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主從관계의 건설 하도급 구조 개선해야
⊙ 공동도급제, 직할시공제 확대가 시급한 과제
⊙ 4대강 정비사업 등 ‘녹색 뉴딜’에 건설업계 큰 기대
朴德欽
⊙ 1953년 충북 옥천 출생.
⊙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 졸업, 연세대 공학대학원 졸업, 서울산업대 명예경영학박사.
⊙ 現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사장, 원화건설(주) 대표이사.
⊙ 공동도급제, 직할시공제 확대가 시급한 과제
⊙ 4대강 정비사업 등 ‘녹색 뉴딜’에 건설업계 큰 기대
朴德欽
⊙ 1953년 충북 옥천 출생.
⊙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 졸업, 연세대 공학대학원 졸업, 서울산업대 명예경영학박사.
⊙ 現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사장, 원화건설(주) 대표이사.
朴德欽(박덕흠·54) 대한전문건설협회장은 최근의 경제위기로 건설업 종사자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돼 큰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금융감독 당국이 1월 말 설 연휴 전까지 은행권에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를 선정하라고 하는 바람에 건설업계는 지금 살얼음판입니다. 일반건설업체(발주자로부터 도급을 받아 종합 계획, 관리와 조정을 담당하는 건설업체)가 무너지면 그 하도급업체인 전문건설업체(일반건설업체에서 하도급을 받아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업체)는 차례로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작년 11월 신성건설 부도 때 수백 개의 전문건설업체들이 쓰러졌습니다. 이번 건설업 퇴출은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0월 22일 정부가 미분양주택 매입 등 건설업계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대형 일반건설업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이고, 전문건설업체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하도급자 지원방안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전문건설업체인 원화건설의 대표이사로 2년 전 협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전문건설업계의 심각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작년에 부도난 전문건설업체가 271개로 2007년에 비해 60% 증가했다”며 “지방의 한 광역시에서는 2위 업체가 부도났고, 전국적으로 스스로 폐업한 건설업체 수도 2091개에 이르는 등 극한의 위기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무엇보다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主從(주종)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는 단순한 갑과 을이 아니라 주인과 머슴 사이입니다. 전문건설업체는 밥줄이 하도급에 달려있는 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요. 이의를 제기하면 밥줄이 끊기는데 누가 나서겠습니까?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죠. 일반 제조업체의 하도급 문제와는 그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는 국내 건설업계의 상하 주종관계 시스템은 국내에 토목과 건축의 개념이 도입된 일제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각 전문건설업체의 특약계약서들을 보여줬다. ‘을은 어떤 경우에도 추가공사 금액은 일절 요청하지 않는다’ ‘설계변경과 기타사유 등이 발생해도 추가증액은 없다’ ‘물가변동은 적용하지 않는다’ ‘을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계약금액 변경을 요구할 수 없으며, 시공을 거부할 수 없다’ ‘공사 진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을이 부담한다’ ‘모든 민원사항은 을의 비용으로 책임 처리한다’ 등등의 조항을 훑어본 결과 내용도 내용이지만 ‘을은 일절~ 하지 않는다’, ‘모든 ~은 을이 부담한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라는 문구가 유난히 많았다.
―이런 특약을 알고도 계약을 체결하는 겁니까.
“일을 하려면 방법이 없어요. 싫다고 거절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면 일감은 바로 다른 업체로 넘어가니까요. 어쨌든 일을 해야 하니까 일단 계약을 합니다.”
―공정위에서 조사를 나오는 일은 없습니까.
“하도급 업체가 직접 신고해야 조사를 나올 텐데,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인맥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건설업계의 특성상 신고하는 순간부터 ‘왕따’가 된다고 봐야죠.”
착취 형태가 지능화·고도화
―전문건설업체의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전국 4만여 개의 전문건설업체 중 매출이 50억원 이상 되는 업체는 200여 개에 불과해요. 직원 수 5인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75%입니다. 이런 영세한 하도급업체에 일반건설업체가 마땅히 부담해야 할 이런저런 추가 비용을 전가하는 게 말이 됩니까.”
