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李達坤 행정안전부 장관 : 월간조선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장관 집무실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장관 지침 사항’이 적힌 ‘폼 나는’ 액자 말이다. 대신 ‘同體大悲(동체대비)’라는 글자가 적힌 액자가 집무실 한편에 놓여 있다.

서울大(대) 행정대학원장을 지낸 李達坤(이달곤·56) 행정안전부 장관. 여타 행정관료 출신과는 뭔가 다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학자 티마저 벗어 던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내 행정학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저명한 행정학 교수가 아니던가. 그의 말이 가관이다.

“장관 지침이 뭐가 필요해요. 잘해 봐야 1년 조금 넘게 하겠죠. 장관이랍시고 근사한 걸 내놓아도 한두 달 지나면 공무원이 식상해 합니다. 최근에 알게 된 ‘同體大悲(동체대비)’ 사상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난 6월 중순 해인사에 들러 하룻밤 신세를 졌어요. 이튿날 조계종 11대 종정 法傳(법전) 큰스님을 찾아뵀는데 ‘우주 삼천이 내 몸처럼 하나’라며 ‘동체대비’ 사상을 알려주시는 거예요. 스님께서는 ‘나라는 국민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국민도 나라를 내 몸처럼 생각한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안되는 것이 없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스님께서는 며칠 후 손수 ‘동체대비’라는 글자를 쓰셔서 사무실로 보내 주셨습니다.”

―행정학자 출신 장관으로서 업무상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뭡니까.

“행정행위에 대한 확실한 판단기준을 세우는 것과 실존 증거에 입각해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죠.”

―당연한 얘기로 들립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조금 전 경찰청 고위관계자가 찾아와 ‘최근 경찰관 비위 사건과 관련해 조치를 완벽히 취했고 경찰기강이 확립됐다’고 보고하더군요. ‘문제가 있는 경찰관 128명을 자르고 나머지는 몇 팀으로 분류해서 특수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형식적인 보고 말고 경찰이 지향하는 큰 틀의 방안을 갖고 오라’고 했어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도 마찬가지예요. 국민생활 안전문제를 맡고 있는 부서에 ‘과연 안전문제가 개선되고 있는지 파악해 보라’고 했어요. 어제 남부지방에 내린 비로 두 사람이 안타깝게 사망했어요. 저로서는 안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정보화 사업을 위해 그동안 거액의 세금을 쏟아 부었는데 이게 잘되고 있는지도 판단해 봐야 해요.”

‘세로행정’은 잘되는데 ‘가로행정’이 문제

지난 6월 이달곤 장관(오른쪽)은 합천 해인사에서 조계종 종정 법전 큰스님(가운데)을 만나 ‘동체대비’ 사상을 전해들었다.

―행정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행정업무가 분업화되면서 거시적 시각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4대강 정비사업이 좋은 사례입니다. 정부는 해마다 많은 액수의 홍수피해 복구비용을 사용합니다. 공무원들은 물난리가 나면 으레 공사하고 ‘사업을 다했다’곤 해요. 이게 과연 옳은가요? 우리나라 강수량은 여름철에 집중돼 있어요. 봄, 가을에는 물이 부족해요. 그렇다면 물을 담아 놓아야 할 곳에는 담아 놓고 물이 흘러야 할 곳은 흐르도록 해야죠.”

―통합행정이 제대로 안된다는 겁니까.

“공무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옆을 보려고 하지 않아요. 행정조직 자체가 옆을 보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게 ‘가로행정’입니다. 우리나라는 ‘세로행정’은 아주 잘돼 있어요. 청와대에 보고하는 걸 보면 電光石火(전광석화)입니다. 담당부서, 장관, 총리실, 청와대로 직행입니다. 그런데 옆으로 오가는 건 부족한 게 우리 공무원 사회의 현실입니다.”

―‘가로행정’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장관은 현재 범정부적 차원에서 추진 중인 자전거사업을 예로 들었다.

