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MBC여서, 또 PD수첩이어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방송사였건 이런 식의 사건이 벌어졌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 “PD수첩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만 넘치는 사람들의 집합소. PD수첩 제작진,
정정보도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 안 해”
⊙ “국민들이 왜곡보도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며 책 썼다”
정지민
⊙ 1982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졸업. 이화여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 ‘PD수첩-광우병’ 편의 문제를 지적한 <주-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출간.
⊙ 대한언론상 특별상,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특별상, 바른사회를 위한 아름다운 사람 상 수상.
⊙ “PD수첩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만 넘치는 사람들의 집합소. PD수첩 제작진,
정정보도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 안 해”
⊙ “국민들이 왜곡보도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며 책 썼다”
정지민
⊙ 1982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졸업. 이화여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 ‘PD수첩-광우병’ 편의 문제를 지적한 <주-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출간.
⊙ 대한언론상 특별상,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특별상, 바른사회를 위한 아름다운 사람 상 수상.
1년 반이 넘도록 MBC와 맞서 싸우고 있는 20代(대) 후반의 여학생은 당찼다. 필자는 인터뷰의 주인공이 오랫동안 법정에 들락거리고 있어, 그녀의 심신이 지쳐 있지 않을까 내심 우려했다. 하지만 그녀는 ‘재미있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번역가 정지민(27)씨. 정씨는 2008년 6월 25일,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이하 ‘광우병 편’으로 표기. 2008년 4월 29일 방영)의 제작진이 방송을 왜곡 보도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녀는 이 방송에 사용된 해외 취재 테이프를 직접 번역하고 감수했다.
정씨가 이 폭로를 했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PD수첩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한 상태였다. 정씨의 폭로는 검찰이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계기가 됐다.
정씨는 이후 MBC의 공식 사과방송과 PD수첩 제작진의 보직해임, 고등법원의 정정보도 판결, 검찰의 기소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나가고 있다.
2009년 10월에는 PD수첩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광우병 편’을 왜곡했다는 내용을 담은 <주-나는 사실을 존중한다>라는 책을 냈다. 2008년 11월에는 朴孝鍾(박효종) 교수가 대표로 있는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수여하는 ‘바른사회를 위한 아름다운 사람 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해 민사소송 1·2심에서는 “MBC는 광우병 보도의 일부 내용을 정정하거나, 반론보도하라”고 판결했다. PD수첩 측은 이에 불복, 대법원에서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鄭雲天(정운천) 前(전) 농식품부 장관, 閔東石(민동석) 전 농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형사소송은 4차 공판(2009년 12월 2일)을 끝낸 상태다.
정씨는 이 공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녀는 공판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공판은 우리의 압승이었어요. 처음에 제가 등장했을 때는 ‘자기네가 맞다’고 우겼는데, 더 이상 이런 주장은 못합니다. 고등법원에서 그들의 왜곡보도에 대해 판결을 내렸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형사재판을 하면서 교묘하게 여론몰이를 해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PD수첩 제작진 여전히 반성 안 해”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민사소송 결과는 무시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언론들을 통해 물타기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씨는 “2008년 6월에 처음으로 PD수첩 제작진의 의도적 왜곡을 폭로한 후보다, 최근에 형사 소송 공판 증인으로 나서면서 더 피곤해졌다”고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고, 재판정에서 저를 이상한 애로 몰아가는 태도였어요. 정정보도 판결이후에도 全(전)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한 것에 대해 전혀 반성하는 자세가 없습니다. 게다가 공판 과정에서 몇몇 인터넷 매체들은 ‘誤譯(오역) 왜곡의 당사자는 정지민이다’ 혹은 ‘검찰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등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 여론몰이를 하고 있어요.”
―그런 매체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입니까.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다른 방법을 쓰려고 해요. 이들의 왜곡보도를 총정리한 책자를 준비 중입니다. 이 책자를 각 광고주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겁니다. 적어도 기업은 어떤 매체에 광고를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지민씨는 질문에 대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속사포처럼 대답했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보죠. PD수첩과 오랫동안 일했습니까.
