. 당시 박태환은 예선 탈락의 멍에를 썼다.
  ―박태환 선수 훈련을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태릉선수촌에 들어와서 훈련하는 게 맞나요.
 
  “그렇죠.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게 맞습니다. 박태환 선수는 아직 어려서 생활 같은 데서 컨트롤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영이나 육상 같은 종목은 개인 코치가 있잖아요. 태릉선수촌에 안 들여보내려고 하는 경향이 그래서 많아요. 예를 들자면 각각 개인코치를 둔 선수 4명이 대표팀에 선발되면 코치는 1명만 들어올 수가 있어요. 그런 것 때문이죠.”
 
  ―박태환 선수가 지난해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서 저조한 성적을 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당시 의욕이 많이 넘쳤겠죠. 우리나라 코치보다 훌륭한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아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미국 코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미국은 코치가 훈련만 지도하지 훈련 외의 생활은 그대로 놔둡니다. 생활은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시스템에서는 그런 지도방식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런 방식에서는 밤새도록 선수들이 놀다가 들어와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죠. 그렇다고 박태환 선수가 놀다 왔다는 건 아니고요. 다만 당시 한국코치가 따라갔어야 한다는 거죠. 박태환 선수는 아직 어려서 한국 코치가 컨트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박태환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작년 초에 2번 미국 LA에 나갔다 왔습니다. 거기에서 한국 코치는 따라가지 않고 미국 코치에게 맡겨 놓은 거죠. 베이징 올림픽 남자수영 15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튀니지 멜룰리 선수가 있습니다. 그 선수가 박태환 선수를 지도했던 미국 코치의 제자였어요. 제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그 선수의 연습파트너밖에 안됐던 거예요. 왜 그렇냐 하면 로마 세계선수권대회 때 그 미국 코치가 튀니지 유니폼을 입고 튀니지 멤버로 가 있었습니다. 그럼 박태환은 뭡니까? 안되는 거죠. 한국 코치가 따라갔으면 그렇게 됐겠어요? 제가 듣기에는 박태환 선수는 하루에 1만4000~1만6000m 정도 훈련을 소화시켜야 하는데 당시에는 8000~9000m 정도만 했다고 하더군요. 훈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죠.”
 
  ―그런데 박 선수가 대회 직전에 태릉선수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당시 로마대회 가기 전에 훈련이 부족해서 태릉선수촌에 들어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죠. 그 이유는 대회 전에 시합을 나갔는데 베이징 때보다 기록이 10초 정도 늦었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당시 로마대회에 모든 것을 맞췄고 그때 기록은 별것 아니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그때 박태환 선수의 라이벌인 중국의 장린이라는 선수는 자기 기록을 깼습니다. 그 선수는 로마대회 나가서 800m를 우승했습니다. 10초 떨어진 기록이 한꺼번에 만회가 되겠습니까. 안되죠. 그때 저는 안되겠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태릉선수촌에 들어오겠다고 하기에 뭐 들어올 거면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박 선수에게 다른 소리 하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냐면 거기서 잘하고 왔는데 태릉에 들어와서 훈련했기 때문에 성적이 못 나왔다고 하는 소리를 하면 안된다는 거죠. 박 선수 쪽에서 그런 소리를 할 가능성이 많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 안 했거든요. 미국 전지훈련에서 훈련량이 부족했고, 한국 코치가 안 따라간 게 잘못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은 박 선수가 로마대회 한 달 반 정도 전부터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는데요. 들어와서도 집에서 자면서 출퇴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좋은 성적을 올리기가 어렵죠. 갔다 오고 나서 보니까 제 생각대로 됐잖아요. 그래서 안되겠다 해서 박 선수와 수영연맹, 후원하는 SK텔레콤 측이 모여서 국내 코치와 호주출신 코치가 함께 지도하기로 했죠. 이제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국가대표 코치 선수 폭행, 큰 충격 받아
 
기초 체력훈련을 실시하는 태릉선수촌 월계관 웨이트 트레이닝 장.
  지난해 9월 아시아 남자배구선수권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던 박철우 선수가 훈련 도중이던 선수촌 안에서 당시 국가대표 이상열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얼굴 전체에 시퍼런 멍이 든 박 선수의 얼굴을 보고 온 국민이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선수촌 총책임자는 김 촌장이었다.
 
  ―작년 말 태릉선수촌 안에서 코치가 선수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국가대표 박철우 배구선수가 대표팀 이상열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죠. 정말 많이 당황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선수를 때리면서 지도해 본 적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설사 체벌이 있더라도 그런 식으로 크게 상처가 나는 경우도 거의 없잖아요. 당시 상황은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일 태릉선수촌에 들어온 팀을 돌아봅니다. 폭행이 일어난 날도 오후 4시30분쯤 갔는데 훈련을 잘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끝내 놓고 폭행이 있었던 겁니다. 뒤늦게 알아보니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김호철(金浩哲) 감독은 먼저 들어가고 나서, 박 선수를 불러놓고 코치가 폭행한 거더라고요. 박 선수가 김 감독과 같은 소속이라 밤에 감독에게 말했지만 김 감독은 무마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박 선수가 뛰쳐나와 버렸습니다. 기자회견을 자청했는데, 저는 기자회견 몇 시간 전까지 그걸 전혀 몰랐습니다. 미리 안 사람들이 전화가 오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곧바로 김호철 감독하고 박철우 선수한테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됐습니다.”
 
