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가 상임委에서 토론하는 한 직권상정 안 한다”
“지금 각 당의 당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강경파들.
이들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여론에 둔감. 그러니 ‘빠꾸 오라이’ 없이 막가는 것”
“지금 각 당의 당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강경파들.
이들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여론에 둔감. 그러니 ‘빠꾸 오라이’ 없이 막가는 것”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벌어진 우리 국회의 폭력사태는 여러 차례 해외 토픽을 장식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여러 차례 경험한 대한민국 국회에서 해머와 전기톱, 분말형 소화기, 등산용 자일이 등장하는 活劇(활극)이 펼쳐졌다. 시계바늘을 20년쯤 되돌린 듯한 국회 폭력사태를 혹자는 ‘막장 국회’라고 불렀다.
金炯旿(김형오·61) 국회의장은 벌거벗은 폭력을 휘두르는 야당에 의장실을 뺏기는 홍역을 치렀고, 친정인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쟁점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주지 않는다고 거센 공격을 받았다. 국회를 ‘막장’으로 몰고 갔던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은 2월 국회로 미뤄졌다. 김 의장은 어떤 생각과 각오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장실을 찾았을 때 마침 국회방송은 민주당 李錫玄(이석현) 의원이 金慶漢(김경한) 법무장관을 상대로 용산화재 사건을 추궁하는 장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 의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김 장관을 쉴 새 없이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그의 질문은 전날 본회의 ‘현안질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수십 번 되풀이했던 내용이었다.
2월 국회가 문을 열었지만 與野(여야)는 2월 13일까지 상임위를 열지 않았고, 쟁점법안들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2008년 6월 月刊朝鮮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8개월 만에 만난 그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與野 모두 네 탓
―한나라당은 ‘국회폭력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하고,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법안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국회 慣行(관행)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법을 만들어서 해결하겠다는 접근,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국회가 얼마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이런 법안들을 만들겠다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입법을 추진하겠습니까. 이게 우리 국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두 법이 다 필요 없기를 바랍니다. 이 두 법을 꼭 만들겠다면 지난 年末年始(연말연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야가 반성이 없다는 얘기죠.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 발음이 제대로 될 지 모르겠지만, 다 ‘네 탓’이죠 ‘너의 탓이지 나의 탓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잖아요.”
―지난 연말 국회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여러 가지 겹쳤습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제부터 입법전쟁”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여당 상임위원장이 민주당 정권이 만든 한미FTA 법안을 상임위원회를 봉쇄하고 강행처리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그것을 막겠다고 해머와 전기톱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겁니까.
“정치부에서 오래 일한 기자들이 이해가 안 가는데, 그것을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막장 국회’가 펼쳐졌는데 그래도 무슨 연유가 있었을 게 아닙니까.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여야가 換骨奪胎(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국회의 기존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여야 의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모든 의원들에게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묻고 싶습니다. 국회에서 집단만 보이지 국회의원이 보이질 않아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느냐. 제도에 중대한 모순이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국회의원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정당이에요. 정당의 대표나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와 의견을 구하지 않아요. 소위 黨論(당론)이라 해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 ‘이건 1㎝만 앞으로 가고 저건 5㎝ 뒤로 가라’고 정해 버립니다.
이게 타개해야 할 잘못된 관행입니다. 당론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당론이 민주적으로 결정됐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각 당이 법안 한 건 한 건에 대해 세세하게 당론을 정해버리니까 협상팀인 원내대표가 협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당 내에서조차 適法節次(적법절차), 즉 ‘듀 프로세스(Due Process)’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 말씀이죠.
“원내대표 중심의 협상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상임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에 한해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쟁점법안이라는 방송법도 상임위에서 토론하면 절충점이 나와 타협할 수 있습니다. 상임위에 상정도 안 하고 토론도 안 하면서, 한쪽은 ‘무조건 통과시킨다’고 하고, 한쪽은 ‘惡法(악법)이다’고 하는 것은 非(비)민주적입니다. 국회는 대화하고 토론하고 절충점을 찾고, 마지막에 표결하는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여야가 ‘빠꾸 오라이’가 안 되는 이유
―정당이 그렇게 심하게 의원들을 옥죄고 있는 겁니까.
“3金(김) 시대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3김이 의원들을 다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3김 같은 카리스마도 없으면서 정당이 의원들을 다 쥐고 있어요. 그나마 3김 시대에는 어떤 사안을 밀고 가다가 3김이 ‘이게 아니다’라고 결단하면 후퇴가 가능했습니다. 지금 여야 정당은 한번 결정하면, 속된 말로 ‘빠꾸 오라이’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없습니다. 극한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어요. 정당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율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은 3김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당을 이끌 땐 여론에 무척 민감했죠.
“3김 시대에는 전진뿐만 아니라 퇴각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결단력과 지도력, 책임감을 갖고 당을 지도하는 사람이 지금 정치에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강경하게 앞으로 전진만 할 줄 알지, 후퇴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리더가 없습니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당이 책임지지 않는 강경파에 휘둘리니까, 국회의 강경대치가 한달 가까이 지속됐던 거군요.
