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6·25 남침 피해유족회’ 白漢基 회장의 끝나지 않은 6·25 : 월간조선

‘6·25 남침 피해 유족회’ 白漢基(백한기) 회장의 명함에는 이런 구호가 적혀 있다.

“김정일 추종세력 말살.”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6·25 남침 피해유족회’ 사무실 벽면 두 곳에는 이런 구호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김정일·김대중·노무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다소 과격해 보이는 이 두 개의 구호를 실천하는 일은 올해 만 75세인 백 회장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 회장은 ‘6·25 참전 유공자 백골유격대 대장’이라는 직책도 갖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주북중학교(현 전주고) 4학년이었던 백 회장이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백골유격대를 결성해 빨치산과 전투를 벌이면서 만들어진 직책이다.

백 회장은 보수단체들이 주도하는 국민대회가 열릴 때마다 자신이 이끄는 단체의 회원들을 이끌고 반드시 참석한다. 각종 국민대회 때마다 연사로도 참여하지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천과 행동이다.

지난해 ‘촛불시위’가 서울 중심부를 뒤흔들었을 때 그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친손자(승오)와 함께 촛불시위의 중심지였던 청계광장에서 촛불반대 시위를 벌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촛불시위를 지원하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거리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그가 보수단체들이 개최하는 집회현장에서 즐겨 하는 말이다.

“친북좌파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나는 그런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김정일 집단을 숭배하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김정일 추종세력일 뿐입니다. 김정일 추종세력은 抹殺(말살) 대상이지, 共生(공생) 대상도 타협 대상도 아닙니다.”

그의 강경한 발언을 들으면 마치 그의 삶이 김정일 추종세력 척결을 위한 투쟁으로 점철됐던 것으로 느껴진다. 6·25전쟁 당시 유격대장으로서 빨치산과 死線(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를 벌였지만, 전쟁이 끝난 후 백 회장의 삶은 ‘거리의 보수 투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사업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호남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金大中(김대중) 선생님’을 그 역시 호남 사람으로서 열렬히 지지했다.

“그 사람(김대중)이 미국에 망명해 있다가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하는 장면을 TV 뉴스에서 보고 감격해서 울었어요. 공항으로 직접 환영을 나가지 못한 게 한이 될 정도였죠. 당시 나한테 그 사람은 神(신)이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전북 고창에서 활동한 ‘백골 유격대’대원들의 모습. 앞줄 오른쪽 첫번째가 백 회장이다.

‘神’을 버리고 택한 길

백 회장은 주변 사람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명하면서 ‘선생’이나 ‘씨’ 字(자)를 붙이지 않는 사람은 뒤통수를 후려쳤다고 한다. 그에게 ‘김대중’이란 존재는 민주화 투쟁의 화신이고, 전 세계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투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 회장은 그 신을 버렸다. 버린 정도가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계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9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확정된 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의, “김정일 위원장과 공동 수상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같이 받았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 회장은 그 기자회견 내용을 접하면서 “한마디로 머리가 확 돌았다”고 한다.

“세상에! 세계적으로도 영광스럽고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인 노벨평화상을 殺人魔(살인마) 김정일이 하고 같이 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니 내 머리가 안 돌겠습니까. 내가 6·25사변 때 그 김정일 父子(부자) 때문에 사선을 넘나든 사람 아닙니까.”

그 후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리면 그는 열심히 참여했고, 나름 최선을 다해 후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요즘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과거사위와의 싸움은 지난해 4월 과거사위가 ‘고창 11사단 사건, 함평 수복작전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과거사위의 발표에 따르면 ‘고창 11사단 사건’이란 ‘1950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해리면, 대산면 등 전라북도 고창군 일대에서 민간인 273명이 공비토벌을 이유로 국군 제11사단에 의해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총살된 사건’이다.

과거사위는 이 결정에서 국가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등을 권고했다. ‘고창 11사단 사건’은 고창 백골 유격대장을 맡아 빨치산과 전투를 벌인 백 회장과도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건이었다.

국군에 의한 희생만 거론하는 과거사委

과거사위가 국군에 의한 총살로 발표했던 박모씨의 가족이 박모씨는 군인이 아닌 빨치산과 경찰의 교전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증언한 자필 확인서.

과거사위의 ‘고창군 11사단 사건’ 결정 발표 후인 6월 10일 ‘6·25 남침 피해유족회’ 측은 과거사위에 진실규명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이의신청을 냈다. 7월에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을 내는 한편, 과거사위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올 2월에는 감사원에 과거사위 위원장 및 상임위원들의 직무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감사 신청을 냈다. A4 용지로 수백 장에 달하는 이의신청서, 청원서, 고소장 등이 요구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과거사위의 조사내용 및 결정주문이 좌편향된 신청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인용,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보이므로 이를 바로잡아 달라”는 말로 요약된다. 백 회장의 말이다.

