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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진핑·푸틴·탈레반의 反정권 인사 3人

“손발에 쇠사슬 묶인 학생들… 매주 月엔 정체불명 약 강제 복용”(신장 재교육 캠프 前 교사 칼비누르 시딕)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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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맞아 《월간조선》은 지난 5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러시아, 신장, 홍콩, 북한, 이란 등에서 인권 탄압을 받은 인사들이 연단에 올라 독재 정권의 인권 실태를 증언했다. 주최 측에 협조를 구해 이 중 세 명을 어렵게 따로 만날 수 있었다.

⊙ 신장 재교육 캠프 前 교사, “수감자, 100만 명 아닌 300만 명 이상”
⊙ 재교육 캠프 내 中 경찰관, 수감자 강간 후 자랑… 4~5명이 한 소녀 윤간도
⊙ 中, 산아제한 명목 18~59세 위구르 여성 강제 불임 수술
⊙ 러시아 양심수, “푸틴 종신 집권 필히 막을 것… 자유 위해 싸운 韓 경험 공유해달라”
⊙ 러시아 고아원으로 흩어진 수많은 우크라 아이들… 신분 세탁된 채 살아가
⊙ 러시아 내 반체제 인사 수천만 명 추산… “종전 후엔 내전 예상”
⊙ 하자라족 여대생, “탈레반 소유물 된 아프간 여성들… 암적 존재 막아야”
사진=박지현 기자
  신장 ‘재교육 캠프’ 교사 출신, 칼비누르 시딕(Kalbinur Sidik)
  “中, 산아제한 정책 명목 18~59세 위구르 여성 강제 불임 수술”
 
  대량 학살. “지금 신장(新疆)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 한 단어로 묘사하자면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재교육 캠프’에서 중국어 교사로 일했던 칼비누르 시딕(Kalbinur Sidik) 씨는 그 내부 상황을 증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우루무치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일반 학교의 중국어 교사가 됐다. 25년간 존경받는 교사로 살다, 2016년 어느 날 재교육 캠프에서 일하도록 강요받았다. 참담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중국 당국은 재교육 캠프를 ‘직업 훈련 프로그램’이라고 밝혔지만, 그곳에서는 각종 인권 유린이 자행됐습니다. 동료 위구르인들의 만연한 학대, 고문, 성폭력을 목격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동투르키스탄(신장)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고문하고, 살균하고, 노예로 만들고,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로 이주한 상태지만, 여전히 중공(중국공산정권)의 협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소에서 자행되는 잔혹 행위와 위구르인에 대한 광범위한 박해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대런 바일러의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도 시딕 씨의 증언을 토대로 쓰였다.
 
  ― 국제 인권단체들과 유엔 인종차별위원회 등에 따르면 재교육 캠프에 구금된 사람들이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그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2017년 이후 이 캠프에 구금된 사람들은 위구르인을 비롯해 튀르키예인 등 300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죠. 사회에서 가장 먼저 표적이 된 학자 등 지식인들은 물론 예술가, 사업가, 배우, 운동선수 등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수많은 사람이 수감돼 있습니다.”
 
 
  “보고 들은 것 아무에게도 발설 마라”
 
중국은 신장 지역 위구르족을 광범위하게 감시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11월 4일 중국 신장 위구르 카슈가르의 모스크(이슬람사원) 앞을 지나는 위구르 보안 순찰대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중국 정부에 위구르족은 티베트인과 함께 가장 큰 눈엣가시다. 한족과 외양·언어·풍속·종교까지 모두 달라 ‘하나의 중국’ 정책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 어떤 이유로 수감되는 겁니까. 그들에게 예컨대 “시진핑의 ‘하나의 중국’에 반(反)했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적시되는 명목이 있습니까.
 
  “하나의 중국 정책뿐만 아니라 시진핑의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캠프에 보내지는 건 물론이고, 해외에 친척이 있거나, 해외를 다녀온 것조차도 캠프로 보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야간습격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 일반 학교 교사였다가 재교육 캠프로 가게 된 배경은 뭡니까.
 
  “2016년 2월 28일, 학교 교장이 저를 불러 회의를 위해 정부 기관인 당 사무실에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 사무실에 가서 들어보니, 문맹자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고 했고, 2017년 3월 1일부터 그곳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겠군요.
 
