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BI가 문제 삼은 것은 문재인-트럼프 정권 시절 수미 테리의 활동과 금품 수수
⊙ 김정은-트럼프 하노이 노딜 후 종전선언 급해진 문재인, 박지원을 국정원장으로 기용
⊙ 수미 테리의 문재인 정권 시절 화상 워크숍 주선 등은 종전선언을 위한 영향력 공작의 일환
⊙ 수미 테리의 박근혜·윤석열 정권 활동은 공공외교
⊙ 트럼프, “아베가 노벨상 추천”… 문재인,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아야”
⊙ 정의용, ‘북한 체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전제를 빼고 김정은이 그냥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만 발표
⊙ 트럼프의 CIA, 문재인-김정은을 동시에 속일 작전을 만들었을 가능성 높아
李政勳
1962년생. 연세대 학사·석사, 경기대 박사(정치학) / 《월간조선》 기자, 《신동아》 편집위원, 《주간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위원 역임 / 저서 《한국의 핵주권》 《탈핵비판》 《그래도 원자력이다》 외 다수
⊙ 김정은-트럼프 하노이 노딜 후 종전선언 급해진 문재인, 박지원을 국정원장으로 기용
⊙ 수미 테리의 문재인 정권 시절 화상 워크숍 주선 등은 종전선언을 위한 영향력 공작의 일환
⊙ 수미 테리의 박근혜·윤석열 정권 활동은 공공외교
⊙ 트럼프, “아베가 노벨상 추천”… 문재인,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아야”
⊙ 정의용, ‘북한 체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전제를 빼고 김정은이 그냥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만 발표
⊙ 트럼프의 CIA, 문재인-김정은을 동시에 속일 작전을 만들었을 가능성 높아
李政勳
1962년생. 연세대 학사·석사, 경기대 박사(정치학) / 《월간조선》 기자, 《신동아》 편집위원, 《주간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위원 역임 / 저서 《한국의 핵주권》 《탈핵비판》 《그래도 원자력이다》 외 다수
-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만남.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마치 억지로 끼어든 것처럼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때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정원 요원들이 미숙하고 참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바보짓을 한 건 (윤석열) 대통령실”이라며 “수미 테리가 활동을 시작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8건, 문재인 정부 5년간 12건, 윤석열 정부 1년간 20건이 넘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하나. 그도 수미 테리를 활용했던 국정원장인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수미 테리
이북 출신의 조부모를 두고 CIA에서 분석관으로 근무했으며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미국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의 제작과 홍보에 적극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수미 테리는 우파적 인물이다. 이런 그가 ‘친북(親北)’인 문 정부를 위해 12번이나 활동한 것이 오히려 이례적인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협력했던 그를 이용하려는 문 정권의 압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문 정권에서 12번이나 협조했던 그가 윤석열 정부 1년간 20번이나 협력한 것은 그가 우파 정권의 출현을 반겼다는 뜻이 된다. 수미 테리 사건의 ‘속’을 파헤쳐본다.
1990년 무렵 미국의 정보·외교기관에 들어간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국의 힘이 G10 수준으로 커지고 북핵 위기가 고조돼 ‘한국 전문가’가 필요해진 2005년 이후 큰 기회를 잡았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수행해 김정은을 만났던 앤드루 김 CIA 코리아 미션센터장과 6자 회담 미국 대표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실무진을 이끌었던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 대행 등이 대표적이다. 앤드루 김보다 한발 늦게 CIA에 들어간 수미 테리는 그 ‘뒷물’을 탄 경우였다.
다민족(多民族) 국가인 미국은 정보기관에 진출한 이민족(異民族) 요원이 ‘고국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강릉 잠수함 사건이 일어난 1996년 발생한 로버트 김 사건이 좋은 사례다. 미 해군 정보국(ONI)의 분석관이던 로버트 김은 주미 해군무관 백동일 대령에게 미 해군의 정보를 건네줬다가 FBI에 검거돼 9년간 옥고를 치렀다.
미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국정원 요원을 만난 것이 문제가 돼 CIA에서 퇴직했다. 그러나 규정을 어긴 것이지 정보를 누설한 것은 아니었기에 사회활동은 할 수 있었다.
한국어가 완벽한 수미 테리는 국제정치학으로 유명한 플레처스쿨의 박사였기에 오바마 정부의 NSC(안보회의)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1년이 지난 2013년(오바마 정부 시절)부터는 싱크탱크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국정원 요원을 만났다. 정보는 ‘활물(活物)’이기에 몇 시간만 늦게 알아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인 경우가 많다. 국정원은 CIA와 바로 통하는 창구가 있기에, 퇴직 5년이 지난 CIA 요원에게 얻을 정보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를 만난 것은 미국 여론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꿔보려는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을 위해서였다.
영향력 공작
영향력 공작은 기업이 PR로 불리는 홍보와 ‘대관(對官)’으로 불리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로비를 잘해서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사에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경영술과 비슷하다. 수미 테리 박사는 싱크탱크에 몸담았으니 공직자인 앤드루 김이나 성 김과 달리 미국 유력 언론에 한국을 위한 기고를 할 수 있다. 미국은 외국 정보기관이 펼치는 영향력 공작을 막기 위해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미국인은 법무부에 신고하고 그 수입도 밝히라는 ‘외국대리인 등록법(FARA·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을 만들어놓았다. 이 법을 적용할 때 증거로 잡는 것이 대가로 받는 ‘수입’이다.
기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10여 년에 걸쳐 40여 번 국정원 요원을 만났는데 이 중 선물(식사 포함)을 받은 것은 세 번이었다. 2019년 11월 13일 메릴랜드주(州)의 한 상점에서 국정원 직원이 신용카드로 2845달러짜리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사주고 워싱턴DC로 이동해 2950달러짜리 보테가 베네타 가방을 더 사준 것이 첫 번째, 2020년 8월 뉴욕에서 3450달러짜리 루이뷔통 핸드백을 사주고 일식집에서 스시 대접을 한 것이 두 번째, 2021년 4월 워싱턴DC의 루이뷔통 매장에서 3450달러짜리 핸드백을 사준 것이 세 번째다. 이러한 선물 공세는 문재인 정부 때 이뤄졌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국정원은 주미 한국 대사관 명의로 그가 속해 있던 싱크탱크(윌슨센터)로 1만1000달러를 보냈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國賓) 방문이 임박한 2023년 4월에는 윌슨센터로 2만5418달러, 수리 테리에겐 2만6035달러를 각각 보냈다. 미 검찰은 수미 테리가 3만7000여 달러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세 차례에 걸쳐 준 네 가지 선물의 가격인 1만2745달러(2895+2950+3450+3450)에 개인적으로 받은 현금 2만6035달러를 더한(3만8780달러) 것의 개략값으로 보인다.
미국 NSC를 나온 수미 테리는 한미 외교를 잇는 가교(架橋) 역할을 했는데 그때마다 국정원이 움직였다. 기소장에 따르면 2014년 6월 그는 《포린어페어》에 한국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한 글을 싣고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식사 대접과 고료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다.
