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생명력과 경쟁력을 키워 사태 파악이 빠르고 정확한 사람들입니다. 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들의 대학 입시며 남편의 건강까지, 한마디로 ‘멀티 태스킹’이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 同姓同本 남편과의 결혼 반대하자 남편 따라 미국行
⊙ 톰슨 일리노이州 주지사와의 인연으로 주지사 특별보좌관, 州 정부 사상 최초의 동양계
금융규제장관, 州 노동부 장관 역임
⊙ 대선 때 부시 도운 것이 계기가 되어 美 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에 임명돼 8년간 재임
全信愛
⊙ 1943년 마산 출생.
⊙ 마산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美 노스웨스턴대 교육· 사회정책학 석사.
⊙ 美 일리노이州 금융규제부 장관·노동부 장관, 美 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 역임.
⊙ 저서: <뚝심좋은 마산색시, 미국 장관 10년 해보니> <너는 99%의 가능성이다> 등.
취재지원 : 朴熙錫 月刊朝鮮 인턴기자〈pubmonth@chosun.com〉
⊙ 同姓同本 남편과의 결혼 반대하자 남편 따라 미국行
⊙ 톰슨 일리노이州 주지사와의 인연으로 주지사 특별보좌관, 州 정부 사상 최초의 동양계
금융규제장관, 州 노동부 장관 역임
⊙ 대선 때 부시 도운 것이 계기가 되어 美 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에 임명돼 8년간 재임
全信愛
⊙ 1943년 마산 출생.
⊙ 마산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美 노스웨스턴대 교육· 사회정책학 석사.
⊙ 美 일리노이州 금융규제부 장관·노동부 장관, 美 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 역임.
⊙ 저서: <뚝심좋은 마산색시, 미국 장관 10년 해보니> <너는 99%의 가능성이다> 등.
취재지원 : 朴熙錫 月刊朝鮮 인턴기자〈pubmonth@chosun.com〉
분명 女戰士(여전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사람이 한국 여성 최초로 美(미) 연방정부의 차관보를 지냈다는 프로필을 봤을 때는 말이다. 지독하리만치 억척스럽게 살아온 인생이려니 싶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실제 만나본 그녀는 옆집 아줌마처럼 소탈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全信愛(전신애·66) 前(전) 美(미) 연방 차관보. 그녀는 서른둘에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총 24년 동안 미 정부 관료로 지냈다. 미국 일리노이州(주) 정부의 금융규제부 장관,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연방 노동부에서 차관보로 활약했다.
연방 차관보로 재직한 기간은 총 8년.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長壽(장수)한 차관보다. 지난 1월 20일,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녀는 官界(관계)를 떠났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일과 인생을 담은 <너는 99%의 가능성이다>라는 책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이 기사에서는 편의상 호칭을 ‘전 차관보’로 통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임 장·차관, 차관보 등이 일괄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미국의 관례입니다. 좀 쉴까 생각했는데, 책 집필을 바로 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아 꼬박 6개월 동안 책쓰기에 매달렸네요. 이화여대 재학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학점이 좋지 않았는데, A학점을 받은 과목이 ‘수필’이었어요. 글 쓰는 것이 체질인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녀와의 대화는 ‘글쓰기’로 시작됐다. 오랜 미국생활 탓에 한글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익숙지 않아,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서 완성했다는 책 얘기부터 시작했다.
―책의 서문에서 ‘미래가 두려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라고 쓰여 있더군요.
“18~40세까지의 한창 일할 나이인 젊은층이 평균 7번 정도 직장을 바꾼다고 해요.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과거와는 문화가 달라졌어요. 때문에 직장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자기가 더 잘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해외 실무경험이 약한 한국의 대학생들이 인턴십, 다국적 기업에 도전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차관보는 “오랫동안 타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해외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돼라”
―이 책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뭡니까.
“저는 별다른 준비없이 어쩌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다행히 순간마다 올바른 결정을 내렸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은 충분한 준비를 통해 자기가 가야할 길을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우선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대학 졸업장 하나만으로 넓은 세상에서 큰 뜻을 펼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래에 창출되는 일자리의 3분의 2가 高(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사고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 외에 어떤 얘기들을 전하고 싶습니까.
