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년 법정공방 끝에 무죄 판결 받은 ‘꽃동네’ 吳雄鎭 신부 : 월간조선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 산 1-45번지에 자리한 ‘꽃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최근에 내걸린 것으로 짐작되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승소, 대법원 판결(2008. 9. 11)을 환영합니다. (주)태화광업 광업권 및 채광인가 취소. 맹동생명환경수호위원회. 청주충북 환경운동연합’

광산업자와 8년여에 걸친 至難(지난)했던 싸움의 승리를 자축하는 현수막 치곤 너무 소박한 크기였다. 사기, 명예훼손, 업무상 횡령, 공사금지 가처분, 광업권설정 허가처분 취소 등 온갖 범죄·법률 용어가 등장했던 전투를 치른 끝이었지만 꽃동네는 조용했다.

나중에 만난 꽃동네 관계자들은 꽃동네의 조용한 반응은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인’ 꽃동네를 설립했고, 싸움의 와중에는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음해당하기도 했던 吳雄鎭(오웅진) 신부의 뜻이라고 했다.

지난 9월 꽃동네가 인근 광산을 상대로 한 광업권 설정허가 및 채광인가 취소 행정소송에서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내기까지 8년여 동안 꽃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사건의 시작은 2000년 10월 12일에 열린 음성지역 문화행사에 오 신부가 참석하면서부터다. 문화행사에 참석했던 오 신부는 지역 기관장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꽃동네 인근에 광산개발이 허가됐다는 말을 군수로부터 듣게 된다. 꽃동네는 지하수를 개발해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광산개발이 본격화해 꽃동네 지하로 갱도가 뚫릴 경우 지하수가 고갈되거나 오염될 것이 분명했다. 이미 꽃동네 주변지역 주민들은 지하수 오염과 지하수 고갈 등을 이유로 광산개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다음날 오 신부는 태화광업을 방문해, 광산개발 중단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시 꽃동네 부근에는 태화광업을 비롯해 4개의 금광 광산이 채굴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2000년 12월에는 산업자원부에 광산개발 이의신청서를 내는 등 광산개발 저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꽃동네와 지역 주민들은 공사금지 가처분 등의 행정소송을 냈다. 법적 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행정소송 과정에서 태화광업을 제외한 다른 3개의 광산회사는 꽃동네 측과 원만하게 합의를 해 금광개발을 중단했다.

<오마이 뉴스>의 보도

광산개발업자와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똥은 ‘꽃동네 비리’ 문제로 튀었다. 설립자인 오 신부가 부동산 투기를 했고, 후원금 횡령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2003년 7월 검찰은 오 신부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기소 혐의는 업무상 횡령, 사기,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7가지나 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기록은 1만5000페이지가 넘었고 1심 재판은 2년여 동안 27차례 열렸다.

검찰이 기소하기 6개월여 전인 2003년 1월 21일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 뉴스>는 ‘꽃동네 오웅진 신부 후원금 횡령? 검찰 5개월 내사 관련자 소환 예정’ 題下(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몸바쳐온 것으로 알려진 聖者(성자)가 각종 비리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고 있어 충격을 던지고 있다’로 시작되는 이 기사를 받아 그날 저녁 MBC가 저녁 9시 뉴스를 통해 보도했다. 다음날 일부 매체들도 오 신부의 비리 의혹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날부터 <오마이 뉴스>는 ‘오 신부 비리’와 관련된 기사를 검찰이 기소하기 직전인 7월 29일까지 35회에 걸쳐 집중 보도했다. MBC 도 같은 해 3월 4일 저녁 ‘꽃동네 거지 신부의 진실’을 보도했다. 홈페이지에 있는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중간 제목들은 ‘꽃동네에 피는 의혹’, ‘무한팽창의 오웅진 왕국-권력과 합작의 성장사’, ‘꽃동네의 인권실태-꽃동네는 사회적 죽음의 장소’, ‘스스로 권력이 된 오웅진 신부’ 등 기소도 되지 않은 오 신부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듯한 것들이다.

이런 보도가 나간 후 2002년 120억원에 달했던 후원금이 2003년에는 100억원으로 떨어졌고, 해마다 그만큼씩 떨어져 나갔다. 후원 회원도 15만명에서 10만명으로 급감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1심 일부 유죄, 2심 무죄였다. 대법원도 검찰이 오 신부를 기소한 지 4년 6개월여가 가까워 올 무렵인 지난해 12월 28일 거액의 후원금과 국가·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오 신부에 대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3부가 ‘국고보조금 지급기간에 다양한 형태의 사회복지시설이 통합적으로 운영되면서 24시간 숙식 제공과 치료·재활 지원을 받는 생활시설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꽃동네의 특수성을 참작하면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빼돌리려는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내부 전시장을 안내하며 진정한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 신부.