“대학 다닐 때부터 영어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중 어떤 일은 PD수첩과 관련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확히 제 번역물이 어떤 프로그램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챙겨보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 저를 두고 ‘PD수첩의 내부 고발자’라고 지칭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재판정에 서기 전까지 저는 PD수첩의 PD 중 대면한 사람이 없어요. 저는 PD수첩으로 인한 피해자입니다. 그들은 제가 제대로 감수까지 한 번역 내용을 자막을 이용해 변질해 버렸습니다.”
‘광우병으로 죽은 여자 이야기’라며 번역 부탁
정지민씨가 번역을 시작한 것은 이화여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이었다. 같은 학교 선배가 ‘영어를 잘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찾는다’고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지를 낸 것이 시작이었다. 정씨는 학자였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 총 7년을 영국에서 보낸 덕분에 영어에 능통했다. 친구 몇 명과 함께 MBC를 찾은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의 방송국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저 호기심 차원으로 MBC에 갔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시사다큐 프로그램의 번역물을 맡았죠. 방송국의 작가들이 저에게 취재방송 테이프를 주면 그것을 듣고,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부터 고정적으로 했습니까.
“한 번 하고 나니까, 방송국에서 주로 보조작가들이 자기들이 필요할 때 가끔 연락을 하더군요.”
―‘광우병 편’의 테이프 번역은 어떻게 시작한 겁니까.
“2008년 4월 중순에 PD수첩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번 방송은 ‘광우병으로 죽은 여자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알기론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엄청나게 낮은데, ‘뭔가 새로운 근거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본 테이프에는 ‘광우병으로 죽은 여자 이야기’라고 볼 만한 근거가 없었다고 한다. 정씨의 이야기다.
“제가 본 자료들은 광우병과의 상관관계가 성립되기는 어려웠어요. 감수를 하면서, 협상을 빠르게 해 버린 정부에 대해 가벼운 비판을 제기하는 정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우병 편’의 주요 내용은 미국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동영상과 ‘아레사 빈슨’이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의 사망 관련 내용이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동영상은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 학대 동영상이었다. 이 동영상은 검사가 끝난 소가 긴 통로를 걷고 난 뒤 도축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아레사 빈슨은 위장우회시술을 받은 지 약 3개월 만에 뇌질환(급성베르니케 뇌병증)으로 사망한 여성인데, 미국에서 그녀의 사망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언론에서는 그녀가 인간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을 부풀려 보도했지만, “빈슨의 死因(사인)이 공공보건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관계자의 말이 맨 마지막 대목에 인용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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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6일, ‘MBC PD수첩 피해자 범국민연대’가 MBC PD수첩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번역에 신경 쓰겠다’는 내용 발견
그녀는 취재 테이프물에 나오는 ‘vCJD(인간 광우병)’이며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의 용어에 익숙했다. 그녀가 오랜 시간을 보낸 영국이 광우병이 심했고, 때문에 이에 관한 보도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에게 테이프를 건네준 보조작가가 ‘빈슨을 광우병으로 죽은 여성’으로 착각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저에게 몇 번씩 ‘광우병 소’, ‘광우병 우려 소(광우병이 우려되는 소)’라는 표현을 했을 때 잘 몰라서 그러려니 싶어서 바로잡아줬습니다.”
정씨는 보조작가에게 “휴메인 소사이어티 영상에는 동물 학대 이외에는 증거가 없으니, 무리하게 광우병과 연관시키는 것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PD에게 해보라”고 조언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판단으로는 어떻게 해도 그 영상을 광우병과 연관짓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씨는 PD수첩의 ‘광우병 편’을 시청하지 않았다. 방송이 나간 뒤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농식품부가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등 일련의 과정도 전혀 몰랐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을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2008년 6월 25일에 한 포털을 보다가 기사목록에 ‘PD수첩, 번역에 신경 쓰겠다’는 제목을 보고 무심코 클릭을 하게 됐어요.”
정씨는 이 기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PD수첩의 제작진이 “번역에 신경을 쓰겠다”던 문제의 방송분은 자신이 번역 및 감수를 한 ‘광우병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고,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해보니, 그녀의 짐작은 맞았다. 2008년 4월 말에 PD수첩이 방영됐고, 6월까지 계속된 촛불시위는 모두 ‘광우병 쇠고기’ 때문이었다. 정지민씨는 “내가 한 번역을 토대로 한 방송이 사실관계를 오도해서 광우병 공포를 확산시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는 생각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PD수첩 홈페이지 게시판을 가봤다. 시청자들의 원성이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 PD수첩이 하루 전날인 2008년 6월 24일, ‘다우너 소 동영상을 보고 광우병 걸린 소라고 말한 것은 실수’라는 내용의 ‘PD수첩 오보논란의 진실’ 프로그램을 방영했기 때문이다.
