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단순히 식량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적 저수지, 고향과 같은 곳. 농촌사회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 農家 보조금 지급의 경제적 효과는 全無하지만 사회기반 유지 차원에서 추진
⊙ 해외 곡물 확보 차원에서 제3국 현지농업 추진 중
⊙ 농가 소득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통해 경쟁력 높이는 게 정책핵심
河榮帝
⊙ 1954년 경남 남해 출생.
⊙ 경남고·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행정학 석사·미국 시러큐스대 행정학 석사·동국대 행정학 박사.
⊙ 23회 행시 합격. 내무부 행정계장·거창군수·내무부 교부세 과장·청와대 행정관·진주 부시장·
남해군수·산림청장 역임.
⊙ 수상: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 대한민국 무궁화대상 수상.
⊙ 農家 보조금 지급의 경제적 효과는 全無하지만 사회기반 유지 차원에서 추진
⊙ 해외 곡물 확보 차원에서 제3국 현지농업 추진 중
⊙ 농가 소득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통해 경쟁력 높이는 게 정책핵심
河榮帝
⊙ 1954년 경남 남해 출생.
⊙ 경남고·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행정학 석사·미국 시러큐스대 행정학 석사·동국대 행정학 박사.
⊙ 23회 행시 합격. 내무부 행정계장·거창군수·내무부 교부세 과장·청와대 행정관·진주 부시장·
남해군수·산림청장 역임.
⊙ 수상: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 대한민국 무궁화대상 수상.
河榮帝(하영제·55)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실에 들어섰더니 하 차관을 가운데 두고 농수산부 실무 책임자들이 여러 명 앉아 있었다. 하 차관이 운을 뗐다.
“농수산부가 하는 일이 많아요. 복잡한 사안이 적지 않지만,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과장들을 불렀어요.”
우선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쌀 문제’부터 화제에 올렸다.
“올해 쌀 생산량이 460여만t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484만t을 생산한 데 이어 연이어 大豊(대풍)입니다. 그런데 쌀 생산량은 느는 데 비해 쌀 소비는 줄고 있어요.”
―시장 쌀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 대책은 뭡니까.
“매입량을 늘려야죠. 작년보다 23만t이 늘어난 270만t을 사들일 예정입니다. 정부 매입자금을 1조원으로 늘리고, 농협에 1조3000억원을 지원해 쌀값 하락을 막을 겁니다. 정부가 매입하는 물량은 시장에 공매하지 않고 비축해 격리시킬 생각입니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일본의 淸酒(청주)처럼 다양한 쌀 제품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아도 쌀로 빚는 술을 장려하기 위해 주세법을 바꾸려고 국세청과 협의 중입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어요. 쌀 제품이 다양하지 못한 데는 ‘쌀은 귀한 것’이라는 우리의 인식 때문인 것 같아요.”
―쌀 재배면적이 계속 감소하고 있음에도 해마다 쌀이 남아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쌀 재배면적은 92만여ha로 매년 1.8%씩 줄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논 면적도 줄고, 쌀 경작지도 감소하고 있음에도 쌀이 남아도는 것은 재배면적보다 쌀 소비량이 더 큰 폭으로 줄기 때문이죠.
―농민들은 쌀 직불금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직불금을 1만원 올릴 경우, 약 43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해요. 국가재정에 압박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지금 수준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쌀 수입 줄이려면
하 차관은 “농가 소득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매 목표가격과 産地(산지) 쌀값의 차액 85%를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쌀이 남아돌면서 사회 일각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쌀이 남아돈다고 북한에 보내는 것은 말이 안돼요. 중장기적으로 쌀 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적정량을 비축해야 합니다. 사회 일각에서 對北(대북) 쌀 지원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봐요.”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쌀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입쌀은 2014년까지 계속 들여와야 해요. 해마다 수입량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마지막 연도에는 41만여t을 수입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관세화 시기를 앞당겨 수입량을 줄이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해요. 쌀의 국제가격이 t당 136만원인데, 국내가격은 t당 187만원입니다. 2011년에 관세화를 실시할 경우 33만여t만 수입하면 됩니다. 의무수입량 중에서 8만t을 줄일 수 있죠.”
