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논의를 끝내려면 하루빨리 국회 개헌특위 가동시켜야”
“영토조항에 시비를 걸거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주의라는 대한민국 헌법 골격을 흔들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자는 게 아니라 국가 정체성 자체를 뒤엎겠다는 뜻”
金炯旿
⊙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대학원(정치학 석사), 경남대 대학원(박사) 졸업.
공주대 명예교육학 박사.
⊙ 동아일보 기자,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
14·15·16·17·18대 국회의원,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현 국회의장.
⊙ 저서 <4·19 세대의 현주소> <해외 한국학자들의 현주소>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등 다수.
“영토조항에 시비를 걸거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주의라는 대한민국 헌법 골격을 흔들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자는 게 아니라 국가 정체성 자체를 뒤엎겠다는 뜻”
金炯旿
⊙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대학원(정치학 석사), 경남대 대학원(박사) 졸업.
공주대 명예교육학 박사.
⊙ 동아일보 기자,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
14·15·16·17·18대 국회의원,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현 국회의장.
⊙ 저서 <4·19 세대의 현주소> <해외 한국학자들의 현주소>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등 다수.
金炯旿(김형오) 국회의장은 모든 개헌논의의 진원지다. 지난 7월 17일 제헌절 기념사에서 개헌을 공식 제안했고, 가는 곳마다 개헌 얘기를 話頭(화두)로 꺼내고 있다. 1년 전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를 발족시켜 ‘4년 중임 정·부통령제’와 ‘이원정부제’라는 두 개의 권력구조안도 내놓았다.
김 의장은 “민주화 욕구가 분출되던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이제 수명이 다 됐다”며 “정치적 격동기에 충분한 연구없이 만들어진 헌법을 고치는 일은 18대 국회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7년에 만든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단임제로 장기집권을 없애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의 시대적 흐름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야, 국민 모두가 개헌에 공감하고 있잖아요. 다만 추진 방법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모두 지엽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논의를 끝내려면 하루빨리 국회 개헌특위를 가동시켜야 해요.”
―헌법연구자문위가 ‘4년 중임 정·부통령제’와 ‘이원정부제’라는 복수안을 내놓았는데 개헌 논의 틀이 한정되는 건가요?
“그분들이 내놓은 개헌안을 꼭 그대로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결국엔 국회와 국민들이 그 안을 두고 선택을 하시겠지요. 참고자료지 결정적 자료는 아닙니다.”
―현행 헌법상의 대통령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내각제 요소가 많이 가미돼 순수한 의미의 대통령제가 변색됐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선진국 중에서 대통령제를 택하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어요. 많은 국가가 이원정부제를 채택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미국식 대통령제를 택했다고 봐요.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대로 된 대통령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다 의원내각제의 껍데기만 집어넣은 거예요. 견제장치가 모호하고 대통령에 대한 책임한계선도 모호합니다. 그뿐입니까? 국회가 행정부·대통령에 대한 견제권한 역시 모호합니다. 그렇다 보니 태생적 한계 때문에 국회가 5년 내내 대선 전초전이 돼 버렸지요.”
“대통령제든 뭐든 제대로 해 보자”
―헌법연구자문위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4년 중임이라는 시간적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제든 뭐든 제대로 해 보자는 데 의미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행정부 스스로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거든요.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어요. 한 해 나라살림 예산을 정부가 만들어 국회에 내놓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심지어 공무원 단속 권한을 정부 밑에다 둔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감사원과 예산·입법을 국회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권력구조를 의회 중심으로 고치자는 얘깁니다.”
―‘이원정부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권력구조 방식 아닙니까.
“국민들이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으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가정하에서 내각제 요소가 강한 권력안이 이원정부제입니다. 이원정부제의 경우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만 상징성만 갖고 모든 전권은 총리에게 다 줍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국민적 요구와 권력의 집중을 막는 내각제적 요소가 충돌하지 않고 입법부 행정부 간 유기적 통합 속에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한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공교롭게도 두 가지 안 모두 兩院制(양원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더군요. 꼭 양원제가 필요하나요?
