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在中 한인회 활동 위해 私財 20억원 기부
⊙ “嫌韓감정 이는 것은 우리가 잘못한 탓”
⊙ “중국 사람보다 한국인이 훨씬 더 대범하고 통 크다”
⊙ “인건비 아끼기 위한 현지화엔 반대”
鄭曉權
⊙ 1959년 경남 마산 출생.
⊙ 마산고, 부산대 영문과 졸업.
⊙ (주)대우, 대한생명 근무.
⊙ 2002년 칭다오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 창립.
⊙ 2009년 1월 제5대 재중 한인회장.
⊙ “嫌韓감정 이는 것은 우리가 잘못한 탓”
⊙ “중국 사람보다 한국인이 훨씬 더 대범하고 통 크다”
⊙ “인건비 아끼기 위한 현지화엔 반대”
鄭曉權
⊙ 1959년 경남 마산 출생.
⊙ 마산고, 부산대 영문과 졸업.
⊙ (주)대우, 대한생명 근무.
⊙ 2002년 칭다오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 창립.
⊙ 2009년 1월 제5대 재중 한인회장.
지난 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중국 칭다오(靑島)의 하이티엔호텔에서는 하얼빈, 선양(瀋陽), 쿤밍(昆明) 등 36개 한인회 지부에서 온 회장단 120여 명이 모여 올해 在(재)중국 한인회가 나갈 방향을 정하는 회의 및 워크숍이 열렸다. 재중국 한인회가 1박2일간의 워크숍을 열고 한인회의 활동방향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날 鄭曉權(정효권) 在中(재중) 한인회장(칭다오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 동사장)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위상 강화, 정체성 확립, 韓中(한중) 간 우호증진 등이 올해의 주요 활동목표”라면서 “겸따마다(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기) 운동을 통해 우리가 먼저 중국인에게 다가가자”고 인사말을 했다.
그동안 재중 한인회는 재정 형편이 열악해 활동이 미미했다는 평을 들었는데, 지난해 12월 제5대 재중 한인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한인회의 위상 강화를 위해 재임 중에 1000만 위안(한화로 21억원)을 내놓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한인회장을 맡게 된 사연을 묻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8월 한인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보다 인격적으로나 학식 면에서 훌륭한 분들이 많고, 저보다 중국에서의 사업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많은데 제가 한인회장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재중 한인회는 그동안 활동이 미미했다는 평이 있었는데요.
“재중 한인회 역사가 10여 년인데, 중국은 워낙 땅이 넓어 그동안은 지역별로 활동을 해 왔어요. 4대 회장께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한인회를 묶어서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를 만든 게 겨우 1년 전입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한인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으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는 지난해 11월 초에 한인회장직을 수락, 올 1월부터 시작되는 임기 2년의 활동에 들어갔다.
―재중 한인회장으로서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습니까.
“한인회가 중국의 54개 지역에 결성되어 있는데, 아직도 전체가 재중 한인회에 가입한 것은 아닙니다. 54개 지역 전체가 재중 한인회 중심으로 통합하여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교민들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추진하고 싶습니다.”
