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임장관은 대통령의 관심사 한두 개만 잘 처리해도 성공”
⊙ “李明博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는 행정체제와 선거구제 개편, 개헌”
⊙ “6년 단임제 개헌안에 찬성. 우리 정치현실에서 내각제ㆍ이원집정부제는 비현실적.
대통령 중임제도 문제 많아”
⊙ “정치인은 ‘내가 잘못하면 내 무덤을 밟아 없애라’는 역사적 소명의식 필요”
朱豪英
⊙ 1960년 경북 울진 출생.
⊙ 대구 능인고ㆍ영남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 대구지법 부장판사, 17ㆍ18代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공보 부대표, 이명박 후보 비서실 부실장,
17대 대통령당선자 대변인.
⊙ “李明博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는 행정체제와 선거구제 개편, 개헌”
⊙ “6년 단임제 개헌안에 찬성. 우리 정치현실에서 내각제ㆍ이원집정부제는 비현실적.
대통령 중임제도 문제 많아”
⊙ “정치인은 ‘내가 잘못하면 내 무덤을 밟아 없애라’는 역사적 소명의식 필요”
朱豪英
⊙ 1960년 경북 울진 출생.
⊙ 대구 능인고ㆍ영남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 대구지법 부장판사, 17ㆍ18代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공보 부대표, 이명박 후보 비서실 부실장,
17대 대통령당선자 대변인.
얼굴에서 풍기는 스님像(상). 그의 강점은 편안함이다. 朱豪英(주호영ㆍ49) 의원이 11년 만에 정무장관에서 이름을 바꿔 부활한 특임장관에 임명된 것도 이런 장점 때문이 아닐까. 茶(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인터뷰 내내 필자 일행에게 차를 권했다. 잔을 비우면 새로운 차를 내어놓았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왜 특임장관직을 맡긴 것 같습니까.
“그 질문은 저에게 물어볼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양쪽의 입장을 듣는 판사 출신이라는 점을 대통령께서 좋게 보신 게 아닌가 해요.”
주호영 장관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온화한 성품을 가진,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 격돌 과정에서 그는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로서 야당 측과 협상하는 동안 그들로부터 ‘얘기가 통하는 인물’로 통했다.
‘소통과 화합’은 그의 정치철학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높게 사고 있는 듯하다. 2007년 대선 당시 親朴(친박) 쪽으로 기울어 있던 이명박 캠프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여러 인사가 三顧草廬(삼고초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신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측근 중 한 명이 됐다.
―업무 특성상 대통령과 자주 만나야겠군요.
“어제는 청와대에 세 번 들어갔어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뵈어야죠.”
―장관직을 수행하다 보면 지역구 관리가 어려울 텐데요.
“임명장을 받자마자 대구로 내려가 800여 분을 만나고 왔어요. ‘앞으로 자주 찾아뵙지 못할 테니 이해 좀 해 주십시오’ 하고 인사를 했지요.”
행정부처의 2중대장
―특임장관의 임무가 궁금합니다. 과거 정무장관과 어떻게 다릅니까.
“대통령직 인수위 때 ‘정무장관’에서 ‘특임장관’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법조문 규정은 과거와 똑같아요.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를 처리하고,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명하여 국무총리가 지정하는 사건을 처리한다’고 돼 있어요. 政務(정무) 외에 주요 국정과제나 사회적 갈등 현안 중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활동범위가 굉장히 넓겠군요.
“범위로 따지면 많이 넓어졌죠. 행정부처의 일을 넘나들 수도 있어요. 대통령께서 ‘다른 장관들을 많이 도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행정부처의 ‘2중대장’입니다.”
―장관은 자기 부처 업무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모든 중대사에 관여하는 국무위원이란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특임장관은 개별 부처의 이익을 대변할 게 없으니까 어찌 보면 가장 국무위원다운 국무위원입니다. 과거 정무장관을 하신 여러 선배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한두 개만 잘해도 성공’이라고 하시더군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군요.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항이 행정체제와 선거구제 개편, 개헌이니까 그런 일을 집중적으로 해야겠지요. 이런 일들은 국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국회와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孟亨奎(맹형규) 정무특보, 朴亨埈(박형준) 정무수석과 업무영역이 겹칠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데, 세 분 간의 업무 분장은 어떻게 됩니까.
