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이 본 ‘野神’ 金星根 : 월간조선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를 예측해 주십시오.”

2009년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 3월 말, 기자들이 ‘올 시즌 전망’을 점쳐 달라고 했다. 매년 해 오던 연례행사였고, 올해도 ‘○强(강) ○中(중) ○弱(약)’과 같은 식으로 각 팀의 성적에 대해 ‘시원한’ 예측을 던져줘야 했다.

1978년 동아방송 라디오에서 해설위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첫 마이크를 잡은 것이 31년 전이니 야구 해설자 가운데는 ‘베테랑’ 소릴 듣지만, 기자들에게 “올해만은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 중계를 끝내자마자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돼, 각 팀의 ‘스프링 캠프’(정규 리그 시작 전 집중 합숙 훈련) 현장에서 전력을 분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망해 하는 기자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확실한 것은 SK만큼은 반드시 4강에 든다는 겁니다.”

나름 고민과 분석을 한 결과를 어렵게 말해줬는데, 기자들은 ‘누가 그걸 모르나’하는 눈치였다. 金星根(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 그들은 그만큼 강했다.

SK는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를 2연패했다. 그들은 명실상부 한국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우뚝 섰고, 김성근 감독은 ‘野神(야신·야구의 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SK는 어떻게 이 ‘위대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혹자는 막강한 전력 덕분이라고 하고, 혹자는 김성근 감독의 전략이라고 한다. 둘 다 정답이자 오답이다. 필자가 분석한 SK의 저력은 김성근의 야구철학과 그를 제대로 소화해 낸 ‘SK의 선수들’이다.

SK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2007년, 73승 5무 48패로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 2연패 후 4연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이렇게 극적인 연패·연승은 한국시리즈 역사상 처음이었다.

“내가 맡았던 팀 중 최악”

그러나 그 한 해 전인 2006년 SK의 성적은 8개 팀 중 6위로 초라했다. 김성근 감독은 SK 부임 당시 “지금까지 내가 맡았던 팀 중 최악”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2006년 11월 당시 제주 서귀포시 한 야구장에서 있은 김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우리 팀은 젊은 선수가 많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도 된다. 우선 선수들이 대강대강 경기를 하는 것 같다. 야구가 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 허술한 팀을 불과 1년이 안되는 시간에 완전히 換骨奪胎(환골탈태)시켰다. 하지만 2007년 첫 우승 후 대부분의 야구팬은 반신반의했다. ‘기적’이라는 이들이 있었고, ‘어쩌다 한 번 우승은 우연일 수 있다’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음해인 2008년, ‘기적’과 ‘우연’이란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SK는 더 강해졌다. 시즌 내내 선두를 질주했고, 페넌트레이스 126게임 중 83승 43패, 승률 0.659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올렸다.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로 가뿐하게 우승컵을 안았다.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2009년 5월 11일 현재 32경기를 치른 SK는 19승 4무 8패로 2위를 2.5게임 앞서며 1위를 달리고 있다. 몇몇 야구팬들은 ‘이젠 SK가 1위에 있는 게 당연하게 보인다’고 할 정도다. 이쯤 되니 모두가 김성근式(식) 야구의 특별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특별함의 의미는 너무나 극단적이다. 한쪽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거둔 성과를 인정하고, 그를 ‘야구의 신’으로 추앙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김성근 야구는 재미없고 비열하다, 승리는 있을지라도 감동은 없다, 팬을 이끄는 스타 한 명 없는 감독 중심의 야구’라고 비난한다.

그도 그럴 것이 SK는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투수를 아끼지 않는다. 만약 경기 후반부이고 6 대 1 정도로 이기고 있다면, 다른 팀 같으면 감독은 투수자원을 아끼기 위해 주력 선수를 내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김 감독은 경기가 뒤집힐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투수진을 운영한다.

많은 투수가 동원되다 보니 ‘벌떼야구’, ‘출첵야구’(투수를 출석 체크하듯이 교체한다는 뜻)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상대팀 입장에선 이런 SK가 더더욱 버거울 것이다.

宣銅烈(선동열) 삼성라이온즈 감독은 크게 앞선 9회에도 이른바 ‘필승조’를 투입하는 김성근 감독의 투수 운영을 두고 ‘剖棺斬屍(부관참시)’란 말로 반감을 드러냈다. 일부 팬들은 역전 가능성을 줄여 야구를 재미없게 만든다고 아우성이다.

