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개혁의 사령탑 연쇄 인터뷰] 金寓龍 방문진 이사장 : 월간조선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金寓龍(김우룡) 신임 이사장이 1985년 MBC를 떠난 이래 24년 만에 다시 MBC로 돌아왔다. 그는 MBC에서 TV 프로듀서를 거쳐 사업부장, 편성기획부장, 심의위원, 제작위원 등을 역임했고, 이후 방문진 이사, MBC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MBC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친정인 MBC의 방만한 경영과 편파·왜곡 보도에 대해 누구보다 신랄한 비판을 해왔다. 때문에 제8기 방문진 이사회를 ‘李明博(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을 위한 점령군’이라고 규정한 야당 등 일각에서는 김 이사장을 ‘점령군 首長(수장)’이라고 비난했다.

김 이사장은 취임한 지 한 달여 동안 민주당 의원들과 MBC 노조의 항의성 방문을 받는 등 MBC 개혁을 위한 험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 걸린 대형 평면 TV에서는 MBC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TV 소리만 들리지 않게 줄여놓고, 끄지 않았다. 인터뷰 중에도 간혹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한동안 보지 않던 MBC 뉴스를 열심히 보고 있다”며 “MBC 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어떻게 순차적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갈지 고민이 많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총체적 부실기업

―MBC 경영진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셨는데 총평을 하신다면.

“MBC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긴 시간 누적된 것입니다. 흔히 MBC를 두고 ‘주인 없는 회사’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인 없는 회사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입니다. 그러나 관리·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또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죠. 공적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의 대주주 역할을 하면서 운영은 100% 광고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체성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MBC가 때로 국민의 외면을 받은 일도 있고, 상당히 정체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업무보고 직후에 ‘총체적 부실기업’이라고 평가하셨는데요.

“MBC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상당히 추락했습니다. 또 차장급 간부가 전체 인력 중 72%에 이릅니다. 방송계의 평균에 비해서는 매출 대비 인건비 수준이 매우 높은 점이 경영상의 문제가 될 수 있죠. 또 노사협약이 방송 발전에 장애가 되는 측면이 있어요. 특히 MBC가 향후 50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미래 비전이 마련돼 있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MBC가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은 뭔가요.

“방송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신뢰도입니다. 신뢰도 추락이 MBC로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신뢰도 회복을 위한 대책이 있습니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가 신뢰 회복의 생명입니다. 방송뿐 아니라 언론의 생명은 공신력을 높이는 것이고, 공신력을 높이는 길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에서 비롯됩니다.”

―MBC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경우 미디어법 관련 보도 등에서 지나치게 自社(자사)의 입장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방송사도 경우에 따라 주의·주장을 내세울 수 있겠죠. 그러나 MBC가 국민의 외면을 받았던 것은 (권력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사실은 外風(외풍)에 흔들렸기 때문인 측면이 있습니다. 미디어법의 경우 법 통과로 인해 광고로 운영되는 방송사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디어법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사실을 왜곡해서, 또는 선동적인 보도를 한다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겠죠. MBC가 미디어법 반대 연속 시리즈 보도물을 냈다든가,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미국 ‘유튜브’에 올려 세계 각국에 전파한 일 등은 온당하지 못했습니다.”

미디어법 시행에 따른 여론 독과점은 과장 보도

―MBC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사들은 미디어법 시행으로 ‘여론의 독과점이 우려되고, 방송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MBC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야말로 여론을 독과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상파 방송사의 독과점 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은 케이블을 통해서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TV의 전파가 똑같이 안방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브랜드 가치라든가, 선호도, 채널 배치에 따라 차이는 있겠죠. 폭발적인 채널 증가의 시대에 MBC처럼 TV 채널 하나로 대응하는 데는 이미 한계가 드러났어요. 때문에 이 문제가 앞으로 MBC가 헤쳐나가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MBC의 입지는 매우 좁습니다. 정말 위기죠. 걱정하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MBC의 미디어법 관련 보도가 과장 보도라는 점을 시인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방송 나온다, 재벌 방송 나온다, 李明博(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음모다’라며 미디어법 반대 캠페인을 벌이지만, 사실보다는 허구가 많은 정치적 캠페인입니다. 그건 웬만한 識者(식자)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올 하반기에 종합편성채널 2개, 보도채널 1개를 허가한다고 해서 조·중·동에다 방송을 하나씩 주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죠. 다른 좋은 컨소시엄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고, 많은 사람이 정치 캠페인을 벌여왔는데 정말 현실화된다면 상당한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미디어법은 신문과 대기업의 경영 참여를 2012년까지 금지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9월 1일 방문진을 찾아 “현 경영진을 해임하지 말라”며 “공영방송의 독립성·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방문진을 ‘점령군’에 비유하기도 했다.

방송의 독립성 주장하며 外壓 행사하는 민주당

―민주당 의원들의 방문을 정치적 外壓(외압)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방송은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갖고 운영하고, 국민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방송인이 자의로 편성·제작해서는 안됩니다. 자율성을 보장하되 각계 여론과 바람을 수용해서 편성·제작해야죠. 야당 의원 몇 분이 방문진을 찾아와서 의견을 개진한 것은 나쁘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방송은 정치적으로 독립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방송의 경영이나 인사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자칫하면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죠.”