“대한민국을 벗어나 세계를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저희 세대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입니다.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나갈까 하는 해결책을 찾는 일이죠. 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데 멈추지 않고, 변화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사회의 변화를 일찍 감지했고, 그 변화를 주도해 나갔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소통의 기술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하지 말라’ ‘하면 안된다’는 소리가 너무 많아요. 매사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남녀 간에,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 가족 간에, 친구들끼리 심도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렵죠. 미국에서는 요즘 개인이 성공하는 조직이나, 팀이 성공하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조직 내에서의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그 조직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전 차관보는 “기본은 자기 관리”라고 강조했다.
“엘리엇 스피처 뉴욕 주지사가 고급 창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이 문제가 되어 사퇴하지 않았습니까. 투명성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장관이 될지, 기업의 총수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를 항상 생각하고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에게 가장 큰 敵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전 차관보의 책을 읽어 보면 유독 여성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부분이 많습니다. 회사 업무와 집안살림, 育兒(육아)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며칠 전에 마산에 강연을 갔는데 여성들이 저를 보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사회가 여성을 위한 배려가 없고, 요즘의 젊은 남성들은 직장여성을 선호하면서 아침밥은 꼭 챙겨주길 기대한다’고요. 저 역시 한국 여성의 한 명으로서 이런 분위기에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전 차관보는 ‘한국 여성들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생명력과 경쟁력을 키워 사태 파악이 빠르고 정확한 사람들입니다. 또 시댁, 친정, 직장동료, 동창 등 온갖 복잡한 인간관계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고, 여러 개의 공을 한꺼번에 굴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들의 대학 입시며 남편의 건강까지, 한마디로 ‘멀티 태스킹’이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꾸리면서 공직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자기에게 가장 큰 적은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부정적인 생각만 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직장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펼칠 수 있는 좋은 직장을 찾는 데 열중하기를 바랍니다.”
전 차관보는 단어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을 줘가며 얘기를 이어갔다. 중간에 질문을 하기가 미안할 만큼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사실은 그녀의 인생 자체가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이다. 그녀의 인생을 엿보면, 어떤 미사여구보다 가슴에 와닿는 감동이 크다.
전 차관보는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마산여고 시절에는 당시 여학생들의 선망이었던 ‘이화여대 영문과 가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고, 이대 재학시절에는 ‘좋은 남자를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美德(미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한 것은 남편 全炅喆(전경철·67) 박사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녀의 마음을 빼앗은 전 박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하필 그녀와 同姓同本(동성동본)이었다. 종친회 일을 도맡아 한 아버지가 동성동본 사윗감을 허락할 리 만무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자, 몰래 미국行(행) 비행기에 올랐다. 40여 년이 지난 이 얘기를 하면서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전 차관보가 여전히 父親(부친)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는 것이 느껴졌다.
임신 5개월에 대학원 진학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태평양을 건넜지만, 20代(대)의 그녀에게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밤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그녀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다.
“제가 딱했던 모양이에요. 고향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며 저금통장을 털어 학비를 대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학비는 만만치 않았어요. 게다가 저는 공부에 큰 뜻이 없었습니다. ‘이대를 나왔으면 됐지, 무슨 공부를 또 하느냐’, ‘내가 공부하느라 아이를 못 갖게 되면, 당신이 박사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라도 이혼할 거다’며 큰소리쳤죠. 여자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해야 한다는 한국적 사고방식이 머릿속 깊숙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남편과 6개월을 다투다 남편의 권유를 뿌리칠 명분이 없어서 결국 임신 5개월의 몸으로 노스웨스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그녀의 인생에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될 줄 말이다.
“링컨 대통령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를 했고,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하버드대를 자퇴했습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고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없어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석사 학위가 있었기 때문에 낯선 미국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차관보는 대학원에서 교육과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그녀는 2006년 6월, 자신이 1971년 석사 학위를 받았던 노스웨스턴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축사를 하게 됐다.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졸업식 축사를 했고, 다음날 전 차관보가 단과대학별 졸업장 수여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녀는 1000여 명의 학부모와 학사, 석·박사 졸업생들 앞에서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어머니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노스웨스턴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직장생활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석사 과정 중이었던 1970년 2월, 첫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해에 석사학위를 받을 무렵에는 다시 둘째를 가졌다.
