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언론, ‘엔저로 일본 침몰’… 일본이 年 3000억 달러를 금융으로 벌어들인다는 건 몰라
⊙ 미·유럽의 ‘시대정신’이 된 트럼프주의 무시하고, 자기만족적 정보에만 몰입
⊙ U-23 한국축구 아시안컵 4강 탈락… ‘대참사’ 수식어 동원해 감독·회장 탓만
⊙ 세계 각국에서 K-컬처 열풍은 다양성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일 뿐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미·유럽의 ‘시대정신’이 된 트럼프주의 무시하고, 자기만족적 정보에만 몰입
⊙ U-23 한국축구 아시안컵 4강 탈락… ‘대참사’ 수식어 동원해 감독·회장 탓만
⊙ 세계 각국에서 K-컬처 열풍은 다양성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일 뿐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국내 언론은 엔저로 인해 일본이 폭망할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당신이 밝히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살인자다.”
고대(古代) 그리스 드라마의 정수(精髓),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예언자 티레시아스의 말이다.
오이디푸스의 왕국 테베는 대기근과 역병(疫病)에 휩싸인다. 사람들이 죽어가자 왕이 직접 원인 규명에 나선다. 오이디푸스 직전의 왕을 살해한 자를 찾아내지 않는 한, 대재앙이 이어질 것이란 신탁(神託)을 듣게 된다.
티레시아스는 전임 테베 왕을 죽인 인물이, 아들인 오이디푸스 본인이란 말을 직접 전하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알리면서, 본인 스스로가 답을 찾도록 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티레시아스를 조롱한다. “거짓말만 하는 엉터리 예언자”라는 것이다. 티레시아스는 긴 한숨과 함께 진실을 밝힌다.
“테베의 왕 라이우스를 죽인 인물은 바로 당신, 오이디푸스다.”
그리스 신화(神話)에 관심이 있다면 티레시아스라는 인물을 곳곳에서 만났을 것이다. 원래 예언은 신(神)의 영역이다. 티레시아스는 신도 아니고 신의 도움도 필요치 않은, 인간 예언자다. 따라서 신의 관점이 아니라,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본 예언을 한다. 일방 통보가 아닌 상호 소통,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서의 예언이다.
흥미로운 것은 티레시아스의 외모다. 장님에다 항상 어린이와 함께 노숙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일리아드》의 작가 호메로스가 그러하듯, 눈이 멀었다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에 무관심하다는 의미다. 본인 스스로도 돈, 명예, 권력에 무관심하지만, 세속적 가치로 짓누르려는 사람들에 대한 면역력도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의미다.
‘싸구려 일본’?
‘전 세계인 몰려드는데 울상. 싸구려, 박탈감 빠진 일본.’
댓글이 재미있다는 소감과 함께 지인이 보내온 추천 비디오 제목이다.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이 내보낸 저녁 종합뉴스인데, 시청자 댓글이 무려 2700개에 달한다. 내용은 ‘엔저의 일본, 4월 한 달 308만 방일 관광객’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일본에 외국인이 넘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매력보다, 엔저에 있다는 식의 보도다. 더불어,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엔저로 인한 불안과 우울이 열도 전역에 떠돌고 있다는 투의 비관적 설명도 뒤따른다. 호주에서는 86달러인 모바일 충전기가 일본에서는 16달러에 팔린다면서, 엔저 출혈 비즈니스가 관광대국 일본의 실상이라고 전한다. 이 뉴스를 보면,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표류한다.
첫째, 보도를 한 방송국의 ‘반일(反日) 2.0’에 관한 부분이다.
20세기의 주류였던 식민 통치, 역사 문제, 정치가의 망언을 기반으로 한 반일 정서가 ‘반일 1.0’이다. ‘반일 2.0’은 과거사가 아니라, 문화, 경제, 엔저를 통한 혐일 나아가 일본 깔보기다. 필자가 본 앞의 뉴스도 이 중 하나다. 뉴스의 핵심은 ‘엔저로 인해 일본 열도 전체가 쪼그라들면서 망해간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아무리 밀려와도 엔저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엔저=망국’으로 결론 지으면서, 하루 10만 명이나 몰려드는 이웃 나라의 관광 호황을 깡그리 무시하려는 ‘기묘한 심리’가 뉴스 이면에 드리워져 있다.
싸고 편하고 볼 게 많은 나라가 관광 영(0)순위 방문지다. 이웃 나라의 통화 하락을 걱정하면서, ‘방일 관광객=엔저 일본의 점령군’으로 만드는, 뒤틀리고도 무지한 반일 2.0 보도에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왜 저렇게 싸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엔저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견딜 수 있는지, 외국인이 몰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도 원이 떨어졌는데도 왜 관광객이 늘지 않는지…’ 댓글 곳곳에서도 지적됐지만, 상식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제기할 얘기다. 그러나 ‘반일 2.0’ 정서로 접근하면 이 같은 상식들이 통하지 않는다.
안 먹히는 ‘반일 2.0’
댓글에 나타난 시청자 반응은 ‘반일 2.0’ 뉴스의 정반대 편에 서 있다. 놀랍게도 댓글 9할 정도가 뉴스 내용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다. 전체 분위기를 압축한, 댓글 1위, 2위에 오른 시청자 반응을 보자.
‘엔저 아니라도 평소 일본에는 관광객이 많다. 한국도 제발 관광 개발 좀 하자. 백날 아파트랑 지식산업센터만 짓지 말고.’
‘일본은 외화라도 벌지. 한국은 답 없다.’
댓글을 보면, 일본을 무조건 무시하고 비판하고 조롱하는 보도가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댓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방일 한국인에게는 ‘반일 1.0’은 물론 ‘반일 2.0’의 약발이 더 이상 안 통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티레시아스가 서울에 온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듯하다.
“쇄국(鎖國) 마인드에서 벗어나라.”
