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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크라이나 전문가 나길주 대표가 말하는 우크라이나인, 전쟁, 재건 사업

“우크라이나인들, 한반도 같은 휴전 절대 피해야 한다고 생각”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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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 영토 양보하면 다음 세대 굶어 죽어”
⊙ “풍부한 천연자원·低임금,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 제대로 된 정보로 접근해야”
⊙ 4110억 달러(약 545조원) 규모 추산 재건 사업… 韓 기업 비중은 미미
⊙ “MOU 무의미… 당장 무전기·식수·목발 등 필요한 지원에서 시작해야 사업으로도 이어져”
⊙ “‘수의용 백신·가발·보험’ 블루오션… 중고품 시장도 유망”
⊙ “슬픔 억누르는 법 아는 우크라이나인… 비탄할 여유 없는 戰士 같아”
⊙ “전쟁, 독재자 결정으로 쉽게 발발할 수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철저한 전쟁 대비뿐”

나길주
1961년생. 프랑스국립엔지니어 학교(EICnam) 정보통신학과, 파리국립고등예술학교(ENSAPC) 학사·석사 졸업 / 前 삼성그룹 영국법인 근무, 다산네트웍스 유럽총괄 대표, 알제리 콘도르·다산 합작회사 CFO, 現 우크라이나 25시 대표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가는 열차에서. 사진=나길주
  전장(戰場)에는 파괴와 건설이 공존한다. 전쟁 발발 약 2년. 한쪽이 무너지는 동안 우크라이나의 다른 한쪽은 빠르게 일상을 되쌓고 있다. 이런 현장을 매달 오가는 이가 있다. 나길주 전(前) 다산네트웍스 유럽총괄 대표다. 한국계 프랑스인인 그는 한 달 중 보름은 프랑스에서, 나머지 보름은 우크라이나에서 보낸다. 재건(再建) 사업을 위해서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국에서 명문대 공대를 조기 졸업 후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프랑스국립엔지니어학교(EICnam)와 파리국립고등예술학교(ENSAPC)를 졸업했다. 공학과 예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둘 다 배운 거다. 프랑스 국적은 결혼과 함께 얻었다. 처가(妻家)에 핵여단 사령관이 있어 국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삼성그룹 영국법인에서 근무하다, 다산네트웍스로 자리를 옮겨 2023년 말까지 근무했다. 2018년부터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2019년에는 우크라이나 영주권도 취득했다. 그는 “2018년 6월 북아프리카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진행하며, 알제리에서 사용할 저렴한 철강 구매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처음 찾았다”면서 “사업적으로 가능성이 많은 나라란 걸 알았고, 이후부터 시간 날 때마다 방문하며 시장조사를 했다”고 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제2의 젤렌스키’라 불리는 고려인 후손 비탈리 올렉산드로비치 킴(Vitaliy Oleksandrovich Kim) 미콜라이우 주지사와 직접 전쟁터를 둘러보고 필요한 인프라를 살폈다.
 
  현재는 우크라이나 에너지사업부(SAEE)에서 운영 중인 플랫폼 ‘UANDP’에 우리 기업을 참여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너지사업부는 우리로 치면 국토교통부다. 우크라이나 정보 포털인 ‘우크라이나 25시’도 운영 중이다. 코트라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통신·전력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 설립도 구상 중이다. 전쟁 후 우크라이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일지 모르는 나 대표는 “우크라이나는 기회의 땅이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전무(全無)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2023년 12월 7일 화상으로 진행했다.
 
 
  “한국에 군인 더 많이 보여”
 
미국의 패트리엇 방공망 지원 전 드론에 폭격당한 삼성 건물. 키이우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지역으로, 중앙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사진=나길주
  ― 오는 2월이면 전쟁 발발 2년이 됩니다. 현장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교통·산업 요충지를 중심으로 국지전(局地戰)이 벌어지고 있어 기타 지역에서는 미사일·드론 공습을 제외하곤 전쟁을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전선(最前線) 외에는 군(軍) 차량과 군인도 보이지 않아요. 수도 키이우의 경우 테러 위험이 있는 프랑스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오히려 얼마 전 한국 출장 때 깜짝 놀랐습니다. 인천공항 근처에서 중화기(重火器)를 동원한 해병대 상륙작전 훈련을 하더군요. 용산역에서 본 휴가 나온 장병들 수에 또 놀랐고요. 한국은 전 국토가 모두 주둔지 같았습니다. 총격전과 폭격만 없을 뿐, 우크라이나보다 더 큰 전쟁 중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걱정도 됐고요.”
 