FBI, 文–트럼프 시절 관계 주목
외교에서 영향력 공작과 비슷한 분야를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고 한다. 공공외교는 미국에서 개념이 정립돼 각국으로 확산됐기에, 우리도 ‘공공외교법’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2014년 11월 FBI는 수미 테리와 국정원의 관계를 조사했으나 공공외교로 본 듯 덮었다(국어사전 등은 공공외교를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이 두루 주체가 되어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외국 국민을 상대로 국가 홍보 활동을 전개하는 외교’로 정의해놓고 있다).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부탁해 트럼프 정부에서 외교·안보를 맡을 이를 만났는데, 이때도 FBI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과 수미 테리 관계는 좌시하지 않았다. 위에서 밝혔듯 기소장에 문재인 정권 시절 국정원이 수미 테리에게 한 금품 공세를 자세히 나열한 것이 그 증거다. 왜 FBI와 미 검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의 선물 공세에 집중했을까. 기소장에 그 실마리가 담겨 있다.
기소장은 2020년 8월 국정원이 두 번째 선물 공세(3450달러짜리 핸드백+스시 대접)를 한 것에 대해 ‘수미 테리가 미 정부 인사들도 참여한 화상(畫像) 워크숍을 주선했기에 이를 받았다’고 밝혀놓았다. 국정원은 왜 수미 테리에게 이 워크숍 주선을 부탁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긴박했던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과 5월 26일 이북 통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주선으로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2019년 2월 27일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트럼프는 북한이 내놓은 핵 폐기 목록이 엉터리라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노딜을 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대미(對美) 통로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회담에 참석하게 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등을 통해 트럼프와의 면담을 요청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딜 이후 남북 관계 단절시킨 북한
그때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도 이 회담에 참석하겠다며 판문점으로 달려가, 회담장에 들어가려다 미국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했는데, 이 모습이 TV 화면에 그대로 노출됐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이 회담장을 나온 뒤 접근해 인사를 하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한 듯한 연출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이날부로 미·북 관계는 완전히 찢어졌다. ‘중매를 잘못한 중신아비에게는 뺨이 세 대’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노딜을 당한 김정은은 그 책임을 문 대통령에게 돌리며 특등 머저리, 삶은 소대가리라 비난하였다. 분풀이를 한 것이다.
이러함에도 문 정부가 계속 남북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자 북한은 2020년 6월 9일 12시부로 2018년 4월의 판문점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일주일 전에 설치했던, 청와대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잇는 핫라인을 비롯한 남북 통신선을 끊어버렸다. 6월 16일엔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의 자산’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으로 폭파했다.
이때까지 국정원장은 2018년 판문점과 통일각 그리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만들어낸 서훈씨였다. 문 대통령은 서 원장으론 대북 루트를 복원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그를 국가안보실장으로 보내며 새 국정원장을 찾았다.
反文의 기수에서 親文의 첨병으로
6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논의하기 위한 오찬을 문정인 연세대 교수,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그리고 박지원 당시 단국대 석좌교수와 갖고,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직전 대북 밀사로 활동하며 4억 달러가 넘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 송금에도 관여해 유죄를 받았던 박지원 교수를 다음 국정원장으로 삼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7월 29일 문 대통령은 그를 국정원장에 임명했는데, 상당한 아이러니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도 깊이 참여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송금 수사를 받고 복역했으니 그와 문 대통령 관계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 정부는 임기 말 그를 특별 사면하고 복권해주었다. 덕분에 그는 2008년 18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가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으로 복귀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후보로 당선돼 이 당의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2015년 친문(親文) 세력이 더불어민주당을 만들 땐 참여하지 못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해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 당선됐다. 문재인 세력과 다시 갈라선 것이었다. 그리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자, 그를 필두로 한 국민의당은 매일 아침 문 대통령을 비난해 ‘문모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0년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실패한 그는 문 정부에 대한 비난의 열도를 높였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반문의 아이콘인 박지원씨를 국정원장으로 삼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위는 2019년 미국에서 대마와 엑스터시를 갖고 들어와 피운 혐의로 기소돼 있었다(2022년 유죄 확정 판결). 가족 중 마약 사범이 있는 이를 정보기관장으로 임명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그가 북한과 통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국정원장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아닐 수 없었다. 하노이-판문점 노딜 후 문 대통령은 급했던 것이다.
국정원장이 된 그도 표변했다. 하루아침에 친문이 돼, 김정은을 백안시하는 미국 여론을 돌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권은 그해 9월 23일로 예정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 주목했다. 문 정권은 미·북 대화는 물론이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려면 북한에 큰 선물을 줘야 한다고 봤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판문점에서 있었던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미국이 북한 체제를 인정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김정일 이후 일관된 북한의 대미 외교 전략이다.
미국과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적국(敵國) 관계에 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려면 이를 ‘비(非)적국 관계’로 돌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쟁 상태를 끝내고 평화 상태로 간다’는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을 맺어야 한다. 국제정치 때문에 이러한 조약을 맺지 않고 평화 관계로 가야 한다면, ‘전쟁 상태를 끝낸다’는 종전(終戰)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미국이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해줄 리 없는데, 우리만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더 우스운 일이 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유엔 화상 연설을 통해 ‘미국 조야(朝野)와 북한이 들으라’고 한반도 종전선언을 촉구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한미 관계를 더 삐걱거리게 할 수 있으니, 사전작업을 해야 했다. 외교부는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는 국정원 해외 파트가 맡아온 영역이다.
워싱턴 거점장이 직접 수미 테리 만나
국정원은 미국 공직자도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워크숍을 미국에서 갖기로 했는데, 수미 테리에게 미국 공직자 섭외 등을 맡겼다. 당시는 코로나19가 창궐했으니 대면회의는 어려웠다. 화상회의는 사무실에서도 참여할 수 있으니 대면회의보다 수월히 참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때문에 미국 공직자들도 이 화상 워크숍에 참여했다.
박지원의 국정원은 문 대통령에게 유엔 화상 연설을 앞두고 친한(親韓)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 대사관,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두 곳에는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국정원 요원들이 나가 있는 ‘거점’이 있는데, 더 센 곳은 워싱턴 거점이다. 워싱턴 거점엔 공사 타이틀을 가진 미국 거점장이 상주한다.
기소장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때까지 수미 테리를 만난 것은 유엔대표부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남북 접촉에 올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워싱턴 거점이 그를 만났다. 기소장은 수미 테리에게 스시 대접을 하며 두 번째 선물 공세를 한 2020년 8월 국정원 측에서 미국 거점장 등 두 명이 나와 수미 테리를 대접했다며 거점장을 핸들러-2로 표시한 사진을 공개했다. 거점장이 직접 수미 테리를 만난 것은 박지원의 국정원이 이 워크숍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증거다.