“특별히 규정된 건 없고, 세 사람 모두 정부와 여당의 원활한 국정수행, 국회와의 소통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죠. 정기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나누기로 했어요. 크게 본다면 정무특보는 사회통합위원회를, 정무수석은 정무기획을, 특임장관은 정무실행을 책임지게 될 겁니다.”
―과거 정무장관은 정치 경험이 많은 多選(다선)의원이 주로 맡았는데 주 장관께서는 2선으로 정치경력이 짧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두렵기도 하고요. 그때와 지금의 정치 환경이 달라졌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진정성을 보인다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 정치에서는 다수결의 원칙 작동 안 해
―야당과의 소통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선배님들 말씀으로는 ‘정무장관은 야당 심부름하는 거다’라고 해요. 심부름꾼 역할을 제대로 할 생각입니다. 야당 분들 정기적으로 전화를 하거나 찾아뵐 예정입니다.”
―17대 국회 이후 여야 국회의원들이 인사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국회 선배들도 걱정이 많아요. 여야 의원들 간에 정치쟁점이 생기면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아요. 의원 개개인을 보면 良質(양질)인데 양 진영이 방향성을 가지고 만날 때는 사생결단식으로 전쟁을 벌여요. 각 당에서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물줄기를 돌리지 못해요. 민주당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한나라당이 야당이었을 때도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였어요.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원칙이 우리 정치에는 없어요. 당략만 있을 뿐이죠. 정치권은 서로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 정당의 발목잡기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이런 풍토를 고치지 않으면 정치혐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임장관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對野(대야)관계에 대해 특별히 지시한 사항이 있습니까.
“대통령께서 국회의원을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입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국회의 협조나 동의 없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정책을 집행하려면 법과 예산이 필요한데 국회가 반대하면 행정부는 일을 못해요. 대통령제는 국회·대통령 간 견제와 균형이 작동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국회의 도움이 필수예요. 이명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의 惡習(악습)을 싫어할 뿐 국회 자체를 경시하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속히 해결하라’고 지시한 건 없습니까.
“조만간 특별한 말씀이 계시겠지요.”
주호영 장관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용산 참사’를 들었다. 鄭雲燦(정운찬) 총리와 함께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슴 아픈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세력이 개입해 원만한 협상이 도출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용산사태 당시 공권력 행사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되죠. ‘백성 중에 한 사람도 억울하거나 마음 아픈 사람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게 통치자의 덕목인데, 사고에 대한 책임문제는 접어 두더라도 열 달이 지나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개헌 내용 못지않게 절차와 방식 중시할 것”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산 넘어 산입니다. 100년 넘게 지속된 행정체제인데 일순간에 해결이 되겠습니까. 1995년 도시와 농촌지역을 통합할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경북의 경우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쳐 포항시가 됐고, 구미시와 선산군이 합쳐 구미시가 됐어요. 구미와 선산은 통합시의 명칭을 놓고 ‘구미시’와 ‘선산시’로 갈라졌어요.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선산시’로 합의했지만, 이름을 바꿀 경우 행정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문제가 제기됐어요. 구미공단에 해외수출기업이 많은데 선산시로 이름이 바뀌면 수출코드를 다 바꿔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3000억원에 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미시로 결정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을 뜯어고쳐야 할 곳이 많아요. 경북 영양군과 청송군의 경우 인구가 2만, 3만명에 불과해요. 모두 합쳐 5만도 안되지요. 그런데 두 곳에 공무원 수가 600명이 넘어요. 이제 때가 왔습니다. 불교 용어 중에 ‘時節因緣(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때를 놓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뜻이죠. 정부는 행정개편의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고, 언론이 이 문제에 공감해서 국민들을 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정부는 자율통합을 권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될까요.
