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회의원들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너무 몰라”(金昌準)
⊙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과 아들이 감옥에 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어.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왜 복지사업이나 인권운동을 하지 않는가.”(金昌準 前 美 연방 하원의원)
⊙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르치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알면 최소한 反美는 하지 않아.”(林龍根 前 오리건주 하원의원)
⊙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FTA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FTA를 하겠다고 하면
연방 상·하원에서 통과될 것.”(愼昊範 워싱턴주 상원의원)
⊙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 美北 정상회담 추진. 클린턴 대통령이 내게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에
같이 가자’고 말해.”(愼昊範 워싱턴주 상원의원)
취재지원 : 張允曦 月刊朝鮮 인턴기자
⊙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과 아들이 감옥에 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어.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왜 복지사업이나 인권운동을 하지 않는가.”(金昌準 前 美 연방 하원의원)
⊙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르치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알면 최소한 反美는 하지 않아.”(林龍根 前 오리건주 하원의원)
⊙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FTA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FTA를 하겠다고 하면
연방 상·하원에서 통과될 것.”(愼昊範 워싱턴주 상원의원)
⊙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 美北 정상회담 추진. 클린턴 대통령이 내게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에
같이 가자’고 말해.”(愼昊範 워싱턴주 상원의원)
취재지원 : 張允曦 月刊朝鮮 인턴기자
흑인 출신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在美(재미)교포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韓人(한인) 이민 역사 100년에서 큰 충격 중의 하나라고 한다. 미국 내 한인 정치인들은 “소수민족으로 그동안 주류사회에 진입할 기회가 적었는데 검은 피부의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후 주류사회에 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고 전하고 있다.
이들은 한인사회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母國(모국)인 한국의 정치사회적 발전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7일 재미교포를 대표하는 한인 1세대 정치인 金昌準(김창준), 林龍根(임용근), 愼昊範(신호범)씨가 한국을 방문해 金炯旿(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났다. 이들은 김 의장과 재외동포 정치인 육성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2007년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결성한 세 사람은 올 9월 서울에서 제3회 ‘세계한인정치인포럼’을 개최한다. 세계한인정치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재외동포사회의 권익과 정치력을 신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 사람으로부터 해외에서 바라본 국내정치와 대북문제, 미국政街(정가) 소식과 韓美(한미)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金昌準│前 미국 연방 하원의원
⊙ 1939년 서울 출생.
⊙ 1961년 渡美.
⊙ 미국 남가주주립대,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졸업.
⊙ 미국 다이아몬드市(시) 시의원·부시장·시장, 미국 연방하원의원 역임.
⊙ 저서: <나는 보수다> <국산정치와 미제정치>.
金昌準(김창준·70·미국名 제이킴) 前(전) 미 연방 하원의원은 재미교포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 출신이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1992년 미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1998년까지 3선을 지냈다. 미국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근대사편에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상징적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 전 의원 외에 연방 의원이 된 한인 정치인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김창준 전 의원은 최근 대한민국 정책홍보 자문위원으로 선정돼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미국 사정에 밝은 그에게 한미관계 복원에 일조해 달라는 차원에서 자문위원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습니까.
“특별한 인연은 없어요. 대통령 선거 때 내가 도와준 것도 아니고요. 정책홍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날 기회가 생길 것 같군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 공약을 실현하는 데 무리가 있어요. 지금의 경제불황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한나라당이라고 별 도리가 있겠습니까. 똑같은 슬로건으로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 임했으니 당연히 참패할 수밖에요.”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부시 정부의 경제기조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였어요. 정부의 간섭을 막고 철저히 경제 논리에 시장을 맡기는 것이었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부동산 경기에 거품이 생기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어요. 은행 대출로 비싼 집을 산 사람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자 은행들이 연달아 부도상태에 빠진 겁니다. 결국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 개입을 내걸며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김창준 전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의 근로자들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세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는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어요. 미국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오바마의 정책방향이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현재까지는 큰 과오가 없다고 봅니다.”
“달러 위상 오래갈 것”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할 겁니다.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은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중국製(제)’하면 떠오르는 짝퉁 이미지를 지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4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미국 의회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현재 민주당이 연방 상원과 하원의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미 의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내년 봄쯤 가능하리라 봐요. 미국에서 반대의견이 나오기 전에 우리 국회는 빨리 통과시켜야 해요. 일단 통과시킨 후에 추가협상을 해야 우리가 유리합니다. 추가협상은 가능해도 재협상은 안됩니다.”
―한미 FTA가 어느 쪽에 더 유리합니까.
“미국보다 우리가 더 필요해요. 비준안이 상임위를 통과할 때 여야 의원들이 난리를 치던데, 미국 정치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웃고 있어요. 한국 경제는 무역이 85%를 차지해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자동차가 미국에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입니다. 냉장고나 TV도 마찬가지예요. 대체품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죠. 급한 쪽은 우립니다. 우리가 먼저 ‘FTA 하자’고 나서야 해요. 한국 국회의원들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너무 몰라요. 소속 정당에만 충성할 줄 알지 민생현안과 실질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무지한 것 같아요.”
그는 “한국이 살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 소원했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국제적 위신을 높여야 해요. 국제사회에서 삼성과 현대는 높이 평가해도 대한민국은 낮게 평가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강한 동맹국이 필요합니다. 북한 문제만 봐도 그래요. 지난 4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중국은 결국 북한을 옹호했어요. 일본이 우리를 돕겠습니까, 러시아나 영국이 돕겠습니까. 미국만이 우리 입장과 비슷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세계 최강인 미국을 두고 反美(반미)를 주장했지요. 맥아더 장군 동상을 끌어내리질 않나….”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궁합이 맞을 것으로 봅니까.
“金大中(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부와 비교하면 상상이 안될 정도로 잘 맞을 겁니다. 이전 정부는 사실상 미국을 敵(적)으로 생각했잖아요.”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한국 직원 억류사건도 제대로 못 풀고 있습니다.
“남한이 북한을 짝사랑해온 데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며 그동안 북한에 얼마나 많이 갖다줬습니까. 만약 북한이 휴전선에서 장사정포 한 발만 쏴도 남한은 마비될 겁니다. ‘평화는 힘으로 얻는 것이지, 사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군사적 방어력을 증강해야 해요. 패트리엇 미사일도 추가 배치해야 하고, 미사일 방어(MD) 정책도 미국과 함께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 놓아야 북한과 대화가 돼요. 중국의 반대가 있더라도 할 건 해야 합니다.”
“평화는 힘으로 얻는 것”
―부시 정부의 對北(대북)정책을 비판했던 오바마 정부도 정책 방향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얼마 전 訪韓(방한)한 보즈워스 미국 북한담당 특사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북한은 변한 게 없다’고 했어요. 오바마 정부는 출범 후 북한과 대화를 하며 평화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펴려고 했어요. 그런데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강경하게 나오니 민주당 정부도 ‘이게 아니다’ 싶었던 거예요.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변하지 않을 경우 마냥 참지 않을 겁니다. 현재 미국 정가 일각에서는 ‘북한을 공격하자’는 얘기도 나와요. 북한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통치권을 물려주는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깡패국가도 이러지는 않지요.”
―北核(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무기는커녕 미사일 한 발 쏘는 것도 막지 못한 게 6자회담입니다. 그런 회담은 필요하지 않아요. 한국, 미국, 중국, 북한의 외교장관이 만나 현안을 풀 수 있는 4자회담으로 바꿔야 해요. 4자회담에서 우리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은 확실히 해둬야 합니다.”