“전쟁 중에 사람이 죽을 수는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창 지역에서는 국군에 의한 집단 양민학살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창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수복이 늦었고 1950년 11월 고창읍이 수복된 이후에도 일부 면에서는 인민화폐가 통용될 정도로 좌익 세상이었습니다. 수복이 늦어지면서 오히려 좌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6·25전쟁 당시 공보처 통계국이 작성한 좌익들에 의한 피살자 명단만 봐도 2393명입니다. 우리는 좌익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가 4000명 정도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거사위는 인민군이나 빨치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조사는커녕 언급조차 없고 국군에 의한 희생 사건만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왜곡까지 하면서. 이게 제대로 된 조사입니까.”

검찰, 감사원 등 정부기관에 고소, 재조사 요구를 하는 한편으로 백 회장은 직접 과거사위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증거 수집에 나섰다.

과거사위가 지난해 4월 밝힌 ‘고창 11사단 사건’은 고창군 해리면, 대산면, 상하면 등에서 발생한 5개 사건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 5개 사건을 통해 최소 민간인 273명이 국군 11사단에 의해 집단 총살되었다는 것이다.

백 회장은 이 5개 사건 중 첫 번째로 거명된 해리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자신도 해리면 동호리 일대 등에서 백골유격대를 이끌고 빨치산과 전투를 벌였었기 때문이다. 과거사위는 이 사건에서 273명 중 105명이 희생된 것으로 발표했다. 다음은 해당 부분 발표문이다.

‘1950년 12월 22일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6중대가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 선창가 주변, 심원면 고전리·만돌리 주변 해안에서, 인근지역에서 몰려온 피란민 200~330여 명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사살하였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 등 105명이다.’

백 회장은 이들 105명의 명단을 훑어보았다. 학살이 벌어졌다는 동호리 파출소를 수복한 날이 1951년 1월 20일이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 회장은 경찰과 함께 동호파출소 탈환 작전에 백골유격대를 이끌고 참가했기 때문에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호파출소 탈환 후 경찰은 부역혐의자들을 체포했다. 파출소 영창이 반 평 정도로 비좁자 경찰은 부역혐의자들의 일부를 인근 삼양사 창고로 이송해 가둬 놓고 있었다. 그때 창고에 갇혀 있던 부역혐의자 가운데는 고창 지역에서 유명했던 빨치산 외팔이 부대 박 모 대장의 부친과 바로 밑의 동생도 있었다.

백 회장의 백골유격대 부대원들은 동호파출소를 탈환한 지 한 달여가 됐을 때 오랜 기간 전투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잠시 휴가를 얻어 현지를 떠났다. 바로 그 직후 빨치산 외팔이 부대의 동호파출소 습격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빨치산과 경찰의 교전 중 창고에 갇혀 있던 부역혐의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백 회장은 과거사위가 고창 11사단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라고 발표한 사람들 가운데는 그때 사망한 부역혐의자들의 이름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백 회장의 짐작이 맞는다면 과거사위가 발표한 내용 중 일부가 허위로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백 회장은 명단에서 외팔이 부대 박 모 대장의 동생일 것으로 짐작되는 박 모씨의 이름을 발견했다. 백 회장은 지난 3월 17일 ‘6·25 남침 피해유족회’ 간부들과 함께 박모씨가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고창으로 달려갔다.

박 모씨는 백 회장 일행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죽은 경위를 설명했다. 다음은 백 회장의 “왜 당신 가족을 군인이 죽였다고 진술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박 모씨의 답변을 녹취한 내용 요약이다.

“아버지와 형은 동호파출소 부근 삼양사 창고에 한 달 이상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빨치산과 경찰이 교전하고 난 후 사망했습니다. 다음날 시신이 있는 해변가에 가서 두 분의 시신을 찾아 장사를 지냈습니다.”

박 모씨는 이날 자신의 부친과 형이 군인에게 처형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을 확인해 주는 확인서를 ‘6·25남침 피해유족회’ 앞으로 自筆(자필)로 써 주었다.

백 회장은 박 모씨의 증언을 근거로 지난 3월 25일 과거사위 위원장과 11사단 사건 담당 조사관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백 회장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과거사위의 이런 오류를 적극 알렸다. 한나라당 申志鎬(신지호) 의원도 고창 11사단 조사에 나섰다. 신 의원은 과거사위가 고창 11사단 사건 희생자로 발표한 273명 가운데 105명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105명 가운데 연락처가 파악된 57명의 유족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7명은 빨치산에 의해 죽었거나 사망 원인이 분명치 않은데도 국군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신 의원은 이 같은 조사결과를 지난 4월 23일 공개했다.