“道(도) 단위를 없애는 방법, 광역시군을 합쳐 70여 개 市(시)로 만드는 방법 등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지역간 합의가 중요한 만큼 자율통합이 맞다고 봐요. 강제로 시행하면 반드시 저항이 생겨요. 저는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개혁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보지 않아요. 지금대로 가면 임기 말에는 상당 부분이 통합될 것이라 확신해요.”
―이명박 정부의 개헌방향은 구체적으로 뭡니까.
“개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되, 정부가 주도하지 않겠다는 거죠. 개헌은 어차피 국민투표를 거쳐 결정되는 만큼 국민과 국회의 합의가 중요해요. 우리 헌정사를 보면 개헌할 때마다 정략적 필요에 의해 이뤄졌어요. 이명박 정부의 개헌은 다릅니다. 개헌 내용 못지않게 절차와 방식을 중시할 겁니다.”
“단임제 하되 대통령 임기 6년으로 늘리자”
―권력구조는 개헌의 核心(핵심)인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까.
“의원내각제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맞지 않아요. 체제 전환에 따른 비용도 엄청나고요. 4년 중임제도 개선 효과가 그리 많지 않아요. 2년이 지나면 再選(재선)운동에 들어가야 하고, 재선이 된다 해도 2년이 지나면 레임덕이 오게 마련이죠. 국가정책을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4년 중임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반대로 재선을 의식해 인기영합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많아요. 오히려 단임제가 표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대로 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 제도적 득실을 따져 보면 어느 게 득이 될지 학자마다 다 달라요.”
주호영 장관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개헌안과 다른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단임제를 하되 임기를 늘리자는 것이다.
“4년 중임제는 효율적이지 않다고 봐요. 차라리 임기를 늘리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임기를 6년 정도로 하자는 거죠.”
―지금의 정치풍토, 시스템, 구조를 고려할 때 현 정부에서 과연 개헌이 될까요.
“룰(규칙)을 만들면 돼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빵 하나를 갈라 먹으면서 서로 큰 것을 먹으려고 싸운다고 쳐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는 빵을 나누는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는 나눠진 빵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싸움은 없어져요. 개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대통령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한다고 하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지요.”
―현 정부가 개헌이나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면서 자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뜨거운 감자를 일부러 피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기회주의적이거나 비겁한 면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한 지역이 상처를 입으면 안된다는 고민을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되면 내 무덤을 밟아라”
―세종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특별한 복안은 없습니다. 다만 정부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겁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200명이면 200명, 500명이면 500명을 뽑아 그들에게 세종시에 대한 현황과 문제점, 새로운 대안에 대해 정보를 제공한 후 결정하라고 하면 사회적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적 갈등을 푸는 데 사회적 비용을 너무 많이 써요. 이번 기회에 갈등을 푸는 좋은 모델을 만들어 국민이 승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국가의 운명은 지도자의 결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의 필요성을 확신한다면 국민을 설득해서라도 추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과제지요.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한 것은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역사 앞에 자신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잘못되면 내 무덤을 밟아라’는 그런 뜻이지요. 지금의 정치인들에겐 그런 용기가 필요해요.
외국의 사례를 들어 봅시다. 캐나다와 호주는 세계시장에서 농업경쟁력이 높은데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이들 두 나라는 농가에 정부 보조금을 줘 오다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돈을 주지 않았어요. 그 여파로 당시 정권은 재집권하는 데 실패했어요. 그 후 보조금이 끊긴 농가는 살기 위해 새로운 농법과 품종을 개발했고 결국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해요.
4대강 살리기의 경우 적어도 강을 정비한다는 점에서도 필요해요. 운하는 대구에 입주해 있던 삼성·쌍용자동차가 물류 배송 차원에서 기획했었어요. 불행하게도 운하가 대선 공약이 되면서 상대 후보들이 무조건 반대하고 나섰지요. 합리적으로 찬반이 갈라져야 하는데 이명박 당시 후보가 이걸 내놓으니까 다들 안된다고 했던 겁니다.”
