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우파 포퓰리즘 정당, 전통적 가치·국가주의 강조하면서도, 현대적 문제들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 제시
⊙ PC(정치적 올바름)와 정체성 정치에 대항하는 젊은 남성 유입 성공
⊙ 한국 우파 정치의 성공은 국가 시스템, 전통적 가치, 사회 질서의 복원·계승에 달려 있어
⊙ 유럽 ‘극우’, 파시스트라기보다는 PC적 가치에 입각한 정치 엘리트 관료주의로 변질된 EU 체제에 반감을 뜻하는 유럽 회의주의자들
⊙ “서방 미디어, 정치적으로 나이브하지 않은 사람들, 현실적·실용적인 문제 해결 원하는 사람들을 극우로 매도”(스웨덴 건설업자)
沈揆珍
1978년생.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국 미시간주립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시러큐스대 뉴하우스스쿨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 / 청주방송(CJB) 기자, 미디어다음 뉴스파트장,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싱가포르 경영대 교수, 호주 멜버른대 교수, 現 스페인 IE대학교 교수 / 저서 《73년생 한동훈》
⊙ PC(정치적 올바름)와 정체성 정치에 대항하는 젊은 남성 유입 성공
⊙ 한국 우파 정치의 성공은 국가 시스템, 전통적 가치, 사회 질서의 복원·계승에 달려 있어
⊙ 유럽 ‘극우’, 파시스트라기보다는 PC적 가치에 입각한 정치 엘리트 관료주의로 변질된 EU 체제에 반감을 뜻하는 유럽 회의주의자들
⊙ “서방 미디어, 정치적으로 나이브하지 않은 사람들, 현실적·실용적인 문제 해결 원하는 사람들을 극우로 매도”(스웨덴 건설업자)
沈揆珍
1978년생.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국 미시간주립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시러큐스대 뉴하우스스쿨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 / 청주방송(CJB) 기자, 미디어다음 뉴스파트장,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싱가포르 경영대 교수, 호주 멜버른대 교수, 現 스페인 IE대학교 교수 / 저서 《73년생 한동훈》
- 프랑스 국민연합 지도자 마린 르 펜(왼쪽)과 조르당 바르델라 당대표 대행. 국민연합은 젊은 대표를 내세워 젊은층에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사진=AP/뉴시스
필자가 일하는 곳이 자리한 스페인의 정치 지형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판박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흡사한 점이 많다. 스페인 내전(內戰)을 수습하고 현대화의 기틀을 닦은 군부(軍部) 통치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년)는 여러모로 현대화된 한국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연상된다. 강력한 군부 리더십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의 정치 흐름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우선, 지역감정과 지역 토호(土豪) 정치가 좌우 정치 이념과 결합되어 있는 점이 그렇다. 한국의 호남 정치가 이념적 좌파 정치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스페인 또한 카탈루냐 민족주의 진영과 토호 세력이 범(汎)좌파적 성격을 띤다. 2010년 이후 좌파 정치의 주류화(主流化)가 진행되면서 대두된 정체성 정치(正體性 政治·identity politics)가 젠더, 계급 갈등을 부추기고 현금성 복지가 남발되어 재정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도 그렇다.
한국에서 박근혜(朴槿惠) 정권이 탄핵되고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출범한 약 1년 후, 스페인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 불신임에 의해 보수(保守) 정당의 내각과 총리가 실각했다. 우파 정치는 페미니즘과 LGTBQ+, 친환경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뉴노멀에 완패(完敗)하고 대중성을 상실한 듯 보였다. 한국, 스페인, 그리고 유럽과 전 세계에서 말이다.
그랬던 스페인에 우파 정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지난 2023년 총선에서 보수당인 인민당(PP)은 극우(極右) 복스(VOX)와 우파 연합을 형성해 집권당인 사회노동당(PSOE)과 좌파 연합을 이기고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인민당 라호이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불명예 퇴진한 지 불과 5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재 스페인의 우파 바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진 극좌 포퓰리즘의 탄생과 성장, 실패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스페인은 높은 실업률과 경제 침체에 시달렸으며, 기존의 주요 정당들이 부패와 비효율로 얼룩진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포데모스는 반(反)긴축 정책과 사회적 평등, 부(富)의 재분배를 강력히 주장해 청년층과 노동계층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는 전통적인 양대 정당인 스페인 사회노동당과 인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포데모스로 눈을 돌리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극좌 정당 돌풍의 중심에는 스타 폴리페서[Polifessor·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로 ‘정치교수’라는 의미-편집자 주]인 1978년생 포데모스 창립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가 있었다. 그는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서 여러 방송 출연과 좌파 정치 자문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경제 민주화와 사회적 평등을 목표로 삼은 그는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하여, 전통적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대중과 소통하려는 새로운 정치적 접근을 시도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정치 스타일과 강력한 메시지는 2015년 마드리드 시장을 포데모스가 차지하는 파란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이래로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텃밭이던 마드리드가 좌파에게 ‘뚫린’ 일대 사건이라 할 만했다.