신 의원이 이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백 회장은 지난 5월 중순 과거사위 관계자들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죄’ 등으로 추가 고발했다. 백 회장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나이 들어서 귀찮지도 않으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내가 6·25 때 적들에게 잡혀서 죽도록 고문도 당하고 아버지도 빨갱이들에게 학살됐지만 내가 원수로 여기는 놈들은 한 놈도 남아 있지 않고 다 죽었어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따지자면 원수를 갚고도 넘치게 갚은 셈이죠. 그런데 대한민국 땅에서 대한민국을 적화통일하려는 적대 세력이 창궐하고 있어요. 이걸 두고 구경만 할 수는 없어요. 조국은 나이로 지키는 게 아니라 열정으로 지키는 겁니다. 나는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명분으로 좌편향으로 역사를 다시 쓰려는 과거사위 같은 기관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좌익들에게 일본刀로 처형당한 부친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손자 백승오군(左)과 촛불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백 회장(右).

―부친(남순)께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아는데요.

“아버지가 8·15광복 후 한독당 전남 장성군 부일면 위원장을 하셨어요. 씨름을 하셨는데 빨갱이들이 참 무서워했죠. 1950년 7월이었는데 장성군 인민재판장 최 아무개가 일본刀(도)로 도로에서 목을 베었죠.”

백 회장은 긴 한숨을 쉰 후 잠긴 목소리로 아버지 이야기를 이었다.

“6·25 때는 부모고 형제고 죽은 사람 시체 수거해서 파묻기라도 하면 영광이었죠. 나는 아버지가 대한민국에 충성하셨으니까 敵(적) 치하에서 처형당한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고 봐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약과니까. 부모 잃고 형제 다 잃고 가족이 열 몇 명씩 빨치산에게 죽은 사람이 내 곁에는 숱해요. 그런데 과거사위가 그런 진상 조사는 안 해요. 그 사람들의 아픔과 비교하면 내가 당한 아픔은 밥 먹다가 밥숟가락 빼앗긴 정도밖에 안돼요.”

―6·25전쟁 전에는 중학생 신분이었는데 우익단체에 가입한 적은 있습니까.

“전국학생연맹이라는 게 있었어요. 우익단체인데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입해서 ‘고창 전국학생연맹’ 정보부 차장을 맡았죠. 좌익들은 민주학생동맹을 결성해서 우리와 싸웠죠. 좌익들은 왜 꼭 ‘민주’ 자를 붙이는지 몰라.”

백 회장은 전주북중 4학년 때 6·25전쟁을 맞았다. 백 회장은 고창이 인민군과 빨치산 치하에 떨어지자 다른 중학생 16명과 함께 백골유격대를 조직해 빨치산과 전투를 벌였다. 백 회장이 이끄는 백골유격대의 활동은 白善燁(백선엽) 장군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實錄智異山(실록 지리산)’에도 소개돼 있다. 1991년 6월 11일자 ‘전쟁과 인민유격대’ 편에서 백 장군은 백골유격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7명의 중학생으로 구성된 ‘백골유격대’가 고창 빨치산 토벌의 선봉에 섰고, 빨치산도 소년 유격대를 두려워했다.’

당시 인민군과 빨치산이 백골유격대 백 회장의 목에 쌀 260석을, 대원들에게는 1000석의 현상금을 내걸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 ‘소년 유격대’의 존재가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지금 벌이는 전쟁이 더 살벌”

―백골유격대 출신 중에 생존자는 몇 명입니까.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에요. 미국으로 건너가서 의사를 하던 대원 한 명은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데 연락이 안되는 걸 보면 먼저 이 세상을 떠난 것 같아요.”

―술, 담배는 합니까.

“담배는 원래부터 냄새도 못 맡습니다. 술은 예전에는 좀 했는데 5~6년 전부터 끊었어요. 내가 성격이 과격한 편이라 괜히 술 먹고 실수하면 ‘보수한다는 놈이 저런다’는 소리 들을까 봐서죠.”

―가스총은 왜 소지하고 다닙니까.

“김정일 추종세력들이 하도 나를 없애겠다고 하니까….”

―언제쯤 이 전쟁이 끝날까요?

“글쎄요. 김정일이 죽으면 끝날라나? 나는 요즘 6·25전쟁 때보다도 지금 벌이는 전쟁이 더 살벌하다는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