嫌韓감정 위험수위
정 회장은 올해 한인회가 주력할 활동 내역으로 중국의 우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중국 사회를 위한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 중국의 일류대학에 재학 중인 조선족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한인 교민과 2세들을 위한 문화시설이나 도서관 건립, 한중 우호림 조성, 중국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 중국에서의 불우이웃 돕기 등을 꼽았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할 텐데요. 한인회 관계자들에게 들어보니 정 회장께서는 私財(사재) 20억원 정도를 한인회 활동을 위해 내놓았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재중 한인회는 재정형편이 열악해 어떤 행사나 사업을 하려면 여기저기 손을 내밀어야 했습니다. 우선 회장단이 솔선수범하여 재정에 대한 고민 없이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출연하게 된 겁니다. 저는 임기 2년 동안 한인회 본부는 물론, 지역 한인회에서 교민들을 위한 훌륭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적극 지원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嫌韓(혐한)감정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돈 좀 있다고 중국 사람을 깔본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원인제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차별을 당했다거나,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가서 당한 일들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혐한감정이 일기도 합니다. 저희는 ‘겸따마다’ 운동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다가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교민들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중국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것을 본국으로 확산시키자는 것이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정 회장은 또 인터넷에서 악플을 추방하기 위해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대표 閔丙哲 중앙대 교수)와 업무협약을 맺어 중국 내에서의 선플 운동을 재중 한인회가 맡아서 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말로만 한중 우호친선을 외치는 것보다는 더 많은 한국인이 중국인과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고, 친분을 다지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한인회는 한국의 도시와 중국의 도시 간, 한국의 학교와 중국의 학교들 간에 자매결연을 맺어줘 서로 왕래하도록 하고, 한중 도시에 결성된 생활체육협회 멤버들이 상호 교류를 하면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이 궁극적으로 한중 간의 좋지 않은 감정을 해소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의료기계 공부 위해 1년간 공장 노동자로 근무
―대사관과의 협조관계는 어떻습니까.
“과거에는 한인회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해 대사관과의 관계가 그다지 원활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한인회가 활성화되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활동을 하니까 대사관에서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사관이나 외교라인과 협조하여 외교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한인회가 맡아서 해나갈 예정입니다.”
―한인회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에서 성공한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만, 중국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저의 경험담을 자주 이야기해 줍니다. 중국 진출을 검토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중국의 광활한 내수시장보다는 노동집약적 임가공이나 저임금에 의존하여 임가공을 한 다음 제3국으로 수출을 선호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기술력이 낮기 때문에 중국 업체에 금세 추월당하곤 합니다. 저는 만나는 분들에게 ‘우리는 기생충처럼 중국에 달라붙어 흡혈귀처럼 중국 내수시장을 빨아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3억의 시장이 여기 있는데 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까.”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고와 부산대를 졸업한 정 회장은 1986년 수출로 이름을 날리던 주식회사 대우에 입사했다가 1988년 대한생명으로 직장을 옮겨 10여 년 동안 보험영업을 하면서 세일즈 노하우를 익혔다고 한다.
1999년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한 그는 대전의 한 의료기 회사에 입사, 1년여를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의료기기 제작에 필요한 현장경험을 쌓았다. 그가 조선족 知人(지인)의 소개로 중국으로 건너온 것은 2001년. 1년여를 중국 전역을 떠돌며 중국 시장의 특성을 공부한 후 그해 연말, 칭다오에 리커의료기계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정 회장은 온열치료기라는 제품으로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한 지 6년 만에 중국 내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정 회장이 운영하는 리커의료기 회사는 온열치료기, 온열매트, 무릎관절 초음파 치료기 등 12종의 기기를 생산, 매출액 6억5000만 위안(한화로 약 1434억원), 중국 전역에 총판 1250개를 거느린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다른 사업가들은 대부분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전략을 선택한 데 반해 그가 사업 초기부터 중국 내수시장을 파고든 이유를 묻자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배수진을 친 셈”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사업가들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이 좀 부족합니다만, 저는 맨손으로 중국에 건너왔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었어요.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면 분명 길은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도전한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이며 최선의 방법을 철저히 연구한 끝에 중국 내수시장에 뛰어든 겁니다.”
준비하고 오는 만큼 잘 보인다
―한국에서 푸른 꿈을 품고 중국으로 오는 것은 좋은데, 중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중국에 대해 너무 준비를 하지 않고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지역 특성이나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성공할 것인가를 샅샅이 조사하고 고민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중국 시장은 준비하고 오는 만큼 잘 보이고, 성공 가능성도 높습니다. 코트라(KOTRA)나 정부기관에서 중국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관련정보 제공이나 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신다면.