좌파의 미움 받는 吳雄鎭 신부

그렇다면 오 신부는 왜 긴 시간 동안 ‘음해의 바다’에 빠져 있어야 했을까. 꽃동네와 오 신부의 변호를 맡았던 林炚圭(임광규) 변호사는 “ 이 싸움은 광산업자와 오 신부의 싸움이 아니라 오 신부를 타도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이었다”며, “천주교의 일부 특정 세력이 오래 전부터 오 신부를 타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한다. “일부 좌파 성향의 신부들과 좌파 성향 인사들이 그동안 오 신부의 활동을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실제 재판과정에서는 광산업자의 가족과 이메일 등 연락을 주고받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의 이름이 거명되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좌파 쪽 인사들이 오웅진 신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려주었다. 2002년 12월 30일 盧武鉉(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충남 논산 계룡대를 방문한 후 청주 성심양로원을 방문했을 때다. 이곳의 운영은 꽃동네가 맡고 있다. 꽃동네 책임자인 오 신부가 노 당선자 부부를 맞으러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선자 측에서 전화가 왔다. “오 신부는 절대로 성심양로원에 오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오 신부 대신 성심양로원에서 오 당선자를 맞은 꽃동네 윤시몬 수녀가 오 신부의 사인을 담은 꽃동네 관련 책자를 노 당선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고 한다.

“오 신부님이 꼭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절대로 오면 안 된다’는 전갈이 여러 차례 왔기 때문에 몸은 못 오셨지만 마음은 이곳에 와 계십니다. 마음으로 굉장히 환영하고 계십니다. 오 신부님은 이 자리에 못 오셔서 아쉬워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노 당선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이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이 일 외에도 보고 라인을 무시한 지역 경찰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비롯해 몇 가지 사례를 열거하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오 신부를 타도하려는 좌파 세력들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1300원으로 꽃동네 시작

낙태 반대를 상징하는 흰 십자가가 가득한 공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오 신부.

오웅진 신부와의 만남은 임 변호사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오 신부의 근황과 세계로 진출하는 꽃동네의 비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조건이 붙은 만남이었다. 필자 일행이 꽃동네 사무실이 있는 ‘사랑의 연수원’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오 신부는 수사, 수녀 등 일행과 함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된 知人(지인)의 손을 잡듯 반갑게 악수를 한 오 신부는 직접 사무실로 필자 일행을 안내했다.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필자에게 오 신부는 먼저 꽃동네를 소개하는 17분짜리 영상물을 시청하고 ‘사랑의 연수원’을 둘러볼 것을 권했다.

영상물은 오 신부가 자신의 주머닛돈 1300원을 털어 꽃동네 사랑의 집을 짓기 시작, 1976년 11월 방 다섯 칸 부엌 다섯 칸짜리 블록집을 지어 부랑인 18명을 입주시키면서 시작한 꽃동네의 역사와 각종 구호활동,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꽃동네의 활동상 등을 보여주었다.

영상물 시청이 끝난 후 오 신부는 직접 자신의 철학을 담아 전시장을 만든 ‘사랑의 연수원’을 안내했다. 그는 전시장을 안내하면서 “삶의 목적이 행복인데, 정작 행복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면서 “이곳은 행복을 가르치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학습장”이라고 설명했다.

안내 도중 봉사활동을 나온 현대자동차 직원들과 마주치자 오 신부는 자연스럽게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리면서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동시에 열댓 명의 현대자동차 직원들도 똑같은 포즈로 “사랑합니다”는 말로 화답했다. 오 신부와의 인터뷰는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이루어졌다.

오 신부는 커다란 살구색 표지의 성경책을 앞에 펼쳐 놓으며 말을 꺼냈다. 얘기하지 않기로 했던 검찰의 이른바 ‘오웅진 비리 수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그 출발이었다.

“검찰이나 재판정에 다닐 때 가지고 다니던 聖書(성서)예요. 하느님의 부름에 따라서 일생을 살다 보니 오늘의 꽃동네도 만들었고, 또 많은 시련과 고통도 받게 됐어요. 인생의 한 과정에서 시련도 있을 수 있고 고통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책임지지 않는 언론

―개인 차원에서는 지난해 말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광산개발 소송에서는 올 9월에 승소했는데, 그동안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요. 내가 더 하느님을 깊이 알 수 있었던, 靈的(영적)으로 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영적으로 얻으신 것은 있을지 모르지만, 꽃동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지장을 받은 것 아닙니까.

“저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좋다, 나쁘다’ 이야기할 수는 없죠.”

