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한국 개최는 한국이 세계경제 위기극복의 구원투수로 나섰음을 상징”
⊙ 월스트리트에서 국제금융 변호사, 대학 교수로 활약하다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에
발탁된 금융전문가
⊙ G20 실무역 맡아 종횡무진
李宗求
⊙ 1959년 대전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美 스탠퍼드대 대학원 법학박사·경제학 박사.
⊙ 월스트리트 ‘설리번 & 크롬웰’ 로펌 변호사, ‘셔먼 & 스털링’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외국변호사,
고려대·연세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월스트리트에서 국제금융 변호사, 대학 교수로 활약하다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에
발탁된 금융전문가
⊙ G20 실무역 맡아 종횡무진
李宗求
⊙ 1959년 대전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美 스탠퍼드대 대학원 법학박사·경제학 박사.
⊙ 월스트리트 ‘설리번 & 크롬웰’ 로펌 변호사, ‘셔먼 & 스털링’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외국변호사,
고려대·연세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지난 9월 26일 李明博(이명박) 대통령과 司空壹(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은 1만500m 상공의 비행기 안에서 만세 삼창을 외쳤다. 전날 미국 피츠버그에서 끝난 제3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돌아오던 중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 내년 11월 G20 한국 개최는 우리 경제를 알릴 兆(조) 단위 이상의 홍보와도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G20 정상회의 금융분야 실무 역을 맡았던 금융위원회 李宗求(이종구·51) 상임위원 역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그의 말이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와 지난해 미국發(발)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로서 설움을 많이 겪었잖아요. G20 한국 개최는 아직 경기를 낙관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고비를 넘기고 성장동력을 찾았다는 점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세계경제 질서 재편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죠.”
세계경제 권력이 G8(선진 8개국)에서 G20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신흥국 없이 세계경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위기극복의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얘기다.
세계가 한국경제의 ‘잠재력’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상임위원의 땀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는 ‘9월 위기설’ 등 惡材(악재)가 적지 않았다. 환율이 치솟고 주식시장에서 외국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섰으며 해외 언론은 연일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날 것이다’, ‘제2의 외환위기가 올 것이다’, ‘국내 은행들이 외화차입이 안돼 망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說(설)들을 쏟아냈다.
“미칠 노릇이었어요. 당시 우리 경제는 油價(유가)가 많이 오르고 경상수지 적자폭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일 해외 언론이 위기설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알리고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한국경제 바로 알리기 지원단’이다. 李昌鏞(이창용) 前(전) 금융위 부위원장(現 G20준비위 기획조정단장)이 단장, 이 상임위원이 간사를 맡았다. 또 국제업무에 정통한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금융감독원 부위원장 및 금융연구원 부원장 등이 합류했다.
‘왜곡된 시각 바로 잡기’ 特命
이들은 2009년 초부터 매주 얼굴을 맞대고 우리 경제의 이슈와 위험변수를 정리했다. 그리고 4~5명이 한 팀을 이뤄 해외 투자자와 금융기관 애널리스트, 경제학자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했다.
‘한국경제 바로 알리기 지원단’은 도쿄,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취리히 등지를 돌았다. 때로는 그룹 프레젠테이션, 때로는 1대 1 미팅을 통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 경제여건) 실상을 알렸다. 과거 외환위기 때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낮춰 위기를 증폭시켰던 무디스, S&P 등 국제 신용평가사 고위 관계자와도 접촉했다.
“결국엔 우리 설득이 주효했어요. 얼마 전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을 만나 ‘너희 생각이 틀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 못하더군요.”
―우리 측의 설명을 잘 받아들이던가요.
“한국경제를 단순히 장·단기 외채 비교, 예금·대출 비율 등 한두 개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라고 설득했어요. 보다 깊이 있고 정밀하게 분석해 보라고 권했죠. 우리가 만난 해외 금융 전문가들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설명에 얼마나 내공이 있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듣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당시 외국인들은 ‘한국의 대외부채가 과도한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2008년 말 기준 총 외화부채 규모가 380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3800억 달러가 수치상으로 맞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중 외환 헤지(가격변동이나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행하는 위험회피, 혹은 위험 분산-편집자 주) 물량 390억 달러와 조선사 선수금 590억 달러 등 실제 상환부담이 없는 부채가 1027억 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따라서 실제 리스크가 있는 부채 규모는 2778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죠. 또 총 외채 중 단기외채 비중은 2008년 말 기준 39%로 3분기 45%에 비해 많이 떨어진 점도 설명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갖고 있던 총 외환보유액 2017억 달러와 통화스와프(서로 다른 통화를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서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편집자 주) 자금 90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등을 고려하면 외화부채를 다 갚고도 남는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금융위기 파동을 겪은 다른 나라들도 우리와 비슷한 노력을 했나요?
“지난 3월 뉴욕에 가서 현지의 투자자 20~30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더니 ‘한국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自國(자국) 사정을 알리는 나라는 없다. 정말 잘왔다’고 하더군요.”