―한미동맹과 북한문제를 푸는 데 潘基文(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겠군요.
“물론이죠. 그런데 반기문 총장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곱지 않아 연임이 어려울 것 같아요. 반기문 총장이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현재 국제 현안이 발생했을 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가지고 있는 거부권을 폐지하는 대신 G20국가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들어가 다수결로 의결하는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한국이 이를 국제사회에서 강력히 주장해야 우리의 위상이 높아집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겠지만 미국만 찬성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김 전 의원께서 최근에 쓴 칼럼을 보니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썼더군요.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날 당시 미국 역사상 지도력이 가장 약한 대통령,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처 낸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어요. 하지만 그는 은퇴 후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정치와 관련 없는 사회사업, 인권운동에 몰두했기 때문이죠.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20년이 지난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어요.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미국서 의원이 죄지으면 일반인보다 가중 처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퇴임 후 감옥에 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대통령의 아들이 돈과 관련해 감옥에 갔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우리는 아직도 孤兒(고아)수출국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데 전직 대통령들이 ‘우리의 아이들, 우리 스스로 키우기 운동’을 편다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돈으로 노벨평화상을 사지 말고 퇴임 후에 이런 일들을 하면서 국제구호활동을 한다면 진정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를 놓고 검찰이 ‘불구속 기소’와 ‘구속 기소’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법 앞에는 누구나 평등합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봐주면 검찰을 누가 믿으려 하겠습니까. 서민은 피땀 흘려 몇 푼 벌며 사는데 대통령이란 사람은 수백만 달러를 그냥 받았습니다. 공짜로 돈 받으라고 대통령을 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고 뽑은 겁니다.”
김창준 전 의원은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입법활동을 통해 국가를 이끄는 리더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일반인보다 더 엄하게 처벌합니다. 감옥에 갔다 나오면 재출마도 못해요. ‘전직 국회의원(former member of U.S. Congress)’이라는 호칭도 못 써요. 그런데 한국은 별 몇 개 붙인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면을 받으면 또 출마해요.
특별사면이라는 제도도 문제입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일곱 명을 사면하고 국민으로부터 혼이 난 적이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100만명을 사면했더군요. 이를 비판해야 할 한국의 언론도 무감각해진 것 같아요.”
김창준 전 의원은 미국 정치인의 사례를 들며 특별사면의 남용을 경계했다.
“한때 민주당과 공화당의 스타였던 트래피컨트 의원과 커닝엄 의원이 돈 문제로 감옥에 갔습니다. 이들은 각각 8년형을 선고받고 정치생명을 마감했어요. 미국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더 무거운 판결을 받아요. 만일 이들이 한국의 국회의원이었다면 사회에 공헌한 업적을 참작해 집행유예로 풀려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노무현 정권 때 있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내가 아는 한 인사는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몇 개월 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어요. 그 후 얼마 안돼 광복절 특사로 자유인이 됐고, 곧바로 장관이 됐습니다. 이런 국가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어요.”
―민주주의 역사가 다른 한국과 미국을 일방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정치인 개개인의 수준을 따진다면 한국이 미국을 앞선다고 봐요. 문제는 제도입니다. 한국 국회의원의 경우, 혼자 잘났다고 떠들면 눈 밖에 납니다. 당론을 따르고 실세의원과 보조를 맞춰야 차기 공천을 보장받지요. 이런 분위기라면 ‘똑똑한 바보 의원’이 나오기 딱 맞지요.”
“대통령-부통령제 도입해야”
―정치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정당이 아닌 지역주민에게 돌려줘야 해요. 미국은 지역구민이 공천권을 갖습니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가 해외언론에 톱뉴스로 보도됐어요. 창피해서 한동안 미국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어요. 이런 사태는 집단정치의 병폐에서 나온 겁니다. 국회의원들은 選數(선수) 제한을 두지 않고 출마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3선 이상을 금지하면서 자기들은 무한정으로 할 수 있고….”
―5년 단임 대통령제인 권력구조를 바꿔야 합니까.
“한국의 권력구조상 대통령에게 바른말,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도적으로 필요해요. 헌법에 대통령 다음의 책임자는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총리가 대통령에게 直言(직언)했다가는 중도하차하기 마련입니다. 정-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해요. 대통령에게 충언을 할 제도가 필요해요. 백악관에 근무하는 대통령의 비서관들은 힘이 없는데 한국은 장관보다 더 센 게 청와대 비서관인 것 같아요.”
김창준 의원은 한국의 시위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미국 헌법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리로 네 가지를 규정하고 있어요.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집회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집회의 자유에는 단서조항이 있는데 ‘집회는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게 그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시위나 집회를 하는 주최 측이 관련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합니다. 이것이 미국을 질서 있는 사회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고 봐요.
한국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을 구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어요. 법치국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경찰을 발가벗기고 구타하던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자들이 미국에 와서는 얌전한 신사로 변해 조용히 시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미국의 엄정한 법치제도가 한국의 전문 시위꾼의 행동을 바꿔놓았던 겁니다.
한 나라의 국민성은 결국 그 나라의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요. 미국은 서부에서 동부까지 가려면 비행기로 5시간 넘게 걸리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입니다. 수백 인종이 살고 종교도 수백 개에 달해요. 인구 3억명에 달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된 것은 바로 원칙을 지키는 법과 제도가 있기 때문이지요.”
林龍根│前 미국 오리건州 하원의원
⊙ 1935년 경기도 여주 출생.
⊙ 1966년 渡美.
⊙ 서울신학대·미 WES 신학대학원 졸업.
⊙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미국 오리건주 상·하원의원 역임.
1992년 정계에 입문한 林龍根(임용근·74·미국名 존림) 전 미국 오리건州(주) 하원의원은 상·하원을 포함해 재미교포 중 최다선인 5선을 지냈다.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1966년 무일푼으로 渡美(도미), 비타민 제조회사인 ‘아메리칸 로열젤리’를 창업해 CEO로도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리건주 한인회장과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역임했고 의회에 들어간 후에는 무역경제개발위원장·상공위원장, 오리건주 양원 합동 법사위 부위원장, 인력관리위원 겸 입법관리위원 등을 지냈다.
임용근 전 의원은 현재 재외동포 정치인 육성조직인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창준 전 의원과 강석희 미국 어바인(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소재) 시장이 부회장이다.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만든 배경이 뭡니까.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업인은 많습니다. 사회·문화계를 포함해 예술·스포츠 분야에도 적지 않지요. 그런데 정치분야는 그렇지 않아요. 큰 정치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해요. 소수민족 출신으로 미국 정계에서 활동하면서 수적으로 많은 한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계 진출자들을 네트워킹해 서로 격려하고 정보교류를 통해 교포 1.5세, 2~3세가 정치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협의회의 목적입니다.”
“향후 5~10년 내 행정부 차관 배출”
―한국과 정치환경이 달라 쉽지는 않을 텐데요.
“외국인 출신으로 정치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민 역사 100년인 미국에서도 한인 1세가 선거에서 당선되는 일이 지금도 흔하지 않습니다. 내가 1992년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이 ‘괜한 일을 한다’며 걱정했어요. 백인이 주류인 그 지역에서 한국인이 선출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죠.”