유엔총회 화상 연설 직전에 일어난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그런데 ‘하늘이 진노’했는지 화상 연설이 꼬여버렸다. 유엔에서 이 연설을 방영하기 3시간 전쯤인 9월 22일 저녁 서해에서 북한으로 표류한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격돼 소각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정보기관으로부터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던 이 공무원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이 공무원이 북한으로 표류했다는 것도 정확히 보고 받았다. 그런데도 종전선언 연설 때문에 전혀 손을 쓰고 있지 않다가 북한이 그를 살해해 태우는 일을 당한 것이다.
이러함에도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라는 문 대통령 연설을 유엔에서 방영하게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무참히 살해됐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황망하고 비상식적인 연설을 막무가내로 진행한 것이다.
문 정권은 이 공무원이 자진 월북(越北)했다는 쪽으로 사건을 몰고 갔다. 모두가 황당해하던 9월 25일 박지원 국정원장이 돌연 북한이 사과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며 이를 청와대로 보내왔다. 그런데 이 통지문에는 평어와 존대어가 섞여 있고 이북 단어와 우리 단어가 혼재돼 있어, 몇 차례 문구가 바뀌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서훈 안보실장이 TV에 나와 이를 그대로 읽겠다며 발표했다. 그런데 서 실장이 그대로 읽겠다고 하며 읽은 통지문과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띄운 통지문, 그리고 서 실장의 발표를 중계한 KTV와 연합뉴스TV가 자막으로 띄운 통지문의 문구에 다른 곳이 있었다.
때문에 ‘북한이 진짜로 사과 통지문을 보낸 것이냐?’ ‘북한이 통신선을 차단했다면서 어떻게 통지문을 보냈느냐’ ‘문서로 보낸 게 아니라 전화로 불러준 것을 우리가 받아썼기에 우리식 단어가 들어간 것 아니냐’는 등의 의문이 제기됐으나, 문 정부는 답하지 않고 지나갔다. 훗날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는 문 대통령의 유엔 화상 연설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몰고 갔다’고 발표했다.
서훈 국정원의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
수미 테리에 대한 미국 연방검찰의 기소장은 2019년 11월 13일 첫 번째 선물 공세는 그해 1월 미국을 방문했던 서훈 국정원장이 미 국방부와 CIA의 전·현직 고위 관리를 비공개로 만나게 해준 데 대한 답례라고 밝혀놓았다. 서훈 원장이 미국을 방문한 2019년 1월은 트럼프의 하노이 노딜이 있기 직전이었으니 이 공세는 매우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그때 서훈의 국정원은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펼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공작은 아는 이가 적기에, 당시 상황을 복기(復棋)하면서 설명하겠다.
문재인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식으로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연 것이 아니었다. 2017년 북한은 ICBM 개발을 완성하기 위해 숱한 미사일을 쐈기에, 남북 관계는 매우 경색됐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서훈의 국정원은 북한과 대화 채널을 만들기 위해 물밑 작업을 펼쳤다. 북한은 ICBM 개발을 자신한 다음인 2018년 초 김정은 신년사를 통해 대화 의사를 밝혔는데, 국정원이 구축한 비밀라인으로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문 정부는 즉각 유화 분위기를 띄웠다.
이런 이유로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을 특사로 한 대표단을 보냈고, 문 대통령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을 북한 특사로 보냈다. 그해 3월 6일 평양에서 돌아온 정의용 특사는 기자단 앞에서 ‘방북 결과 언론 발표’를 발표하며 3항으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습니다”라는 내용을 밝혔다. 정 특사는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고 밝힌 것이다.
‘잘 되면 노벨상, 안 되면 벼랑 끝’
그리고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를 만난 그는 3월 9일 백악관에서 영어로 발표문을 낭독했는데,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I(=정의용)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이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이를 “저(정의용)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했다고 했습니다”라고 번역해놓았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의 언론발표문에서 정 실장은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는데, 백악관 발표문에서는 ‘북한 체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전제를 빼고 김정은이 그냥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만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영국의 BBC는 정의용 실장이 미·북 정상회담을 권유했다며 ‘문재인 대통령, 잘 되면 노벨상, 안 되면 벼랑 끝’이라는 보도를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BBC는 문 대통령도 같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있은 4월 28일(미국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주 워싱턴 타운십 행사에 참석해 중간선거 유세를 하며 “북한과의 만남이 3~4주 이내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회담이 될 것이다”라고 한 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언급하며 “문 대통령이 모든 공을 나에게 돌렸다”라고 연설했다. 그러자 갑자기 청중 사이에서 “노벨! 노벨!”이라는 연호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미·북 합의를 하면 트럼프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문 대통령은 4월 30일 수석·보좌관회의를 가졌는데 이때 이희호 여사가 축전을 보내왔다. 이 여사의 축전엔 “큰일 해내셨다. 노벨 평화상 받으시라”는 덕담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노벨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으셔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도하 언론을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둘로 갈린 미국의 여론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요구대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해주면서 북핵 포기를 받을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를 비난하는 여론이 쏟아졌다. 미국의 여론도 대한민국의 여론처럼 둘로 갈린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장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이 결정된 다음인 2019년 1월 29일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은 WMD(대량살상무기) 개발 역량과 핵무기 및 생산 능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자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애슐리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 국장도 “1년 전에 존재했던 (북핵) 역량과 위협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고 증언했다.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는데, 이는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가 할 수 있는 미·북 합의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트럼프는 반대로 갔다. 다음 날 트럼프는 이들을 향해 ‘학교로 다시 돌아가 배우고 오라’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이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러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상당히 괜찮은 기회’라며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미국 정보기관장들을 비판하는 의견이 나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보기관 당국자가 의회 청문회에서 주장하려면 휴민트(인적정보), 통신정보, 첩보위성 등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며 “미 정보 수장들이 드러낸 대북 불신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베가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
이러한 대립이 있던 2월 15일(미국 시각)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하노이 회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희한한 말을 꺼냈다. “아베 총리가 ‘삼가 일본을 대표해 당신에게 노벨 평화상을 줄 것을 (노르웨이 쪽에) 추천했다’고 말했다”고 밝힌 것이다. 도하 언론이 이를 보도하자 일본 언론이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고 2월 17일(일본 시각)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자신을 추천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발언은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추가 취재에 들어간 일본 언론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후인 2018년 가을 미국 측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뢰를 해왔다. 추천 마감이 (2019년) 2월이었기에 아베 총리는 추천을 했고, 5장 정도인 추천서 사본을 미·일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트럼프를 추천한 데는) 교착된 한반도 비핵화와 일본인 피랍자 문제의 타개, 그리고 미·일 통상 교섭에 탄력을 붙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보도를 했다.