―청와대가 특임장관을 발표할 때 장관의 임무 중에는 남북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발표했습니다. 특임장관이 對北(대북)특사 역할도 하는 겁니까.
“남북관계의 공식채널로 통일부도 있고 적십자도 있어요. 특사라는 게 외부에 공개되어서는 안되는데, 이미 그런 말이 나온 이상 특사 역할을 하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주호영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이것이 특임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이기도 하다.
“갈등과 분열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어”
―장관 임명장을 받은 후 朴槿惠(박근혜) 전 대표에게 인사는 드렸습니까.
“찾아뵈었더니 ‘축하한다’고 하시더군요. 기회가 되면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어요.”
―친이·친박 화합 문제도 현안이 되겠군요.
“정당이란 게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단체이고, 정당 내에서도 리더가 되려는 경쟁이 있는 거니까 계파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죠. 작년 총선 때 공천과 관련해 후유증이 없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양측이 서로 노력해 앙금이 많이 풀렸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 없이는 이 정권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양측이 서로 협조하는 것 같지만 화학적인 융합은 안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위에서 보는 분들이 서로를 갈라 놓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언론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고….”
―미디어법이 통과될 당시 친박 측이 보여준 행보는 정권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박근혜 전 대표는 미디어법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법조인 출신들은 대개 보수성향이 강한데 주 장관은 어떻습니까.
“판사 시절 미국 로스쿨에 연수를 간 적이 있어요. 좋은 로스쿨은 법이 아닌 정책을 가르칩니다. 저는 단순히 법조문을 해석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 데 노력해 왔어요.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측면이 강하고요.”
―판사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얻은 경험이 행정부처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조인으로서 훈련을 받은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무공무원들이 금품을 수수할 경우 다른 공무원에 비해 10배 이상 무겁게 처벌하는 법안을 놓고 의견이 오갔는데, 저는 처벌이 과도해 違憲(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어요. 결국 처벌 수위를 낮추면서 다른 공무원에 비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만들었습니다. 법조인의 경우 정책 마인드가 다소 부족할 수 있는데 특임장관실은 정책 부서가 아니니까 별문제가 없겠죠.”
국책사업 공모제는 폐지돼야
―장관으로서 ‘이것만은 꼭 해 보고 싶다’는 게 있습니까.
“법에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으니 그대로 따라야죠. 역사에 기록될 사회적 현안이 얼마나 많습니까. 행정구역 개편도 그렇고, 사회 갈등도 그렇고….국익 차원에서 개별 정책에 대한 견해도 내놓을까 생각해요. 국책사업에 대한 공모 방식이 한 사례입니다. 국가사업을 공모로 결정하는 건 문제가 많다고 봐요. 지역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어요. 지난번에 발표된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경우 16개 市道(시도) 중 14개 시도가 서로 가져가겠다고 경쟁했어요. 선정되지 못한 12개 시도는 불공정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화장터나 방폐장 같은 것은 반대급부를 주는 조건으로 공모할 수 있겠죠. 국익이 걸려 있는 국책사업은 이 방식을 빨리 포기해야 해요.”
주호영 장관은 “우리 사회는 선진국에 비해 삶의 질이나 문제해결 방식이 많이 부족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사기사건 고소율이 일본의 150배입니다. 서로 불신하고 배려가 부족한 사회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세계 어느 나라든 대통령의 임무치고 국민통합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지요. 역사적으로 국민이 하나가 된 나라는 발전하고 성공했지만, 분열된 나라는 다 망했습니다. 갈등과 분열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호영 장관은 慈宇(자우)라는 법명을 갖고 있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건강도 108배를 통해 관리한다. 불교신자로서 불교계 인사와도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셈이다. 불교와의 인연은 어릴 때 시작됐다고 한다.