IMF의 학습효과
―우리가 IMF 외환위기라는 학습효과 덕분에 이번 위기를 잘 이겨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국이 이번 미국發(발) 금융위기를 잘 견뎠고, 다른 나라보다 먼저 벗어난 이유는 IMF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상시 위기관리를 통해 체질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기업들은 재무구조가 대단히 건전해졌고 은행들도 자산 건전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쓰라리게 당한 경험 때문에 미리미리 대비한 것이죠.”
―IMF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에 ‘쓴 약’이 된 셈이군요.
“쓴 약임에는 틀림없으나 IMF가 한국에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 당시 IMF가 까다로운 처방을 요구했는데 우리 국민의 反感(반감)이 적지 않았죠. 또 구제금융을 받았다는 낙인효과(Stigma effect) 탓에 심리적 좌절감이 컸어요.”
이 상임위원은 현재는 금융위원회에 재직 중인 공무원이지만 얼마 전만 해도 금융 전문 국제변호사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08년 3월, 금융위에 영입됐다.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이다. 현재 그는 금융위에서 국제 금융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MB 캠프에서 일을 도운 경험도 없다. 단지 영어에 능숙하고 국내외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 국제금융 및 인수합병(M&A) 등 실물경제에 익숙하다는 점이 주목을 받아 전문가 영입 차원에서 금융위에 스카우트된 것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이다. 77학번의 정원은 80명. 그중 40명가량이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朴大槿(박대근) 한양대 교수, 朴在夏(박재하) 금융연구원 부위원장, 申齊潤(신재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金成植(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朴基性(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 趙晨(조신) SK 브로드밴드 사장, 李貞植(이정식) LG파워콤 대표 등이 77학번 동기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한 뒤 ROTC 장교로 복무를 마치고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3학기를 마친 뒤 1985년 선경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탠퍼드 경제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대학 서점에서 <법경제학 입문>이란 책을 손에 쥐게 된다. 미첼 폴린스키 교수가 쓴 이 책에 매료돼 법학과 경제학을 모두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미국에서 법 현상을 경제학적 분석틀을 이용해 연구하는 분야가 발흥하고 있었어요. 그 책을 흥미롭게 읽고 폴린스키 교수를 찾아가 ‘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어요. 1986년 가을학기에 ‘법경제학 개론’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그 분야를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경제학 공부하다 법학에 도전
문제는 그가 법학을 공부한 경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대 세미나에 참여하다가 정식으로 로스쿨에 도전장을 냈다. 폴린스키 교수가 로스쿨 추천장을 써줬다고 한다.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LSAT)의 합격자 평균 점수는 보통 99점. 그런데 그는 84점을 받고도 스탠퍼드 로스쿨에 들어갔다.
“대학원 경제학과 성적이 좋았고, 경제학과의 마이클 보스킨 교수도 저의 추천장을 써주셨어요. 제가 그분의 조교를 한 인연 때문이죠.”
보스킨 교수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수석을 역임한 인물이다.
당시 스탠퍼드 로스쿨의 정원은 170명. 하버드대 법대 정원이 600명임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수다. 동기생 중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학생은 5~6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경제학 박사과정 코스 2년을 마친 1987년 학위자격시험을 통과하고 그해 가을부터 로스쿨 강의를 듣기 시작해 1990년 6월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틈틈이 논문을 준비해 이듬해 4월 경제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공부하다 잠들고, 일어나 공부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제출한 박사 논문 제목은 ‘多者間(다자간) 소송의 경제학적 분석’. 경제학과 법학을 버무린 논문이었다.
학위를 마치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변호사 실무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월스트리트 최고의 법률회사로 꼽히는 ‘설리번 & 크롬웰’에 입사한다. 이 회사는 지금도 매머드 급이지만 그가 입사하던 1991년 무렵에도 변호사 수만 400~500명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회사였다. 이곳에서 2년을 근무한 후 국제업무 비중이 높은 ‘셔먼 & 스털링’으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금융시장은 다양한 M&A 구조 및 금융상품이 개발되면서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됐어요. 세계금융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 미국의 법제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 상임위원은 미국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나 이를 지탱하고 있는 법률 및 규제체계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로펌의 ‘자본시장(Capital Markets)팀’에 소속돼 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한 증권 발행, M&A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그는 월스트리트 생활이 몸에 밸 무렵 귀국을 고민한다. 서른여덟, 1996년 4월의 일이다. 그는 미국 영주권 신청을 했다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법무법인 세종에 입사한다. 세종 구조화금융팀을 이끌며 한국의 자산유동화 시장을 처음 접하게 된다. 미국에서 이미 자산유동화 거래를 주로 맡은 경험이 있어 자신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가 터져 한국경제가 휘청이는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미국에서 배운 M&A와 자산유동화 거래 등 새로운 금융기법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산유동화 거래란 은행이 대출을 많이 해주잖아요. 돈을 빌린 사람이 대출금을 갚으면, 그 돈으로 은행은 다시 다른 고객에게 돈을 빌려줍니다. 고객에게 빌려준 대출채권을 모아 증권화 혹은 유동화시키는 것인데, 당시로선 신상품이었어요.”
‘2003 아시아 지역 자산유동화 부문’ 상 수상
기업 입장에서 보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채권 등을 담보로 다시 채권(ABS·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 자금을 유치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팝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의 공연·음반 수입을 담보로 자산유동화 채권을 발행하는 등 외국에선 상품이 매우 다양하다.