“지금 각 당의 당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강경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가자는 대로 가는 겁니다. 강경파들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여론에 둔감합니다. 그러니 ‘빠꾸 오라이’ 없이 막가는 겁니다.”
―당에 큰 持分(지분)이 있는 實勢(실세) 정치인, 大權(대권)에 뜻을 가진 정치인이 당을 전면에서 끌고 가는 게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말씀으로 해석해도 되겠죠.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는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입니다.”
―의원들에 대한 공천권을 각 정당이 완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당들이 한때 上向式(상향식) 公薦(공천)과 지역 競選(경선)을 시도했다가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 의원들로서는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갖고 있는 당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여야 토론이 진행되는 한 職權상정 안 한다
“19대 총선 공천까지 3년이 넘게 남아 있습니다. 의원들이 아직 공천권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시점입니다. 제가 상임위원회 중심의 국회 운영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지금이 가장 適期(적기)이기 때문입니다.
각 당의 18대 총선 공천에서 議政(의정)활동을 잘한 의원들이 공천에서 많이 배제됐는데, 이건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의정활동 성적과 공천이 직결돼야 합니다. ‘의원으로서의 책무와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 공천권의 잣대가 결정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어나야 합니다.”
―2월 국회에 미디어법 같은 쟁점법안들이 다시 상정됩니다. 한나라당 洪準杓(홍준표) 원내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결코 처리에 합의해 줄 수 없는 법안이다. 또 한번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며 또 ‘전쟁’을 언급했습니다.
“국회는 전쟁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제가 전쟁하는 국회를 안 만들 겁니다. 만약 다시 한번 그런 모습을 보이면 대한민국 국회가 없어집니다. 국민들이 가만두겠습니까.”
―쟁점법안들이 상임위 중심으로 합의 처리될 수 있도록 “당에서 주물럭거리지 말고 결정권을 상임위로 넘기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내가 요즈음 매일 떠드는 게 그 얘기예요. 국회법 절차에 의해 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상임위에 회부됩니다. 법안이 상임위에 上程(상정)되면 여야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현재 쟁점법안 상정이 ‘올 스톱’상태입니다. 야당은 ‘상임위에 상정되면 여당이 多數(다수)로 밀어붙여 일사천리로 진행할 것이다’라는 우려 때문에, 쟁점법안을 절대 상정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시키기 위해 제가 ‘상임위에 상정해서 토의하고 심사해라. 상정했다 해서 의장이 절대로 본회의에 職權(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임위에서 여야가 결정을 내리라는 뜻입니다. 이번 18대 국회가 남긴 좋은 사례가 종부세법 개정입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야가 종부세에 대한 타협안을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에서 종부세 절충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야가 타협안을 만들어 냈잖아요.”
―상임위에 맡긴다고 모든 법안에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물론이죠. 국가보안법이 그런 경우죠. 한쪽은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한쪽은 존치를 주장합니다. 또 국가보안법은 각 당 正體性(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론이 필요합니다. 이건 상임위에서 쉽게 결정이 안 납니다. 그런 문제는 원내대표 협상이나 당 지도부 간의 협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얘기되는 방송법이나 金産(금산)분리법 등은 정당의 기둥뿌리를 흔드는 법들이 아닙니다. 의논하면 절충안이 나올 수 있어요.”
―지난 연말 한나라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 권고’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만난 한나라당 중진의원이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란 일종의 비상조치다. 정말 하다 안 돼서 한두 개 법안이나 의안을 처리하는 거지, 수십 개 법안을 묶어서 직권상정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직권상정이라는 게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미묘한 권한인 듯합니다.
국회는 아무리 바빠도 ‘듀 프로세스’(적법절차) 지켜야
“직권상정은 예외적 상황에서 쓰는 비상수단입니다. 여야 모두 직권상정 문제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야당은 국회의장한테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요구합니다. 야당은 그런 말 하지 말고 직권상정 안 해도 되도록 의사진행에 협조해야 합니다.