  “의문이 들었지만, 되묻기도 전에 ‘선생님 따님이 네덜란드에 있다죠? 네덜란드와 중국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협박이었죠.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재교육 캠프에서의 첫날은 어땠습니까.
 
  “경찰을 대동한 운전사가 교사들을 그곳으로 데려갔습니다. 회색 건물의 벽과 울타리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정문에는 전기 장치가 달려 있었어요. 수업이 시작되자 손과 발에 쇠사슬이 묶인 나이 든 어른들이 들어왔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어요. 교실에는 카메라 8대가 돌아가고 있었고, 저는 무장경찰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까요. 오래 보고 있으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그저 얼른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교사 인생 통틀어 가장 길고, 무서운 4시간이었어요.”
 
 
  “매주 月, 정체불명의 약… 이후 월경 멈춰”
 
  2017년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은 남성수용소에 있었다. 몇 주 단위로 새로운 죄수들이 끊임없이 유입됐다고 했다. 시딕 씨는 “추산해보면 그곳에만 8000명의 수감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하루 6~7시간씩 다른 그룹을 가르쳤는데, 같은 수감자를 두 번 가르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계속되는 인원 유입에 더해, 중간에 사망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서였다. 신장 지역에는 총 300개 이상의 수용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개월 근무 이후 2017년 9월부터 11월까지는 여성수용소로 배치됐다.
 
  “수용자들은 모두 삭발 상태였고, 시멘트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모두 회색에 주황색 숫자가 적힌 유니폼을 입었고요. 여성수용소는 6층짜리 건물에, 1만여 명이 억류된 곳이었습니다. 그들 중 90%는 8~40세였고, 10%는 40~90세였습니다.”
 
  ― 수용소 내부에서 목격한 인권 유린을 좀 더 상세히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들은 고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학대를 받았는데, 심문을 명목으로 강간과 고문적인 성적 학대도 당했습니다. 중국 경찰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강간했는지 자랑했습니다. 4~5명의 경찰이 한 소녀를 윤간하기도 했습니다. 전기봉을 몸속에 꽂아 고문한 뒤, 다시 강간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여성들 모두 정체불명의 약을 강제로 투여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모두 월경이 멈췄습니다.”
 
  그는 원래 2018년 3월까지 여성 캠프에서 일하기로 돼 있었는데, 2017년 11월, 생리가 멈추지 않아 병원에 실려가면서 일을 일찍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악몽이 끝난 건 아니었다.
 
 
  “위구르 박해, 시진핑 집권 후 본격화”
 
지난 2022년 3월 4일(현지시각) 강제 노동 반대 시위 글로벌 시민단체 ‘섬오브어스(SumOfUs)’가 미국 워싱턴DC의 애플 매장 앞에서 ‘애플은 강제 노동에 내몰린 위구르족을 고용하지 마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연합
  “퇴직 두 달 후, 한 젊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자궁 내 장치(IUD) 시술을 받으려면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해 저는 50세였던 터라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정책이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18세에서 59세 사이의 모든 여성은 산아제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만약 거부한다면 당신과 가족까지 처벌을 받게 될 거라면서요.”
 
  2018년 IUD 시술에 이어 2019년 난관 결찰술까지 강요받은 시딕 씨는 결국 때마다 극심한 합병증으로 입원 신세에 놓였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결국 2019년 치료 목적의 네덜란드행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네덜란드에 체류 중인 시딕 씨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중국의 위구르 박해는 2001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진핑 집권 이후에 더 심각해진 겁니까.
 
  “2001년경 동투르키스탄 지역 위구르인들에 대한 억압이 확대되긴 했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본격화됐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박해 관련 정책이 늘어났고 이러한 정책들은 특히 억압적인 방식으로 추진됐으며, 이윽고 체계적인 재교육 캠프 설치로 이어졌으니까요. 수용소뿐만 아니라 수용소 밖에도 자유는 없습니다. 시진핑은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노동 계획도 수립했고, 현재 여러 기업이 이러한 강제 노동으로 이익을 얻는 형국입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위구르인들은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간다. DNA와 생체인식 샘플을 중국 당국에 제출해야 하며, 모스크·학교·시장 심지어 버스와 택시에도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지역 전체가 창살 없는 거대한 감옥인 셈이다.
 
