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일으킨 변화의 물결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내세우며 선거활동을 하고 있는 샘 윤 의원은 출마 연설에서 확신한 것처럼 키 크고 마른, 童顔의 젊은 아시아인이 보스턴의 54대 市長으로 당선되는 또 하나의 기적을 연출할지도 모른다.
김혜정 在美 자유기고가
김혜정 在美 자유기고가
2005년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보스턴 시의원에 당선됐던 샘 윤(39·한국명 윤상현)은 2년 뒤인 2007년 선거에서 최다 득표로 백인 경쟁자들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3월 9일, 그는 유튜브에 “올 가을 보스턴 시장선거에 출마한다”는 출사표를 올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소수 백인 주도의 미국 정치판에서, 전통적으로 백인 강세인 보스턴에서, 그곳 태생도 아닌 샘 윤이 압도적인 지지로 시의원에 재선할 수 있었던 요인은 빈민들과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그의 정치적 포용력 덕분이었다.
샘 윤은 “보스턴 정치는 더 이상 소수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할 준비가 된 사람들의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시장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한 후, 韓人(한인) 지역사회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4일부터 이틀간 열린 뉴욕후원회에 참석한 그는 필자를 만나 “지금 걷는 길은 소명(calling)인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스턴을 비롯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문화나 가치관 등을 통해 미국사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활용해 정계에 진출하려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성실함, 책임감 등을 발휘해 점차 다민족·다문화화되어 가는 미국사회에서 한인 교포사회와 보스턴 시민들의 공익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보스턴에 변화를 불어넣겠다”
―보스턴 시장선거에 출마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인가요.
“지난 3년 동안 시의원으로 재직하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보스턴市(시)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서 깊은 도시지만 보스턴의 정치 상황은 도시 명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보스턴의 정치인들은 권력 자체에 관심을 가졌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스턴 스타일의 정치가가 아닙니다. 공립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지역사회 운동가로서 서민의 살 집 마련해 주기 운동에 참여했고, 대학원에서 행정조직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기존의 정치가들과는 차별화된 문제해결 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샘 윤과 시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일 상대는 마이클 플레어티 시의원과 토머스 메니노 現(현) 시장이다. 그는 “마이클 의원의 가문 배경, 토머스 시장의 15년 시장직 연임은 보스턴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정치판을 반영한다”며 “나의 시장 출마가 시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근본적인 변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긍정적인 면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변화’를 주제로 캠페인을 했지만, 자신이 변화 그 자체였습니다. 그에게는 화려한 정치경력도 없었고, 정치 세력을 형성할 겨를도 없이 대선 출마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변화가 보스턴에도 필요합니다. 저 또한 오바마처럼 보스턴에 ‘변화’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스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척 터너 시의원의 뇌물 사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보스턴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리더십이 바뀌어야 합니다. 토머스 메니노 현 시장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16년간이나 시장직에 머물러 있다면 매너리즘에 빠져 근본적인 혁신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샘 윤 의원은 “짧은 정치경험이나 소수민족 출신이란 점이 약점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점들이 보스턴의 변화를 주도할 참신한 지도자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가족이 겪을 부담 때문에 시장 출마 발표를 주저했었지만, 부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출마를 결정했다고 한다.
―보스턴시 발전을 위한 비전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정치인들이 해야 할 체계적인 ‘변화’는 좀 더 많은 권력과 정치력을 시민들의 손에 맡기는 일입니다. 시의 행정을 좀 더 개방해 투명화하자는 겁니다. 시의 예산집행이 늘 비공개리에 운용되고 있고, 시민들의 참여 없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선거자금 마련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정치전문가들은 경쟁후보들에 비해 제가 선거자금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00만 달러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 ‘2009클럽’을 만들었습니다. 2009명이 500달러씩 기부하면 1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한 개인이 500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10명의 친구에게 50달러씩 기부하라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100명이 5달러씩 기부하게 된다면 모금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 졸업 후 빈민촌 활동
<보스턴글로브>紙(지)에 따르면, 현재 토머스 메니노 시장은 14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확보했고, 사우스 보스턴의 토박이 시의원인 마이클 플레어티도 6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샘 윤은 현재 14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일으킨 변화의 물결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내세우며 선거활동을 하고 있는 샘 윤 의원은 출마연설에서 확신한 것처럼 키 크고 마른, 童顔(동안)의 젊은 아시아인이 보스턴의 54대 시장으로 당선되는 또 하나의 기적을 연출해 낼지도 모른다.