여당은 직권상정을 전제로 깔고, ‘협상 안 되면 직권상정이다. 법안도 하나 못 통과시키는 多數黨(다수당)이 뭐냐. 국회의장도 한나라당 출신 아니냐’라고 합니다. 직권상정을 전제로 야당과 의사진행을 협의하니 제대로 되겠습니까. 직권상정은 ‘히든카드’입니다. 보여서는 안 되는데 서로 히든카드를 꺼내놓고 야단을 치니 의사협의가 안 됩니다. 직권상정은 국가적으로 절대로 필요한데 少數黨(소수당)에 의해 의사진행이 막혀 있을 때, 국민적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국회 문을 열었지만 상임위에서 본격적인 법안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상당히 잘못된 일입니다. 상정을 해 놓고 의안을 계속 협의해야 하는데 여야 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2월 국회가 지난번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작년 연말과 금년 초에 여권과 언론에서 하도 얻어맞아서 더 이상 맞을 데가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여야 의원들 사이에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진국의 조건으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法治(법치)’의 확립이겠죠. 적법절차), 즉 ‘듀 프로세스(Due Process)’가 확보되면 좀 늦게 가도 된다는 게 선진국들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빨리빨리’ 문화와 ‘듀 프로세스’는 상충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주의는 성가시고 줄을 서야 하는 문화입니다. 민주주의가 귀찮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빨리빨리’ 문화가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행정은 합목적성을 가지고 빨리빨리 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행정을 보면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빨리빨리 하려고 하는데 행정부가 뒷받침을 못해요. 행정은 불필요한 것들은 확 줄여서 빨리 추진해야 합니다. 국회는 심의를 빨리 해서는 절대 안 되고, ‘듀 프로세스’를 지켜야 합니다.”
속 시원한 물갈이가 정치발전 못 가져와
―통일원 공무원들이 “외부 인사들이 통일부장관으로 와서 통일부의 언어로 말하는 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를 해요. 국회의원들 역시 ‘국회의 언어’로 말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닙니까.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원내 수석 부대표(당시 수석 부총무)는 3選(선)의원이 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부대표 자리는 대개 再選(재선)이었고 초선은 거의 없었습니다. 현재는 수석 부대표를 재선이 맡고 부대표를 초선이 맡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상임위 간사를 재선 이상으로 뽑도록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총선 때마다 초선의원들이 60~70% 진출해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집니다. 정치不信(불신)이 큰 유권자들의 속은 시원하겠지만, 의회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들은 ‘국회가 형편없다’,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폭의 물갈이를 시킵니다.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국민이 심판을 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국회에는 안정성도 필요합니다. 확확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17대 국회 때 얼마나 많은 초선의원들이 들어왔습니까. 그분들이 정치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탄돌이(탄핵 후폭풍으로 국회에 진입했다는 뜻)’로 불렸던 108명의 초선 열린우리당 386의원들이 18대 총선에서 대부분 떨어졌죠.
“싹 물갈이가 됐죠. 국민들 눈에 정치가 형편없이 비치는데 대해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의 안정성, 정치적 경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발굴된 정조의 비밀 御札(어찰)이 화제입니다. 正祖(정조)가 政敵(정적)이었던 老論 僻派(노론 벽파)의 영수 沈煥之(심환지)에게 4년 동안 299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의장님은 여야의 국회 지도부, 당 지도부와 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역대 국회의장 중에 나처럼 바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만남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죠. 어제는 상임위원장들과 오찬을 했고, 본회의가 끝난 후에는 여야 원내대표들과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盧武鉉 탄핵안에 서명하지 않은 까닭
―“각 당이 의원들을 풀어주고,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하자”고 하면 각 당 지도부가 공감을 합니까.
“틀린 얘기가 아니잖아요. 제가 당파에 치우쳐서 하는 말이 아니고, 국회를 살리자고 하는 거니까. 原論的(원론적)으로는 모두 공감하지만, 당론을 뚫고 나갈 만큼의 상황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번 얘기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최근에 요르단·터키·아랍에미리트(UAE) 中東(중동) 3개국을 방문했는데, 중동을 다녀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3개국 모두 큰 현안이 있습니다. 大水路(대수로) 사업과 원자력 발전소, 고등훈련기 판매 등…. 요르단에서는 국왕을 만났고, UAE에서는 최고 실권자인 왕세자, 터키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만났습니다. 터키는 二元(이원)집정부제라 국무총리가 실세입니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면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설을 터키에서 맞았습니다. 현안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정부에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요즈음 부산 민심은 어떻습니까.
“부산은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구인데 지난 1월 수출이 34% 감소했습니다. 수출 물동량이 눈에 띄게 줄어 경기침체가 한눈에 보입니다. 부산 전체가 위축돼 있습니다. 더구나 제 지역구는 서민층이 많이 몰려있는 지역입니다. 시장에 가면 시장통 전체에 손님보다 점원 수가 더 많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국회의장에 선출되기 직전에 月刊朝鮮 인터뷰에서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의안에 끝까지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죠. 한나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상태에서 국회 선출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라 제가 그 부분을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탄핵안 서명을 거부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결전을 독려하는 한나라당 의원총회 때 제가 발언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했다. 하지만 賜藥(사약)을 내려서 정치 생명을 끝낼 정도는 아니다’ 그런 취지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내 강경파들에게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의안을 발의하면 원내총무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의원들 도장을 찍어 일괄 처리했지만, 탄핵은 중요한 사안이니까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일일이 받았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면 다음 공천 받을 생각 하지 말라’고 하니까, 탄핵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망설이고 돌아섰지만 저는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탄핵안을 처리할 때 찬성 투표는 하셨죠
“제 소신이 당론과 달랐지만, 투표 때는 당론에 따랐습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유도하는 듯한 도발성 기자회견을 했지 않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공천 안 준다’는 게 의원들에게 제일 큰 위협이군요.