“최근 들어 뉴라이프라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소자본으로 방판조직을 만들어 붐이 일고 있습니다. 야쿠르트도 중국에서 한국과 비슷한 야쿠르트 아줌마 조직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어요. 서라벌이라는 음식점도 중국의 20여 개 도시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열어 토착화 과정을 걷고 있습니다. 더 페이스샵이라든가 미샤 같은 경우도 소자본을 투자하여 200여 개의 대리점을 열었는데, 올해는 대리점망을 500개 정도로 늘린다고 합니다.”
―지금 소개한 성공사례를 보면 기존의 한국의 서비스 방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들어와 중국 시장에 맞도록 접목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방식이 중국에서도 충분히 통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중국을 잘 알아야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처음 중국에 진출한 기업인은 빠른 시간 내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매출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중국의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요.”
―중국에 진출한 우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유대관계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기업과 함께 중국에 진출한 중소 하도급업체들은 협조관계가 원활하지만,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창업하여 성장한 한국계 중소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과 접촉하려면 상당한 벽이 있고, 잘 알아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대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한 우리 중소기업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큰 힘이 될 텐데, 이런 유대관계가 만들어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선거 때마다 파벌 갈려 갈등할 수도
―한국계 기업들 간에 왜 협조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의 현지 책임자들에게 납품업체 결정권 같은 게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현지 진출한 한국의 대기업을 보면 중요한 경영상의 결정은 대부분 본사에서 하고, 현지 책임자들은 공장을 잘 가동시키는 권한만 주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속한 회사가 칭다오에 진출했을 때 칭다오에 한글학교 설립을 위해 협찬금을 요청하면 ‘우리는 그런 것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본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외국민도 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덕분에 우리 정치권에서도 재외국민들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중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교민들은 100% 한국 國籍(국적)입니다.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재중 한인은 51만명, 한인회 통계로는 70만명 정도입니다. 지금까지는 선거 때 투표를 하려면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가야 했는데, 이번에 재외국민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재외국민에 대한 큰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정 회장은 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어려운 고비가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선거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어요. 중국 지도부에서는 자칫하면 중국 내에서 한국인들이 주기적으로 선거하는 모습이 중국인들에게 선거 욕구를 부추기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선거를 할 때는 중국인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우리 공관 내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 회장은 또 “선거 때마다 중국 내에서 地緣(지연)이나 學緣(학연), 血緣(혈연)에 따라 파벌이 갈려 갈등의 소지를 제공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중국인의 기질은 무엇입니까.
“중국인들의 80%는 대단히 선량하고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래를 할 때 남을 이용하거나 신용이 없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요. 제가 느낀 중국인은 정이 많고 포용력이 크다는 점입니다.”
한국인, 조선족 많이 채용해야
―중국인의 속내를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중국인들은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 저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감으로써 중국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중국인들의 스케일이 대범하다, 자질구레한 것보다는 큰 흐름을 중시한다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케일 면에서 본다면 저는 중국 사람보다 한국인이 훨씬 더 대범하고 스케일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업하는 분들 입장에서 조선족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한국에서 조선족을 만나 그분들의 도움으로 중국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우리 같은 업종의 비즈니스는 조선족 없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아무리 규모가 커도 조선족을 서너 명 채용하는 것이 보통인데, 저희 회사에는 조선족 직원이 50여 명이나 됩니다. 조선족이 없었다면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정 회장은 “그동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가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족들도 한국 기업에 대한 선입견이 우호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이런 부분을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설명이다.
“요즘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슬로건이 ‘현지화’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한국 직원은 줄이고 중국 현지 직원을 채용하여 인건비를 낮춘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현지화에는 반대합니다. 회사 인건비가 많이 들어도 한국의 젊은이들을 채용해야 이들이 중국에서 비즈니스 경험을 쌓을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직원 두 명을 일부러 채용했어요. 또 우리 회사 정도의 규모면 보통 조선족을 두세 명 정도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는 50여 명의 조선족을 채용했어요. 같은 값이면 우리 민족에게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입니다.”
조선족 한글교육 지원하겠다
정 회장은 또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보너스를 연간 7회 제공하며, 명절이나 창립기념일에 전 직원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전 직원에게 국산 쿠쿠밥솥을 선물했고, 창립기념일에는 삼성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했다고 한다.
