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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戰雲 감도는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동맹전략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글 : 홍태화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관계학부 3학년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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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자유주의적 선택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혼차루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
⊙ 美, 우크라이나 중시하면서도 나토동맹 유지 위해 노드스트림 2 완공 용인…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역전략의 일부일 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중국이 대만 공격할 경우, 미국은 대만에 더 신경 쓸 것
러시아와의 긴장이 심화되고 있던 2021년 12월 5일 우크라이나군이 다음 날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국군의 날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긴장상태가 예사롭지 않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다. 2022년 초에 대대적인 침공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21년 11월 16일, 리오토 펠로(Liautaud Fellow)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 와 있는 올렉시 혼차루크(Oleksiy Honcharuk) 우크라이나 전 총리의 연설이 있었다. 혼차루크 총리는 만 35세의 나이로 우크라이나 총리를 지냈다. 역대 최연소 총리였다. 연설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우크라이나-러시아 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대상으로 벌이는 러시아의 ‘전쟁’이다. 이는 위기(crisis)가 아닌 전쟁(war)임이 확실하며, 작금의 서방의 안일한 태도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만 과거 소련의 공산주의에서 루스키 미르[Russkiy mir=러시아 세계(Russian World)]로 바뀌었을 뿐, 조지 케넌이 ‘긴 텔레그램(Long Telegram)’에서 지적한 러시아의 편집증적인 공세주의는 여전하다. 루스키 미르는 러시아 정교회를 정신적 기반으로 한 범(汎)슬라브국가를 건설해 서방의 도덕적 부패로부터 문명을 구원함을 말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이유는 단순히 지정학적(地政學的)·경제적 이유가 아닌 이런 마인드셋(mindset)이 가장 중요하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우크라이나를 타락한 서구문명으로부터 구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사진=조선DB
  왜 하필이면 우크라이나가 타깃이 되었는가?
 
  첫째, 우크라이나는 슬라브, 정교도 국가이지만 동시에 서구(西歐)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는 루스키 미르에 대한 치명적인 도전이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셋째, 위의 두 이유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번영한다면 러시아는 두뇌 유출(brain drain)을 겪게 될 것이다.
 
  즉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자유주의적 선택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다음 세 가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대(對)러시아 제재(制裁)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제재가 구체적으로 언제 도입되고 언제 해제될 것인지를 명확히 하여 예측가능성을 부여해야 한다. 행정부가 아닌 사법적 권한으로 제재를 유지해야 하며, 도발에 따른 추가적인 제재가 아닌, 상황 개선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수위가 올라가는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러시아의 정보전(情報戰) 기구들을 무력화(無力化)시켜야 한다. 정보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조직적인 정보전으로부터 자국(自國)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위태로운 민주주의 국가들을 위한 ‘마셜플랜’을 실행해야 한다. 현재 주어지는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武力으로 국경 再설정 시도 용납할 수 없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021년 11월 10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사진=AP/뉴시스
  일부 서방 학자들은 러시아의 조지아·우크라이나 개입이 나토(NATO)의 동진(東進)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2000년대 나토가 회원국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소련 해체 후 완충국(緩衝國)들을 잃은 러시아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러시아는 크림반도 획득을 통해 흑해(黑海) 진출을 노리고 지중해(地中海)·중동(中東)·북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하려 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혼차루크 총리는 지정학적인 요인 이상으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권위주의와의 범지구적 전쟁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두 가지 문서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우크라이나 공동성명이다. 2021년 9월 1일 발표된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성명(Joint Statement on the US-Ukraine Strategic Partnership)〉에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워싱턴의 자유주의적 비전이 드러나 있다. 성명문은 양국 관계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범지구적 대결의 중심에 있다고 설명한다. 성명문 1항은 ‘안보와 국방’을 다루며, 21세기에 무력(武力)으로 국경을 재설정하려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으며,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주권(主權) 침해라고 지적한다. 2항은 ‘민주주의, 정의와 인권’을 주제로 하며,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보편적인 가치로 엮여 있다고 정의한다. 미국이 유럽의 일부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을 강화하려는 우크라이나의 노력을 보조하며, 우크라이나 내 사법개혁, 인권 증진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술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2021년 11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간 회담에서 〈미-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헌장(U.S.-Ukraine Charter on Strategic Partnership)〉을 통해 공인되었다.
 
 
  우크라이나는 冷戰 시대 西獨
 
마이클 맥폴 전 駐러시아 미국대사.
  둘째는 전 주러시아 미국대사였던 마이클 맥폴 현 스탠퍼드대학 교수의 《워싱턴포스트》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기고문이다.
 