“제가 공천탈락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당내 경선을 치르고 그렇게 살아 올라왔잖아요. 정치인이 가끔 타협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내가 그러질 잘 못해요.”
정보통신 분야 천착
―김영삼 정부 때는 중앙청 건물(옛 총독부 건물) 해체에 반대하는 글을 月刊朝鮮에 기고하셨죠.
“제가 그 글을 썼다가 그때도 공천을 못 받을 뻔했어요. 이건 처음으로 공개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때 月刊朝鮮의 姜仁仙(강인선) 기자가 대뜸 찾아와 ‘중앙청 해체에 반대하는 글을 하나 써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나한테 그 글을 부탁하느냐’고 물었더니, 당시 金正男(김정남)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김형오 의원이면 써 줄 것’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제가 그 무렵 김정남 수석과 점심을 하면서 ‘중앙청을 해체하면 안 된다. 김 선배가 앞장서라’고 얘기를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초선의 여당의원이었고, 부산 출신으로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글을 썼지만 ‘중앙청을 부수면 안 된다’는 요지는 분명했습니다. 당에서 15대 총선 공천을 안 주겠다고 했는데, 여론조사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결국 공천을 받았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오랫동안 정보통신 분야에 천착해 왔다. 국회에서 10년 이상을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에서 일했다. 이동통신을 CDMA 방식으로 결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IPTV(Internet Protocol TV- 인터넷을 이용한 TV) 법안을 만들어 IPTV시대를 열었다.
“2005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때 ‘IPTV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도 3년 동안 썩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귀가 번쩍 뜨여서 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IPTV가 방송이냐, 통신이냐’ 관할권을 놓고,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카운터파트인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국회에 특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서 6개월 만에 IPTV법을 만들고 IPTV 시대를 열게 된 겁니다.”
“미디어법 토론하면 결론 난다”
―미디어법이 2월 국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입니다. IPTV에 KT와 SK, LG텔레콤 같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KT와 SK는 현재 100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IPTV는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의 채널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참여를 허용하면, 재벌과 신문의 방송장악이 이뤄진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이건 공중파방송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1980년대의 시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IPTV 시대가 개막되면서 KBS MBC 같은 공중파방송들이 하나의 ‘프로그램 공급자(PP)’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방송과 통신이 혁명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조·중·동 방송’, ‘재벌 방송’이 방송을 장악할지 상임위에서 토론을 해서 판단해 보자는 게 제 얘기입니다. 의논해보면 답이 나올 거 아닙니까? 대기업과 신문에 허용할 방송사 참여지분에 문제가 있다면, 지분을 낮춰서 절충안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입니까.
“개인적으로 찬성입니다. 제가 국회 정보통신위원장을 할 때 ‘애국적인 10만 해커 양성론’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정보 통신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 혹은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근거 없는 인터넷의 악플로 사람이 죽는 일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행정구역 개편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여야가 뜻을 모으고 있어 국회에 특별위원회가 곧 구성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행정구역이 중앙정부, 市·道(시·도), 市·郡·區(시·군·구), 邑·面·洞(읍·면·동)으로 크게 보면 4층 구조입니다. 정보화시대에 이런 多層(다층) 행정구조를 지속할 이유가 없습니다. 작은 시군은 생활권을 묶어야 합니다.”
―경북도청이 여러 시군 간의 경쟁 끝에 안동과 예천의 경계지점으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허허벌판에 도청 하나 서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시·군을 통합하면, 통합시청을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다툼이 벌어질 텐데.
“행정구역 개편하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경남의 마산·창원·진해입니다. ‘창원에 경남도청이 있으니까 창원을 통합시청으로 하자’고 하면, 마산의 국회의원들은 ‘마산에서 창원이 나왔는데 무슨 말이냐’고 합니다. 창원에 시청을 절대 내주지 못하겠다는 얘기죠. 시설분배 문제까지 감안하면 대단히 복잡합니다.
저는 지방자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稅制(세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 중앙에서 어떤 권한을 지방에 내줄 것인지 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를 해결한 후에 하드웨어를 정리하자는 겁니다. 행정구역 통합은 주민들의 투표에 의해 순차적으로, 장기계획으로 천천히 실행해야 합니다.”
李明博 대통령이 마지막 5년 單任制 대통령 돼야
―국회의장에 당선된 직후 “改憲(개헌)특위를 구성해서 18대 국회 전반기(2010년 6월) 안에 개헌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개헌특위 구성이 경제위기로 이슈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우선 정부 여당이 개헌에 소극적입니다. 개헌은 국회의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국민이 하는 겁니다. 저는 헌법연구 자문기구에 연구를 맡겨 작업을 3월쯤 끝낼 생각입니다. 개헌은 18대 국회 상반기에 하는 게 적합합니다.