포데모스의 급부상은 스페인의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 내부의 부패와 권력 다툼이 드러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게 되었다. 특히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자신이 마드리드 근교 고급 부동산 구입 문제로 비판을 받으면서 좌파 특유의 ‘내로남불’ 행태가 큰 비난을 샀다.
좌파 정권의 PC 정책
포데모스의 위세는 한풀 꺾였으나, 2019년 총선에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진 끝에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의 좌파 연립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좌파 연립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법 개정, 주거권 보호 강화, 여성 권리 증진, 기후변화 대응 정책 등을 성과로 내세웠지만, 실정(失政)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먼저 스페인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과 급증하는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무리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정책도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단적인 예가 트랜스젠더법이다. 이 법은 정신 감정이나 신체검사 없이도 본인이 원한다면 신분증과 여권의 성별(性別)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정부는 군(軍)으로 복무하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월급과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심지어 일부 남성 군인과 경찰들까지 성별을 여성으로 변경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 결과 좌파 연립정부는 2023년 스페인 총선에서 인민당과 복스가 연대한 우파 연합에 제1당 지위를 내주고 말았다. 어느 진영도 과반을 달성하지 못해 사회노동당 산체스 정권은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정국의 극심한 분열과 대립은 고착화되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산체스 정권은 극단주의적 카탈루냐와 바스크 독립주의 정당들과 손을 잡았는데, 이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반대한다는 당의 원칙을 깬 것이다. 스페인의 전통주의자들과 대중으로부터 법치와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는 거센 반발에 직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좌파 정치의 부상과 포퓰리즘의 득세, 우파의 반격과 좌파의 불복, 시스템과 법치(法治)의 위기…. 좌우의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와 불복의 문화가 고착화되는 상황도 양국은 판박이다. 모든 면에서 스페인 정치는 한국 정치의 거울이며 반면교사(反面敎師)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유럽 회의주의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 우파가 부활한 과정을 좀 더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유럽 정당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그리고 여러 지역 정당이 난립해 매우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우파와 극우를 구분하는 것일까?
서방 미디어에서는 EU 체제에 대한 찬반 여부로 급진 세력과 온건 세력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EU 체제에 비판적인 ‘유럽 회의주의(懷疑主義)’ 민족주의 우파 정당들을 보통 ‘극우’로 분류하곤 한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집착해 세계화와 유럽연합을 거부하는 퇴행적(退行的) 정치 행태를 보이고 소수자(少數者)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친환경, 친난민, 친여성과 같은 PC적 가치에 입각한 정치 엘리트 관료주의로 변질된 EU 체제에 대한 반감을 뜻하는 유럽 회의주의는 이미 여러 통계에서 나타난 것처럼 더 이상 소수 정치 집단의 급진적 어젠다가 아닌 대중이 요구하는 현실적인 정치적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 유로존 부채(負債) 위기, 이민 및 난민 위기 속에서 EU에 대한 반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2012년에는 EU 시민의 거의 3분의 1이 연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으며, 이런 와중에 2016년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유럽 회의주의적 태도는 2016년 브렉시트 이후 대중 사이에서 다소 수그러들었으나, 유럽 각국 의회에서 유럽 회의주의 정당들의 지지율은 202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해서 기록적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
또한 우파 유럽 회의주의 정당들은 국내 선거는 물론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의석수를 늘려가며 지속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프랑스의 국민연합(National Rally),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PiS), 헝가리의 피데스(Fidesz),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형제당(Brothers of Italy) 및 동맹당(Lega), 스웨덴의 스웨덴 민주당(Sweden Democrats), 네덜란드의 자유당(PVV), 스페인의 복스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당들은 유럽 통합이 자국의 자치권을 침해한다고 우려하며, 유럽 내 더 자유로운 이민 및 사회 정책에 반대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복지천국’에서 ‘범죄천국’ 된 스웨덴
필자가 유럽 주요 국가 정당들의 어젠다와 정치적 스탠스를 분석한 결과, 정당의 좌우 스펙트럼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사회 어젠다는 첫째가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 그리고 페미니즘과 다양성 등 정체성 정치에 대한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진보의 요람’이던 유럽은 왜 보수로 회귀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살기 좋은 복지국가에서 갱단의 천국으로 급전직하한 스웨덴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스웨덴은 지난 수십 년간 ‘인도주의 슈퍼파워’로 불리며 관대한 난민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인구 1050만 명 중 약 200만 명이 외국 태생으로, 이민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사회 통합에 실패하면서 스웨덴의 범죄율은 급격히 상승했다. 지난해 총기 관련 범죄로 사망한 사람은 62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인구 대비로 보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무엇보다 부모가 모두 외국 이민자인 가정의 자녀들이 스웨덴 태생 가정의 자녀들보다 범죄율이 3.2배 높다. 이러한 상황은 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하며 작년 9월 우파 연정(聯政)이 집권한 배경으로 작동했다. ‘도덕주의’로 유명한 스웨덴 사람들은 과연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현재 서방 미디어에서는 정치적으로 나이브하지 않은 사람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문제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을 극우로 매도하고 있지요.”