―2005년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보스턴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당시 당선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보스턴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를 열망했기 때문입니다. 보스턴의 아시안 커뮤니티는 제가 아시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현직 히스패닉 시의원이 처음으로 공식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그의 지지는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후 이탈리아계 시의원 등 현직 시의원들의 공식 지지가 이어져 각 커뮤니티의 지지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보탬이 됐습니다.”
당시 선거 전문가들은 “상대 후보 중 국무장관의 아들을 비롯해 전직 시장 자녀가 둘씩이나 있는 선거라 애초부터 샘 윤 후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샘 윤의 지역사회 참여 경험과 공약이 보스턴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면서 기적적인 역전극을 일궈냈다.
―생후 10개월 만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습니다. 윤 의원에게 한국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한국은 저의 영원한 조국이고,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제가 태어난 1970년 이후 한국에서는 급격한 정치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탄탄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고, 더구나 기업가 출신 대통령도 탄생했습니다. 북한 문제가 현재로서 걱정스럽지만, 언젠가는 조국이 통일되는 날이 꼭 오리라고 봅니다.”
샘 윤 의원은 “작년 해외동포재단 초청으로 15년 만에 한국을 다녀왔다”면서 “제주도는 세계 어느 나라의 고급 휴양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지만, 판문점에서 분단의 현실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을 졸업한 후 왜 보스턴의 빈민촌으로 들어갔나요.
“제가 살았던 뉴저지州(주)의 프린스턴은 富村(부촌)이었지만, 그곳에서 30분 거리에는 마약·범죄·빈곤으로 신음하는 트렌턴이라는 공업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미국사회의 불평등에 눈을 떴고,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도구가 정치라고 생각한 겁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모님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란 펜실베이니아 교외 지역에서 부모님은 한인교회의 리더로서 명절 때마다 사람들을 초대해,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스턴의 오바마’
샘 윤은 차이나타운에서 커뮤니티 재개발 및 저소득층 주택 ‘어포더블 하우징’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ACDC(Asian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의 디렉터로 일했다.
1950년대 보스턴시는 93번 고속도로와 90번 고속도로(Mass Pike)가 만나는 곳에 인터체인지를 만들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있는 6070㎡에 달하는 땅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보스턴시는 차이나타운 소재 150여 가구의 주택을 사들였다. 그러나 빅딕터널(보스턴의 터널프로젝트)로 인해 이 인터체인지가 지하로 들어갔고, 상당 분량의 땅이 남아돌게 됐다.
샘 윤이 ACDC 디렉터로 일하던 2002년, 차이나타운 관계자들은 이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1500만 달러에 달하던 땅을 불과 40만 달러에 사들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은 보스턴시가 속한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장 살바토르 디매시, 다이앤 윌커슨 상원의원이었다. 샘 윤은 이들을 보며 ‘정치인들이 사회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정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정치입문을 결정했다고 한다.
샘 윤의 잠재력을 알게 된 일부 정치인들은 그의 출마를 권유했고, 2005년 11월 9일 보스턴시 시의원 선거에서 최초의 아시안 의원이란 기록을 세우며 당선됐다. 그는 “정치인으로 알려지기보다는 보스턴시가 직면한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해결사가 되고 싶다”며 “쉽게 간과할 수 있는 市政(시정) 사안들을 신중히 검토한 뒤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준희(미국명 준 최) 에디슨 시장은 윤 의원을 ‘보스턴의 오바마’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출마에 고무된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에는 당신은 너무 어리고, 또 대권 도전이 너무 큰 욕심이니 좀 더 때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을 통해 세간의 충고들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저 또한 똑같은 세간의 비평들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시민들이 원하는 건 정치가가 어떻게 시민들을 리드해 가며, 무엇을 성취해 내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연방의원, 주지사 하나 없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현실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킹인 ‘K-100’은 무엇인가요.