“미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국회에서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가 없어요. 외국에서 잘하는 제도를 우리가 등한시할 필요가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왜 단원제 국회를 택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建國(건국) 과정에서 법률을 빨리 만들어야 했기에 양원제를 택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우려가 컸지요. 또 갑자기 나라가 건국이 되다 보니 인재도 없었고요. 국민 대표를 상·하원에 둘만큼 여유가 없었던 거죠. 제2공화국 당시 경험이 없고 학습조차 안된 민주당 정권이 양원제를 하다 보니 제대로 흉내도 못 냈어요. 아프리카 후진국도 다 양원제를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양원제로 가는 것은 필연”
―양원제를 하면 상·하원으로 의회가 나눠져 의원 수가 더 늘어나게 될 텐데요.
“지금 국민정서로 볼 때 의원 수를 갑자기 늘릴 수도 없어요. 지금도 많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300명 이내에서 상·하원을 구성하면 됩니다. 제가 양원제로 가야 한다고 확신이 든 것은 지난번 미디어법을 처리하면서부터입니다. 미디어법을 하원에서도 다루지만 상원에서도 다룬다면, 국회의장을 납치하러 체포조가 만들어지고 국회 중앙홀을 점거하는 원시적인 사태는 없었을 겁니다. 상·하원이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는 절차와 제도가 보장돼야 해요.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가 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느냐, 회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겁니다. 양원제를 갖춘 선진국에서 국회의원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양원제를 하면 현행 선거구제도 손질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원은 소선거구제로, 상원은 대선거구제로 가자는 게 기본 골격입니다. 소선거구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고 석패율까지 거론되지만 근본적인 지역구도를 해결할 방법은 못 된다고 봐요. 그저 전라도 땅에 한나라당 의석이 한두 명 더 들어가고, 경상도 땅에 민주당 한두 명이 더 들어가는 게 고작입니다. 지금 비례대표제 역시 각 당이 여성의원을 앞자리에 배치하지만 그렇게 뽑은 여성의원조차 정당의 명령을 받고 여성의원끼리 서로 다투잖아요. 그러나 대선거구제로 상원의원을 뽑으면 정당 명령에 맹종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또 상원제는 지역보다는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큰 인물이 정계에 들어올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사실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당처럼 막강한 정당은 공산주의 나라 빼고는 없어요. 정당제가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정당의 지시에 ‘열중쉬어’, ‘차렷’ 하는 나라는 없어요. 미디어법 처리를 지켜보면 답이 나와요. 개인의 소신은 사라지고 정당 대 정당끼리 싸워요. 이게 말이 됩니까. 국회의원 한 사람이 헌법기관입니다. 헌법기관이라는 양심에 따라야지 정당의 노예가 아니잖아요. 물론 정당의 존재도 필요하지만 모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면 국민의 제대로 된 선택, 주권행사가 변질될 수밖에 없어요.”
―정·부통령제를 하면 부통령이 대통령 임기와 4년간 같이 갑니다. 역대 정권에서 총리를 교체하며 내각을 쇄신하는 카드를 많이 써 왔잖아요. 총리냐, 부통령이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 같아요.
“미국이 200년 이상 정·부통령제를 유지해도 ‘강력한 대통령제’라기보다 의회주의 국가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그 제도의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전부 불행한 대통령이 됐어요. 총리는 대통령의 실정에 책임지는 속죄양이나 방패막이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국민을 위한 정치 실현해야
―권력구조 외에 개헌이 다뤄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영토조항이나 통일, 경제문제 등 뜨거운 현안이 많아요.
“영토조항에 시비를 걸거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주의라는 대한민국 헌법 골격을 흔들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자는 게 아니라 국가 정체성 자체를 뒤엎겠다는 뜻입니다. 판을 흔들어 놓으려는 사이비 인권 학자나 사이비 민족주의자, 사상이 불그스름하다든지, 그런 가면 쓴 행위에 순진한 사람이 현혹되면 안되지요.