SK를 둘러싼 잦은 빈볼(고의로 타자 머리 쪽으로 던지는 공) 시비는 김성근식 야구를 또 한번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2007년 7월 5일의 삼성전, 7월 7일과 20일 롯데전에서 연거푸 빈볼 시비가 나오더니, 두산과의 한국시리즈까지 이어졌다. 2008년에도 6월 15일 기아전에서 빈볼 시비가 터져 나왔고, 올 4월 23일 경기에서도 SK의 투수 채병용이 롯데 조성환에게 던진 위협적인 몸에 맞은 볼(hit by pitch)은 그 정점이었다.

선수 당사자들이 화해함으로써 고의성 논쟁은 일단락됐지만, 김성근 감독에 대한 비난은 계속 이어졌다. 평소 김 감독이 SK 투수들에게 위험스러울 정도로 ‘몸쪽 볼 승부’를 독려했던 점, 이 때문에 유독 SK와의 경기에서 빈볼 시비가 잦았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김성근 야구가 도마에 올랐다. 빈볼이 아닌 최병용의 실투라는 것을 야구인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팬들의 반응은 민감했다.

스타가 없어도 승리한다

2007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김성근 감독이 최태원 SK 회장(오른쪽) 등과 엄지손가락을 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근의 SK에 걸출한 스타가 없다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지난해 SK는 시즌 선두를 질주했지만, 올스타전에서 팬 투표 올스타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일부 팬들은 이에 대해 “선수를 기계의 톱니처럼 여겨 철저히 감독 중심의 야구를 펼친 결과, 스타플레이어 없는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비아냥거렸다.

모든 비판은 김성근 감독이 ‘승리지상주의 야구’를 한다는 점으로 모인다. 쌍방울 감독을 맡던 1996년, 그는 총 143개의 희생 번트를 지시했고, 이 기록은 지금껏 깨지지 않고 있다. 경기를 관람하는 팬의 입장에선 오밀조밀하게 점수를 낸 후, 역전의 기회마저 사라지게 하는 일방적 경기가 재미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로 선수와 감독이 이기기 위해 경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요, 이 바닥의 진리다.

모든 프로야구 감독은 나름의 경기 운영 방식을 갖고 있다. 두산의 김경문 감독과 한화 김인식 감독은 찬스가 나오면 선수에게 전권을 일임하는 반면 김재박 LG 감독은 여러 찬스에서 자주 번트를 대곤 해 대조를 보였다.

덕아웃 스타일도 각기 다르다. 롯데의 로이스터 감독과 김경문 감독이 선수들과의 친화력에 앞장선다면, 김인식, 김재박 감독은 뒤에서 묵묵히 선수들을 바라보는 스타일이다.

이들의 스타일에 대해 누가 좋고 나쁘다고 평가를 내릴 순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막강한 감독들 사이에서 SK가 2년 연속 우승을 했고, 현재 1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김 감독의 방식을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스포츠에선 상대방의 경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를 이기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야구 인생

‘김성근 야구’를 이해하려면 우선 ‘인간 김성근’ 개인의 인생사를 짚어야 한다. 김 감독은 다른 국내 감독들과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1942년 12월,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나 가쓰라(府立桂)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교포학생 모국방문 경기 때 고국 땅을 밟았고, 이듬해 졸업 후 재일교포 성인구단 방문경기를 한 후 동아대 야구팀에 스카우트됐다.

1961년 동아대를 중퇴한 그는 교통부에 입단, 기업은행 창단 멤버로 1968년까지 명투수로 활동했다. 1962년엔 제4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선발돼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대통령배 가을리그 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1964년 실업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올랐다. 그러다 어깨 부상을 당해 외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재일교포 선수들이 지도자로 성공하지 못한 이유

김 감독이 선수로 활동했던 1960년대 당시 한국야구에서 재일교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재일교포 선수들의 모국방문 경기가 열리면 그들이 보여주는 선진야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국내 선수들은 언제나 재일교포 선수들의 기량에 주눅이 들었다.

그때마다 국내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많은 자극을 받으면서 일본 야구 기술을 배웠다. 이처럼 우리나라 아마야구 실력이 일본보다 크게 뒤졌던 1960년대부터 제법 발전한 1980년대 초까지 재일교포 선수들이 우리 야구 발전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재일교포 선수들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묘한 감정의 희생양이 됐다. 속된 말로 ‘왜놈도 아닌 것이, 한국인도 아닌 것이’라는 놀림 속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그나마 선수 위치에 있을 때는 괜찮은 편이었다. 제5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때 우리 국가대표로 맹활약했거나, 실업야구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한 배수찬, 김호중, 박정일, 신용균, 김동율 등 재일교포 선수들이 우리 야구 역사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재일교포 선수라는 꼬리표는 그럭저럭 버텨낼 만했던 것 같다.