때문에 트럼프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합의를 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왔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국회의원과 차관을 지낸 일부 보수 인사들이 ‘문재인 정권의 국정원이 미·북 합의 유도를 위해 트럼프 노벨 평화상 수상 공작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자비로 미국을 방문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보좌진을 만나 이를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들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2019년 2월 24일 김정은이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역을 떠났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실패한 것으로 판단됐다. 북한은 그들 지도자의 해외 방문을 미리 보도하지 않는다. 귀국할 즈음이나 다음에 ‘이러한 성과가 있었다’며 대대적인 보도를 한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만은 김정은의 평양 출발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하노이 합의를 확신한 김정은과 문재인
이는 이 회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북한은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한 군사 무기 지원 논의를 위한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도 미리 보도한 바 있다). 때문에 하노이 정상회담 첫날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씨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담을 “짜고 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북한은 이미 합의했고 문 대통령도 이 합의에 이견이 없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이 회담 첫날인 2월 27일(미국 시각) 인터넷 방송인 복스(Vox)는 ‘미·북은 영변 핵 시설 폐쇄와 대북제재 완화에 합의했다. 미·북은 평화협상을 하면서 연락사무소 설치를 논의한다. 미국은 한국이 주도할 남북경협을 위해 대북제재 완화를 추진하고, 북한은 미군 유해를 송환한다’는 하노이 회담 잠정합의문을 입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미국에도 돈을 주면 원하는 대로 보도해주는 매체가 차고 넘치는데, 한국 언론은 복스가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가진 매체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이를 인용 보도했다.
그런데 중국 대륙을 관통하며 요란하게 하노이에 온 김정은은 트럼프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노딜을 당했다. 김정은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믿지 못하고 당황해했다는 보도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그러자 정보 세계에서는 ‘미·북 합의를 위해 한국 국정원이 비밀리에 펼쳤던 트럼프 노벨 평화상 수상 공작은 완전 되치기를 당했다. 트럼프와 아베가 문재인과 김정은을 농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함에도 김정은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6월 30일 판문점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또 노딜을 당했다. 그런데 이날 판문점으로 달려가 미·북을 중재하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만든 것같이 연출한 문재인 대통령은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2.4%로 올라간 것인데, 이는 지난 7개월 사이 최고치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정원이 미국에서 펼쳤던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이 되치기당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에, 이러한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CIA 코리아 미션센터
문재인 정부와 서훈의 국정원은 트럼프 정부의 CIA가 2017년 앤드루 김이 이끄는 코리아 미션센터를 만들어 운용한 것에 주목했어야 했다. 트럼프의 CIA는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을 함께 보면서 대응하고 이들을 동시에 속일 작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아베 일본 총리에게 협조를 요청했을 수도 있다. CIA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코리아 미션센터를 폐지하고 중국 미션센터를 만들었다.
판문점 노딜 후 미국은 미·북 교섭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관계도 정리해나갔다. 서훈의 국정원이 CIA와의 공작전에서 완패를 당한 것이 확인된 2019년 11월 13일 수미 테리에게 2845달러짜리 코트와 2950달러짜리 가방을 사준 것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미국 조야의 여론을 반전시켜보려는 노력일 수 있다.
그러나 서훈 국정원장으로서는 꽉 막힌 북한 채널과 미국 채널을 뚫을 수 없기에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배제하고 박지원 의원을 국정원장에 임명해, 미국 조야를 상대로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친한화 공작을 한 것이다. 이때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부탁을 하고 선물 공세를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국정원은 수미 테리와 더 편하게 접촉했다. 국정원은 수미 테리가 있는 윌슨센터와 수미 테리에게 현금을 보냈는데, 윌슨센터에 보낸 돈도 수미 테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영향력 공작에 치중했던 국정원이 공공외교로 방향을 틀었다는 뜻이다.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했다가 CIA 코리아 미션센터+트럼프+아베에게 되치기를 당한 국정원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국정원이 외교부 명의로 윌슨센터로 1만1000달러를 보낸 한 달 뒤 2022년 6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북한 전문가 5명과 비공개 회의를 가졌는데 수미 테리도 참여했다. 그러고 수미 테리는 이 토론의 내용을 메모해 핸들러-3에게 전달했는데 이를 FBI가 촬영했다.
2023년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북핵을 다루기 위해 한미핵협의그룹(NCG)을 둔다는 등의 워싱턴 선언을 하고 8월에는 기시다 일본 총리와 같이 방문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일 공조를 강화한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했다. 문 정권 시절 불편했던 한미 관계가 한순간에 좋아진 것인데, 이 또한 국정원의 물밑 작업이 있었다.
문 정권 때는 영향력 공작, 윤 정부에서는 공공외교
수미 테리로 하여금 NCG를 창설하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2023년 1월 《포린어페어》에 싣게 하고, 3월에는 대일항쟁기에 동원된 정신대에 대해 3자 변제(辨濟)를 하게 하라는 칼럼을 써서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게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 직전에는 윌슨센터에서 한미동맹 70주년 행사도 열게 했는데, 국정원이 외교부 이름으로 윌슨센터에 2만5418달러, 수미 테리에게 2만6035달러를 보냈다. 그리고 그해 10월 미국에서는 수미 테리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다큐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가 개봉됐다.
국정원이 외교부의 이름을 빌려 공공외교를 한 것이다. 그러나 FBI는 2023년 6월 5일 수미 테리를 또 조사했다. 돈이 오간 증거가 완벽했으니 수미 테리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후 국정원은 공공외교를 중단했지만, 13개월이 지난 올해 7월 미국 검찰은 수미 테리를 기소했다.
미국 검찰과 FBI 처지에서는 수미 테리를 한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움직인 에이전트로 볼 수 있다. 서훈의 국정원이 미·북 합의를 위해 미국에서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박지원의 국정원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화상 연설을 앞두고 미국 공직자도 참여한 친한화 화상 워크숍을 한 것은 영향력 공작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FBI 입장에서는 이때의 수미 테리는 에이전트가 맞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 때 수미 테리가 한국을 위한 기고를 하고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은 미국 국익에 반하는 공작을 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은 외교부의 이름을 빌려 미국 싱크탱크를 지원하며 북한 인권 영화를 만들게 했으니 미국도 인정하는 공공외교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미 테리 재판에서는 그가 한국 국정원이 한 영향력 공작에 참여했느냐 공공외교에 협조했느냐가 논쟁이 될 것이다.
로버트 김 사건과 폴라드 사건
1985년 미국과 이스라엘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대계 미국인 조나단 폴라드 사건에는 돈이 개입돼 있다. 미 해군 정보국의 분석관인 폴라드는 1년 동안 미 해군 정보를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제공하고 5만 달러를 받은 것이 확인됐기에 무기(無期)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거듭된 요청으로 30년을 살고 이후 5년간 미국을 떠날 수 없다는 조건으로 석방됐다.
1996년 미 해군 정보국 분석관인 로버트 김이 한국 해군 무관에 정보를 준 로버트 김 사건에는 전혀 돈이 개입돼 있지 않다. 우리 해군 무관은 무관부 기념품과 대구뽈따구탕을 한 번 대접한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로버트 김은 9년형을 선고받았다(지금은 석방된 상태).