―얼마 전 모 대학의 경제학자를 만났더니 국내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분야가 ‘農政(농정)’이라고 하더군요.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효과가 적다는 견해였습니다.
“경제학자는 당연히 그렇게 보죠. 쌀 직불금의 경우 경제효과는 제로입니다. 직불금은 농업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 생산과 연계해 지급하는 게 아닙니다. 보조금 대비 농업생산비율을 따지면 각종 산업 중에 가장 낮을 겁니다. 정부는 농촌지역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이를 방치할 때 예상치 못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 차관은 “개도국이 중진국으로 갈 때는 농업의 발전 없이도 가능하지만, 중진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농촌과 농업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농촌은 단순히 식량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신적 저수지, 고향과 같은 곳이어서 농촌사회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관계자는 “농수산부에 농업을 관장하는 농업정책국이 있고, 농촌지역을 보존 지원하는 농촌정책국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업분야에도 우수한 인재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한국농수산대학처럼 농수산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있어요. 하지만 좋은 인재가 농업분야에 유입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농업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큰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인재들이 서로 몰려들 겁니다. 20여 년 동안 농가 수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왔는데 해결이 쉽지 않아요. 농업분야에 몇 개 기업만 육성하고 소규모 농가를 모두 없애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카길과 같은 세계적 규모의 곡물·식품 전문기업이 있지만, 미국 농업의 중심은 가족농입니다.”
해외 5개국에 11개 농업 관련 업체 진출
하 차관은 “농업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민간부문의 돈이 투자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농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책자금으로 깔린 부채가 40조원입니다. 부채탕감 얘기가 나올 법도 하지요. 부채가 많은 농가들을 보면 대부분 자산이 많은 축산, 원예농가들이에요. 어떤 분은 10억원에 달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돈을 안 갚아요. 땅을 팔아서 부채를 갚으라고 하면 ‘땅값이 계속 올라갈 텐데 왜 지금 파느냐’는 식입니다. 그분들은 대출은행이 재산을 압류하면 민원을 제기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출금 회수도 어려워요. 농가부채 탕감 얘기는 현 정부에서는 안 나올 겁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자원외교·식량확보 외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제3국에서의 농업’도 거론했는데 우리 농민들의 이해와 상충되지는 않을까요.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를 하면 되죠. 그게 국내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이득입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진출하면 승산이 있다고 봐요. 가나,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영농 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입니다.”
―현재 해외에서 진행되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연해주,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5개국에 11개 업체가 진출해 있어요. 정부는 이들 업체에 240억원을 지원했고, 215억원을 융자해 줬어요.”
―러시아 연해주에 국내 민간단체가 거액을 투자해 농사를 짓고 있더군요.
“해외농업은 곡물의 안정적 확보라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아주 중요해요.”
―국제농업 분야에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언제쯤 나올까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육성해 나가야죠. 현재 과수·화훼 분야에서 일부 농기업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농업도 품목마다 계열화를 해야 해요. 정부는 29개 품목을 생산자 마켓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생산자가 유통업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통에 자본이 집중되거든요. 생산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 중심의 小農(소농)을 전국단위로 계열화해야 해요. 쌀도 전국단위로 조직화하고, 딸기도 계열화해 놓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깁니다.”
―명품 쌀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2007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어요. 올해의 경우 3000t 수출을 예상하고 있는데, 많은 양은 아니죠.”
“자생력 높이는 것이 農政의 목표”
―과수 품목이 국제 경쟁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이 사계절 기후가 뚜렷하기 때문에 국내산 과일이 당도가 높아요. 駐韓(주한) 브라질 대사가 한번은 우리 과일을 먹고 난 후 ‘정말 달고 맛있다’고 하더군요. 축산 분야도 잠재력이 만만치 않다고 봅니다. 농업 선진국인 네덜란드의 경우 MSY(돼지를 생산하는 농장의 생산효율을 나타내는 지표)가 평균 22두인데, 우리나라는 15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국내의 일부 축산농가 중에는 25~27두를 생산하는 곳도 있어요. 이를 표준화하면 다른 축산농가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 차관은 이명박 정부의 농업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自生力(자생력)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진국이 되려면 농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농수산업 정책이 과거 정부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이전 정부는 ‘경쟁력 제고’만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현 정부의 정책방향은 농가소득 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거죠.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해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농촌지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도 안돼요. 농업이 발전해도 나머지 60%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죠.