그러면서 티레시아스는 쇄국 마인드로 인해 미래 한국에 밀려들 대재앙들을 열거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밖을 보라고 목소리를 높일지 모르겠다. 쇄국과 쇄국 마인드는 2024년 필자가 느끼는 한국의 일상 풍경이다.
5G 초고속 인터넷 보급망과 최첨단 모바일로 무장한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은 누구나 국경 밖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일본에 다녀온 한국인이 전체 인구의 15%인 700만 명 정도다. 그런데도 TV 방송이 앞장서서 ‘엔저로 일본 폭망’ 식으로 보도하는 게 한국이다.
국제 문제에 관심 없는 한국 언론
지난 3월부터 한 달 정도 서울에 머물렀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세계를 대하는 한국인의 평균 정서가 한참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인도의 급부상에 대한 감각이 엄청나게 둔하다. ‘인도 급상승=중국 폭망=일본 부활’이란 팬데믹 이후의 글로벌 구도조차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잘나가던 중국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한국 사회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는 아예 없다. ‘과연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원론(原論) 수준의 미국 정세론이 대세다.
일단 국제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가 희박하다. 개인만이 아니라, 신문·방송 등 미디어 자체가 쇄국 마인드의 결정판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국제 관련 뉴스가 경시되고 있다. 있다 해도 해외 토픽 단발성에 그친다.
전 세계의 기본틀이 무너지면서 요동을 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한국 미디어는 국내 정치 뉴스에 올인한다. 하루만 지나도 무의미해질 글과 영상들을 매일같이 내보낸다. 지구 전체와 미래에 기초한, 큰 그림이 없다. 한국에서 신문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등장하는 정치가들의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돈이 따르기 때문이겠지만, 요즘은 정치가만이 아니라 주변에 기생(寄生)하는 사람들도 넘친다. 그들의 이름까지 외우려면 머리에 컴퓨터 칩을 하나 달아야 할 것이다.
K-컬처는 한국식 쇄국 마인드를 부추기는 또 다른 호재(好材)다. 한국의 신문·방송을 보면, 전 세계가 한국 노래와 춤에 빠진 듯하다. 축구·야구 등 스포츠 뉴스를 봐도, 전 세계가 한국만 쳐다보는 듯하다.
쇄국은 국뽕으로 통한다
필자는 지난 1년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3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춤·노래·영화 같은 K-컬처의 영향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신앙처럼 정착된 ‘K-컬처 세계 제압’은 아니다. K-컬처의 진짜 모습은, 5000만 인구를 가진 세계 무역 10위권 나라 수준에 맞고, 서방에서 아시아에 나눠 주는 ‘다양성(diversity) 마이너리티(minority)’에 맞춰진 글로벌 트렌드의 하나라는 것이다.
‘다양성 마이너리티’를 중시하기 때문이겠지만, 최근 서방의 관심은 한국을 넘어서 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인도로 넘어가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세기에 이런 관심을 받았었다. 다만 공산당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은 ‘다양성 마이너리티’에 기초한 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쇄국 마인드의 증거는 뭐를 봐도 국가적 국민적 자랑, 즉 국뽕으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기아(飢餓)로 숨이 넘어가면서도 지상낙원이라 자랑하는 국뽕 대국이 바로 북한이다.
원래 중국 한자문화권에서는 ‘쇄국’이란 단어가 없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기 때문에 ‘쇄국’이란 한자어 자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4세기 명(明)나라 해금령(海禁令)에서 보듯, 문을 닫고 살아가는 생활방식은 한족(漢族) 중국의 기본 유전자(遺傳子)이자 국시(國是)였다.
쇄국이란 한자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01년 일본에서다. 통역관으로 일하던 일본인이 네덜란드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당시 일본의 현황을 표현하면서 ‘쇄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관점에서 막부 정권이 기독교를 금지하고 외국과의 통상(通商)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쇄국’이란 단어 하나로 압축한 것이다. 해상 무역 대국인 네덜란드로서는, 아예 문을 닫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조선의 흥선대원군 한 사람만 나라의 문을 닫아걸었던 것이 아니다. 외부가 만든 두꺼운 벽 이전에, 마음속에 만든 자생적(自生的) 창살이 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다.
한국 언론, 일본 우승 외면
5월 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대회에서 일본이 우즈베키스탄을 1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그보다 일주일 전인 4월 25일, 한국은 AFC 8강 문턱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했다. 8강 탈락은 40년 만의 올림픽 출전 실패로 이어졌다. 일본은 일찌감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데 이어, 우승까지 차지했다. AFC 축구 소식과 관련해 두 가지 ‘황당한’ 사안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 한국 미디어 가운데, 일본 우승 관련 뉴스를 다룬 곳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 축구 뉴스까지 챙겨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다뤄야만 한다. ‘한국은 졌는데 일본은 왜 이겼는가’라는 부분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에 잘할 수 있다.
한국 미디어는 AFC 8강 탈락을 ‘한국 축구 대참사’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엄청난 수식어를 동원한 말만 앞세울 뿐, 행동이나 대안(代案)이 없다. 학교 공부가 그러하듯, 시험 점수가 나쁠 경우 우등생의 공부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비교하면서 자신의 단점을 고쳐나갈 수 있다. 한국 축구를 아낀다면, 우승국 일본과 관련된 뉴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심 제로다. AFC 우승국이 일본이란 사실조차도 금시초문 뉴스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둘째, 올림픽 참가 실패와 관련된 한국 내 원인 분석이다. 상황 오판(誤判), 나아가 왜곡은 쇄국과 쇄국 마인드의 결정적 단점이다. 쇄국과 쇄국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정확한 판단이나 효과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문을 열어 남과 비교하면서 객관적으로 살펴볼 경우 자신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졌는가’를 둘러싼 한국 내 처방법을 보면 너무도 황당하다. 축구든 그 어떤 운동이든 패배할 경우의 최우선 책임자는 운동선수 그 자체다. 감독이나 축구협회장도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핵심은 현장에서 뛰는 운동선수다.