박 회장은 “전문건설업체의 言路(언로)가 완전히 막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건설업체가 부당한 하도급 계약 때문에 파산직전까지 가게 되면 ‘양심선언’이라도 할 것 같죠? 아닙니다. ‘남은 돈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이렇게 하라’는 일반건설업체의 회유가 들어옵니다. 영세한 전문건설업체 대표는 몇 푼이라도 건지려고 회유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러니 아무도 일반건설업체의 횡포를 대놓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업계의 윤리경영 선언 등으로 과거보다는 형편이 많이 나아지지 않았냐”는 필자의 질문에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착취’의 형태는 더욱 지능화·고도화됐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일반건설사들은 초보적인 불공정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이것만으로도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더 악랄한 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다 아는 한 대기업 건설사는 전문건설사에 하도급 금액의 10%를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브랜드 관리와 광고, 마케팅에 돈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게 일반건설사 아닙니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그 아파트의 브랜드 관리를 우리 전문건설사가 해주고 있는 겁니다. 매출 규모는 수십, 수백분의 1도 안 되는 회사들이 말이죠.”
그는 지난 1월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9 건설인 신년인사회 때의 소감을 밝혔다.
“제가 건배 제의를 하게 됐어요. 제가 단상에 올라가자 사람들이 약간 술렁대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겁니다. 하도급업자가 왜 거기 올라가 있냐는 반응이었어요. 제가 올 한해도 희망을 갖자며 ‘싱글벙글’ 건배를 제의하자 분위기가 다소 나아졌습니다. 수년 전 같으면 건배 제의를 해도 분위기가 썰렁했겠죠. 하지만 건설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직할시공제, 공동도급제 확대해야
그는 ‘10여 년 전에 비하면 상황이 다소 나아진’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제가 협회장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롯데건설 李昌培(이창배) 대표가 저의 사무실을 찾아왔어요. 이 대표도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때였어요. 잘해 보자고 인사차 찾아온 겁니다. 대기업인 일반건설업체의 대표가 전문건설협회장 사무실을 직접 찾아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었죠.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이런 사례들을 발판으로 건설업계의 시스템 개선에 제가 적극 나서보려고 해요.”
박 회장은 최근 건설업계에서 불공정 하도급구조를 해소하는 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는 직할시공제다. 직할시공제는 현재 발주자-종합건설업자-전문건설업자의 3단계를 발주자-전문건설업자의 2단계로 줄이는 것. 올 상반기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보금자리주택사업에서 직할시공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 경우 종합건설업자가 맡아온 건설산업 통합관리 역할은 발주자가 맡게 되며, 건축비는 13~14%, 분양가는 4~5% 낮아진다. 박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최저가 입찰제를 실시하다 보니 일반건설업체가 발주금액의 80%선에서 낙찰을 받고, 하도급업체는 여기서 또 60~70% 이하의 가격으로 수주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원래 발주금액의 40~50%로 공사를 하는 겁니다. 원가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부실의 우려가 높죠. 직할시공제가 실시되면 분양가가 낮아지니 소비자도 좋고, 전문건설업체가 적정 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면 일용근로자 복지수준도 높아집니다. 기존의 일반건설업체도 전문건설업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건설업이 나아가야 할 모범답안입니다.”
폐지된 ‘什長제도’ 부활해야
두 번째는 2010년부터 전국 지자체에서 도입될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제도다. 현재 건설산업법에서는 일반건설업체만이 발주자에게서 도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체도 일반건설업체와 함께 공동도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제도다. 박 회장은 2010년 16개 지자체에서 1곳씩 시범 운영되는 이 제도가 전체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하도급 구조로는 부당특약, 추가공사비 미지급 등 각종 불공정행위로 공사비가 모자라 부실시공의 우려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건설업체가 애초 정해진 예산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제도가 확대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밖에 지난해 1월 폐지된 ‘시공참여자제도’(이른바 什長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박 회장은 말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시한다는 지난 정권의 방침 때문에 건설현장에서 꼭 필요한 십장 제도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십장 제도는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꼭 필요하고, 건설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제도입니다.”