“제가 월스트리트에서 있을 때 많이 개발되던 상품이었고, 귀국하기 2년 전부터 주로 그 일을 도맡았어요. 자산유동화 거래는 자금 순환을 빨리하는 장점이 있고, 자산담보보다 안전한 거래입니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한동안 유일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고, 1998년 자산유동화법도 만들어졌어요. 법이 만들어지면서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고, 덕분에 업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처음엔 그 거래를 아는 이가 한국에 몇 안됐는데, 1년이 지나니까 다 알더군요. 역시 한국 사람은 빨라요.”
미국은 유동화거래가 너무 복잡하고 그 규모가 커지면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主犯(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외환위기 당시 한국기업들에는 유일한 외화자금 조달수단으로 그 몫을 톡톡히 했다.
이 상임위원은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유동화 거래계획을 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주간사 대리인으로 활약했다. 한번은 대한항공이 향후 5년간 받을 일본發(발) 서울行(행) 항공운임을 담보로 엔화 투자를 받아낸 일도 있다. 이 상임위원은 이 거래로 세계적인 금융 법률 전문잡지 <인터내셔널 파이낸셜 리뷰(IFLR)>가 제정한 ‘2003 아시아 지역 자산유동화 부문’ 상을 수상했다.
변호사 업무 외에도 1998년부터 고려대, 연세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 1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강좌명은 ‘M&A’. 그리고 지난 2008년 3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발탁, 공직에 입문했다.
“변호사 업무라는 게 항상 새로운 거래구조를 짜고 어려운 법률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흥미롭기는 해요.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해결 위주고, 보다 넓게 정책적 이슈를 다룰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게 늘 아쉬웠어요. 금융위원회는 금융 관련 정책 및 감독 등 금융에 관한 모든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그간 변호사로 쌓은 경험과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을 기초로 정부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들어가게 됐죠.”
그가 귀국 후 IMF가 터진 것처럼, 그가 금융위에 들어간 직후 글로벌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금융위의 업무강도는 폭증했고 위기수습이 급선무였다. 한마디로 일 복이 터진 것이다.
G20 한국 개최의 의미
지난 4월 G20 런던 정상회의 개최 당시 4개의 워킹 그룹(Working Group)이 만들어졌다. WG1에서는 금융규제개혁, WG2에서는 공동 감시단 설립 등 국제협력 문제, WG3에서는 IMF 개혁, WG4에서는 세계은행 및 다자간 지역개발은행 개혁문제를 다루기로 각국 정상이 협의했다. 한국은 WG1에 금융위, WG2에 한국은행, WG3과 WG4에 기획재정부가 참여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 상임위원은 금융위를 대표해 WG1의 한국대표를 맡았다.
지난 1월에서 4월까지 열린 WG1회의는 매주 화요일 저녁 10시쯤 전화로 이뤄졌다. 회의는 보통 자정을 넘겨 3~4시간 이어졌다. 2월 런던대회에서 한 차례 얼굴을 맞대긴 했지만 주로 전화로 의견을 조율했다. 전화회의에서 한국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헤지펀드, 장외파생상품, 신용평가회사 등 금융규제 死角(사각)지대(regulatory gap) 제거와 거시감독 강화 등의 이슈를 다루었다.
“정부 입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이슈 중 하나는 회계제도 개혁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경제위기를 겪으며 원화가치가 급속히 하락해 많은 기업이 외화환산 손해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경제의 실질과 상관없이 단지 원화가치 하락으로 손실이 생기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지요.”
그런데 외화환산 손해는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 멕시코 등 국제결제통화를 갖지 못한 모든 나라가 똑같이 짊어진 難題(난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참여나 관심은 저조하다.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수차례 의견을 개진하고 전화를 걸어 설득한 뒤 겨우 결실을 보게 됐다. 지난 4월 국제회계기준을 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기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
“외화환산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기업들에는 중요한 이슈예요. 이를 의제로 만들기 위해 멕시코, 브라질 등 신흥국 동의도 끌어냈지요. IASB로 하여금 환율 문제 개선을 권고하는 문구를 ‘WG1 최종보고서’에 넣기로 합의했어요. 그런데 막판 협상과정에서 문구가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강력한 항의서한을 의장국에 보내고 전화통화를 통해 항의했지요. 결국 최종보고서에는 ‘IASB가 이 문제를 검토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게 됐습니다.”
지난 런던 정상회의에서 설립된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FSB)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G7 선진국 위주로 운영되던 금융안정포럼(Financial Stability Forum)을 G20 모든 나라로 확대하면서 FSB가 설립된 것. 한국은 금융위와 한국은행이 FSB에 참여하게 됐다.
G20 의제설정의 핵심역할 수행
특히 지난 6월에 열린 FSB 1차 총회에서 금융위가 FSB의 의제 및 운영방향을 결정짓는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의 위원이 됐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의사결정 및 중요사항 논의가 운영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 신흥국 중에서는 브릭스(BRICs) 국가와 멕시코만 참여했다.