수미 테리는 CIA와 NSC 출신이지만 그곳을 떠난 후 본격적으로 국정원 요원을 만났다. 그는 현역 정보요원이 아니었으니 그가 국정원에 줄 수 있는 생생한 정보는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 미 검찰도 이를 인정했다. 미 검찰은 수미 테리가 미국의 정보를 외국에 전달해서가 아니라 외국 정부를 위한 활동을 하면서 그 사실과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대가를 신고하지 않았다며 FARA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수미 테리 재판에서 미 검찰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한국 국정원이 미·북 합의를 위해 미국에서 영향력 공작을 했는데 그를 활용했다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핸들러로 표현한 국정원 요원이 그를 만나 선물을 주는 것을 찍은 사진과 이를 시인한 수미 테리의 증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미 테리 측은 영향력 공작이 아니라 공공외교에 참여했다는 주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미 테리 측 준비에 찬물을 끼얹은 이가 박지원 의원이다. 그는 7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국정원 요원들이 미숙하고 참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바보짓을 한 건 (윤석열) 대통령실”이라며 “수미 테리가 활동을 시작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8건, 문재인 정부 5년간 12건, 윤석열 정부 1년간 20건이 넘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라고 반문한 것은 국정원이 미국에서 그를 활용해 영향력 공작을 했다는 인정이기 때문이다.
‘누가 국정원에 협조를 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화상 연설을 위해 그를 활용했던 박 의원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배신(背信)으로도 보인다. 정치적 입지 때문에 공작이 실패했다고 에이전트를 배신하면 그러한 이들이 있는 정보기관은 제대로 공작하기가 어려워진다. 정보의 세계에서 의리와 신의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했던 서훈씨나 공공외교를 한 윤석열 정부 초대 국정원장 김규현씨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이러한 북한에 돈을 보내 유죄를 받고, 사위는 마약 혐의로 유죄를 받은 박지원씨는 절대로 국정원장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와 자기 당을 살리자고 자기가 이끌었던 조직을 위해 일한 사람을 더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수미 테리
이북 출신의 조부모를 두고 CIA에서 분석관으로 근무했으며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미국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의 제작과 홍보에 적극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수미 테리는 우파적 인물이다. 이런 그가 ‘친북(親北)’인 문 정부를 위해 12번이나 활동한 것이 오히려 이례적인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협력했던 그를 이용하려는 문 정권의 압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문 정권에서 12번이나 협조했던 그가 윤석열 정부 1년간 20번이나 협력한 것은 그가 우파 정권의 출현을 반겼다는 뜻이 된다. 수미 테리 사건의 ‘속’을 파헤쳐본다.
1990년 무렵 미국의 정보·외교기관에 들어간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국의 힘이 G10 수준으로 커지고 북핵 위기가 고조돼 ‘한국 전문가’가 필요해진 2005년 이후 큰 기회를 잡았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수행해 김정은을 만났던 앤드루 김 CIA 코리아 미션센터장과 6자 회담 미국 대표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실무진을 이끌었던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 대행 등이 대표적이다. 앤드루 김보다 한발 늦게 CIA에 들어간 수미 테리는 그 ‘뒷물’을 탄 경우였다.
다민족(多民族) 국가인 미국은 정보기관에 진출한 이민족(異民族) 요원이 ‘고국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강릉 잠수함 사건이 일어난 1996년 발생한 로버트 김 사건이 좋은 사례다. 미 해군 정보국(ONI)의 분석관이던 로버트 김은 주미 해군무관 백동일 대령에게 미 해군의 정보를 건네줬다가 FBI에 검거돼 9년간 옥고를 치렀다.
미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국정원 요원을 만난 것이 문제가 돼 CIA에서 퇴직했다. 그러나 규정을 어긴 것이지 정보를 누설한 것은 아니었기에 사회활동은 할 수 있었다.
한국어가 완벽한 수미 테리는 국제정치학으로 유명한 플레처스쿨의 박사였기에 오바마 정부의 NSC(안보회의)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1년이 지난 2013년(오바마 정부 시절)부터는 싱크탱크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국정원 요원을 만났다. 정보는 ‘활물(活物)’이기에 몇 시간만 늦게 알아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인 경우가 많다. 국정원은 CIA와 바로 통하는 창구가 있기에, 퇴직 5년이 지난 CIA 요원에게 얻을 정보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를 만난 것은 미국 여론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꿔보려는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을 위해서였다.
영향력 공작
영향력 공작은 기업이 PR로 불리는 홍보와 ‘대관(對官)’으로 불리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로비를 잘해서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사에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경영술과 비슷하다. 수미 테리 박사는 싱크탱크에 몸담았으니 공직자인 앤드루 김이나 성 김과 달리 미국 유력 언론에 한국을 위한 기고를 할 수 있다. 미국은 외국 정보기관이 펼치는 영향력 공작을 막기 위해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미국인은 법무부에 신고하고 그 수입도 밝히라는 ‘외국대리인 등록법(FARA·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을 만들어놓았다. 이 법을 적용할 때 증거로 잡는 것이 대가로 받는 ‘수입’이다.
기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10여 년에 걸쳐 40여 번 국정원 요원을 만났는데 이 중 선물(식사 포함)을 받은 것은 세 번이었다. 2019년 11월 13일 메릴랜드주(州)의 한 상점에서 국정원 직원이 신용카드로 2845달러짜리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사주고 워싱턴DC로 이동해 2950달러짜리 보테가 베네타 가방을 더 사준 것이 첫 번째, 2020년 8월 뉴욕에서 3450달러짜리 루이뷔통 핸드백을 사주고 일식집에서 스시 대접을 한 것이 두 번째, 2021년 4월 워싱턴DC의 루이뷔통 매장에서 3450달러짜리 핸드백을 사준 것이 세 번째다. 이러한 선물 공세는 문재인 정부 때 이뤄졌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국정원은 주미 한국 대사관 명의로 그가 속해 있던 싱크탱크(윌슨센터)로 1만1000달러를 보냈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國賓) 방문이 임박한 2023년 4월에는 윌슨센터로 2만5418달러, 수리 테리에겐 2만6035달러를 각각 보냈다. 미 검찰은 수미 테리가 3만7000여 달러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세 차례에 걸쳐 준 네 가지 선물의 가격인 1만2745달러(2895+2950+3450+3450)에 개인적으로 받은 현금 2만6035달러를 더한(3만8780달러) 것의 개략값으로 보인다.
미국 NSC를 나온 수미 테리는 한미 외교를 잇는 가교(架橋) 역할을 했는데 그때마다 국정원이 움직였다. 기소장에 따르면 2014년 6월 그는 《포린어페어》에 한국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한 글을 싣고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식사 대접과 고료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다.