―재미교포들이 미국정치보다 상대적으로 한국정치에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영어 구사능력이 떨어지고 사고방식이 한국적이라 미국정치에 무관심했던 측면이 있어요. 모국지향적인 면도 없지 않고요.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게 어렵다 보니 한국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죠. 이제 재외동포들은 해당 국가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해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정치적으로 우뚝 서는 것이 이민 국가는 물론 모국에도 애국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미국의 경우 이민 2~3세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주류사회에 들어갈 만큼 재미교포의 입지가 확고하지는 않아요. 그들은 변호사, 의사, 교사 등 전문직업을 가지며 성장하는 단계에 있어요. 몇몇 젊은 사람들이 시의회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고요. 향후 5~10년 내에 연방 행정부 차관까지 발탁되는 교포가 나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인 1세대 정치인이 길잡이 역할을 잘해야지요.”
―흑인 출신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한인사회에 던진 화두는 뭡니까.
“소수민족에게 희망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거죠. 오바마 대통령 측근으로 몇몇 한인 청년들이 있는데 앞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동포들이 많아질 겁니다.”
―한인 정치인을 늘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뭡니까.
“정치에 입문하려는 2~3세들에게 우선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알려줘야죠. 아울러 많은 동포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투표권을 직접 행사해야 합니다. 현재 투표권이 있는 한인의 참여율은 25%에 불과해요.”
―임 의원께서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6선 도전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내가 민주당 후보를 8% 가량 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반기 들어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공화당 인기가 뚝 떨어지면서 역전됐지요.”
―오리건주 의회에서 정치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은 뭡니까.
“1992년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복지제도를 개선했어요. 당시 오리건주에 국가의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이 10만명이 넘었는데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신체도 멀쩡한데 일은 안 하고 복지혜택만 받는 겁니다. 세금을 내는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손해였죠. 관련법에 손을 대자 민주당이 반대를 하더군요.”
직업알선법·대체연료법 제정
―구체적으로 어떤 법안이었습니까.
“잡스 플러스 빌(Jobs Plus Bill)이라는 직업알선법이었어요. 실직자 중 신체 건강한 사람은 6~9개월 동안 의회가 직업을 알선해 주고, 회사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면 혜택을 제한하는 내용이었어요. 법이 실행되자 효과가 금방 나타났습니다. 법을 악용해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10만명에서 5만명으로 줄었어요.”
임용근 전 의원은 소송법을 개정해 소송을 통한 재정적 손실을 줄이는 데도 기여했다. 2025년까지 오리건주의 모든 연료의 25%는 대체연료를 사용하도록 한 대체연료법도 그의 작품이다.
임 전 의원은 2006년 하원의원 재임 시절 오리건주 거주 한인들을 위해 ‘한국의 날’ 법안을 통과시켜 한인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정계에 입문하면서 아시아특별자문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위한 자문위원회는 있었지만 아시아인을 위한 위원회는 없었어요. 오리건주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이 전체 주 인구의 8% 가량 됐습니다. 이 위원회를 통해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곤 했죠. 위원회를 만든 배경은 1991년 발생한 LA폭동도 한 이유였어요. 당시 한국사람들이 소수민족 중 제일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인을 방어해 주는 공식 기구가 없었어요.”
임용근 전 의원은 이민 초기부터 미국에서 제대로 살려면 ‘본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어렵게 공부해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6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미국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어요. 한 교회에 35년을 다녔죠. 우연한 기회에 교회 목사님이 정계 입문을 권유하더군요. 무턱대고 오리건주 주지사에 도전해 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1990년 오리건주 주지사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요. 당시 1위와 근소한 차이로 졌는데, 결과를 보고 저도 놀랐어요. 그 후 오리건주 의회 상·하원 의원을 거치면서 정치경험을 쌓았습니다.”
임 전 의원은 내년 11월에 있을 주지사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만약 그가 주지사에 당선되면 선출직에서 한인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현재 오리건주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인데 이제 공화당이 맡을 때가 됐어요. 주지사를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오리건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치인’으로 호소할 생각입니다.”
“내년 주지사 선거에 반드시 당선될 것”
―미국 경제는 언제쯤 회복될까요.
“최근 들어 경기가 되살아난다는 뉴스가 보도됐지만, 어느 순간 다시 급락할 수 있어요. 지금 미국에서 제일 잘되는 사업이 텐트장사입니다. 집값을 못 낸 서민들이 거리로 내몰려 텐트에서 살아요. 도시마다 텐트 숲이 형성될 정도입니다.
미국 경제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크라이슬러·포드·GM으로 상징되는 3대 자동차 회사의 경영난입니다. 이들 회사가 문을 닫으면 미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돼요. 문제는 이들 회사가 경쟁력 있는 차를 만들어낼 기미가 적다는 겁니다. 덩치만 크고 연비도 떨어지는 그런 차들이 태반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섰습니다.
“국가 경제를 살리는 차원에서 일면 타당하지만 이들 회사가 반드시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어요. 도요타의 경우 시간당 임금이 25달러인데 GM이나 포드는 35달러예요.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한미 FTA는 어떻게 될까요.
“개인적으로 한미FTA 비준이 어려울 거라고 봐요. 미국의 지역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른데 무역이 많은 미국 서부 지역은 찬성하는 쪽입니다. 캘리포니아주에는 5만 개, 워싱턴주에는 1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예상해요. 반면 중부나 동부지역은 한미 FTA를 한다고 큰 이익이 나지 않아요. ‘재협상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작년 한국 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신경을 잘 안 씁니다. 그런데 촛불시위 이후 미국 정가에 비친 한국 이미지는 안 좋아요.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데 저렇게 부정적인데, 미국도 한국산 자동차를 수입하는 데 관세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와요. 한국에서 반미행동이 계속 벌어지면 한국에 결코 좋을 리 없어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후 한미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봅니까.
“반미감정 드러내서는 안돼”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한국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부시 정부 때 한미 FTA가 체결될 수 있었는데 두 정권의 현격한 이념 차이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이 와중에 미국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한국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각은 공화당과 달라요.
앞서 언급했지만 우선 반미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르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역사를 제대로 알면 親美(친미)는 아니더라도 반미까지 가지는 않아요.”
―미국의 대북정책이 의외로 강경합니다.
“현재 외교정책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책임지고 있어요.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대해 굴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한국입니다.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없어요.”
愼昊範│미국 워싱턴州 상원의원
⊙ 1935년 경기도 파주 출생.
⊙ 1955년 渡美.
⊙ 미 브리검영대·워싱턴주립대 대학원 졸업.
⊙ 워싱턴 대학·쇼어라인대학·메릴랜드대학 교수, 現 워싱턴주 상원의원.
⊙ 저서: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미국 워싱턴주 상·하원 4선 출신인 愼昊範(신호범·74·미국名 폴신)씨는 민주당 소속의 현직 상원의원이다. 그는 한인 정치인 중 오바마 정부의 체온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인식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을 잘 몰라요. 그는 정치경험이 별로 없어요. 변호사·판사·교수 경험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특히 외교분야에 약해요. 참모를 많이 뒀지만 거대한 미국號(호)를 이끌 방향과 비전이 불투명합니다. 對(대)한반도 정책은 오는 6월 미국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나올 것 같아요.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전 ‘쿠바도 우리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도미니카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입장도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확인되겠군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목적 중 가장 중요한 의제가 FTA라고 봅니다. 오바마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나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FTA를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지난해 한미 FTA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만들어 백악관에 보내기도 했어요. 현재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FTA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FTA를 하겠다고 하면 연방 상·하원에서 통과될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어려워요.”