“차이니즈 커뮤니티가 미국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계 미국인 100명으로 구성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그것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K-100’을 통해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사회·정치분야에 반영될 수 있게 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이 네트워크의 결성은 한인사회뿐 아니라 미주 전체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치가가 되기를 원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우리 스스로 미 행정부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코리안아메리칸들이 미 행정부나 법조계, 그리고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워싱턴 교육감 미셸 리,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예일대 법대 학장 헤럴드 고 등 많은 분이 코리안아메리칸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출신국적별 혹은 인종별 커뮤니티 인구의 비율을 의회와 선출직 공무원의 인종구성비와 비교했을 때, 유대인은 타민족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공직 진출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시아계는 공직 진출 비율이 다른 인종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아시안 중에서 한인들의 공직 진출률은 극히 저조하다. 코리안아메리칸의 인구 비율로 본다면, 연방 의회에 두 명 이상의 의원을 보유해야 하지만, 현재 연방 하원의원이나 주지사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1958년 로버트 장(주 하원의원), 필립 민(주 하원의원)이 처음으로 하와이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알프레드 송씨가 1961년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에 이어 1965년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미국 본토 정치권 진입에 성공했다. 다시 25년이 흘러 임용근(오리건주 하원의원), 신호범(워싱턴주 상원의원), 김창준(캘리포니아주 연방하원의원)이 정계에 입문, 본격적인 한인들의 주류정치 시대를 열었다.
최근에는 한인 2세 정치인들의 정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한인들은 한인 정치력 신장을 도모하는 단체들을 조직했다. 한인 정치인들 사이에선 지역단위 소규모 커뮤니티 운영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고 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며 정치적인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단결된 모습과 적극적 정치활동으로 한인사회는 더 큰 위상과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의 정치외교적 현안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한인정치인들은 양국 외교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한미관계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지난 2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한국에는 10만명 이상의 미국시민이 있고, 미국에는 200만명 이상의 한국계 미국인이 있다. 그것이 한미관계의 토대”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시대의 외교는 민간외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간의 외교보다 민간외교에 힘이 실리는 대목인데, 한인들의 정치적인 영향이 커질수록 민간외교가 더 활성화된다는 점에서 한인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 샘 윤은 누구인가?
뉴저지의 명문 아이비리그 프린스턴大(대) 졸업 후 트렌턴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공립학교 교사를 거쳐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수학했다. 대학원생이던 그는 록스버리의 더들리스퀘어 상인연합과의 일을 시작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커뮤니티 운동가로서 소규모 비영리단체들과 일하면서 지역사회운동가로 기반을 닦았다.
윤 의원이 처음 일한 곳은 정신병 환자들과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거처를 제공해 주는 단체였고, 후에 커뮤니티 빌더라고 하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비영리단체에서 서민들을 위해 저렴한 주택을 제공해 주는 일을 했다.
2005년 보스턴 단일선거구 시의회(Boston City Council At-Large) 선거에 입후보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보스턴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예산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예산 심의가 있을 때마다 이메일 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2008년에는 최다득표를 하며 재선에 성공,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보스턴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했다.
오랫동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소수 백인 주도의 미국 정치판에서, 전통적으로 백인 강세인 보스턴에서, 그곳 태생도 아닌 샘 윤이 압도적인 지지로 시의원에 재선할 수 있었던 요인은 빈민들과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그의 정치적 포용력 덕분이었다.
샘 윤은 “보스턴 정치는 더 이상 소수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할 준비가 된 사람들의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시장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한 후, 韓人(한인) 지역사회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4일부터 이틀간 열린 뉴욕후원회에 참석한 그는 필자를 만나 “지금 걷는 길은 소명(calling)인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스턴을 비롯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문화나 가치관 등을 통해 미국사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활용해 정계에 진출하려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성실함, 책임감 등을 발휘해 점차 다민족·다문화화되어 가는 미국사회에서 한인 교포사회와 보스턴 시민들의 공익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보스턴에 변화를 불어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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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윤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 경선 시절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그도 오바마처럼 보스턴市에 ‘변화’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지난 3년 동안 시의원으로 재직하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보스턴市(시)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서 깊은 도시지만 보스턴의 정치 상황은 도시 명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보스턴의 정치인들은 권력 자체에 관심을 가졌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스턴 스타일의 정치가가 아닙니다. 공립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지역사회 운동가로서 서민의 살 집 마련해 주기 운동에 참여했고, 대학원에서 행정조직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기존의 정치가들과는 차별화된 문제해결 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샘 윤과 시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일 상대는 마이클 플레어티 시의원과 토머스 메니노 現(현) 시장이다. 그는 “마이클 의원의 가문 배경, 토머스 시장의 15년 시장직 연임은 보스턴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정치판을 반영한다”며 “나의 시장 출마가 시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근본적인 변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긍정적인 면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변화’를 주제로 캠페인을 했지만, 자신이 변화 그 자체였습니다. 그에게는 화려한 정치경력도 없었고, 정치 세력을 형성할 겨를도 없이 대선 출마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변화가 보스턴에도 필요합니다. 저 또한 오바마처럼 보스턴에 ‘변화’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스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척 터너 시의원의 뇌물 사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보스턴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리더십이 바뀌어야 합니다. 토머스 메니노 현 시장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16년간이나 시장직에 머물러 있다면 매너리즘에 빠져 근본적인 혁신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샘 윤 의원은 “짧은 정치경험이나 소수민족 출신이란 점이 약점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점들이 보스턴의 변화를 주도할 참신한 지도자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가족이 겪을 부담 때문에 시장 출마 발표를 주저했었지만, 부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출마를 결정했다고 한다.