1987년 헌법을 제정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화·지방화·세계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對外(대외) 의존도가 높은 수출을 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흐름을 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보화·지방화·세계화를 받쳐 줄 수 있는 헌법적 차원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연구는 다 끝났으니, 합의와 결단만 남아 있습니다.”
―정치권력 구조는 어떻게 갈 생각입니까.
“대통령제로 간다면 4년 重任制(중임제)로 갑니다. 의원내각제로 갈 것인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로 갈 것인지는 국회가 정할 일입니다. 어디로 가든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명박 대통령에서 끝나야 합니다.”⊙
金炯旿(김형오·61) 국회의장은 벌거벗은 폭력을 휘두르는 야당에 의장실을 뺏기는 홍역을 치렀고, 친정인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쟁점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주지 않는다고 거센 공격을 받았다. 국회를 ‘막장’으로 몰고 갔던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은 2월 국회로 미뤄졌다. 김 의장은 어떤 생각과 각오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장실을 찾았을 때 마침 국회방송은 민주당 李錫玄(이석현) 의원이 金慶漢(김경한) 법무장관을 상대로 용산화재 사건을 추궁하는 장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 의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김 장관을 쉴 새 없이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그의 질문은 전날 본회의 ‘현안질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수십 번 되풀이했던 내용이었다.
2월 국회가 문을 열었지만 與野(여야)는 2월 13일까지 상임위를 열지 않았고, 쟁점법안들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2008년 6월 月刊朝鮮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8개월 만에 만난 그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與野 모두 네 탓
―한나라당은 ‘국회폭력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하고,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법안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국회 慣行(관행)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법을 만들어서 해결하겠다는 접근,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국회가 얼마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이런 법안들을 만들겠다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입법을 추진하겠습니까. 이게 우리 국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두 법이 다 필요 없기를 바랍니다. 이 두 법을 꼭 만들겠다면 지난 年末年始(연말연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야가 반성이 없다는 얘기죠.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 발음이 제대로 될 지 모르겠지만, 다 ‘네 탓’이죠 ‘너의 탓이지 나의 탓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잖아요.”
―지난 연말 국회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여러 가지 겹쳤습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제부터 입법전쟁”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여당 상임위원장이 민주당 정권이 만든 한미FTA 법안을 상임위원회를 봉쇄하고 강행처리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그것을 막겠다고 해머와 전기톱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겁니까.
“정치부에서 오래 일한 기자들이 이해가 안 가는데, 그것을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막장 국회’가 펼쳐졌는데 그래도 무슨 연유가 있었을 게 아닙니까.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여야가 換骨奪胎(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국회의 기존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여야 의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모든 의원들에게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묻고 싶습니다. 국회에서 집단만 보이지 국회의원이 보이질 않아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느냐. 제도에 중대한 모순이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국회의원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정당이에요. 정당의 대표나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와 의견을 구하지 않아요. 소위 黨論(당론)이라 해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 ‘이건 1㎝만 앞으로 가고 저건 5㎝ 뒤로 가라’고 정해 버립니다.
이게 타개해야 할 잘못된 관행입니다. 당론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당론이 민주적으로 결정됐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각 당이 법안 한 건 한 건에 대해 세세하게 당론을 정해버리니까 협상팀인 원내대표가 협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당 내에서조차 適法節次(적법절차), 즉 ‘듀 프로세스(Due Process)’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 말씀이죠.
“원내대표 중심의 협상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상임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에 한해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쟁점법안이라는 방송법도 상임위에서 토론하면 절충점이 나와 타협할 수 있습니다. 상임위에 상정도 안 하고 토론도 안 하면서, 한쪽은 ‘무조건 통과시킨다’고 하고, 한쪽은 ‘惡法(악법)이다’고 하는 것은 非(비)민주적입니다. 국회는 대화하고 토론하고 절충점을 찾고, 마지막에 표결하는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여야가 ‘빠꾸 오라이’가 안 되는 이유
―정당이 그렇게 심하게 의원들을 옥죄고 있는 겁니까.
“3金(김) 시대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3김이 의원들을 다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3김 같은 카리스마도 없으면서 정당이 의원들을 다 쥐고 있어요. 그나마 3김 시대에는 어떤 사안을 밀고 가다가 3김이 ‘이게 아니다’라고 결단하면 후퇴가 가능했습니다. 지금 여야 정당은 한번 결정하면, 속된 말로 ‘빠꾸 오라이’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없습니다. 극한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어요. 정당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율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은 3김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당을 이끌 땐 여론에 무척 민감했죠.
“3김 시대에는 전진뿐만 아니라 퇴각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결단력과 지도력, 책임감을 갖고 당을 지도하는 사람이 지금 정치에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강경하게 앞으로 전진만 할 줄 알지, 후퇴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리더가 없습니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당이 책임지지 않는 강경파에 휘둘리니까, 국회의 강경대치가 한달 가까이 지속됐던 거군요.
“지금 각 당의 당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강경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가자는 대로 가는 겁니다. 강경파들은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여론에 둔감합니다. 그러니 ‘빠꾸 오라이’ 없이 막가는 겁니다.”