“과거 우리는 선진국이 짜둔 틀을 따라가는 후발주자로 응석도 부리고 볼멘소리도 냈습니다. 또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제 의제설정의 핵심역할을 수행하는 운영위원이 됐으니 자부심을 느낄 만하죠.”
그러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이런 생각도 내비쳤다.
“한국을 이제 ‘신흥국(Emerging Market)’으로 보는 것이 더 이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OECD 국가이자 GDP 기준 세계 15위 나라이고, IMF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잖아요. 이번 글로벌 위기는 한국을 아시아, 남미 및 동구권 국가와 함께 신흥국으로 간주, 자본이 급격히 유출됐어요. 가령 한국의 외환보유고 대비 유동외채(만기 1년 이하 단기외채와 장기외채 중 1년 내 만기도래분)를 비교할 때, 한국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결코 크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흥국, 개도국과 비교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죠. 우리 경제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더 이상 신흥국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어요.”
이 상임위원은 정부의 ‘FSB 종합 대책반장’을 맡아 금융위, 금감원, 예금보험공사, 한국은행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의제를 찾고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 FSB는 세계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이 주목적이지만, 대부분 서구 금융시장의 문제점 해결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어요. 우리는 신흥국 시장안정이 선진국 시장에도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바라는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은 뭔가요.
“지난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과 통화 스와프 거래를 했는데, 스와프란 상대방이 있는 거잖아요. 상대방이 동의해야 스와프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조건도 상대방과 맞아야 해요. 안 들어주면 그만입니다. 재량권이 상대편에 있어요. 또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 ‘낙인효과’ 때문에 문제지요.”
지난해 10월 원화가 폭락하는 등 외환위기가 찾아오자 우리 정부는 발 빠르게 韓美(한·미) 간 통화 스와프 거래를 맺어 외환부족에 대한 숨통을 텄다. 스와프란 원화를 미국에 맡기고, 달러를 들여와 일정 기간 뒤 다시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거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 외환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 그의 말이다.
“이번에 FSB에 가서도 얘기했지만, 각 나라가 외화자금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규제책을 만들고, 국제적으로 자금공급 시장을 보완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그중 하나가 국제기구를 이용해 외화유동성 보험기능을 활성화하는 문제, 다자간 스와프를 해서 재량권을 높이는 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겠죠.”
아시아의 힘
그런 의미에서 내년 11월 G20 한국 개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이 옮아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고, 그 축이 한국경제임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지난 11월 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한국·중국·일본과 아세안(ASEAN) 10개국 등 동아시아권의 올해 GDP가 12조670억 달러로 세계 GDP의 21.1%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8003억 달러, 중국은 4조7577억 달러, 일본은 5조486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다.
내년에는 동아시아 경제권 규모가 12조8900억 달러로 커져 유로존(Euro Zone, 유로화를 쓰는 16개국) 경제규모(12조7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의 힘’이 유럽을 넘어서게 된다는 얘기다. 내년 G20 한국 개최의 의미를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세계 頂上(정상)이 모이는 대회인 만큼 여러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의전도 그렇고 아젠다 세팅, 의견을 조율하는 의장국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해요. 한국과 아시아의 저력, 그리고 세계 경제가 가야할 이슈를 잘 만들고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습니까?”
한국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산업생산과 소비, 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모두 증가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기와 물가전망에 비춰 지금의 기준금리(2%)가 과도하게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전분기 대비 2.9% 증가)이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낮은 기준금리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화두로 떠오른다.
출구전략이란 어떤 상황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전략을 말한다. 현 경제상황에 비춰보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취했던 각종 조치를 거둬들이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경기회복을 빌미로 강제로 인하한 금리를 다시 올린다든가,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어제 G20 재무장관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FSB 전화회의를 열었는데, 금융안정화 조치를 언제 환원할 것인가가 큰 이슈였어요. 우선 경제안정에 주안점을 두고 출구전략을 써야 합니다. 자칫 빨리 환원되면 경제가 살아나다가 다시 꺼져버립니다. 경제안정 위해 보수적으로 가야 해요.
또 환원조치를 하려면 사전에 사람들에게 고지해 충격을 덜어주는 방안도 필요해요. 한 나라에서 (출구전략을) 쓰면, 다른 나라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각국의 공조 필요성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출구전략 잘못 쓰면 더블딥으로 이어질 수도
출구전략과 함께 ‘더블딥(Double Dip)’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더블딥은 경기침체가 계속되다 일시적으로 회복된 후 다시 침체에 빠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가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지표상으로 좋아졌는데 얼마나 지속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지속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아요.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미국이 大恐慌(대공황)을 겪은 뒤 첫해는 다들 회복이 됐다고 봤어요. 그러다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가) 확 떨어져 더블딥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최근 <조선일보> 설문조사에서 국내 30개 그룹 중 15곳이 ‘경기가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 국면으로 빠져드는 더블딥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문에 18개 그룹은 ‘올해 거둔 수익금을 차입금 상환이나 위기에 대비해 유보금으로 쌓아두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수출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시장이 회복하느냐가 큰 관건이지요. 그리고 중국시장이 성장을 견인할 것이냐도 중요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오는 ‘사인’은 비교적 괜찮다고 봐요. 다만 더블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결국 미국의 소비가 더 늘어나기가 어렵지 않으냐 하는 우려 때문이죠. 소비가 늘기 위해선 고용이 늘어야 하는데 되레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어요. 실업률 곡선이 멈추고 얼마큼 소비에 영향을 미치느냐가 관건입니다. 또 미국의 재정적자가 심각한데 정부지출을 계속 확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그래서 자생적으로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블딥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수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G20이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견인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더 이상 한국과 중국, 인도를 빼고 G8(선진 8개국)만으로 글로벌 경제 이슈를 논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아시아가 있고 한국이 있다. ⊙
G20 정상회의 금융분야 실무 역을 맡았던 금융위원회 李宗求(이종구·51) 상임위원 역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그의 말이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와 지난해 미국發(발)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로서 설움을 많이 겪었잖아요. G20 한국 개최는 아직 경기를 낙관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고비를 넘기고 성장동력을 찾았다는 점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세계경제 질서 재편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죠.”