“클린턴, 美·北정상회담 추진”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겁니까.
“북한의 동태를 살피는 것 같은데 두고 봐야죠. 다만 부시 전 대통령처럼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부시 정권 때보다 완화된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어요.
2000년 당시 북한 군부 고위인사 조명록씨가 미국에 왔었어요. 백악관에서 열렸던 리셉션에서 그는 ‘북한은 전쟁의 나라가 아니고 평화의 나라다. 미국의 협조를 바란다’고 했어요.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북한에 보냈는데 美·北(미·북) 정상회담을 열려고 했었죠. 클린턴 대통령이 내게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에 같이 가자’고 직접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때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만약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했다면 역사는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겁니다.”
―언젠가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크게 바뀌겠군요.
“미·북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어요. 어쨌든 남북 간 평화가 빨리 와야 해요. 국제관계라는 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駐美(주미) 독일대사와 점심을 같이한 적이 있는데 ‘당신의 나라가 부럽다. 한국은 아직도 분단상태다’라고 했더니 독일 대사가 ‘통일비용으로 6000억 달러 정도의 대가를 치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통일을 한 이유는 뭐냐’고 했더니 ‘같은 민족이니까 한 것’이라고 해요.”
―주미 한국대사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일부 외교관들은 ‘대북문제에 관해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며 미국의 대북협상력을 비판했습니다.
“그동안의 협상과정을 보면 북한을 민주화시키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약한 측면이 없지 않아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은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클린턴 정부처럼 오바마 정부는 ‘외교란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21세기는 무기의 힘으로 이길 수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은 머리 싸움’이라고 했어요. 21세기는 전쟁보다는 상호관계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몇 차례 했습니다.
“힐러리 장관은 대통령 부인과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나름 국제정세를 보는 눈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 걱정입니다.”
30여 년간 대학에서 역사학·국제관계 가르쳐
경기도 파주 태생인 신호범 의원은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출신이다.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전쟁 직전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되어 고아 신세가 됐다. 주한미군 군의관으로 부임한 레이 폴 박사가 소년 신호범의 양아버지가 됐다. 전쟁 종료 후 양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자 2년 뒤 신호범도 이민절차를 밟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소년 신호범은 養父(양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호텔 청소부, 배달원, 공사판 막노동을 하며 대학을 마쳤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워싱턴대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4년부터 워싱턴대학, 쇼어라인대학에서 30여 년간 국제정치와 동양역사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신 의원은 1984년 당시 부스 가드너 워싱턴주 주지사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며 정치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드너 주지사의 도움으로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8년에는 백인이 90% 이상 거주하는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이자 동양계로는 처음으로 상원의원이 됐다. 그는 2003년 미국 최고 해외이민자상을 수상했고, 2006년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작년에는 미국이민자 옹호단체인 ‘소수민족연대협의회’가 주는 ‘엘리스 아일런드상’을 받았다.
“1987년 어느 날 잊지 못할 뉴스를 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당시 캐나다 총리가 경제회담을 가졌다는 소식이었어요. 레이건 대통령은 회담 도중 캐나다 총리에게 ‘아일랜드 민족은 영국의 식민지 국민으로 노예처럼 지냈다. 그런데 역경을 딛고 오늘날 미국 대통령과 총리가 탄생했으니 이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했어요. 두 사람은 아일랜드 민요를 불렀는데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그 뉴스를 본 후부터 언젠가는 꼭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지요.”
신호범 의원은 1991년 LA에서 발생한 폭동을 계기로 정치계 진출을 결심했다.
“LA 폭동은 재미동포들에게 ‘wake-up call’이었어요. ‘한인들이여 일어나라!’는 메시지였지요.”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뭡니까.
“민주당은 인권과 이민법, 장애인 보호법을 강조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소수민족을 대표하려면 민주당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워싱턴주 하원의원 시절 ‘국제교육법’(초등학교 학생이 중국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것도 소수민족 보호 때문이었군요.
“재미교포 2~3세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요.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흑인과 백인을 비롯해 유색인종이 많아요. 다민족 국가로 변하다 보니 국제교육법이 필요할 수밖에요. 미국인들은 타 국가의 문화를 배울 수 있어 좋고, 재미교포들은 모국의 뿌리를 배울 수 있어 좋았죠.”
“미국 全 州에서 한인 정치인 배출할 것”
―한미 정치교육 장학재단을 만든 이유는 뭡니까.
“한인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시의원 세 명, 주의원 한 명, 시장 한 명을 배출했어요. 강석희 어바인 시장이 장학재단 출신입니다. 시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Strong Mayor’와 ‘Weak Mayor’가 있어요. 전자는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시장으로, 시의 운영권과 공무원 임명권을 갖고 있어요. 후자는 시의원이 뽑는 것인데 행정권한이 없어요. 강석희 시장은 전자에 속하는 시장입니다. 앞으로 미국 내 거물 정치인이 될 겁니다.”
―한국계 미국 주지사와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까요.
“한국계 주지사는 머지않아 나올 겁니다. 한국계 미국 대통령도 30년 내에 반드시 등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근거는 뭡니까.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 한인들이 증가하고 있고, 정치인으로 대성할 인재도 많기 때문이죠. 현재 장학재단의 단기 목표는 미국 50여 개 주 중에서 한인 정치인 한 명 이상을 배출하는 겁니다.”
―한국의 정치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는 한국정치를 잘 몰라요.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한국정치를 보면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남북관계입니다. 미사일을 쏘는 김정일은 우리에게 마이너스 존재입니다.”
―미국에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현안을 놓고 서로 다툽니다.
“갈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과는 사정이 달라요. 당적을 옷 갈아입듯 바꾸는 ‘기러기 정치인’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한국의 정치인과 정당은 정체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30여 년간 교수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걸 강조했습니까.
“역사에서 항상 반복되는 일이지만 위기 후에는 항상 기회가 왔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한 일로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계기가 된 일이 있었죠. 어느 날 대학연구실 책상에 ‘impossible(불가능한)’이란 단어가 적혀 있는 종이가 놓여 있었어요. 보기 싫어서 찢어버렸더니 ‘im’과 ‘possible’로 떨어지는 게 아닙니까. 이를 읽어보니 ‘나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 후로 그 말은 내 인생의 슬로건이 됐어요. 한국을 방문해 대학생들을 상대로 특강 할 때는 ‘한민족으로서 꿈을 갖고 살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미국 젊은이는 개인주의와 자기중심 성향이 강해요. 한국 학생들은 단체, 가족, 나라에 초점을 맞추지요. 한국 학생에게는 ‘돈 많이 벌어서 나만 잘살자’는 의식도 있는 것 같아요.”
“부지런히 공부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주도할 것”
―동아시아 역사와 국제관계를 가르치셨는데, 향후 미국의 패권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봅니까.
“20세기처럼 초일류 강대국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겁니다. 21세기는 부지런하게 공부하는 나라가 세계를 주도할 거예요. 현재 미국 사람들은 노력을 별로 안 해요. 부단히 노력하고 투자하고 발전의욕을 보이는 나라가 미국을 앞서겠지요. 앞으로 세계의 주도권은 아시아가 쥘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조하는 유럽의 일부 복지국가와 비슷하게 될 겁니다.”