  ― 어떤 걱정입니까.
 
  “아무리 전 국토가 요새화되고 최강 무기가 있더라도 국민들의 의식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보면, 반공(反共)과 투쟁의식이 국가를 지켜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군대만으로는 국토를 지킬 수 없어요. 한국이 공산 독재국가와의 수교 이래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을 얻었지만, 모르는 사이 그들 사상에 물든 이들도 많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키이우 상황이 비교적 평화롭게 바뀐 건 2022년 말, 미국의 패트리엇(미사일 방어 시스템) 방공망과 발칸포 지원 이래부터라고 한다.
 
  “물론 지금도 키이우 시내 중심으로 매일 밤 30대 정도의 드론과 30발 이상의 거대 순항미사일이 날아오지만 모두 격추해버립니다. 시민들도 예전처럼 지하철 방공호를 이용하지 않아요. 한편 하르키우 등 최전선 접경 도시는 사정이 다르죠. 러시아 미사일과 로켓 발사 지점에서 너무 가까워 공습경보가 울려도 대피할 시간이 없습니다.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미사일 요격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연일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고통을 억누르는 우크라이나인
 
2023년 11월 어느 날 새벽 6시의 키이우 역 광장. 시민들은 묵묵히 아침을 맞이하고, 제 갈 길을 간다. 저 멀리 폭격당한 삼성 건물이 보인다. 사진=나길주
  ― 전쟁을 대하는 우크라이나인은 어떤 모습입니까.
 
  “극도의 슬픔을 억누르는 방법을 아는 듯합니다. 패트리엇 지원 전, 키이우 중심가에 엄청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아 완파됐습니다. 레스토랑 주인은 그저 천천히 잔해를 치울 뿐이었습니다. 과거 노력과 추억을 다시 짜 맞추듯이요. 이들은 통곡하는 법이 없습니다. 비탄에 빠질 여유 없는 전사(戰士)들의 담담함 같습니다. 무너진 집터도 덤덤히 바라볼 뿐입니다. 털썩, 주저앉았다가 이내 흙먼지를 털고 일어납니다. 앞으로 세 걸음 가서 하늘을 보다, 다시 두 걸음 내딛고 잠시 땅을 보며 나아갑니다. 잠시 방향을 잃은 모습. 그게 우크라이나 사람이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보이는 모습입니다. 비록 현세대가 전장에서 사라지더라도, 후세대에겐 평화와 번영을 넘겨주려 전쟁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반도 같은 휴전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우크라이나 대부분 국민의 노력을 높이 삽니다.”
 
  ― 개전 후에도 매달 우크라이나를 오가고 있는데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남부 지역 출장 가는 길, 노바 카흐부카 댐이 폭파돼 엔진에 불날 정도로 차를 죽어라 몰며 강 주변 지역을 빠져나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호텔에서 밤하늘을 보고 있다 보면, 가끔 ‘쿵’하는 충격음이 들려오고, 몇 초 후 전등이 깜빡거리다 꺼집니다. 투숙객들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나면 저 또한 섬광처럼 사라질 거란 공포가 닥치죠. 살려고 밖으로 나가는데, 한번은 얼마나 급했으면 쇠로 된 방문 손잡이가 잘려나간 적도 있어요. 매번 쥐구멍으로 도망가듯 방공호로 달려가며 부끄러운 마음도 들더군요. 차라리 군에 입대해 싸우다 죽는 게 명예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지하철 방공호 내부 모습. 사람들은 담소를 나누거나, 게임을 한다. 밤사이 폭격이 지속되면 5시간 동안 머무르기도 한다. 사진=나길주
  ― 방공호 내부 풍경은 어떻습니까.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고, 공기의 흐름도 없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고, 사실상 시간의 의미도 없는 곳이죠. 보통 저 포함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피신하고, 그다음 의자와 담요, 커피 보온병까지 챙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어왔습니다. 구석에 모여 오순도순 잡담을 즐기셨죠. 이후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은 방공호 입구에 서서 한 발은 밖에 걸치고, 충분한 통신신호를 확보하며 담배를 피우고, 게임을 했어요. 공습이 밤새 지속되는 날은 5시간 동안 그러고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지하철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눈을 붙이려 바닥에 누우면, 지하의 찬기와 함께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자고, 내일을 계획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흑해 주변에 석유·천연가스 풍부
 
  ―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매달 우크라이나를 오가는 이유가 뭡니까.
 