올여름, 학회 참석차 방문한 스웨덴에서 만난 건설업자 비욘 씨는 복지국가로 세계 각국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스웨덴이 이상주의적인 난민 정책으로 범죄천국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선대(先代)의 재산을 물려받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스웨덴 주류 중산층은 위선적이고 나이브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각한 사회 갈등과 범죄 증가로 이어진 난민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것은 민족주의와 같은 정치적 퇴행이 아닌 실용적인 정치적 태도라는 주장이다. 그는 또 대부분의 유럽 난민은 본래 난민 포용 정책의 취지에 부합하는 정치적 이유의 난민이 아닌 브로커들의 돈벌이에 이용당하는 불법적인 ‘경제적 이민자’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이 난민을 받아준다는 ‘희망고문’ 때문에 외려 많은 아프리카인이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며 난민 브로커 산업의 희생양이 되고 있어요. 자발적인 현대판 노예 시장이 열린 셈이죠. 그러나 서방 미디어는 난민에게 온정을 베풀자는 메르켈식 상아탑 휴머니즘에만 집중할 뿐, 실제로 사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에는 관심이 없지요.”
이대남은 극우 민주당, 이대녀는 좌파 사민당 지지
2010년에 유럽을 휩쓴 난민 열풍과 이에 따른 사회 혼란, 높아지는 범죄율, 치안에 대한 불안감은 우파 포퓰리즘의 주요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지난 2022년 스웨덴 총선에서 범우파 진영에서 제1당을 차지한 스웨덴 민주당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네오나치’로 분류되던 군소(群小) 극우 정당에 불과했다. 2010년에야 겨우 원내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 군소 정당이 불과 12년 만에 보수를 대표하는 주류 정당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스웨덴 민주당은 인종주의와 네오나치 논란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반난민, 반이슬람, 반EU와 같은 ‘강경 보수 어젠다’를 대중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의 방식은 기존 스웨덴 정치 기득권의 엘리트주의, 위선적 도덕주의와 차별화되었으며, 청년층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공동체 질서와 미덕을 그리워하는 보수 지지층, 난민으로 인해 자신들의 복지 혜택이 위협받을 것을 걱정하는 은퇴자 및 서민층까지 새로운 지지층으로 유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웨덴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젊은 세대일수록 성별에 따른 정당 지지율 격차가 더 크다는 점이다. 19~29세를 대상으로 선거 직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여성들 사이에서 좌파 사회민주당이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지만, 남성들 사이에서는 스웨덴 민주당이 오히려 1위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적인 젠더와 세대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스웨덴의 사례는 핵심 지지층을 레버리지로 삼아 대중적 우파 어젠다를 선도하는 포퓰리즘 우파의 전략을 보여준다.
유럽 우파,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지지
다시 스페인으로 눈을 돌려보자. 세고비아 캠퍼스에서 강의하는 한 동료 교수는 평소 EU 체제를 비판하면서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을 자주 내비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 일어난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 트랙터 시위 때문에 마드리드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고생했다고 푸념했다. 정통적인 프랑코주의자에 가까운 이 스페인 교수는 그러나 “탁상공론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농민들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우니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서민들의 민생도 힘들어지는 것”이라며 농민들의 시위를 지지한다고 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 트랙터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좌파 정당이 아닌 보수 정당들이 이들의 편을 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가치와 지향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보수의 가치는 법치를 중시하며, 세계화에 발맞춰 규범을 준수하고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집중한다. 현재 유럽의 주요 중도 우파 정당들도 이처럼 규범적이고 체계적인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철저히 기득권 엘리트와 좌파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친대중주의 노선을 따른다.