―당에 큰 持分(지분)이 있는 實勢(실세) 정치인, 大權(대권)에 뜻을 가진 정치인이 당을 전면에서 끌고 가는 게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말씀으로 해석해도 되겠죠.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는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입니다.”
―의원들에 대한 공천권을 각 정당이 완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당들이 한때 上向式(상향식) 公薦(공천)과 지역 競選(경선)을 시도했다가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 의원들로서는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갖고 있는 당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여야 토론이 진행되는 한 職權상정 안 한다
“19대 총선 공천까지 3년이 넘게 남아 있습니다. 의원들이 아직 공천권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시점입니다. 제가 상임위원회 중심의 국회 운영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지금이 가장 適期(적기)이기 때문입니다. 각 당의 18대 총선 공천에서 議政(의정)활동을 잘한 의원들이 공천에서 많이 배제됐는데, 이건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의정활동 성적과 공천이 직결돼야 합니다. ‘의원으로서의 책무와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 공천권의 잣대가 결정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어나야 합니다.”
―2월 국회에 미디어법 같은 쟁점법안들이 다시 상정됩니다. 한나라당 洪準杓(홍준표) 원내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결코 처리에 합의해 줄 수 없는 법안이다. 또 한번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며 또 ‘전쟁’을 언급했습니다.
“국회는 전쟁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제가 전쟁하는 국회를 안 만들 겁니다. 만약 다시 한번 그런 모습을 보이면 대한민국 국회가 없어집니다. 국민들이 가만두겠습니까.”
―쟁점법안들이 상임위 중심으로 합의 처리될 수 있도록 “당에서 주물럭거리지 말고 결정권을 상임위로 넘기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내가 요즈음 매일 떠드는 게 그 얘기예요. 국회법 절차에 의해 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상임위에 회부됩니다. 법안이 상임위에 上程(상정)되면 여야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현재 쟁점법안 상정이 ‘올 스톱’상태입니다. 야당은 ‘상임위에 상정되면 여당이 多數(다수)로 밀어붙여 일사천리로 진행할 것이다’라는 우려 때문에, 쟁점법안을 절대 상정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시키기 위해 제가 ‘상임위에 상정해서 토의하고 심사해라. 상정했다 해서 의장이 절대로 본회의에 職權(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임위에서 여야가 결정을 내리라는 뜻입니다. 이번 18대 국회가 남긴 좋은 사례가 종부세법 개정입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야가 종부세에 대한 타협안을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에서 종부세 절충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야가 타협안을 만들어 냈잖아요.”
―상임위에 맡긴다고 모든 법안에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물론이죠. 국가보안법이 그런 경우죠. 한쪽은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한쪽은 존치를 주장합니다. 또 국가보안법은 각 당 正體性(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론이 필요합니다. 이건 상임위에서 쉽게 결정이 안 납니다. 그런 문제는 원내대표 협상이나 당 지도부 간의 협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얘기되는 방송법이나 金産(금산)분리법 등은 정당의 기둥뿌리를 흔드는 법들이 아닙니다. 의논하면 절충안이 나올 수 있어요.”
―지난 연말 한나라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 권고’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만난 한나라당 중진의원이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란 일종의 비상조치다. 정말 하다 안 돼서 한두 개 법안이나 의안을 처리하는 거지, 수십 개 법안을 묶어서 직권상정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직권상정이라는 게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미묘한 권한인 듯합니다.
국회는 아무리 바빠도 ‘듀 프로세스’(적법절차) 지켜야
“직권상정은 예외적 상황에서 쓰는 비상수단입니다. 여야 모두 직권상정 문제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야당은 국회의장한테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요구합니다. 야당은 그런 말 하지 말고 직권상정 안 해도 되도록 의사진행에 협조해야 합니다.
여당은 직권상정을 전제로 깔고, ‘협상 안 되면 직권상정이다. 법안도 하나 못 통과시키는 多數黨(다수당)이 뭐냐. 국회의장도 한나라당 출신 아니냐’라고 합니다. 직권상정을 전제로 야당과 의사진행을 협의하니 제대로 되겠습니까. 직권상정은 ‘히든카드’입니다. 보여서는 안 되는데 서로 히든카드를 꺼내놓고 야단을 치니 의사협의가 안 됩니다. 직권상정은 국가적으로 절대로 필요한데 少數黨(소수당)에 의해 의사진행이 막혀 있을 때, 국민적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국회 문을 열었지만 상임위에서 본격적인 법안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상당히 잘못된 일입니다. 상정을 해 놓고 의안을 계속 협의해야 하는데 여야 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2월 국회가 지난번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작년 연말과 금년 초에 여권과 언론에서 하도 얻어맞아서 더 이상 맞을 데가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여야 의원들 사이에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진국의 조건으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法治(법치)’의 확립이겠죠. 적법절차), 즉 ‘듀 프로세스(Due Process)’가 확보되면 좀 늦게 가도 된다는 게 선진국들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빨리빨리’ 문화와 ‘듀 프로세스’는 상충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주의는 성가시고 줄을 서야 하는 문화입니다. 민주주의가 귀찮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빨리빨리’ 문화가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행정은 합목적성을 가지고 빨리빨리 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행정을 보면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빨리빨리 하려고 하는데 행정부가 뒷받침을 못해요. 행정은 불필요한 것들은 확 줄여서 빨리 추진해야 합니다. 국회는 심의를 빨리 해서는 절대 안 되고, ‘듀 프로세스’를 지켜야 합니다.”