필자를 안내했던 이 회사의 법무과 과장인 조선족 劉載霖(유재림)씨는 “밥솥이나 디카는 종업원들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할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면서 “우리 집이 옌지(延吉)인데, 전 직장에 근무할 때는 명절이면 36시간씩 기차를 타고 집에 갔으나 리커에 입사한 후에는 월급을 많이 줘서 요즘엔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간다”고 말했다.
―조선족 2~3세들의 한글교육이 활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옌볜의 조선족자치주에서는 조선족 2~3세들의 한글교육이 원활했지만, 조선족들이 취업을 위해 베이징이나 상하이, 칭다오 등으로 흩어짐으로써 이 지역에서는 조선족 자녀들의 한글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문제는 재중국 한인회에서 적극 의논해 활로를 찾아보겠습니다. 칭다오의 경우 벽산소학교라는 한글학교를 설립하여 조선족 자녀들이 한글 공부를 시키는데, 칭다오 지역의 한국 상공인과 한국의 재외동포재단에서도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이런 학교를 설립하여 한글교육을 한다면 중국 정부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 회장은 한인회장으로서 자신의 목표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재중 한인회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인회장 임기가 2년인데, 제 재임기간 중 대기업 총수와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하는 한인회, 중국 중앙정부의 고위 지도자들과 수시로 만나 한중 우호관계에 대한 현안을 논할 수 있는 위상이 정립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 회장의 집무실 한쪽에는 기타가 놓여 있었다. 기타의 용도를 묻자 “직원들 송년회 때 중국 노래 몇 곡 부르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이 꿈틀대고 있는데, 우리가 그 등에 올라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
▣ 칭다오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
2002년 중국 칭다오에서 출범한 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는 산둥성(山東省)에 진출한 100개가 넘는 한국 기업 중 실적 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9월 정 회장은 샤겅(夏耕) 칭다오 시장으로부터 최우수 외국투자자에게 수여하는 琴島賞(금도상)을 수상했다.
2002년 칭다오 번화가에 1호 판매점을 연 이래 승승장구한 정 회장의 리커의료기계는 ‘중국 소비자 만족 제일 브랜드’, 전국 의료기계 박람회에서 가장 환영 받는 제품 금상을 2년 연속(2004, 2005년) 수상했다. 2005년 10월에는 ‘인민공복’ 편집위원회가 리커 회사의 중국경제 발전과 사회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정 회장을 ‘인민공복’이란 책에 소개했다. 이 책에 소개되려면 중국의 각 사업분야에서 공헌이 두드러진 모범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정 회장은 중국 브랜드 건설 10대 걸출 인물, 중국 10대 상업 지도자 선정, 중국 사회적 책임감이 가장 강한 10대 기업에도 선정됐다. 지난해 5월 29일 정 회장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칭다오 방문 시 기업인들과 함께 접견하기도 했다.
리커의료기계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브랜드 지명도를 쌓기 위해 CCTV 채널 1의 ‘7시 뉴스’에 광고를 집행했다. ‘CCTV 채널 1의 ‘7시 뉴스’는 한국으로 치면 KBS ‘9시 뉴스’에 해당하는 황금시간대의 프로였다. 이 프로에 중국과 해외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광고와 함께 리커 제품 광고가 나가면서 판매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어 중국 최대의 신문인 <인민일보>에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기 시작했고,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 2004년에는 중국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팀의 공식 후원사를 맡았다. 핸드볼팀에 이어 당시 세계 랭킹 1위를 달리던 중국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당시는 아테네올림픽을 앞둔 상황이라서 반응이 대단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 정 회장의 기업활동이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중의 하나로 정치협상회의에서 발간하는 <정협신문> 기자가 정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이 인터뷰 기사를 통해 중국의 주요 국가공무원들에게 리커의료기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의 인연으로 <정협신문>이 마하티르를 비롯하여 해외의 유명한 碩學(석학)과 정치인을 초청하여 진행한 ‘21세기 논단’이란 행사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정 회장이 초청을 받았고, 리커의료기계는 이 행사의 후원업체를 맡았다.
