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美의회 ‘일본 위안부 결의안’ 주도한 마이클 혼다 美 하원의원 : 월간조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일본계 3세라는 점에서, 母國(모국)의 치부를 까발리는 용기가 놀라웠다. 굳이 건드려 덕 볼 일 없는 역사의 상처를 헤집고 나선 이유는 뭘까.

마이클 마코토 마이크 혼다(Michael Makoto Mike Honda) 美(미) 하원의원. 그는 지난 2007년 7월 미 하원을 통과한 ‘일본 종군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한 인물이다. 1941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69세.

누릴 것 다 누렸으니 누워 효자손을 붙잡고 뒤척일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이 老(노) 정객은, 1997년 당시 윌리엄 리핀스키 하원의원이 처음 발의한 뒤 레인 에반스 前(전) 하원의원(민주당)에게 넘겨 모두 7차례 발의하다 좌절된 ‘뜨거운 감자’를 단숨에 삼켜 버렸다.

필자는 인터뷰가 예정된 장소로 향하며 다소 들떠 있었다. 이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를 업어 드리고 싶었다. 혼다 의원은 강원대가 수여하는 교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來韓(내한)했다.

사실 그의 웃음소리가 궁금했다. 아니 그보다 민족이라 부르는, 물보다 진한 ‘피의 이데올로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무척 궁금했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다.

그는 일본인이 아닌 완전한 미국인이다. 민족이니 피를 봉건적 산물로 규정하고 부인하는, 무척 세련된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혐오한다. 그는 일본말을 한마디도 못한다 등등….

이런 가설이 떠오른 것은 일본인의 ‘집단성향’ 탓이다.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 집단적인 사회, 그리고 계급적 전통이 강해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일본, 일본인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혼다 의원은 절대 일본인이 ‘아니어야’, 일본과 거리가 멀어야 했다.

일본보다 한국을 더 많이 찾아

처음 본 혼다 의원은 어림잡아 120㎏이 넘어 보였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나 진지하게 얘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욱신욱신 몸살이 나도 아픈 표정 안 지을 것 같은 얼굴, 뭔지 모를 엄청나고 거대한 실체와 겨루는 ‘싸움꾼’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한국에 몇 번째 왔나요.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은 뭔가요.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그를 수행하던 보좌관을 쳐다보며 自問(자문)하듯 말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올 때마다 한국의 성장이 놀라워요. 입국하던 공항도 김포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바뀌었으니 더욱 그래요. 처음엔 (한국을 몰라) 긴장도 했는데 이젠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 접하던 삼성이니 LG, 현대 같은 기업 로고 간판이 여기저기 크게 걸려 있다는 점이에요. 한국 기업의 위력을 실감한다고 할까요?

사실 한국은 미국의 7대 교역국 중 하나고 미국은 한국의 3대 교역국이잖아요. 한국의 경제활동이 미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야겠죠. 한국이나 일본의 자동차, 전자제품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커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한 번은 큰 교차로에 서서 주위 차량의 생산지를 손으로 꼽아 본 적이 있어요. 정말이지 아시아産(산) 자동차가 많아졌어요. 사실 미국 소비자들이 효율성이니, 차량의 연비니 품질을 까다롭게 따지잖아요.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미시간이니 다른 지역 주민보다 더 극성이에요. 그래도 아시아산 차량의 점유율이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퍽 인상적인 일이죠. 요즘처럼 환경문제, 지구온난화가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는 더 그래요. 고백하자면, 일본보다 한국을 더 많이 찾았어요.”

“한국을 더 많이 찾았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나요,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게 궁금했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both(둘 다).”

마이클 혼다 의원이 지난 8월 13일 강원대에서 명예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여식에는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권영중 강원대 총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교사 출신 정치인

애매모호한 답이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좀 더 그의 말에 귀를 세워 보았다.

“사람의 정체성을 解剖(해부)하듯 어디서 어디까지 분리시킨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사실 ‘제 충성심(royalty)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미국이라고 답하지요. 또 ‘제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면 미국의 헌법에 있다고 말해요. 그렇지만 半半(반반)의 개념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 봐야 해요. 사실 미국 내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난 많은 아이가 ‘내 반은 이쪽이고, 반은 저쪽’이라 생각하며 성장하는데, 점점 클수록 내면의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교사시절, 이민 온 학생들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前職(전직) 교사다. 학부에서 생물학과 스페인어를 전공한 뒤 과학 선생님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공립학교 두 곳에서 교장으로 일했다. 死別(사별)한 그의 아내도 교사였다고 한다.