속 시원한 물갈이가 정치발전 못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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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오 국회의장(가운데) 주재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원내 수석 부대표(당시 수석 부총무)는 3選(선)의원이 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부대표 자리는 대개 再選(재선)이었고 초선은 거의 없었습니다. 현재는 수석 부대표를 재선이 맡고 부대표를 초선이 맡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상임위 간사를 재선 이상으로 뽑도록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총선 때마다 초선의원들이 60~70% 진출해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집니다. 정치不信(불신)이 큰 유권자들의 속은 시원하겠지만, 의회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들은 ‘국회가 형편없다’,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폭의 물갈이를 시킵니다.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국민이 심판을 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국회에는 안정성도 필요합니다. 확확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17대 국회 때 얼마나 많은 초선의원들이 들어왔습니까. 그분들이 정치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탄돌이(탄핵 후폭풍으로 국회에 진입했다는 뜻)’로 불렸던 108명의 초선 열린우리당 386의원들이 18대 총선에서 대부분 떨어졌죠.
“싹 물갈이가 됐죠. 국민들 눈에 정치가 형편없이 비치는데 대해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의 안정성, 정치적 경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발굴된 정조의 비밀 御札(어찰)이 화제입니다. 正祖(정조)가 政敵(정적)이었던 老論 僻派(노론 벽파)의 영수 沈煥之(심환지)에게 4년 동안 299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의장님은 여야의 국회 지도부, 당 지도부와 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역대 국회의장 중에 나처럼 바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만남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죠. 어제는 상임위원장들과 오찬을 했고, 본회의가 끝난 후에는 여야 원내대표들과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盧武鉉 탄핵안에 서명하지 않은 까닭
―“각 당이 의원들을 풀어주고,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하자”고 하면 각 당 지도부가 공감을 합니까.
“틀린 얘기가 아니잖아요. 제가 당파에 치우쳐서 하는 말이 아니고, 국회를 살리자고 하는 거니까. 原論的(원론적)으로는 모두 공감하지만, 당론을 뚫고 나갈 만큼의 상황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번 얘기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최근에 요르단·터키·아랍에미리트(UAE) 中東(중동) 3개국을 방문했는데, 중동을 다녀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3개국 모두 큰 현안이 있습니다. 大水路(대수로) 사업과 원자력 발전소, 고등훈련기 판매 등…. 요르단에서는 국왕을 만났고, UAE에서는 최고 실권자인 왕세자, 터키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만났습니다. 터키는 二元(이원)집정부제라 국무총리가 실세입니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면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설을 터키에서 맞았습니다. 현안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정부에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요즈음 부산 민심은 어떻습니까.
“부산은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구인데 지난 1월 수출이 34% 감소했습니다. 수출 물동량이 눈에 띄게 줄어 경기침체가 한눈에 보입니다. 부산 전체가 위축돼 있습니다. 더구나 제 지역구는 서민층이 많이 몰려있는 지역입니다. 시장에 가면 시장통 전체에 손님보다 점원 수가 더 많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국회의장에 선출되기 직전에 月刊朝鮮 인터뷰에서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의안에 끝까지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죠. 한나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상태에서 국회 선출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라 제가 그 부분을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탄핵안 서명을 거부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결전을 독려하는 한나라당 의원총회 때 제가 발언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했다. 하지만 賜藥(사약)을 내려서 정치 생명을 끝낼 정도는 아니다’ 그런 취지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내 강경파들에게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의안을 발의하면 원내총무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의원들 도장을 찍어 일괄 처리했지만, 탄핵은 중요한 사안이니까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일일이 받았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면 다음 공천 받을 생각 하지 말라’고 하니까, 탄핵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망설이고 돌아섰지만 저는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탄핵안을 처리할 때 찬성 투표는 하셨죠
“제 소신이 당론과 달랐지만, 투표 때는 당론에 따랐습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유도하는 듯한 도발성 기자회견을 했지 않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공천 안 준다’는 게 의원들에게 제일 큰 위협이군요.
“제가 공천탈락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당내 경선을 치르고 그렇게 살아 올라왔잖아요. 정치인이 가끔 타협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내가 그러질 잘 못해요.”
정보통신 분야 천착
―김영삼 정부 때는 중앙청 건물(옛 총독부 건물) 해체에 반대하는 글을 月刊朝鮮에 기고하셨죠.