“어릴 적 집 근처에 동림사라는 절이 있었어요. 절 마당을 놀이터 삼아 매일 다녔습니다. 그곳에 정오 스님이 계셨는데 반야심경 한 구절을 외워 오면 과자를 주시곤 했어요. 자연스럽게 부처님 말씀과 친해졌지요. 고등학교도 조계종 종립 재단 학교인 대구 능인고를 나왔어요. 법조인이 된 후 불교신도를 대상으로 법률문제를 자문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스님들은 주로 해인사 승가대학과 불국사 승가대학을 졸업하는데, 도반(동기생)들은 4년간 공부하며 서로 끈끈한 인연을 맺지요. 스님 한 분을 만나면 동료 스님 모두를 알게 돼요. 그런 식으로 많은 스님과 연을 맺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와 한때 서먹했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진실이 알려진 후 많이 풀렸어요.”
―요즘 어떤 내용으로 기도합니까.
“108배를 하며 기도해요. 몸도 좋아집니다. 제발 싸우지 말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요.”⊙
사진 : 서경리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왜 특임장관직을 맡긴 것 같습니까.
“그 질문은 저에게 물어볼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양쪽의 입장을 듣는 판사 출신이라는 점을 대통령께서 좋게 보신 게 아닌가 해요.”
주호영 장관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온화한 성품을 가진,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 격돌 과정에서 그는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로서 야당 측과 협상하는 동안 그들로부터 ‘얘기가 통하는 인물’로 통했다.
‘소통과 화합’은 그의 정치철학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높게 사고 있는 듯하다. 2007년 대선 당시 親朴(친박) 쪽으로 기울어 있던 이명박 캠프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여러 인사가 三顧草廬(삼고초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신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측근 중 한 명이 됐다.
―업무 특성상 대통령과 자주 만나야겠군요.
“어제는 청와대에 세 번 들어갔어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뵈어야죠.”
―장관직을 수행하다 보면 지역구 관리가 어려울 텐데요.
“임명장을 받자마자 대구로 내려가 800여 분을 만나고 왔어요. ‘앞으로 자주 찾아뵙지 못할 테니 이해 좀 해 주십시오’ 하고 인사를 했지요.”
행정부처의 2중대장
―특임장관의 임무가 궁금합니다. 과거 정무장관과 어떻게 다릅니까.
“대통령직 인수위 때 ‘정무장관’에서 ‘특임장관’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법조문 규정은 과거와 똑같아요.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를 처리하고,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명하여 국무총리가 지정하는 사건을 처리한다’고 돼 있어요. 政務(정무) 외에 주요 국정과제나 사회적 갈등 현안 중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활동범위가 굉장히 넓겠군요.
“범위로 따지면 많이 넓어졌죠. 행정부처의 일을 넘나들 수도 있어요. 대통령께서 ‘다른 장관들을 많이 도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행정부처의 ‘2중대장’입니다.”
―장관은 자기 부처 업무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모든 중대사에 관여하는 국무위원이란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특임장관은 개별 부처의 이익을 대변할 게 없으니까 어찌 보면 가장 국무위원다운 국무위원입니다. 과거 정무장관을 하신 여러 선배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한두 개만 잘해도 성공’이라고 하시더군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군요.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항이 행정체제와 선거구제 개편, 개헌이니까 그런 일을 집중적으로 해야겠지요. 이런 일들은 국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국회와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孟亨奎(맹형규) 정무특보, 朴亨埈(박형준) 정무수석과 업무영역이 겹칠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데, 세 분 간의 업무 분장은 어떻게 됩니까.
“특별히 규정된 건 없고, 세 사람 모두 정부와 여당의 원활한 국정수행, 국회와의 소통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죠. 정기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나누기로 했어요. 크게 본다면 정무특보는 사회통합위원회를, 정무수석은 정무기획을, 특임장관은 정무실행을 책임지게 될 겁니다.”
―과거 정무장관은 정치 경험이 많은 多選(다선)의원이 주로 맡았는데 주 장관께서는 2선으로 정치경력이 짧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두렵기도 하고요. 그때와 지금의 정치 환경이 달라졌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진정성을 보인다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 정치에서는 다수결의 원칙 작동 안 해
―야당과의 소통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선배님들 말씀으로는 ‘정무장관은 야당 심부름하는 거다’라고 해요. 심부름꾼 역할을 제대로 할 생각입니다. 야당 분들 정기적으로 전화를 하거나 찾아뵐 예정입니다.”