 
 
“네덜란드 이주 후 中 비밀경찰 협박”

 
  ― 건강은 어떻습니까. 네덜란드에서 치료는 잘 받았나요.
 
  “네덜란드에 온 뒤 4개월간 병원에 있었고, 지금은 많이 호전됐습니다.”
 
  ― 중국 정부는 해외로 이주한 반체제 인사들도 끊임없이 추적,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중국 정부의 협박은 없습니까.
 
  “중국 정부로부터 여전히 괴롭힘과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중국 비밀경찰이 위챗으로 대화를 걸었을 때 캡처한 스크린샷입니다. 2020년 2월, 제가 CNN, 《가디언》, BBC와 인터뷰를 한 직후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발설을 금지한 ‘재교육 캠프에서의 경험’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순간이었죠. 처음에는 당국에 협조해달라고 부탁하더니, 요청을 거부하자 매우 공격적으로 돌변했습니다. 협박과 위협은 물론이고 중국에 남은 가족들을 포섭하고, 인질로 삼았습니다. 지난 2021년 6월 영국 런던의 위구르 법정(Uyghur Tribunal)에서 증언하기 하루 전에는 중국 외교부장이 비디오 하나를 배포했습니다. 남편이 출연했더군요. 저의 명예를 훼손하고, 제 행동을 멈추기 위해 끔찍한 말을 했어요. 모두 강요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지난 4월 11일, 독감으로 입원해 있던 제 남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이렇듯 한 개인의 삶을 망칠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노립니다.”
 
  지난 2022년 1월, 인권 운동과 관련해 프랑스를 다녀왔을 때 네덜란드 집 앞에 수많은 중국 남성이 서 있었던 적도 있다. 시딕 씨는 현재 네덜란드 경찰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22년 10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신장 위구르족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토론회 개최를 요구하는 투표에서 미국·유럽연합(EU) 국가들과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위구르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던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행보였다. 앞서 지난 2019년 문재인 청와대는 한중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을 하면서 홍콩·신장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결과 발표문을 통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며 “한국 측은 홍콩 일이든 신장에 관련된 문제든, 모두 중국의 내정(內政)이라고 여긴다”고 했다.
 
  ― 정권 교체 이후 한국 정부 또한 위구르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위구르족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먼저 한국 정부의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 정부가 유럽연합,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위구르인들이 강제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모든 제품을 보이콧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는 위구르 사람들을 구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韓 정부 지지에 감사… 위구르 강제 노동 제품 보이콧 부탁”
 
  위구르족은 과거 두 차례 독립국을 세운 적이 있다. 1933년과 1944년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을 만들었지만, 각각 이듬해와 5년 후 멸망했다. 위구르가 다시 독립국이 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시딕 씨는 “위구르인은 문화, 역사적으로도 세계 문명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면서 “언젠간 독립할 것이라 믿으며, 대부분의 위구르인 또한 독립을 염원한다”고 했다.
 
  ― 중국 정부가 한족을 신장 지역으로 대거 이주시켜 한족의 비율을 높이고, 이 지역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 독립의지가 꺾이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위구르 법정에 제출된 ‘신장 지역 안보와 인구 통제’ 관련 극비문서에는 “중국은 2022년까지 한족 30만 명을 신장 남부로 이주시켜 한족 비율을 늘릴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그것이 위구르족의 독립이나 자기결정권 추구를 막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저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겁니다. 위구르뿐만 아니라 곤충, 동물, 초목까지도 모두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거나, 어떤 계략을 펼치더라도 위구르족의 독립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 양심수, 아나스타샤 셰브첸코(Anastasia Shevchenko)
  “푸틴 종신 집권 반드시 막을 것… 자유 위해 싸운 韓 경험 공유해달라”
 
  그의 딸이 죽었을 때 러시아 내부에서는 시위의 물결이 일었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스토프나도누, 예카테린부르크를 포함한 몇몇 도시에서다. 아나스타샤 셰브첸코(Anastasia Shevchenko)는 러시아의 정치범이다. 정치 조직 ‘열린 러시아(Open russia)’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2년 1개월간 가택연금에 처해졌었다. 적용법은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법(undesirable organizations law)’. 그는 러시아에서 이 법으로 형사 기소된 최초의 인물이다. 그사이 투병하던 첫째 딸이 쓸쓸히 눈을 감았다. 아픈 딸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그는 인터뷰 도중 이따금씩 눈시울을 붉혔다.
 