“전국에서 자전거 교통이 잘돼 있는 곳이 경남 창원과 경북 상주입니다. 이곳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전거 타기 운동을 펼쳐 왔습니다만 문제가 많아요. 단적인 예로 자전거 교통 분담률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도 제대로 안 나와 있습니다. 국토해양부, 통계청, 지자체가 서로 협업시스템이 안되어 있어 현재 기관마다 서로 다른 기준에 의해 자체적으로 통계를 냅니다. 한 기관은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직접 세는가 하면 또 다른 기관은 20명 승객이 탄 버스 한 대를 기준으로 자전거 1대를 정합니다. 공식도 복잡해요. 지금 우리 행정이 이렇습니다. 창원과 상주의 자전거 타기 정책을 다른 곳에서도 배우면 되는데 그것도 잘 안돼요.”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 뭡니까.

“공무원 조직 전체가 변해야 해요. 저는 취임 후 우선 공무원 개개인에게 정책판단의 근거와 결과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행안부 직원들은 자신의 손으로 코를 풀지 않고 서류나 전화기로 풀려고 해요. 제가 직접 코를 풀라고 하니 직원들이 죽을 맛이죠. 공무원의 출장도 과거에 비해 많아졌어요. 현장을 보고 유관기관과 협조를 구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 ‘너무 심한 것 아니냐’ 하는 불만이 있는 것도 압니다. 저는 행안부 공무원이라면 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과를 내놓고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정책을 펴야 합리적 성과가 나오는 겁니다.”

능동적으로 일하는 공무원 만들겠다

자전거 캠페인에 참석한 이달곤 장관.

―며칠 전 북한 소행으로 보이는 사이버 테러 사태가 정부 홈페이지는 물론 사회 주요 기관 홈페이지를 공격했습니다.

“사이버 테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하고 있어요. 예산도 늘릴 예정입니다. 예전에는 하드웨어 중심으로 정보화 사업이 이뤄졌는데, 향후 정보보호와 사생활 침해 방지 등 소프트웨어 차원의 보안정책을 강화할 겁니다.”

―얼마 전 서울 신촌의 한 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철도 전기공급 장치를 건드려 KTX가 다섯 시간 가량 불통됐습니다.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정부는 민간단위까지 긴밀히 협조하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한 아파트 단지에 전기 공급이 끊겼을 경우 자체 발전이 되는지, 수돗물 공급이 안될 경우 며칠을 버틸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민간이 해야 할 일을 체계적으로 짤 겁니다.”

이달곤 장관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올 2월 행안부 首長(수장)이 됐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일자리 창출, 예산 조기집행, 규제개혁, 공공부문 개혁 등 크고 작은 일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장관으로 있는 동안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고 생각하신 게 있습니까.

“공무원 개개인을 보면 정말 똑똑한 인재들이 많아요. 그런데 공무원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조직의 룰에 자신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요. 전임자가 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조직은 안정돼 있을지 몰라도 독창적인 행정을 펴기는 어려워요. 지금 시스템으로는 아무리 해도 선진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고를 깨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이 되어야 해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공무원이 왜 저러느냐’며 언론이나 사회단체로부터 욕을 얻어먹을 정도로 적극적이어야 해요.”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어떤 걸 들 수 있을까요.

“사업적으로 보자면 행정체제 개편이죠. 국회 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법제정 등이 가시화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우선적으로 군소 단위의 시·군·구 자율통합을 추진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통합 논의가 돼 왔던 지역이 통합할 경우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거죠. 자율통합지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속도가 붙을 겁니다.”

지자체 자율 통폐합 유도

―어떤 식으로 통합을 유도할 겁니까.

“재정적 지원을 포함해 全(전)방위적으로 도와줄 계획입니다. 다만 지역의 유지들이나 일부 단체들이 반대할 경우 추진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합의된 주민의사가 반드시 필요해요.”

―그렇다면 지역주민들이 통합에 합의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나 마찬가지인데, 행정 효율성과 예산 절감 차원에서 통합이 필요하다면 적극 추진하는 게 정부가 할 일 아닌가요.

“중앙정부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요. 주민의 기본적인 입장을 듣는 게 중요합니다.”