―17대 국회 이후 여야 국회의원들이 인사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국회 선배들도 걱정이 많아요. 여야 의원들 간에 정치쟁점이 생기면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아요. 의원 개개인을 보면 良質(양질)인데 양 진영이 방향성을 가지고 만날 때는 사생결단식으로 전쟁을 벌여요. 각 당에서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물줄기를 돌리지 못해요. 민주당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한나라당이 야당이었을 때도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였어요.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원칙이 우리 정치에는 없어요. 당략만 있을 뿐이죠. 정치권은 서로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 정당의 발목잡기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이런 풍토를 고치지 않으면 정치혐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임장관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對野(대야)관계에 대해 특별히 지시한 사항이 있습니까.
“대통령께서 국회의원을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입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국회의 협조나 동의 없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정책을 집행하려면 법과 예산이 필요한데 국회가 반대하면 행정부는 일을 못해요. 대통령제는 국회·대통령 간 견제와 균형이 작동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국회의 도움이 필수예요. 이명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의 惡習(악습)을 싫어할 뿐 국회 자체를 경시하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속히 해결하라’고 지시한 건 없습니까.
“조만간 특별한 말씀이 계시겠지요.”
주호영 장관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용산 참사’를 들었다. 鄭雲燦(정운찬) 총리와 함께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슴 아픈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세력이 개입해 원만한 협상이 도출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용산사태 당시 공권력 행사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되죠. ‘백성 중에 한 사람도 억울하거나 마음 아픈 사람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게 통치자의 덕목인데, 사고에 대한 책임문제는 접어 두더라도 열 달이 지나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개헌 내용 못지않게 절차와 방식 중시할 것”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산 넘어 산입니다. 100년 넘게 지속된 행정체제인데 일순간에 해결이 되겠습니까. 1995년 도시와 농촌지역을 통합할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경북의 경우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쳐 포항시가 됐고, 구미시와 선산군이 합쳐 구미시가 됐어요. 구미와 선산은 통합시의 명칭을 놓고 ‘구미시’와 ‘선산시’로 갈라졌어요.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선산시’로 합의했지만, 이름을 바꿀 경우 행정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문제가 제기됐어요. 구미공단에 해외수출기업이 많은데 선산시로 이름이 바뀌면 수출코드를 다 바꿔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3000억원에 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미시로 결정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을 뜯어고쳐야 할 곳이 많아요. 경북 영양군과 청송군의 경우 인구가 2만, 3만명에 불과해요. 모두 합쳐 5만도 안되지요. 그런데 두 곳에 공무원 수가 600명이 넘어요. 이제 때가 왔습니다. 불교 용어 중에 ‘時節因緣(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때를 놓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뜻이죠. 정부는 행정개편의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고, 언론이 이 문제에 공감해서 국민들을 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정부는 자율통합을 권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될까요.
“道(도) 단위를 없애는 방법, 광역시군을 합쳐 70여 개 市(시)로 만드는 방법 등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지역간 합의가 중요한 만큼 자율통합이 맞다고 봐요. 강제로 시행하면 반드시 저항이 생겨요. 저는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개혁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보지 않아요. 지금대로 가면 임기 말에는 상당 부분이 통합될 것이라 확신해요.”
―이명박 정부의 개헌방향은 구체적으로 뭡니까.
“개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되, 정부가 주도하지 않겠다는 거죠. 개헌은 어차피 국민투표를 거쳐 결정되는 만큼 국민과 국회의 합의가 중요해요. 우리 헌정사를 보면 개헌할 때마다 정략적 필요에 의해 이뤄졌어요. 이명박 정부의 개헌은 다릅니다. 개헌 내용 못지않게 절차와 방식을 중시할 겁니다.”
“단임제 하되 대통령 임기 6년으로 늘리자”
―권력구조는 개헌의 核心(핵심)인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까.