십장은 자신이 건설일용직 근로자를 여러 명 고용해 건설업체와 단기계약을 맺는 사업자를 뜻한다.
“건설현장에서는 단기간에 수백 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일이 고용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직접 공사를 하는 전문건설업체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고요. 실제로 지난해 1월 폐지 이후에도 전국 대부분의 공사현장은 그대로 십장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면계약이나 위장계약으로요. 이러다 보니 범법자만 계속 늘어나고 있는 꼴입니다. 또 근로자들이 십장제가 유지되는 현장을 고발하겠다고 현장소장을 협박, 돈을 뜯어내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미 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는 근로기준법과 건설산업법 개선으로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중소규모 현장이나 단기간의 현장에서는 시공참여자 제도를 재도입해야 합니다.”
박 회장은 대운하 건설과 4대강 정비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 때 미국이 테네시 계곡을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시행해 경제공황을 탈출했듯, 대운하도 우리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착공한 4대강 정비사업은 대운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박 회장은 “4대강 정비사업과 같은 대형 국책 토목사업은 고용창출과 지역 균형발전 등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4대강 수질개선과 환경보전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정부에 대형 국책사업 진행에 대해 건의할 점이 있다”고 했다.
“4대강 정비는 발주금액이 수천억원을 넘는 대형 공사입니다. 이 공사를 대형 일반건설업체에 통째로 맡기는 것은 경기부양에 도움이 안 돼요. 하나의 강을 한 업체에 발주할 것이 아니라 구간별로, 예를 들면 몇백 km씩 구간을 나눠서 발주를 하면 공사도 신속하게 할 수 있고, 많은 업체가 참여하게 되어 많은 건설기업과 근로자들이 혜택을 보게 됩니다. 이 점을 보완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어요.”
그는 건설업계의 반성과 자정노력이 중요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 대한전문건설협회란?
대한전문건설협회(KOSCA)는 전국 2만8756개(2008년 말 기준)의 전문건설업체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로 1985년 설립됐다. 건설업은 일반건설업종과 전문건설업종으로 구별돼 있는데, 일반건설업종은 발주자로부터 원도급을 받아 종합적인 계획과 관리, 조정을 담당하는 업종이다. 토목과 건축 등 5개 업종으로 구성돼 있고 업체 수는 1만2850여 개다. 전문건설업종은 일반건설업자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건설공사를 직접 시공하는 업종으로, 실내건축과 토공 등 25개 업종으로 구성돼 있고 업체 수는 4만6100여 개다. 건설업 실적 중 일반건설업이 65.1%, 전문건설업이 34.9%를 구성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1월 말 설 연휴 전까지 은행권에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를 선정하라고 하는 바람에 건설업계는 지금 살얼음판입니다. 일반건설업체(발주자로부터 도급을 받아 종합 계획, 관리와 조정을 담당하는 건설업체)가 무너지면 그 하도급업체인 전문건설업체(일반건설업체에서 하도급을 받아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업체)는 차례로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작년 11월 신성건설 부도 때 수백 개의 전문건설업체들이 쓰러졌습니다. 이번 건설업 퇴출은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0월 22일 정부가 미분양주택 매입 등 건설업계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대형 일반건설업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이고, 전문건설업체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하도급자 지원방안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전문건설업체인 원화건설의 대표이사로 2년 전 협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전문건설업계의 심각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작년에 부도난 전문건설업체가 271개로 2007년에 비해 60% 증가했다”며 “지방의 한 광역시에서는 2위 업체가 부도났고, 전국적으로 스스로 폐업한 건설업체 수도 2091개에 이르는 등 극한의 위기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무엇보다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主從(주종)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는 단순한 갑과 을이 아니라 주인과 머슴 사이입니다. 전문건설업체는 밥줄이 하도급에 달려있는 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요. 이의를 제기하면 밥줄이 끊기는데 누가 나서겠습니까?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죠. 일반 제조업체의 하도급 문제와는 그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는 국내 건설업계의 상하 주종관계 시스템은 국내에 토목과 건축의 개념이 도입된 일제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각 전문건설업체의 특약계약서들을 보여줬다. ‘을은 어떤 경우에도 추가공사 금액은 일절 요청하지 않는다’ ‘설계변경과 기타사유 등이 발생해도 추가증액은 없다’ ‘물가변동은 적용하지 않는다’ ‘을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계약금액 변경을 요구할 수 없으며, 시공을 거부할 수 없다’ ‘공사 진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을이 부담한다’ ‘모든 민원사항은 을의 비용으로 책임 처리한다’ 등등의 조항을 훑어본 결과 내용도 내용이지만 ‘을은 일절~ 하지 않는다’, ‘모든 ~은 을이 부담한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라는 문구가 유난히 많았다.