―지도를 보면 과천·의왕·안양·군포의 행정구역이 이상하게 나눠져 있습니다. 과거 이들 지역에서 효율성을 이유로 통합 논의가 있었는데 무산됐습니다. 무산 원인은 통합이 되면 공무원 숫자가 줄어드는데, 그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운 지역 공무원들의 반대가 한몫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행정체제는 광복 이후 근대화·산업화를 거치면서 나름 효율성을 갖춰 왔어요. 이제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행정 구조에 손을 대야 합니다. 무조건 통합만이 능사가 아니라 지역 사정에 따라 적정 수준으로 최적화해 나가야 해요. 제주도의 경우 의미 있는 진화과정을 거쳤어요. 제주도 아래 시(제주시, 서귀포시)가 두 곳, 군이 두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군이 없어지고 제주특별자치도 하나로 통합됐습니다.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은 임명직으로 바뀌었죠. 지금의 제주도는 타 지역에 비해 행정통합에 있어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장관께 행안부 수장 역할을 맡긴 것은 행정체제 분야 최고 전문가이신 이 장관이 본인 임기 중에 행정체제 개편을 완수하라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 아닙니까.

“취임 무렵 대통령께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 안목을 갖고 행정체제 개편 방안을 마련하라.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니 정신 차리고 일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현 정부 임기 내에 모든 일을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어야 하니 국회 사정도 봐야 하고요. 임기 내에 선진국형 행정체제를 만들기 위한 ‘석세스 맵(성공 로드맵)’을 만들어야겠지요.”

행정체제 개편 쉽지 않아

―與野(여야) 각 당이 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에 대해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현재 우리나라의 행정체제는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로 구성돼 있어요. 이런 구조에서 한 층을 없애는 게 행정체제 개편의 기본 방향입니다. 그런데 이게 밖에서 보기에 간단해 보일지는 몰라도 엄청난 작업을 수반합니다. 조세제도를 포함해 수백 개의 법안을 다 바꿔야 해요. 거의 새로운 행정체제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입니다.”

이 장관은 “더구나 국회와 지방정부 관계자, 지역여론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어 더욱 복잡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 중구와 종로구를 통합한다고 하면 쉽게 통합되겠습니까? 국회에서 행정체제 개편 적용시점을 次次期(차차기)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2014년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해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항은 뭡니까.

“아직은 없어요.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적도 없고요.”

―충남 연기군 일대에서 건설되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특별자치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당초 계획대로 현재 진행 중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을 두고 현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도 표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행복도시를 건설할 게 아니라 대전 청사의 유휴부지를 이용해 국력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도시 건설은 국토해양부 산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서 맡고 있습니다. 행안부는 행복도시와 관련한 법안 마련이나 행정절차를 지원하고 있어요. 인구 50만명의 자족도시로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중앙부처 중 어느 기관이 내려갈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 난 게 없어요. 정치권이나 지역에서는 ‘移轉(이전) 기관에 대해 정부가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간단히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행복도시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정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돼요. 행정기관과 공무원들만 가면 도시가 어떻게 유지됩니까.”

경제 살리기 위해 예산 조기집행

이달곤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재래시장을 찾아 서민경제 현실을 듣고 있다.

―자료를 보니 행안부가 상반기에 20조5109억원의 예산을 집행해 당초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돼 있더군요. 예산조기 집행에 따른 문제는 없습니까.

“경찰청, 소방방재청, 지방예산 등을 합하면 약 139조5000억원을 집행했어요. 민간에 풀려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경제 살리기가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정부 예산이 민간부문에 스며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희망근로 프로젝트의 문제점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임금 대신에 지급한 쿠폰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작업장 2만8000곳에 25만여 명을 고용, 1인당 월급 83만원을 지급해 총 1조7000억원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근로자 선정과 쿠폰 사용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사업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걸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전 직원들이 희망근로 현장을 체험하며 문제점은 바로 개선하고 있어요.”

―지방 재정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 거래에서 파생되는 취득세, 등록세 등입니다. 그런데 경기침체로 인한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지방정부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압박을 받자 적자예산을 편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체 지자체의 부채가 대략 10조원 정도인데, 연간 예산집행 규모가 100조원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10조원 부채는 걱정할 수준이 아닙니다. 최근 3년 동안 지자체의 부채 총액이 19조원으로 늘어났다는 조사결과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단히 건전한 상태입니다.”