쇄국의 종점은 ‘우리끼리’
한국 미디어의 보도를 보면, 선수가 아닌, 장외(場外)의 감독과 축구협회장이 패인(敗因)이라고 한다. 왜 슛 하나 제대로 못 쏘는지, 패스는 왜 그렇게 엉망인지, 볼 하나에 악착같이 매달리던 투혼은 어디로 갔는지 등에 관한 얘기는 없다. 축구협회장 교체가 올림픽 출전 탈락에 대한 사후(事後) 대책이다.
독일 출신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끝난,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 탈락 당시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자. 선수들끼리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이후 요르단전 패배 불똥이 감독에게로 옮아갔다. 결론은 축구협회장 비난과 감독 사임이었다.
필자는 축구협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감독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 의문인 것은 ‘왜 축구선수보다, 선수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먼저 언급되는가’라는 점이다. 축구협회장 문제가 일더니, 선수들끼리 싸우는데도 한마디 말도 안 했다는 감독에 대한 비난이 시작됐다. 왜 선수들이 그토록 엉망이었는지, 축구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결국 애꿎은 감독만 책임을 전부 뒤집어쓰고, 최소한의 변명 기회도 없이 조롱과 일방적인 비난 속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쇄국과 쇄국 마인드의 종점은 ‘우리끼리’다. 한국 미디어는 이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고 증폭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 클린스만은 웃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비난을 받았다.
‘반미 2.0’-트럼프 때리기
글로벌 200여 국가 가운데 상당수 한국인이 무시하는 나라가 둘 있다. 바로 미국과 일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눈 아래로 내려보면서 뭔가를 가르치고 조롱하려 든다. 먼저 미국을 대하는 자세를 보자.
20세기식 ‘반미(反美) 1.0’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21세기식 ‘반미 2.0’이 등장했다. 사사건건 미국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반미 1.0’이라면, 미국 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각론적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이 ‘반미 2.0’이다.
박사도 미국에서 따왔고, 자식도 미국에 보내는 판인데 ‘반미 1.0’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들도 어색할 것이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반감이다.
여기서 최적의 표적이 되는 인물은 트럼프다. 반미는 아니지만, 반(反)트럼프를 통해 미국 전체를 무시한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만 다를 뿐 결론은 반미다.
반트럼프 정서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 내 리버럴 좌(左) 성향 신문들이 반트럼프 정서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서울의 트럼프 깔보기는 도를 더해간다. 미국 리버럴 미디어의 과장 보도 때문이겠지만, 한국에서 보면 트럼프는 당장에라도 감옥에 들어가야 할 인물로 묘사된다. 흑인과 마이너리티에 둘러싸인 뉴욕 법정 내 트럼프의 모습이 보통 미국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한 이해나 고려는 아예 없다.
《월간조선》 지면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지만, 트럼프는 일회적 현상이 아니다. 시대정신으로 굳어지면서, 앞으로 다른 지도자들을 통해 ‘트럼프 2.0’ ‘트럼프 4.0’으로 계속 진화될 것이다.
4월 30일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추방했다. 의회에서 ‘불법 이민자 르완다 이송법’을 통과시킨 즉시, 불법 이민자 추방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불법 이민자 상당수가 르완다로 보내질 것이다. 이탈리아도 알바니아에 난민수용소를 만들 예정이다. 스웨덴 같은 ‘인권천국’ 나라도 불법 이민자 방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의 우향우(右向右) 분위기는 시대정신으로서의 ‘트럼프주의(Trumpism)’라고 볼 수 있다. 6월 6일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한층 더 분명해지겠지만, 트럼프주의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시대정신’으로 정착되고 있다.
한국의 반트럼프 정서는 유럽과 세계에서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정신에 반한다. 물론 시대정신을 수용할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문제는 한국 미디어가 시대정신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데 있다.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면서 무시하려 든다. 이게 바로 쇄국 마인드다.
글로벌 블루칩 일본
한국 미디어에서 표류하는 ‘반일 정서’는 ‘반미 정서’보다 훨씬 심각하다. 일단 일본 관련 뉴스를 보면 예외 없이 어둡다. 가끔 엔터테인먼트 관련 뉴스가 뜨기도 하지만, 대세는 ‘일본 침몰’이다.
가까운 시일 내 한 달 동안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100만 명이 될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한국 미디어 보도대로라면, 방일 관광객은 추락하고 망해가는 나라를 보러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반일 2.0’에 기초해, 엔저와 일본 경제 전체를 ‘걱정’하는 한국 미디어 보도가 많다. 엔저로 인해 라멘 한 그릇 값이 미국의 30% 수준이라면서, 싸구려 나라로 전락한다는 식의 보도가 도배를 하고 있다.
그리스 예언자 티레시아스가 본다면, 한국인들에게 미래를 예언하기에 앞서 현재 상황에 대한 공부부터 제대로 하라고 충고할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4년 일본 경제는 한국 미디어가 걱정(?)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반대로 전 세계 투자가들을 끌어모으고 첨단 산업도 유치하는 글로벌 블루칩으로 대변신 중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엔저에 관한 한국의 피상적인 판단이 지금의 상황을 ‘일본 침몰’로 오판하게 만드는 배경 중 하나인 듯하다.
한국에서 보는 일본은 ‘메이드 인 재팬’으로 상징되는 20세기 당시 세계관에 묶여 있다. 일제 전자제품을 시작으로, 자동차와 첨단 제품을 세계에 팔던 무역 대국 일본의 모습이다.
무역 대국에서 금융 대국으로
21세기 들어 일본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제 일본은 무역 대국이 아니라, 금융 대국이다. 자동차와 첨단 산업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전자제품과 단순 소비재 일제 상품들은 꼬리를 감추었다. 한국과 중국이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출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무역흑자는 급속히 줄어든다.
