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 李在五 국민권익위원장 - 낙선한 뒤 아들 끌어안고 엉엉 울어 : 월간조선

李明博(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5월 26일, 李在五(이재오) 前(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경선 후유증으로 생긴 당내 분란의 책임을 지고 미국으로 사실상의 ‘정치 유배’를 떠난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진영의 선봉장이었던 그는 상대 진영으로부터 ‘오만의 극치’, ‘독선적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 유배’는 이명박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인 그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인 5월 25일, 그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송별연에서 “한나라당이 나를 희생양으로 해서 성공하는 정부,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는 또 “우리가 세운 정부가 경제를 살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나는 5년 동안, 그 이후에라도 한국에 못 돌아와도 좋다”며 울먹였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한국을 떠난 지 10개월여 만인 2009년 3월 28일 밤, 그는 조용히 귀국했다. 귀국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귀국 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조심스러웠다. 귀국 6개월 후인 2009년 9월 29일, 그의 표현을 빌리면 ‘微官末職(미관말직)’인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7개월여 만에 공직에 등용된 것이다.

이재오 전 대표가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들에게는 생소한 기관이었다. ‘실세 중의 실세’,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인물이 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이 기관은 본의 아니게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이 ‘이재오의 입’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입’이 아닌 ‘발’로 일하고 있다. ‘창의적인 기자’들은 그가 물가에만 가도 한반도 대운하를 연상케 하는 기사를 쓰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현장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장 취임 직후인 2009년 10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2개월간 그는 112곳의 현장을 방문했다. 이 기간 동안 주말과 휴일을 제외한 근무일 43일 가운데 38일간 현장을 찾았으니 하루 평균 세 곳을 뛴 셈이다. 나머지 5일은 국정감사 등 국회일정과 해외출장으로 부득이하게 현장을 찾을 수 없었던 날들이다.

민원 해결사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이재오 위원장(오른쪽)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현장 방문은 요일별로 주제가 다르다. 월요일은 제도 개선 및 권고를 위해 해당 기관을 방문하는 등의 좋은 제도 다듬기, 화요일은 민원발생 현장 등 민생현장 보듬기, 수요일은 국책사업장 등 행정현장 방문을 통한 부당행정 바로잡기 등이다.

이러한 현장 행정을 통해 이 위원장은 난마처럼 얽혔던 속초비행장 인근 고도제한 완화 문제를 해결했고, 울산시 구영리 학교부지의 주민 편의시설 건설, 전남 담양군 오현마을 88고속도로 방음벽 설치 등 미해결 민원을 풀어냈다. 언론은 그런 그에게 ‘민원 해결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민원 해결사’ 이재오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가 공존한다. ‘역시 이재오는 힘이 세다’와 ‘오래된 민원을 해결하는 힘은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열정과 지혜가 만든 작품’이라는 시각이다. 그는 정말 힘이 센가?

서울 불광동 자신의 개인사무실에서 만난 이재오 위원장은 청바지에 점퍼 차림이었다. 손으로 뜬 것으로 보이는 투박한 조끼와 목을 감은 두꺼운 목도리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이웃 아저씨였다. 그 모습에서 ‘투사 이재오’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불가능했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그는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오는 길이었다. “휴일에는 연탄과 함께 도배도 해 주고, 김치도 배달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오래 계셨는데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객지생활이니까 집 나가면 고생이죠.”

―미국 체류 때처럼 시간적으로 여유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보기는 처음이었죠.”

―원 없이 쉬셨을 텐데, 쉬어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내 의지로 쉰 게 아니라 타의에 의해 쉬게 된 거였죠.”

―이 위원장을 인터뷰하기 전에 부인 秋英禮(추영례) 여사를 만났는데, 추 여사께서 이 위원장을 만나러 미국에 갔을 때 남편이 너무 왜소해 보여서 눈물이 났다고 하던데요.

“미국이란 나라가 크니까 그렇게 보였겠죠.”