  ―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법. 푸틴이 2015년 제정한 법이더군요. 어떤 내용입니까.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겁니다. 푸틴 정권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포함이고요. 더 간단히 말하면, 만일 나라가 민주적이길 바란다면, 당신은 이미 바람직하지 않은 겁니다. ‘열린 러시아’는 러시아 최초로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으로 지정됐는데, 이후 수많은 여러 단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시작에 불과한 거죠.”
 
  ‘열린 러시아’는 푸틴의 최대 정적(政敵) 중 하나로, 추방된 러시아 사업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그의 회사 주주들과 함께 설립한 조직이다. 러시아 당국은 2017년 ‘열린 러시아’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규정한 데 이어 최근인 지난 3월 6일에는 반부패 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도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으로 분류했다.
 
  언론인이었던 셰브첸코 씨는 부패한 러시아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푸틴의 또 다른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공개 지지하며 여러 번 벌금형과 구금에 처해지다, 2019년 1월 집을 급습한 경찰에게 체포됐다. 체포 이후 러시아 당국이 그의 침실 에어컨에 카메라를 설치해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재판을 기다리며 이틀간 구치소에 있었다. 그사이 첫째 딸이 기관지염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날 때부터 뇌염(腦炎)을 앓았던 큰 딸은 혼자서는 걷고, 말하고, 먹지 못했다. 작은 감염도 치명적이었다. 판사에게 딸을 보러 가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딸의 심장이 두 번이나 멈춘 후에야 병원행이 허락됐다. 그러나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선 뒤였다. 가택연금 선고는 바로 다음 날 떨어졌다. 집에 갇힌 채 딸을 애도해야 했다. 그는 “첫 한 달간은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러시아 고아원으로 흩어진 우크라 아이들

 
2022년 6월 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부차의 민간인 고문 매장지 인근 성당에 당시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 단지 푸틴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년간 가택연금에 처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 그 2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바깥 구경은 하니까요. 2년간 40㎡(12평) 아파트에 갇혀 있었습니다. 경찰을 대동해 법정에 갈 때 빼고요. 무엇보다 힘든 점은 인터넷, 전화, 문자메시지 등 세상과,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법정에 가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과 인사하는 것도 금지됐습니다. 내 아이들이 무엇을 입고, 먹는지, 밖이 추운지 더운지도 몰랐어요. 24시간 원격으로 감시되는 그 공간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 2월 18일. 러시아 법원은 그에게 4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2022년 8월 그는 남은 자녀 둘과 함께 리투아니아로 떠났다. 크렘린궁은 그를 ‘도망자’로 선언했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에는 러시아에 있었겠군요. 무엇을 보았습니까.
 
  “국경 근처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친구가 있습니다. 전쟁 후 하루 50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유입됐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 주 그 아이들은 러시아 전역의 고아원으로 흩어졌습니다. 러시아 성(姓)으로 바뀌고, 신분이 지워진 채 살게 되는 겁니다. 한편 러시아 아이들은 선전의 도구가 됐습니다. 교사들은 제 아이들에게 러시아군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편지를 쓰도록 강요했죠.”
 
 
  “러시아 반체제 인사 수천만 명 추산”
 
지난 2022년 2월 서울에서 체한(滯韓) 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 사진=조선DB
  ―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인구나 단체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이와 관련 러시아에서 나오는 공식 통계는 믿을 게 못 됩니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거든요. 모든 독재 정권이 마찬가지죠. 자체적으로 추산하면, 수천만 명에 달할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대부분은 침묵하죠. 잃을 게 있거나, 겁이 나기 때문에요. 실제로 지난해에만 반정권 인사 수천 명이 체포됐고, 이들이 체포되지 않은 날은 365일 중 18일에 불과하며, 그들이 지불한 벌금만 5억 루블(약 80억3500만원)에 달합니다.”
 