아무래도 개헌논의는 권력구조에 집중되겠지만 국가가 나아갈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특정사안만 논의할 순 없습니다. 서로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안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권력구조가 개헌논의의 중심이 되겠지만, 의외로 논란 없이 의견이 모일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 개헌논의는 많았지만 진전이 못 된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개헌을 제기하는 쪽에서 다분히 주관적이고 정략적인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혹은 개헌을 제기할 타이밍이 아닌데 제기했거나, 자신이 개헌의 우선순위를 미리 정하고 ‘이것만 하자’고 하니까 공감대가 형성 안된 것입니다.”
김 의장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정치’, ‘국민에 의한 정치’는 이뤄냈지만, 정작 필요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고 말했다.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개헌을 하자면서 조건을 붙이거나 흥정을 하려 해선 곤란해요. 국회는 대화하고 토론하는 회의체입니다. 타협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찾는 ‘민의의 전당’이 국회입니다. 국민들은 국회에서 미래의 비전을 담은 개헌안을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 의장은 “민주화 욕구가 분출되던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이제 수명이 다 됐다”며 “정치적 격동기에 충분한 연구없이 만들어진 헌법을 고치는 일은 18대 국회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7년에 만든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단임제로 장기집권을 없애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의 시대적 흐름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야, 국민 모두가 개헌에 공감하고 있잖아요. 다만 추진 방법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모두 지엽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논의를 끝내려면 하루빨리 국회 개헌특위를 가동시켜야 해요.”
―헌법연구자문위가 ‘4년 중임 정·부통령제’와 ‘이원정부제’라는 복수안을 내놓았는데 개헌 논의 틀이 한정되는 건가요?
“그분들이 내놓은 개헌안을 꼭 그대로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결국엔 국회와 국민들이 그 안을 두고 선택을 하시겠지요. 참고자료지 결정적 자료는 아닙니다.”
―현행 헌법상의 대통령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내각제 요소가 많이 가미돼 순수한 의미의 대통령제가 변색됐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선진국 중에서 대통령제를 택하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어요. 많은 국가가 이원정부제를 채택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미국식 대통령제를 택했다고 봐요.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대로 된 대통령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다 의원내각제의 껍데기만 집어넣은 거예요. 견제장치가 모호하고 대통령에 대한 책임한계선도 모호합니다. 그뿐입니까? 국회가 행정부·대통령에 대한 견제권한 역시 모호합니다. 그렇다 보니 태생적 한계 때문에 국회가 5년 내내 대선 전초전이 돼 버렸지요.”
“대통령제든 뭐든 제대로 해 보자”
―헌법연구자문위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4년 중임이라는 시간적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제든 뭐든 제대로 해 보자는 데 의미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행정부 스스로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거든요.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어요. 한 해 나라살림 예산을 정부가 만들어 국회에 내놓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심지어 공무원 단속 권한을 정부 밑에다 둔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감사원과 예산·입법을 국회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권력구조를 의회 중심으로 고치자는 얘깁니다.”
―‘이원정부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권력구조 방식 아닙니까.
“국민들이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으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가정하에서 내각제 요소가 강한 권력안이 이원정부제입니다. 이원정부제의 경우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만 상징성만 갖고 모든 전권은 총리에게 다 줍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국민적 요구와 권력의 집중을 막는 내각제적 요소가 충돌하지 않고 입법부 행정부 간 유기적 통합 속에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한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공교롭게도 두 가지 안 모두 兩院制(양원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더군요. 꼭 양원제가 필요하나요?
“미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국회에서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가 없어요. 외국에서 잘하는 제도를 우리가 등한시할 필요가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왜 단원제 국회를 택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建國(건국) 과정에서 법률을 빨리 만들어야 했기에 양원제를 택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우려가 컸지요. 또 갑자기 나라가 건국이 되다 보니 인재도 없었고요. 국민 대표를 상·하원에 둘만큼 여유가 없었던 거죠. 제2공화국 당시 경험이 없고 학습조차 안된 민주당 정권이 양원제를 하다 보니 제대로 흉내도 못 냈어요. 아프리카 후진국도 다 양원제를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양원제로 가는 것은 필연”
―양원제를 하면 상·하원으로 의회가 나눠져 의원 수가 더 늘어나게 될 텐데요.
