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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본 한국 ②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물게 안정된 나라 세네갈

새로 지은 국립경기장에 政敵인 전임 대통령 이름 붙여

글 : 최필영  예비역 육군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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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부패 등 논란이 따르지만 政敵이라도 존중하는 전통 정착
⊙ 마키 살 대통령, 전임자 와드 대통령의 아들을 부패 혐의로 감옥에 보내면서도 정책 계승
⊙ 말리·부르키나파소 군사정권, 적대적·폐쇄적 민족주의 내세우며 프랑스 등 서구 배척하면서 혼란 가중

崔必暎
1975년생. 육군사관학교(54기)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졸업, 同 국제지역대학원 유럽연합학과 석사 / 한국군 건설공병지원단(서희부대), 유엔수단임무단 통역장교, 육사 외국어학과 강사, 한미연합사·국방대학교 국제평화활동센터 근무, 육군 소령 예편, 한국국제협력단(KOICA) 세네갈 사무소 근무 / [역서] 《수단 내전》 《카르툼》 《디데이》 《이런 전쟁》(공역)
지방 도로 개통 행사에 참석한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사진=세네갈 대통령실 인스타그램
  이번 호에서는 세네갈에서 정치적 안정이 가능한 이유를 알아보고, 세네갈을 비롯한 서아프리카에서 이는 반(反)프랑스 정서와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한국과 비교해보려 한다.
 
  2021년 12월 28일 알자지라는 “2021년, 아프리카로 쿠데타가 복귀한 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런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은 2021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 4개 국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군(軍)이 통치하는 과도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2021년 4월 차드, 5월 말리, 9월 기니, 10월 수단에서 차례대로 쿠데타가 일어나 성공했다. 니제르,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과거에 비해 쿠데타가 급격하게 줄고 선거를 통해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대세로 자리 잡는 듯 보였던 상황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변화였다.
 
  정정(政情)이 안정된 국가의 국민은 자국 정치에 대한 불만이 대화의 소재일 뿐이지만 정정 불안 국가의 국민은 불만을 말하기 이전에 일단 안전을 확보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2021년 2월, 다카르에서 임차할 주택을 찾기 위해 동행했던 말리 출신의 중개업자 무함마드는 이런 예이다. 무함마드는 2012년 이후로 알카에다 그리고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준동으로 고국의 정정이 불안해지자 세네갈로 이주했다. 세네갈과 말리는 1960년 6월 독립 후 두 달 뒤인 8월에 세네갈과 말리로 각각 분리되었지만 이웃 국가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치·경제적으로도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회원국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이동과 취업이 자유롭다. 집을 구하러 다니던 중 무함마드는 자신이 잘 아는 시리아인들이 운영하는 케밥 식당에서 저녁을 들자며 나를 초대했다. 우연이지만 시리아 또한 IS의 준동으로 시작된 내전(內戰)과 국제전이 뒤섞여 있는 나라이다.
 
 
  말리의 문제는 군대
 
  무함마드는 차에 실어둔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술로 칵테일을 만들고 부드러운 바게트에 스페인식 소시지인 초리초와 프랑스식 간 고기인 파테, 그리고 숯불에 구운 케밥을 함께 권했다. 웬만큼 배를 채운 뒤 무함마드에게 물었다. “말리의 문제가 뭐냐”는 나의 물음에 무함마드는 바로 “군대”라고 답했다.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권력을 잡은 이들이 보인 행태가 또 다른 쿠데타를 불러왔고 거기에 알카에다를 비롯한 외부의 이슬람 원리주의 급진 세력이 개입하면서 한마디로 말리는 난장판이라고 답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프랑스가 주도하는 바르칸 작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함마드는 즉각 답했다.
 
  “말리가 무너지면 세네갈도 기니도 다 무너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이웃인 세네갈도 말리에 병력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세네갈은 병력 약 1000명을 유엔말리안정화통합임무단(MINUSMA)에 파견하고 있으며 접경국인 말리로부터 유입될 수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을 막기 위해 군사력과 그에 따른 예산을 늘리고 있다.
 