그는 또 사회봉사 차원에서 칭다오 회사 근처에 살고 있는 형편이 어려운 중국 학생 212명에게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는데, 이에 대해 산둥성 부녀자연합회는 정 회장에게 ‘산둥성 춘뢰(春?)계획 자선대사’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후 정 회장은 불우학생돕기 행사를 매년 계속하고 있고, 지난해 쓰촨성 지진 참사 때는 회사에서 50명의 직원을 재난 현장에 급파해 복구활동을 돕고 복구성금 50만 위안과 구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매년 중국 사회에 기부금으로 내는 돈이 한화로 15억~20억원 정도라고 한다.
이날 鄭曉權(정효권) 在中(재중) 한인회장(칭다오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 동사장)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위상 강화, 정체성 확립, 韓中(한중) 간 우호증진 등이 올해의 주요 활동목표”라면서 “겸따마다(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기) 운동을 통해 우리가 먼저 중국인에게 다가가자”고 인사말을 했다.
그동안 재중 한인회는 재정 형편이 열악해 활동이 미미했다는 평을 들었는데, 지난해 12월 제5대 재중 한인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한인회의 위상 강화를 위해 재임 중에 1000만 위안(한화로 21억원)을 내놓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한인회장을 맡게 된 사연을 묻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8월 한인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보다 인격적으로나 학식 면에서 훌륭한 분들이 많고, 저보다 중국에서의 사업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많은데 제가 한인회장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재중 한인회는 그동안 활동이 미미했다는 평이 있었는데요.
“재중 한인회 역사가 10여 년인데, 중국은 워낙 땅이 넓어 그동안은 지역별로 활동을 해 왔어요. 4대 회장께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한인회를 묶어서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를 만든 게 겨우 1년 전입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한인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으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는 지난해 11월 초에 한인회장직을 수락, 올 1월부터 시작되는 임기 2년의 활동에 들어갔다.
―재중 한인회장으로서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습니까.
“한인회가 중국의 54개 지역에 결성되어 있는데, 아직도 전체가 재중 한인회에 가입한 것은 아닙니다. 54개 지역 전체가 재중 한인회 중심으로 통합하여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교민들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추진하고 싶습니다.”
嫌韓감정 위험수위
정 회장은 올해 한인회가 주력할 활동 내역으로 중국의 우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중국 사회를 위한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 중국의 일류대학에 재학 중인 조선족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한인 교민과 2세들을 위한 문화시설이나 도서관 건립, 한중 우호림 조성, 중국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 중국에서의 불우이웃 돕기 등을 꼽았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할 텐데요. 한인회 관계자들에게 들어보니 정 회장께서는 私財(사재) 20억원 정도를 한인회 활동을 위해 내놓았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재중 한인회는 재정형편이 열악해 어떤 행사나 사업을 하려면 여기저기 손을 내밀어야 했습니다. 우선 회장단이 솔선수범하여 재정에 대한 고민 없이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출연하게 된 겁니다. 저는 임기 2년 동안 한인회 본부는 물론, 지역 한인회에서 교민들을 위한 훌륭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적극 지원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嫌韓(혐한)감정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돈 좀 있다고 중국 사람을 깔본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원인제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차별을 당했다거나,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가서 당한 일들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혐한감정이 일기도 합니다. 저희는 ‘겸따마다’ 운동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다가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교민들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중국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것을 본국으로 확산시키자는 것이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정 회장은 또 인터넷에서 악플을 추방하기 위해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대표 閔丙哲 중앙대 교수)와 업무협약을 맺어 중국 내에서의 선플 운동을 재중 한인회가 맡아서 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말로만 한중 우호친선을 외치는 것보다는 더 많은 한국인이 중국인과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고, 친분을 다지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한인회는 한국의 도시와 중국의 도시 간, 한국의 학교와 중국의 학교들 간에 자매결연을 맺어줘 서로 왕래하도록 하고, 한중 도시에 결성된 생활체육협회 멤버들이 상호 교류를 하면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이 궁극적으로 한중 간의 좋지 않은 감정을 해소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의료기계 공부 위해 1년간 공장 노동자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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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칭다오를 방문, 정효권 리커의료기계 동사장(왼쪽 두번째)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과거에는 한인회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해 대사관과의 관계가 그다지 원활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한인회가 활성화되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활동을 하니까 대사관에서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사관이나 외교라인과 협조하여 외교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한인회가 맡아서 해나갈 예정입니다.”
