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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세계 최대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李永勳 담임목사

“사회에 기여하는 교회, 나누고 섬기는 교회 만들겠다”

김용삼  

이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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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신자 수 78만명으로 ‘세계 최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여의도순복음교회, 21개의 지교회 독립시켜 재적신자 43만명으로 줄어. 지금도 한 달에 1500명씩 새 신도 늘어나

⊙ 조용기 목사, “후임 이영훈 목사는 나의 靈的 아들이자 제자”
⊙ 이영훈 목사 취임 이래 1년6개월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총 1만9254명의 신자 늘어
⊙ 사회가 불안하고 힘들수록 정신적 안정을 찾으려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에 교회는 부흥
⊙ “순복음교회는 신앙의 체험이 있는 교회.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많은 사람이 새롭게 도전받는 교회”

李永勳
⊙ 1954년 서울 출생.
⊙ 연세대 신학과, 미국 템플대 대학원(종교철학박사).
⊙ 미국 워싱턴순복음교회, 일본 순복음도쿄교회, 미국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역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장, 미국 베데스다大 총장,
    일본 순복음신학대학 학장 역임.
⊙ 現 한기총 공동회장, 기하성(여의도순복음) 총회장, Good TV 공동대표, 국민희망실천연대 이사장.
⊙ 저서 <펜사콜라 기적의 현장-브라운스빌 교회> 〈The Holy Spirit Movement in Korea
    (한국의 성령운동)〉외 다수.
  전무후무한 성장을 이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대 담임목사 체제를 맞은 지 1년6개월을 맞았다.
 
  지난 50년간 강력한 카리스마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끈 趙鏞基(조용기·74) 목사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후임목사를 선정할지 교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큰 관심거리였다. 한국의 여러 대형교회가 父子(부자) 세습으로 인해 질타를 받거나 외부 목사를 영입하여 분란이 일어나는 등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후계 문제가 관심을 끌었고, ‘후계자 선정 과정을 감시하겠다’며 압력을 가한 외부단체까지 있었다.
 
  조용기 목사의 후계자는 ‘투표’라는 절차를 거친 끝에 李永勳(이영훈·56) 목사가 선택됐다. 후계자를 투표를 통해 선출한 것은 한국은 물론 세계 교회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절차를 거친 덕에 여의도순복음교회 2대 담임목사는 ‘투명성’과 ‘내부 인사로의 승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조용기 목사는 후임 이영훈 목사를 “靈的(영적) 아들이자 제자”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14일 은퇴설교에서 조용기 목사는 “나는 후임자에게 교회 인사권과 운영권을 넘겼고 앞으로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이영훈 목사의 목회를 도와주고 협조하여 2번 타자가 1번 타자보다 더 큰일을 하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2번 타자이긴 하지만,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끄는 인물’이라는 선입관 때문인지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타일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설교단을 내려온 이영훈 목사는 카리스마와는 아주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중년의 50대 사내였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기독교와의 인연
 
여의도 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끈 지 벌써 1년6개월이 지났습니다.
 
  “한국교회의 큰 인물이 50년을 사역하신 교회라서 막중한 책무를 어떻게 감당하나 걱정이 컸는데, 스승이신 조용기 목사님의 격려, 그리고 교회 관계자를 비롯한 사회 여러분의 격려와 기도 덕분에 대과없이 순항한 것 같습니다.”
 
  ―일부 대형교회에서 목사직에 대한 부자 세습 문제로 비판이 일지 않았습니까.
 
  “미국에서는 교회를 이끌던 목사가 연로하여 은퇴를 하면 자녀가 그 뒤를 승계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입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 오랄 로버츠 목사는 아들이, 로버트 슐러 목사는 딸이 교회를 물려받았습니다만 그런 승계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은 없었어요. 저는 교회를 이끌던 목회자의 아들도 후임자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교회 신자들에게 후임을 선택할 권한을 주고, 신자들이 후임으로 전임 목사의 아들을 선택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봐요.”
 