 
  혼돈 속의 말리
 
두 차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말리의 아시미 고이타(가운데). 사진=AP/뉴시스
  이로부터 두 달쯤 뒤인 2021년 5월 24일, 무함마드의 말이 예언이라도 된 듯 말리에서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를 주도한 이는 2020년 8월에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한 달 만에 권력을 민정에 이양했던 아시미 고이타 대령이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동일 인물이 쿠데타를 두 번이나 주도해 모두 성공한 것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말리의 정정 불안은 리비아의 붕괴로부터 비롯되었다. 2011년에 리비아가 붕괴하며 알카에다 세력이 말리로 넘어 들어왔다. 알카에다 세력이 북부에서 확산하면서 말리에서는 다양한 무장 세력들이 준동했고 말리 정부, 더 정확히 말리 군대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말리 정부는 2012년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MINUSMA(유엔말리안정화통합임무단)를 출범시키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여기에 2015년부터는 IS까지 얽히면서 말리의 안보 상황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고 말리 국민들 사이에는 반외세 정서가 퍼지면서 말리의 정정은 쉽게 나아지지 못했다.
 
  2020년 8월 쿠데타는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했다는 이브라힘 부바카 케이타 대통령 정부의 부정과 악화되는 안보 상황을 비판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가 이어지는 와중에 벌어졌다. 단적으로 MINUSMA는 유엔의 평화유지활동 단체 중 가장 위험한 곳이다. 2023년 1월 현재 MINUSMA의 사상자는 298명으로 유엔레바논임시군(UNIFIL)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UNIFIL이 1978년에 출범했고 MINUSMA는 2013년 7월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MINUSMA가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말리 반군은 물론 MINUSMA에 참여한 여타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화력, 압도적인 첨단 정보력, 그리고 든든한 방호력을 갖추었다는 프랑스군도 말리에서 10년 동안 58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장 세력의 손에 말리 국민이 목숨을 잃는 일은 오래전부터 일상이다.
 
 
  말리로 진출한 러시아 용병그룹 바그너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은 말리 과도정부가 자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기존 외교안보 정책의 대강을 뒤집은 데에도 원인이 있다. 2021년 5월 쿠데타 이후 출범한 말리 과도정부는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서방과 불화하며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을 상대로 민족주의에 기반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말리는 프랑스를 대체할 협력 대상으로서 러시아를 선택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한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Wagner)는 말리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러시아 세력이다.
 
  2021년 하반기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말리 사이에 불화가 본격화하자 외교장관들도 상대를 향해 원색적이고 도발적인 언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2022년 1월, 말리에서 프랑스가 주도하는 대테러 작전인 바르칸 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말리에 특수부대를 파견한 덴마크는 불과 사흘 만에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덴마크는 말리의 초대로 파병했다는 입장이었고 말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받아쳤다. 덴마크 외교장관은 “더러운 장난”이라는, 외교가에서는 나오기 힘든 표현으로 말리를 비난하며 자국군 철수를 발표했다. 프랑스는 국방장관과 외교장관이 모두 나서며 말리와 설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말리 과도정부는 주말리 프랑스 대사에게 72시간 내 추방 명령을 내렸다.
 
 
 
1년 동안 두 차례 쿠데타 겪은 부르키나파소

 
2023년 1월 24일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프랑스 외무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군사정권의 조종 아래 ‘프랑스의 내정간섭’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AP/뉴시스
  결국 2022년 2월 17일, 유럽연합·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 직전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캐나다는 그간 말리에서 시행해온 바르칸 대테러 작전을 중단하고 자국 병력들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8월, 프랑스는 말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MINUSMA에 꼭 필요한 군용 수송기를 포함해 병력과 장비를 지원함에도 말리 과도정부로부터 계속적인 비난과 괴롭힘을 받은 독일 또한 2022년 11월, 자국 병력을 2024년 5월까지 철수하겠다고 공표했다.
 
  표적은 서방 국가만이 아니다. 말리군은 2022년 7월, MINUSMA에 참여하기 위해 입국한 코트디부아르 군인 49명을 ‘국가 안보 사범’으로 규정하며 체포해 구금했다. 유엔과 코트디부아르를 포함한 여러 국가와 지역기구들이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말리는 오히려 2022년 12월 말에 이들에게 국가전복죄로 20년 이상의 형(刑)을 선고했다.
 