―한인회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에서 성공한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만, 중국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저의 경험담을 자주 이야기해 줍니다. 중국 진출을 검토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중국의 광활한 내수시장보다는 노동집약적 임가공이나 저임금에 의존하여 임가공을 한 다음 제3국으로 수출을 선호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기술력이 낮기 때문에 중국 업체에 금세 추월당하곤 합니다. 저는 만나는 분들에게 ‘우리는 기생충처럼 중국에 달라붙어 흡혈귀처럼 중국 내수시장을 빨아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3억의 시장이 여기 있는데 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까.”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고와 부산대를 졸업한 정 회장은 1986년 수출로 이름을 날리던 주식회사 대우에 입사했다가 1988년 대한생명으로 직장을 옮겨 10여 년 동안 보험영업을 하면서 세일즈 노하우를 익혔다고 한다.
1999년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한 그는 대전의 한 의료기 회사에 입사, 1년여를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의료기기 제작에 필요한 현장경험을 쌓았다. 그가 조선족 知人(지인)의 소개로 중국으로 건너온 것은 2001년. 1년여를 중국 전역을 떠돌며 중국 시장의 특성을 공부한 후 그해 연말, 칭다오에 리커의료기계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정 회장은 온열치료기라는 제품으로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한 지 6년 만에 중국 내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정 회장이 운영하는 리커의료기 회사는 온열치료기, 온열매트, 무릎관절 초음파 치료기 등 12종의 기기를 생산, 매출액 6억5000만 위안(한화로 약 1434억원), 중국 전역에 총판 1250개를 거느린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다른 사업가들은 대부분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전략을 선택한 데 반해 그가 사업 초기부터 중국 내수시장을 파고든 이유를 묻자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배수진을 친 셈”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사업가들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이 좀 부족합니다만, 저는 맨손으로 중국에 건너왔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었어요.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면 분명 길은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도전한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이며 최선의 방법을 철저히 연구한 끝에 중국 내수시장에 뛰어든 겁니다.”
준비하고 오는 만큼 잘 보인다
―한국에서 푸른 꿈을 품고 중국으로 오는 것은 좋은데, 중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중국에 대해 너무 준비를 하지 않고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지역 특성이나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성공할 것인가를 샅샅이 조사하고 고민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중국 시장은 준비하고 오는 만큼 잘 보이고, 성공 가능성도 높습니다. 코트라(KOTRA)나 정부기관에서 중국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관련정보 제공이나 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신다면.
“최근 들어 뉴라이프라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소자본으로 방판조직을 만들어 붐이 일고 있습니다. 야쿠르트도 중국에서 한국과 비슷한 야쿠르트 아줌마 조직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어요. 서라벌이라는 음식점도 중국의 20여 개 도시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열어 토착화 과정을 걷고 있습니다. 더 페이스샵이라든가 미샤 같은 경우도 소자본을 투자하여 200여 개의 대리점을 열었는데, 올해는 대리점망을 500개 정도로 늘린다고 합니다.”
―지금 소개한 성공사례를 보면 기존의 한국의 서비스 방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들어와 중국 시장에 맞도록 접목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방식이 중국에서도 충분히 통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중국을 잘 알아야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처음 중국에 진출한 기업인은 빠른 시간 내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매출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중국의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요.”