현 정부는 농업정책과 농촌정책을 새로 짰어요. 농업정책은 산업정책이고, 농촌정책은 복지정책인데 농촌의 체질개선을 통해 농업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거죠. 농촌지역에 문화·복지·레저·병원·교육 수준을 높여 정주 여건을 향상시키면 자연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4월 일자리 창출과 타 산업인력을 유입해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의 활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歸農(귀농)·歸村(귀촌)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191억원을 사업 예산으로 확보해 귀농·귀촌 종합센터를 설치하고,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각종 정보와 혜택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귀농자의 영농 정착자금을 창업농가와 같은 수준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포함돼 있다.
하 차관은 “귀농이 성공하려면 귀농인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며 과거 군수 시절의 경험을 들려줬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 중에는 일시적으로 귀농하는 분들이 있어요. 경기만 풀리면 언제든지 도시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고향에 안착하는 데 최소 3년이 걸립니다. 제가 군수시절 그분들께 ‘마음속부터 귀농하십시오’라고 했어요.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의 귀농’이 된 사람들입니다.”
시장 개방하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게 마련
―미국과 유럽, 인도 등과 FTA를 체결할 경우 국내 농수산업 분야가 입게 되는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시장을 개방할 경우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입니다. 피해가 예상되는 돼지고기, 낙농품 등 축산분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FTA를 계기로 우리 농수산업도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한·칠레 FTA 때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던 포도와 키위 품목처럼, 그 당시 완전히 개방됐던 품목은 지금 적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어요.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 농수산업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우리의 경쟁력을 높여야 해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쇠고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시장 가격이 여전히 비싼 이유는 무엇입니까.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국내산 쇠고기는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강화, 이력제 실시 등으로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어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韓牛(한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도축세 폐지 등 도축·유통과정 비용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수산업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됩니까.
“농업과 달리 어업은 자본과 기술, 노력이 투입되면 생산량이 최대로 가다가 갑자기 뚝 떨어져요. 고기를 집중적으로 많이 잡으면 어획량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지속 가능한 만큼만 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게 세계 어업협정의 기본 정신입니다. ‘후세한테 물려줄 고기는 남겨둬야 한다’는 말인데 이 때문에 수산업 분야에는 각종 규제가 많아요.”
현 정부는 농수산업과 식품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를 만들었다. 농수산품을 2·3차 식품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내 식품산업의 현황은 세계 시장과 비교할 때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세계 식품시장의 규모는 약 4조 달러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의 가공식품 수출액은 19억 달러, 수입액은 88억 달러다. 이는 세계 식품교역 대비 0.3%, 1.4% 수준으로, 가공식품 수출은 세계 40위, 수입은 14위다. 국내 식품기업 중 119개가 해외 22개국에 진출해 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가장 많은 비중(67.8%)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일본,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순이다.
하 차관은 국내 식품사업의 수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형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산업구조가 취약하고 기술력과 인력이 부족해요. 새로운 시장과 아이템을 개척하는 것도 미진합니다. 식품 원료의 해외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 곡물가가 상승하면 대응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요. 세계 각국은 식품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R&D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유통 네트워크와 브랜드 파워도 키워야죠.”
현장에 애정을 쏟아라
―韓食(한식)의 세계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오이소박이가 세계 10대 음식에 선정됐지만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아직 부족한 게 많지요. ‘세계인이 즐기는 우리 한식’을 목표로 몇 가지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먼저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해요. 우리 문화와 접목된 홍보 마케팅도 적극 필요합니다. 개별 음식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죠. 정부는 이를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할 생각입니다.”
―막걸리를 세계인의 술로 만들자는 얘기도 있습니다.
“국내 주류시장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합니다. 전통주의 생산기반이 취약한 측면이 있어 지난해 전통주의 주세율을 50% 인하했어요. 전통주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시급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名酒(명주)가 나오고 결국 세계시장에서 빛을 볼 수 있지요.”