세계경제 권력이 G8(선진 8개국)에서 G20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신흥국 없이 세계경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위기극복의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얘기다.
세계가 한국경제의 ‘잠재력’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상임위원의 땀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는 ‘9월 위기설’ 등 惡材(악재)가 적지 않았다. 환율이 치솟고 주식시장에서 외국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섰으며 해외 언론은 연일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날 것이다’, ‘제2의 외환위기가 올 것이다’, ‘국내 은행들이 외화차입이 안돼 망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說(설)들을 쏟아냈다.
“미칠 노릇이었어요. 당시 우리 경제는 油價(유가)가 많이 오르고 경상수지 적자폭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일 해외 언론이 위기설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알리고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한국경제 바로 알리기 지원단’이다. 李昌鏞(이창용) 前(전) 금융위 부위원장(現 G20준비위 기획조정단장)이 단장, 이 상임위원이 간사를 맡았다. 또 국제업무에 정통한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금융감독원 부위원장 및 금융연구원 부원장 등이 합류했다.
‘왜곡된 시각 바로 잡기’ 特命
이들은 2009년 초부터 매주 얼굴을 맞대고 우리 경제의 이슈와 위험변수를 정리했다. 그리고 4~5명이 한 팀을 이뤄 해외 투자자와 금융기관 애널리스트, 경제학자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했다.
‘한국경제 바로 알리기 지원단’은 도쿄,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취리히 등지를 돌았다. 때로는 그룹 프레젠테이션, 때로는 1대 1 미팅을 통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 경제여건) 실상을 알렸다. 과거 외환위기 때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낮춰 위기를 증폭시켰던 무디스, S&P 등 국제 신용평가사 고위 관계자와도 접촉했다.
“결국엔 우리 설득이 주효했어요. 얼마 전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을 만나 ‘너희 생각이 틀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 못하더군요.”
―우리 측의 설명을 잘 받아들이던가요.
“한국경제를 단순히 장·단기 외채 비교, 예금·대출 비율 등 한두 개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라고 설득했어요. 보다 깊이 있고 정밀하게 분석해 보라고 권했죠. 우리가 만난 해외 금융 전문가들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설명에 얼마나 내공이 있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듣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당시 외국인들은 ‘한국의 대외부채가 과도한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2008년 말 기준 총 외화부채 규모가 380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3800억 달러가 수치상으로 맞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중 외환 헤지(가격변동이나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행하는 위험회피, 혹은 위험 분산-편집자 주) 물량 390억 달러와 조선사 선수금 590억 달러 등 실제 상환부담이 없는 부채가 1027억 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따라서 실제 리스크가 있는 부채 규모는 2778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죠. 또 총 외채 중 단기외채 비중은 2008년 말 기준 39%로 3분기 45%에 비해 많이 떨어진 점도 설명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갖고 있던 총 외환보유액 2017억 달러와 통화스와프(서로 다른 통화를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서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편집자 주) 자금 90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등을 고려하면 외화부채를 다 갚고도 남는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금융위기 파동을 겪은 다른 나라들도 우리와 비슷한 노력을 했나요?
“지난 3월 뉴욕에 가서 현지의 투자자 20~30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더니 ‘한국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自國(자국) 사정을 알리는 나라는 없다. 정말 잘왔다’고 하더군요.”
IMF의 학습효과
―우리가 IMF 외환위기라는 학습효과 덕분에 이번 위기를 잘 이겨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한국이 이번 미국發(발) 금융위기를 잘 견뎠고, 다른 나라보다 먼저 벗어난 이유는 IMF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상시 위기관리를 통해 체질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기업들은 재무구조가 대단히 건전해졌고 은행들도 자산 건전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쓰라리게 당한 경험 때문에 미리미리 대비한 것이죠.”
―IMF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에 ‘쓴 약’이 된 셈이군요.
“쓴 약임에는 틀림없으나 IMF가 한국에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 당시 IMF가 까다로운 처방을 요구했는데 우리 국민의 反感(반감)이 적지 않았죠. 또 구제금융을 받았다는 낙인효과(Stigma effect) 탓에 심리적 좌절감이 컸어요.”