―광산개발과 관련한 소송을 겪으면서 언론에 대한 소감은 어떻습니까.

“고대에는 십자가 같은 死刑(사형)기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이 매스컴으로 변했어요. 순간에 사람을 망가뜨리고, 재판해 버리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현대 매스컴의 힘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매스컴은 책임을 지지 않아요. 그런 일을 해놓고도 얼굴 한 번 보이지 않고, 미안하다는 소리 안 하는 현실을 보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시대적인 소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힘 있고 믿음 있고 강인한 사람은 그래도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런 왜곡 보도 때문에 다 병들고 자살해 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 났을 때 명예회복을 위해 언론과 왜 적극적으로 접촉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순간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내 긴 삶에서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에요.”

―‘고대와 달리 현대의 사형대는 언론이다’고 하셨는데 신부님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당시 담당 기자나 언론사를 고소해야 겠다는 생각은 없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고 싶으면 네 자신을 버려라,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거든요. 저는 하느님을 믿으면서 저 자신을 이미 버린 사람입니다. 저 자신을 다 버렸기 때문에 저에게는 명예가 있을 수가 없어요. 부귀와 영화도 저에게는 없습니다. 저의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데 잃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고소하거나 그럴 생각이 제게는 없습니다.”

인터뷰 자리에 배석했던 임광규 변호사가 거들었다.

“사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마음의 상처를 너무나 많이 받았어요. 신부님은 명예가 없다고 하시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신부님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저는 악의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와 기자를 고소하자고 했는데 신부님이 반대를 했습니다. 오 신부님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駐韓(주한) 교황청 대사를 만나는 자리에 제가 통역으로 배석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불평을 했어요. ‘아 이 나쁜 놈들한테 왜곡당하고 허위로 무고당하고 명예훼손당하고서 저놈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고 했더니 오 신부님이 반대해서 못 했다’고 했죠. 그러니까 에밀 폭 체리 교황대사가 ‘오 신부님이 옳습니다’고 하는 거예요. 성직자와 일반인들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아직도 저는 수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 신부에게 “신부님은 정말 화가 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제가 화를 낼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시달렸는데도요?

“제가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뜻을 따랐을 뿐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결과는 하느님께서 다 아시고 해 주실 거라고 믿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런 사태를 겪으면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었고 개의치 않고 저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고요.”

―정말 그 일을 겪으면서 육체적으로 아프신 적이 없었습니까.

임 변호사가 대신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쇼크가 컸던 것 같아요. 신부님 가족들의 건강 내력을 저는 잘 모르지만 신부님의 90세 되신 老母(노모)께서는 지금도 안경 안 쓰시고 깨알 같은 글씨를 읽으십니다. 오 신부님도 이 사건 전에는 시력이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신부님이 두 번이나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하셨어요. 당뇨도 심해지셨고요.”

꽃동네 ‘사랑의 영성원’ 1층에는 광업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지반 침하 피해 사례들을 소개하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盧武鉉 당선자 측의 오 신부 영접 거부

―임 변호사님 말이 사실인가요?

“(웃음) 수술한 것은 맞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오 신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앞에 놓여 있는 성경을 펼쳐 마태복음 5장을 읽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저는 저에게 내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는가를 묻거든요. 다 주고서도 더 주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난한 마음인데, 그렇게 그분들을 사랑하는 것이 제 생의 전부입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저는 이 말씀을 따라서 이제까지 살았고, 재판 받을 때도 검찰 앞에서도 이 성서 말씀을 묵상했어요.”

오웅진 신부는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서 출생했다. 지난 1976년 광주가톨릭대학을 졸업한 뒤 그해 청주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당시 오 신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밥 동냥을 해 18명의 병든 다른 거지들을 먹여살리는 최귀동(1990년 타계)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사랑의 집’을 지어 이들을 수용했다. 그것이 꽃동네의 시작이다.

오 신부는 이후 부랑인과 고아, 정신병자, 심신장애자 등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꽃동네를 맹동면 인곡리 산기슭으로 옮기고 정부와 사회 각층의 도움을 받아 오늘의 꽃동네를 일궜다.

1989년에는 가평 꽃동네를 설립했고 1997년에는 학교법인 꽃동네 현도학원(현도사회복지대학)도 세워 초대 총장을 맡았다. 1998년에는 강화꽃동네를 설립했다. 이후 1999년에 미국 LA에 꽃동네를 설립하는 등 꽃동네는 미국, 필리핀, 인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현재 음성 꽃동네는 70여만㎡의 부지에 사랑의 연수원과 노인요양원, 천사의 집 등 10여개의 부속건물에 5000여 명의 갈 곳 없는 부랑인들을 수용하고 있다.