  “여태 이뤄놓은 것을 포기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 다음엔 또 다른 국가가 도미노처럼 공격당할 것이기에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입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의 밝은 미래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밝은 미래’를 점치는 건 우선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 나 대표는 “유럽연합의 필요 에너지원인 천연가스, 전력, 석유, 바이오 에탄올 등을 안정적이면서 저가로 공급할 나라는 유럽 내 우크라이나밖에 없다”고 했다.
 
  ―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땅도 넓은 우크라이나가 점령된 영토를 적당히 양보하고 끝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죠.
 
  “만일 양보한다면 다음 세대가 굶어 죽습니다. 남부 지역이 흑해 해상운송로의 안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동부 지역은 미래 세대 먹거리인 원자재 공급을 위해 무조건 탈환해야 하는 곳입니다. 러시아 다음으로 석탄 매장량이 많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지역이 대부분 점령되면서 도리어 석탄을 수입하는 지경이 됐어요.
 
  바흐무트 주변으로 양 국가가 폐허가 다 된 도시들을 걸고 2014년도부터 죽자 살자 싸우는 이유는 이곳이 군사적 중요성과 별도로 도네츠크, 루한스크 그리고 마리우폴로 연결되는 우크라이나 중공업의 중추이기 때문입니다.
 
  석유는 크림반도가 자리 잡은 흑해 지역에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한정한 매장량이 있어서 2014년 러시아 합병 이전에는 엑손모빌과 셀 등 해외 에너지 기업이 추진하던 개발 규모가 무려 100억 달러(13조원)였어요. 이런 이유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크림반도 탈환을 기어코 성사할 겁니다.
 
  다만 동·남부 지역과 크림반도는 탈환 후 종전되더라도 러시아의 재침공 가능성 때문에 한국의 DMZ처럼 오랜 세월 상당한 면적이 완충 지대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이 지역은 재건사업 설계 때 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서부와 흑해 주변에는 천연가스도 많이 매장되어 있다. 2023년 10월 기준 160억㎥의 천문학적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파이프라인이 러시아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소련 때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천연가스가 처음 발견돼 러시아 본토로 옮기기 시작한 게 현 파이프라인의 시초예요. 그만큼 우크라이나는 시추 기술이 발달했고 천연가스 자체 매장량이 많은 나라입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그러나 현재 전쟁으로 차단된 기존 유럽행 가스 파이프라인에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라인을 연결하면 별도 공사 없이 바로 유럽연합 전체로 가는 파이프라인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전쟁 복구로 빌린 많은 해외 원조금을 쉽게 갚을 수 있어요. 한국 정부도 이런 이유로 어려운 국내 경기에도 불구, 우크라이나에 원조와 투자를 계속한 겁니다.”
 
 
  545조원 추산 재건 사업
 
  각국에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규모는 4110억 달러(약 545조원)로 추산된다.
 
  “종전(終戰)하면 우크라이나의 저(低)임금과 낮은 에너지 비용에 끌려 전 세계에서 투자가 이어질 겁니다. 현재 독일을 비롯 유럽의 많은 제조업체들이 높은 에너지 비용 등 생산비용을 맞추지 못해 저렴한 지역으로 이전을 준비 중입니다. 2026년 유럽연합의 탄소세 시행으로, 장거리 운송으로 탄소가 많이 배출될 부피가 큰 상품의 경우 현지생산 말고는 선택 안이 없습니다. 유럽 내 저임금,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 유연성 있는 환경 정책을 갖춘 국가는 우크라이나가 유일합니다.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비용도 그동안 많이 상승했어요.
 
  특히 우크라이나는 차기 유럽연합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기지로 최적입니다. 슬로바키아나 오스트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 주변국이 모두 현재 주요 자동차 생산이나 부품 생산 국가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리튬, 구리, 코발트, 니켈 등 원자재 매장량은 우크라이나가 독보적입니다. 동부 도네츠크와 중부 키로보흐라드 지역의 경우, 산화 리튬 매장량이 50만 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기자동차 성장률은 세계 5위이고, 정부에서 집중 투자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한국 기업에 큰 기대를 거는 재건 사업 분야 중 하나도 전기차”라고 했다.
 