  이영훈 목사는 기독교와는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칭칭 얽혀 있다. 아버지는 순복음교회 장로회장을 지냈고 작은아버지와 고모부, 외조부와 외삼촌, 외사촌이 모두 목사이며 어머니도 전도사로 재직하다 은퇴했다. 모태신앙을 받고 태어난 이 목사는 아버지를 따라 장로교회에 나가다 10세 때인 1964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션스쿨인 대광중·고등학교와 연세대 신학과, 연세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집안과 학력 배경이 기독교와는 한몸인 셈이다.
 
  이 목사는 행정능력과 靈性(영성), 신학적 지식과 국제감각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국제신학연구원장으로 순복음 신학을 정립한 그는 10여 년 논란을 빚었던 순복음교회의 이단 시비를 잠재우는 데 일조했다.
 
  뱃속에서부터 기독교 신앙과 緣(연)을 단단히 맺은 이 목사에게 “신앙은 타고나는 겁니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생기는 겁니까” 하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신앙은 진한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인 1966년 2월 조용기 목사의 부흥성회에서 강한 성령체험을 하고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성경의 지식이 사실이구나.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구나’하는 확신이 생겨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신앙에 대해 회의하거나 다른 데를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취임 이후 2만 신자 늘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모태가 된 대조동 천막교회.
  이영훈 목사 취임 이래 1년6개월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에는 총 1만9254명의 신자가 불어났다. 그러니까 매달 1500명씩 식구가 는 셈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신자가 점차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현상이니, 거의 기적 같은 일이나 다름없는데, 그 뜨거운 교세 확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 목사의 설명이다.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잊힌 열정을 찾는 데 주력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개발연대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뜨겁고 헌신적이었던 반면 요즘은 배에 기름기가 돌고 문명의 利器(이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신앙생활이 좀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으로 된 면이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순수했던 시절의 뜨거운 열정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신앙의 열기가 엄청 뜨거워지는 겁니다. 요즘은 새벽 4시면 예배당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열성적입니다.”
 
  ―지금도 등록신자 수 78만명으로 세계 최대인데 매달 1500여 명씩 신자가 불어나다간 교회가 터져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덕도 있다고 봅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사회가 불안하고 힘들수록 정신적 안정을 찾으려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에 교회는 부흥합니다. 현실은 척박하고 가진 게 없지만 교회에 오면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성도분들 중에 ‘참으로 답답하고 막막했는데 예배 드리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통쾌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교회의 사명 가운데 하나가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희망과 꿈과 위로를 주는 역할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에 5명의 신자로 출범, 그해 150명으로 늘어난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1979년에 10만명, 1981년에 20만명, 1984년에 40만명, 1985년에 50만명, 1990년에 60만명, 1992년에 70만명을 돌파했다. 1992년 이래로 숫자가 많이 늘지 않은 이유는 1990년부터 서울시 외곽과 경기도에 있던 지교회 12개를 독립시켰기 때문이란다.
 
  재적신자 78만명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10년 1월 1일부로 서울시내 24개 지교회 중 자립이 가능한 21개를 또다시 독립시켰다. 이러한 독립으로 재적인원이 43만명으로 줄어 교회 설립 사상 최초로 적자 예산이 편성됐으며 교회 행정조직도 대폭 축소됐다.
 
 
  21개 교회 독립시킨 덕에 신자 수 43만명으로 줄어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현장에 내려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이영훈 목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교회 독립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조 목사님 목회 50주년을 맞아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각 지역으로 흩어져 각 지역을 섬기는 교회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는 한국교회나 세계교회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그렇게 분리를 해도 등록교인이 43만명이면 하나의 큰 도시 인구 규모인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신앙의 체험이 있는 교회입니다.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많은 사람이 새롭게 도전받는 교회죠. 지방에서 상경해 의지할 데 없는 분들, 특별히 갈 곳 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모여드는 교회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기존교회와 달리 우리 교회는 군중에 떠밀려 들어와 예배 드리는 교회, 민중과 함께하는 민중교회라고 할 수 있죠.”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사를 들여다보니까. 마치 마른 들판에 불길이 번져나가는 것 같이 성장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용기 목사 한 분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순복음교회의 핵심본질은 무엇입니까.
 