“지금 국민정서로 볼 때 의원 수를 갑자기 늘릴 수도 없어요. 지금도 많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300명 이내에서 상·하원을 구성하면 됩니다. 제가 양원제로 가야 한다고 확신이 든 것은 지난번 미디어법을 처리하면서부터입니다. 미디어법을 하원에서도 다루지만 상원에서도 다룬다면, 국회의장을 납치하러 체포조가 만들어지고 국회 중앙홀을 점거하는 원시적인 사태는 없었을 겁니다. 상·하원이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는 절차와 제도가 보장돼야 해요.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가 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느냐, 회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겁니다. 양원제를 갖춘 선진국에서 국회의원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양원제를 하면 현행 선거구제도 손질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원은 소선거구제로, 상원은 대선거구제로 가자는 게 기본 골격입니다. 소선거구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고 석패율까지 거론되지만 근본적인 지역구도를 해결할 방법은 못 된다고 봐요. 그저 전라도 땅에 한나라당 의석이 한두 명 더 들어가고, 경상도 땅에 민주당 한두 명이 더 들어가는 게 고작입니다. 지금 비례대표제 역시 각 당이 여성의원을 앞자리에 배치하지만 그렇게 뽑은 여성의원조차 정당의 명령을 받고 여성의원끼리 서로 다투잖아요. 그러나 대선거구제로 상원의원을 뽑으면 정당 명령에 맹종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또 상원제는 지역보다는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큰 인물이 정계에 들어올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사실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당처럼 막강한 정당은 공산주의 나라 빼고는 없어요. 정당제가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정당의 지시에 ‘열중쉬어’, ‘차렷’ 하는 나라는 없어요. 미디어법 처리를 지켜보면 답이 나와요. 개인의 소신은 사라지고 정당 대 정당끼리 싸워요. 이게 말이 됩니까. 국회의원 한 사람이 헌법기관입니다. 헌법기관이라는 양심에 따라야지 정당의 노예가 아니잖아요. 물론 정당의 존재도 필요하지만 모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면 국민의 제대로 된 선택, 주권행사가 변질될 수밖에 없어요.”
―정·부통령제를 하면 부통령이 대통령 임기와 4년간 같이 갑니다. 역대 정권에서 총리를 교체하며 내각을 쇄신하는 카드를 많이 써 왔잖아요. 총리냐, 부통령이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 같아요.
“미국이 200년 이상 정·부통령제를 유지해도 ‘강력한 대통령제’라기보다 의회주의 국가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그 제도의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전부 불행한 대통령이 됐어요. 총리는 대통령의 실정에 책임지는 속죄양이나 방패막이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국민을 위한 정치 실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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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1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흑룡부대를 위문 한 김형오 국회의장. 그는 틈날 때마다 개헌론을 주장한다. |
“영토조항에 시비를 걸거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주의라는 대한민국 헌법 골격을 흔들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자는 게 아니라 국가 정체성 자체를 뒤엎겠다는 뜻입니다. 판을 흔들어 놓으려는 사이비 인권 학자나 사이비 민족주의자, 사상이 불그스름하다든지, 그런 가면 쓴 행위에 순진한 사람이 현혹되면 안되지요.
아무래도 개헌논의는 권력구조에 집중되겠지만 국가가 나아갈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특정사안만 논의할 순 없습니다. 서로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안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권력구조가 개헌논의의 중심이 되겠지만, 의외로 논란 없이 의견이 모일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 개헌논의는 많았지만 진전이 못 된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개헌을 제기하는 쪽에서 다분히 주관적이고 정략적인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혹은 개헌을 제기할 타이밍이 아닌데 제기했거나, 자신이 개헌의 우선순위를 미리 정하고 ‘이것만 하자’고 하니까 공감대가 형성 안된 것입니다.”
김 의장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정치’, ‘국민에 의한 정치’는 이뤄냈지만, 정작 필요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고 말했다.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개헌을 하자면서 조건을 붙이거나 흥정을 하려 해선 곤란해요. 국회는 대화하고 토론하는 회의체입니다. 타협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찾는 ‘민의의 전당’이 국회입니다. 국민들은 국회에서 미래의 비전을 담은 개헌안을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