  ― 우크라이나 에너지사업부에 소싱 가능한 한국 기업들은 어떤 곳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지역이 대부분 동부와 남부인데, 남부는 흑해예요. 바닷물이 유입돼 철근이 다 부식된 상태입니다. 이를 부식 없는 유리섬유복합재로 대체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또 수도관 파괴로 인해 수돗물 상태가 안 좋은데, 대형 파이프 전체를 갈려면 공사비가 어마어마합니다. 부식된 파이프에다 얇은 탄소 파이프를 끼워 넣어 새것처럼 만드는 기술을 가진 기업도 있습니다. 겨울에 갑자기 추워지면 정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 막기 위한 원격 검침기 업체도 시험 가동 중입니다.”
 
 
  “종합병원보다 목발”
 
부차 학살이 일어난 후. 까맣게 남은 그을음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준다. 사진=나길주
  ― 재건 사업에 뛰어든 국가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입니까.
 
  “가장 큰 비중은 유럽이고, 한국은 미미해요. 실제로 재건 사업에 참여 중인 소수의 기업 외 희망 기업은 300곳 이상으로 추산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에서 열린 재건 관련 포럼에 발제자로 가봤더니, 대부분 현실성이 없는 구상을 하고 있더군요.”
 
  나 대표는 “재건 사업을 구상 중인 한국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우크라이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마치 1970, 1980년대 미국 가면 무조건 부자 될 줄 알던 모습과 닮았다”고 했다.
 
  ― 현실성이 없다는 대표적인 사례는 뭡니까.
 
  “재건에는 순차적이고 종합적인 구상이 필요합니다. 당시 포럼에서 논의됐던 게 ‘우크라이나에 대형 종합병원을 세우자’는 거였습니다. 지금 당장 급한 건 종합병원이 아니에요. 5만 명이 팔다리가 없습니다. 근데 목발이 없어요. 화장실 편하게 갈 수 있게 목발부터 공급해야죠. 그다음 휠체어, 그러고 나서 종합병원을 세워야죠.
 
  우크라이나에는 아직도 바닷물을 마시는 곳이 있어요. 수력발전 재건 사업 얘기도 나오는데,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식수입니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이 지역에 생수를 보내왔고, 지금에 와서 공사 계약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한 무전기 회사가 있습니다. 개전 후 통신이 불안정해지자 무전기 수만 대를 우크라이나 경찰과 군대에 보급했어요. 전쟁이 끝나면 경찰과 군대가 이 무전기를 계속 쓰지, 딴 걸 쓰겠습니까. 재건 사업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계약서에 서명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당장 필요한 지원에서 시작해야 사업으로도 이어지는 거예요. 기사에 보면, 어느 회사가 어디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하죠. MOU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우리나라가 서명하고 나면, 1시간 후에 다른 나라와 MOU를 맺습니다.”
 
 
  제동 걸린 중국붐
 
부차 학살이 일어난 후. 폐허가 돼버린 집. 사진=나길주
  ― 중국 시장의 비중은 어떻습니까. 우크라이나는 중국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의 동유럽 거점 국가이고, 중국은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었죠.
 
  “중국은 해양 인프라 건설 사업(마리우폴 및 오데사 항구 포함), 키이우 지하철 현대화 사업, 농업, 에너지 및 통신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사업에서 적극적인 시공사 및 금융 투자 국가였습니다. 2021년 중국 기업은 우크라이나에서 66억 달러(8조8000억원) 이상의 건설 공사를 수주했으며 그중 중국국가기계산업공사(China National Machinery Industry Corporation), 중국 수력 발전(China Hydropower) 및 국가전망유한공사(State Grid)가 가장 큰 세 가지 계약을 따냈어요. 우크라이나 또한 러시아로부터의 경제적 탈피를 위해서는 중국이 필요했기에 양국 관계는 급속 동반 성장했습니다. 2021년 우크라이나와 중국 간 무역액은 190억 달러(약 25조)에 이르렀죠. 삼성 갤럭시가 오래전부터 독점했던 키이우 보리스필 공항 진입로에 화웨이 광고가 더 크게 들어서며 ‘중국붐’을 실감케 했습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및 돈바스 내전에서 중국이 친(親)러 정책을 펼치자, 우크라이나는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2020년 우크라이나의 대(對)중국 수출은 국민총생산의 10%였어요. 이후 일부 의식 있는 이들은 ‘러·중 협공 작전’이 펼쳐질 거라 조심하자고 했지만, 개전 직전까지도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국민에게 반중(反中) 감정은 없었습니다.
 