“자녀 교육은 처음 5년이 중요하다고 하기에 날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읽고, 여름에는 동물원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행복감에 빠져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게도 제가 살림살이에는 소질이 없더라고요. 그릇을 하도 많이 깨뜨려서 남편이 보다 못해 그릇을 플라스틱으로 바꾸더라고요.”
서른둘에 첫 직장생활 시작
그녀가 소질이 없는 살림살이를 하느라 애 쓰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녀의 둘째 아들이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남편 전 박사는 그녀에게 바깥일을 권유했다. 그녀의 나이 서른둘.
우연한 기회에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이중언어교육센터라는 곳에 첫 둥지를 틀게 됐다. 이 센터는 연방정부에서 자금을 받아 공립학교 교사들을 교육하는 부설기관으로, 일선 교사들이 미국으로 이민 온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센터에서 날마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데, 수업료를 내는 대신 월급까지 받으니까 유토피아가 따로 없더라고요. ‘나의 재능은 살림살이가 아니라, 바깥일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들떠 있던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그녀가 일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983년 정부 예산이 삭감되어 센터가 문을 닫게 된 것.
―사회 생활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져서 실망이 컸겠군요.
“큰 충격이었어요. 당시 미국 상황이 저를 전업주부로 안주할 수 없게 했어요. 1980년대 초반 미국에는 이민자들이 넘쳐났는데, 백인들이 자기네 땅에 동양인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韓人(한인)교회가 불타고, 태국인들의 사찰이 화염병을 맞아 불길에 휩싸이고,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죠.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없는 이민자들, 서툰 언어 때문에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대변하자는 생각이 들어, 아시아 13개국의 리더들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아시아계 미국인동맹’이었어요.”
―소수 민족 연합체를 만든 거군요.
“네. 일리노이주 정부 관계자를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불평등 대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아시아계 미국인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됐죠. 위원들 중 여자는 저 한 명뿐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겁니다.”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이민 온 아시아인들의 정착, 자녀교육, 아시아인들의 주 정부 진출 등에 대해 건의했죠. 처음에는 불평등 대우를 받는 것이 억울해서, 또 저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갈수록 일이 늘었습니다.”
“직장은 내 정체성의 근거였다”
그러던 1984년 2월, 당시 톰슨 일리노이주 주지사는 전 차관보를 주지사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주 정부에 들어와서 아시아인들을 위한 일을 추진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미국 50개 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동맹은 처음이었다. 그녀와 미국 관계의 첫 번째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일리노이주 각료로 승승장구했다. 주 정부 사상 최초의 동양계 각료로서 금융규제장관(1989년)을 맡았고, 1991년에는 주 노동부 장관이 됐다. 전 차관보는 ‘성공한 이민세대’로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에 일리노이주의 신임 주지사가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직책을 제안하자 그녀는 사표를 던졌다. 관료생활을 한 지 10년 만에 백수가 된 것이다.
“막상 사표를 던지고 보니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사람들이 제게 ‘뭐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더라고요. 직장이 제 정체성의 근거였다는 것을 그만두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잠만 잤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더군요. 우연히 CNN 뉴스채널을 돌리다 주식 뉴스를 보고는 주식도 좀 해 보고 그러면서 지냈습니다.”
―좌절감을 많이 느꼈겠군요.
“좌절감이라기보다 몸이 백수인 저를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할 일도 딱히 없는데 새벽 6시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지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던 사람이 일이 없으니, 몸이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남편이 출장 다닐 때마다 비행기표를 한 장 더 끊어서 함께 다녔습니다. 남편이 직장 콘퍼런스 때문에 여러 주를 다녔는데 무작정 따라간 거죠.”
―비행기 삯으로 돈 깨나 쓰셨겠습니다.
“그랬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행비가 결국 저를 위한 투자비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그녀의 직장 인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일리노이 재무청장이 그녀에게 직원 훈련 교육 등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녀는 다시 주정부 청사로 출근하게 된다.
그러다 2000년 미국 대선 때 공화당 캠프에 있는 일리노이주 아시안아메리칸 캠페인 코디네이터로 참여하면서 부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다.