―미국 생활에 쉽게 적응이 되던가요.

“처음 한두 달은 온갖 생각이 많이 났지만 그 후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미국 생활에 젖어들기 시작한 거죠.”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는 국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리빌딩,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중요한 시기에 이 위원장 같은 분이 대통령 곁에 없음으로 해서 추진력이 모자랐던 것 아니냐, 하는 아쉬움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권 초기에는 인재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정권을 창출하는 데 일조했던 사람들이 빠져주는 것도 필요해요. 대통령의 임기가 3~4년차에 들어서면 그땐 아무래도 정권의 힘이 좀 빠질 테니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좀 쉬는 것도 좋죠.”

―정권 후반기를 위해 체력을 비축했다는 뜻인가요?

“체력이야 제가 원래 좋으니까. 억지로 스스로를 위로하자면 그런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이재오 위원장이 2009년 11월 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반부패 세계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아랍계 고위 관계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 생각해 본 적 없어”

―2008년 4·9총선에서 이 위원장의 아성이랄 수 있는 은평을에서 낙선했는데 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십니까.

“원래 선거에 지면 이유가 수백 가지는 되죠.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가 좀 지역구에 소홀했다는 거죠.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제가 지역구에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또 하나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였다고 봅니다. 당내외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공격의 초점을 저한테 맞췄어요. 당에서는 공천문제로, 당 밖에서는 대운하 문제로 저를 공격했죠. 북한산 밑에 있는 지역구인데 대운하가 무슨 상관인가, 그런 정치 논리가 이 지역에서 부각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막상 총선 판이 벌어지니까 운하 반대를 위한 反與(반여) 연합전선 같은 것이 형성돼 그쪽으로 표가 쏠린 거죠.”

―2010년 7월로 예정된 은평을 보궐 선거에는 출마할 생각입니까.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이라는 자리는 행정부의 다른 부서와 성격이 달라요. 정부 각 부처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국민이 피해 보는 건 다 우리 위원회로 구제 신청이 들어옵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빛도 안 나요. 아무래도 민원은 해결되는 것보다 안되는 것이 많을 것 아닙니까. 다수의 불만을 다독거려 주는 일만으로도 바빠요. 2010년에 국회의원 보궐선거한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일이 바빠요. 제 성격이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외의 것들은 생각을 안 합니다. 아직 보궐선거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국민권익위원장 임명은 누구의 뜻이었습니까.

“임명권자의 뜻이라고 봐야 안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께서 많은 정부 부처 중에 그동안 가장 신뢰했고, 의지했고, 동지로서 한배를 탔던 이 위원장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앉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경제 회복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을 보듬어 주는 한편 필연적으로 생기는 부패를 막는 역할을 우리 위원회가 하고 있어요. 경제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부패 추방이에요. 지금까지는 적당한 부패를 통해 경제가 성장했다면, 지금은 부패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꼴이 돼 버렸어요. 부패 문제를 맡아서 다뤄 주고, 또 親(친)서민정책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부서를 누군가는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침 제가 할 일 없이 놀고 있으니까.”

선진국 되려면 부패 근절해야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부패 상태를 심각하게 보신 게 아닐까요.

“대통령께서 8·15기념사에서 권력형 비리, 공직자 비리, 토착형 비리가 없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부패가 있는 나라는 안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강한 의지입니다.”

이재오 위원장은 2009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6차 反(반)부패 세계포럼에 참석해 ‘부패방지를 위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에서 이 위원장은 “온정주의가 비교적 강한 한국의 국내 정서를 고려해 국민권익위는 제도개선과 교육, 홍보를 통한 예방적 기능과 부패행위의 적발과 처벌 같은 사후 통제적 기능을 종합 수행하면서 부패문제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부패 세계포럼은 1999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주창, 부패방지 국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창설된 각료급 국제회의다. 이번 6차 회의를 끝으로 유엔 반부패협약 당사국 총회에 그 역할이 위임됐다.