2023년 일본 무역 통계를 보자. 대략 수출 102조 엔, 수입 108조 엔으로 무역적자가 6조 엔 발생했다. 달러로 환산하면 400억 달러 정도다(1달러 150엔).
일본의 무역적자는 2021년 이래 3년간 계속되어 왔다.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이 근본적인 이유다. 엔저로 인해 에너지 비용 부담이 급상승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일본은 더 이상 수출을 통한 무역흑자 대국이 아니다. 수출을 할 만한 상품의 공장 중 상당수가 주변국으로 흩어지면서 무역흑자가 한계에 달했고, 그 결과 만성 무역적자국이 되었다.
그 결과가 해외 투자다. 일본은 무역이 아니라, 채권(債券)이나 직접 투자를 통한 수익 확보에 나선 지 오래다. 현재 무려 3조 달러가 전 세계 곳곳에 뿌려져 있다.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는 비판과 매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버블 경제 당시 외국에 뿌려둔 일본 자본이 3조 달러로 성장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인의 특징이자 습관이지만, 좋은 얘기는 멀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만 복창한다. 한국인 모두가 ‘일본 경제=잃어버린 30년’으로 못 박는다. 그러나 해외에 뿌려진 3조 달러의 실체를 안다면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은 버블 최절정기에 맞춰진 비교일 뿐이다. 1987년 버블 최절정기에 비해 한참 뒤처진 30년이란 의미다. 최정상 버블 이전의 일본에 비하면, 결코 잃어버린 30년이 아니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외에 뿌려둔 3조 달러가 벌어들이는 1년간 이자와 수익금은 무려 3000억 달러에 달한다. 1억 일본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1인당 매년 3000달러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일본이 엔저를 감내하는 이유
한국 미디어 대부분은 세계 1위 금융 대국 일본이 가진 저력을 모르거나,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 미디어가 ‘일본 침몰’의 근거로 활용하는 엔저는 1년에 3000억 달러에 달하는 소득수지 흑자의 하부 변수(變數)에 불과하다. 일본 엔화의 국제적 지위가 굳건한 것도 달러를 통해 1년간 벌어들이는 이자가 3000억 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엔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엔이 낮은 것이 아니라 달러가 초강세라는 것이 답이다. 5월 1일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은행 이자율을 계속 높이고 있다.
같은 기간 일본은행의 금리는 마이너스 0.1% 정도다. 미국과 무려 5% 이상 금리 차이가 존재한다. 중앙은행이 아닌, 시중은행 이자율로 갈 경우 미일 두 나라의 실질금리 차는 10% 이상 벌어질 수 있다. 엔저는 이 같은 두 나라 금리 차이의 결과물이다.
달러로 바꿔 미국은행에 예치할 경우 매년 10% 이자가 보장되지만, 일본은 절반 이하다. 달러가 오르고 엔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엔저도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다. 금리가 낮을수록 물가도 안정되고, 국가경쟁력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싸구려 일본’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이 엔저를 용인하고 있는 것은 엔저를 통한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서이다. 엔고가 될 경우 일제 물건 구입도 어려워진다.
덕분에 한국인 모두 도쿄에 내리는 순간 부자로 돌변한다. 일본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일본 상품은 작은 물건 하나라도 품질·디자인·내구성 전부 대만족이다. 필자가 보기에 질적으로 비슷한 한국 상품의 경우 일제보다 적어도 두 배 정도 비싸다. 100엔숍 물건만 봐도, 한국 1000원숍 제품을 압도한다. 사실 한국 1000원숍은 이름만 1000원일 뿐, 정작 마음에 드는 상품은 3000원, 5000원대에 팔린다.
중국 최저가 상품들이 플랫폼 테무와 알리를 통해 한국에 직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제 상품의 직수입 열기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품질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일본 100엔숍 상품은 다르다. 만약 한국 직판이 이뤄진다면, 중국제도 누르고 한국 경공업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미 일제 자동차 판매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엔저는 ‘일본 침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엔저는 일본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고용 외국인’이 사라진 후…
1905년 5월, 러시아 발틱 함대를 무너뜨린 일본은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글로벌 열강(列强)의 하나가 되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 곳곳의 대학들은 서양인 교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럽의 강국 러시아를 이겼으니, 더 이상 서방의 가르침에 연연하고 따를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서방 전문가들을 일본 전역에 초청해 선진문명·문화 습득에 나섰다. 이른바 ‘고용 외국인(お雇い外國人)’으로, 정부 각 분야는 물론 학계와 산업계 전반에 걸쳐 수천 명이 활동했다. 영국·미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에서 온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당시 월급이 일본인 장관보다도 더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를 꺾은 20세기 초 이후 고용 외국인은 급격히 줄어든다. ‘고용 외국인’들로부터 충분히 배웠고, 일본인만으로도 한층 더 신속·정확하게 해낼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일본 전체가 외국인이 사라진 순혈(純血) 무대로 변한다.
일본 역사가 대부분은 발틱 함대 격파가 거꾸로 일본을 파멸로 이끈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대국 러시아를 물리친 뒤, 승리감에 도취해 대규모 군비(軍備) 확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력에 비해 너무도 과도한 무력(武力) 팽창이지만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일본이 세계에서, 역사 무대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위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알려줄 큰 그림, 대국적(大局的)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늘날 일본 역사가들은 ‘고용 외국인’들이 일본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이후의 일본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끼리, 국뽕을 외치며 돌격하는 당시 군부의 쇄국 마인드를 깰 최대의 무기가 바로 제3자 외국인의 눈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한국 언론들은 트럼프를 정신 나간 정치가로 몰아가면서 ‘트럼프 당선 시 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한 워싱턴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멀리는 애치슨 라인,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나 가자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선 하나를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전쟁 여부가 결정된다. ‘트럼프 당선 시 미군 철수 가능성’이 걱정된다면, 만약 트럼프가 그런 정책을 실시할 경우 한국은 어떤 식의 대응에 나서야 할지에 관한 논의부터 시작돼야만 한다.