“운 좋게도 일리노이 공화당 위원장이 여성이었는데, 2000년 대선 때 부시 대통령을 도와줬습니다. 당시에는 앨 고어 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이길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승리했고, 그때 그녀와 함께 일을 도왔던 제 공로를 인정받아 연방 노동부 차관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과의 인연
2001년 3월, 그녀는 미 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에 임명됐다. 아시아계 여성이 국장으로 선출된 것은 여성국 역사 8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연방정부의 차관보가 되기 위해서는 FBI의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녀는 FBI의 까다로운 신원 조사 얘기를 들려줬다.
“연방정부에 들어가려면 FBI에서 검증을 합니다. 한국의 청문회도 엄청난 드라마가 많지만, 미국은 정말 엄격합니다. 어릴 적의 성품, 현재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의 품평, 비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남자의 경우 여자 관계까지 철저하게 파헤칩니다. 처음 FBI의 신원조회를 받을 때, 제게 저를 잘 아는 세 사람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제게 좋은 말을 해 줄 동료들의 이름을 말해 줬는데, FBI에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 다시 그들에게 세 사람씩 이름을 달라고 하더래요. 아마 제 주위의 50명이 FBI 직원과 만나 ‘전신애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겁니다. 가령 50명 중에서 48명이 좋은 말을 해도, 2명이 저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하면 정부 관료로 선임되지 못합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전신애는 사무처리가 공평한 사람’이라고 평가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떨까’에 대해 수없이 생각을 했습니다.”
전 차관보의 얘기에 따르면 미국의 차관보는 대략 380여 명이란다. 이들은 모두 상원의원의 인준을 통해 최종 결정된다. 그녀는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최초 차관보 50여 명 안에 선임됐다. 그런 그녀가 부시 행정부 안에서 무려 8년 동안 같은 일을 맡았으니, ‘관직을 떠날 때 아쉬움이 없었다’는 얘기가 이해가 됐다.
잠은 하루 5시간
―부시 행정부에서 차관보로 활동하면서 부시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을 맺으셨나요.
“부시 대통령이 9·11테러가 터지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제가 있던 노동부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로 미국이 타격을 입었을 때 그로 인해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근로자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의 실직 보험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때 대통령을 뵀어요. 이후에도 부시 대통령은 해마다 새로 선임되는 장·차관 등 관료들을 잘 챙겼습니다. 한번은 노동부를 찾은 부시 대통령에게 ‘당신의 용기와 지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을 제쳐놓고 저에게 다가온 적이 있어요. 제 말에 감명을 받았다면서요. 제가 ‘저는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입니다’라고 했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해요. ‘한국 남쪽에서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산이 고향이냐’고 물어 마산이라고 답해 줬습니다.”
―가까이서 본 부시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참 넉넉한 분이라고 평가합니다. 부잣집 아들이어서 그런지 모난 구석이 없고 마음이 따뜻해요. 남들의 많은 고민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부시 대통령이 차관보 20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딕 체니 전 부통령이 모두 참석한 자리였죠. 그때 부시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크게 놀아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떤 사안을 작게 보지 말고, 또 끼리끼리 처리하지 말고 늘 부처끼리 의논하고 동참하라고 하더군요. 부시 대통령은 ‘이 길이 바른 길’이라고 하면 밀고나가는 스타일입니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9·11이라는 운명적 사건이 자신의 리더십을 표면화하는 계기가 됐죠.”
전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결점이 있다면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을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이유는 한국전 때문이었습니다. 미군들이 많이 戰死(전사)했거든요. 퇴임할 때 지지율이 23%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 트루먼입니다. 재임 때의 인기와 역사적 평가는 다르죠.”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필자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의 인생이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었다고는 하지만 누구든 꿈꾸고 싶을 만한 삶이었으니 너무나 잘 풀린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질문하자 전 차관보는 “사실 남편 전경철 박사의 외조가 큰 몫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부부라는 인연이 참 중요합니다. 어려울 때 바로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남편, 아내밖에 더 있나요. 제가 45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 말을 잘 들은 것이 몇 번 안됩니다. 노스웨스턴 대학원에 진학한 일, 주정부 관료를 지내다 연방 정부 차관보로 간 일, 월급 중 일부를 저축하는 것 등은 남편 의견을 따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매사에 툴툴거렸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월급 일부를 저축할 때에는 ‘자기가 공학박사지, 경제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러나’ 하고 면박까지 줬는데, 남편 얘기 듣기를 참 잘했어요. 지금도 모든 부분이 참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경쟁력은 읽는 습관
―이방인으로서 미국 主流(주류)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는데, 딱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기댈 곳이 없는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던 환경이 저를 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야망도, 원대한 꿈도 없었던 마산 아가씨가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했고, 하루 5시간 이상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재에 안주하기보다 늘 미래를 꿈꿨고요. 또 몸에 밴 읽기 습관이 성공의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자주 하시는 모양이군요.