모두가 銳氣(예기)를 세워 다투는 정치판에 선생님 출신 정치인의 따스한 용기는 묘한 여운을 준다. 필자는 ‘위안부 결의안’ 발의를 따스한 용기라고 부르고 싶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교사 시절,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반은 미국인, 반은 아시아계로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두 배경을 100% 다 가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지요. 사실 미국이란 나라는 兩(양) 배경의 좋은 점을 잘 활용할 기회가 많아요. 이런 배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가 스스로 ‘나는 피가 섞였다, 혼혈이다, 순수혈통이 아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지만, 전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다른 배경이 모여 이뤄진 혼합물(composition)인 것이지, 반은 이것, 반은 저것이라 단정할 수 없잖아요. 과학적으로도 다양한 배경을 경험한 이가 더 강인하고, 성공한 존재로 성장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과거에는 백인과 흑인이, 백인과 아시아계가 결혼해선 안된다고 했지만, 인종이나 민족을 분리하는 것은 건전하지 않은 사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감사해야 해요. 저 역시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배경이 자랑스러워요.”

어린 시절의 수용소 생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혼다 의원이 지난 2007년 11월 26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면서 오바마 미 대통령과 타이거 우즈, 영화배우 키아누리브스를 예로 들었다. 자연스레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혼혈의 정체성’으로 범주가 넓어졌다.

“교사 시절, 이민 온 학생들에게 영어 대신 自國(자국) 언어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가르쳤어요. 그리고 그 언어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항상 얘기했답니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로 말하면 두뇌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하잖아요. 아버지께서도 ‘하나의 언어를 체득하면, 다른 세계를 하나 더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엘살바도르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스페인어를 익혔어요. 언어는 문화와 역사, 사고나 여러 가치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차량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글로벌화된 사회에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그럼, 일본말을 잘하시겠네요?

미국 이민자에게 모국어의 실력을 묻는 것은 너무 가파르고 용렬한 질문이다.

혼다 의원은 “한다, 못한다”는 말 대신 부모 이야기부터 꺼냈다.

“부모님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셨어요. 아버지는 1914년 미국 새크라멘토라는 시골에서, 어머니는 1916년 제가 태어난 산호세에서 출생하셨죠. 조부모도 미국 이민자셨는데, 일본 규슈에서 자라 미국行(행)을 택했습니다. 당시 살기가 어려워 경제 이민을 했던 겁니다. 어머니는 미국에서 태어나셨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스무 살이 돼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셨어요. 제가 처음 말문을 튼 언어는 당연히 일본어입니다. 네 살까지 일본어로 말했지만, 유치원에 들어간 뒤로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본어를 잊어버렸어요.”

혼다 의원은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월넛 그로브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태평양전쟁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태어나던 그해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자 순식간에 일본은 미국의 敵國(적국)이 됐다. 미국 정부는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을 72시간 내 집결시켰고, ‘敵國(적국)의 시민’이란 이유로 사막에 수용해 몰살시키려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혼다 의원 가족은 콜로라도에 있는 수용소에 갇힌 채 우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와 함께 訪韓(방한)한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金東錫(김동석) 소장은 “혼다 의원은 미국에서, 그것도 소수계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체험했고 그것이 평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평화봉사단원으로 엘살바도르에서 활동

위안부 결의안 통과 직후 기자회견하는 혼다 의원.

인간에게 유년의 경험은 절대적이다. 수용소에 감금돼 지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쟁의 상처가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뼈저리게 느꼈을 게 뻔하다. 단언컨대 그가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이유도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終戰(종전) 이후 (수용소를 나와) 시카고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미 해군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강사 일을 하셨어요. 저는 또래들과 놀면서 영어를 익혔는데, 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어실력이 금방 들통났죠.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요.”

1953년 혼다 가족은 캘리포니아 산호세로 돌아가 딸기재배 농가의 소작인으로 정착한다. 그는 산호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마치고 과학교사가 됐다.