―반부패 세계포럼에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경문제가 세계적인 흐름이었는데 지금은 반부패가 큰 흐름이라는 것을 실감했어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안팎에서 거의 10년을 끌어오고 있는데, 청렴도와 경제발전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요. 대통령께서 말한 3대 비리와 우리 생활 속 일상적 부패 문화만 청산돼도 경제 발전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어요.”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2009년 부패지수는 전 세계 180개국 중에서 39위로 나타났어요. 우리 경제력이 세계 15위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패지수가 높은 편이죠. 선진국으로 가려면 우리도 20위 안쪽에 들어야 합니다.”

―위원장으로 활동한 지 두 달이 됐는데, 부패를 없앨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던가요.

“부패에 대해 적당히 넘길 것이 아니라 잘못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가치관은 확립돼 가고 있어요.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심각하긴 한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일부가 문제죠.”

계좌추적권 요구한 적 없다

―공직자 부패 전담기구 설치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외국에는 그런 예가 많이 있죠. 태국만 해도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는 공직자 부패가 생기면 검찰하고 회의를 해요. 검찰이 ‘이건 기소 안된다’고 부방위로 내려보내면 부방위는 독자적으로 기소를 해버려요. 우리는 그런 사정기구가 감사원, 검찰, 경찰, 금감위,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기관이 있잖아요. 그런 기관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따로 뭔가를 만든다는 건 어렵다고 봅니다.”

―국민권익위에도 고위 공직자 고발권이 있잖습니까.

“장차관 이상, 시도지사, 군인은 장군 이상, 경찰은 경무관 이상, 국회의원, 판검사 이런 분들에 대한 고발권이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나 비리 관련 신고가 들어와도 우리 위원회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당사자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볼 권한도 없어요. 그냥 신고가 들어오면 검찰로 넘겨주고, 검찰이 무혐의 처리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가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조사권 정도는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던 거죠.”

―조사권에 계좌추적권이 포함되는 겁니까.

“계좌추적권하고는 아무 관계 없어요. 우리 위원회가 말한 것은 단지 신고 들어온 사람에 대해 그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열람권만 갖도록 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걸 계좌추적권으로 둔갑시켜 모든 공직자의 계좌를 다 추적하는 것처럼 덮어씌워 버리니까 이것도 못하게 되어 버렸죠.”

―고위 공직자 청렴도 평가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청렴도 평가 대상에는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 인허가 문제 등 이권과 관련된 부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말단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청렴도 평가를 할 겁니다. 말단이라도 이권 관련 부서로 갈 때는 재산등록을 하고 나올 때도 재산 신고를 하도록 할 겁니다. 우리 위원회가 법 테두리 안에서 공공기관의 청렴도 평가와 공직자의 청렴도 평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그걸 확대 강화하겠다는 거죠.”

―정권으로서는 공무원 조직이 함께 일해야 하는 파트너인데, 청렴도 강화한다고 과거보다 감시 활동을 강화할 경우 공무원의 사기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요.

“사기문제보다는 복지부동할 가능성이 더 크죠.”

1일 1현장 방문

―공무원들의 사기 진작과 청렴도 강화의 경계를 어떻게 정할 생각입니까.

“다수의 공무원은 깨끗하게 살고 자기 임무에 충실해요. 극히 일부의 공직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니까 전체 공무원의 부패로 비치는 거죠. 우리 경제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한 덕입니다. 경계를 만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5000원짜리 식사를 언급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셈이 된 것 같은데요.

“계산은 못 해 봤지만 본전이야 찾았겠죠. 제가 5000원짜리 식사 얘기를 꺼낸 의미는 공직자들이 관공서 주변의 서민을 상대하는 작은 식당들을 이용하자는 뜻이었어요. 이런 식당은 우리 공직자들이 가서 팔아주지 않으면 식당 유지가 어려워요. 식당이 어려워지면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영세업자들도 어려워지는 거죠. 그런 식당들을 공직자들이 많이 이용해 주는 게 친서민정책이라는 거죠.”