그 대신에 잘못된 자기만족형 정보가 폭증한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하려 해도 의회가 법으로 막는 한 미군 철수는 없다’는 소식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오보(誤報)다. 미국에서는 국가안보에 관한 한, 대통령 명령으로 강행할 경우 의회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일단 대통령령으로 단행하고, 나중에 의회에서 법을 바꾸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반트럼프’ 목소리만 높일 뿐, ‘트럼프 집권 이후’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쇄국 마인드의 특징 중 하나다. 그러면 마음이 편하다. 우물 안에서 본 좁은 하늘은 평화롭고도 조용하다. 그러나 우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총칼이 난무하는 살벌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2024년 한국의 터전은 우물이 아닌 5대양 6대주 전 세계다.⊙
고대(古代) 그리스 드라마의 정수(精髓),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예언자 티레시아스의 말이다.
오이디푸스의 왕국 테베는 대기근과 역병(疫病)에 휩싸인다. 사람들이 죽어가자 왕이 직접 원인 규명에 나선다. 오이디푸스 직전의 왕을 살해한 자를 찾아내지 않는 한, 대재앙이 이어질 것이란 신탁(神託)을 듣게 된다.
티레시아스는 전임 테베 왕을 죽인 인물이, 아들인 오이디푸스 본인이란 말을 직접 전하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알리면서, 본인 스스로가 답을 찾도록 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티레시아스를 조롱한다. “거짓말만 하는 엉터리 예언자”라는 것이다. 티레시아스는 긴 한숨과 함께 진실을 밝힌다.
“테베의 왕 라이우스를 죽인 인물은 바로 당신, 오이디푸스다.”
그리스 신화(神話)에 관심이 있다면 티레시아스라는 인물을 곳곳에서 만났을 것이다. 원래 예언은 신(神)의 영역이다. 티레시아스는 신도 아니고 신의 도움도 필요치 않은, 인간 예언자다. 따라서 신의 관점이 아니라,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본 예언을 한다. 일방 통보가 아닌 상호 소통,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서의 예언이다.
흥미로운 것은 티레시아스의 외모다. 장님에다 항상 어린이와 함께 노숙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일리아드》의 작가 호메로스가 그러하듯, 눈이 멀었다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에 무관심하다는 의미다. 본인 스스로도 돈, 명예, 권력에 무관심하지만, 세속적 가치로 짓누르려는 사람들에 대한 면역력도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의미다.
‘싸구려 일본’?
‘전 세계인 몰려드는데 울상. 싸구려, 박탈감 빠진 일본.’
댓글이 재미있다는 소감과 함께 지인이 보내온 추천 비디오 제목이다.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이 내보낸 저녁 종합뉴스인데, 시청자 댓글이 무려 2700개에 달한다. 내용은 ‘엔저의 일본, 4월 한 달 308만 방일 관광객’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일본에 외국인이 넘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매력보다, 엔저에 있다는 식의 보도다. 더불어,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엔저로 인한 불안과 우울이 열도 전역에 떠돌고 있다는 투의 비관적 설명도 뒤따른다. 호주에서는 86달러인 모바일 충전기가 일본에서는 16달러에 팔린다면서, 엔저 출혈 비즈니스가 관광대국 일본의 실상이라고 전한다. 이 뉴스를 보면,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표류한다.
첫째, 보도를 한 방송국의 ‘반일(反日) 2.0’에 관한 부분이다.
20세기의 주류였던 식민 통치, 역사 문제, 정치가의 망언을 기반으로 한 반일 정서가 ‘반일 1.0’이다. ‘반일 2.0’은 과거사가 아니라, 문화, 경제, 엔저를 통한 혐일 나아가 일본 깔보기다. 필자가 본 앞의 뉴스도 이 중 하나다. 뉴스의 핵심은 ‘엔저로 인해 일본 열도 전체가 쪼그라들면서 망해간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아무리 밀려와도 엔저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엔저=망국’으로 결론 지으면서, 하루 10만 명이나 몰려드는 이웃 나라의 관광 호황을 깡그리 무시하려는 ‘기묘한 심리’가 뉴스 이면에 드리워져 있다.
싸고 편하고 볼 게 많은 나라가 관광 영(0)순위 방문지다. 이웃 나라의 통화 하락을 걱정하면서, ‘방일 관광객=엔저 일본의 점령군’으로 만드는, 뒤틀리고도 무지한 반일 2.0 보도에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왜 저렇게 싸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엔저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견딜 수 있는지, 외국인이 몰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도 원이 떨어졌는데도 왜 관광객이 늘지 않는지…’ 댓글 곳곳에서도 지적됐지만, 상식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제기할 얘기다. 그러나 ‘반일 2.0’ 정서로 접근하면 이 같은 상식들이 통하지 않는다.
안 먹히는 ‘반일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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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로 인해 도쿄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다. 사진=배진영 |
‘엔저 아니라도 평소 일본에는 관광객이 많다. 한국도 제발 관광 개발 좀 하자. 백날 아파트랑 지식산업센터만 짓지 말고.’
‘일본은 외화라도 벌지. 한국은 답 없다.’
댓글을 보면, 일본을 무조건 무시하고 비판하고 조롱하는 보도가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댓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방일 한국인에게는 ‘반일 1.0’은 물론 ‘반일 2.0’의 약발이 더 이상 안 통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티레시아스가 서울에 온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듯하다.
“쇄국(鎖國) 마인드에서 벗어나라.”
그러면서 티레시아스는 쇄국 마인드로 인해 미래 한국에 밀려들 대재앙들을 열거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밖을 보라고 목소리를 높일지 모르겠다. 쇄국과 쇄국 마인드는 2024년 필자가 느끼는 한국의 일상 풍경이다.