―이런 특약을 알고도 계약을 체결하는 겁니까.
“일을 하려면 방법이 없어요. 싫다고 거절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면 일감은 바로 다른 업체로 넘어가니까요. 어쨌든 일을 해야 하니까 일단 계약을 합니다.”
―공정위에서 조사를 나오는 일은 없습니까.
“하도급 업체가 직접 신고해야 조사를 나올 텐데,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인맥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건설업계의 특성상 신고하는 순간부터 ‘왕따’가 된다고 봐야죠.”
착취 형태가 지능화·고도화
―전문건설업체의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전국 4만여 개의 전문건설업체 중 매출이 50억원 이상 되는 업체는 200여 개에 불과해요. 직원 수 5인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75%입니다. 이런 영세한 하도급업체에 일반건설업체가 마땅히 부담해야 할 이런저런 추가 비용을 전가하는 게 말이 됩니까.”
박 회장은 “전문건설업체의 言路(언로)가 완전히 막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건설업체가 부당한 하도급 계약 때문에 파산직전까지 가게 되면 ‘양심선언’이라도 할 것 같죠? 아닙니다. ‘남은 돈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이렇게 하라’는 일반건설업체의 회유가 들어옵니다. 영세한 전문건설업체 대표는 몇 푼이라도 건지려고 회유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러니 아무도 일반건설업체의 횡포를 대놓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업계의 윤리경영 선언 등으로 과거보다는 형편이 많이 나아지지 않았냐”는 필자의 질문에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착취’의 형태는 더욱 지능화·고도화됐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일반건설사들은 초보적인 불공정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이것만으로도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더 악랄한 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다 아는 한 대기업 건설사는 전문건설사에 하도급 금액의 10%를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브랜드 관리와 광고, 마케팅에 돈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게 일반건설사 아닙니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그 아파트의 브랜드 관리를 우리 전문건설사가 해주고 있는 겁니다. 매출 규모는 수십, 수백분의 1도 안 되는 회사들이 말이죠.”
그는 지난 1월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9 건설인 신년인사회 때의 소감을 밝혔다.
“제가 건배 제의를 하게 됐어요. 제가 단상에 올라가자 사람들이 약간 술렁대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겁니다. 하도급업자가 왜 거기 올라가 있냐는 반응이었어요. 제가 올 한해도 희망을 갖자며 ‘싱글벙글’ 건배를 제의하자 분위기가 다소 나아졌습니다. 수년 전 같으면 건배 제의를 해도 분위기가 썰렁했겠죠. 하지만 건설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직할시공제, 공동도급제 확대해야
그는 ‘10여 년 전에 비하면 상황이 다소 나아진’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제가 협회장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롯데건설 李昌培(이창배) 대표가 저의 사무실을 찾아왔어요. 이 대표도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때였어요. 잘해 보자고 인사차 찾아온 겁니다. 대기업인 일반건설업체의 대표가 전문건설협회장 사무실을 직접 찾아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었죠.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이런 사례들을 발판으로 건설업계의 시스템 개선에 제가 적극 나서보려고 해요.”