  올해 1월 초에 과도정부가 이들을 사면하고 추방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봉합하기는 했지만 코트디부아르는 2022년 11월에 MINUSMA에서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말리의 외교적 고립은 점점 더해가는 형국이다.
 
  이런 움직임은 2022년에 쿠데타가 두 번 벌어진 부르키나파소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말리 남쪽으로 접경한 부르키나파소 역시 이슬람 무장 극단주의자들의 준동으로 안보가 불안하다. 2022년 1월에 쿠데타가 발생해 성공한 부르키나파소에서는 과도정부가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준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8개월 만인 9월에 또 다른 쿠데타가 발생해 1년 사이에 과도정부가 두 번 출범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新) 과도정부는 2023년 1월, 프랑스에 방위조약의 파기를 통보하면서 자국에 주둔하는 프랑스군을 한 달 안에 철수하라고 요구한 상태이다.
 
 
  적대적 민족주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준동과 연속된 쿠데타로 치안과 정정이 모두 불안한 반면 구체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다 보니 장래 안보 및 경제 전망 또한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국 집권자들이 당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감정적 대응과 선전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얼마 전인 2월 21일, 말리에서는 급조폭발물이 터지면서 유엔평화유지군 3명이 사망하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날 유럽각료이사회 의장은 ‘말리가 붕괴하고 있으며 무장 세력들이 더 많은 지역을 점령해나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말리 과도정부는 자국이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한 이후로 무장 세력에 대해 점점 더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어느 안보 전문가도 말리의 안보 상황을 낙관하지 않는다. 말리를 비롯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사례는 20세기 후반 국제사회에서 국가안보의 영역이 국내와 국외로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호한 지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위협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안보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적대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기초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책이라고 부르기도 적절치 않지만 이런 ‘외교안보 정책’이 실현되면 국가에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지도 엿볼 수 있다. 이런 말리가 앞으로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현 서아프리카 주변국들의 고질적인 안보 불안 요인으로 자리 잡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 확립된 세네갈
 
세네갈의 역대 대통령들. 왼쪽부터 상고르, 디우프, 와드. 사진=세네갈 대통령실
  말리나 부르키나파소와 달리 세네갈은 1960년 독립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쿠데타를 겪지 않은 채 정권이 3번 교체되며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이는 서아프리카 주변국은 물론 아프리카 전체를 통틀어 매우 예외적이다. 이 특이성은 세네갈에 토착화된 이슬람 정치 문화와 최대 다수 종족인 월로프족을 기반으로 하는 세네갈의 정치 문화에서 유래한 바가 크지만 이와 별개로 정적(政敵)이라도 존중하는 관행을 정치인들 사이에서 지켜온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세네갈에서도 정치인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일상이다. 세네갈 초대(初代) 대통령인 상고르 대통령이 1980년에 사임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아브두 디우프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를 제외하면 세네갈 대통령들은 후임 대통령에 취임하는 인물들과 단순 대립을 넘어 치열하게 반목하는 정적 관계였다. 또한 정권 이양이 이루어진 대선에서 승리해 후임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보들은 1차 투표에서는 2위에 오르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어 다수 득표자 1, 2순위 후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결선(決選)투표를 통해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전임 대통령을 물리치고 당선된 공통점을 보인다.
 
  제3대 대통령 아브둘라이 와드는 1978년 대선에서 상고르에게 대적한 것을 시작으로 1983년, 1988년, 1993년에 출마하면서 상고르는 물론 디우프와도 대적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 투옥 또는 구금되었다.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후보가 직업’이라는 평가를 받던 아브둘라이 와드는 2000년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에 올랐고 디우프 대통령을 상대로 치른 결선투표에서 약 58%를 득표하여 마침내 세네갈의 제3대 대통령이 되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지만 결선투표에서 와드에게 패한 당시 디우프 대통령은 결선투표 결과를 수용하며 조용히 대통령궁을 떠났고 와드는 그런 디우프를 높이 평가했다.
 