이 상임위원은 현재는 금융위원회에 재직 중인 공무원이지만 얼마 전만 해도 금융 전문 국제변호사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08년 3월, 금융위에 영입됐다.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이다. 현재 그는 금융위에서 국제 금융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MB 캠프에서 일을 도운 경험도 없다. 단지 영어에 능숙하고 국내외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 국제금융 및 인수합병(M&A) 등 실물경제에 익숙하다는 점이 주목을 받아 전문가 영입 차원에서 금융위에 스카우트된 것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이다. 77학번의 정원은 80명. 그중 40명가량이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朴大槿(박대근) 한양대 교수, 朴在夏(박재하) 금융연구원 부위원장, 申齊潤(신재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金成植(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朴基性(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 趙晨(조신) SK 브로드밴드 사장, 李貞植(이정식) LG파워콤 대표 등이 77학번 동기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한 뒤 ROTC 장교로 복무를 마치고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3학기를 마친 뒤 1985년 선경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탠퍼드 경제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대학 서점에서 <법경제학 입문>이란 책을 손에 쥐게 된다. 미첼 폴린스키 교수가 쓴 이 책에 매료돼 법학과 경제학을 모두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미국에서 법 현상을 경제학적 분석틀을 이용해 연구하는 분야가 발흥하고 있었어요. 그 책을 흥미롭게 읽고 폴린스키 교수를 찾아가 ‘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어요. 1986년 가을학기에 ‘법경제학 개론’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그 분야를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경제학 공부하다 법학에 도전
문제는 그가 법학을 공부한 경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대 세미나에 참여하다가 정식으로 로스쿨에 도전장을 냈다. 폴린스키 교수가 로스쿨 추천장을 써줬다고 한다.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LSAT)의 합격자 평균 점수는 보통 99점. 그런데 그는 84점을 받고도 스탠퍼드 로스쿨에 들어갔다.
“대학원 경제학과 성적이 좋았고, 경제학과의 마이클 보스킨 교수도 저의 추천장을 써주셨어요. 제가 그분의 조교를 한 인연 때문이죠.”
보스킨 교수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수석을 역임한 인물이다.
당시 스탠퍼드 로스쿨의 정원은 170명. 하버드대 법대 정원이 600명임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수다. 동기생 중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학생은 5~6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경제학 박사과정 코스 2년을 마친 1987년 학위자격시험을 통과하고 그해 가을부터 로스쿨 강의를 듣기 시작해 1990년 6월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틈틈이 논문을 준비해 이듬해 4월 경제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공부하다 잠들고, 일어나 공부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제출한 박사 논문 제목은 ‘多者間(다자간) 소송의 경제학적 분석’. 경제학과 법학을 버무린 논문이었다.
학위를 마치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변호사 실무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월스트리트 최고의 법률회사로 꼽히는 ‘설리번 & 크롬웰’에 입사한다. 이 회사는 지금도 매머드 급이지만 그가 입사하던 1991년 무렵에도 변호사 수만 400~500명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회사였다. 이곳에서 2년을 근무한 후 국제업무 비중이 높은 ‘셔먼 & 스털링’으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금융시장은 다양한 M&A 구조 및 금융상품이 개발되면서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됐어요. 세계금융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 미국의 법제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 상임위원은 미국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나 이를 지탱하고 있는 법률 및 규제체계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로펌의 ‘자본시장(Capital Markets)팀’에 소속돼 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한 증권 발행, M&A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그는 월스트리트 생활이 몸에 밸 무렵 귀국을 고민한다. 서른여덟, 1996년 4월의 일이다. 그는 미국 영주권 신청을 했다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법무법인 세종에 입사한다. 세종 구조화금융팀을 이끌며 한국의 자산유동화 시장을 처음 접하게 된다. 미국에서 이미 자산유동화 거래를 주로 맡은 경험이 있어 자신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가 터져 한국경제가 휘청이는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미국에서 배운 M&A와 자산유동화 거래 등 새로운 금융기법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산유동화 거래란 은행이 대출을 많이 해주잖아요. 돈을 빌린 사람이 대출금을 갚으면, 그 돈으로 은행은 다시 다른 고객에게 돈을 빌려줍니다. 고객에게 빌려준 대출채권을 모아 증권화 혹은 유동화시키는 것인데, 당시로선 신상품이었어요.”
‘2003 아시아 지역 자산유동화 부문’ 상 수상
기업 입장에서 보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채권 등을 담보로 다시 채권(ABS·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 자금을 유치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팝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의 공연·음반 수입을 담보로 자산유동화 채권을 발행하는 등 외국에선 상품이 매우 다양하다.
“제가 월스트리트에서 있을 때 많이 개발되던 상품이었고, 귀국하기 2년 전부터 주로 그 일을 도맡았어요. 자산유동화 거래는 자금 순환을 빨리하는 장점이 있고, 자산담보보다 안전한 거래입니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한동안 유일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고, 1998년 자산유동화법도 만들어졌어요. 법이 만들어지면서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고, 덕분에 업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처음엔 그 거래를 아는 이가 한국에 몇 안됐는데, 1년이 지나니까 다 알더군요. 역시 한국 사람은 빨라요.”