―행안부에서는 지자체에 적자예산을 편성하더라도 공격적인 지방행정을 펼쳐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하는데요. 적자예산을 편성하면 재정 건전성에 문제는 없는지요.

“올해 처음으로 적자예산을 편성한 자치단체가 54개입니다. 주로 규모가 작은 자치단체들이 처음으로 빚을 진 셈이죠. 내수 진작을 위해 적자재정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현 정부의 정책방향은 돈을 빌려서라도 예산을 집행해서 지방경제를 활성화하라는 겁니다.”

이 장관은 “어떤 측면에서는 빚을 져야 살림을 제대로 살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방정부는 돈 문제에 관한 한 중앙 의존 심리가 너무 강해 툭하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립니다. 저는 지방정부가 빚을 져 봐야 돈을 아낄 줄 알고 지방자치도 제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돈 달라고 손 벌리는 아들에게 ‘네 이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직접 벌어서 갚아라’고 요구해서 자립심을 길러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자치, 경찰자치는 시대적 요구

―일부 지자체가 추진 중인 사업 중에는 지방재정의 한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사업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자체 아래 도시개발공사, 시설관리공단 같은 기업이 310여 개 있어요. 그중에는 재정상태가 나쁜 게 많아요. 최근 감사원이 강원도의 알펜시아 사업에 대해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재원조달 규모에 맞게 사업을 추진하도록 했어요.”

이달곤 장관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자치단체의 재정압박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지방세 체납 정리기간을 둬 세수확보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행안부 차원에서 지방예산의 효율화 대책(예산집행 실명제, 공사 감리감독 실명제)을 추진하고 지자체가 발행한 지방채는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인수하고 일정 부분의 이자를 보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공공자금 인수규모는 3조8000억원이며 이 중 2조2000억원에 대한 금리 1.62%(현재 4.12%)를 3년간 보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 지자체장들은 교육자치와 경찰자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향은 맞아요.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을 뿐이죠. 이명박 정부는 교육기능의 상당부분을 지자체에 이양했고 또 앞으로 계속될 겁니다. 자치경찰에 대해서는 현재 행안부와 경찰청 차원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현재 제주도는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경우 자치경찰제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제주도 자치경찰은 주민생활과 밀접한 생활안전 및 경비, 교통질서, 식품위생사범 단속 등 특별사법경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치경찰제의 도입으로 제주 전체의 치안역량이 향상되어 5대 범죄발생이 8.6%, 교통사고사망자가 9.3% 감소하는 등 치안지표가 향상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경찰청과 협조하여 제주도 자치경찰 성과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는 안 하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 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이 4대강 사업을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지자체장들은 물과 나무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귀신같이 알게 돼요.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홍수가 많이 납니다. 전국 대부분 하천의 河床(하상)이 높아 물난리가 해마다 일어나요. 반면 乾期(건기)에는 물이 없어 난리입니다. 지난번 군산 인근에 큰 산불이 났는데, 소방헬기가 영산강에 물을 길으러 갔더니 물이 바닥나 있었어요. 물을 구하려고 15㎞를 날아가 겨우 떠오곤 했습니다. 경북 구미시 인근의 낙동강은 바지만 걷어 올리면 강을 건널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권위, 인력 과도하고 업무도 지지부진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변형된 대운하 사업’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역사를 보면 治水(치수)는 백성을 편안히 하는 첫 번째 핵심이었어요. 그런데 일부 지식인, 정치인들은 무조건 반대를 합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전문적인 지식이 있고, 많은 연구를 했는지 모르지만 언론이 그런 반대자들의 발언을 무조건 보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정부는 4대강 수질개선과 홍수방지를 위해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재해가 발생해 복구비가 듭니다. 이제 근본적으로 강을 정비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이 사업을 하는데 대략 22조원이 든다고 하지만 실제 사업이 시작되면 비용은 상당히 줄어들 겁니다.”

―정부의 홍보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논리적인 설명이 먹히지 않는 사람에게 홍보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밀려 대통령이 ‘대운하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문제 아닙니까.