  중국붐이 일자 중국 대부자와 우크라이나 여성과의 국제결혼도 매우 성행했습니다. 슈퍼모델 양성하듯 교육을 시킨 후 큰돈을 받고 중국 남성들에게 팔았죠. 그땐 길거리에서 이를 위한 캐스팅 장면도 흔히 볼 수 있었어요. 중국인이 운영하는 대규모 중식당도 우후죽순으로 생겼죠. 지금은 서리 맞은 듯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중국인이 건설하던 공사장과 중국 제품 광고도 마찬가지고요.”
 
 
  ‘러시아 침공의 가장 긍정적인 면’
 
  ― 반중 정서 확산 때문입니까.
 
  “우크라이나 모든 국민이 대놓고 중국을 적대시하지는 않습니다. 무언(無言) 속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같은 편이라 간주해요. 러시아 침공이 없었다면 정부에서 아무리 친유럽연합 정책을 펼쳤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지금쯤 중국에 완전하게 먹혔을 겁니다. 이 점이 러시아 침공으로 얻은 가장 긍정적인 면이라 생각해요.”
 
  ―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적인 제재도 있습니까.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중국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물밑에서 재고(再考)하기 시작한 거죠. 한편 경제 전문가들과 언론은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관계 재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했고요. 제재는 미국에서 대신 가합니다. 2023년 말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통신업체인 ‘키이우스타’가 중국으로부터 장비 6억 달러(약 8000억원)어치를 신규로 수입하겠다 해서 미(美) 의회서 난리가 난 일이 있습니다. 결국 키이우스타 사장의 재산을 모두 국유화시키라는 결정이 떨어졌죠. 중국과의 관계는 이처럼 민감한 문제입니다.”
 
  ― 우리에겐 기회가 되겠군요.
 
  “양국의 관계 변이와 데이터를 잘 분석하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거죠. 향후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은 매우 부차적이며, 상당한 제한이 있는 무역 영역에만 한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 당장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제조업 분야입니다. 아직도 수출입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이 높긴 한데 종목이 중장비에서 소비재로 바뀌었어요. 어느 국가가 공사를 수주하든 장비와 기타 재료가 필요하겠죠. 제조업은 중국·한국이 뛰어납니다. 유럽, 미국, 일본의 경우,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좋은 기회죠. 현재까지 유럽연합이 중국에서 수입하던 많은 값싼 공산품을 대체 공급해줄 곳도 필요하고요.”
 
  ― 그간 중국 화웨이가 깔아놓은 통신망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건 어떻습니까.
 
  “중국이 그동안 우크라이나 통신망의 90%를 다 만들어놨어요. 이미 깔린 통신망은 상호호완성 문제 때문에 교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상단 장비까지 모두 중국제로 다 설치해놨거든요. 인프라라는 게, 얽히고설켜 있고 저마다 규격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거면 빨리 갔어야 해요.”
 
 
  문화 진출 선행돼야
 
  나 대표는 “프랑스는 외국에 진출할 때 문화부터 앞세운다”면서 “한국 또한 이런 접근방식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재건 사업 외에도 우크라이나에 출판 및 영화 제작 그리고 문화 사업을 위한 퓨처리나(FUTURINA LLC) 법인을 설립, 양국 간 문화교류 활동도 하고 있다.
 
  ― 언젠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한국어 열풍이 일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21년 9월 국립 키이우 외대(Kyiv National Linguistic University) 한국어과 신입생(180명) 모집 현황을 보면, 전년 대비 지원율이 50% 올랐습니다. 현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러 교육기관 또한 인기가 높아 입학이 쉽지 않죠. 그러나 여건은 열악한 상태입니다. 강정식 키이우 외대 한국어학과장(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장)을 만났더니 1995년 학과 개설 이래 혼자서 해결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어려운 점은 교재가 없답니다. 수백 명 학생의 수업자료를 일일이 복사해서 나눠주다 보니 복사기는 죄다 고장나버렸고요. 가령 판소리 강의나 방언 강의를 하고 싶어도 자료 조달이 안 된다고 합니다. 누가 쓰던 거라도 보내줬으면 하더라고요. 수도권 국립대 최고 인기학과 사정이 이러니, 한류(韓流) 부흥에도 제동인 거죠.”
 