  ― 푸틴 집권(2000년) 이전 러시아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1990년대 러시아는 가난했지만, 자유가 있었죠.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TV쇼도 많았고요. 푸틴은 집권 이후 우리에게 안정된 삶을 약속했지만, 지금 보세요. 이것이 푸틴이 약속한 ‘안정’입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빈곤층이 2000만 명 이상입니다. 지금 전선에 뛰어든 남성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애국심이 아닙니다.”
 
  ― 정치 활동가 입장에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푸틴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혹자는 그를 ‘악마’라고 하더군요.
 
  “우선 굳이 깎아내리려는 시도 없이 말씀드리면, 굉장히 똑똑한 사람입니다. 이번 전쟁을 얼마만큼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민족주의자들이고, 그들의 독립은 없다.’ 지난 20년간 국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푸틴에게 들은 말입니다. 20년 전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떨까요. 평생 푸틴의 말만 듣고 살았습니다. 일생을 ‘미국은 우리의 주적이고, 우크라이나인들은 민족주의자다’라고 배우며 살았죠. 그의 선전은 굉장히 강력하고 영향력이 있습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부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선전의 영향을 받았죠.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심지어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러시아 TV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잘못된 방향으로 똑똑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고 점점 더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작태를 보면 그저 범죄자에다 테러리스트일 뿐이죠. 요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러시아 군대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이를 역사에 남기고 싶어 하지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죠. 이러한 선전이 없다면 본인이 그저 악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러시아 정부는 이번 전쟁을 방어권 차원이었다고 하죠. 대규모 돈바스 공격을 선제적으로 막아 더 많은 희생을 방지했다고요. 부차에서 일어난 학살 또한 연출됐다고 주장하고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죠. 뭘 어떻게 더 말하겠습니까. 저의 어머니 또한 선전에 세뇌돼 모든 것이 가짜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노인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히코브(hikov)에 이모가 살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당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가 침공했다’고 했는데, 엄마는 저에게 ‘러시아군이 그럴 리 없는데, 이모가 너무 순진하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선전)는 상상 이상입니다. 그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막힘없는 답을 내놓습니다. 이미 정해진 답이죠. 만일 반대 의견을 내면, 또 정해진 답으로 응수합니다. 논쟁 자체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인데 그게 굉장히 능숙합니다. 지난 8년간 돈바스에서 수십만 명을 학살했음에도 그 기간 동안 단 7명만이 죽었다고 하는 이들입니다. 상당히 기술적이고 교묘하죠.”
 
  ― 어머니는 여전히 선동당한 상태입니까.
 
  “엄마는 작년 가을 러시아를 떠났는데, 러시아TV 없이 두 달을 지내자, 그제야 러시아의 침공 사실을 깨닫더군요. 선전 매체를 끄자 점점 현실을 보기 시작했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
 
 
  “韓의 대러시아 제재, 러 정부엔 타격 없어”
 
  ― 지난 2021년 대통령 선거법 개정안 통과로 푸틴은 2036년까지 장기 집권을 할 수 있게 됐죠.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이 열린 건데요.
 
  “헌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을 때 다들 그저 웃었어요. 불가능하다면서요. 한데 결국 해내더군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에는 선거라는 게 없어요. 국민투표는 모두 가짜입니다. 독재는 이미 오래전 시작됐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푸틴은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건 꼭 이뤄내는 사람입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죠. 그 탓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요. 철저히 처벌받아야 할 일입니다. 부디 국제사회가 이를 허락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도 정치인이자, 운동가로서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 러시아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푸틴의 통치가 끝나야 비로소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건부 무기 공급 가능성’을 내비쳤고요. 어떻게 봅니까.
 
  “내부 사정을 보면 우크라이나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적 중 하나와 싸우며 생존 중입니다. 무기뿐만 아니라 음식, 난방 등 모든 물자가 필요합니다.”
 
  ― 한편 북한은 이미 러시아에 몇 차례에 걸쳐 무기 공급을 한 상태인데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푸틴은 러시아의 친구가 중국, 북한, 이란 및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임을 누누이 보여줬습니다. 독재자들은 독재자들끼리 붙어 지내기 마련입니다. 서로가 유일한 지지세인 것을 알고 있고, 법개정, 억압, 탄압의 방식을 똑같이 모방하죠.”
 