2024년 유럽 농민 시위는 농업 관련 정책과 무역 협정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되었다. EU의 그린 딜에 따른 환경 규제 강화와 비유럽연합 국가와의 무역에 반발하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등에서 농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농민들이 도로를 봉쇄하며 정부에 압박을 가했으며, 독일에서는 디젤 세금 감면 폐지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네덜란드 농민들은 질소 배출 규제에 반대하며 시위를 지속했고, 폴란드에서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에 반발하여 고속도로를 막는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농민들이 프랑스 국경을 봉쇄하며 지역 생산 우선과 농업 에너지 세금 감면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했다. 이러한 저항은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을 반영하며, EU의 농업 정책과 무역 협정이 농민들의 경제적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최근 농민들의 시위에 대해 발 빠르게 반응했다. 강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 네덜란드의 농민-시민운동(BBB) 등은 모두 농민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EU의 환경 규제와 자유무역 정책이 농업 부문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법치나 사회적 의무 등의 가치보다는 ‘농민들의 편’ ‘EU의 적(敵)’이라는 정치적 전선(戰線)을 명확히 함으로써 확실한 정치적 아군 확보 및 대중적 지지 기반 확충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1995년생 당대표 내세운 佛 국민연합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약진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현상은 지리멸렬한 한국의 우파 정치권에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 특히 집권에 성공한 이탈리아 형제당(FdI)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주류 정치 세력으로 안착한 모습이다. 이탈리아 형제당은 보수적, 우익 포퓰리즘,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정당으로, 이들의 이념적 뿌리는 이탈리아 사회운동(MSI)과 같은 역사적 파시스트 정당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FdI는 이러한 역사적 연관성을 부인하며,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정치 절차를 존중하는 현대적인 우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들은 민족주의와 국가 주권을 강조하며, 전통적 가치와 이탈리아 문화의 보전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동시에 경제 정책에서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며 세금 감면, 규제 완화, 행정 간소화 등을 통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프랑스의 마린 르 펜은 국민전선을 주류 우파 정당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나치 무장친위대(SS) 출신인 아버지 장마리 르 펜의 극단적 발언과 거리를 두고, 당의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명 또한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꿨다. 이후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마린 르 펜이 당대표직에서 사임하면서, 조르당 바르델라가 당대표 대행을 맡게 되었다. 1995년생인 바르델라는 국민연합 내에서 젊고 활기찬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청년층을 겨냥한 정책과 메시지를 통해 당의 이미지를 현대화하고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등장은 국민연합이 세대교체를 통한 이미지 쇄신과 정치적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우파, 청년층 잡는 데 성공
이처럼 유럽의 우파 정당들은 반이민 정책, 전통적 가치 수호, 국가 주권 강화 등의 메시지를 통해 대중의 불안을 정치적 지지로 전환했다. 성공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당은 정치 엘리트와 기득권의 시각이 아닌, 지지층 및 일반 대중의 정치적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선명한 메시지로 신속하고 확실한 변화를 이야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파시즘적 전통과 과감하게 결별하면서 극우적 이미지를 벗었다. 즉 전통적 가치와 국가주의를 강조하면서도, 현대적 문제들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대중적 우파 담론을 선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의 정당 사례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더 있다.
주요 유럽 국가에서 청년층이 우파 정치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파 정치에서 세대 연합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PC와 정체성 정치에 대항하는 젊은 남성·청년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세대 연합뿐만 아니라 보수 우파 진영 내의 역할 분담, 즉 대안 우파 정당이 스핀오프(spin-off)적인 정당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 우파 정당들은 친대중주의 노선을 통해 정치적 관료주의와 보신주의(保身主義)에 빠진 주류 보수 정당이 다루지 못했던 민감한 사항들에 대해 정면승부를 하면서 지지세를 크게 확장했고, 오히려 스핀오프 정당이 본진 정당을 뛰어넘는 정치적 영토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더 선명한 우파 경쟁을 통해 중도 우파 정당들도 난민 문제와 PC주의 문제에서 좀 더 선명한 우파 노선을 지향하도록 하여, 전체적인 우파 정치의 기조를 우측으로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역사·이념에 대한 당당한 태도 필요
한국 우파 정치도 이러한 유럽의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확실한 지지층과 지지 기반을 결집시키는 메시지 전략이 필요하다. 농민,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 그리고 복지 혜택에 민감한 은퇴자들까지, 현대 정치는 대중의 피부에 와닿는 ‘이득’과 ‘실용’을 강조하며 상호 정치적 이득의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둘째,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가치 복원과 전통적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 유럽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청년들에게도 지지를 받는 이유는 PC 정치와 맞서 싸우는 동시에, 국가와 민족을 지탱하는 전통적 규범과 가치를 긍정하고 자부심을 일깨우려는 노력 때문이다.