“저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책부터 꺼내듭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에도, 기내에서도 눈이 피로해져서 읽을 수 없을 때까지 읽습니다. 이런 습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지고 계신 책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을 만큼 독서광이셨어요. 특히 신문을 즐겨 읽으셨는데, 아침마다 조간신문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읽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나름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읽기 습관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관료생활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그렇게 쉽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제게 주어진 일은 목숨 걸고 하는 편이라고나 할까요. 일만 하다 죽는 것은 매력이 없는 것 같아서 이제 후배들을 위해 책을 쓰고 강연에 주력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난 뒤, 전 차관보는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하며 물었다.
“제 책을 읽은 독자들과 작은 서점에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회를 열어 보면 어떨까요?”
눈빛이 빛나는 것을 보니, 그녀는 조만간 이런 행사를 하나 만들 모양이다 싶었다.⊙
사진 : 서경리
그러나 오산이었다. 실제 만나본 그녀는 옆집 아줌마처럼 소탈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全信愛(전신애·66) 前(전) 美(미) 연방 차관보. 그녀는 서른둘에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총 24년 동안 미 정부 관료로 지냈다. 미국 일리노이州(주) 정부의 금융규제부 장관,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연방 노동부에서 차관보로 활약했다.
연방 차관보로 재직한 기간은 총 8년.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長壽(장수)한 차관보다. 지난 1월 20일,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녀는 官界(관계)를 떠났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일과 인생을 담은 <너는 99%의 가능성이다>라는 책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이 기사에서는 편의상 호칭을 ‘전 차관보’로 통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임 장·차관, 차관보 등이 일괄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미국의 관례입니다. 좀 쉴까 생각했는데, 책 집필을 바로 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아 꼬박 6개월 동안 책쓰기에 매달렸네요. 이화여대 재학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학점이 좋지 않았는데, A학점을 받은 과목이 ‘수필’이었어요. 글 쓰는 것이 체질인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녀와의 대화는 ‘글쓰기’로 시작됐다. 오랜 미국생활 탓에 한글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익숙지 않아,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서 완성했다는 책 얘기부터 시작했다.
―책의 서문에서 ‘미래가 두려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라고 쓰여 있더군요.
“18~40세까지의 한창 일할 나이인 젊은층이 평균 7번 정도 직장을 바꾼다고 해요.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과거와는 문화가 달라졌어요. 때문에 직장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자기가 더 잘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해외 실무경험이 약한 한국의 대학생들이 인턴십, 다국적 기업에 도전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차관보는 “오랫동안 타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해외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돼라”
―이 책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뭡니까.
“저는 별다른 준비없이 어쩌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다행히 순간마다 올바른 결정을 내렸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은 충분한 준비를 통해 자기가 가야할 길을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우선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대학 졸업장 하나만으로 넓은 세상에서 큰 뜻을 펼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래에 창출되는 일자리의 3분의 2가 高(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사고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 외에 어떤 얘기들을 전하고 싶습니까.
“대한민국을 벗어나 세계를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저희 세대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입니다.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나갈까 하는 해결책을 찾는 일이죠. 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데 멈추지 않고, 변화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사회의 변화를 일찍 감지했고, 그 변화를 주도해 나갔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소통의 기술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하지 말라’ ‘하면 안된다’는 소리가 너무 많아요. 매사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남녀 간에,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 가족 간에, 친구들끼리 심도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렵죠. 미국에서는 요즘 개인이 성공하는 조직이나, 팀이 성공하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조직 내에서의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그 조직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전 차관보는 “기본은 자기 관리”라고 강조했다.