  “어느 교회나 성경과 찬송가가 동일하고 교리도 같습니다. 다만 성경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교파가 나눠지는데 장로교는 예정 쪽을 강조하고, 감리교는 자유를 강조합니다. 반면에 순복음은 성령체험을 강조합니다.
 
  성경에 보면 구원이라는 말이 ‘병 고침’과 동의어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병 고침과 저주받았던 인생이 잘살게 되는 변화를 체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순복음교회에 가면 구원받고 병도 고치고 축복도 받는다’라는 기대, ‘거기 가면 가지지 못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도 교회 나와서 병을 고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럼요.”
 
  이 목사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적인 碩學(석학)인 하버드대의 하비 콕스 교수가 1996년에 전 세계의 교회를 진단하고 발표한 저서 <천국의 불(Fire from heaven)>을 소개했다. 이 책의 11장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24시간 설교에 대한 생각 떠나지 않아”
 
  “하비 콕스 교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살펴본 후 기성교회는 쇠퇴하고 순복음 계통의 교회가 발전하는 이유에 대해 ‘21세기는 원초적 영성을 가진 교회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책이 신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이 목사는 “모든 예배 때마다 성령 체험을 사모하고 구역예배 같은 소그룹 모임, 기도원 등 모든 포커스가 성령체험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성령체험과 무속에서 말하는 신들린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무속신앙은 자기만 잘되는 것, 개인의 생사화복에만 멈춰 있어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반면에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할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기적 신앙에서 이타적인 사랑으로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강성해졌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종교적 심성을 갖고 있고 그 시대를 주도한 종교가 늘 존재했습니다. 고대에는 샤머니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불교, 조선시대는 유교가 강성했습니다. 조선이 사분오열되면서 새로운 종교를 갈구할 때 때마침 기독교가 들어왔고, 민족주의자들이 기독교를 기존 종교를 대치할 종교로 보고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기독교가 들어왔다 해서 기존의 종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와 공존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이영훈 목사는 매주 일요일 9시와 11시 예배, 수요예배, 매달 첫 주 새벽예배에서 설교한다. 조용기 목사는 매주 일요일 오후 1시에 한 차례 설교한다. 2009년 12월 6일 설교에서 조용기 목사는 “이영훈 목사는 어릴 때 교회 뜰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다. 나는 매주 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데 설교를 참 잘한다”고 칭찬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목사는 설교로 자신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직업인데 평소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십니까.
 
  “목사의 일생은 설교의 일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4시간 잠을 자나 밥을 먹으나 설교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성도들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이 자라니까 설교에 대한 부담을 떨칠 수가 없죠. 저는 본인이 감동이 되어야 좋은 설교라고 생각하는데, 제 설교를 모니터할 때마다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영향력조사에서 조용기 목사는 은퇴 이후에도 전체 종교인 가운데 3위, 기독교 지도자 가운데서는 1위로 조사됐다. 그에 비하면 아직 이영훈 목사의 영향력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용기’라는 큰 山
 
이영훈 목사(왼쪽)는 투표를 통해 조용기 목사(오른쪽)의 후계자로 선임됐다.
  ―이 목사에게 있어 조용기 목사는 어떤 분입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조용기 목사님을 가까이서 뵈었는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제가 <가까이, 멀리서 본 조용기 목사님>이라는 책을 쓰고 싶어요.”
 
  ―지난 50여 년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으셨을 텐데 기억에 남는 설교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조 목사님 설교를 빠짐없이 들었습니다. 조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눈에는 보이는 것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을 갖고 나가라’고 하십니다. 절대긍정과 절대희망의 메시지가 날마다 저를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이 목사에게 있어 조용기 목사의 존재는 행복인 동시에 불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용기’라는 산이 너무 커서 이 목사가 그 그늘에 가리는 게 아닐까요.
 