“국가 차원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판단해 추진하는 겁니다. 정부가 심사숙고해서 4대강 사업으로 방향을 정했으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줘야죠.”

이달곤 장관은 최근 35개 부처의 조직개편을 완료했다.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행정기관의 235개 課(과)를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축소된 국가인권위원회는 행안부의 조치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장관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가인권위는 법에 의해 운영상의 독립을 보장받고 있지만 국민의 세금을 쓰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조직이나 인력운용에 관해서는 행안부의 관리대상 입니다. 현 정부 들어 감사원이 국가인권위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는데 ‘조직이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저희가 조직진단을 해 보니 업무에 비해 인력이 과도했어요. 결국 행안부의 적법한 권한에 의해 조직개편을 단행했습니다.”

비용은 적게 쓰고 일은 더 잘하는 정부가 되자

―얼마 전 3개 공무원 노동조합(전공노·민공노·법원노조) 지도부가 올 12월까지 통합을 완료하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3개 노조가 통합되면 조합원 11만6000명 규모의 대형 노조로 바뀝니다. 공무원 노조 간의 통합이나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법상 별도의 제한규정이 없어요. 다만 공무원 노조의 존재 이유는 공무원의 보수, 복지 등 근무조건 개선 등에 국한돼 있어요. 조합원들 중 상당수가 민주노총 가입을 반대하는 걸로 압니다.”

이 장관은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별도의 규정은 없지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는 공무원 노조가 민주노총 등 민간노조와 연대·활동하는 중에 공무원노조법이나 공무원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경우 엄정 조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강조한 TCM은 뭡니까.

“Total Cost Management의 약자입니다. ‘비용은 적게 쓰고 일은 더 잘하는 정부가 되자’는 얘기입니다. 불필요한 일은 하지 말고, 대기성 야간 근무도 하지 말자는 겁니다. 매주 수요일은 전 직원이 6시 정시에 퇴근해 능력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하도록 조치한 것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겁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성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공무원들이 TCM의 개념을 체득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실천한다면 우리나라 정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한국협상학회장을 지냈는데 우리 정치인들의 협상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명분에 너무 집착해서 국리민복이 밀려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교육 수준과 개방화 수준에 비해 이념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어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정치 현장에서 이념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정치와 정책은 이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닙니까.

“이념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일자리를 중시하는데, 거기에 무슨 이념이 있습니까. 정치에 이념이 포함되는 건 당연하지만 이념이 필요 없는 곳까지 개입되는 게 문제예요.”

―한국의 행정 서비스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어느 수준입니까.

“속도 면에서는 세계 최고입니다. 정보화도 상당히 진행돼 있어요. 문제는 質(질)입니다.”

法治와 德治의 조화

―얼마 전 한 중국인 학자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당시 法治(법치)를 강조했는데 동양에서는 법치보다는 오히려 德治(덕치)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현 정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 할 말이 많지만 한 가지만 말씀 드릴게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큰 덕치를 하고 있어요.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저는 국무회의를 할 때마다 느낍니다. 현재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처럼 근무시간이 긴 공무원은 없을 겁니다. 대통령께서는 장관들에게 ‘어려운 사람들 밥 굶지 않도록 하라’며 주문을 많이 해요. 국무회의 때 한 번은 가출 인구에 대해 얘기하다가 대통령께서 ‘여학생들이 가출하면 어디에 가느냐. 대책은 뭐냐’며 가슴 아파한 적도 있어요.

행안부가 25만 개 일자리를 만든 것도 대통령의 뜻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희망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모든 언론으로부터 매를 맞고 있습니다만, 대통령은 별다른 말씀이 없어요. 소신을 갖고 추진해 나가라는 뜻이죠.”

―폭력시위자에 대해서 德(덕)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쇠파이프나 죽창, 화염병을 들고 불법 시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법치를 해야죠. 이들 때문에 경찰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어요. 공권력에 저항하는 세력에게는 엄한 법치가 필요해요. 이명박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법치를 하고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서는 덕치를 하고 있어요. 중국인 학자가 말한 덕치는 바로 이런 덕치를 더 넓고, 깊게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