“엘리엇 스피처 뉴욕 주지사가 고급 창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이 문제가 되어 사퇴하지 않았습니까. 투명성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장관이 될지, 기업의 총수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를 항상 생각하고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에게 가장 큰 敵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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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전경철 박사와 전신애 차관보. |
“며칠 전에 마산에 강연을 갔는데 여성들이 저를 보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사회가 여성을 위한 배려가 없고, 요즘의 젊은 남성들은 직장여성을 선호하면서 아침밥은 꼭 챙겨주길 기대한다’고요. 저 역시 한국 여성의 한 명으로서 이런 분위기에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전 차관보는 ‘한국 여성들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생명력과 경쟁력을 키워 사태 파악이 빠르고 정확한 사람들입니다. 또 시댁, 친정, 직장동료, 동창 등 온갖 복잡한 인간관계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고, 여러 개의 공을 한꺼번에 굴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들의 대학 입시며 남편의 건강까지, 한마디로 ‘멀티 태스킹’이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꾸리면서 공직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자기에게 가장 큰 적은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부정적인 생각만 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직장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펼칠 수 있는 좋은 직장을 찾는 데 열중하기를 바랍니다.”
전 차관보는 단어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을 줘가며 얘기를 이어갔다. 중간에 질문을 하기가 미안할 만큼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사실은 그녀의 인생 자체가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이다. 그녀의 인생을 엿보면, 어떤 미사여구보다 가슴에 와닿는 감동이 크다.
전 차관보는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마산여고 시절에는 당시 여학생들의 선망이었던 ‘이화여대 영문과 가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고, 이대 재학시절에는 ‘좋은 남자를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美德(미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한 것은 남편 全炅喆(전경철·67) 박사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녀의 마음을 빼앗은 전 박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하필 그녀와 同姓同本(동성동본)이었다. 종친회 일을 도맡아 한 아버지가 동성동본 사윗감을 허락할 리 만무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자, 몰래 미국行(행) 비행기에 올랐다. 40여 년이 지난 이 얘기를 하면서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전 차관보가 여전히 父親(부친)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는 것이 느껴졌다.
임신 5개월에 대학원 진학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태평양을 건넜지만, 20代(대)의 그녀에게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밤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그녀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다.
“제가 딱했던 모양이에요. 고향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며 저금통장을 털어 학비를 대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학비는 만만치 않았어요. 게다가 저는 공부에 큰 뜻이 없었습니다. ‘이대를 나왔으면 됐지, 무슨 공부를 또 하느냐’, ‘내가 공부하느라 아이를 못 갖게 되면, 당신이 박사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라도 이혼할 거다’며 큰소리쳤죠. 여자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해야 한다는 한국적 사고방식이 머릿속 깊숙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남편과 6개월을 다투다 남편의 권유를 뿌리칠 명분이 없어서 결국 임신 5개월의 몸으로 노스웨스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그녀의 인생에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될 줄 말이다.
“링컨 대통령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를 했고,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하버드대를 자퇴했습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고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없어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석사 학위가 있었기 때문에 낯선 미국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차관보는 대학원에서 교육과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그녀는 2006년 6월, 자신이 1971년 석사 학위를 받았던 노스웨스턴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축사를 하게 됐다.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졸업식 축사를 했고, 다음날 전 차관보가 단과대학별 졸업장 수여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녀는 1000여 명의 학부모와 학사, 석·박사 졸업생들 앞에서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어머니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노스웨스턴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직장생활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석사 과정 중이었던 1970년 2월, 첫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해에 석사학위를 받을 무렵에는 다시 둘째를 가졌다.
“자녀 교육은 처음 5년이 중요하다고 하기에 날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읽고, 여름에는 동물원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행복감에 빠져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게도 제가 살림살이에는 소질이 없더라고요. 그릇을 하도 많이 깨뜨려서 남편이 보다 못해 그릇을 플라스틱으로 바꾸더라고요.”
서른둘에 첫 직장생활 시작
그녀가 소질이 없는 살림살이를 하느라 애 쓰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녀의 둘째 아들이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남편 전 박사는 그녀에게 바깥일을 권유했다. 그녀의 나이 서른둘.
우연한 기회에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이중언어교육센터라는 곳에 첫 둥지를 틀게 됐다. 이 센터는 연방정부에서 자금을 받아 공립학교 교사들을 교육하는 부설기관으로, 일선 교사들이 미국으로 이민 온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센터에서 날마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데, 수업료를 내는 대신 월급까지 받으니까 유토피아가 따로 없더라고요. ‘나의 재능은 살림살이가 아니라, 바깥일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들떠 있던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그녀가 일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983년 정부 예산이 삭감되어 센터가 문을 닫게 된 것.