―중국에 진출한 우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유대관계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기업과 함께 중국에 진출한 중소 하도급업체들은 협조관계가 원활하지만,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창업하여 성장한 한국계 중소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과 접촉하려면 상당한 벽이 있고, 잘 알아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대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한 우리 중소기업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큰 힘이 될 텐데, 이런 유대관계가 만들어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선거 때마다 파벌 갈려 갈등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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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회장은 지난해 쓰촨성 대지진 참사 때 리커 회사 직원 50명을 재난 현장에 급파, 구호성금을 전달하고 재난 복구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의 현지 책임자들에게 납품업체 결정권 같은 게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현지 진출한 한국의 대기업을 보면 중요한 경영상의 결정은 대부분 본사에서 하고, 현지 책임자들은 공장을 잘 가동시키는 권한만 주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속한 회사가 칭다오에 진출했을 때 칭다오에 한글학교 설립을 위해 협찬금을 요청하면 ‘우리는 그런 것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본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외국민도 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덕분에 우리 정치권에서도 재외국민들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중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교민들은 100% 한국 國籍(국적)입니다.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재중 한인은 51만명, 한인회 통계로는 70만명 정도입니다. 지금까지는 선거 때 투표를 하려면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가야 했는데, 이번에 재외국민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재외국민에 대한 큰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정 회장은 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어려운 고비가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선거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어요. 중국 지도부에서는 자칫하면 중국 내에서 한국인들이 주기적으로 선거하는 모습이 중국인들에게 선거 욕구를 부추기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선거를 할 때는 중국인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우리 공관 내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 회장은 또 “선거 때마다 중국 내에서 地緣(지연)이나 學緣(학연), 血緣(혈연)에 따라 파벌이 갈려 갈등의 소지를 제공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중국인의 기질은 무엇입니까.
“중국인들의 80%는 대단히 선량하고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래를 할 때 남을 이용하거나 신용이 없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요. 제가 느낀 중국인은 정이 많고 포용력이 크다는 점입니다.”
한국인, 조선족 많이 채용해야
―중국인의 속내를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중국인들은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 저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감으로써 중국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중국인들의 스케일이 대범하다, 자질구레한 것보다는 큰 흐름을 중시한다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케일 면에서 본다면 저는 중국 사람보다 한국인이 훨씬 더 대범하고 스케일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업하는 분들 입장에서 조선족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한국에서 조선족을 만나 그분들의 도움으로 중국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우리 같은 업종의 비즈니스는 조선족 없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아무리 규모가 커도 조선족을 서너 명 채용하는 것이 보통인데, 저희 회사에는 조선족 직원이 50여 명이나 됩니다. 조선족이 없었다면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정 회장은 “그동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가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족들도 한국 기업에 대한 선입견이 우호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이런 부분을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설명이다.
“요즘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슬로건이 ‘현지화’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한국 직원은 줄이고 중국 현지 직원을 채용하여 인건비를 낮춘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현지화에는 반대합니다. 회사 인건비가 많이 들어도 한국의 젊은이들을 채용해야 이들이 중국에서 비즈니스 경험을 쌓을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직원 두 명을 일부러 채용했어요. 또 우리 회사 정도의 규모면 보통 조선족을 두세 명 정도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는 50여 명의 조선족을 채용했어요. 같은 값이면 우리 민족에게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입니다.”
조선족 한글교육 지원하겠다
정 회장은 또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보너스를 연간 7회 제공하며, 명절이나 창립기념일에 전 직원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전 직원에게 국산 쿠쿠밥솥을 선물했고, 창립기념일에는 삼성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했다고 한다.
필자를 안내했던 이 회사의 법무과 과장인 조선족 劉載霖(유재림)씨는 “밥솥이나 디카는 종업원들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할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면서 “우리 집이 옌지(延吉)인데, 전 직장에 근무할 때는 명절이면 36시간씩 기차를 타고 집에 갔으나 리커에 입사한 후에는 월급을 많이 줘서 요즘엔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간다”고 말했다.