  “조 목사님이 워낙 일을 크게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의 과제는 스승이 하신 일을 어떻게 하면 잘 계승하고 뿌리를 내려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교회 역사상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감리교단은 그분이 아니라 제자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감리교 하면 요한 웨슬레라는 이름을 떠올리듯 ‘순복음교회’하면 조용기 목사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제자로서 큰 분을 모시고 말씀을 배우고 사역하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 입장에서는 자신의 명성이나 명예를 뛰어넘는 제자가 나오길 바라지 않을까요.
 
  “교회사적으로 볼 때 큰 인물 뒤에 그만한 인물이 나오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감리교에서 아직 요한 웨슬레를 뛰어넘는 분이 안 나왔어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조용기 목사 같은 분이 계시다는 건 큰 사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임 조용기 목사는 사회참여적 발언을 많이 한 반면, 이 목사의 설교는 사회적 현안보다는 성경에 충실한 편이라고 하던데요.
 
  “예수님처럼 살면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섬기고 나누고 사랑하고 용서하면 문제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조용기 목사가 교회를 이끌 때 옆에서 교회 운영을 지켜보다가 이제는 실제 운영을 맡게 됐는데요.
 
  “제가 46년째 이 교회에 몸담고 있는데, 그 큰 교회 조직이 항공모함처럼 자연스럽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신앙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78만 등록교인이 하모니를 이루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이름 자체가 카리스마지만, 저는 팀워크를 짜서 일을 감당해 나가고자 합니다.”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회’
 
2008년 3월 조용기 목사가 설립한 ‘사랑과 행복 나눔 재단’ 현판식에 나란히 선 이영훈 목사(왼쪽)와 조용기 목사(가운데).
  ―<목회와 신학> 2009년 7월호가 ‘10년 후 한국교회 이끌어갈 교회’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최상위권으로 꼽았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를 이끌 차세대 목사들의 면면을 보면 전 세대 지도자들과는 달리 명문대에서 정통으로 공부를 하고 해외유학을 다녀오는 등 이론적, 知的(지적)으로 무장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국내 대형교회를 이끄는 차세대 지도자들과 자주 만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수준도 높아졌고 요구조건도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과거처럼 ‘잘살아 보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새로운 교회 지도자들의 경우 흡연자를 위해 흡연실을 마련하고 애완용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예배실을 만들겠다는 목사도 있어요. 요즘 예배시간에 뮤지컬을 공연하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전혀 다른 예배스타일을 선보이는 거죠. 교회도 시대적 요청에 따라 새로운 흐름을 타야 하며,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기독교인 숫자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제 기독교의 양적팽창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닌가 하는 전망을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교회 나름이라고 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교회는 계속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드릴 수 없지만, 기본적인 것을 만족시켜 주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리겠죠.”
 
  ―한국에서 기독교인이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기독교인 개개인의 윤리의식에는 아직도 문제가 많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기독교 윤리가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유럽이나 미국은 몇백 년 이상 기독교 신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한국기독교 역사는 120년으로 비교적 짧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해요. 신앙인의 도덕수준은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 도덕수준보다 더 높아야 합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성실 정직을 실천하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올바른 양심을 갖고 일을 해나가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면 평양에서 1907년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는 등 평양은 ‘아시아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도시입니다. 불행히도 지금은 남북이 갈리고 독재자들에게 평양이 점령되어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평양에서 신앙생활을 하셨고,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북쪽에서 많이 내려왔습니다. 북한에 3500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두 개만 달랑 남았습니다. 2008년에 訪北(방북)했을 때 그쪽 관계자들에게 ‘그 많던 교회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하고 물으니 ‘6·25 때 美帝(미제)가 40만 개 폭탄을 터트려서 평양의 교회가 다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김일성 語錄(어록)에 어릴 때 교회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북한에 가서 그 얘기를 하니 아무도 몰라요. 칠골교회는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 여사가 다니던 교회입니다. 김일성 어록에 ‘내가 어릴 때 어머니하고 다녔던 교회를 복원하라고 지시한 뒤 가 보니 너무 초라하더라’는 기록이 있는데 북한 관계자들이 그 사실조차 모르더군요.”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 신격화가 기독교의 변형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북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구호는 성경구절과 똑같습니다. ‘주체사상은 영원불멸이다’는 구호도 있던데, 이것도 기독교 용어의 변형이에요. 이런 사례가 무수히 많아요. 제가 북한을 두 번 다녀왔는데, 북한에 기독교 신앙이 들어가면 빨리 복음화되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근래에 교회가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시대 교회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남북통일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통일 이슈를 늘 생각하며 기도하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통일 시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탈북자를 위해 자유시민대학과 새터민을 위한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이슈인 지구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생태계 파괴는 지구의 위기이고 재앙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망치는 것입니다.
 