  ― 한국은 러시아와 인접국가로 여러 외교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제1차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는데요,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
 
  “대러시아 제재는 상당히 복잡한 사안입니다. 사실상 러시아 정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러시아 국민만 타격을 받기 때문이죠. 제 바람으로는, 러시아 정부가 이 전쟁을 위해 많은 자금을 획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러시아 국민들이 돈을 다른 국가로 이체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은, 한국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했는지, 그 경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줬으면 합니다. 러시아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나라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 외에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한국과 같은 나라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됐는지, 한국인들이 자유를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국제사회에 더 많이 알려서 귀감이 되게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종전 후 러시아 내 또 다른 전쟁 예상”
 
  지난 2019년 국제앰네스티는 셰브첸코를 양심수로 선언했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나스타샤〉는 2022년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에서 초연했다.
 
  ― 러시아로 돌아가면 바로 체포되는 겁니까.
 
  “수배자 신분이니까요. 리투아니아로 떠나고 2주 만에 수배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발견 즉시 3년형에 처한다더군요.”
 
  ―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겁니까.
 
  “언젠가 꼭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합니다. 제 고향인걸요. 친구들도 많고요. 그중 몇몇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5년형을 선고받은 러시아 기자)처럼 수감 생활 중이죠. 그 친구들이 옥중에서 서신을 보내 말합니다. ‘언젠가 돌아와서 꼭 함께 일하자’고요. 언젠가 반드시 그들과 함께 그 일을 할 겁니다. 그래야만 해요.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겁니다. 러시아의 행동은 돌이킬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도 대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용서가 불가능하더라도, 러시아군에게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무릎을 꿇을 준비도 돼 있습니다.”
 
  ―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에 평화가 올까요.
 
  “러-우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 내부에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전 선동에 당했던 수많은 이들이 자국의 ‘전쟁 범죄’를 인지한 상태이고, 이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정부에 억압받았던 소수민족과 반정권 인사들까지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또 다른 끔찍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죠. 러시아는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테지만, 이는 반드시 겪어야 할 절차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를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 대학생, 수마야 자바디(Soomaya Javadi)
  “탈레반 재집권 후 가장 먼저 책 불태워… 현실판 《시녀이야기》”
 
  히잡을 벗은 그는 영락없는 여대생이었다. 카불대 치의대 학생이던 수마야 자바디(Soomaya Javadi·25)는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하자라족 여성이다.
 
  아프가니스탄 총 인구 3800만 명의 약 10%를 차지하는 튀르크-몽골계인 하자라족은 지구상 가장 박해받는 민족 중 하나로 꼽힌다. 현지인과 다르게 동양인 이목구비를 가진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최다수 민족인 파슈툰족에게 착취, 조직적 박해, 학살을 당했다. “타지크족은 타지키스탄으로, 우즈베크족은 우즈베키스탄으로, 하자라족은 무덤으로”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도 하자라족의 처참한 실상이 나온다. 자바디 씨는 “99%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탈레반은 하자라족을 이단자나 동물, 심지어 그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다”고 했다.
 
  ― 탈레반의 하자라족 탄압을 얘기하려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죠?
 
  “1880년 무렵으로 올라가면, 당시 국왕이었던 압두르 라흐만 칸(Abdur Rahman Khan)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적, 인종적 차이를 위협으로 인지하고 군대를 동원, 모든 하자라민족에 대한 말살 정책을 편 인물이죠. 강제이주, 노예화, 학살 등으로 인해 당시 하자라족 인구의 62%(240만여 명)가 희생됐습니다. 라흐만 칸이 그때 남긴 아주 유명한 말이 있죠. ‘하자라족의 머리통은 내 것이고, 그들의 땅과 아내, 자식들은 당신(파슈툰족)의 것이다.’”
 
  이후 100년 가까이 억압과 차별은 지속됐다.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하자라족은 고등교육을 받거나, 군대에 가거나,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1996년. 파슈툰족이 이끄는 초강경 수니파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 하자라족은 더 잔혹하게 인종청소를 당했다.
 
