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朴普熙 UN군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한국전 참전 공로 잊지 말아야 한국 國格 올라가”

  • : 김남성  suls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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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중순 미 케네디센터 공연부터 16개국 순회
⊙ 정부, 공연지원 위해 50억원 배정

朴普熙
⊙ 충남 아산 출생.
⊙ 육군종합학교 2기 졸업. 미국 보병학교 특수연합군반 유학. 아르헨티나 라프타대 명예철학박사.
⊙ 駐美대사관 무관보좌관. 재단법인 한국문화재단 창설, 이사장 겸 총재. 선화예술학교 교장.
    워싱턴타임스 회장. 미국 뉴욕트리뷴 사장. 세계일보사 사장 겸 발행인.
⊙ 화랑무공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은관문화훈장 등.

취재지원 : 朴熙錫 인턴기자
한국문화재단 총재 박보희(朴普熙·80)씨에게 ‘2010년’은 조바심 나는 해다. 평생 미뤄둔 숙제를 올해는 꼭 마쳐야 한다. 그래서 함께 숙제를 해야 할 사람들을 모았다. 모임 이름은 ‘UN군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다.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남덕우·강영훈·이한동 전(前) 국무총리, 이만섭·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 이철기 전 천도교교령 등.
 
  추진위원장은 박보희 총재가 맡았다. 서울 능동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만난 박 총재는 두 개의 명함을 건넸다. 하나는 한국문화재단 총재, 다른 하나는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명함이다. 올해 80세지만 얼굴에 주름살을 찾기 어려웠다. 건강 비결부터 묻자, “평생 일을 만들어서 쉬지 않고 바쁘게 지낸 덕분이 아닐까요”라고 했다. “어떤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시간 날 때 걷는 게 유일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골프도 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란다.
 
  몇 해 전 송사(訟事)에 휘말려 잠시 구속되기도 했다. 또 통일교 일에서 손을 뗐다는 말이 떠돌았다. 이에 대해 박 총재는 “불미스러운 일은 다 지나갔고, 통일교에서는 내가 ‘외무부 장관’쯤 된다”며 웃었다.
 
 
  “이제 참전용사 위로할 시간이 없어”
 
  ―바쁜 일이 많을 텐데 기념사업회 일까지 맡으셨군요.
 
  “아무리 바빠도 기념사업회 일은 올해 반드시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올해가 UN군이 한국전에 참전한 60주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60년은 ‘환갑’을 뜻하기 때문에 의미가 각별합니다. 더 중요한 건 한국전에 참전한 16개국 생존 용사들의 나이가 이제 80세, 90세가 됐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그분들을 위로하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겁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 가운데 얼마나 생존해 있습니까.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한국전 유공자 협회장 말씀에 따르면 4분의 3이 돌아가시고 4분의 1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약 25만~30만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군인들 수가 그렇게 많습니까.
 
  “참전한 미군의 수만 약 170만명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보면 직·간접적으로 한국군에 참여한 미군 수를 570만명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난 숫자군요.
 
  “대단하죠. 참전 미군의 수가 이렇게 많은 건 미국이 3년 동안 여러 번 교체병력을 보냈기 때문이에요. 전쟁 기간 3년 동안 6개월~1년 근무하고 고향에 갔거든요. 그래서 참전 인원이 많습니다. 그만큼 전사자도 많죠.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면서 한국전을 스스로가 잊고 살고 있습니다. 한국전은 전 세계가 참여한 한국 구하기 전쟁이었어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전에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는 모두 16개국이다. 스웨덴, 덴마크, 인도 등 5개국은 의료지원국이다. 브라질, 이스라엘, 레바논, 파키스탄 등 20개국은 물자를 지원했다.
 
 
  한국전 미군 전사자 5만4246명, 이라크 미군 전사자 4000명
 
  전투부대를 파병한 주요국의 인원은 요새 미군이 수행하고 있는 이라크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미군은 3년 동안 보병사단 8개, 해병사단 1개 등을 포함해 모두 179만명을 파병했다. 인접 캐나다가 모두 약 2만6000명을 파병했고, 영국이 약 5만6000명, 터키가 약 1만5000명을 파병해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호주(8407명), 필리핀(7420명), 태국(6326명) 등이다. 우리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남아공,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도 군대를 보냈다.
 