셋째, 역사와 이념에 대한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우파 정치권은 좌파의 상습적인 친일(親日) 공세와 군사 정권 시절의 인권 탄압 논란에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우파 정치는 청산해야 할 과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끊어내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성취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지켜내는 국민적 합의를 주도해야 한다.
결국, 한국 우파 정치의 성공 열쇠는 국가 시스템과 전통적 가치, 그리고 사회 질서의 복원과 계승에 달려 있다. 한국 우파 정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며, 대한민국의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파편화된 국민들을 공통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보여준 성공의 비결을 한국 정치에 적용한다면, 대중적 지지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우선, 지역감정과 지역 토호(土豪) 정치가 좌우 정치 이념과 결합되어 있는 점이 그렇다. 한국의 호남 정치가 이념적 좌파 정치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스페인 또한 카탈루냐 민족주의 진영과 토호 세력이 범(汎)좌파적 성격을 띤다. 2010년 이후 좌파 정치의 주류화(主流化)가 진행되면서 대두된 정체성 정치(正體性 政治·identity politics)가 젠더, 계급 갈등을 부추기고 현금성 복지가 남발되어 재정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도 그렇다.
한국에서 박근혜(朴槿惠) 정권이 탄핵되고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출범한 약 1년 후, 스페인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 불신임에 의해 보수(保守) 정당의 내각과 총리가 실각했다. 우파 정치는 페미니즘과 LGTBQ+, 친환경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뉴노멀에 완패(完敗)하고 대중성을 상실한 듯 보였다. 한국, 스페인, 그리고 유럽과 전 세계에서 말이다.
그랬던 스페인에 우파 정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지난 2023년 총선에서 보수당인 인민당(PP)은 극우(極右) 복스(VOX)와 우파 연합을 형성해 집권당인 사회노동당(PSOE)과 좌파 연합을 이기고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인민당 라호이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불명예 퇴진한 지 불과 5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재 스페인의 우파 바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진 극좌 포퓰리즘의 탄생과 성장, 실패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스페인은 높은 실업률과 경제 침체에 시달렸으며, 기존의 주요 정당들이 부패와 비효율로 얼룩진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포데모스는 반(反)긴축 정책과 사회적 평등, 부(富)의 재분배를 강력히 주장해 청년층과 노동계층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는 전통적인 양대 정당인 스페인 사회노동당과 인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포데모스로 눈을 돌리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극좌 정당 돌풍의 중심에는 스타 폴리페서[Polifessor·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로 ‘정치교수’라는 의미-편집자 주]인 1978년생 포데모스 창립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가 있었다. 그는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서 여러 방송 출연과 좌파 정치 자문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경제 민주화와 사회적 평등을 목표로 삼은 그는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하여, 전통적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대중과 소통하려는 새로운 정치적 접근을 시도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정치 스타일과 강력한 메시지는 2015년 마드리드 시장을 포데모스가 차지하는 파란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이래로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텃밭이던 마드리드가 좌파에게 ‘뚫린’ 일대 사건이라 할 만했다.
포데모스의 급부상은 스페인의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 내부의 부패와 권력 다툼이 드러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게 되었다. 특히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자신이 마드리드 근교 고급 부동산 구입 문제로 비판을 받으면서 좌파 특유의 ‘내로남불’ 행태가 큰 비난을 샀다.