5G 초고속 인터넷 보급망과 최첨단 모바일로 무장한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은 누구나 국경 밖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일본에 다녀온 한국인이 전체 인구의 15%인 700만 명 정도다. 그런데도 TV 방송이 앞장서서 ‘엔저로 일본 폭망’ 식으로 보도하는 게 한국이다.
국제 문제에 관심 없는 한국 언론
지난 3월부터 한 달 정도 서울에 머물렀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세계를 대하는 한국인의 평균 정서가 한참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인도의 급부상에 대한 감각이 엄청나게 둔하다. ‘인도 급상승=중국 폭망=일본 부활’이란 팬데믹 이후의 글로벌 구도조차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잘나가던 중국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한국 사회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는 아예 없다. ‘과연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원론(原論) 수준의 미국 정세론이 대세다.
일단 국제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가 희박하다. 개인만이 아니라, 신문·방송 등 미디어 자체가 쇄국 마인드의 결정판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국제 관련 뉴스가 경시되고 있다. 있다 해도 해외 토픽 단발성에 그친다.
전 세계의 기본틀이 무너지면서 요동을 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한국 미디어는 국내 정치 뉴스에 올인한다. 하루만 지나도 무의미해질 글과 영상들을 매일같이 내보낸다. 지구 전체와 미래에 기초한, 큰 그림이 없다. 한국에서 신문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등장하는 정치가들의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돈이 따르기 때문이겠지만, 요즘은 정치가만이 아니라 주변에 기생(寄生)하는 사람들도 넘친다. 그들의 이름까지 외우려면 머리에 컴퓨터 칩을 하나 달아야 할 것이다.
K-컬처는 한국식 쇄국 마인드를 부추기는 또 다른 호재(好材)다. 한국의 신문·방송을 보면, 전 세계가 한국 노래와 춤에 빠진 듯하다. 축구·야구 등 스포츠 뉴스를 봐도, 전 세계가 한국만 쳐다보는 듯하다.
쇄국은 국뽕으로 통한다
필자는 지난 1년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3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춤·노래·영화 같은 K-컬처의 영향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신앙처럼 정착된 ‘K-컬처 세계 제압’은 아니다. K-컬처의 진짜 모습은, 5000만 인구를 가진 세계 무역 10위권 나라 수준에 맞고, 서방에서 아시아에 나눠 주는 ‘다양성(diversity) 마이너리티(minority)’에 맞춰진 글로벌 트렌드의 하나라는 것이다.
‘다양성 마이너리티’를 중시하기 때문이겠지만, 최근 서방의 관심은 한국을 넘어서 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인도로 넘어가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세기에 이런 관심을 받았었다. 다만 공산당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은 ‘다양성 마이너리티’에 기초한 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쇄국 마인드의 증거는 뭐를 봐도 국가적 국민적 자랑, 즉 국뽕으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기아(飢餓)로 숨이 넘어가면서도 지상낙원이라 자랑하는 국뽕 대국이 바로 북한이다.
원래 중국 한자문화권에서는 ‘쇄국’이란 단어가 없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기 때문에 ‘쇄국’이란 한자어 자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4세기 명(明)나라 해금령(海禁令)에서 보듯, 문을 닫고 살아가는 생활방식은 한족(漢族) 중국의 기본 유전자(遺傳子)이자 국시(國是)였다.
쇄국이란 한자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01년 일본에서다. 통역관으로 일하던 일본인이 네덜란드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당시 일본의 현황을 표현하면서 ‘쇄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관점에서 막부 정권이 기독교를 금지하고 외국과의 통상(通商)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쇄국’이란 단어 하나로 압축한 것이다. 해상 무역 대국인 네덜란드로서는, 아예 문을 닫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조선의 흥선대원군 한 사람만 나라의 문을 닫아걸었던 것이 아니다. 외부가 만든 두꺼운 벽 이전에, 마음속에 만든 자생적(自生的) 창살이 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다.
한국 언론, 일본 우승 외면
5월 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대회에서 일본이 우즈베키스탄을 1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그보다 일주일 전인 4월 25일, 한국은 AFC 8강 문턱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했다. 8강 탈락은 40년 만의 올림픽 출전 실패로 이어졌다. 일본은 일찌감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데 이어, 우승까지 차지했다. AFC 축구 소식과 관련해 두 가지 ‘황당한’ 사안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 한국 미디어 가운데, 일본 우승 관련 뉴스를 다룬 곳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 축구 뉴스까지 챙겨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다뤄야만 한다. ‘한국은 졌는데 일본은 왜 이겼는가’라는 부분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에 잘할 수 있다.
한국 미디어는 AFC 8강 탈락을 ‘한국 축구 대참사’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엄청난 수식어를 동원한 말만 앞세울 뿐, 행동이나 대안(代案)이 없다. 학교 공부가 그러하듯, 시험 점수가 나쁠 경우 우등생의 공부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비교하면서 자신의 단점을 고쳐나갈 수 있다. 한국 축구를 아낀다면, 우승국 일본과 관련된 뉴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심 제로다. AFC 우승국이 일본이란 사실조차도 금시초문 뉴스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둘째, 올림픽 참가 실패와 관련된 한국 내 원인 분석이다. 상황 오판(誤判), 나아가 왜곡은 쇄국과 쇄국 마인드의 결정적 단점이다. 쇄국과 쇄국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정확한 판단이나 효과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문을 열어 남과 비교하면서 객관적으로 살펴볼 경우 자신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졌는가’를 둘러싼 한국 내 처방법을 보면 너무도 황당하다. 축구든 그 어떤 운동이든 패배할 경우의 최우선 책임자는 운동선수 그 자체다. 감독이나 축구협회장도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핵심은 현장에서 뛰는 운동선수다.
쇄국의 종점은 ‘우리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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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는 졸전 속 AFC 아시안컵 4강 탈락 후에도 감독과 회장 탓만 했다. 사진=뉴시스 |
독일 출신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끝난,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 탈락 당시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자. 선수들끼리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이후 요르단전 패배 불똥이 감독에게로 옮아갔다. 결론은 축구협회장 비난과 감독 사임이었다.