  “1998년 탈레반은 하자라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인 마자르-에-샤리프를 공격했고, 광란적인 살인을 지휘했습니다. 3일 동안 최대 8000명의 사람들을 죽였죠. 움직이는 건 뭐든 쐈습니다. 탈레반은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배제를 목표로 움직이는 하나의 사이비집단입니다.”
 
  자바디 씨는 그 무렵 태어났다.
 
  ― 2001년 미군 공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을 땐 아주 어렸겠군요. 탈레반 재집권까지 20년간, 미군 주둔 당시의 삶은 어땠습니까.
 
  “지난 20년도 하자라족에게는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미국이 자유를 위해 싸워줬기 때문에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일종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공부도 할 수 있었고, 가족들과 휴가도 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2021년 5월 시작한 탈레반의 공격으로 그해 8월 카불이 함락되면서 또다시 악몽이 시작됐죠.”
 
 
  “아프간 여성, 탈레반의 소유물 취급”
 
지난 2022년 12월 카불에서 여학생 대학 교육 금지에 반대 시위 벌이는 아프간 여학생들. 사진=연합
  ― 지난 20년간은 여성들이 교육에 대한 차별을 안 받았습니까. 카불대 치의대에 다닐 정도면 공부를 잘했겠는데요.
 
  “차별이 있긴 했습니다. 치대 재학 당시 교수님이 ‘여자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아 잘 기르면 된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어려웠지만, 그때는 적어도 공부가 가능하긴 했죠. 지금은 완전히 불가능해졌습니다. 흔히 아프간 여성이라고 하면 고정관념을 많이 가지는데, 이들은 교육에 대한 열의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책도 많이 읽고요. 아프가니스탄에는 여성의사, 여성변호사 등도 많습니다. 지금은 탈레반에 의해 모두 일자리를 빼앗겼지만요.”
 
  ― 탈레반이 재집권하던 날(2021년 8월 15일) 뭘 하고 있었습니까. 심경은 어땠나요.
 
  “살면서 쌓았던 모든 것을 박탈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앞으로는 악몽만이 있겠구나. 그날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탈레반의 카불 점령 소식을 들었죠. 탈레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가니 대통령은 도망친 상태였습니다. 가장 먼저 15세 동생과 방에 있던 책들을 가방에 넣어 뒤뜰에 묻었습니다. 하자라어로 된 책과 잡지는 모두 태웠고, 몸 전체에 길고 검은 스카프(부르카)를 두른 채, 스스로를 잃어야 했죠.”
 
  ― 현재 아프가니스탄 내 여성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요.
 
  “‘소유물(Property)’ 혹은 ‘아무것도 아닌(nothing)’입니다. 탈레반 정권 아래 여성들은 그야말로 물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공부도, 일도 못 하고, 남성 보호자 없이는 집 밖을 못 나갑니다. 남성 보호자와 같이 나가더라도,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 건 금지입니다. 생각하는 인간, 독립적인 존재로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5세 안팎의 어린 소녀들은 어떨 거 같나요. 걸음마를 배우자마자 탈레반 정권하에 놓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여자는 원래 집 밖에 못 나가는 존재’로 알고 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간에서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속 이야기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면서 알리아 아지지(Alia Azizi)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헤라트(Herat) 지역 교도소장이었던 아지지는 지난 2021년 10월 탈레반에 납치당한 여성이다.
 
  “1년 반 동안 행방을 알 수 없다가, 몇 주 전 탈레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지지가 탈레반 남성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녀에겐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프간에서 실존하는 ‘준 오스본(《시녀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거죠. 진짜 남편과 아이를 둔 채 탈레반의 시녀로 살아야 하지만, 이제 아프간에서는 아무도 아지지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아프간 여성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죠. 만연한 성차별과 민족주의의 결과입니다.”
 
 
  “비(非)파슈툰족은 모두 탄압 대상”
 
지난 2022년 8월 7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시아파 하자라족 거주지인 다시트-에-바르치에서 탈레반 병사가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 아프간 남성들은 살 만한 겁니까. 아프간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남장을 한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습니다.
 
  “남장 여성은 인권 문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탈레반의 탄압 대상은 여성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즉 모든 비(非)파슈툰족입니다.”
 