FBI, 文–트럼프 시절 관계 주목
외교에서 영향력 공작과 비슷한 분야를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고 한다. 공공외교는 미국에서 개념이 정립돼 각국으로 확산됐기에, 우리도 ‘공공외교법’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2014년 11월 FBI는 수미 테리와 국정원의 관계를 조사했으나 공공외교로 본 듯 덮었다(국어사전 등은 공공외교를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이 두루 주체가 되어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외국 국민을 상대로 국가 홍보 활동을 전개하는 외교’로 정의해놓고 있다).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부탁해 트럼프 정부에서 외교·안보를 맡을 이를 만났는데, 이때도 FBI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과 수미 테리 관계는 좌시하지 않았다. 위에서 밝혔듯 기소장에 문재인 정권 시절 국정원이 수미 테리에게 한 금품 공세를 자세히 나열한 것이 그 증거다. 왜 FBI와 미 검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의 선물 공세에 집중했을까. 기소장에 그 실마리가 담겨 있다.
기소장은 2020년 8월 국정원이 두 번째 선물 공세(3450달러짜리 핸드백+스시 대접)를 한 것에 대해 ‘수미 테리가 미 정부 인사들도 참여한 화상(畫像) 워크숍을 주선했기에 이를 받았다’고 밝혀놓았다. 국정원은 왜 수미 테리에게 이 워크숍 주선을 부탁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긴박했던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과 5월 26일 이북 통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주선으로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2019년 2월 27일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트럼프는 북한이 내놓은 핵 폐기 목록이 엉터리라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노딜을 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대미(對美) 통로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회담에 참석하게 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등을 통해 트럼프와의 면담을 요청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딜 이후 남북 관계 단절시킨 북한
그때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도 이 회담에 참석하겠다며 판문점으로 달려가, 회담장에 들어가려다 미국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했는데, 이 모습이 TV 화면에 그대로 노출됐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이 회담장을 나온 뒤 접근해 인사를 하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한 듯한 연출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이날부로 미·북 관계는 완전히 찢어졌다. ‘중매를 잘못한 중신아비에게는 뺨이 세 대’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노딜을 당한 김정은은 그 책임을 문 대통령에게 돌리며 특등 머저리, 삶은 소대가리라 비난하였다. 분풀이를 한 것이다.
이러함에도 문 정부가 계속 남북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자 북한은 2020년 6월 9일 12시부로 2018년 4월의 판문점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일주일 전에 설치했던, 청와대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잇는 핫라인을 비롯한 남북 통신선을 끊어버렸다. 6월 16일엔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의 자산’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으로 폭파했다.
이때까지 국정원장은 2018년 판문점과 통일각 그리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만들어낸 서훈씨였다. 문 대통령은 서 원장으론 대북 루트를 복원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그를 국가안보실장으로 보내며 새 국정원장을 찾았다.
反文의 기수에서 親文의 첨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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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7월 29일 자신과 정치적으로 불편한 사이였던 박지원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했다. 사진=연합뉴스 |
그는 문재인 대통령도 깊이 참여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송금 수사를 받고 복역했으니 그와 문 대통령 관계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 정부는 임기 말 그를 특별 사면하고 복권해주었다. 덕분에 그는 2008년 18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가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으로 복귀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후보로 당선돼 이 당의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2015년 친문(親文) 세력이 더불어민주당을 만들 땐 참여하지 못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해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 당선됐다. 문재인 세력과 다시 갈라선 것이었다. 그리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자, 그를 필두로 한 국민의당은 매일 아침 문 대통령을 비난해 ‘문모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0년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실패한 그는 문 정부에 대한 비난의 열도를 높였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반문의 아이콘인 박지원씨를 국정원장으로 삼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위는 2019년 미국에서 대마와 엑스터시를 갖고 들어와 피운 혐의로 기소돼 있었다(2022년 유죄 확정 판결). 가족 중 마약 사범이 있는 이를 정보기관장으로 임명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그가 북한과 통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국정원장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아닐 수 없었다. 하노이-판문점 노딜 후 문 대통령은 급했던 것이다.
국정원장이 된 그도 표변했다. 하루아침에 친문이 돼, 김정은을 백안시하는 미국 여론을 돌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권은 그해 9월 23일로 예정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 주목했다. 문 정권은 미·북 대화는 물론이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려면 북한에 큰 선물을 줘야 한다고 봤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판문점에서 있었던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미국이 북한 체제를 인정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김정일 이후 일관된 북한의 대미 외교 전략이다.
미국과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적국(敵國) 관계에 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려면 이를 ‘비(非)적국 관계’로 돌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쟁 상태를 끝내고 평화 상태로 간다’는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을 맺어야 한다. 국제정치 때문에 이러한 조약을 맺지 않고 평화 관계로 가야 한다면, ‘전쟁 상태를 끝낸다’는 종전(終戰)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미국이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해줄 리 없는데, 우리만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더 우스운 일이 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유엔 화상 연설을 통해 ‘미국 조야(朝野)와 북한이 들으라’고 한반도 종전선언을 촉구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한미 관계를 더 삐걱거리게 할 수 있으니, 사전작업을 해야 했다. 외교부는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는 국정원 해외 파트가 맡아온 영역이다.
워싱턴 거점장이 직접 수미 테리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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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당국이 포착한 국정원 워싱턴 거점장 등과 수미 테리가 만나는 모습. 사진=미국 연방검찰 |
박지원의 국정원은 문 대통령에게 유엔 화상 연설을 앞두고 친한(親韓)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 대사관,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두 곳에는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국정원 요원들이 나가 있는 ‘거점’이 있는데, 더 센 곳은 워싱턴 거점이다. 워싱턴 거점엔 공사 타이틀을 가진 미국 거점장이 상주한다.
기소장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때까지 수미 테리를 만난 것은 유엔대표부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남북 접촉에 올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워싱턴 거점이 그를 만났다. 기소장은 수미 테리에게 스시 대접을 하며 두 번째 선물 공세를 한 2020년 8월 국정원 측에서 미국 거점장 등 두 명이 나와 수미 테리를 대접했다며 거점장을 핸들러-2로 표시한 사진을 공개했다. 거점장이 직접 수미 테리를 만난 것은 박지원의 국정원이 이 워크숍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증거다.
유엔총회 화상 연설 직전에 일어난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그런데 ‘하늘이 진노’했는지 화상 연설이 꼬여버렸다. 유엔에서 이 연설을 방영하기 3시간 전쯤인 9월 22일 저녁 서해에서 북한으로 표류한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격돼 소각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정보기관으로부터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던 이 공무원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이 공무원이 북한으로 표류했다는 것도 정확히 보고 받았다. 그런데도 종전선언 연설 때문에 전혀 손을 쓰고 있지 않다가 북한이 그를 살해해 태우는 일을 당한 것이다.
이러함에도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라는 문 대통령 연설을 유엔에서 방영하게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무참히 살해됐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황망하고 비상식적인 연설을 막무가내로 진행한 것이다.
문 정권은 이 공무원이 자진 월북(越北)했다는 쪽으로 사건을 몰고 갔다. 모두가 황당해하던 9월 25일 박지원 국정원장이 돌연 북한이 사과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며 이를 청와대로 보내왔다. 그런데 이 통지문에는 평어와 존대어가 섞여 있고 이북 단어와 우리 단어가 혼재돼 있어, 몇 차례 문구가 바뀌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서훈 안보실장이 TV에 나와 이를 그대로 읽겠다며 발표했다. 그런데 서 실장이 그대로 읽겠다고 하며 읽은 통지문과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띄운 통지문, 그리고 서 실장의 발표를 중계한 KTV와 연합뉴스TV가 자막으로 띄운 통지문의 문구에 다른 곳이 있었다.
