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제 아무것도 못해요.
아이들 셋 모두 외국에서 일해 적적하죠”(부인 孫春枝 여사)
아이들 셋 모두 외국에서 일해 적적하죠”(부인 孫春枝 여사)

- 전경환씨의 최근 모습. 다리 운동을 하기 위해 전기 자전거에 타고 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고 있었다.
대한민국 40代(대) 이상 남녀라면 이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 퀴즈에, 두 번째 설명까지 들을 필요 없이 대번 정답을 말할 수 있다. ‘全敬煥(전경환·66).’
인터넷에서 전경환씨 기사를 검색하면, 기사 첫 문장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제5공화국 시절, 형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권력을 행사하고~.’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본부 중앙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떼 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5공 시절 최고 권력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그해 말 새마을운동본부 사무총장이 됐다. 그의 나이 37세 때였다. 전씨는 실제 나이(1939년생)보다 호적 나이가 네 살 어리다.
당시 회장이 있었지만, 37세의 전경환 사무총장이 새마을운동본부 운영을 주도했다. 당시 새마을운동본부는 ‘제2의 청와대’ ‘등촌동 왕국’이라고 불렸다. 전경환씨의 힘이 한창일 때는 새마을운동본부 중앙회장 외에, 사회체육진흥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지도자 육성재단 이사장 등 10여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月刊朝鮮 1988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매일 평균 4~5개 단체 약 300~400명의 사람이 그를 만나기 위해 새마을운동본부에 찾아왔다고 한다. 국내 인사들뿐만 아니라 外賓(외빈)들이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반드시 찾는 곳이 새마을운동본부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았던 권력도, 한순간에 떨어졌다. 제6공화국 초에 불어닥친 ‘5공 비리 청산’ 바람에 전씨 집안 3형제(전기환·전두환·전경환)는 줄줄이 구속됐다. 1988년 전경환씨는 새마을 비리와 관련, 7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된 지 3년6개월 만인 1991년 6월, 감형으로 풀려난 전경환씨는 한동안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전경환씨는 오랜 침묵을 깨고, 지난 2000년 4월 총선 당시 대구 달서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는 낙선했지만, 사람들은 ‘5공의 소통령’ 전경환의 정치권 귀환에 관심을 가졌다. 전경환씨의 知人(지인)은 “전경환씨는 5공 때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를 바랐지만, 당시 ‘3許(허)씨(허문도·허화평·허삼수)’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대구에서 무소속 출마 낙선 후에도 국회의원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계속되는 불운
2000년 총선 낙선 이후 전경환씨는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그는 간간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모두 불미스러운 사기 사건과 연루됐다. 지난 2000년 5월 전씨는 모 건설업체 회장으로부터 빌린 돈 20억원을 갚지 못해 소송을 당한 끝에 패소했다.
2004년에도 모 건설업체 대표에게 외자 1억 달러를 유치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약 7억원을 받은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 사건으로 전씨는 지난 5월 14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건강 때문에 법정구속을 면했다. 2006년에는 구권 화폐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필리핀에서 사기를 벌인 김모씨 일당과 관련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 수사를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각종 입방아에 오르던 전경환씨는 현재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전씨의 근황이 언론에 나온 건 지난 2008년 2월 11일자 조선일보 지면이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씨는 간암의 일종인 담관 세포암과 심혈관계 질환 등 여러 질환을 앓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당시 전씨는 이 병원 20층에 있는 200병동 귀빈용 병실에 입원했다고 한다. 이 병실은 66㎡(20평형)로 보호자용 병실이 따로 있으며, 하루 입원비는 80만~90만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전경환씨 지인들을 통해 전씨의 근황을 수소문했다. 1980년대 전씨의 아이들에게 과외지도를 했던 유명 학원강사 출신 K씨를 만났다. K씨는 전경환씨 부인 손춘지씨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K씨에 따르면 전경환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계속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K씨와 나눈 이야기다.
―전경환씨 아이들을 언제 가르쳤습니까.
“1983~84년이었어요. 전경환씨는 1남 2녀를 뒀습니다. 장남은 K대 정외과를 다녔는데, 학교 다닐 때 몇 번 데모하다 아버지 전경환씨에게 들켜 일찍 외국 유학을 갔어요. 둘째 딸은 S여대를 졸업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다니던 첫째와 중학생이었던 둘째를 가르쳤습니다.”