  나 대표는 “우크라이나 내 교육열은 유럽 내에서 가장 높은 것 같다”면서 “조기 유학의 성행으로 기러기 아빠들도 증가 추세이며, 한국으로 조기 유학을 고려하는 집도 여럿 봤다”고 했다.
 
  “케이팝(K-Pop)도 아쉬운 게, ‘15~18세 소녀들이 즐기는 문화’로 인식돼버려 그 외 연령대에서는 열기가 많이 식었습니다. 한식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음식이 잘 알려졌는데, 마트에서 라면 하나에 3달러(약 5000원)씩 받으니, 다들 베트남 라면만 사 먹습니다.”
 
 
  “투자자들, 우크라이나 승리에 베팅한 듯”
 
개전 초기 잠시 중단 후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부동산 건설이 진행 중이다. 키이우에 현재 허가된 공사용 타워크레인 수가 5000대라고 한다. 사진=나길주
  ― 현지에 제대로 된 한식당을 하나 여는 건 어떨까요. 한국 기업들이 재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전망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느 분야나 기회는 있지만, 문제는 생각한 것과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한식당이 없으니 차리면 돈 벌겠다.’ 벌 수도 있죠. 다만 고려사항이 많습니다. 특히 식당이나 카페용 부동산의 경우 리스크가 많아요. 우선 키이우의 경우 매물이 없어요. 있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모두 ‘올리가르히(정권과 유착된 재벌들)’가 장악하고 있어 전쟁이 나도 가격이 그대로예요. 시내 제2 영업구역에 있는 20평 규모 라면집 자리가 50만 유로(약 7억1000만원)니까요. 간혹 나오는 매물은 거의 100% 문제가 큰 부동산이고요. 비싼 매매비용의 유일한 해결책은 식당 매물이 아닌 영업용 건물을 사서 개조하는 겁니다. 물론 식당 운영의 이점도 있어요. 노동법 제한을 적게 받고, 인건비가 저렴해 아침부터 자정까지 영업이 가능하고, 식자재도 저렴하죠. 현지 회계사에 따르면 이 같은 이점 때문에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수익을 내는 곳이 많다더군요.”
 
  현재 키이우 내 한국인 파견 인원은 대사관, 대기업을 합해 약 5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나 대표는 “재건 사업 재개 후 수만 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게 되면 주거 마련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 주택 가격은 어느 정도입니까.
 
  “키이우 및 서부 도시들의 부동산, 특히 거주용 아파트는 계속 오름세입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우크라이나 부동산과 화폐 가치가 3~4배 폭락한 뒤 8년간 지속됐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엔 투자자들이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베팅한 것 같아요. 실제로 경제 전문가들도 안보 보장 조건으로 종전된다면, 부동산 등의 가파른 상승세를 점치고 있죠. 현재 키이우 중심 지역인 세우첸키우스키, 페체르스키 구(區)의 경우 기축(旣築)이든, 신축이든 원룸(15평)을 사더라도 최소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는 지불해야 합니다. 살 만한 33평 아파트는 60만 달러(약 8억원) 정도 줘야 하죠. 은행 대출도 상당히 까다로워요. 승인이 나더라도 대출이자가 20%에 육박하죠. 그래서 대부분 월세살이를 합니다.”
 
  참고로 우크라이나의 정규 직원 평균 월급은 600달러(약 80만원)라고 한다.
 
  ― 주택 공급난도 심하죠.
 
  “개전 초기 키이우가 포위됐던 시점 잠시 중단 후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키이우에 현재 허가된 공사용 타워크레인 수가 5000대라고 하니까요. 시멘트, 모래, 철근 등 기초 건축 자재도 대부분 국산이거나 육로로 쉽게 공급 가능해서 건자재 조달, 단가인상 문제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에요. 다만 지난 20개월 동안 신축 공사가 없어서 종전 후 상당한 주택난이 예상됩니다. 신축 첫 분양의 경우 매입 시 세무적, 행정적 제약도 많고요.”
 
 
  ‘수의용 백신·가발’ 블루오션
 
비탈리 킴 미콜라이우 주지사는 선박 건설의 특화 대학인 조선국립대학 (Université nationale de la construction navale amiral Makarov)을 졸업해 한국 조선 기술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사진은 미콜라이우 해양 박물관 설립 회의 당시. 사진=나길주
  ― 돈만 있다면 임대사업을 하면 좋겠군요.
 