“의원내각제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맞지 않아요. 체제 전환에 따른 비용도 엄청나고요. 4년 중임제도 개선 효과가 그리 많지 않아요. 2년이 지나면 再選(재선)운동에 들어가야 하고, 재선이 된다 해도 2년이 지나면 레임덕이 오게 마련이죠. 국가정책을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4년 중임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반대로 재선을 의식해 인기영합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많아요. 오히려 단임제가 표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대로 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 제도적 득실을 따져 보면 어느 게 득이 될지 학자마다 다 달라요.”
주호영 장관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개헌안과 다른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단임제를 하되 임기를 늘리자는 것이다.
“4년 중임제는 효율적이지 않다고 봐요. 차라리 임기를 늘리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임기를 6년 정도로 하자는 거죠.”
―지금의 정치풍토, 시스템, 구조를 고려할 때 현 정부에서 과연 개헌이 될까요.
“룰(규칙)을 만들면 돼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빵 하나를 갈라 먹으면서 서로 큰 것을 먹으려고 싸운다고 쳐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는 빵을 나누는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는 나눠진 빵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싸움은 없어져요. 개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대통령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한다고 하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지요.”
―현 정부가 개헌이나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면서 자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뜨거운 감자를 일부러 피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기회주의적이거나 비겁한 면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한 지역이 상처를 입으면 안된다는 고민을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되면 내 무덤을 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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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9일 경기도 수원 봉녕사에서 열린 ‘2009 사찰음식 대향연’에 참석한 김윤옥 여사와 주호영 특임장관(김 여사 왼쪽). |
“특별한 복안은 없습니다. 다만 정부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겁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200명이면 200명, 500명이면 500명을 뽑아 그들에게 세종시에 대한 현황과 문제점, 새로운 대안에 대해 정보를 제공한 후 결정하라고 하면 사회적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적 갈등을 푸는 데 사회적 비용을 너무 많이 써요. 이번 기회에 갈등을 푸는 좋은 모델을 만들어 국민이 승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국가의 운명은 지도자의 결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의 필요성을 확신한다면 국민을 설득해서라도 추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과제지요.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한 것은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역사 앞에 자신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잘못되면 내 무덤을 밟아라’는 그런 뜻이지요. 지금의 정치인들에겐 그런 용기가 필요해요.
외국의 사례를 들어 봅시다. 캐나다와 호주는 세계시장에서 농업경쟁력이 높은데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이들 두 나라는 농가에 정부 보조금을 줘 오다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돈을 주지 않았어요. 그 여파로 당시 정권은 재집권하는 데 실패했어요. 그 후 보조금이 끊긴 농가는 살기 위해 새로운 농법과 품종을 개발했고 결국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해요.
4대강 살리기의 경우 적어도 강을 정비한다는 점에서도 필요해요. 운하는 대구에 입주해 있던 삼성·쌍용자동차가 물류 배송 차원에서 기획했었어요. 불행하게도 운하가 대선 공약이 되면서 상대 후보들이 무조건 반대하고 나섰지요. 합리적으로 찬반이 갈라져야 하는데 이명박 당시 후보가 이걸 내놓으니까 다들 안된다고 했던 겁니다.”
―청와대가 특임장관을 발표할 때 장관의 임무 중에는 남북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발표했습니다. 특임장관이 對北(대북)특사 역할도 하는 겁니까.
“남북관계의 공식채널로 통일부도 있고 적십자도 있어요. 특사라는 게 외부에 공개되어서는 안되는데, 이미 그런 말이 나온 이상 특사 역할을 하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주호영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이것이 특임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이기도 하다.
“갈등과 분열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어”
―장관 임명장을 받은 후 朴槿惠(박근혜) 전 대표에게 인사는 드렸습니까.
“찾아뵈었더니 ‘축하한다’고 하시더군요. 기회가 되면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어요.”
―친이·친박 화합 문제도 현안이 되겠군요.