미국은 유동화거래가 너무 복잡하고 그 규모가 커지면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主犯(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외환위기 당시 한국기업들에는 유일한 외화자금 조달수단으로 그 몫을 톡톡히 했다.
이 상임위원은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유동화 거래계획을 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주간사 대리인으로 활약했다. 한번은 대한항공이 향후 5년간 받을 일본發(발) 서울行(행) 항공운임을 담보로 엔화 투자를 받아낸 일도 있다. 이 상임위원은 이 거래로 세계적인 금융 법률 전문잡지 <인터내셔널 파이낸셜 리뷰(IFLR)>가 제정한 ‘2003 아시아 지역 자산유동화 부문’ 상을 수상했다.
변호사 업무 외에도 1998년부터 고려대, 연세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 1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강좌명은 ‘M&A’. 그리고 지난 2008년 3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발탁, 공직에 입문했다.
“변호사 업무라는 게 항상 새로운 거래구조를 짜고 어려운 법률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흥미롭기는 해요.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해결 위주고, 보다 넓게 정책적 이슈를 다룰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게 늘 아쉬웠어요. 금융위원회는 금융 관련 정책 및 감독 등 금융에 관한 모든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그간 변호사로 쌓은 경험과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을 기초로 정부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들어가게 됐죠.”
그가 귀국 후 IMF가 터진 것처럼, 그가 금융위에 들어간 직후 글로벌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금융위의 업무강도는 폭증했고 위기수습이 급선무였다. 한마디로 일 복이 터진 것이다.
G20 한국 개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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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9월 25일 미국 피츠버그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지난 4월 G20 런던 정상회의 개최 당시 4개의 워킹 그룹(Working Group)이 만들어졌다. WG1에서는 금융규제개혁, WG2에서는 공동 감시단 설립 등 국제협력 문제, WG3에서는 IMF 개혁, WG4에서는 세계은행 및 다자간 지역개발은행 개혁문제를 다루기로 각국 정상이 협의했다. 한국은 WG1에 금융위, WG2에 한국은행, WG3과 WG4에 기획재정부가 참여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 상임위원은 금융위를 대표해 WG1의 한국대표를 맡았다.
지난 1월에서 4월까지 열린 WG1회의는 매주 화요일 저녁 10시쯤 전화로 이뤄졌다. 회의는 보통 자정을 넘겨 3~4시간 이어졌다. 2월 런던대회에서 한 차례 얼굴을 맞대긴 했지만 주로 전화로 의견을 조율했다. 전화회의에서 한국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헤지펀드, 장외파생상품, 신용평가회사 등 금융규제 死角(사각)지대(regulatory gap) 제거와 거시감독 강화 등의 이슈를 다루었다.
“정부 입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이슈 중 하나는 회계제도 개혁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경제위기를 겪으며 원화가치가 급속히 하락해 많은 기업이 외화환산 손해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경제의 실질과 상관없이 단지 원화가치 하락으로 손실이 생기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지요.”
그런데 외화환산 손해는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 멕시코 등 국제결제통화를 갖지 못한 모든 나라가 똑같이 짊어진 難題(난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참여나 관심은 저조하다.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수차례 의견을 개진하고 전화를 걸어 설득한 뒤 겨우 결실을 보게 됐다. 지난 4월 국제회계기준을 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기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
“외화환산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기업들에는 중요한 이슈예요. 이를 의제로 만들기 위해 멕시코, 브라질 등 신흥국 동의도 끌어냈지요. IASB로 하여금 환율 문제 개선을 권고하는 문구를 ‘WG1 최종보고서’에 넣기로 합의했어요. 그런데 막판 협상과정에서 문구가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강력한 항의서한을 의장국에 보내고 전화통화를 통해 항의했지요. 결국 최종보고서에는 ‘IASB가 이 문제를 검토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게 됐습니다.”
지난 런던 정상회의에서 설립된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FSB)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G7 선진국 위주로 운영되던 금융안정포럼(Financial Stability Forum)을 G20 모든 나라로 확대하면서 FSB가 설립된 것. 한국은 금융위와 한국은행이 FSB에 참여하게 됐다.
G20 의제설정의 핵심역할 수행
특히 지난 6월에 열린 FSB 1차 총회에서 금융위가 FSB의 의제 및 운영방향을 결정짓는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의 위원이 됐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의사결정 및 중요사항 논의가 운영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 신흥국 중에서는 브릭스(BRICs) 국가와 멕시코만 참여했다.
“과거 우리는 선진국이 짜둔 틀을 따라가는 후발주자로 응석도 부리고 볼멘소리도 냈습니다. 또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제 의제설정의 핵심역할을 수행하는 운영위원이 됐으니 자부심을 느낄 만하죠.”
그러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이런 생각도 내비쳤다.
“한국을 이제 ‘신흥국(Emerging Market)’으로 보는 것이 더 이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OECD 국가이자 GDP 기준 세계 15위 나라이고, IMF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잖아요. 이번 글로벌 위기는 한국을 아시아, 남미 및 동구권 국가와 함께 신흥국으로 간주, 자본이 급격히 유출됐어요. 가령 한국의 외환보유고 대비 유동외채(만기 1년 이하 단기외채와 장기외채 중 1년 내 만기도래분)를 비교할 때, 한국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결코 크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흥국, 개도국과 비교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죠. 우리 경제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더 이상 신흥국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어요.”