하 차관은 현장을 중시하는 행정가다. 그는 산림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전국 대부분의 산을 누볐다. 농림수산식품부로 옮기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하 차관은 농수산업 현장에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농촌과 어촌은 우리 민족의 저수지입니다. 역사, 문화, 자연, 생명의 저수지인데, 물이 자꾸 고갈되는 기분을 느껴요. 현지 주민들도 ‘뭔가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해결책은 현장에 있기 마련이죠. 부처 공무원들에게 ‘현장감각을 잃지 말고 현장에 많은 애정을 쏟아라’고 강조해요. 그래야 살아 있는 정책이 나옵니다.”⊙
사진 : 조준우
“농수산부가 하는 일이 많아요. 복잡한 사안이 적지 않지만,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과장들을 불렀어요.”
우선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쌀 문제’부터 화제에 올렸다.
“올해 쌀 생산량이 460여만t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484만t을 생산한 데 이어 연이어 大豊(대풍)입니다. 그런데 쌀 생산량은 느는 데 비해 쌀 소비는 줄고 있어요.”
―시장 쌀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 대책은 뭡니까.
“매입량을 늘려야죠. 작년보다 23만t이 늘어난 270만t을 사들일 예정입니다. 정부 매입자금을 1조원으로 늘리고, 농협에 1조3000억원을 지원해 쌀값 하락을 막을 겁니다. 정부가 매입하는 물량은 시장에 공매하지 않고 비축해 격리시킬 생각입니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일본의 淸酒(청주)처럼 다양한 쌀 제품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아도 쌀로 빚는 술을 장려하기 위해 주세법을 바꾸려고 국세청과 협의 중입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어요. 쌀 제품이 다양하지 못한 데는 ‘쌀은 귀한 것’이라는 우리의 인식 때문인 것 같아요.”
―쌀 재배면적이 계속 감소하고 있음에도 해마다 쌀이 남아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쌀 재배면적은 92만여ha로 매년 1.8%씩 줄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논 면적도 줄고, 쌀 경작지도 감소하고 있음에도 쌀이 남아도는 것은 재배면적보다 쌀 소비량이 더 큰 폭으로 줄기 때문이죠.
―농민들은 쌀 직불금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직불금을 1만원 올릴 경우, 약 43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해요. 국가재정에 압박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지금 수준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쌀 수입 줄이려면
하 차관은 “농가 소득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매 목표가격과 産地(산지) 쌀값의 차액 85%를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쌀이 남아돌면서 사회 일각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쌀이 남아돈다고 북한에 보내는 것은 말이 안돼요. 중장기적으로 쌀 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적정량을 비축해야 합니다. 사회 일각에서 對北(대북) 쌀 지원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봐요.”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쌀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입쌀은 2014년까지 계속 들여와야 해요. 해마다 수입량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마지막 연도에는 41만여t을 수입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관세화 시기를 앞당겨 수입량을 줄이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해요. 쌀의 국제가격이 t당 136만원인데, 국내가격은 t당 187만원입니다. 2011년에 관세화를 실시할 경우 33만여t만 수입하면 됩니다. 의무수입량 중에서 8만t을 줄일 수 있죠.”
―얼마 전 모 대학의 경제학자를 만났더니 국내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분야가 ‘農政(농정)’이라고 하더군요.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효과가 적다는 견해였습니다.
“경제학자는 당연히 그렇게 보죠. 쌀 직불금의 경우 경제효과는 제로입니다. 직불금은 농업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 생산과 연계해 지급하는 게 아닙니다. 보조금 대비 농업생산비율을 따지면 각종 산업 중에 가장 낮을 겁니다. 정부는 농촌지역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이를 방치할 때 예상치 못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 차관은 “개도국이 중진국으로 갈 때는 농업의 발전 없이도 가능하지만, 중진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농촌과 농업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농촌은 단순히 식량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신적 저수지, 고향과 같은 곳이어서 농촌사회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관계자는 “농수산부에 농업을 관장하는 농업정책국이 있고, 농촌지역을 보존 지원하는 농촌정책국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업분야에도 우수한 인재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한국농수산대학처럼 농수산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있어요. 하지만 좋은 인재가 농업분야에 유입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농업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큰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인재들이 서로 몰려들 겁니다. 20여 년 동안 농가 수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왔는데 해결이 쉽지 않아요. 농업분야에 몇 개 기업만 육성하고 소규모 농가를 모두 없애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카길과 같은 세계적 규모의 곡물·식품 전문기업이 있지만, 미국 농업의 중심은 가족농입니다.”