―요즘 서울 시내에서 5000원짜리 식사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나 여의도 일대는 5000원짜리 식사가 많지 않지만,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4000~5000원짜리 식당이 많아요. 어쨌든 5000원짜리 식사 이야기는 가격에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라 공직자들이 서민식당을 이용해야 한다는 게 포인트였어요.”

―취임 후 1일 1현장을 실천하면서 오래된 민원들을 해결해 주고 있는데, 이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해결되는 것만 보도해서 그렇지, 해결 안되는 것도 많습니다. 어떤 신문은 ‘민원 해결도 절차에 따라서 하라’고 지적했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 민원은 하나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공직자들이 민원 현장에는 가 보지 않고 서류로만 판단하여 뒤로 미루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민원 발생 현장마다 일일이 찾아간다는 것도 무리가 아닌가요.

“서류를 통해서는 민원인의 땀과 눈물, 한숨을 볼 수 없어요. 현장에 가면 민원 서류 속에 담겨 있는 땀과 눈물, 애환, 고통이 다 보여요. 그래서 현장에서 해당 기관장에게 전화를 걸거나 중재를 해서 민원을 해결하는 거죠. 제가 해결한 현장민원이 대부분 그런 겁니다.”

―정부 각 부처 간의 이해관계가 얽히면 일이 안되는 부분이 많다는데 위원장이 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민원이 쉽게 해결되는 건 아닐까요.

“제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력하고 발로 뛰고, 가슴으로 부딪치는 열정 때문에 풀리는 겁니다. 다른 공직자들도 저처럼 하면 풀 수 있는 민원들이었어요.”

울산시 울주군 구영택지지구 내 학교부지 활용 관련 현장조정회의. 이재오 위원장과 박맹우 울산시장, 교육감, 울주군수, 한국토지주택공사, 주민대표가 조정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미관말직”

―다른 부처 장관이나 공무원들 말을 들어 보면 그 부처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장관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바빠서 현장에 나갈 엄두를 못 낸다고 하던데요.

“저는 매일 새벽 6시 반에 출근합니다. 위원회에 도착해서 7시10분까지 운동하고 제 방에 들어오면 7시30분이 돼요. 그때부터 회의를 시작해서 8시30분에 끝내요. 남들이 출근할 시간에 그날 제가 주재하는 회의는 다 끝나는 거죠. 그 다음부터 각 국, 과의 보고를 받으면 오전 일과가 끝나요. 점심식사 하고 오후에는 현장에 나가죠. 우리 위원회는 고충담당, 부패담당, 행정심판담당 부위원장들이 자리를 지키니까 굳이 제가 자리에 앉아 감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뛰니까 직원들은 죽을 맛이죠. 앵벌이 해오듯 위원장이 만날 민원 갖다주니까. 우리 직원들은 거의 정시 퇴근을 못 해요.”

―그래도 직원들은 요즘 국민권익위원회의 말발이 먹히기 때문에 일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하던데요.

“우리 위원회는 정부 각 기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많아요. 공무원사회가 소문이 빠릅니다. 위원장인 제가 현장을 열심히 뛰니까 자기들 친정에다가 얘기할 것 아닙니까. 그게 우리 직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고요.”

―정권의 2인자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입술이 터지도록 일을 해도 칭찬에는 인색하고, 실세니, 2인자니 하는 말로 초를 쳐버리잖아요. 일한 걸 그대로 평가해 주는 것은 고사하고 폄하하고 사실을 왜곡시켜서 국민들에게 왜곡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잖아요.”

―이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의 실세 아닙니까?

“실세는 무슨 실세! 이명박 정권하에 실세는 이명박 대통령 하나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실세여서도 안되고 실세인 척해서도 안돼요. 저는 장관도 아니고 장관급이잖아요. 미관말직이잖아요. 국무회의 때도 제일 말석에 앉습니다. 지나간 정권에서 실세로 불렸던 사람 중에 나처럼 미관말직을 맡았던 분이 있나요?”