  “실제로 월세가 주택구매 가격과 비교해 월등히 높습니다. 주택구매비가 20만 달러(약 2억6000만원)라면 월 1500달러(198만원) 정도 되죠. 우크라이나 부동산 투자의 장점은, 세금이 싸다는 겁니다. 양도 절차도 쉽고 양도세도 없어요. 보유세도 100㎡(약 30평) 이하면 거의 없고요. 또한 대부분의 세입자는 월세를 달러 현찰로 지급합니다. 프랑스 사람처럼 월세를 미루거나 떼먹는 일도 없어요. 세입자를 찾아주는 중개 시스템도 잘 돼 있죠. 더욱이 키이우의 인구 밀도는 계속 상승 중입니다. 유엔이나 구호단체 직원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 동·남부 사람이 많이 피신해 있는데 종전 후에도 그곳은 야포 사정거리여서 대부분 키이우에 정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 대기업·공기업이 아니라 개인이나 중소기업에서 진출을 노릴 만한 틈새시장이 있다면요.
 
  “우선 수의(獸醫)용 백신 시장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서민 가정에서는 집에서 반려동물을 직접 분양해 생활비로 씁니다. 반려동물을 해외로 보내려면 백신 등 까다로운 접종증서가 필요한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동물 질병이 확산하고 있고, 고급 백신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어 이 분야가 유망할 거라 봅니다.
 
  둘째는 화장품 시장이에요. 이는 틈새라기보다 경쟁이 치열해서 전략적 진출이 필요한 분야죠.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한국 화장품 선호도는 매우 높습니다. 전쟁 공포심이 최고조였던 2022년 4월에도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주문이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가격이 비싸서 중국제를 더 많이 씁니다. 중국제는 부작용이 많죠. 그래서 생긴 게 우크라이나 보따리상입니다. 한국에서 유효 만기 상품을 갖고 와 싼값에 파는 거죠. 수요가 큰 시장이지만, 이런 로컬 리스크를 감안해야 합니다.
 
  가발 시장 또한 유망해 보입니다. 흔히 우크라이나 여성 하면 금발을 떠올리지만, 대부분 갈색이나 검은색이고, 깨끗하지 않은 수돗물 때문에 머리카락의 상태가 좋지 않아 가발을 많이 씁니다. 통가발보다는 붙임머리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 또한 세 가닥에 100달러(약 13만원) 정도로 비쌉니다. 서유럽에선 한국 통가발이 수천 유로(1000유로는 약 140만원)씩 해도 잘 팔려요. 주로 암환자 등이 사용해 구매비용의 대부분을 건강보험에서 지원받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건강보험 자체가 없어서 통가발 수요는 적습니다.”
 
 
  보험·중고시장 유망
 
우크라이나인은 통곡하는 법이 없다. 슬픔을 억누르는 법을 안다. 어느 전사 영웅의 장례식. 사진=나길주
  ― 건강보험이 없다고요.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생명보험, 교육보험, 암보험, 화재보험, 퇴직 연금보험 등 보험제도가 전무합니다. 있어도 상징적인 보상만 가능해요. 국립은행인 프리바 뱅크(PrivatBank)에서 유일하게 화재보험을 일부 제시하는데, 보상금 한도가 5000달러(약 660만원)입니다. 국민성 자체가 보험보다는 침대 밑에 현금을 보관하는 문화예요. 2014년도 이후 수백 개 은행의 파산으로 불신이 생긴 거죠. 보험제도만 보면 아프리카보다 열악합니다. 가령 사하라 사막에서 공사를 한다고 하면, 스위스 보험회사의 경비행기가 사막에 늘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대비 차원이죠.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만일 재건 사업에 대거 참여하더라도, 생명보험부터 후방 호송 등 보호 조치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한국 보험사에는 이 점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곳에 보험시스템을 정착시키면 여러 한국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죠.”
 
  ―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개방을 해줘야 할 텐데요.
 
  “만일 전쟁이 없었다면 일부 기득권 세력만 유지할 수 있었을 권한들을 지금 서서히 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규제 완화가 이뤄지는 거죠. 그래야 돈이 모이고, 국민들이 사니까요. 가령 2024년 1월부터는 국유재산의 사유화도 허용이 되죠. 국유재산을 다 개방한다는 뜻입니다. 그중에는 토지도 있고요.”
 