필자는 축구협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감독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 의문인 것은 ‘왜 축구선수보다, 선수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먼저 언급되는가’라는 점이다. 축구협회장 문제가 일더니, 선수들끼리 싸우는데도 한마디 말도 안 했다는 감독에 대한 비난이 시작됐다. 왜 선수들이 그토록 엉망이었는지, 축구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결국 애꿎은 감독만 책임을 전부 뒤집어쓰고, 최소한의 변명 기회도 없이 조롱과 일방적인 비난 속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쇄국과 쇄국 마인드의 종점은 ‘우리끼리’다. 한국 미디어는 이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고 증폭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 클린스만은 웃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비난을 받았다.
‘반미 2.0’-트럼프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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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에게 환호하는 미국인들. ‘트럼프주의’는 이제 ‘시대정신’이 되었다. 사진=AP/연합뉴스 |
20세기식 ‘반미(反美) 1.0’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21세기식 ‘반미 2.0’이 등장했다. 사사건건 미국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반미 1.0’이라면, 미국 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각론적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이 ‘반미 2.0’이다.
박사도 미국에서 따왔고, 자식도 미국에 보내는 판인데 ‘반미 1.0’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들도 어색할 것이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반감이다.
여기서 최적의 표적이 되는 인물은 트럼프다. 반미는 아니지만, 반(反)트럼프를 통해 미국 전체를 무시한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만 다를 뿐 결론은 반미다.
반트럼프 정서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 내 리버럴 좌(左) 성향 신문들이 반트럼프 정서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서울의 트럼프 깔보기는 도를 더해간다. 미국 리버럴 미디어의 과장 보도 때문이겠지만, 한국에서 보면 트럼프는 당장에라도 감옥에 들어가야 할 인물로 묘사된다. 흑인과 마이너리티에 둘러싸인 뉴욕 법정 내 트럼프의 모습이 보통 미국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한 이해나 고려는 아예 없다.
《월간조선》 지면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지만, 트럼프는 일회적 현상이 아니다. 시대정신으로 굳어지면서, 앞으로 다른 지도자들을 통해 ‘트럼프 2.0’ ‘트럼프 4.0’으로 계속 진화될 것이다.
4월 30일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추방했다. 의회에서 ‘불법 이민자 르완다 이송법’을 통과시킨 즉시, 불법 이민자 추방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불법 이민자 상당수가 르완다로 보내질 것이다. 이탈리아도 알바니아에 난민수용소를 만들 예정이다. 스웨덴 같은 ‘인권천국’ 나라도 불법 이민자 방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의 우향우(右向右) 분위기는 시대정신으로서의 ‘트럼프주의(Trumpism)’라고 볼 수 있다. 6월 6일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한층 더 분명해지겠지만, 트럼프주의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시대정신’으로 정착되고 있다.
한국의 반트럼프 정서는 유럽과 세계에서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정신에 반한다. 물론 시대정신을 수용할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문제는 한국 미디어가 시대정신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데 있다.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면서 무시하려 든다. 이게 바로 쇄국 마인드다.
글로벌 블루칩 일본
한국 미디어에서 표류하는 ‘반일 정서’는 ‘반미 정서’보다 훨씬 심각하다. 일단 일본 관련 뉴스를 보면 예외 없이 어둡다. 가끔 엔터테인먼트 관련 뉴스가 뜨기도 하지만, 대세는 ‘일본 침몰’이다.
가까운 시일 내 한 달 동안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100만 명이 될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한국 미디어 보도대로라면, 방일 관광객은 추락하고 망해가는 나라를 보러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반일 2.0’에 기초해, 엔저와 일본 경제 전체를 ‘걱정’하는 한국 미디어 보도가 많다. 엔저로 인해 라멘 한 그릇 값이 미국의 30% 수준이라면서, 싸구려 나라로 전락한다는 식의 보도가 도배를 하고 있다.
그리스 예언자 티레시아스가 본다면, 한국인들에게 미래를 예언하기에 앞서 현재 상황에 대한 공부부터 제대로 하라고 충고할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4년 일본 경제는 한국 미디어가 걱정(?)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반대로 전 세계 투자가들을 끌어모으고 첨단 산업도 유치하는 글로벌 블루칩으로 대변신 중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엔저에 관한 한국의 피상적인 판단이 지금의 상황을 ‘일본 침몰’로 오판하게 만드는 배경 중 하나인 듯하다.
한국에서 보는 일본은 ‘메이드 인 재팬’으로 상징되는 20세기 당시 세계관에 묶여 있다. 일제 전자제품을 시작으로, 자동차와 첨단 제품을 세계에 팔던 무역 대국 일본의 모습이다.
무역 대국에서 금융 대국으로
21세기 들어 일본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제 일본은 무역 대국이 아니라, 금융 대국이다. 자동차와 첨단 산업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전자제품과 단순 소비재 일제 상품들은 꼬리를 감추었다. 한국과 중국이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출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무역흑자는 급속히 줄어든다.
2023년 일본 무역 통계를 보자. 대략 수출 102조 엔, 수입 108조 엔으로 무역적자가 6조 엔 발생했다. 달러로 환산하면 400억 달러 정도다(1달러 150엔).
일본의 무역적자는 2021년 이래 3년간 계속되어 왔다.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이 근본적인 이유다. 엔저로 인해 에너지 비용 부담이 급상승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일본은 더 이상 수출을 통한 무역흑자 대국이 아니다. 수출을 할 만한 상품의 공장 중 상당수가 주변국으로 흩어지면서 무역흑자가 한계에 달했고, 그 결과 만성 무역적자국이 되었다.