출근은 버스, 퇴근은 지하철로

이재오 위원장이 자전거를 타고 서울 서대문 권익위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지금도 출근은 버스로 합니까.

“저는 취임하고부터 출근은 버스로 하고 퇴근은 지하철로 합니다.”

―자가용 타고 다니고 싶진 않으세요.

“관용차 타고 편하게 다니고 싶은 욕망이 없진 않지만 그건 공직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특히 제 자리는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일이니까 국민이 많은 곳으로 찾아다녀야죠.”

―위원장에 계시는 동안 계속 그렇게 출퇴근할 겁니까.

“그래야 안되겠습니까. 그게 도리죠.”

―테러의 위협도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뭐 나쁜 짓 했나요? 저를 테러해서 덕 볼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과거와 달리 대통령이나 총리도 지방에 갈 때 버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사회도 참 많이 바뀌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던데요.

“차량 여러 대를 동원해서 수행원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는 것도 다 부패예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는 게 자기가 살아온 삶에서 나오는 거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닙니다. 대통령 스스로 가난하게 자라서 성공하고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삶이 실용적인 삶이었으니까요. 공무원은 현장을 기피하면 안돼요. 현장에 가봐야 실용도 생기고 친서민도 생기죠. 자가용 타고 왔다갔다하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어떻게 알겠어요. 제 자리는 제 몸을 돌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돌보는 자리예요. 대통령이 저한테 고생하라고 준 자리죠.”

―국민 권익 차원에서 세종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 문제를 잘못 얘기했다가는 ‘이재오가 다 해먹어라’ 하면서 그나마 미관말직도 유지하기 어려워질 테니 그냥 넘어갑시다.”

―법과 원칙의 힘이 워낙 강했는지 철도노조가 두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랜만에 그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하던데요. 이 위원장께서는 그분의 어떤 점이 좋아서 정권 창출에 온몸을 던진 건가요.

“이 대통령은 나라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 부단한 개혁과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했어요. 지도자들이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이 드물잖아요. 임기 동안 권력이나 누리는 것은 이 대통령과 안 맞아요. 저는 민주화운동을 오래했지만 군사독재만 무너지면 나라가 저절로 잘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군사독재가 끝난 이후에 나라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던 분이에요. 나라를 위해 훌륭한 계획을 가진 사람을 돕는 것은 정치인의 덕목입니다. 저는 15대 국회의원 때부터 그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제 전부를 바쳤죠.”

“정치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현장민원 탐방에 나선 이 위원장이 경북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토론을 끝낸 후 취침준비를 하고 있다.

―위원장께서 미국에 체류 중이던 무렵 月刊朝鮮이 金武星(김무성) 의원 인터뷰를 했는데요(2009년 1월호). 김 의원은 “이재오의 조기 귀국은 親朴(친박) 진영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정치인들 발언에는 과장이 좀 많습니다. 정치인들이 ‘決死(결사)항전한다’ 하면서도 죽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잖아요. 전 그런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한때는 지지하는 사람이 달랐어도 소속 정당이 같은 사람들끼리 이제는 화합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워싱턴에서 미국 대선을 위한 당내 경선을 지켜봤습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로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니까 경쟁자였던 힐러리 진영이 일체의 잡음 없이 오바마 당선을 위해서 일하잖아요. 전 그걸 보고 역시 선진국 정치문화는 우리보다 수준이 한 단계 위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경선이 끝나고 2년이 넘도록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朴槿惠(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요한 정책마다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걸로 비치는데요.

“그 이야기는 국민 권익 차원에서 민원이 접수가 안됐으니까 그만합시다. 친이 친박 갈등은 언젠가는 더 급한 일이 생기면 풀어지겠죠. 아직은 모두 덜 급하니까 그러고 있는데. 서로 풀지 않으면 살길이 없잖아요.”