  자바디 씨는 탈레반 재집권 두 달 후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을 거쳐 캐나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5월 캐나다 오타와를 방문한 영국 찰스 3세는 자바디 씨를 초청해 “용기와 적극성을 높이 산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 캐나다로 건너가기까지의 여정이 상당히 험난했을 것 같습니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한 달간 아프가니스탄을 횡단했습니다. 마자르-에-샤리프에서 국제네트워크 조직인 ‘30버즈 재단(30 Birds Foundation)’을 알게 됐고, 이 재단을 통해 미국행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내 제재를 받아 좌초됐고, 저는 다시 카불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한데 카불행 버스는 산길 한가운데서 고장 났고, 허허벌판 산길을 며칠 동안 걸어야 했습니다. 그사이 총을 가진 탈레반이 차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죠. 몸을 숨겨 간신히 피했고, 가까스로 다시 카불에 도착한 뒤 30버즈 재단 측으로부터 새로운 탈출 경로를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파키스탄 접경지인 토캄으로 이동했고, 재단이 마련해놓은 통행증을 이용해 파키스탄으로 건너간 뒤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아프가니스탄은 산이 많은 지형입니다. 버스 고장으로 며칠 동안 걸을 때,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오더군요. 산 뒤에 뭐가 있을지는 전혀 모르죠. 마치 삶에 대한 메타포(은유) 같았습니다. 반면 캐나다는 평화로운 대초원이 많습니다. 그 너머엔 지평선이 보이고, 저는 그곳에서 미래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6년 과정의 치의대를 5년 반 동안 다녔지만, 탈레반 재집권 탓에 졸업을 못 했다. 지금은 캐나다 서스캐처원대학으로 적을 옮겨 생물의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유아교육 자격증도 땄다.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수단 등에서 온 난민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는 “이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저 생존할 뿐, 사는 게 아니다”
 
  ― 캐나다에서 내다보는 미래는 어떤 겁니까.
 
  “생물의학 학위를 딴 후 치과의사가 되는 겁니다. 뭇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너는 여자라서 안 된다.’ ‘하자라족이라서 안 된다.’ 저는 반드시 치과의사가 될 겁니다. 이는 비단 제 개인의 꿈이라서가 아닙니다. 아프간 여성의, 하자라족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도 ‘내가 바라는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겁니다. 그건 자유의 땅에 있는 제가, 그들을 대신해서 이뤄야 할 소명이기도 합니다.”
 
  ―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연락이 닿습니까.
 
  “그쪽 인터넷이 불안정해 원활하지는 않지만, 이따금씩 소통할 수는 있습니다.”
 
  ― 친구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생활에 대해 뭐라고 합니까.
 
  “희망이 없다고 해요. 그저 생존(alive)하고 있는 것이지 사는 것(live)은 아니라고 합니다.”
 
  ―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습니까.
 
  “그거 아세요. 요즘도 구글 지도를 열어 살던 집과 골목을 한참 동안 봐요. 그런데 당장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교육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의 교육도 절실하지만, 교육이 가장 필요한 건 탈레반이라고 생각해요. 충분한 교육을 못 받아서 타락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선진 교육을 받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날이 오면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여성과 남성, 파슈툰족과 비파슈툰족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함께 사는 날 말입니다.”
 
  ―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마저 두 손 두 발 들고 나간 아프가니스탄에 그런 날이 올까요.
 
  “적어도, 최소한, 시도는 해야죠. 아프간 여성들은 강합니다. 무척 강하고 용감해서 아직도 그 악몽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삶에 익숙해지지 않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잊히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대신 그들의 목소리가 돼줘야 합니다. 저는 목소리를 잃은 아프간 여성들을 대신해 계속 싸울 겁니다. 국제사회의 도움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탈레반과 탈레반주의는 암과 같습니다. 막지 않으면 점차 확산합니다. 향후 국제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릅니다. 세계 각국의 힘과 영향력이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촉구합니다. 탈레반에게 멈추라고 요구해주십시오. 저는 매일 아프간의 어린 소녀들을 생각합니다. 당차고, 똑똑한 아이들입니다. 그들이 번영의 미래를 꿈꾸고, 교육받고, 일하며,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국제사회가 이를 함께 바라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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