박 회장은 최근 건설업계에서 불공정 하도급구조를 해소하는 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는 직할시공제다. 직할시공제는 현재 발주자-종합건설업자-전문건설업자의 3단계를 발주자-전문건설업자의 2단계로 줄이는 것. 올 상반기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보금자리주택사업에서 직할시공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 경우 종합건설업자가 맡아온 건설산업 통합관리 역할은 발주자가 맡게 되며, 건축비는 13~14%, 분양가는 4~5% 낮아진다. 박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최저가 입찰제를 실시하다 보니 일반건설업체가 발주금액의 80%선에서 낙찰을 받고, 하도급업체는 여기서 또 60~70% 이하의 가격으로 수주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원래 발주금액의 40~50%로 공사를 하는 겁니다. 원가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부실의 우려가 높죠. 직할시공제가 실시되면 분양가가 낮아지니 소비자도 좋고, 전문건설업체가 적정 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면 일용근로자 복지수준도 높아집니다. 기존의 일반건설업체도 전문건설업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건설업이 나아가야 할 모범답안입니다.”
폐지된 ‘什長제도’ 부활해야
두 번째는 2010년부터 전국 지자체에서 도입될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제도다. 현재 건설산업법에서는 일반건설업체만이 발주자에게서 도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건설업체도 일반건설업체와 함께 공동도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제도다. 박 회장은 2010년 16개 지자체에서 1곳씩 시범 운영되는 이 제도가 전체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하도급 구조로는 부당특약, 추가공사비 미지급 등 각종 불공정행위로 공사비가 모자라 부실시공의 우려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건설업체가 애초 정해진 예산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제도가 확대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밖에 지난해 1월 폐지된 ‘시공참여자제도’(이른바 什長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박 회장은 말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시한다는 지난 정권의 방침 때문에 건설현장에서 꼭 필요한 십장 제도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십장 제도는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꼭 필요하고, 건설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제도입니다.”
십장은 자신이 건설일용직 근로자를 여러 명 고용해 건설업체와 단기계약을 맺는 사업자를 뜻한다.
“건설현장에서는 단기간에 수백 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일이 고용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직접 공사를 하는 전문건설업체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고요. 실제로 지난해 1월 폐지 이후에도 전국 대부분의 공사현장은 그대로 십장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면계약이나 위장계약으로요. 이러다 보니 범법자만 계속 늘어나고 있는 꼴입니다. 또 근로자들이 십장제가 유지되는 현장을 고발하겠다고 현장소장을 협박, 돈을 뜯어내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미 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는 근로기준법과 건설산업법 개선으로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중소규모 현장이나 단기간의 현장에서는 시공참여자 제도를 재도입해야 합니다.”
박 회장은 대운하 건설과 4대강 정비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 때 미국이 테네시 계곡을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시행해 경제공황을 탈출했듯, 대운하도 우리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착공한 4대강 정비사업은 대운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박 회장은 “4대강 정비사업과 같은 대형 국책 토목사업은 고용창출과 지역 균형발전 등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4대강 수질개선과 환경보전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정부에 대형 국책사업 진행에 대해 건의할 점이 있다”고 했다.
“4대강 정비는 발주금액이 수천억원을 넘는 대형 공사입니다. 이 공사를 대형 일반건설업체에 통째로 맡기는 것은 경기부양에 도움이 안 돼요. 하나의 강을 한 업체에 발주할 것이 아니라 구간별로, 예를 들면 몇백 km씩 구간을 나눠서 발주를 하면 공사도 신속하게 할 수 있고, 많은 업체가 참여하게 되어 많은 건설기업과 근로자들이 혜택을 보게 됩니다. 이 점을 보완해 달라고 건의하고 싶어요.”
그는 건설업계의 반성과 자정노력이 중요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 대한전문건설협회란?
대한전문건설협회(KOSCA)는 전국 2만8756개(2008년 말 기준)의 전문건설업체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로 1985년 설립됐다. 건설업은 일반건설업종과 전문건설업종으로 구별돼 있는데, 일반건설업종은 발주자로부터 원도급을 받아 종합적인 계획과 관리, 조정을 담당하는 업종이다. 토목과 건축 등 5개 업종으로 구성돼 있고 업체 수는 1만2850여 개다. 전문건설업종은 일반건설업자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건설공사를 직접 시공하는 업종으로, 실내건축과 토공 등 25개 업종으로 구성돼 있고 업체 수는 4만6100여 개다. 건설업 실적 중 일반건설업이 65.1%, 전문건설업이 34.9%를 구성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