―사회 생활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져서 실망이 컸겠군요.
“큰 충격이었어요. 당시 미국 상황이 저를 전업주부로 안주할 수 없게 했어요. 1980년대 초반 미국에는 이민자들이 넘쳐났는데, 백인들이 자기네 땅에 동양인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韓人(한인)교회가 불타고, 태국인들의 사찰이 화염병을 맞아 불길에 휩싸이고,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죠.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없는 이민자들, 서툰 언어 때문에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대변하자는 생각이 들어, 아시아 13개국의 리더들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아시아계 미국인동맹’이었어요.”
―소수 민족 연합체를 만든 거군요.
“네. 일리노이주 정부 관계자를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불평등 대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아시아계 미국인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됐죠. 위원들 중 여자는 저 한 명뿐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겁니다.”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이민 온 아시아인들의 정착, 자녀교육, 아시아인들의 주 정부 진출 등에 대해 건의했죠. 처음에는 불평등 대우를 받는 것이 억울해서, 또 저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갈수록 일이 늘었습니다.”
“직장은 내 정체성의 근거였다”
그러던 1984년 2월, 당시 톰슨 일리노이주 주지사는 전 차관보를 주지사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주 정부에 들어와서 아시아인들을 위한 일을 추진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미국 50개 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동맹은 처음이었다. 그녀와 미국 관계의 첫 번째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일리노이주 각료로 승승장구했다. 주 정부 사상 최초의 동양계 각료로서 금융규제장관(1989년)을 맡았고, 1991년에는 주 노동부 장관이 됐다. 전 차관보는 ‘성공한 이민세대’로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에 일리노이주의 신임 주지사가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직책을 제안하자 그녀는 사표를 던졌다. 관료생활을 한 지 10년 만에 백수가 된 것이다.
“막상 사표를 던지고 보니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사람들이 제게 ‘뭐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더라고요. 직장이 제 정체성의 근거였다는 것을 그만두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잠만 잤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더군요. 우연히 CNN 뉴스채널을 돌리다 주식 뉴스를 보고는 주식도 좀 해 보고 그러면서 지냈습니다.”
―좌절감을 많이 느꼈겠군요.
“좌절감이라기보다 몸이 백수인 저를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할 일도 딱히 없는데 새벽 6시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지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던 사람이 일이 없으니, 몸이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남편이 출장 다닐 때마다 비행기표를 한 장 더 끊어서 함께 다녔습니다. 남편이 직장 콘퍼런스 때문에 여러 주를 다녔는데 무작정 따라간 거죠.”
―비행기 삯으로 돈 깨나 쓰셨겠습니다.
“그랬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행비가 결국 저를 위한 투자비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그녀의 직장 인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일리노이 재무청장이 그녀에게 직원 훈련 교육 등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녀는 다시 주정부 청사로 출근하게 된다.
그러다 2000년 미국 대선 때 공화당 캠프에 있는 일리노이주 아시안아메리칸 캠페인 코디네이터로 참여하면서 부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다.
“운 좋게도 일리노이 공화당 위원장이 여성이었는데, 2000년 대선 때 부시 대통령을 도와줬습니다. 당시에는 앨 고어 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이길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승리했고, 그때 그녀와 함께 일을 도왔던 제 공로를 인정받아 연방 노동부 차관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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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노동부 차관보 시절의 전신애씨. |
“연방정부에 들어가려면 FBI에서 검증을 합니다. 한국의 청문회도 엄청난 드라마가 많지만, 미국은 정말 엄격합니다. 어릴 적의 성품, 현재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의 품평, 비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남자의 경우 여자 관계까지 철저하게 파헤칩니다. 처음 FBI의 신원조회를 받을 때, 제게 저를 잘 아는 세 사람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제게 좋은 말을 해 줄 동료들의 이름을 말해 줬는데, FBI에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 다시 그들에게 세 사람씩 이름을 달라고 하더래요. 아마 제 주위의 50명이 FBI 직원과 만나 ‘전신애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겁니다. 가령 50명 중에서 48명이 좋은 말을 해도, 2명이 저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하면 정부 관료로 선임되지 못합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전신애는 사무처리가 공평한 사람’이라고 평가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떨까’에 대해 수없이 생각을 했습니다.”