―한국 입양아모임인 ‘KIDS(Korean Identity Development Society)’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내가 입양아 출신이라 입양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5년 전에 네덜란드에 강연을 간 적이 있어요. 강연 후 14세 한국인 입양아 소녀가 내게 다가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양부모가 중학교까지만 공부하고 농사를 지으라 했답니다. ‘내가 성공한 것처럼 너도 할 수 있다’고 위로해 줬더니 ‘부모가 도와주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학비를 대주겠다고 약속한 후 그 학생과 한 달에 두세 번씩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취했지요.
1년3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암스테르담대학에 입학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후 한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그 뒤 네덜란드에 들러 수소문했더니 자살했다는 겁니다. 그런 입양아들이 많아요. 한국인 입양아는 전 세계에 17만명이나 돼요. 임기가 끝나면 입양아들을 도우며 여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이들은 한인사회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母國(모국)인 한국의 정치사회적 발전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7일 재미교포를 대표하는 한인 1세대 정치인 金昌準(김창준), 林龍根(임용근), 愼昊範(신호범)씨가 한국을 방문해 金炯旿(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났다. 이들은 김 의장과 재외동포 정치인 육성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2007년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결성한 세 사람은 올 9월 서울에서 제3회 ‘세계한인정치인포럼’을 개최한다. 세계한인정치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재외동포사회의 권익과 정치력을 신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 사람으로부터 해외에서 바라본 국내정치와 대북문제, 미국政街(정가) 소식과 韓美(한미)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 1939년 서울 출생.
⊙ 1961년 渡美.
⊙ 미국 남가주주립대,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졸업.
⊙ 미국 다이아몬드市(시) 시의원·부시장·시장, 미국 연방하원의원 역임.
⊙ 저서: <나는 보수다> <국산정치와 미제정치>.
金昌準(김창준·70·미국名 제이킴) 前(전) 미 연방 하원의원은 재미교포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 출신이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1992년 미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1998년까지 3선을 지냈다. 미국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근대사편에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상징적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 전 의원 외에 연방 의원이 된 한인 정치인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김창준 전 의원은 최근 대한민국 정책홍보 자문위원으로 선정돼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미국 사정에 밝은 그에게 한미관계 복원에 일조해 달라는 차원에서 자문위원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습니까.
“특별한 인연은 없어요. 대통령 선거 때 내가 도와준 것도 아니고요. 정책홍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날 기회가 생길 것 같군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 공약을 실현하는 데 무리가 있어요. 지금의 경제불황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한나라당이라고 별 도리가 있겠습니까. 똑같은 슬로건으로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 임했으니 당연히 참패할 수밖에요.”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부시 정부의 경제기조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였어요. 정부의 간섭을 막고 철저히 경제 논리에 시장을 맡기는 것이었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부동산 경기에 거품이 생기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어요. 은행 대출로 비싼 집을 산 사람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자 은행들이 연달아 부도상태에 빠진 겁니다. 결국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 개입을 내걸며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김창준 전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의 근로자들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세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는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어요. 미국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오바마의 정책방향이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현재까지는 큰 과오가 없다고 봅니다.”
“달러 위상 오래갈 것”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할 겁니다.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은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중국製(제)’하면 떠오르는 짝퉁 이미지를 지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4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미국 의회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현재 민주당이 연방 상원과 하원의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미 의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내년 봄쯤 가능하리라 봐요. 미국에서 반대의견이 나오기 전에 우리 국회는 빨리 통과시켜야 해요. 일단 통과시킨 후에 추가협상을 해야 우리가 유리합니다. 추가협상은 가능해도 재협상은 안됩니다.”
―한미 FTA가 어느 쪽에 더 유리합니까.
“미국보다 우리가 더 필요해요. 비준안이 상임위를 통과할 때 여야 의원들이 난리를 치던데, 미국 정치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웃고 있어요. 한국 경제는 무역이 85%를 차지해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자동차가 미국에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입니다. 냉장고나 TV도 마찬가지예요. 대체품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죠. 급한 쪽은 우립니다. 우리가 먼저 ‘FTA 하자’고 나서야 해요. 한국 국회의원들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너무 몰라요. 소속 정당에만 충성할 줄 알지 민생현안과 실질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무지한 것 같아요.”
그는 “한국이 살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 소원했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국제적 위신을 높여야 해요. 국제사회에서 삼성과 현대는 높이 평가해도 대한민국은 낮게 평가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강한 동맹국이 필요합니다. 북한 문제만 봐도 그래요. 지난 4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중국은 결국 북한을 옹호했어요. 일본이 우리를 돕겠습니까, 러시아나 영국이 돕겠습니까. 미국만이 우리 입장과 비슷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세계 최강인 미국을 두고 反美(반미)를 주장했지요. 맥아더 장군 동상을 끌어내리질 않나….”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궁합이 맞을 것으로 봅니까.
“金大中(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부와 비교하면 상상이 안될 정도로 잘 맞을 겁니다. 이전 정부는 사실상 미국을 敵(적)으로 생각했잖아요.”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한국 직원 억류사건도 제대로 못 풀고 있습니다.
“남한이 북한을 짝사랑해온 데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며 그동안 북한에 얼마나 많이 갖다줬습니까. 만약 북한이 휴전선에서 장사정포 한 발만 쏴도 남한은 마비될 겁니다. ‘평화는 힘으로 얻는 것이지, 사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군사적 방어력을 증강해야 해요. 패트리엇 미사일도 추가 배치해야 하고, 미사일 방어(MD) 정책도 미국과 함께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 놓아야 북한과 대화가 돼요. 중국의 반대가 있더라도 할 건 해야 합니다.”
“평화는 힘으로 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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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연방하원 시절 김창준 의원이 관훈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1996년 11월 11일). |
“얼마 전 訪韓(방한)한 보즈워스 미국 북한담당 특사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북한은 변한 게 없다’고 했어요. 오바마 정부는 출범 후 북한과 대화를 하며 평화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펴려고 했어요. 그런데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강경하게 나오니 민주당 정부도 ‘이게 아니다’ 싶었던 거예요.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변하지 않을 경우 마냥 참지 않을 겁니다. 현재 미국 정가 일각에서는 ‘북한을 공격하자’는 얘기도 나와요. 북한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통치권을 물려주는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깡패국가도 이러지는 않지요.”
―北核(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무기는커녕 미사일 한 발 쏘는 것도 막지 못한 게 6자회담입니다. 그런 회담은 필요하지 않아요. 한국, 미국, 중국, 북한의 외교장관이 만나 현안을 풀 수 있는 4자회담으로 바꿔야 해요. 4자회담에서 우리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은 확실히 해둬야 합니다.”
―한미동맹과 북한문제를 푸는 데 潘基文(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겠군요.