때문에 ‘북한이 진짜로 사과 통지문을 보낸 것이냐?’ ‘북한이 통신선을 차단했다면서 어떻게 통지문을 보냈느냐’ ‘문서로 보낸 게 아니라 전화로 불러준 것을 우리가 받아썼기에 우리식 단어가 들어간 것 아니냐’는 등의 의문이 제기됐으나, 문 정부는 답하지 않고 지나갔다. 훗날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는 문 대통령의 유엔 화상 연설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몰고 갔다’고 발표했다.
서훈 국정원의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
수미 테리에 대한 미국 연방검찰의 기소장은 2019년 11월 13일 첫 번째 선물 공세는 그해 1월 미국을 방문했던 서훈 국정원장이 미 국방부와 CIA의 전·현직 고위 관리를 비공개로 만나게 해준 데 대한 답례라고 밝혀놓았다. 서훈 원장이 미국을 방문한 2019년 1월은 트럼프의 하노이 노딜이 있기 직전이었으니 이 공세는 매우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그때 서훈의 국정원은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펼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공작은 아는 이가 적기에, 당시 상황을 복기(復棋)하면서 설명하겠다.
문재인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식으로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연 것이 아니었다. 2017년 북한은 ICBM 개발을 완성하기 위해 숱한 미사일을 쐈기에, 남북 관계는 매우 경색됐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서훈의 국정원은 북한과 대화 채널을 만들기 위해 물밑 작업을 펼쳤다. 북한은 ICBM 개발을 자신한 다음인 2018년 초 김정은 신년사를 통해 대화 의사를 밝혔는데, 국정원이 구축한 비밀라인으로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문 정부는 즉각 유화 분위기를 띄웠다.
이런 이유로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을 특사로 한 대표단을 보냈고, 문 대통령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을 북한 특사로 보냈다. 그해 3월 6일 평양에서 돌아온 정의용 특사는 기자단 앞에서 ‘방북 결과 언론 발표’를 발표하며 3항으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습니다”라는 내용을 밝혔다. 정 특사는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고 밝힌 것이다.
‘잘 되면 노벨상, 안 되면 벼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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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전달했다. 사진=청와대 |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의 언론발표문에서 정 실장은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는데, 백악관 발표문에서는 ‘북한 체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전제를 빼고 김정은이 그냥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만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영국의 BBC는 정의용 실장이 미·북 정상회담을 권유했다며 ‘문재인 대통령, 잘 되면 노벨상, 안 되면 벼랑 끝’이라는 보도를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BBC는 문 대통령도 같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있은 4월 28일(미국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주 워싱턴 타운십 행사에 참석해 중간선거 유세를 하며 “북한과의 만남이 3~4주 이내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회담이 될 것이다”라고 한 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언급하며 “문 대통령이 모든 공을 나에게 돌렸다”라고 연설했다. 그러자 갑자기 청중 사이에서 “노벨! 노벨!”이라는 연호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미·북 합의를 하면 트럼프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문 대통령은 4월 30일 수석·보좌관회의를 가졌는데 이때 이희호 여사가 축전을 보내왔다. 이 여사의 축전엔 “큰일 해내셨다. 노벨 평화상 받으시라”는 덕담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노벨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으셔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도하 언론을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둘로 갈린 미국의 여론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요구대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해주면서 북핵 포기를 받을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를 비난하는 여론이 쏟아졌다. 미국의 여론도 대한민국의 여론처럼 둘로 갈린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장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이 결정된 다음인 2019년 1월 29일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은 WMD(대량살상무기) 개발 역량과 핵무기 및 생산 능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자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애슐리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 국장도 “1년 전에 존재했던 (북핵) 역량과 위협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고 증언했다.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는데, 이는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가 할 수 있는 미·북 합의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트럼프는 반대로 갔다. 다음 날 트럼프는 이들을 향해 ‘학교로 다시 돌아가 배우고 오라’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이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러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상당히 괜찮은 기회’라며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미국 정보기관장들을 비판하는 의견이 나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보기관 당국자가 의회 청문회에서 주장하려면 휴민트(인적정보), 통신정보, 첩보위성 등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며 “미 정보 수장들이 드러낸 대북 불신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베가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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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 1일 페이스북에 ‘평화가 상이다(PEACE IS THE PRIZE)’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이 게시물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이 알려진 뒤 올라왔다. |
추가 취재에 들어간 일본 언론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후인 2018년 가을 미국 측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뢰를 해왔다. 추천 마감이 (2019년) 2월이었기에 아베 총리는 추천을 했고, 5장 정도인 추천서 사본을 미·일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트럼프를 추천한 데는) 교착된 한반도 비핵화와 일본인 피랍자 문제의 타개, 그리고 미·일 통상 교섭에 탄력을 붙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보도를 했다.
때문에 트럼프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합의를 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왔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국회의원과 차관을 지낸 일부 보수 인사들이 ‘문재인 정권의 국정원이 미·북 합의 유도를 위해 트럼프 노벨 평화상 수상 공작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자비로 미국을 방문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보좌진을 만나 이를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들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2019년 2월 24일 김정은이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역을 떠났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실패한 것으로 판단됐다. 북한은 그들 지도자의 해외 방문을 미리 보도하지 않는다. 귀국할 즈음이나 다음에 ‘이러한 성과가 있었다’며 대대적인 보도를 한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만은 김정은의 평양 출발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하노이 합의를 확신한 김정은과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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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은 2018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났지만, 회담은 결렬됐다. 사진=AFP/연합뉴스 |
미국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이 회담 첫날인 2월 27일(미국 시각) 인터넷 방송인 복스(Vox)는 ‘미·북은 영변 핵 시설 폐쇄와 대북제재 완화에 합의했다. 미·북은 평화협상을 하면서 연락사무소 설치를 논의한다. 미국은 한국이 주도할 남북경협을 위해 대북제재 완화를 추진하고, 북한은 미군 유해를 송환한다’는 하노이 회담 잠정합의문을 입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미국에도 돈을 주면 원하는 대로 보도해주는 매체가 차고 넘치는데, 한국 언론은 복스가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가진 매체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이를 인용 보도했다.