좌파 정권의 PC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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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1일 스페인 총선에서 원내 3당이 된 것을 자축하는 좌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왼쪽에서 셋째) 대표와 당 지도부. 포데모스는 2019년 사회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사진=AP/연합뉴스 |
먼저 스페인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과 급증하는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무리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정책도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단적인 예가 트랜스젠더법이다. 이 법은 정신 감정이나 신체검사 없이도 본인이 원한다면 신분증과 여권의 성별(性別)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정부는 군(軍)으로 복무하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월급과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심지어 일부 남성 군인과 경찰들까지 성별을 여성으로 변경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 결과 좌파 연립정부는 2023년 스페인 총선에서 인민당과 복스가 연대한 우파 연합에 제1당 지위를 내주고 말았다. 어느 진영도 과반을 달성하지 못해 사회노동당 산체스 정권은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정국의 극심한 분열과 대립은 고착화되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산체스 정권은 극단주의적 카탈루냐와 바스크 독립주의 정당들과 손을 잡았는데, 이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반대한다는 당의 원칙을 깬 것이다. 스페인의 전통주의자들과 대중으로부터 법치와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는 거센 반발에 직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좌파 정치의 부상과 포퓰리즘의 득세, 우파의 반격과 좌파의 불복, 시스템과 법치(法治)의 위기…. 좌우의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와 불복의 문화가 고착화되는 상황도 양국은 판박이다. 모든 면에서 스페인 정치는 한국 정치의 거울이며 반면교사(反面敎師)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유럽 회의주의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 우파가 부활한 과정을 좀 더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유럽 정당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그리고 여러 지역 정당이 난립해 매우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우파와 극우를 구분하는 것일까?
서방 미디어에서는 EU 체제에 대한 찬반 여부로 급진 세력과 온건 세력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EU 체제에 비판적인 ‘유럽 회의주의(懷疑主義)’ 민족주의 우파 정당들을 보통 ‘극우’로 분류하곤 한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집착해 세계화와 유럽연합을 거부하는 퇴행적(退行的) 정치 행태를 보이고 소수자(少數者)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친환경, 친난민, 친여성과 같은 PC적 가치에 입각한 정치 엘리트 관료주의로 변질된 EU 체제에 대한 반감을 뜻하는 유럽 회의주의는 이미 여러 통계에서 나타난 것처럼 더 이상 소수 정치 집단의 급진적 어젠다가 아닌 대중이 요구하는 현실적인 정치적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 유로존 부채(負債) 위기, 이민 및 난민 위기 속에서 EU에 대한 반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2012년에는 EU 시민의 거의 3분의 1이 연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으며, 이런 와중에 2016년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유럽 회의주의적 태도는 2016년 브렉시트 이후 대중 사이에서 다소 수그러들었으나, 유럽 각국 의회에서 유럽 회의주의 정당들의 지지율은 202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해서 기록적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
또한 우파 유럽 회의주의 정당들은 국내 선거는 물론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의석수를 늘려가며 지속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프랑스의 국민연합(National Rally),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PiS), 헝가리의 피데스(Fidesz),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형제당(Brothers of Italy) 및 동맹당(Lega), 스웨덴의 스웨덴 민주당(Sweden Democrats), 네덜란드의 자유당(PVV), 스페인의 복스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당들은 유럽 통합이 자국의 자치권을 침해한다고 우려하며, 유럽 내 더 자유로운 이민 및 사회 정책에 반대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복지천국’에서 ‘범죄천국’ 된 스웨덴
필자가 유럽 주요 국가 정당들의 어젠다와 정치적 스탠스를 분석한 결과, 정당의 좌우 스펙트럼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사회 어젠다는 첫째가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 그리고 페미니즘과 다양성 등 정체성 정치에 대한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진보의 요람’이던 유럽은 왜 보수로 회귀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살기 좋은 복지국가에서 갱단의 천국으로 급전직하한 스웨덴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스웨덴은 지난 수십 년간 ‘인도주의 슈퍼파워’로 불리며 관대한 난민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인구 1050만 명 중 약 200만 명이 외국 태생으로, 이민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사회 통합에 실패하면서 스웨덴의 범죄율은 급격히 상승했다. 지난해 총기 관련 범죄로 사망한 사람은 62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인구 대비로 보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무엇보다 부모가 모두 외국 이민자인 가정의 자녀들이 스웨덴 태생 가정의 자녀들보다 범죄율이 3.2배 높다. 이러한 상황은 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하며 작년 9월 우파 연정(聯政)이 집권한 배경으로 작동했다. ‘도덕주의’로 유명한 스웨덴 사람들은 과연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현재 서방 미디어에서는 정치적으로 나이브하지 않은 사람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문제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을 극우로 매도하고 있지요.”