“물론이죠. 그런데 반기문 총장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곱지 않아 연임이 어려울 것 같아요. 반기문 총장이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현재 국제 현안이 발생했을 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가지고 있는 거부권을 폐지하는 대신 G20국가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들어가 다수결로 의결하는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한국이 이를 국제사회에서 강력히 주장해야 우리의 위상이 높아집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겠지만 미국만 찬성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김 전 의원께서 최근에 쓴 칼럼을 보니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썼더군요.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날 당시 미국 역사상 지도력이 가장 약한 대통령,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처 낸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어요. 하지만 그는 은퇴 후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정치와 관련 없는 사회사업, 인권운동에 몰두했기 때문이죠.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20년이 지난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어요.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미국서 의원이 죄지으면 일반인보다 가중 처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퇴임 후 감옥에 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대통령의 아들이 돈과 관련해 감옥에 갔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우리는 아직도 孤兒(고아)수출국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데 전직 대통령들이 ‘우리의 아이들, 우리 스스로 키우기 운동’을 편다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돈으로 노벨평화상을 사지 말고 퇴임 후에 이런 일들을 하면서 국제구호활동을 한다면 진정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를 놓고 검찰이 ‘불구속 기소’와 ‘구속 기소’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법 앞에는 누구나 평등합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봐주면 검찰을 누가 믿으려 하겠습니까. 서민은 피땀 흘려 몇 푼 벌며 사는데 대통령이란 사람은 수백만 달러를 그냥 받았습니다. 공짜로 돈 받으라고 대통령을 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고 뽑은 겁니다.”
김창준 전 의원은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입법활동을 통해 국가를 이끄는 리더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일반인보다 더 엄하게 처벌합니다. 감옥에 갔다 나오면 재출마도 못해요. ‘전직 국회의원(former member of U.S. Congress)’이라는 호칭도 못 써요. 그런데 한국은 별 몇 개 붙인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면을 받으면 또 출마해요.
특별사면이라는 제도도 문제입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일곱 명을 사면하고 국민으로부터 혼이 난 적이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100만명을 사면했더군요. 이를 비판해야 할 한국의 언론도 무감각해진 것 같아요.”
김창준 전 의원은 미국 정치인의 사례를 들며 특별사면의 남용을 경계했다.
“한때 민주당과 공화당의 스타였던 트래피컨트 의원과 커닝엄 의원이 돈 문제로 감옥에 갔습니다. 이들은 각각 8년형을 선고받고 정치생명을 마감했어요. 미국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더 무거운 판결을 받아요. 만일 이들이 한국의 국회의원이었다면 사회에 공헌한 업적을 참작해 집행유예로 풀려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노무현 정권 때 있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내가 아는 한 인사는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몇 개월 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어요. 그 후 얼마 안돼 광복절 특사로 자유인이 됐고, 곧바로 장관이 됐습니다. 이런 국가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어요.”
―민주주의 역사가 다른 한국과 미국을 일방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정치인 개개인의 수준을 따진다면 한국이 미국을 앞선다고 봐요. 문제는 제도입니다. 한국 국회의원의 경우, 혼자 잘났다고 떠들면 눈 밖에 납니다. 당론을 따르고 실세의원과 보조를 맞춰야 차기 공천을 보장받지요. 이런 분위기라면 ‘똑똑한 바보 의원’이 나오기 딱 맞지요.”
“대통령-부통령제 도입해야”
―정치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정당이 아닌 지역주민에게 돌려줘야 해요. 미국은 지역구민이 공천권을 갖습니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가 해외언론에 톱뉴스로 보도됐어요. 창피해서 한동안 미국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어요. 이런 사태는 집단정치의 병폐에서 나온 겁니다. 국회의원들은 選數(선수) 제한을 두지 않고 출마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3선 이상을 금지하면서 자기들은 무한정으로 할 수 있고….”
―5년 단임 대통령제인 권력구조를 바꿔야 합니까.
“한국의 권력구조상 대통령에게 바른말,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도적으로 필요해요. 헌법에 대통령 다음의 책임자는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총리가 대통령에게 直言(직언)했다가는 중도하차하기 마련입니다. 정-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해요. 대통령에게 충언을 할 제도가 필요해요. 백악관에 근무하는 대통령의 비서관들은 힘이 없는데 한국은 장관보다 더 센 게 청와대 비서관인 것 같아요.”
김창준 의원은 한국의 시위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미국 헌법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리로 네 가지를 규정하고 있어요.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집회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집회의 자유에는 단서조항이 있는데 ‘집회는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게 그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시위나 집회를 하는 주최 측이 관련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합니다. 이것이 미국을 질서 있는 사회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고 봐요.
한국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을 구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어요. 법치국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경찰을 발가벗기고 구타하던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자들이 미국에 와서는 얌전한 신사로 변해 조용히 시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미국의 엄정한 법치제도가 한국의 전문 시위꾼의 행동을 바꿔놓았던 겁니다.
한 나라의 국민성은 결국 그 나라의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요. 미국은 서부에서 동부까지 가려면 비행기로 5시간 넘게 걸리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입니다. 수백 인종이 살고 종교도 수백 개에 달해요. 인구 3억명에 달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된 것은 바로 원칙을 지키는 법과 제도가 있기 때문이지요.”
⊙ 1935년 경기도 여주 출생.
⊙ 1966년 渡美.
⊙ 서울신학대·미 WES 신학대학원 졸업.
⊙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미국 오리건주 상·하원의원 역임.
1992년 정계에 입문한 林龍根(임용근·74·미국名 존림) 전 미국 오리건州(주) 하원의원은 상·하원을 포함해 재미교포 중 최다선인 5선을 지냈다.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1966년 무일푼으로 渡美(도미), 비타민 제조회사인 ‘아메리칸 로열젤리’를 창업해 CEO로도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리건주 한인회장과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역임했고 의회에 들어간 후에는 무역경제개발위원장·상공위원장, 오리건주 양원 합동 법사위 부위원장, 인력관리위원 겸 입법관리위원 등을 지냈다.
임용근 전 의원은 현재 재외동포 정치인 육성조직인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창준 전 의원과 강석희 미국 어바인(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소재) 시장이 부회장이다.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만든 배경이 뭡니까.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업인은 많습니다. 사회·문화계를 포함해 예술·스포츠 분야에도 적지 않지요. 그런데 정치분야는 그렇지 않아요. 큰 정치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해요. 소수민족 출신으로 미국 정계에서 활동하면서 수적으로 많은 한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계 진출자들을 네트워킹해 서로 격려하고 정보교류를 통해 교포 1.5세, 2~3세가 정치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협의회의 목적입니다.”
“향후 5~10년 내 행정부 차관 배출”
―한국과 정치환경이 달라 쉽지는 않을 텐데요.
“외국인 출신으로 정치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민 역사 100년인 미국에서도 한인 1세가 선거에서 당선되는 일이 지금도 흔하지 않습니다. 내가 1992년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이 ‘괜한 일을 한다’며 걱정했어요. 백인이 주류인 그 지역에서 한국인이 선출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죠.”
―재미교포들이 미국정치보다 상대적으로 한국정치에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영어 구사능력이 떨어지고 사고방식이 한국적이라 미국정치에 무관심했던 측면이 있어요. 모국지향적인 면도 없지 않고요.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게 어렵다 보니 한국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죠. 이제 재외동포들은 해당 국가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해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정치적으로 우뚝 서는 것이 이민 국가는 물론 모국에도 애국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미국의 경우 이민 2~3세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주류사회에 들어갈 만큼 재미교포의 입지가 확고하지는 않아요. 그들은 변호사, 의사, 교사 등 전문직업을 가지며 성장하는 단계에 있어요. 몇몇 젊은 사람들이 시의회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고요. 향후 5~10년 내에 연방 행정부 차관까지 발탁되는 교포가 나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인 1세대 정치인이 길잡이 역할을 잘해야지요.”
―흑인 출신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한인사회에 던진 화두는 뭡니까.