과외선생에게 준 양주에 적힌 권력 실세들 이름
―당시 전경환씨 집안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화목했어요. 전경환씨는 워낙 바빠서 얼굴 보는 게 거의 어려웠고, 부인 손춘지 여사를 주로 뵀죠. 손춘지 여사가 내조를 정말 잘했고, 참 좋은 어머니였습니다. 제게 처음 과외교습 요청이 왔을 때, 손 여사에게 ‘제가 요구하는 걸 해 주면 과외교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요구였습니까.
“‘제가 과외수업하러 올 때는 반드시 손 여사가 집에 있을 것’, ‘과외수업할 때는 반드시 간식을 손 여사가 직접 가져올 것’ 두 가지였어요. 집에 어머니가 있어야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손 여사가 약속을 지켰습니까.
“네. 2년 동안 한 번도 제가 과외수업하러 왔을 때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고위층 아이들 과외를 많이 했는데, 손 여사처럼 아이들에게 정성인 분이 없었습니다. 당시 전경환씨가 얼마나 권세가 대단했습니까? 그런데도 정말 겸손하고 깍듯하게 사람을 대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전경환씨 집에 과외수업하러 다녔던 학원강사들이 전부 입이 마르게 칭찬했습니다.”
K씨는 당시 전경환씨의 권세를 알려주는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려줬다.
“저희 학원강사들이 가끔 회식을 합니다. ‘회식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가야 한다’ 하면, 전경환씨나 손춘지 여사가 당시로서는 귀한 고급 양주를 몇 병씩 챙겨줬습니다. 회식 자리에 가서 양주 포장지를 풀면, 양주 상자에 ‘합참의장 ○○○ 드림’ ‘국방부 장관 ○○○ 드림’이라고 적혀 있어요. 당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던 사람들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봤습니다.”
K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며칠 후, 다시 K씨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손춘지 여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손 여사의 지인에게 근황을 부탁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전경환씨는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K씨는 “간암이 심해져 거동이 힘들다”고 전했다.
병원에서 만난 전경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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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10월 14일 영동고속도로 개통식장에서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박정희 대통령. 뒤로 김재규 건설부장관이 보인다. 안경 낀 김재규 뒤에 경호관으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 전경환씨 모습이 보인다(원 안). |
“형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광 때문이었지만, 전경환씨는 과거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에요. 시간이 흘러도 그는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늙고 병든 모습을 보여주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병원비 부담이 크겠네요.
“그래서 부인인 손춘지 여사가 고생이 심하답니다. 전경환씨 대신 살림을 꾸려간다고 해요. 손 여사가 워낙 남편을 잘 돌보고 집안을 잘 꾸려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손 여사라면 끔찍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전경환씨가 올해 초부터 입원한 L 병원은 개인병원이었다. 상가 여러 층을 임차한 L 병원은 주로 암, 혈관계통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전씨가 입원해 있는 입원실을 찾아갔다. 다른 일반 병실이 문을 열어 놓은 것과 달리, 전씨의 입원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병실 밖에는 ‘전경환’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살짝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침대에 앉은 전경환씨와 중년 여성이 필자를 쳐다봤다.
백발의 전경환씨는 구부정한 허리에 힘이 없는 모습이었다.
중년 여성에게 “손춘지 여사님이냐”고 묻자, 그 여성은 “간병인인데, 누구냐”고 되물었다. 마침 아침식사를 하던 전씨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필자와 간병인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다음은 간병인과의 대화 내용이다.
―전경환 회장님 건강이 어떻습니까.
“올해 초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현재 양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어요.”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혼자서 움직일 수 없어서 간병인들이 부축을 해 줘야 합니다. 오전, 오후에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병실을 나가는 것 외에는 항시 간병인이 옆에 있어야 합니다.
숟가락 들기 어려운 팔로 악수 청해
―간암이라고 들었는데요.
“그 부분은 제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여사님이 안 계셔서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손 여사는 자주 오시나요.
“그럼요. 매일 오시는데, 아침 저녁으로 나눠서 오세요.”