  3년 동안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포로가 모두 190만478명이 나왔다. 이 가운데 미군 전사자가 5만4246명, 부상자 10만3284명, 실종자는 8177명이다. 다시 박 총재의 얘기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큰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군 희생자가 4300명입니다. 이 가운데, 1000명은 전쟁 중에 죽은 게 아니라 테러에 희생됐어요. 이렇게 봤을 때 미군이 한국에서 5만4000명이나 사망한 건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박 총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전쟁이 나고 나서 약 10일 만에 미국이 파병을 했다”면서 “며칠만 늦었어도 지금의 한국은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한국전 때 미군이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후에 참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한국전이 시작되고, UN 안전보장이사회의 파병 결의는 7월 7일에 있었습니다. 실제 파병이 돼서 당시 맥아더 장군에게 UN기가 전달된 건 7월 14일경이었어요. 즉 전쟁 발발 후 무려 20일 이상이 지난 때였습니다. 전쟁은 하루가, 아니 몇 시간이 시급한데 20일 넘게 무방비였으면 이미 전쟁은 끝났을 겁니다. 그 공백을 누가 메웠겠습니까? 미군이에요. 더 정확히는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UN 결의 전에 파병한 미국
 
1965년 9월 최초의 세계순회공연인 미국 게티스버그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위한 특별공연.
  박보희 총재는 자신의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일본어로 된 정일권 전 총리의 한국전 회고록인 <원폭이냐, 휴전이냐>였다. 그는 빨간 줄을 그어 놓은 부분을 일어로 읽은 후 번역을 해 줬다. 박 총재가 설명한 정일권 총리의 회고록 내용이다.
 
  “한국전이 터지고 난 나흘 후에 맥아더 장군은 이미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소련 야그기를 통해 제공권을 장악했어요. 맥아더는 일본에서 전투기를 보내 수원비행장을 장악했던 소련제 북한 야그기 2대를 격추시키고 6월 29일 오후에 한강 남쪽에서 전세를 시찰했습니다. 당시 맥아더는 참호 속에서 M1 소총 하나만 가지고 전선을 지키는 한국군인 한 명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름은 안 나오고 박 하사관이라고 적혀 있어요. 맥아더는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신이 지키는 전선이다’라고 말한 박 하사관에게 감동했다고 합니다. 맥아더는 다음날 즉시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보를 쳤습니다.”
 
  ‘미군 지상군의 도움 없이는 한국은 회생할 수 없다’는 맥아더의 전보를 받고, 트루먼 전 대통령은 즉시 미 2사단을 긴급 출전시키라는 지시를 했다. 정일권씨 회고록에 따르면, 맥아더는 “미군의 국가전략상 한국을 잃어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박 하사관 같이 의기 있는 한국 사람들을 잃어서는 안되겠다는 결심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맥아더는 그때부터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했다고 회고록은 전한다.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가 있은 후 한국에 최초로 도착한 미군은 스미스 부대다. 스미스 특공대는 7월 1일 한국의 오산땅을 밟았다. 이틀 후인 7월 3일 24사단 소속 딘 소장이 이끄는 부대가 뒤를 따랐다. 박보희 총재는 “7월 4일 오산에서 스미스 부대를 만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그때 스미스 부대를 만나서 우리 국군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했다.
 
 
  M1 소총 8발 쏴 보고 참전
 
  ―한국전 발발 초기부터 참전을 했습니까.
 
  “제가 정규 육군사관학교 2기고 첫 4년제 육사 1기입니다.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1일에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4년제 사관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6개월이나 1년의 단기 사관학교였죠. 당시 저는 6월 1일에 입교해서 24일간 제식 훈련을 받고, M1 소총 8발을 쏴 본 후 참전했습니다. 일요일인 25일 외출해야 하는데 비상대기시키더니 오후에 완전무장하고 집합하라고 하더군요. 평소 몇 발 안 주던 M1 소총 실탄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주더군요.”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오늘 총 한 번 마음대로 쏴 보겠구나’ 했죠. 그 길로 경기도 포천 전선(戰線)에 투입됐습니다. 군번도 계급도 없었어요. 육사 1기 150명, 우리 2기 330명 등 모두 480명이 소총 하나 들고 나간 겁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소총 쏘면 북한군은 소련 탱크로 밀어붙입디다.”
 
  첫날 전투에서 대한민국 육사 1기와 2기생 480명 가운데, 86명이 전사했다. 그 수만큼 부상자가 나왔다. 중과부적.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박 총재는 “‘대한민국 육사생도가 후퇴할 수 있느냐’며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매일매일 생도들은 전사했다. 죽을 고비도 넘겼다. 분대장과 전우 두 명이 숨어 있는 묘지 뒤로 가려는 순간 박격포가 떨어져 세 명 모두 흔적도 남지 않았다. 박 총재는 “한참 후에 죽은 전우의 철모 하나가 땅에 ‘툭’ 떨어졌다”며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 6월 29일 육본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박 총재의 얘기다.
 
  “나흘 만에 받은 무전 내용은 암담했어요. ‘서울이 함락됐다. 육본은 시흥으로 이동했다. 육사 부대는 낮에는 숨고 저녁에 행동해서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집합하라’고 하더군요. 모두 허탈했지만,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죠. 단체로 이동할 수 없어 2~3명씩 조를 짜서 이동했습니다. 저는 광나루 쪽에서 통나무를 하나 발견해서 그걸 안고 한강을 건넜습니다. ‘죽지 않고 한강을 건너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수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육사부대는 7월 2일 수원에 도착했다. 대오를 지어 인원수를 세어 보니 모두 55명이었다.
 