“소수민족에게 희망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거죠. 오바마 대통령 측근으로 몇몇 한인 청년들이 있는데 앞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동포들이 많아질 겁니다.”
―한인 정치인을 늘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뭡니까.
“정치에 입문하려는 2~3세들에게 우선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알려줘야죠. 아울러 많은 동포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투표권을 직접 행사해야 합니다. 현재 투표권이 있는 한인의 참여율은 25%에 불과해요.”
―임 의원께서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6선 도전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내가 민주당 후보를 8% 가량 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반기 들어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공화당 인기가 뚝 떨어지면서 역전됐지요.”
―오리건주 의회에서 정치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은 뭡니까.
“1992년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복지제도를 개선했어요. 당시 오리건주에 국가의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이 10만명이 넘었는데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신체도 멀쩡한데 일은 안 하고 복지혜택만 받는 겁니다. 세금을 내는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손해였죠. 관련법에 손을 대자 민주당이 반대를 하더군요.”
직업알선법·대체연료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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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모습. |
“잡스 플러스 빌(Jobs Plus Bill)이라는 직업알선법이었어요. 실직자 중 신체 건강한 사람은 6~9개월 동안 의회가 직업을 알선해 주고, 회사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면 혜택을 제한하는 내용이었어요. 법이 실행되자 효과가 금방 나타났습니다. 법을 악용해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10만명에서 5만명으로 줄었어요.”
임용근 전 의원은 소송법을 개정해 소송을 통한 재정적 손실을 줄이는 데도 기여했다. 2025년까지 오리건주의 모든 연료의 25%는 대체연료를 사용하도록 한 대체연료법도 그의 작품이다.
임 전 의원은 2006년 하원의원 재임 시절 오리건주 거주 한인들을 위해 ‘한국의 날’ 법안을 통과시켜 한인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정계에 입문하면서 아시아특별자문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위한 자문위원회는 있었지만 아시아인을 위한 위원회는 없었어요. 오리건주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이 전체 주 인구의 8% 가량 됐습니다. 이 위원회를 통해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곤 했죠. 위원회를 만든 배경은 1991년 발생한 LA폭동도 한 이유였어요. 당시 한국사람들이 소수민족 중 제일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인을 방어해 주는 공식 기구가 없었어요.”
임용근 전 의원은 이민 초기부터 미국에서 제대로 살려면 ‘본토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어렵게 공부해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6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미국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어요. 한 교회에 35년을 다녔죠. 우연한 기회에 교회 목사님이 정계 입문을 권유하더군요. 무턱대고 오리건주 주지사에 도전해 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1990년 오리건주 주지사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요. 당시 1위와 근소한 차이로 졌는데, 결과를 보고 저도 놀랐어요. 그 후 오리건주 의회 상·하원 의원을 거치면서 정치경험을 쌓았습니다.”
임 전 의원은 내년 11월에 있을 주지사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만약 그가 주지사에 당선되면 선출직에서 한인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현재 오리건주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인데 이제 공화당이 맡을 때가 됐어요. 주지사를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오리건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치인’으로 호소할 생각입니다.”
“내년 주지사 선거에 반드시 당선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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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오른쪽은 부인 미셸 오바마. 오바마의 당선 이후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치 참여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
“최근 들어 경기가 되살아난다는 뉴스가 보도됐지만, 어느 순간 다시 급락할 수 있어요. 지금 미국에서 제일 잘되는 사업이 텐트장사입니다. 집값을 못 낸 서민들이 거리로 내몰려 텐트에서 살아요. 도시마다 텐트 숲이 형성될 정도입니다.
미국 경제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크라이슬러·포드·GM으로 상징되는 3대 자동차 회사의 경영난입니다. 이들 회사가 문을 닫으면 미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돼요. 문제는 이들 회사가 경쟁력 있는 차를 만들어낼 기미가 적다는 겁니다. 덩치만 크고 연비도 떨어지는 그런 차들이 태반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섰습니다.
“국가 경제를 살리는 차원에서 일면 타당하지만 이들 회사가 반드시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어요. 도요타의 경우 시간당 임금이 25달러인데 GM이나 포드는 35달러예요.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한미 FTA는 어떻게 될까요.
“개인적으로 한미FTA 비준이 어려울 거라고 봐요. 미국의 지역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른데 무역이 많은 미국 서부 지역은 찬성하는 쪽입니다. 캘리포니아주에는 5만 개, 워싱턴주에는 1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예상해요. 반면 중부나 동부지역은 한미 FTA를 한다고 큰 이익이 나지 않아요. ‘재협상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작년 한국 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신경을 잘 안 씁니다. 그런데 촛불시위 이후 미국 정가에 비친 한국 이미지는 안 좋아요.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데 저렇게 부정적인데, 미국도 한국산 자동차를 수입하는 데 관세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와요. 한국에서 반미행동이 계속 벌어지면 한국에 결코 좋을 리 없어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후 한미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봅니까.
“반미감정 드러내서는 안돼”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한국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부시 정부 때 한미 FTA가 체결될 수 있었는데 두 정권의 현격한 이념 차이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이 와중에 미국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한국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각은 공화당과 달라요.
앞서 언급했지만 우선 반미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르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역사를 제대로 알면 親美(친미)는 아니더라도 반미까지 가지는 않아요.”
―미국의 대북정책이 의외로 강경합니다.
“현재 외교정책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책임지고 있어요.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대해 굴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한국입니다.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없어요.”
⊙ 1935년 경기도 파주 출생.
⊙ 1955년 渡美.
⊙ 미 브리검영대·워싱턴주립대 대학원 졸업.
⊙ 워싱턴 대학·쇼어라인대학·메릴랜드대학 교수, 現 워싱턴주 상원의원.
⊙ 저서: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미국 워싱턴주 상·하원 4선 출신인 愼昊範(신호범·74·미국名 폴신)씨는 민주당 소속의 현직 상원의원이다. 그는 한인 정치인 중 오바마 정부의 체온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인식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을 잘 몰라요. 그는 정치경험이 별로 없어요. 변호사·판사·교수 경험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특히 외교분야에 약해요. 참모를 많이 뒀지만 거대한 미국號(호)를 이끌 방향과 비전이 불투명합니다. 對(대)한반도 정책은 오는 6월 미국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나올 것 같아요.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전 ‘쿠바도 우리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도미니카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입장도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확인되겠군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목적 중 가장 중요한 의제가 FTA라고 봅니다. 오바마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나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FTA를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지난해 한미 FTA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만들어 백악관에 보내기도 했어요. 현재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FTA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FTA를 하겠다고 하면 연방 상·하원에서 통과될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어려워요.”
“클린턴, 美·北정상회담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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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외무 회의 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대북문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
“북한의 동태를 살피는 것 같은데 두고 봐야죠. 다만 부시 전 대통령처럼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부시 정권 때보다 완화된 대북정책이 나올 수 있어요.
2000년 당시 북한 군부 고위인사 조명록씨가 미국에 왔었어요. 백악관에서 열렸던 리셉션에서 그는 ‘북한은 전쟁의 나라가 아니고 평화의 나라다. 미국의 협조를 바란다’고 했어요.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북한에 보냈는데 美·北(미·북) 정상회담을 열려고 했었죠. 클린턴 대통령이 내게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에 같이 가자’고 직접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때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만약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했다면 역사는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겁니다.”
―언젠가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크게 바뀌겠군요.