해외 5개국에 11개 농업 관련 업체 진출
하 차관은 “농업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민간부문의 돈이 투자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농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책자금으로 깔린 부채가 40조원입니다. 부채탕감 얘기가 나올 법도 하지요. 부채가 많은 농가들을 보면 대부분 자산이 많은 축산, 원예농가들이에요. 어떤 분은 10억원에 달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돈을 안 갚아요. 땅을 팔아서 부채를 갚으라고 하면 ‘땅값이 계속 올라갈 텐데 왜 지금 파느냐’는 식입니다. 그분들은 대출은행이 재산을 압류하면 민원을 제기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출금 회수도 어려워요. 농가부채 탕감 얘기는 현 정부에서는 안 나올 겁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자원외교·식량확보 외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제3국에서의 농업’도 거론했는데 우리 농민들의 이해와 상충되지는 않을까요.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를 하면 되죠. 그게 국내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이득입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진출하면 승산이 있다고 봐요. 가나,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영농 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입니다.”
―현재 해외에서 진행되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연해주,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5개국에 11개 업체가 진출해 있어요. 정부는 이들 업체에 240억원을 지원했고, 215억원을 융자해 줬어요.”
―러시아 연해주에 국내 민간단체가 거액을 투자해 농사를 짓고 있더군요.
“해외농업은 곡물의 안정적 확보라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아주 중요해요.”
―국제농업 분야에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언제쯤 나올까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육성해 나가야죠. 현재 과수·화훼 분야에서 일부 농기업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농업도 품목마다 계열화를 해야 해요. 정부는 29개 품목을 생산자 마켓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생산자가 유통업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통에 자본이 집중되거든요. 생산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 중심의 小農(소농)을 전국단위로 계열화해야 해요. 쌀도 전국단위로 조직화하고, 딸기도 계열화해 놓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깁니다.”
―명품 쌀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2007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어요. 올해의 경우 3000t 수출을 예상하고 있는데, 많은 양은 아니죠.”
“자생력 높이는 것이 農政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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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6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농협-한국마늘생산자협의회 공동주최로 열린 2009 마늘축제를 찾은 하영제 농림수산식품부2차관(오른쪽 세 번째). |
“한국이 사계절 기후가 뚜렷하기 때문에 국내산 과일이 당도가 높아요. 駐韓(주한) 브라질 대사가 한번은 우리 과일을 먹고 난 후 ‘정말 달고 맛있다’고 하더군요. 축산 분야도 잠재력이 만만치 않다고 봅니다. 농업 선진국인 네덜란드의 경우 MSY(돼지를 생산하는 농장의 생산효율을 나타내는 지표)가 평균 22두인데, 우리나라는 15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국내의 일부 축산농가 중에는 25~27두를 생산하는 곳도 있어요. 이를 표준화하면 다른 축산농가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 차관은 이명박 정부의 농업선진화 방안의 핵심은 “自生力(자생력)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진국이 되려면 농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농수산업 정책이 과거 정부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이전 정부는 ‘경쟁력 제고’만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현 정부의 정책방향은 농가소득 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거죠.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해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농촌지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도 안돼요. 농업이 발전해도 나머지 60%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죠.
현 정부는 농업정책과 농촌정책을 새로 짰어요. 농업정책은 산업정책이고, 농촌정책은 복지정책인데 농촌의 체질개선을 통해 농업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거죠. 농촌지역에 문화·복지·레저·병원·교육 수준을 높여 정주 여건을 향상시키면 자연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4월 일자리 창출과 타 산업인력을 유입해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의 활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歸農(귀농)·歸村(귀촌)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191억원을 사업 예산으로 확보해 귀농·귀촌 종합센터를 설치하고,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각종 정보와 혜택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귀농자의 영농 정착자금을 창업농가와 같은 수준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포함돼 있다.