“제가 그 글을 썼다가 그때도 공천을 못 받을 뻔했어요. 이건 처음으로 공개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때 月刊朝鮮의 姜仁仙(강인선) 기자가 대뜸 찾아와 ‘중앙청 해체에 반대하는 글을 하나 써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나한테 그 글을 부탁하느냐’고 물었더니, 당시 金正男(김정남)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김형오 의원이면 써 줄 것’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제가 그 무렵 김정남 수석과 점심을 하면서 ‘중앙청을 해체하면 안 된다. 김 선배가 앞장서라’고 얘기를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초선의 여당의원이었고, 부산 출신으로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글을 썼지만 ‘중앙청을 부수면 안 된다’는 요지는 분명했습니다. 당에서 15대 총선 공천을 안 주겠다고 했는데, 여론조사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결국 공천을 받았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오랫동안 정보통신 분야에 천착해 왔다. 국회에서 10년 이상을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에서 일했다. 이동통신을 CDMA 방식으로 결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IPTV(Internet Protocol TV- 인터넷을 이용한 TV) 법안을 만들어 IPTV시대를 열었다.
“2005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때 ‘IPTV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도 3년 동안 썩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귀가 번쩍 뜨여서 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IPTV가 방송이냐, 통신이냐’ 관할권을 놓고,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카운터파트인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국회에 특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서 6개월 만에 IPTV법을 만들고 IPTV 시대를 열게 된 겁니다.”
“미디어법 토론하면 결론 난다”
―미디어법이 2월 국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입니다. IPTV에 KT와 SK, LG텔레콤 같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KT와 SK는 현재 100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IPTV는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의 채널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참여를 허용하면, 재벌과 신문의 방송장악이 이뤄진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이건 공중파방송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1980년대의 시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IPTV 시대가 개막되면서 KBS MBC 같은 공중파방송들이 하나의 ‘프로그램 공급자(PP)’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방송과 통신이 혁명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조·중·동 방송’, ‘재벌 방송’이 방송을 장악할지 상임위에서 토론을 해서 판단해 보자는 게 제 얘기입니다. 의논해보면 답이 나올 거 아닙니까? 대기업과 신문에 허용할 방송사 참여지분에 문제가 있다면, 지분을 낮춰서 절충안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입니까.
“개인적으로 찬성입니다. 제가 국회 정보통신위원장을 할 때 ‘애국적인 10만 해커 양성론’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정보 통신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 혹은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근거 없는 인터넷의 악플로 사람이 죽는 일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행정구역 개편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여야가 뜻을 모으고 있어 국회에 특별위원회가 곧 구성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행정구역이 중앙정부, 市·道(시·도), 市·郡·區(시·군·구), 邑·面·洞(읍·면·동)으로 크게 보면 4층 구조입니다. 정보화시대에 이런 多層(다층) 행정구조를 지속할 이유가 없습니다. 작은 시군은 생활권을 묶어야 합니다.”
―경북도청이 여러 시군 간의 경쟁 끝에 안동과 예천의 경계지점으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허허벌판에 도청 하나 서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시·군을 통합하면, 통합시청을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다툼이 벌어질 텐데.
“행정구역 개편하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경남의 마산·창원·진해입니다. ‘창원에 경남도청이 있으니까 창원을 통합시청으로 하자’고 하면, 마산의 국회의원들은 ‘마산에서 창원이 나왔는데 무슨 말이냐’고 합니다. 창원에 시청을 절대 내주지 못하겠다는 얘기죠. 시설분배 문제까지 감안하면 대단히 복잡합니다.
저는 지방자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稅制(세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 중앙에서 어떤 권한을 지방에 내줄 것인지 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를 해결한 후에 하드웨어를 정리하자는 겁니다. 행정구역 통합은 주민들의 투표에 의해 순차적으로, 장기계획으로 천천히 실행해야 합니다.”
李明博 대통령이 마지막 5년 單任制 대통령 돼야
―국회의장에 당선된 직후 “改憲(개헌)특위를 구성해서 18대 국회 전반기(2010년 6월) 안에 개헌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개헌특위 구성이 경제위기로 이슈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우선 정부 여당이 개헌에 소극적입니다. 개헌은 국회의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국민이 하는 겁니다. 저는 헌법연구 자문기구에 연구를 맡겨 작업을 3월쯤 끝낼 생각입니다. 개헌은 18대 국회 상반기에 하는 게 적합합니다.
1987년 헌법을 제정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화·지방화·세계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對外(대외) 의존도가 높은 수출을 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흐름을 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보화·지방화·세계화를 받쳐 줄 수 있는 헌법적 차원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연구는 다 끝났으니, 합의와 결단만 남아 있습니다.”
―정치권력 구조는 어떻게 갈 생각입니까.
“대통령제로 간다면 4년 重任制(중임제)로 갑니다. 의원내각제로 갈 것인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로 갈 것인지는 국회가 정할 일입니다. 어디로 가든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명박 대통령에서 끝나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