“미·북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어요. 어쨌든 남북 간 평화가 빨리 와야 해요. 국제관계라는 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駐美(주미) 독일대사와 점심을 같이한 적이 있는데 ‘당신의 나라가 부럽다. 한국은 아직도 분단상태다’라고 했더니 독일 대사가 ‘통일비용으로 6000억 달러 정도의 대가를 치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통일을 한 이유는 뭐냐’고 했더니 ‘같은 민족이니까 한 것’이라고 해요.”
―주미 한국대사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일부 외교관들은 ‘대북문제에 관해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며 미국의 대북협상력을 비판했습니다.
“그동안의 협상과정을 보면 북한을 민주화시키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약한 측면이 없지 않아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은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클린턴 정부처럼 오바마 정부는 ‘외교란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21세기는 무기의 힘으로 이길 수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은 머리 싸움’이라고 했어요. 21세기는 전쟁보다는 상호관계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몇 차례 했습니다.
“힐러리 장관은 대통령 부인과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나름 국제정세를 보는 눈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 걱정입니다.”
30여 년간 대학에서 역사학·국제관계 가르쳐
경기도 파주 태생인 신호범 의원은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출신이다.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전쟁 직전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되어 고아 신세가 됐다. 주한미군 군의관으로 부임한 레이 폴 박사가 소년 신호범의 양아버지가 됐다. 전쟁 종료 후 양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자 2년 뒤 신호범도 이민절차를 밟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소년 신호범은 養父(양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호텔 청소부, 배달원, 공사판 막노동을 하며 대학을 마쳤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워싱턴대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4년부터 워싱턴대학, 쇼어라인대학에서 30여 년간 국제정치와 동양역사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신 의원은 1984년 당시 부스 가드너 워싱턴주 주지사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며 정치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드너 주지사의 도움으로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8년에는 백인이 90% 이상 거주하는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이자 동양계로는 처음으로 상원의원이 됐다. 그는 2003년 미국 최고 해외이민자상을 수상했고, 2006년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작년에는 미국이민자 옹호단체인 ‘소수민족연대협의회’가 주는 ‘엘리스 아일런드상’을 받았다.
“1987년 어느 날 잊지 못할 뉴스를 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당시 캐나다 총리가 경제회담을 가졌다는 소식이었어요. 레이건 대통령은 회담 도중 캐나다 총리에게 ‘아일랜드 민족은 영국의 식민지 국민으로 노예처럼 지냈다. 그런데 역경을 딛고 오늘날 미국 대통령과 총리가 탄생했으니 이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했어요. 두 사람은 아일랜드 민요를 불렀는데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그 뉴스를 본 후부터 언젠가는 꼭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지요.”
신호범 의원은 1991년 LA에서 발생한 폭동을 계기로 정치계 진출을 결심했다.
“LA 폭동은 재미동포들에게 ‘wake-up call’이었어요. ‘한인들이여 일어나라!’는 메시지였지요.”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뭡니까.
“민주당은 인권과 이민법, 장애인 보호법을 강조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소수민족을 대표하려면 민주당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워싱턴주 하원의원 시절 ‘국제교육법’(초등학교 학생이 중국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것도 소수민족 보호 때문이었군요.
“재미교포 2~3세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요.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흑인과 백인을 비롯해 유색인종이 많아요. 다민족 국가로 변하다 보니 국제교육법이 필요할 수밖에요. 미국인들은 타 국가의 문화를 배울 수 있어 좋고, 재미교포들은 모국의 뿌리를 배울 수 있어 좋았죠.”
“미국 全 州에서 한인 정치인 배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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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여야 국회는 외교통상통일위에서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놓고 강행과 저지로 맞섰다. 在美교포 정치인들은 “한국 국회의원들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아쉬워 했다. |
“한인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시의원 세 명, 주의원 한 명, 시장 한 명을 배출했어요. 강석희 어바인 시장이 장학재단 출신입니다. 시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Strong Mayor’와 ‘Weak Mayor’가 있어요. 전자는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시장으로, 시의 운영권과 공무원 임명권을 갖고 있어요. 후자는 시의원이 뽑는 것인데 행정권한이 없어요. 강석희 시장은 전자에 속하는 시장입니다. 앞으로 미국 내 거물 정치인이 될 겁니다.”
―한국계 미국 주지사와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까요.
“한국계 주지사는 머지않아 나올 겁니다. 한국계 미국 대통령도 30년 내에 반드시 등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근거는 뭡니까.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 한인들이 증가하고 있고, 정치인으로 대성할 인재도 많기 때문이죠. 현재 장학재단의 단기 목표는 미국 50여 개 주 중에서 한인 정치인 한 명 이상을 배출하는 겁니다.”
―한국의 정치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는 한국정치를 잘 몰라요.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한국정치를 보면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남북관계입니다. 미사일을 쏘는 김정일은 우리에게 마이너스 존재입니다.”
―미국에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현안을 놓고 서로 다툽니다.
“갈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과는 사정이 달라요. 당적을 옷 갈아입듯 바꾸는 ‘기러기 정치인’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한국의 정치인과 정당은 정체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30여 년간 교수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걸 강조했습니까.
“역사에서 항상 반복되는 일이지만 위기 후에는 항상 기회가 왔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한 일로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계기가 된 일이 있었죠. 어느 날 대학연구실 책상에 ‘impossible(불가능한)’이란 단어가 적혀 있는 종이가 놓여 있었어요. 보기 싫어서 찢어버렸더니 ‘im’과 ‘possible’로 떨어지는 게 아닙니까. 이를 읽어보니 ‘나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 후로 그 말은 내 인생의 슬로건이 됐어요. 한국을 방문해 대학생들을 상대로 특강 할 때는 ‘한민족으로서 꿈을 갖고 살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미국 젊은이는 개인주의와 자기중심 성향이 강해요. 한국 학생들은 단체, 가족, 나라에 초점을 맞추지요. 한국 학생에게는 ‘돈 많이 벌어서 나만 잘살자’는 의식도 있는 것 같아요.”
“부지런히 공부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주도할 것”
―동아시아 역사와 국제관계를 가르치셨는데, 향후 미국의 패권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봅니까.
“20세기처럼 초일류 강대국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겁니다. 21세기는 부지런하게 공부하는 나라가 세계를 주도할 거예요. 현재 미국 사람들은 노력을 별로 안 해요. 부단히 노력하고 투자하고 발전의욕을 보이는 나라가 미국을 앞서겠지요. 앞으로 세계의 주도권은 아시아가 쥘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조하는 유럽의 일부 복지국가와 비슷하게 될 겁니다.”
―한국 입양아모임인 ‘KIDS(Korean Identity Development Society)’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내가 입양아 출신이라 입양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5년 전에 네덜란드에 강연을 간 적이 있어요. 강연 후 14세 한국인 입양아 소녀가 내게 다가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양부모가 중학교까지만 공부하고 농사를 지으라 했답니다. ‘내가 성공한 것처럼 너도 할 수 있다’고 위로해 줬더니 ‘부모가 도와주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학비를 대주겠다고 약속한 후 그 학생과 한 달에 두세 번씩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취했지요.
1년3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암스테르담대학에 입학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후 한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그 뒤 네덜란드에 들러 수소문했더니 자살했다는 겁니다. 그런 입양아들이 많아요. 한국인 입양아는 전 세계에 17만명이나 돼요. 임기가 끝나면 입양아들을 도우며 여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