―보스턴시 발전을 위한 비전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정치인들이 해야 할 체계적인 ‘변화’는 좀 더 많은 권력과 정치력을 시민들의 손에 맡기는 일입니다. 시의 행정을 좀 더 개방해 투명화하자는 겁니다. 시의 예산집행이 늘 비공개리에 운용되고 있고, 시민들의 참여 없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선거자금 마련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정치전문가들은 경쟁후보들에 비해 제가 선거자금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00만 달러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 ‘2009클럽’을 만들었습니다. 2009명이 500달러씩 기부하면 1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한 개인이 500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10명의 친구에게 50달러씩 기부하라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100명이 5달러씩 기부하게 된다면 모금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 졸업 후 빈민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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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윤 후보는 지난 3년간 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년층을 위한 재산세 면제, 공영주택 경비원들의 일자리 보장 등 많은 정책을 실현시켰다. |
하지만 오바마가 일으킨 변화의 물결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내세우며 선거활동을 하고 있는 샘 윤 의원은 출마연설에서 확신한 것처럼 키 크고 마른, 童顔(동안)의 젊은 아시아인이 보스턴의 54대 시장으로 당선되는 또 하나의 기적을 연출해 낼지도 모른다.
―2005년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보스턴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당시 당선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보스턴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를 열망했기 때문입니다. 보스턴의 아시안 커뮤니티는 제가 아시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현직 히스패닉 시의원이 처음으로 공식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그의 지지는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후 이탈리아계 시의원 등 현직 시의원들의 공식 지지가 이어져 각 커뮤니티의 지지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보탬이 됐습니다.”
당시 선거 전문가들은 “상대 후보 중 국무장관의 아들을 비롯해 전직 시장 자녀가 둘씩이나 있는 선거라 애초부터 샘 윤 후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샘 윤의 지역사회 참여 경험과 공약이 보스턴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면서 기적적인 역전극을 일궈냈다.
―생후 10개월 만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습니다. 윤 의원에게 한국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한국은 저의 영원한 조국이고,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제가 태어난 1970년 이후 한국에서는 급격한 정치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탄탄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고, 더구나 기업가 출신 대통령도 탄생했습니다. 북한 문제가 현재로서 걱정스럽지만, 언젠가는 조국이 통일되는 날이 꼭 오리라고 봅니다.”
샘 윤 의원은 “작년 해외동포재단 초청으로 15년 만에 한국을 다녀왔다”면서 “제주도는 세계 어느 나라의 고급 휴양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지만, 판문점에서 분단의 현실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을 졸업한 후 왜 보스턴의 빈민촌으로 들어갔나요.
“제가 살았던 뉴저지州(주)의 프린스턴은 富村(부촌)이었지만, 그곳에서 30분 거리에는 마약·범죄·빈곤으로 신음하는 트렌턴이라는 공업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미국사회의 불평등에 눈을 떴고,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도구가 정치라고 생각한 겁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모님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란 펜실베이니아 교외 지역에서 부모님은 한인교회의 리더로서 명절 때마다 사람들을 초대해,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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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윤을 시장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보스턴 시내에서 선거 캠페인을 하고 있는 샘 윤 지지자들과 그의 가족들. |
‘보스턴의 오바마’
샘 윤은 차이나타운에서 커뮤니티 재개발 및 저소득층 주택 ‘어포더블 하우징’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ACDC(Asian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의 디렉터로 일했다.