하 차관은 “귀농이 성공하려면 귀농인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며 과거 군수 시절의 경험을 들려줬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 중에는 일시적으로 귀농하는 분들이 있어요. 경기만 풀리면 언제든지 도시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고향에 안착하는 데 최소 3년이 걸립니다. 제가 군수시절 그분들께 ‘마음속부터 귀농하십시오’라고 했어요.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의 귀농’이 된 사람들입니다.”
시장 개방하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게 마련
―미국과 유럽, 인도 등과 FTA를 체결할 경우 국내 농수산업 분야가 입게 되는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시장을 개방할 경우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입니다. 피해가 예상되는 돼지고기, 낙농품 등 축산분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FTA를 계기로 우리 농수산업도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한·칠레 FTA 때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던 포도와 키위 품목처럼, 그 당시 완전히 개방됐던 품목은 지금 적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어요.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 농수산업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우리의 경쟁력을 높여야 해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쇠고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시장 가격이 여전히 비싼 이유는 무엇입니까.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국내산 쇠고기는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강화, 이력제 실시 등으로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어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韓牛(한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도축세 폐지 등 도축·유통과정 비용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수산업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됩니까.
“농업과 달리 어업은 자본과 기술, 노력이 투입되면 생산량이 최대로 가다가 갑자기 뚝 떨어져요. 고기를 집중적으로 많이 잡으면 어획량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지속 가능한 만큼만 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게 세계 어업협정의 기본 정신입니다. ‘후세한테 물려줄 고기는 남겨둬야 한다’는 말인데 이 때문에 수산업 분야에는 각종 규제가 많아요.”
현 정부는 농수산업과 식품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를 만들었다. 농수산품을 2·3차 식품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내 식품산업의 현황은 세계 시장과 비교할 때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세계 식품시장의 규모는 약 4조 달러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의 가공식품 수출액은 19억 달러, 수입액은 88억 달러다. 이는 세계 식품교역 대비 0.3%, 1.4% 수준으로, 가공식품 수출은 세계 40위, 수입은 14위다. 국내 식품기업 중 119개가 해외 22개국에 진출해 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가장 많은 비중(67.8%)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일본,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순이다.
하 차관은 국내 식품사업의 수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형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산업구조가 취약하고 기술력과 인력이 부족해요. 새로운 시장과 아이템을 개척하는 것도 미진합니다. 식품 원료의 해외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 곡물가가 상승하면 대응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요. 세계 각국은 식품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R&D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유통 네트워크와 브랜드 파워도 키워야죠.”
현장에 애정을 쏟아라
―韓食(한식)의 세계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오이소박이가 세계 10대 음식에 선정됐지만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아직 부족한 게 많지요. ‘세계인이 즐기는 우리 한식’을 목표로 몇 가지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먼저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해요. 우리 문화와 접목된 홍보 마케팅도 적극 필요합니다. 개별 음식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죠. 정부는 이를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할 생각입니다.”
―막걸리를 세계인의 술로 만들자는 얘기도 있습니다.
“국내 주류시장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합니다. 전통주의 생산기반이 취약한 측면이 있어 지난해 전통주의 주세율을 50% 인하했어요. 전통주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시급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名酒(명주)가 나오고 결국 세계시장에서 빛을 볼 수 있지요.”
하 차관은 현장을 중시하는 행정가다. 그는 산림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전국 대부분의 산을 누볐다. 농림수산식품부로 옮기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하 차관은 농수산업 현장에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농촌과 어촌은 우리 민족의 저수지입니다. 역사, 문화, 자연, 생명의 저수지인데, 물이 자꾸 고갈되는 기분을 느껴요. 현지 주민들도 ‘뭔가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해결책은 현장에 있기 마련이죠. 부처 공무원들에게 ‘현장감각을 잃지 말고 현장에 많은 애정을 쏟아라’고 강조해요. 그래야 살아 있는 정책이 나옵니다.”⊙
사진 : 조준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