  소외된 농촌 어린아이와 120만명의 해외 이주민들도 돌봐야 합니다. 시골에 부모에게 버림받아 조부모에게 맡겨진 애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조부모가 돌아가신 뒤 아이들이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그룹홈의 목사님들과 공동생활을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런 그룹홈을 많이 돌봐주고 있습니다. 多文化(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어머니가 한국말을 못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지에서 비자를 기다리는 해외 이주자들에게 한국말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교회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2010년부터 출산하는 성도들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합니다. 저는 결혼 주례를 설 때마다 자녀를 기본적으로 세 명씩 낳으라고 권합니다.”
 
 
  평양에 짓고 있는 심장전문병원
 
2007년 12월 4일 평양 대동강구역 동문2동 병원 부지에서 거행된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 착공식.
  ―기독교인들끼리만 섬기고 나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비판이 있었던 점을 겸허히 반성합니다. 이제는 교회가 사회 속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고 선천성 심장병환자는 신청을 하면 무료로 수술해 줍니다. 이제 심장병 무료수술은 베트남, 중국 등 해외환자 무료수술로 이어지고 있어요.”
 
  ―盧武鉉(노무현) 정권 당시 정권 차원에서 압력이 와서 북한에 심장병원을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진상을 밝혀야 되지 않을까요.
 
  “그건 오해입니다. 다른 나라의 어린이 심장병 환자들까지 돕는 마당에 북한 어린이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평양에 병원 설립을 하게 된 것이지 권력의 압력 때문이 아니란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밝힙니다. 북한에 여러 병원이 있지만 심장전문병원이 없어요. 평양사람들이 남한에서 건물 지어 준다는 사실을 다 압니다.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남한의 기독교가 한 게 뭐 있느냐 할 때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상징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것인데, 이상한 소문이 나서 우리도 곤혹스럽습니다.”
 
  ―평양에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짓다가 부도가 났다는 소문은 어떻게 된 겁니까.
 
  “골조공사는 끝났고 내부 인테리어와 기본적인 시설만 들어가면 되는데, 현재 북한으로 자재를 못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서해교전이 발생하고 미사일도 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 잠시 중단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재는 우리가 제공하고 북한은 기술인력과 모래를 대고 있습니다. 자재만 올라가면 조만간 완공될 것으로 봅니다.”
 
  평양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은 지하 1층 지상 7층 병상 260개 규모로 2007년에 착공해 2009년 완공을 목표로 했는데, 좀 늦어질 전망이다. 건립비용은 약 200억원이 소요될 예정. 병원이 완공되면 남측 의료진 60여 명이 상주하고 병원 내에 원목사무실과 예배실이 들어서게 된다.
 
 
  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변화 통해 사회 바꿔야
 
  ―기독교에서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건 이해가 갑니다만, 일부 기독교나 천주교 단체 가운데 무신론을 기본으로 하는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사사건건 反(반)정부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金大中(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그런 단체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진 것 아닌가요.
 
  “기독교인 가운데 약 80%는 보수적이고,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도 과격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기본 정신은 순수하고 복음적입니다. 사회정치운동을 통해 혁명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삶의 변화를 통해 사회가 바뀌어야 사회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얼마 전 좌파 쪽 교수 한 분과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고 했더니 그 교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폭력이 더 무섭기 때문에 그런 권력에는 폭력으로라도 대항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폭력까지도 미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는 주장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혼란만을 부채질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도자들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꿈과 희망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외국의 청문회는 그 사람의 능력이나 앞으로의 비전을 확인하는 과정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과거를 샅샅이 뒤져 나쁜 점을 찾는 데 주력합니다. 능력이 있어도 청문회 하다가 중간에 물러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남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할 때 나의 긍정적인 면도 같이 인정받는 윈윈작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도 가정에서의 갈등을 부추기고, 이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요.
 