올여름, 학회 참석차 방문한 스웨덴에서 만난 건설업자 비욘 씨는 복지국가로 세계 각국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스웨덴이 이상주의적인 난민 정책으로 범죄천국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선대(先代)의 재산을 물려받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스웨덴 주류 중산층은 위선적이고 나이브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각한 사회 갈등과 범죄 증가로 이어진 난민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것은 민족주의와 같은 정치적 퇴행이 아닌 실용적인 정치적 태도라는 주장이다. 그는 또 대부분의 유럽 난민은 본래 난민 포용 정책의 취지에 부합하는 정치적 이유의 난민이 아닌 브로커들의 돈벌이에 이용당하는 불법적인 ‘경제적 이민자’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이 난민을 받아준다는 ‘희망고문’ 때문에 외려 많은 아프리카인이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며 난민 브로커 산업의 희생양이 되고 있어요. 자발적인 현대판 노예 시장이 열린 셈이죠. 그러나 서방 미디어는 난민에게 온정을 베풀자는 메르켈식 상아탑 휴머니즘에만 집중할 뿐, 실제로 사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에는 관심이 없지요.”
이대남은 극우 민주당, 이대녀는 좌파 사민당 지지
2010년에 유럽을 휩쓴 난민 열풍과 이에 따른 사회 혼란, 높아지는 범죄율, 치안에 대한 불안감은 우파 포퓰리즘의 주요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지난 2022년 스웨덴 총선에서 범우파 진영에서 제1당을 차지한 스웨덴 민주당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네오나치’로 분류되던 군소(群小) 극우 정당에 불과했다. 2010년에야 겨우 원내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 군소 정당이 불과 12년 만에 보수를 대표하는 주류 정당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스웨덴 민주당은 인종주의와 네오나치 논란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반난민, 반이슬람, 반EU와 같은 ‘강경 보수 어젠다’를 대중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의 방식은 기존 스웨덴 정치 기득권의 엘리트주의, 위선적 도덕주의와 차별화되었으며, 청년층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공동체 질서와 미덕을 그리워하는 보수 지지층, 난민으로 인해 자신들의 복지 혜택이 위협받을 것을 걱정하는 은퇴자 및 서민층까지 새로운 지지층으로 유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웨덴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젊은 세대일수록 성별에 따른 정당 지지율 격차가 더 크다는 점이다. 19~29세를 대상으로 선거 직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여성들 사이에서 좌파 사회민주당이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지만, 남성들 사이에서는 스웨덴 민주당이 오히려 1위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적인 젠더와 세대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스웨덴의 사례는 핵심 지지층을 레버리지로 삼아 대중적 우파 어젠다를 선도하는 포퓰리즘 우파의 전략을 보여준다.
유럽 우파,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지지
다시 스페인으로 눈을 돌려보자. 세고비아 캠퍼스에서 강의하는 한 동료 교수는 평소 EU 체제를 비판하면서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을 자주 내비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 일어난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 트랙터 시위 때문에 마드리드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고생했다고 푸념했다. 정통적인 프랑코주의자에 가까운 이 스페인 교수는 그러나 “탁상공론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농민들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우니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서민들의 민생도 힘들어지는 것”이라며 농민들의 시위를 지지한다고 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 트랙터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좌파 정당이 아닌 보수 정당들이 이들의 편을 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가치와 지향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보수의 가치는 법치를 중시하며, 세계화에 발맞춰 규범을 준수하고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집중한다. 현재 유럽의 주요 중도 우파 정당들도 이처럼 규범적이고 체계적인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철저히 기득권 엘리트와 좌파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친대중주의 노선을 따른다.