그 결과가 해외 투자다. 일본은 무역이 아니라, 채권(債券)이나 직접 투자를 통한 수익 확보에 나선 지 오래다. 현재 무려 3조 달러가 전 세계 곳곳에 뿌려져 있다.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는 비판과 매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버블 경제 당시 외국에 뿌려둔 일본 자본이 3조 달러로 성장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인의 특징이자 습관이지만, 좋은 얘기는 멀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만 복창한다. 한국인 모두가 ‘일본 경제=잃어버린 30년’으로 못 박는다. 그러나 해외에 뿌려진 3조 달러의 실체를 안다면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은 버블 최절정기에 맞춰진 비교일 뿐이다. 1987년 버블 최절정기에 비해 한참 뒤처진 30년이란 의미다. 최정상 버블 이전의 일본에 비하면, 결코 잃어버린 30년이 아니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외에 뿌려둔 3조 달러가 벌어들이는 1년간 이자와 수익금은 무려 3000억 달러에 달한다. 1억 일본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1인당 매년 3000달러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일본이 엔저를 감내하는 이유
한국 미디어 대부분은 세계 1위 금융 대국 일본이 가진 저력을 모르거나,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 미디어가 ‘일본 침몰’의 근거로 활용하는 엔저는 1년에 3000억 달러에 달하는 소득수지 흑자의 하부 변수(變數)에 불과하다. 일본 엔화의 국제적 지위가 굳건한 것도 달러를 통해 1년간 벌어들이는 이자가 3000억 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엔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엔이 낮은 것이 아니라 달러가 초강세라는 것이 답이다. 5월 1일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은행 이자율을 계속 높이고 있다.
같은 기간 일본은행의 금리는 마이너스 0.1% 정도다. 미국과 무려 5% 이상 금리 차이가 존재한다. 중앙은행이 아닌, 시중은행 이자율로 갈 경우 미일 두 나라의 실질금리 차는 10% 이상 벌어질 수 있다. 엔저는 이 같은 두 나라 금리 차이의 결과물이다.
달러로 바꿔 미국은행에 예치할 경우 매년 10% 이자가 보장되지만, 일본은 절반 이하다. 달러가 오르고 엔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엔저도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다. 금리가 낮을수록 물가도 안정되고, 국가경쟁력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싸구려 일본’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이 엔저를 용인하고 있는 것은 엔저를 통한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서이다. 엔고가 될 경우 일제 물건 구입도 어려워진다.
덕분에 한국인 모두 도쿄에 내리는 순간 부자로 돌변한다. 일본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일본 상품은 작은 물건 하나라도 품질·디자인·내구성 전부 대만족이다. 필자가 보기에 질적으로 비슷한 한국 상품의 경우 일제보다 적어도 두 배 정도 비싸다. 100엔숍 물건만 봐도, 한국 1000원숍 제품을 압도한다. 사실 한국 1000원숍은 이름만 1000원일 뿐, 정작 마음에 드는 상품은 3000원, 5000원대에 팔린다.
중국 최저가 상품들이 플랫폼 테무와 알리를 통해 한국에 직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제 상품의 직수입 열기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품질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일본 100엔숍 상품은 다르다. 만약 한국 직판이 이뤄진다면, 중국제도 누르고 한국 경공업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미 일제 자동차 판매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엔저는 ‘일본 침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엔저는 일본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고용 외국인’이 사라진 후…
1905년 5월, 러시아 발틱 함대를 무너뜨린 일본은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글로벌 열강(列强)의 하나가 되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 곳곳의 대학들은 서양인 교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럽의 강국 러시아를 이겼으니, 더 이상 서방의 가르침에 연연하고 따를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서방 전문가들을 일본 전역에 초청해 선진문명·문화 습득에 나섰다. 이른바 ‘고용 외국인(お雇い外國人)’으로, 정부 각 분야는 물론 학계와 산업계 전반에 걸쳐 수천 명이 활동했다. 영국·미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에서 온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당시 월급이 일본인 장관보다도 더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를 꺾은 20세기 초 이후 고용 외국인은 급격히 줄어든다. ‘고용 외국인’들로부터 충분히 배웠고, 일본인만으로도 한층 더 신속·정확하게 해낼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일본 전체가 외국인이 사라진 순혈(純血) 무대로 변한다.
일본 역사가 대부분은 발틱 함대 격파가 거꾸로 일본을 파멸로 이끈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대국 러시아를 물리친 뒤, 승리감에 도취해 대규모 군비(軍備) 확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력에 비해 너무도 과도한 무력(武力) 팽창이지만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일본이 세계에서, 역사 무대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위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알려줄 큰 그림, 대국적(大局的)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늘날 일본 역사가들은 ‘고용 외국인’들이 일본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이후의 일본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끼리, 국뽕을 외치며 돌격하는 당시 군부의 쇄국 마인드를 깰 최대의 무기가 바로 제3자 외국인의 눈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한국 언론들은 트럼프를 정신 나간 정치가로 몰아가면서 ‘트럼프 당선 시 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한 워싱턴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멀리는 애치슨 라인,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나 가자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선 하나를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전쟁 여부가 결정된다. ‘트럼프 당선 시 미군 철수 가능성’이 걱정된다면, 만약 트럼프가 그런 정책을 실시할 경우 한국은 어떤 식의 대응에 나서야 할지에 관한 논의부터 시작돼야만 한다.
그 대신에 잘못된 자기만족형 정보가 폭증한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하려 해도 의회가 법으로 막는 한 미군 철수는 없다’는 소식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오보(誤報)다. 미국에서는 국가안보에 관한 한, 대통령 명령으로 강행할 경우 의회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일단 대통령령으로 단행하고, 나중에 의회에서 법을 바꾸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반트럼프’ 목소리만 높일 뿐, ‘트럼프 집권 이후’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쇄국 마인드의 특징 중 하나다. 그러면 마음이 편하다. 우물 안에서 본 좁은 하늘은 평화롭고도 조용하다. 그러나 우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총칼이 난무하는 살벌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2024년 한국의 터전은 우물이 아닌 5대양 6대주 전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