이후 산호세 교육위원회 위원이 됐고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1996~2001)을 거쳐 2000년 민주당 소속으로 하원에 입성했다.

―강원대에서 교육학 명예박사 학위까지 주잖아요. 아무나 ‘명박’이 됩니까. ‘혼다式(식) 교육’ 내지 ‘가르침’이 뭔지 궁금하네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나요.

이 질문이 거창하게 들렸는지 껄껄껄 웃으며 “난 그렇게 똑똑한 사람도 아닌데…” 하더니 “명예박사 학위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았을 텐데, 적절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한편으론 조심스럽다”고 했다.

“혼다식 교육이라… ‘hands on(전하다, 나누다 라는 뜻)’이 아닐까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가르치는 방식을 택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교육이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교류하며 경험하는 지식이 진짜 지식이라 생각해요. 저 자신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경험이 가장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해요.”

캐슬린 스티븐스 駐韓(주한) 미국 대사는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을 찾은 인연으로 외교관이 된 인물이다. 그녀는 1975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 2년 동안 충남 예산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혼다 의원 역시 평화봉사단으로 1965년부터 2년간 엘살바도르에서 활동했다. 미 의회에서 평화봉사단 출신은 캘리포니아주 샘 파 하원의원(콜롬비아에서 활동), 뉴욕 주 제임스 월시 하원의원(네팔) 등 여럿 된다.

미국 의회의 인권 챔피언

―동북아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좀 하셨습니까.

“역사공부 열심히 했지요. 힘 있는 쪽의 일방적인 역사공부가 아니었어요. 사실 미국의 학교교육은 유럽 중심이에요. 라틴계와 흑인이 세계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아시아인들이 미국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미국 교과서에 거의 소개되지 않아요. 역사를 놓고 봤을 때 좋고 긍정적인 것만 가르치려는 측면이 강해요.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향도 있지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輸血(수혈·blood transfusion) 시스템을 처음 발명한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어요.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죠. 그런데 그가 사망할 무렵,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수혈을 거부당해 숨졌습니다. 또 아시아계 미국인은 미국 농업 발달에 큰 기여를 했고 개중에 중국 이민자들이 많은 땀을 흘렸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중국인이 대륙철도를 놓았다는 정도죠.”

―아시아적 가치, 동양인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군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제 피가 그러니까….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와 여러 전자기기를 누가 발명했는지 사람들은 정확하게 몰라요. 상당 부분이 아시아계 미국인이 발명한 것을 미국의 큰 회사가 사들여 자기 것인 양 주장합니다. 사실 라틴계 사람들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에서 과학과 수학 분야에 재능이 뛰어난 분이 많지만, 그저 ‘노예로 고생했다’는 얘기밖에 없어요.”

그는 기자 스스로 판단하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미국이 아시아에다 대고 지적재산권 까다롭게 요구하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과거 마르코 폴로가 동방(아시아)에 처음 와서 약초를 가져가고 종이, 화약을 챙겨갔는데 아시아인들은 아무 불평도 없어요. 따지고 보면, 지적 재산권이 아시아에 있잖아요.”

혼다 의원은 아시아적 가치, 동양인의 우월성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는 신이 났고 동북아 역사 쪽으로 화제가 옮겨지면서 인권과 평화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인터뷰에 합석한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이 말을 거들었다. 김 소장은 “위안부 결의안보다 앞서 혼다 의원은 미국 모슬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인물이다. 미국 의회에서 ‘인권 챔피언’으로 불린다”고 했다.

지난 2007년 6월 27일 미 하원 외교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를 권고하는 결의안을 공식 채택했다. 혼다 의원이 발의한 종군위안부 결의안(하원 결의안 121호)을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의 수정안을 첨부한 채 상정, 심의해 찬성 39, 반대 2표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킨 뒤 하원 본회의로 넘겼다.

역사란 미래를 들여다보는 렌즈

2001년 9·11 테러 당시 모슬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살기등등한 탄압이 극에 달할 때 혼다 의원만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자신이 일본계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됐던 아픔을 상기시키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미국이슬람교도연맹회의가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사회의 차별이나 압력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나 이름을 바꾸지 말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미국 최초의 모슬렘 하원의원인 키스 엘리슨이 의원 선서 때 성경 대신 코란에 두고 맹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적극 옹호한 것도 혼다 의원이었다.