1950년대 보스턴시는 93번 고속도로와 90번 고속도로(Mass Pike)가 만나는 곳에 인터체인지를 만들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있는 6070㎡에 달하는 땅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보스턴시는 차이나타운 소재 150여 가구의 주택을 사들였다. 그러나 빅딕터널(보스턴의 터널프로젝트)로 인해 이 인터체인지가 지하로 들어갔고, 상당 분량의 땅이 남아돌게 됐다.
샘 윤이 ACDC 디렉터로 일하던 2002년, 차이나타운 관계자들은 이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1500만 달러에 달하던 땅을 불과 40만 달러에 사들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은 보스턴시가 속한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장 살바토르 디매시, 다이앤 윌커슨 상원의원이었다. 샘 윤은 이들을 보며 ‘정치인들이 사회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정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정치입문을 결정했다고 한다.
샘 윤의 잠재력을 알게 된 일부 정치인들은 그의 출마를 권유했고, 2005년 11월 9일 보스턴시 시의원 선거에서 최초의 아시안 의원이란 기록을 세우며 당선됐다. 그는 “정치인으로 알려지기보다는 보스턴시가 직면한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해결사가 되고 싶다”며 “쉽게 간과할 수 있는 市政(시정) 사안들을 신중히 검토한 뒤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준희(미국명 준 최) 에디슨 시장은 윤 의원을 ‘보스턴의 오바마’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출마에 고무된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에는 당신은 너무 어리고, 또 대권 도전이 너무 큰 욕심이니 좀 더 때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을 통해 세간의 충고들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저 또한 똑같은 세간의 비평들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시민들이 원하는 건 정치가가 어떻게 시민들을 리드해 가며, 무엇을 성취해 내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연방의원, 주지사 하나 없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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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윤 후보는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한다. |
“차이니즈 커뮤니티가 미국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계 미국인 100명으로 구성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그것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K-100’을 통해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사회·정치분야에 반영될 수 있게 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이 네트워크의 결성은 한인사회뿐 아니라 미주 전체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치가가 되기를 원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우리 스스로 미 행정부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코리안아메리칸들이 미 행정부나 법조계, 그리고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워싱턴 교육감 미셸 리,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예일대 법대 학장 헤럴드 고 등 많은 분이 코리안아메리칸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출신국적별 혹은 인종별 커뮤니티 인구의 비율을 의회와 선출직 공무원의 인종구성비와 비교했을 때, 유대인은 타민족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공직 진출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시아계는 공직 진출 비율이 다른 인종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아시안 중에서 한인들의 공직 진출률은 극히 저조하다. 코리안아메리칸의 인구 비율로 본다면, 연방 의회에 두 명 이상의 의원을 보유해야 하지만, 현재 연방 하원의원이나 주지사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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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윤 후보는 현재 아내 티나와 아들 나단, 딸 나오미와 함께 보스턴 도체스터 지역의 필즈코너에 살고 있다. |
최근에는 한인 2세 정치인들의 정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한인들은 한인 정치력 신장을 도모하는 단체들을 조직했다. 한인 정치인들 사이에선 지역단위 소규모 커뮤니티 운영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고 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며 정치적인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단결된 모습과 적극적 정치활동으로 한인사회는 더 큰 위상과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의 정치외교적 현안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한인정치인들은 양국 외교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한미관계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지난 2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한국에는 10만명 이상의 미국시민이 있고, 미국에는 200만명 이상의 한국계 미국인이 있다. 그것이 한미관계의 토대”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시대의 외교는 민간외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간의 외교보다 민간외교에 힘이 실리는 대목인데, 한인들의 정치적인 영향이 커질수록 민간외교가 더 활성화된다는 점에서 한인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 샘 윤은 누구인가?
뉴저지의 명문 아이비리그 프린스턴大(대) 졸업 후 트렌턴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공립학교 교사를 거쳐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수학했다. 대학원생이던 그는 록스버리의 더들리스퀘어 상인연합과의 일을 시작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커뮤니티 운동가로서 소규모 비영리단체들과 일하면서 지역사회운동가로 기반을 닦았다. 윤 의원이 처음 일한 곳은 정신병 환자들과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거처를 제공해 주는 단체였고, 후에 커뮤니티 빌더라고 하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비영리단체에서 서민들을 위해 저렴한 주택을 제공해 주는 일을 했다.
2005년 보스턴 단일선거구 시의회(Boston City Council At-Large) 선거에 입후보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보스턴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예산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예산 심의가 있을 때마다 이메일 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2008년에는 최다득표를 하며 재선에 성공,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보스턴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