―2002년 말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 꽃동네가 운영하는 청주 소재 성심노인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오 신부님은 그곳에 안 가셨죠?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죠.”

―당선자 쪽에서 오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 내용은 내가 잘 몰라요. 하여간 못 갔어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중 가깝게 지내는 분은 있습니까.

“사실 저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접촉한다든지 그런 것 없고, 저는 오직 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오 신부

인터뷰 중 오 신부가 검찰에 출두하거나 재판정에 나갈 때마다 항상 소지했다는 聖書(성서)를 펼쳐 읽고 있다.

―그쪽 분들이 신부님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것은 아시죠?

“그 사람들이야 꽃동네만 가지고 비판하겠습니까. 자기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으면 비판하는 거죠.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심판하지 남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아요. 그 일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고 저는 제 길을 가겠다는 거죠.”

―재판과정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이름이 나왔지 않습니까.

“아마 우리가 거론해서 나온 것은 아니고 상대편에서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 때문에 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그분들도 신부님의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 건데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꽃동네를 세상에 더 드러나게 해준, 꽃동네를 더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분들이 즐겨 하는 말 가운데 ‘정의’라는 말이 있는데 그분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신부님이 생각하는 정의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정의만 좇다 보면 정의의 노예가 돼서 사랑을 잃을 수도 있죠. 정의는 사랑한테 지지만 사랑은 정의를 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진리가 아닙니다.”

―이념적인 성향을 놓고 볼 때 스스로 진보에 가깝다고 보십니까, 보수에 가깝다고 보십니까.

“저는 정치인들 만나면 그래요. ‘나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천주당이다. 내 당수는 예수다. 천주당은 불변이다’라고 하죠. 저에게는 진보도 없고 보수라는 개념조차 없어요. 바른 것은 계속 바르게 하고, 거꾸로 선 것은 바로 세우는 게 제가 하는 일이에요. 저는 어떤 이념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데 왜 진보를 자칭하는 좌파 쪽 사람들은 신부님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까요?

“저는 누구보다도 이북에 있는 동포들을 사랑합니다. 이북의 고통당하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이북의 굶어 죽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요. 강화도에 꽃동네를 만든 이유도 장차 이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 겁니다.”

―검찰에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원자들이 많이 떠나갔는데 그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어요. 1년에 20억원씩 후원금이 떨어져 나갔죠. 저보다 회원을 관리하는 수녀님들과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그러나 언젠가는 진리는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제 그 진리가 드러났으니까 다시 많은 후원자들이 돌아오시리라 믿어요. 돌아오고 있고요.”

“나는 개인 통장이 없다”

―부족한 후원금은 어떻게 메웠습니까.

“우리들은 돈이 남는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어요. 들어오면 쓰고 안 들어오면 안 쓰면 되니까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우리 꽃동네는 빚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가난한 부자로 삽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베푸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많이 도와주시면 많이 베풀 수 있는 겁니다. 적게 들어오면 적게 베푸는 것이고요.”

―신부님에게 돈은 무엇입니까.

“제가 주님한테 배운 게 물질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고 관리의 개념이라는 거예요. 저는 제 통장이 없어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건물(사랑의 영성원)을 짓는데 29년이 걸렸어요. 꽃동네 성당은 28년 동안 지은 거고요. 현도사회복지대학은 18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지었고요. 제가 세운 모든 프로젝트의 완성 기간은 15년 내지 30년입니다. 물질을 소유가 아닌 관리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꽃동네를 위해 살다가 누가 음해를 해서 재판을 받든, 저를 때려죽이든 꽃동네를 위해서 고통과 죽음을 맞이해도 꽃동네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죽고 싶은 것이 제 소망의 전부입니다.”

―뒤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회 꽃동네의 형제 100명 자매 230명 등 총 330명의 성직자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들이 전 세계로 나가서 몇천 명이 될지 몇만 명이 될지 몰라요. 그들 모두가 꽃동네의 정신을 이어갈 후계자들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오웅진 신부는 광업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 광업법은 꼭 개정해야 해요.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나 농업지역에는 광업권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해요. 지금도 이 지역에는 과거의 광산개발 때문에 침하되고 있는 지반이 많아요. 아주 위험해요. 그런데도 계속 광산허가가 나고 있어요. 우리 꽃동네 시설 가운데서도 지난 5월 28일 꽃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결핵환자들 수용을 위해 지은 소망의 집이 지반 침하로 함몰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던 ‘맹동면 생명환경수호위원회’ 朴根賢(박근현) 위원장에게 “오웅진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고 물었다. 박 위원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가식도 없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분이에요. 광산업자와 재판하는 과정에서 우리 지역 주민들이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신부님을 보고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