“정당이란 게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단체이고, 정당 내에서도 리더가 되려는 경쟁이 있는 거니까 계파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죠. 작년 총선 때 공천과 관련해 후유증이 없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양측이 서로 노력해 앙금이 많이 풀렸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 없이는 이 정권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양측이 서로 협조하는 것 같지만 화학적인 융합은 안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위에서 보는 분들이 서로를 갈라 놓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언론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고….”
―미디어법이 통과될 당시 친박 측이 보여준 행보는 정권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박근혜 전 대표는 미디어법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법조인 출신들은 대개 보수성향이 강한데 주 장관은 어떻습니까.
“판사 시절 미국 로스쿨에 연수를 간 적이 있어요. 좋은 로스쿨은 법이 아닌 정책을 가르칩니다. 저는 단순히 법조문을 해석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 데 노력해 왔어요.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측면이 강하고요.”
―판사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얻은 경험이 행정부처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조인으로서 훈련을 받은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무공무원들이 금품을 수수할 경우 다른 공무원에 비해 10배 이상 무겁게 처벌하는 법안을 놓고 의견이 오갔는데, 저는 처벌이 과도해 違憲(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어요. 결국 처벌 수위를 낮추면서 다른 공무원에 비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만들었습니다. 법조인의 경우 정책 마인드가 다소 부족할 수 있는데 특임장관실은 정책 부서가 아니니까 별문제가 없겠죠.”
국책사업 공모제는 폐지돼야
―장관으로서 ‘이것만은 꼭 해 보고 싶다’는 게 있습니까.
“법에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으니 그대로 따라야죠. 역사에 기록될 사회적 현안이 얼마나 많습니까. 행정구역 개편도 그렇고, 사회 갈등도 그렇고….국익 차원에서 개별 정책에 대한 견해도 내놓을까 생각해요. 국책사업에 대한 공모 방식이 한 사례입니다. 국가사업을 공모로 결정하는 건 문제가 많다고 봐요. 지역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어요. 지난번에 발표된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경우 16개 市道(시도) 중 14개 시도가 서로 가져가겠다고 경쟁했어요. 선정되지 못한 12개 시도는 불공정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화장터나 방폐장 같은 것은 반대급부를 주는 조건으로 공모할 수 있겠죠. 국익이 걸려 있는 국책사업은 이 방식을 빨리 포기해야 해요.”
주호영 장관은 “우리 사회는 선진국에 비해 삶의 질이나 문제해결 방식이 많이 부족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사기사건 고소율이 일본의 150배입니다. 서로 불신하고 배려가 부족한 사회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세계 어느 나라든 대통령의 임무치고 국민통합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지요. 역사적으로 국민이 하나가 된 나라는 발전하고 성공했지만, 분열된 나라는 다 망했습니다. 갈등과 분열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호영 장관은 慈宇(자우)라는 법명을 갖고 있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건강도 108배를 통해 관리한다. 불교신자로서 불교계 인사와도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셈이다. 불교와의 인연은 어릴 때 시작됐다고 한다.
“어릴 적 집 근처에 동림사라는 절이 있었어요. 절 마당을 놀이터 삼아 매일 다녔습니다. 그곳에 정오 스님이 계셨는데 반야심경 한 구절을 외워 오면 과자를 주시곤 했어요. 자연스럽게 부처님 말씀과 친해졌지요. 고등학교도 조계종 종립 재단 학교인 대구 능인고를 나왔어요. 법조인이 된 후 불교신도를 대상으로 법률문제를 자문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스님들은 주로 해인사 승가대학과 불국사 승가대학을 졸업하는데, 도반(동기생)들은 4년간 공부하며 서로 끈끈한 인연을 맺지요. 스님 한 분을 만나면 동료 스님 모두를 알게 돼요. 그런 식으로 많은 스님과 연을 맺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와 한때 서먹했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진실이 알려진 후 많이 풀렸어요.”
―요즘 어떤 내용으로 기도합니까.
“108배를 하며 기도해요. 몸도 좋아집니다. 제발 싸우지 말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요.”⊙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