 
  전임자의 아들을 감옥으로 보낸 마키 살
 
와드 대통령 시절 북한 만수대 창작사에 의뢰해 제작한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
  제4대 대통령인 현 마키 살 대통령 또한 2012년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하던 아브둘라이 와드 대통령을 상대로 역시 1차 투표에서 2위에 올라 결선투표에서 약 65%를 얻어 승리함으로써 대통령에 취임했다. 와드를 지지했던 마키 살은 와드 정부에서 광산부 장관 등 다수의 공직을 맡았으며 2007년 대선 당시 와드 정부의 국무총리로 임명되며 재선에 기여했다. 그러나 마키 살이 국회의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와드 대통령의 아들인 카림 와드의 부패 혐의 조사를 결정, 이를 빌미로 와드와 살 사이에 정치적 불화가 불거졌다.
 
  살은 와드와 결별한 뒤 세네갈민주당을 탈당하여 공화국회의(APR)라는 신당을 창당, 2012년 대선에 출마해 와드를 꺾고 당선되었다. 살과 와드의 악연은 살이 제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1년 뒤, 카림 와드가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최종적으로 6년 형과 2억2800만 달러 상당의 벌금을 선고받는 데까지 이어졌다. 카림 와드는 마키 살 대통령이 사면하기 전까지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처럼 깊은 살과 와드 사이의 불화는 마키 살 대통령이 2019년 발간한 자서전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실제로 와드와 와드 부자의 부패, 과대망상적인 행동과 세습 시도는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세네갈 미국 대사관 전문(電文)을 통해서 확인되기도 한다.
 
  와드의 과대망상적인 행동은 아프리카 최대의 동상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담이지만,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에 앞장선 만수대 창작사가 이 동상을 건설한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동상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촘촘하고 정교한 대북(對北)제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실례가 되었다. 또한 아브둘라이 와드는 아들 카림 와드에게 다수의 공직을 맡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직을 세습하기 위해 상당 부분 노력했다.
 
 
  政敵인 전임자의 정책 계승
 
  마키 살은 와드와의 불화를 자서전에 실었을지언정 전 대통령으로서 와드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와드를 전 대통령으로 배려하는 모습을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었다.
 
  2022년 2월 22일, 살 대통령은 자신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세네갈부흥계획(PSE)의 일환으로 신축한 세네갈 경기장의 개장식을 주관하며 이 경기장을 ‘아브둘라이 와드 스타디움’이라고 명명했다. 와드가 당수(黨首)로 있는 세네갈민주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살 대통령의 호의에 사의(謝意)로 답했다. 이미 살 대통령은 세네갈부흥계획의 일환으로 신축된 국제회의장에는 제2대 대통령 아브두 디우프의 이름을 따 ‘아브두 디우프 국제회의장’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경기장은 살이 입안한 것이라 예외지만, 살 대통령이 완성했거나 추진 중인 대형 국책 사업들은 와드 행정 부에서 계획되어 시작된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3월호에 소개한 세네갈인 징병을 주도했던 블레즈 디아뉴의 이름을 따 2017년 개항한 블레즈 디아뉴 국제공항, A1 고속도로 등이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 병원과 보건소를 증설하는 사업 또한 와드의 계획을 계승했다.
 
  물론 발전을 추구하는 개발도상국이라는 특성상 위의 국책 사업들은 당연히 추진해야 할 것들이기에 전 정부가 입안했다 하여 막무가내로 없앨 수는 없었을 수도 있다. 또한 살 대통령이 신축 국립 경기장에 와드 전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데는 정치적으로 복잡한 계산, 특히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대한 셈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임 대통령에 대한 악연이나 정적 관계를 뛰어넘어 전임자를 세네갈 역사에 자리매김하도록 만든 전통을 세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는 수많은 논란을 낳은 와드가 프랑스 식민 정책의 앞잡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세네갈 티라이외르를 기리는 날을 제정하고 식민의 잔재라는 평가를 받는 ‘뎀바와 뒤퐁’ 동상을 다카르역 앞으로 옮기며 역사 인식의 균형을 강조하는 족적을 남긴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업적이다. 부정부패를 비롯한 논란이 따르지만 정적이라도 존중하며 안정된 정정과 정치 문화를 쌓아온 세네갈의 현대 정치사는 이런 점에서 아프리카에서 흔치 않은 사례로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고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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