―2009년 12월 19일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2주년입니다. 이명박 정부 2년을 평가해 주시죠.

“첫 해에는 계획대로 안됐죠. 2년차인 2009년 중반기부터는 ‘개헌도 해야 되고, 행정구역 개편도 해야 된다. 선거구제도 다시 생각해야 되고, 4대강도 해야 된다’는 등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화두로 던졌죠. 또 세종시 문제나, 노조의 불법파업 대처 등 전 분야에 걸쳐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내가 나라를 이렇게 변화시키겠다’고 계획했던 일들이 궤도에 들어섰다고 봐야죠.”

―이명박 대통령의 비판자들은 현 정권이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대통령이 소통 부족이라고 느끼진 않아요. 만약 지금 민주당이 세종시 문제에서 대통령이 더 구구절절하게 설명한다 한들 반대 안 하겠습니까.”

―대통령이 여의도와 거리를 너무 둬서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은 권력이 의회로 많이 이동되고 있잖아요. 몸은 청와대에 있어도 안테나는 항상 국회로 열려 있다고 봅니다.”

요즘은 대통령에게 ‘형님’ 소리 안 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권익위원장 임명장을 수여받고 있는 이 위원장.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권력을 쥐는 거고,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정권을 재창출하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차기에 국가를 맡길 사람에게 국가 운영에 대한 노하우나 경험을 전수해 주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보직 관리 등을 통해 일종의 리더십교육이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과거 全斗煥(전두환) 정권 때는 盧泰愚(노태우) 대통령을 내무부장관도 시키고 올림픽조직위원장도 시키고 해서 국내·국제적 인맥을 쌓게 하고, 당 대표도 맡겨서 정치적 리더십을 쌓게 하면서 대통령 후보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권위주의 정권이니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정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어떤 시나리오대로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정권이 3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그래도 국가라는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안 갖춰진 사람이 당선된다면 문제 아닙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이 현명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기우라고 봐요.”

―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자주 만나십니까.

“국무회의 때 만납니다. 공식적으로 회의 말고는 따로 만날 이유가 없잖아요. 전에는 백수였으니까 더러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고 그랬지만 지금이야 말석에 앉아 있는데 따로 만나 업무 가지고 대통령에게 일일이 이야기할 것 없잖아요.”

―공직으로 들어가니까 조심스러워지셨군요.

“그건 사실입니다. 대통령 되고부터는 ‘형님’ 소리 안 했어요. 남들이 그냥 이재오로 봐주지 않잖아요. 사실 그 점이 저를 답답하게 만드는 겁니다. 제가 열심히 해도 제 이름 앞엔 실세니 뭐니 하는 수식어가 붙어요. 제가 열심히 해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됐다는 비아냥이죠. 제가 하는 일이 정부에 누가 되면 안되니까 더 조심스럽죠. 집사람 말대로 미국에 있을 때 제가 왜소했던 게 아니라 지금이 더 왜소합니다. 제가 커보일 때는 야당 국회의원 할 때였던 것 같아요.”

―권익위원장으로서 지금 맡고 계신 업무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사나이로서 ‘이런 걸 한 번 하고 싶다’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런 거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대통령 만드는 것만 해도 일 크게 했죠. 이제 대통령을 성공하게 만드는 게 목표이고, 청렴한 나라, 국민의 고충이 하나라도 줄어드는 나라, 거기에 내 전부를 걸고 있어요.”

―앞으로 무슨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민원이 아직 접수 안됐나 보죠?

“그거는 민원이 접수된 게 없어요.”

4대강 사업 잘됐으면

―2010년 지방선거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국민권익위원장인 제가 전망할 일은 아니고….”

―위원장께서는 한때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라는 별칭이 있었을 정도로 운하 건설에 앞장섰는데 그 공약이 4대강 살리기로 축소됐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중에 우리 강 살리기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4대강 살리기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국토를 새로운 형태로 개조하는 거니까요.”