―지난 좌파 정권 10년간 권력과 방송이 유착관계를 맺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민주당이 그동안 자신들 편을 들었던 MBC를 잃을까 조바심을 낸다는 지적인데요.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신문과 방송의 편을 가르고,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정책을 내놓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정치적 利害得失(이해득실)이 현재의 야당이나 시민단체, 일부 MBC 내부와도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정부의 ‘응원단’이나 ‘찬양대’가 되는 방송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낍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나 문제점은 당연히 비판할 겁니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이사진을 ‘점령군’에 비유하며, 이사진 구성을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보고도 ‘점령군 首長(수장)’이라고 비판한 것을 알지만 웃어넘겨야죠. 난 지난 10년간 잘못된 언론정책이나 정부의 언론 관련법 등을 비판해 왔습니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학자도 경영진이나 노조, 정부의 편에 서지 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본분입니다. 외부에선 ‘점령군’이다, ‘뉴라이트 계열이 장악했다’는 등의 비판이 있지만, MBC를 개선해서 좋은 방송을 만들려는 열정을 가진 이사진으로 구성됐다고 자부합니다.”

공정성 회복

지난 7월에 서울 여의도 MBC에서 MBC노조가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 직권상정에 반대하는 제3차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공정성을 누차 강조했다.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립되는 시각을 다 보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손을 보여줄 땐 손등과 손바닥을 다 보여줘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보여주면서 ‘손’이라고 한다면 둘 다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죠. 앞뒤를 다 보여줘야 진실입니다. 공정성은 결국 기자의 양심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끊임없는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노력과 훈련을 받음으로써 실현될 수 있어요. 대립되는 시각과 양면의 모습을 균형 있게 보여주려고 노력할 때 공정성이 살아납니다. 공정성은 기자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지만 자로 재듯이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는 겁니다.”

―자율에 맡긴다는 뜻입니까.

“자율에 맡기되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MBC 의 ‘광우병 보도’나 <100분 토론>의 ‘시청자 의견 조작’, 〈뉴스데스크〉의 왜곡·편파보도 등 MBC가 이제까지 보여준 행태를 보면 공정성을 자율에만 맡길 수 있을까요.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적절한 인사조치를 한다든가 관련 제도를 개선할 수 있겠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엄격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그 결과를 발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MBC 의 ‘광우병 보도’ 재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잖습니까.

“방문진에서 경영진에 계속 요구할 겁니다. 구성원 일부가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프로그램의 가치를 법원에다 맡기느냐’고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공정성 여부를 법원에 맡길 수는 없잖아요.”

―嚴基永(엄기영) 사장 등 현 경영진의 거취는 어떻게 됩니까.

“엄 사장이 MBC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노조의 인사권 개입을 규정하고 있는 단체협약을 개정하고, 공정방송을 위해 공정성위원회 설치와 심의제도 강화 등을 약속했습니다. 엄 사장의 개혁 의지가 강한 만큼 실행 여부를 지켜봐야죠. 11월까지 이사회 지적 사항을 수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가시적 성과가 없으면 재신임을 물을 수밖에 없겠죠.”

―엄 사장이 개혁을 약속했지만,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 않습니까. MBC는 ‘勞營(노영)방송’이란 비판을 듣고 있는데요.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데 노조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엔 노조의 역할이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인사나 편성·제작에 관여하는 체제는 개선돼야 합니다. 경영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1700명 정규직원, 19개 지방 계열사, 8개 자회사가 TV 채널 하나만 바라보고 있으면 이 회사는 희망이 없습니다. 새로운 미래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런 때 노사가 세 겨루기를 한다면 어떻게 도약할 수 있겠습니까. 새로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노사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노사관계를 수립하는 데 쌍방이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 유통 전문회사로의 전환이 살 길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MBC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뭡니까.

“우리나라의 광고시장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대략 7조원 정도인데 신문, 방송, 케이블, 온라인 등이 나눠 먹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KBS가 광고를 축소하고, 수신료 현실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파이가 조금 커질 가능성은 있지만 방송시장은 매우 어렵습니다. 더구나 MBC는 SBS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경영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왔습니다.”

김 이사장은 “MBC는 그동안 신산업 진출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MBC만큼 브랜드 가치가 높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송사는 국내에 없습니다. 그런데 MBC는 지금까지 TV 채널 하나에 매달렸을 뿐 파생상품을 개발하지 못했어요. 미국의 경우 전국적 TV 네트워크와 영상, 영화산업,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관련 산업의 확대를 위해 노력한 데 비해 MBC는 복합기업의 기능이 거의 없었습니다.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2년 후면 MBC는 창립 50주년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방송사는 편성 전문회사로 바뀌어야 합니다. 콘텐츠를 확보해서 방송을 내보내고, 국제적으로 유통하는 콘텐츠 유통 전문회사로 바뀌어야 해요.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새로운 신산업을 창출해야 합니다. 신산업은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종이산업이 될 수도 있죠. TV, 라디오 하나 갖고 버티던 시대는 이미 지났어요. MBC는 이미 준비가 늦었습니다. 이제 구조조정과 규모의 경영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