전 차관보의 얘기에 따르면 미국의 차관보는 대략 380여 명이란다. 이들은 모두 상원의원의 인준을 통해 최종 결정된다. 그녀는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최초 차관보 50여 명 안에 선임됐다. 그런 그녀가 부시 행정부 안에서 무려 8년 동안 같은 일을 맡았으니, ‘관직을 떠날 때 아쉬움이 없었다’는 얘기가 이해가 됐다.
잠은 하루 5시간
―부시 행정부에서 차관보로 활동하면서 부시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을 맺으셨나요.
“부시 대통령이 9·11테러가 터지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제가 있던 노동부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로 미국이 타격을 입었을 때 그로 인해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근로자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의 실직 보험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때 대통령을 뵀어요. 이후에도 부시 대통령은 해마다 새로 선임되는 장·차관 등 관료들을 잘 챙겼습니다. 한번은 노동부를 찾은 부시 대통령에게 ‘당신의 용기와 지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을 제쳐놓고 저에게 다가온 적이 있어요. 제 말에 감명을 받았다면서요. 제가 ‘저는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입니다’라고 했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해요. ‘한국 남쪽에서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산이 고향이냐’고 물어 마산이라고 답해 줬습니다.”
―가까이서 본 부시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참 넉넉한 분이라고 평가합니다. 부잣집 아들이어서 그런지 모난 구석이 없고 마음이 따뜻해요. 남들의 많은 고민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부시 대통령이 차관보 20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딕 체니 전 부통령이 모두 참석한 자리였죠. 그때 부시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크게 놀아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떤 사안을 작게 보지 말고, 또 끼리끼리 처리하지 말고 늘 부처끼리 의논하고 동참하라고 하더군요. 부시 대통령은 ‘이 길이 바른 길’이라고 하면 밀고나가는 스타일입니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9·11이라는 운명적 사건이 자신의 리더십을 표면화하는 계기가 됐죠.”
전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결점이 있다면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을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이유는 한국전 때문이었습니다. 미군들이 많이 戰死(전사)했거든요. 퇴임할 때 지지율이 23%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 트루먼입니다. 재임 때의 인기와 역사적 평가는 다르죠.”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필자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의 인생이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었다고는 하지만 누구든 꿈꾸고 싶을 만한 삶이었으니 너무나 잘 풀린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질문하자 전 차관보는 “사실 남편 전경철 박사의 외조가 큰 몫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부부라는 인연이 참 중요합니다. 어려울 때 바로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남편, 아내밖에 더 있나요. 제가 45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 말을 잘 들은 것이 몇 번 안됩니다. 노스웨스턴 대학원에 진학한 일, 주정부 관료를 지내다 연방 정부 차관보로 간 일, 월급 중 일부를 저축하는 것 등은 남편 의견을 따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매사에 툴툴거렸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월급 일부를 저축할 때에는 ‘자기가 공학박사지, 경제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러나’ 하고 면박까지 줬는데, 남편 얘기 듣기를 참 잘했어요. 지금도 모든 부분이 참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경쟁력은 읽는 습관
―이방인으로서 미국 主流(주류)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는데, 딱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기댈 곳이 없는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던 환경이 저를 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야망도, 원대한 꿈도 없었던 마산 아가씨가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했고, 하루 5시간 이상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재에 안주하기보다 늘 미래를 꿈꿨고요. 또 몸에 밴 읽기 습관이 성공의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자주 하시는 모양이군요.
“저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책부터 꺼내듭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에도, 기내에서도 눈이 피로해져서 읽을 수 없을 때까지 읽습니다. 이런 습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지고 계신 책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을 만큼 독서광이셨어요. 특히 신문을 즐겨 읽으셨는데, 아침마다 조간신문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읽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나름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읽기 습관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관료생활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그렇게 쉽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제게 주어진 일은 목숨 걸고 하는 편이라고나 할까요. 일만 하다 죽는 것은 매력이 없는 것 같아서 이제 후배들을 위해 책을 쓰고 강연에 주력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난 뒤, 전 차관보는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하며 물었다.
“제 책을 읽은 독자들과 작은 서점에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회를 열어 보면 어떨까요?”
눈빛이 빛나는 것을 보니, 그녀는 조만간 이런 행사를 하나 만들 모양이다 싶었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