  ―박철우 선수 얼굴에 너무 시퍼런 멍이 들고 해서 국민들이 더 크게 당황했는데요.
 
  “배구 선수들은 스파이크 때 팔을 쓰기 때문에 정말 굉장한 파워가 있습니다. 일반사람들 때리는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더 큰 상처가 난 거 같아요.”
 
  ―이후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박용성 대한체육회장님이 취임하셔서 체육계 폭력을 추방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며 회계부정을 뿌리 뽑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그 사태가 벌어졌죠. 사건 직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님 등이 참석한 간부회의를 이곳에서 열었습니다. 경위를 듣고 나서 내린 결론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죠. 감독이 책임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 김호철 감독을 해임했죠. 그리고 코치를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태릉선수촌 내에서 이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촌장인 제 명의로 코치를 폭행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이후 배구협회 차원에서는 이 코치에게 무기한 자격정지를 내렸죠. 만약 협회가 자격정지를 풀어 준다고 하더라도 대표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을 겁니다. 특히 박용성 회장이 있는 한 절대 안될 거예요. 배구협회에서는 약간 미온적인 조처를 내린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코치에게만 징계를 주고 감독은 그대로 내버려뒀죠. 박 선수는 찢어지거나 그런 게 아니라 타박상을 입었기 때문에 전치 3주 정도가 나왔습니다. 경찰 말을 들어 보니 벌금으로 몇백만 원 나오는 거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지난해 12월 31일에 기소유예를 했다고 합니다. 원래 박 선수 측에서는 사건 후 합의를 안 해 주려고 했는데 12월 말에 합의를 하게 됐고 이를 감안해 검찰이 기소유예를 했다고 하더군요.”
 
  ―사건이 선수촌 내에서 일어났고 그 선수촌 총책임자로서 책임은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회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요. 여기서는 온종일 각 종목의 많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훈련하며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제가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은밀하게 일이 일어날 수는 있고요. 저는 그래서 항상 코치진에게 절대 폭력을 써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이 생기고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왜 체육계 폭행 사건이 없어지지 않는 거라고 보십니까?
 
  “지도자들이 중요합니다. ‘아, 나는 예전에 맞고 운동을 했는데, 안 맞고 운동한 사람 어딨어’ 하는 자세가 잘못된 겁니다. 성적만능주의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시합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애들은 쫓아가지 못하고 이러다 보니까 억지로라도 때려서 성적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폭행하는 게 적발되면 체육계에서는 영원히 추방될 겁니다. 말하자면 지도자로서 밥 벌어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거죠.”
 
 
  “올림픽-아시안게임 자신 있다”
 
  ―촌장님은 1966년 태릉선수촌이 문을 열었을 때 훈련 선수였는데 그때 당시 선수들과 지금 선수들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나요?
 
  “사회 변화 때문에 이기적인 면이 있죠. 좀 더 희생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안 하려고 하는 게 예전보다는 조금 더 두드러집니다. 옛날에는 대표선수 한번 되는 게 정말로 큰 영광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구기 종목 같은 경우는 프로가 생기니까 퇴색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대표선수 안되면 어떠냐. 내가 몸 안 다치고 프로에서 돈만 잘 벌면 되지’ 같은 생각입니다. 축구도 그랬다고 하죠. 태클이 들어오는데 잘못하다가 다치면 팀과 계약도 못하고 몸값 깎이고 하니까 안 하는 거예요. 축구에 아주 그게 만연했었다고 합니다. 제가 가르쳤던 농구도 마찬가집니다. 가을부터 봄까지 이어지는 시즌 내내 프로 무대에서 뛰면 그 이후에는 쉬고 싶잖아요. 그런데 대표팀에 들어오면 그때 못 쉬죠. 그때 아니면 국제대회 시합에 나가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소집하면 안 나오는 거예요. 지금 구기 종목들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선수들이 체격도 좋아졌죠. 국가대표 선수들 표현력이나 개성도 많아졌어요. 예전 선수들은 시켜도 잘 못하고 수줍어하고 그랬는데요. 지금은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말하고 표현합니다. 그런 것은 아주 잘 변화한 거죠.”
 
  ―태릉선수촌 자랑 좀 해 주시죠.
 
  “태릉선수촌이 1966년 문을 열었죠. 이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처음 금메달을 따고 나서 LA올림픽부터 금메달을 많이 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설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죠. 그만큼 태릉선수촌은 노하우가 있습니다. 지도 노하우와 과학 시설 등이 접목돼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선수들은 여기 있는 것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올해 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밴쿠버 동계올림픽 10위권 안에 드는 것과 11월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위를 고수하는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사진 : 조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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