PD수첩의 ‘광우병 편’ 보고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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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18일, 서울중앙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가 MBC PD수첩 사건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그녀는 ‘번역에는 문제가 없고,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를 광우병으로 연결시킨 왜곡과 제작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논란의 중심에 섰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 지 사흘 만에 검찰에 소환됐다. 정지민씨는 6월 28일, 검찰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번역한 취재물을 토대로 만들어진 ‘광우병 편’ 방송을 봤다.
―기분이 어땠습니까.
“실망이라기보다는 경악이었어요. 첫째, PD수첩이 제게 넘겨준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의 영상 전체를 보면, 일어나지 못하는 소는 총살해서 폐기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방송분에서는 광우병에 걸렸을 수도 있는 소가 식용으로 도축됐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식의 내용이 보도됐습니다. 심지어 해설자는 폐기 전의 다우너 소를 가리키면서 ‘저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말해 ‘다우너 소=광우병 소’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둘째, 아레사 빈슨 부분에 대한 왜곡은 더 경악할 수준이었어요. PD수첩은 수많은 오역을 통해 아레사 빈슨이라는 여성이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이고, 광우병 희생자라고 조명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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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남부지법은 2008년 7월 31일, MBC PD수첩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
“그렇다면 왜 그들은 2차방송, 해명방송에서 계속 억지스러운 변명에 급급했을까요? 그들은 그런 말 한마디로 이 사회에 극심한 공포를 자아내는 시나리오를 그린 겁니다.”
―검찰 측에서 반응이 어떻던가요.
“제가 방영분을 보면서 너무 놀라니까 그럴 때마다 자세히 물어봤습니다. 검사가 묻는 말에 기억을 더듬어 답했습니다.”
―이후에 수차례 증언을 했죠.
“검찰이 PD수첩 측에 취재원본 자료를 요구하고, 또 저를 계속 소환하면서 조사를 반복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PD수첩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PD수첩은 제가 제기했던 의혹에 답변하지 못했고, 검찰은 왜곡보도라고 결론 내리게 된 거죠.”
“왜곡보도 폭로, 후회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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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4월 29일 방영된 PD수첩 광우병 편 장면.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라는 캡션이 선명하다. |
이렇게 되자 일부에서는 정씨의 뒤에 ‘보이지 않는 조종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정씨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번 재판이 MBC 對(대) 보수 언론의 싸움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MBC의 정치 이념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조중동’이라는 표현을 이번에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런 저를 두고 조중동이 뒤에 있다, 뉴라이트가 배후에 있다는 시선을 보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입니다. PD수첩은 여전히 본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시청자에게 솔직하게 사과를 하지도 않잖아요. 갖은 핑계를 대며 ‘대승적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그건 사과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방송 권력과 맞서고 있는 셈인데, 괜히 이런 일을 시작했다고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저는 이 일이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저는 남들보다 특별히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고, 또 한국의 여러 이슈에 대해 소명의식이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데,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요?”
정씨는 “만약 이번 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저 자신에게 부끄럽고 스스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이 MBC여서, 또 PD수첩이어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방송사였건 이런 식의 사건이 벌어졌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20代(대)의 나이에 흔치 않은 일을 겪었는데, 생활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사람들을 만날 일이 늘었다는 것, 공부를 할 시간이 줄어서 안타깝다는 것 정도. 그것 빼고는 없는데요.”
그녀는 ‘PD수첩 제작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30초 정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전혀 논리가 없고, 자기들이 ‘善(선)’이라고 생각하는 감정만 넘치는 사람들 집합소예요. 그런 생각들이 오늘날의 문제를 야기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지민씨가 출간한 <주-나는 사실을 존중한다>는 책은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녀는 “꼭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책을 냈다”고 했다.
“시청자나 독자들이 방송,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습득한 정보를 무조건 맹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객관적으로 PD수첩 사건은 한국 사회에 특별한 판례를 여럿 남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방송에 대한 신개념 게이트키핑 모델을 제시한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긴 머리를 폴폴 날리며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처럼 여전히 상큼했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