  중고시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크라이나는 중고품의 천국이다. 개전 전까지 특히 한국 중고차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폐차 수준의 LPG 소나타를 미국에서 3000달러(약 40만원)에 수입해 1만 달러(약 1300만원)에 되팔았는데, 선(先)지급 주문을 받을 정도였다고. 새 차 구매는 대출 금리도 비싸고 할부도 거의 불가능한데다, 세무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관세도 30%라서 중고차로 수요가 많이 몰린다는 게 나 대표의 설명이다. 중고 명품 또한 수요가 많다고 한다.
 
  “키이우 지하철 종점에 가면 구두나 의류를 무게로 파는 세컨드핸드 쇼핑몰이 많고 새 물건이 도착하는 날에는 깔려 죽는 사태가 발생할 만큼 인파가 몰려요. 젊은 여성들은 휴대전화도 모두 고급형 아이폰을 찾는데 목돈이 없기에 중고 아이폰 상점을 이용하죠. 우크라이나에서 중고품 사업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목 중 하나라 봅니다.”
 
 
  “아직은 젤렌스키 지지 높아”
 
2023년 11월 독립광장의 전사자 추모지. 더 이상 깃발을 꽃을 자리가 없다. 사진=나길주
  ― 우크라이나 내 이혼율도 급등 중이라 들었습니다.
 
  “원인을 짐작하건대, 피란 간 여성들이 새로운 현지 남성을 만나 헤어지는 이유가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현지인들 또한 이를 원인으로 많이들 분석합니다.”
 
  ― 우크라이나는 ‘김태희가 밭을 가는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죠.
 
  “혹 재건 사업을 하다 우크라이나 여성에게 반하더라도, 연인관계로는 발전시키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왜죠.
 
  “이들을 지켜보니, 헤어지는 것에 매우 익숙하고 관계를 냉정하게 정리합니다. 재회의 여지도 없어요. 사별(死別) 후에도 슬픔 같은 게 없어 보여요. 그저 바람처럼 스쳐가는 인연일 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그러나 자기 가족과 고향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집착력이 강합니다. 절대 잊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인연으로 여겨요. 그녀를 꼭 잡고 싶다면 마치 가족의 일원처럼 대하면 됩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우크라이나 여성과의 결혼에서 실패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일단 종전을 해야 가능할 텐데요.
 
  “현지 분위기로 봤을 때 2024년 여름쯤에는 구체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국민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끝까지 간다’는 젤렌스키 대통령파와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는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파죠. 특히 키이우 시장은 대권에 도전하려고 국민 분열을 조장 중인데, 아직은 젤렌스키 대통령 쪽 비중이 높습니다. 얼마 전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현 정부에 불만인 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모입니다. 매번 가서 보는데, 키이우의 경우 20명이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죠. 외지인도 그런데, 국민들은 어떻겠습니까.”
 
 
  “도와줘야 어려울 때 도움 받을 수 있어”
 

  ― 이스라엘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도도 떨어진 상태인데요.
 
  “이제는 구호물자도 거의 안 옵니다. 각개전투하며 버티는 거예요. 단순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전쟁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노력은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도와줘야 어려울 때 도움 받을 수 있습니다.”
 
  ― 종전대로라면 2024년 5월이 우크라이나 대선 아닙니까.
 
  “우크라이나 정부와 전자투표 사업을 진행하던 기업 측에 따르면 한동안 전자투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요즘 조용하다고 합니다. 현재로선 선거를 안 치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해요. 그렇게 되면 젤렌스키가 계속 집권하겠죠.”
 
  ― 전쟁을 눈앞에서 목격한 후 바뀐 삶의 철학이 있습니까.
 
  “우크라이나전을 겪으면서 이제는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 ‘설마’나 ‘혹시’ 하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국제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의견도 귀담아듣지 않아요. 전쟁은 논리로 예상할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외교로 해결할 수도 없고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독재자의 결정에 쉽게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봤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공산독재주의 국가와의 평화조약은 그들이 단지 무장하고 군대를 키우기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었습니다. 특히 공산독재주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전쟁 대비뿐입니다.”
 
  나 대표는 방공호 대피 때마다 글을 썼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몸소 겪은 이야기들이다. 재건 사업 정보도 세심히 기록했다. 이게 책 한 권 분량이 됐다. 1월 중 출간 예정이다. 제목은 《아름다운 우크라이나로 가는 길》이다. 그의 말처럼 ‘쥐구멍에 들어가는 부끄러운 마음’의 빚을 이렇게라도 갚고 싶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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