2024년 유럽 농민 시위는 농업 관련 정책과 무역 협정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되었다. EU의 그린 딜에 따른 환경 규제 강화와 비유럽연합 국가와의 무역에 반발하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등에서 농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농민들이 도로를 봉쇄하며 정부에 압박을 가했으며, 독일에서는 디젤 세금 감면 폐지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네덜란드 농민들은 질소 배출 규제에 반대하며 시위를 지속했고, 폴란드에서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에 반발하여 고속도로를 막는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농민들이 프랑스 국경을 봉쇄하며 지역 생산 우선과 농업 에너지 세금 감면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했다. 이러한 저항은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을 반영하며, EU의 농업 정책과 무역 협정이 농민들의 경제적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최근 농민들의 시위에 대해 발 빠르게 반응했다. 강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 네덜란드의 농민-시민운동(BBB) 등은 모두 농민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EU의 환경 규제와 자유무역 정책이 농업 부문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법치나 사회적 의무 등의 가치보다는 ‘농민들의 편’ ‘EU의 적(敵)’이라는 정치적 전선(戰線)을 명확히 함으로써 확실한 정치적 아군 확보 및 대중적 지지 기반 확충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1995년생 당대표 내세운 佛 국민연합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약진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현상은 지리멸렬한 한국의 우파 정치권에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 특히 집권에 성공한 이탈리아 형제당(FdI)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주류 정치 세력으로 안착한 모습이다. 이탈리아 형제당은 보수적, 우익 포퓰리즘,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정당으로, 이들의 이념적 뿌리는 이탈리아 사회운동(MSI)과 같은 역사적 파시스트 정당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FdI는 이러한 역사적 연관성을 부인하며,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정치 절차를 존중하는 현대적인 우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들은 민족주의와 국가 주권을 강조하며, 전통적 가치와 이탈리아 문화의 보전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동시에 경제 정책에서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며 세금 감면, 규제 완화, 행정 간소화 등을 통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프랑스의 마린 르 펜은 국민전선을 주류 우파 정당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나치 무장친위대(SS) 출신인 아버지 장마리 르 펜의 극단적 발언과 거리를 두고, 당의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명 또한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꿨다. 이후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마린 르 펜이 당대표직에서 사임하면서, 조르당 바르델라가 당대표 대행을 맡게 되었다. 1995년생인 바르델라는 국민연합 내에서 젊고 활기찬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청년층을 겨냥한 정책과 메시지를 통해 당의 이미지를 현대화하고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등장은 국민연합이 세대교체를 통한 이미지 쇄신과 정치적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우파, 청년층 잡는 데 성공
이처럼 유럽의 우파 정당들은 반이민 정책, 전통적 가치 수호, 국가 주권 강화 등의 메시지를 통해 대중의 불안을 정치적 지지로 전환했다. 성공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당은 정치 엘리트와 기득권의 시각이 아닌, 지지층 및 일반 대중의 정치적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선명한 메시지로 신속하고 확실한 변화를 이야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파시즘적 전통과 과감하게 결별하면서 극우적 이미지를 벗었다. 즉 전통적 가치와 국가주의를 강조하면서도, 현대적 문제들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대중적 우파 담론을 선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의 정당 사례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더 있다.
주요 유럽 국가에서 청년층이 우파 정치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파 정치에서 세대 연합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PC와 정체성 정치에 대항하는 젊은 남성·청년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세대 연합뿐만 아니라 보수 우파 진영 내의 역할 분담, 즉 대안 우파 정당이 스핀오프(spin-off)적인 정당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 우파 정당들은 친대중주의 노선을 통해 정치적 관료주의와 보신주의(保身主義)에 빠진 주류 보수 정당이 다루지 못했던 민감한 사항들에 대해 정면승부를 하면서 지지세를 크게 확장했고, 오히려 스핀오프 정당이 본진 정당을 뛰어넘는 정치적 영토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더 선명한 우파 경쟁을 통해 중도 우파 정당들도 난민 문제와 PC주의 문제에서 좀 더 선명한 우파 노선을 지향하도록 하여, 전체적인 우파 정치의 기조를 우측으로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역사·이념에 대한 당당한 태도 필요
한국 우파 정치도 이러한 유럽의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확실한 지지층과 지지 기반을 결집시키는 메시지 전략이 필요하다. 농민,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 그리고 복지 혜택에 민감한 은퇴자들까지, 현대 정치는 대중의 피부에 와닿는 ‘이득’과 ‘실용’을 강조하며 상호 정치적 이득의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둘째,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가치 복원과 전통적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 유럽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청년들에게도 지지를 받는 이유는 PC 정치와 맞서 싸우는 동시에, 국가와 민족을 지탱하는 전통적 규범과 가치를 긍정하고 자부심을 일깨우려는 노력 때문이다.
셋째, 역사와 이념에 대한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우파 정치권은 좌파의 상습적인 친일(親日) 공세와 군사 정권 시절의 인권 탄압 논란에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우파 정치는 청산해야 할 과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끊어내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성취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지켜내는 국민적 합의를 주도해야 한다.
결국, 한국 우파 정치의 성공 열쇠는 국가 시스템과 전통적 가치, 그리고 사회 질서의 복원과 계승에 달려 있다. 한국 우파 정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며, 대한민국의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파편화된 국민들을 공통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보여준 성공의 비결을 한국 정치에 적용한다면, 대중적 지지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