간병인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전경환씨는 숟가락을 들고 무표정하게 필자를 쳐다봤다. 숟가락을 드는 것도 힘든지 그는 팔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필자가 전씨를 보면서 “근황을 듣기 위해서 왔다”고 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간병인이 “싫다고 하시네요”라고 하자, 전씨는 숟가락을 놓고 오른손을 들어 필자에게 내밀었다. 간병인이 “싫으시다며, 악수는 하시자네요”라며 웃었다.
전경환씨가 악수하자며 내민 손을 보니 손이 무척 크고 거칠었다. 전씨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했다. 수경사에서 헌병으로 근무했던 무골인 그의 손을 방송인 박찬숙씨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기억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해 봤지만, 전경환씨만큼 손이 크고 두껍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마치 목재소에서 켜다가 만 거칠거칠하고 뭉텅한 나무토막을 잡는 느낌이었다. 내 엄지손가락은 전경환씨 검지의 옆부분에 걸쳐진 듯했고, 악수가 끝났을 때 내 손이 통째로 그 손 안에 잡혔다가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무토막처럼 단단했던 전씨의 손은 이제 완연히 노인의 손이었다. 뇌졸중으로 팔다리의 힘이 사라져서인지 악수하자며 잡은 손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전씨의 방을 나와서 병원 휴게소로 갔다. 그곳에서 다른 환자 간병인들과 얘기를 나눴다. 이들은 전경환씨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경환씨가 언제부터 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나요.
“올해 2월쯤이라고 들었어요.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이 병원으로 왔다고 해요. 거기는 특실이 하루에 50만원 이상이지만, 여기는 특실(1인실)이 하루 15만원이거든요. 1인실은 보험도 안되는데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오래 입원 못하죠.”
간병인들에 따르면, 이 병원의 모든 병실 기본 치료비는 식사를 포함, 한 달에 80만원이라고 했다. 전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은 한 달 입원할 경우 약 560만원(기본 80만원+하루 병실료 16만원×30일)이 드는 셈이다.
―간병인 비용은 얼마나 됩니까.
“뇌졸중 등으로 쓰러져서 전신불수 등 중증 환자일 때는 주급으로 50만원 정도 듭니다. 하지만 전경환씨처럼 부축하면 걸을 수 있는 정도면 30만~40만원이에요.”
문병 오는 사람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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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환씨가 현재 입원해 있는 병실 표지.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재활 치료를 받는 중이다. |
“처음 왔을 때보다는 크게 호전됐는데, 요새는 자꾸 약을 안 먹으려고 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네요. 병을 오래 앓으면, 환자들이 의사가 돼요. 전경환씨도 자기가 먹고 싶은 약만 먹으니 병이 낫겠어요?”
―전경환씨에게 문병 오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처음에는 많았어요. VIP들이 간병인들에게 봉투를 많이 주고 가서 간병인들이 신났죠. 그런데 이제는 거의 안 와요. 부인만 드나드는 거죠.”
전경환씨 부인 손춘지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손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손씨의 지인을 통해 전화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손씨는 매우 정중하게 “제 남편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 드리지만 인터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손씨와 나눈 얘기다.
“병실에서 남편을 보셨겠지만, 제 남편은 이제 아무것도 못합니다. 지난해 초부터 간암의 일종을 앓고 있어요. 안 좋은 상태입니다. 그런 와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자 거동하기 어렵습니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만, 몸 어디도 좋은 데가 없어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작은 병원으로 옮긴 이유가 있습니까.
“저희 집이 지금 분당입니다. 큰 병원에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작은 병원에서 조용히 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자제분들과 교대로 간병을 합니까.
“저희 애들은 공교롭게 직장이 모두 외국이에요. 아무도 없어서 제가 혼자 다녀요. 저희 부부 두 명만 적적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가끔 왕래를 합니까.
“가끔 뵙죠. 저희 남편이 투병 중이니, 요새야 못 뵙죠.”
―전경환 회장이 지난 몇 년간 구설수에 여러 번 휘말렸는데요. 사기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것으로 압니다.
“그 얘기는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 고맙지만, 저희는 기사가 실리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남편 치료만 신경 쓰게 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