문제는 지도자라는 한정된 자리다. 감독은 객관화된 성적으로 당장 잘하는 선수를 기용해야 했기 때문에 재일교포를 필요로 했을지는 몰라도, 지도자는 꼭 그런 자리만은 아니었다. 지도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적이나 실력 외에도 地緣(지연), 學緣(학연)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우리나라처럼 연고집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재일교포들은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많은 재일교포 출신 선수들이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국에 남아 지도자 생활을 프로까지 한 감독은 김영덕, 김성근이 유일하다.

그들은 비주류가 떠안아야 할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강한 ‘보호본능’을 키워야 했다. 스포츠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보호 본능은 ‘실력’이다.

김성근 감독은 승부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실제로 그는 지도자 생활 중 他意(타의)로 자주 ‘옷’을 벗었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팀 컬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된 적도 있다.

김 감독은 살아남기 위해 더 완벽한 성적을 추구했다. 야구를 단순히 경기가 아닌, 전쟁으로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쩌면 승리지상주의로 가득한 한국 사회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김성근을 만든 또 다른 힘은 아마추어 지도자 경험이다. 김 감독은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충암고와 신일고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아마추어 감독 생활을 했다. 이밖에도 야구계 野人(야인) 생활을 할 때마다 대학교 야구팀에서 인스트럭터를 맡는 등 꾸준하게 현장에서 어린 선수들과 부대끼려고 노력했다. 프로 감독 중 이렇게 아마추어 지도자 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한화의 김인식 감독과 김성근 감독이 유일할 것이다.

아마추어팀에서 얻은 교훈

野神 김성근 감독은 대학교 야구팀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 성균관대 선수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있는 김성근 감독.

김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를 경험하면서 선수들의 기량뿐만 아니라 의식수준과 선수를 다루는 방법도 터득했다. ‘지옥훈련’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연습량과 철저한 선수 관리로 정평이 난 근원은 아마추어 지도자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자율은 선수 자신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할 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방종이 된다는 그의 지론은 이때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한 결과, 선수는 감독 수준으로 생각할 수 없으므로 감독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각자 다양한 성향의 어린 선수들을 접하면서 성인 야구 선수들에 알맞은 리더십을 키워 왔다. 김 감독이 프로 선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 심리를 파악하고 강약 조절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타급 선수에게도 “그게 프로선수냐, 똑바로 안 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감 속에 이미 선수 개개인의 스타일을 파악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한국 야구의 수준과 현실을 철저히 깨달았고, 그 바탕에서 선수를 다뤘다. 이것이 팀의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살아남기 위해 야구에 전념했고, 아마추어 야구를 접하면서 그는 ‘야구의 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의 만남

2002년,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는 LG감독에서 물러난 후 또다시 야인이 돼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의 순회코치를 맡았는데, 그 팀 감독이 미국 출신의 바비 밸런타인이었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일본式(식) 야구로 승부했던 그가 미국이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그때 일본 야구를 미국 야구와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일본으로 가기 전까지 김 감독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지도자였다. 코치들의 영역까지 모두 자신의 권한하에 둬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미국 메이저리그는 선수 한 명 한 명이 모두 하나의 기업이다. 감독보다 몇 배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을 감독이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감독은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 함께 호흡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팀 운영·관리법을 배웠고, 이는 곧 일본식 야구의 일부 단점들을 미국식으로 보완해 나가는 전환점이 됐다.

이후 SK 감독을 맡으면서 자신이 직접 다 챙기지 않더라도, 팀이 잘 ‘굴러가게’ 만들었다. ‘사람을 매니지먼트하는 것 역시 감독’이라는 개념의 메이저리그 감독의 관리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SK를 맡기 전, 김 감독은 다른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 사이의 관계에 크고 작은 곤란을 겪곤 했다. 한국 선수들도 일단 프로인 이상 자신의 모든 권한을 감독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자존심 센 스타급 선수들과는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더구나 김성근은 야구계에선 변방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SK는 달랐다. 주력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선수단 결속을 위해 힘썼고, 감독을 신뢰하고 따랐다. 김성근도 달라졌다. 혼자 모든 것을 관리하던 시스템을 탈피, 어느 정도 ‘고참급’ 선수들에게 일임해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구단을 운영하는 감독의 여유가 선수들에게도 전달돼 서로 교감을 이뤘다.

‘이기기 위한 야구’에 모든 것을 건다

2006년 입단한 이만수(왼쪽) SK와이번스 신임 수석코치에게 김성근 감독이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그는 야구에 모든 것을 걸었고,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다. 솔직히 관중 입장에서 보면 그의 야구가 재미없을 수 있다. 많은 이가 “왜 선수한테 맡기지 못하고, 감독이 짜 놓은 각본대로 경기를 하게 하느냐”며 비난한다. 그들은 선수 위주의 시원시원한 미국식 경기를 들며 “김성근의 야구는 속이 좁다”고 말한다.