그런데 중국 대륙을 관통하며 요란하게 하노이에 온 김정은은 트럼프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노딜을 당했다. 김정은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믿지 못하고 당황해했다는 보도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그러자 정보 세계에서는 ‘미·북 합의를 위해 한국 국정원이 비밀리에 펼쳤던 트럼프 노벨 평화상 수상 공작은 완전 되치기를 당했다. 트럼프와 아베가 문재인과 김정은을 농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함에도 김정은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6월 30일 판문점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또 노딜을 당했다. 그런데 이날 판문점으로 달려가 미·북을 중재하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만든 것같이 연출한 문재인 대통령은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2.4%로 올라간 것인데, 이는 지난 7개월 사이 최고치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정원이 미국에서 펼쳤던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이 되치기당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에, 이러한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CIA 코리아 미션센터
문재인 정부와 서훈의 국정원은 트럼프 정부의 CIA가 2017년 앤드루 김이 이끄는 코리아 미션센터를 만들어 운용한 것에 주목했어야 했다. 트럼프의 CIA는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을 함께 보면서 대응하고 이들을 동시에 속일 작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아베 일본 총리에게 협조를 요청했을 수도 있다. CIA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코리아 미션센터를 폐지하고 중국 미션센터를 만들었다.
판문점 노딜 후 미국은 미·북 교섭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관계도 정리해나갔다. 서훈의 국정원이 CIA와의 공작전에서 완패를 당한 것이 확인된 2019년 11월 13일 수미 테리에게 2845달러짜리 코트와 2950달러짜리 가방을 사준 것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미국 조야의 여론을 반전시켜보려는 노력일 수 있다.
그러나 서훈 국정원장으로서는 꽉 막힌 북한 채널과 미국 채널을 뚫을 수 없기에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배제하고 박지원 의원을 국정원장에 임명해, 미국 조야를 상대로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친한화 공작을 한 것이다. 이때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부탁을 하고 선물 공세를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국정원은 수미 테리와 더 편하게 접촉했다. 국정원은 수미 테리가 있는 윌슨센터와 수미 테리에게 현금을 보냈는데, 윌슨센터에 보낸 돈도 수미 테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영향력 공작에 치중했던 국정원이 공공외교로 방향을 틀었다는 뜻이다.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했다가 CIA 코리아 미션센터+트럼프+아베에게 되치기를 당한 국정원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국정원이 외교부 명의로 윌슨센터로 1만1000달러를 보낸 한 달 뒤 2022년 6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북한 전문가 5명과 비공개 회의를 가졌는데 수미 테리도 참여했다. 그러고 수미 테리는 이 토론의 내용을 메모해 핸들러-3에게 전달했는데 이를 FBI가 촬영했다.
2023년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북핵을 다루기 위해 한미핵협의그룹(NCG)을 둔다는 등의 워싱턴 선언을 하고 8월에는 기시다 일본 총리와 같이 방문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일 공조를 강화한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했다. 문 정권 시절 불편했던 한미 관계가 한순간에 좋아진 것인데, 이 또한 국정원의 물밑 작업이 있었다.
문 정권 때는 영향력 공작, 윤 정부에서는 공공외교
수미 테리로 하여금 NCG를 창설하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2023년 1월 《포린어페어》에 싣게 하고, 3월에는 대일항쟁기에 동원된 정신대에 대해 3자 변제(辨濟)를 하게 하라는 칼럼을 써서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게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 직전에는 윌슨센터에서 한미동맹 70주년 행사도 열게 했는데, 국정원이 외교부 이름으로 윌슨센터에 2만5418달러, 수미 테리에게 2만6035달러를 보냈다. 그리고 그해 10월 미국에서는 수미 테리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다큐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가 개봉됐다.
국정원이 외교부의 이름을 빌려 공공외교를 한 것이다. 그러나 FBI는 2023년 6월 5일 수미 테리를 또 조사했다. 돈이 오간 증거가 완벽했으니 수미 테리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후 국정원은 공공외교를 중단했지만, 13개월이 지난 올해 7월 미국 검찰은 수미 테리를 기소했다.
미국 검찰과 FBI 처지에서는 수미 테리를 한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움직인 에이전트로 볼 수 있다. 서훈의 국정원이 미·북 합의를 위해 미국에서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박지원의 국정원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화상 연설을 앞두고 미국 공직자도 참여한 친한화 화상 워크숍을 한 것은 영향력 공작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FBI 입장에서는 이때의 수미 테리는 에이전트가 맞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 때 수미 테리가 한국을 위한 기고를 하고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은 미국 국익에 반하는 공작을 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은 외교부의 이름을 빌려 미국 싱크탱크를 지원하며 북한 인권 영화를 만들게 했으니 미국도 인정하는 공공외교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미 테리 재판에서는 그가 한국 국정원이 한 영향력 공작에 참여했느냐 공공외교에 협조했느냐가 논쟁이 될 것이다.
로버트 김 사건과 폴라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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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된 후 2012년 5월 30일 한국을 찾은 로버트 김(오른쪽)은 백동일 전 해군 대령(왼쪽)과 재회했다. 사진=조선DB |
1996년 미 해군 정보국 분석관인 로버트 김이 한국 해군 무관에 정보를 준 로버트 김 사건에는 전혀 돈이 개입돼 있지 않다. 우리 해군 무관은 무관부 기념품과 대구뽈따구탕을 한 번 대접한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로버트 김은 9년형을 선고받았다(지금은 석방된 상태).
수미 테리는 CIA와 NSC 출신이지만 그곳을 떠난 후 본격적으로 국정원 요원을 만났다. 그는 현역 정보요원이 아니었으니 그가 국정원에 줄 수 있는 생생한 정보는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 미 검찰도 이를 인정했다. 미 검찰은 수미 테리가 미국의 정보를 외국에 전달해서가 아니라 외국 정부를 위한 활동을 하면서 그 사실과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대가를 신고하지 않았다며 FARA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수미 테리 재판에서 미 검찰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한국 국정원이 미·북 합의를 위해 미국에서 영향력 공작을 했는데 그를 활용했다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핸들러로 표현한 국정원 요원이 그를 만나 선물을 주는 것을 찍은 사진과 이를 시인한 수미 테리의 증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미 테리 측은 영향력 공작이 아니라 공공외교에 참여했다는 주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미 테리 측 준비에 찬물을 끼얹은 이가 박지원 의원이다. 그는 7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국정원 요원들이 미숙하고 참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바보짓을 한 건 (윤석열) 대통령실”이라며 “수미 테리가 활동을 시작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8건, 문재인 정부 5년간 12건, 윤석열 정부 1년간 20건이 넘는 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라고 반문한 것은 국정원이 미국에서 그를 활용해 영향력 공작을 했다는 인정이기 때문이다.
‘누가 국정원에 협조를 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화상 연설을 위해 그를 활용했던 박 의원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배신(背信)으로도 보인다. 정치적 입지 때문에 공작이 실패했다고 에이전트를 배신하면 그러한 이들이 있는 정보기관은 제대로 공작하기가 어려워진다. 정보의 세계에서 의리와 신의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노벨상 수상 공작을 했던 서훈씨나 공공외교를 한 윤석열 정부 초대 국정원장 김규현씨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이러한 북한에 돈을 보내 유죄를 받고, 사위는 마약 혐의로 유죄를 받은 박지원씨는 절대로 국정원장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와 자기 당을 살리자고 자기가 이끌었던 조직을 위해 일한 사람을 더 구렁텅이로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