종군 위안부 결의안 역시 그가 주도했다. 이 결의안은 이미 1997년 발의하려다 공염불이 된 법안이었다. 해도 해도 안되니 거의 포기할 무렵, 혼다 의원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일본계라는 점에서 낙담하던 美洲(미주) 한인 사회조차 깜짝 놀랐다.

혼다 의원이 왜 총대를 멨을까. 무엇이 그를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했을까. 그는 2007년 11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원이 되기 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었다.

일각에서는 4촌 동생인 키트 혼다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변호사인 키트 혼다는 1996년 스탠퍼드대학에서 중국계 단체의 주최로 일본군 만행에 관한 학술대회가 열렸을 때 당시 한국인 위안부 생존자들의 인터뷰 녹음과 사진 등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키트 혼다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 혼다 의원에게 전했고, 결의안 초안 작성에도 관여했다는 것이다.

―과거 역사가 왜 중요한가요. 동북아의 부끄러운 상처인 위안부 문제를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역사가 왜 중요하냐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 카메라 렌즈와 같기 때문이죠. 역사는 교사와 같아요. 요즘 한국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비전으로 삼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녹색성장은 한국에서만 좋은 게 아니라 지구온난화 측면에서 봐도 전 세계적으로 의미가 있잖아요. 과거 경험상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런 실수를 범하지 말자고 역사가 가르쳐 줍니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부끄러운 과거도, 서로 관용하고 더는 잘못을 저질러선 안된다고 얘기해 줍니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교육이 중요합니다.”

위안부 결의안은 양심의 문제

일본군 위안부 포로사진. 임신한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혼다 의원의 생각에 동조하는 일본인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또 얼마나 바뀔 것으로 보나요.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란, 과거를 살펴서 현실과 미래를 보다 잘 대처하자는데 있어요. 많은 이가 제가 일본계 미국인인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이 문제는 국적이나 피부색의 차원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이것은 마음속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따져보는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위안부 안건은 과거의 이슈가 아닙니다. 현재도 이런 일들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지금도 많은 여성이 학대받고 있어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위안부 문제는 군대가 戰時(전시)에서 어떤 행동할 수 있는지, 전쟁의 실체가 무언지, 전시에 사람들이 어떤 무도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야만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실마리라고 봅니다.”

―가슴 아프게도 위안부 결의안은 인간의 야만성을, 참혹한 내면을 끄집어낸 것이겠지요.

“위안부 문제는 여성이 성적인 노리개가 됐다는 측면과 아울러 전쟁과 분쟁의 가장 큰 희생양이 바로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점을 말해 줘요. 하지만 이들의 희생에 대해선 사람들이 애써 외면해 왔어요. 그래서 국제적인 여성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더 이상 여성학대가 계속돼선 안된다는 차원에서 미 의회가 결의를 모은 셈이지요. 이 결의안으로 인해 많은 교훈을 얻었고, 많은 희생자의 증언이 나왔으며, 결국 명예회복을 위해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식은땀을 흘리며 몹시 괴로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신음하듯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꺼내길 꺼립니다. 정부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지만, 우발적인 실수도 있고 의도적 실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가 탄소를 줄이고 지속 가능 성장을 얘기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의 존엄성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존엄성은 진실을 밝히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이 발의안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과오를 깨닫게 하고 사죄해 다음 세대가 같은 잘못을 저질러선 안된다는 점을 가르치려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이나 여타 국가에 교훈을 주려는 측면도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위안부 결의안’은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공감해야 할 인권과 평화의 문제가 됐어요.

“우리 자신의 행동을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하고 잘못된 역사와 화해할 수 있는 시사점을 준 것이죠. 사실 화해를 통해서만 새로운 관계정립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희망컨대 인류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하길 희망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가 새운 가설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일본말을 모르고, 일본보다 한국을 더 많이 찾았고, 미국 헌법의 가치를 우선한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의 신념체계는 훨씬 복잡했다.

그는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진지한 교육자이자 늠름한 양심가였으며, 음풍농월하며 당대 현실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지식인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전쟁과 상처를 여전히 기억해내며 그런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으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왔다. 아직도 역사를 더듬고 상처를 닦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깊은 절망과 기꺼이 만난 사람이었다.⊙

사진 : 서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