―조선족 2~3세들의 한글교육이 활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옌볜의 조선족자치주에서는 조선족 2~3세들의 한글교육이 원활했지만, 조선족들이 취업을 위해 베이징이나 상하이, 칭다오 등으로 흩어짐으로써 이 지역에서는 조선족 자녀들의 한글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문제는 재중국 한인회에서 적극 의논해 활로를 찾아보겠습니다. 칭다오의 경우 벽산소학교라는 한글학교를 설립하여 조선족 자녀들이 한글 공부를 시키는데, 칭다오 지역의 한국 상공인과 한국의 재외동포재단에서도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이런 학교를 설립하여 한글교육을 한다면 중국 정부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 회장은 한인회장으로서 자신의 목표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재중 한인회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인회장 임기가 2년인데, 제 재임기간 중 대기업 총수와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하는 한인회, 중국 중앙정부의 고위 지도자들과 수시로 만나 한중 우호관계에 대한 현안을 논할 수 있는 위상이 정립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 회장의 집무실 한쪽에는 기타가 놓여 있었다. 기타의 용도를 묻자 “직원들 송년회 때 중국 노래 몇 곡 부르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이 꿈틀대고 있는데, 우리가 그 등에 올라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
▣ 칭다오리커의료기계유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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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회장이 운영하는 리커의료기계는 중국 내에서 브랜드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 여자 국가대표 핸드볼 팀 공식 후원사를 맡았다. |
2002년 칭다오 번화가에 1호 판매점을 연 이래 승승장구한 정 회장의 리커의료기계는 ‘중국 소비자 만족 제일 브랜드’, 전국 의료기계 박람회에서 가장 환영 받는 제품 금상을 2년 연속(2004, 2005년) 수상했다. 2005년 10월에는 ‘인민공복’ 편집위원회가 리커 회사의 중국경제 발전과 사회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정 회장을 ‘인민공복’이란 책에 소개했다. 이 책에 소개되려면 중국의 각 사업분야에서 공헌이 두드러진 모범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정 회장은 중국 브랜드 건설 10대 걸출 인물, 중국 10대 상업 지도자 선정, 중국 사회적 책임감이 가장 강한 10대 기업에도 선정됐다. 지난해 5월 29일 정 회장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칭다오 방문 시 기업인들과 함께 접견하기도 했다.
리커의료기계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브랜드 지명도를 쌓기 위해 CCTV 채널 1의 ‘7시 뉴스’에 광고를 집행했다. ‘CCTV 채널 1의 ‘7시 뉴스’는 한국으로 치면 KBS ‘9시 뉴스’에 해당하는 황금시간대의 프로였다. 이 프로에 중국과 해외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광고와 함께 리커 제품 광고가 나가면서 판매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어 중국 최대의 신문인 <인민일보>에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기 시작했고,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 2004년에는 중국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팀의 공식 후원사를 맡았다. 핸드볼팀에 이어 당시 세계 랭킹 1위를 달리던 중국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당시는 아테네올림픽을 앞둔 상황이라서 반응이 대단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 정 회장의 기업활동이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중의 하나로 정치협상회의에서 발간하는 <정협신문> 기자가 정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이 인터뷰 기사를 통해 중국의 주요 국가공무원들에게 리커의료기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의 인연으로 <정협신문>이 마하티르를 비롯하여 해외의 유명한 碩學(석학)과 정치인을 초청하여 진행한 ‘21세기 논단’이란 행사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정 회장이 초청을 받았고, 리커의료기계는 이 행사의 후원업체를 맡았다.
그는 또 사회봉사 차원에서 칭다오 회사 근처에 살고 있는 형편이 어려운 중국 학생 212명에게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는데, 이에 대해 산둥성 부녀자연합회는 정 회장에게 ‘산둥성 춘뢰(春?)계획 자선대사’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후 정 회장은 불우학생돕기 행사를 매년 계속하고 있고, 지난해 쓰촨성 지진 참사 때는 회사에서 50명의 직원을 재난 현장에 급파해 복구활동을 돕고 복구성금 50만 위안과 구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매년 중국 사회에 기부금으로 내는 돈이 한화로 15억~20억원 정도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