이 상임위원은 정부의 ‘FSB 종합 대책반장’을 맡아 금융위, 금감원, 예금보험공사, 한국은행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의제를 찾고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 FSB는 세계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이 주목적이지만, 대부분 서구 금융시장의 문제점 해결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어요. 우리는 신흥국 시장안정이 선진국 시장에도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바라는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은 뭔가요.
“지난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과 통화 스와프 거래를 했는데, 스와프란 상대방이 있는 거잖아요. 상대방이 동의해야 스와프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조건도 상대방과 맞아야 해요. 안 들어주면 그만입니다. 재량권이 상대편에 있어요. 또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 ‘낙인효과’ 때문에 문제지요.”
지난해 10월 원화가 폭락하는 등 외환위기가 찾아오자 우리 정부는 발 빠르게 韓美(한·미) 간 통화 스와프 거래를 맺어 외환부족에 대한 숨통을 텄다. 스와프란 원화를 미국에 맡기고, 달러를 들여와 일정 기간 뒤 다시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거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 외환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 그의 말이다.
“이번에 FSB에 가서도 얘기했지만, 각 나라가 외화자금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규제책을 만들고, 국제적으로 자금공급 시장을 보완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그중 하나가 국제기구를 이용해 외화유동성 보험기능을 활성화하는 문제, 다자간 스와프를 해서 재량권을 높이는 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겠죠.”
아시아의 힘
그런 의미에서 내년 11월 G20 한국 개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이 옮아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고, 그 축이 한국경제임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지난 11월 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한국·중국·일본과 아세안(ASEAN) 10개국 등 동아시아권의 올해 GDP가 12조670억 달러로 세계 GDP의 21.1%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8003억 달러, 중국은 4조7577억 달러, 일본은 5조486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다.
내년에는 동아시아 경제권 규모가 12조8900억 달러로 커져 유로존(Euro Zone, 유로화를 쓰는 16개국) 경제규모(12조7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의 힘’이 유럽을 넘어서게 된다는 얘기다. 내년 G20 한국 개최의 의미를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세계 頂上(정상)이 모이는 대회인 만큼 여러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의전도 그렇고 아젠다 세팅, 의견을 조율하는 의장국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해요. 한국과 아시아의 저력, 그리고 세계 경제가 가야할 이슈를 잘 만들고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습니까?”
한국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산업생산과 소비, 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모두 증가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기와 물가전망에 비춰 지금의 기준금리(2%)가 과도하게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전분기 대비 2.9% 증가)이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낮은 기준금리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화두로 떠오른다.
출구전략이란 어떤 상황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전략을 말한다. 현 경제상황에 비춰보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취했던 각종 조치를 거둬들이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경기회복을 빌미로 강제로 인하한 금리를 다시 올린다든가,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어제 G20 재무장관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FSB 전화회의를 열었는데, 금융안정화 조치를 언제 환원할 것인가가 큰 이슈였어요. 우선 경제안정에 주안점을 두고 출구전략을 써야 합니다. 자칫 빨리 환원되면 경제가 살아나다가 다시 꺼져버립니다. 경제안정 위해 보수적으로 가야 해요.
또 환원조치를 하려면 사전에 사람들에게 고지해 충격을 덜어주는 방안도 필요해요. 한 나라에서 (출구전략을) 쓰면, 다른 나라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각국의 공조 필요성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출구전략 잘못 쓰면 더블딥으로 이어질 수도
출구전략과 함께 ‘더블딥(Double Dip)’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더블딥은 경기침체가 계속되다 일시적으로 회복된 후 다시 침체에 빠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가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지표상으로 좋아졌는데 얼마나 지속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지속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아요.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미국이 大恐慌(대공황)을 겪은 뒤 첫해는 다들 회복이 됐다고 봤어요. 그러다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가) 확 떨어져 더블딥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최근 <조선일보> 설문조사에서 국내 30개 그룹 중 15곳이 ‘경기가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 국면으로 빠져드는 더블딥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문에 18개 그룹은 ‘올해 거둔 수익금을 차입금 상환이나 위기에 대비해 유보금으로 쌓아두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수출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시장이 회복하느냐가 큰 관건이지요. 그리고 중국시장이 성장을 견인할 것이냐도 중요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오는 ‘사인’은 비교적 괜찮다고 봐요. 다만 더블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결국 미국의 소비가 더 늘어나기가 어렵지 않으냐 하는 우려 때문이죠. 소비가 늘기 위해선 고용이 늘어야 하는데 되레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어요. 실업률 곡선이 멈추고 얼마큼 소비에 영향을 미치느냐가 관건입니다. 또 미국의 재정적자가 심각한데 정부지출을 계속 확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그래서 자생적으로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블딥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수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G20이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견인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더 이상 한국과 중국, 인도를 빼고 G8(선진 8개국)만으로 글로벌 경제 이슈를 논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아시아가 있고 한국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