―당장은 어렵더라도 소신을 버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이야기 잘못하면 ‘이재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대운하 운운한다. 이재오는 틈을 주면 안된다’ 할 거 아닙니까. ‘4대강 살리기가 잘됐음 좋겠다’ 이 정도에서 끝내죠.”⊙

▣ 부인 秋英禮씨가 말하는 ‘내 남편 李在五’

“가정에선 시트콤 주인공 같은 분”

2008년 4·9총선에서 투표하는 이 위원장 부부.

이재오 위원장은 부인 추영례씨와 사이에 2녀1남을 뒀다. 딸 둘은 출가했고, 감옥생활 등으로 인해 늦게 본 아들은 군복무를 마친 후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두 사람은 1971년 10월 결혼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5번에 걸쳐 10여 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 위원장이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생계는 부인의 몫이었다. 추 여사는 어려서 어깨너머로 배운 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추 여사가 가장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일화 중 하나가 독립문 옆에 있던 서대문구치소와 관련된 이야기다. 딸들이 어렸을 때 이 위원장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추 여사는 이 위원장 면회를 갈 때 딸을 업고 다녔다.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치소를 지나가는데 딸이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 저기 아빠 회사다.”

딸은 엄마 등에 업혀 면회를 다니던 서대문구치소를 아빠의 회사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추 여사를 지난 2009년 12월 2일 만나 ‘남편 이재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위원장은 家長(가장)으로서도 强性(강성)입니까.

“집에서는 시트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재미있는 분입니다. 사실 아내로서 남편이 강성 이미지로 비치는 게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언론이 남편의 일면만을 보도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할 때 자상하고 살가운 면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남편은 정치인으로서 꼼수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런 성격 때문에 직설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남편의 기준은 그것이 개인적인 삶의 영역이든, 公的(공적) 삶의 영역이든 언제나 정의와 용기예요. 그렇다 보니 남들이 못 하는 말도 나서서 하게 되는 거죠.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낯 간지러운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분명한 것은 남편은 실제보다 너무 강성으로 비치고 있다는 거예요.”

―남편이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한 적 있습니까.

“우리 집안이나 남편 집안이나 사회주의자가 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지금 같은 시대에는 민주화 운동이 필요하지 않지만 남편의 젊은 시절에는 필요했던 운동이었어요. 정의만을 생각하는 분이기 때문에 남편이 그 길을 선택한 건 당연하다고 봐요. 저 역시 옥바라지 하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의 눈물을 몇 번 봤습니까.

“기억에 남는 건 두 번이에요. 1982년에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남편은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있었어요.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면회를 갔는데 남편이 ‘지붕이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 거예요. 함께 간 시누이가 ‘개꿈’이라면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안 해 주었어요. 이듬해 석방돼서 나올 때 아주버님께서 그 사실을 말했죠.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대성통곡을 하더군요.”

―또 한 번은요.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이튿날이었어요. 밖에서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아들이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하니까 두 부자가 아들방으로 들어가더니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 거예요.”

―선거 패배에 충격이 컸던가 보죠?

“사실 당시는 지역구민들이 야속했어요. 나름 20여 년 동안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고작 이건가, 아무 연고 없는 사람을 뽑아 준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에 서운했죠.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지역구를 돌면서 낙선 인사를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자신이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인사하러 다니는데 찍어준 사람은 찍어준 사람대로, 안 찍어준 사람은 안 찍어준 사람대로 미안해하더군요.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선거 패배 후 남편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았어요. 제가 ‘나가서 지역구민들에게 인사하라’고 등을 떠밀었죠. 결국 아들과 함께 지역구를 돌면서 인사를 하더군요.”

―이 위원장에게 2010년 7월 보궐선거 출마를 권유할 생각입니까.

“지역구민들이 출마를 권유하는 상황이에요. 남편에 대한 민심이 많이 좋아진 걸 느낄 수 있어요.”