 
  이승만, 전쟁 중 유학 가는 군인 직접 전송하며 눈물 흘려
 
리틀엔젤스의 꼭두각시 공연.
  이후 박보희 총재는 부산 동래에 급조한 육군종합학교로 차출됐다. 그곳에서 8주간 훈련을 받고, 운명의 9사단 28연대에 배속을 받았다. 9사단은 한국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인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끈 부대다. 동부전선 가운데 핵심인 이 고지의 이름은 원래 ‘395’고지였다. 고지 모양새가 백마의 머리 부분과 비슷하다고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전 당시 9사단 28·29·30연대는 14번 고지를 빼앗기고 15번째 만에 탈환한 공로를 기려 후에 ‘백마부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한국군 3000여 명이 전사했고, 9사단 28~30연대 중대장 가운데 전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치열한 전투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28연대 작전장교였습니다. 어느 날 28연대장인 이창정 대령이 저를 부르더니 ‘박 중위, 미국으로 유학 가라’고 하더군요. ‘전쟁이 한창인데 무슨 유학인가’ 했죠. 사정을 알고 보니,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우리 장교들을 미국에서 교육을 시켜 달라’고 요청을 한 겁니다. 맥아더 장군이 즉시 이를 받아들여 미국 국회에서 예산을 얻었어요. 6개월마다 중위~대령까지 150명을 뽑아 미국 조지아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유학을 보낸 겁니다. 제가 2기로 뽑힌 겁니다.”
 
  ―유학을 가지 못했으면 전사했겠군요.
 
  “100%였겠죠. 당시 연대장이 ‘지금 우리 연대 사정이 좋지 않아 자네를 뺄 수 없는데 대한민국의 앞날을 생각하면 자네같이 유능한 장교가 가야 한다’고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이창정 대령도 그때 전사했습니다.”
 
  박보희 총재는 1951년 5월 인천에서 미국 조지아로 떠났다. 그는 그날의 광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인천항에 큰 배가 접안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배를 타고 큰 배로 옮겨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께서 직접 저희를 배웅 나오신 겁니다. 저희는 너무 감격해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께서 150명 전원과 일일이 악수를 하더군요. 그러면서 ‘전쟁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지 않는다. 젊은 장교들이 미국에 가서 최신 전술을 배워와 전쟁을 끝내고 통일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노(老)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부(國父)가 굵은 눈물을 죽죽 흘리는 겁니다. 저희 모두 따라 울었습니다.”
 
  당시 그를 울게 했던 노대통령(당시 76세)보다 이제 더 나이가 든 박 총재는 이 얘기를 하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워싱턴 공연 때 오바마 대통령 초청
 
  ―박 총재가 주도적으로 기념사업회를 만든 계기가 있었군요.
 
  “60주년 전체 행사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합니다. 하지만 리틀엔젤스단의 16개국 순회공연 행사는 제가 주도하는 거죠. 지금까지 참전국 용사들을 몇백 명씩 한국으로 초청한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전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감사인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참전용사들은 나이도 많고 한국에 올 수 있는 여건이 안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직접 찾아다니며 감사인사를 하는 겁니다.”
 
  순회공연은 모두 3차로 나뉜다. 1차 순회공연은 워싱턴, 노퍽,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6개 도시와 오타와(캐나다), 보고타(콜롬비아) 등에서 열린다.
 
  워싱턴 공연 일정은 백악관 공연을 시작으로 케네디센터 공연(6월 10∼13일)과 맥아더 원수 추모공연(6월 22일)이 열린다. 6월 24일에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의 묘 참배 및 헌화를 하고 6·25 60주년 기념일인 6월 25일에는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 5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전쟁 전몰장병 추모공연(6월 25일)을 대규모로 열 예정이다.
 
 
  참전국 정상 모두 공연 참여 약속
 
  박 총재는 “워싱턴 공연 때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상하 양원 의원 전원을 초청할 예정”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이 관람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2차 순회공연은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태국, 3차 순회공연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그리스, 터키 등 유럽 7개국 및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2개국에서 진행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리틀엔젤스 UN참전 16개국 순회공연 격려 메시지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산화한 UN군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며 “6·25 발발 60주년을 맞아 참전 16개국 순회공연으로 지구촌 곳곳에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자 하는 리틀엔젤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공연이 열리는 모든 국가로부터 환영받고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공연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정부에서 순회공연과 관련해 5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시 박보희 총재와 나눈 얘기다.
 
  ―한국전 참전 이후 열리는 행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겠군요.
 
  “그렇습니다. 특히 중요한 건 16개국 참전국 국가 정상들이 모두 공연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또 미국, 캐나다 등 모든 나라에서 리틀엔젤스 공연을 생중계하기로 합의했어요. 작은 나라에서는 전국 방송이 됩니다. 16개국 국민들이 공연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대한민국의 위상과 전통문화를 알게 되면서 ‘한국사람들을 위해 싸우기를 잘했다’고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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