이런 비판은 모두 미국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의 근본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미국 야구는 시장 규모부터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지난 WBC 경기 당시 각 언론사가 미국 선수 한 명 연봉과 우리 국가대표 전체 연봉을 비교했겠는가. 선수 개개인에게 엄청난 연봉이 흘러들어가는 미국은 결국 선수 중심의 야구로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선발투수가 초반에 난타를 당하고 패전으로 갈 가능성이 지극히 높아도 투수교체를 쉽게 하지 않는다. 한국 감독들은 패전 가능성이 보이면 바로 교체한다. 한 술 더 떠 김성근 감독은 1회에도 선발투수를 가차없이 바꿔 버린다.

기업이 적자를 보면서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감독이 구단 성적에 온 힘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팬들을 위해 야구를 하는가, 이기기 위해 야구를 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화끈하게 승리해 팬들을 열광시키면 錦上添花(금상첨화)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김성근 감독은 승리를 위해 최적화된 팀과 선수, 그리고 감독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래서 ‘이기기 위한 야구’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기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 많이 훈련하고, 더 많이 분석하는 것이다. SK는 최근 롯데를 상대로 15전 전승(15연승)을 이뤄냈다. 이 ‘역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미디어 데이 때 롯데의 외야수 정수근은 이렇게 말했다.

“연습을 제일 많이 한 팀에 지고 싶지 않다.”

올해 SK의 포수 박경완은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는 연습을 적게 한 팀에는 지고 싶지 않다.”

결과는 SK의 15연승이었다. SK의 선수들에게는 땀 흘린 만큼 보여주겠다는 투지가 있었다. 고된 훈련이 투지를 자극했던 것이다. 여기에 철저한 데이터 분석까지 곁들여져 15연승이라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두 팀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SK가 롯데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성근 감독은 롯데의 수비나 베이스러닝의 허점을 보면서 상황에 따라 맥을 짚어 가며 경기를 했고, 롯데는 상황에 대해 치밀하게 변화하는 SK에 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금도 진화하는 김성근의 야구

인간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김성근식 야구에도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단점만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가끔 그의 야구를 비난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이렇게 물어본다.

“그러는 당신은 김성근 감독보다 더 야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가. 당신도 야구를 종교처럼 여기고 오로지 야구에만 몰입하고 사는가.”

그의 야구 스타일이 틀렸다면, 일단 그를 이긴 뒤에 이야기해야 한다. 승부의 세계는 실력으로 평가된다. 김성근 감독처럼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자가 결국 모든 것을 얻는다.

김성근 감독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현장에서 뛰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 많은 베테랑일수록 나태해지기 쉽고, 옛것을 ‘우려먹으려’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끊임없는 탐구로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밸런타인 감독을 만나 지도자 생활의 전환점을 경험한 시기는 나이 예순이 훌쩍 넘었을 때였다. 나이 예순 살이 넘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기업으로 치면 고령의 경영인이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하는 셈이다.

야구의 신이라 추앙받고, 한국 프로야구 최고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지금도 묵묵히 책을 펼쳐든다. 경험과 새로운 지식이 축적돼 가면서 그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葉問(엽문)>에서 주인공 엽문이 북방에서 온 한 고수와 무술 대결을 펼친다. 다른 지역 고수들을 차례로 제압한 후 찾아온 그였지만 엽문을 이길 순 없었다. 그는 패배를 당하자, “오늘 북방이 남방에 졌다”고 했다. 그러자 엽문이 답했다.

“아니오. 북방이 아니라 당신이 약한 것이오.”

승부의 세계에서 방식과 파벌은 모두 핑계다. 어떤 방법을 선택했든,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김성근식 야구 비법’이란 말도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다. 김성근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만의 야구철학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결국 지금의 자신을 이뤄냈다. 그는 살기 위해 이겨야 했다.

누군가 또 김성근식 야구의 비법을 알려달라 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김성근의 방법이 아니라 김성근이 강한 것이오.”⊙

▣ ‘野神’김성근 감독이 본 허구연

부단히 노력하는 학구파

허구연 해설위원은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거치며 얻은 경험과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해박한 야구 지식으로 무장한 국내 최고의 해설자라고 생각한다.

선수 시절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던 허 위원은 이후 스스로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열심히 자기계발을 통해 배움의 길로 들어선 학구파 야구인이다.

매사에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항상 연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최근엔 야구 중흥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허구연 위원의 앞날에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허구연의 야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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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이 본 ‘野神’ 金星根

“그는 살아남기 위해 이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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