―이 위원장이 미국行(행)을 결심했을 때 찬성했습니까.

“저는 말렸어요. 남편이 미국에 있는 동안 한 번 가 봤는데, 미국에서 보는 남편의 모습이 왜 그렇게 왜소하고 생소하던지 눈물이 났어요. 저한테 밥을 차려 주겠다고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으로 울었죠. 남편은 그러는 거예요. ‘여기가 얼마나 좋은데 그래’라고요.”

―이명박 정부의 실세라는 분이 그렇게 있으니까 마음이 더 아팠나 보죠?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고 해서 실세라고들 하는데, 실세라면 국회의원 떨어지고 그렇게 긴 시간을 낭인처럼 보냈겠어요? 솔직히 주변에서 실세라고 부르는 게 부담스러워요. 역할이 주어지면 열심히 일할 뿐이지, 남편은 그것을 누릴 줄 모르는 분이에요.”

이재오 위원장 부부는 은평구 구산동에 1990년에 구입한 23평짜리 단독주택에 지금껏 살고 있다. 이 위원장 재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평 집이 비좁다는 생각 안 해 봤습니까.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저나 남편이나 큰 집을 욕심내지 않아요. 우리 집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 측근들이 말하는 인간 이재오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

2004년 5월,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주간조선>은 국회에서 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들을 그룹 인터뷰해 그들이 보는 국회의원들을 소개한 일이 있다. 이재오 위원장에 대한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청소부 아줌마들로부터 ‘한결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소원들에 따르면 이재오 의원은 언제든지 인사를 잘 받아주고, 지나가다가 청소원을 만나면 반드시 “얼마나 힘드십니까?”라는 말과 함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려 준다. 청소부 아줌마들은 지난 4월 15일 개표방송을 보면서 이재오 의원이 역전승하는 순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시절 이 위원장을 모셨던 한 여비서의 말이다.

“강하고 터프해 보이고 다른 의원들에 비해 덜 세련돼 보이지만 항상 편안한 아버지 같은 느낌을 준다. 감수성도 풍부하다. 한번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를 불렀다. 의원님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너무 아름답지 않으냐, 선거 때문에 저 아름다운 것을 한동안 못 봤네’ 했다. 나도 그 곁에서 한참 동안 노을을 바라봤다. 두 딸이 결혼할 때는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조용하게 결혼시켰다.”

또 다른 여비서의 말이다.

“의원님을 생각하면 ‘열정’과 ‘검소’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턴으로 의원실에 들어왔는데 원내대표로 바쁜 와중에도 직원들의 경조사는 반드시 챙겼다. 나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의원님께서 장례식장으로 찾아오셔서 너무 놀랐다. 필기구나 서류를 철하는 파일 같은 것은 5년 이상 쓴다.”

이 위원장이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시절부터 관계를 맺은 측근은 이 위원장의 용인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쓸 때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10년이건 20년이건 스스로 떠나지 않는 한 곁에 둔다. 일을 시키다 보면 부족함이 보이기 마련인데, 그 부족함을 스스로 채운다. 국회 연설 같은 경우 다른 의원들과 달리 직접 자신이 연설준비를 한다. 보좌관이 작성한 연설문은 참고용으로만 쓴다. 그분 곁에 있는 보좌관도 그렇고 여비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분과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이다.”

보좌관 출신의 한 측근은 이런 말을 했다.

“일을 할 때 대충대충 하는 일이 없다. 강원도 인제 수해복구 현장이나, 태안 기름유출사고 현장에 자원봉사 갔을 때도 대충 하는 일이 없었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한두 시간 하다가 일정을 핑계로 돌아가지만 의원님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마을회관에서 하루 묵으면서까지 머슴처럼 일한다. 매년 그런 봉사활동을 한다. 의원들도 이재오 의원이 봉사활동을 같이 가자고 하면 가기 싫어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