  “TV 드라마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무책임한 악플도 큰 문제입니다. 제가 보다못해 2009년 10월에 뜻있는 목사님들과 국민희망실천연대를 출범시켰습니다. 이런 단체를 통해 몇만 명을 네트워킹해서 건전한 인터넷문화를 유도하고 드라마 바로세우기, TV에서 선정성 폭력성 몰아내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여론을 선도하려고 합니다. 이 운동은 초교파적으로 전개될 것이며 각계각층이 힘을 합쳐서 건전한 TV, 사람 살리는 인터넷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꿈과 희망, 긍정을 떠올리라
 
  ―우리나라가 해외 선교사 파송 세계 2위국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해외로 파송하는 선교사 수를 보면 미국이 4만명, 우리나라가 2만여 명으로 세계 2위입니다만, 인구 대비 선교사 파송 수로는 세계 1위의 선교대국입니다. 이것은 지난 개화기와 근대화 시기에 우리 교회가 해외로부터 받은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이 해외로 베풀고 도우러 나가는 데 앞장선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는 현재 66개국에 75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최근에는 현지에 신학교를 세워 自國民(자국민)을 훈련시켜 교회 지도자를 배출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외에 7개의 신학교를 세웠고 앞으로도 계속 세울 계획입니다.”
 
  ―‘이영훈 목사의 순복음’은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과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기대가 있지 않을까요.
 
  “제 역할은 뭔가 달라지려 노력하기보다는 조 목사님의 사역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속에 기여하는 교회가 되고자 나누고 섬기는 일을 주도해 나갈 생각입니다.”
 
  ―살면서 힘든 일은 없었습니까.
 
  “제일 힘들었던 건 미국 워싱턴에서 목회하면서 교회건축을 할 때였어요. 당시 제가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필라델피아에 있는 학교와 워싱턴의 교회를 오가느라 힘들었죠.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교회를 사사건건 비판하고 간섭하는 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현재 고난은 하나님께서 좋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이는 아프면서 자라고, 문제가 있으면 그걸 통해 다듬어지지 않습니까. 돌아보니 그 시절이 저에겐 유익한 기간이었다고 생각돼요. 지금은 뒤에서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려면 맷집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을 좋아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사회가 어수선한데 신년을 맞아 독자들에게 덕담을 하신다면.
 
  “月刊朝鮮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점은 한 번도 보수언론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기존 틀에서 좋은 것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보수사회입니다. 진보는 틀을 바꿔서라도 새로운 걸 해 보자는 건데, 기존의 좋은 걸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문제를 극대화하여 불안에 익숙한 사회로 만들지 말라는 것을 언론에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모쪼록 우리 국민이 꿈과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자세로 미래를 향해 도전해 나가도록 언론이 앞서 주시길 기대합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이란?
 
  기독교에서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평양대부흥운동을 최고의 사건으로 꼽는다. 吉善宙(길선주) 장로의 회개를 계기로 축첩, 조혼, 음주, 흡연 등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윤리관이 정립되면서 강력한 성령체험과 새벽기도운동이 시작됐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2007년에 기독교계는 갖가지 기념행사를 펼치고 제2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회봉사활동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84년부터 지금까지 총 85억원의 예산을 들여 4200명에게 선천성 심장병 환자 무료수술을 해 주었다. 국내는 물론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해외의 환자들도 입국해 무료수술을 받고 희망을 되찾았다. 또 조용기 목사가 은퇴하면서 500억원을 출연해 만든 재단법인 사랑과행복나눔에서는 2008년 한 해 동안 1500명의 저소득층과 빈민층을 도와주었다. 1999년에 설립한 NGO 굿피플은 해외 긴급구호와 구제사업에 힘을 쏟아 유엔경제이사회특별협의지위 NGO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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