  맥폴 교수는 오바마 정부의 대(對)러시아 관계 리셋(Reset)의 주역이었으며, 미 국무부의 대표적인 러시아통으로 알려져 있다. 맥폴 교수는 우크라이나를 냉전(冷戰)시대의 서독(西獨)과 비교하며, 민주주의와 독재 간 전 세계적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실험’이 실패하면 지역 전체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 경고한다. 군사 원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재건에 힘을 써야 하며, 친러시아 티비 네트워크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맥폴 교수는 또 러시아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며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중요성을 역설한다.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부상(浮上) 후 워싱턴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강했다. 러시아는 저물어가는 강대국이며, 이데올로기가 부재(不在)한 극단적 실리주의(實利主義) 국가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푸틴의 러시아는 이러한 예상을 깨고 러시아 정교회의 가치, 반(反)자유주의, 반민주주의, 반서방을 기치로 대내외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맥폴 교수는 푸틴의 20년 집권을 두 기간으로 나눈다. 첫 10년(2000~ 2010년)은 러시아를 국내적으로 ‘정돈’하는 과정이었다. 관영(官營)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민주주의 운동을 짓밟고, 새로운 역사관을 확립하였다. 러시아 정교회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성(性)소수자들을 탄압했다.
 
  2010년 이후 러시아는 해외로 이러한 가치들을 수출하고 있다. 크렘린은 관영매체 RT(Russia Today)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는 뉴스채널이 되도록 지원했다. 특히, 서방의 기독교·전통적 가족 가치와 러시아의 정교 가치를 연계하여 좌파의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지친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미국인들, 우크라이나 보호 위해 미군 투입 찬성
 
2014년 4월 16일 우크라이나 동부 크라마토르스크 인근에서 러시아 국기를 달고 도심으로 진격하는 장갑차들. 이 장갑차를 탄 병력은 “우리는 親 러시아 무장 세력에 합류한 우크라이나군”이라고 주장했다. 사진=AP/뉴시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중국과 러시아를 이데올로기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지정학적인 위협뿐 아니라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고 있음을 직시했다. 특히 러시아가 민주주의 사회에 침투하여 정치·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不信)을 키우며 미국과 동맹국 간 균열을 노린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2014년 크림반도 침공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내 무력을 통한 첫 국경 현상 변경으로 주목하며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러한 입장들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변함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의 역할은 막중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구(舊)소련 연방국가 중 가장 인구가 많으며, 지역 농업 생산과 방위산업의 핵심이다.
 
  지난 30여 년간 서방과 동방 사이에서 우크라이나의 행보는 늘 미국의 관심사였다. 2004년 오렌지혁명으로 2000년대 초반 구소련 연방 국가들을 휩쓸었던 색깔혁명(Color Revolution)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현재 유럽에는 반자유주의 열풍이 불고 있다. 헝가리·체코·세르비아 등지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권위주의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성공적인 민주주의 체제로 만들어서 이 기류를 역전시키려 한다. 맥폴 교수는 국무부의 ‘민주주의·인권·노동국’을 공공외교 부서에 편입시켜 미국의 대외정책 핵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바마-트럼프를 거쳐 고립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미국 사회에서 우크라이나가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21년 7월 실시된 시카고 카운슬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군을 투입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단순히 지정학적 중요성을 넘어, 권위주의와의 열전(熱戰·Hot War)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미국 국민 또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지도층은 미국에 안보공약, 구속력 있는 지원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나토 가입을 희망한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Budapest Memorandum)를 통해 국제사회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했었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주권 존중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지 않는다. 집단 안보 체제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계산도 있지만, 결국 손해를 보더라도 자유주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해당 기구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에 버금가는 경제적·법적·정치적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열렬한 지지자인 맥폴 교수도 나토 가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트럼프와 바이든
 
  우크라이나를 향한 미국의 시선은 한층 더 복잡하다. 2020년 초, 우크라이나 지도층은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반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늘리고,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가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은 국내 정치적 이유로 군사 원조를 중단하기도 했으며, 이것이 탄핵 스캔들로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자체가 미 정국에서 금기어(禁忌語)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가 푸틴의 ‘카리스마’에 매력을 느끼고 개인적인 친분을 추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러시아에 강경책을 펴겠다고 공언했으며, 푸틴을 ‘살인자’로 규정했다. 또한 부통령 임기 중 있었던 2014년 크림반도 위기 당시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확전(擴戰)을 우려한 다수의 참석자와 달리 홀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주장했다고 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20년 12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이 전임자보다 우크라이나를 더 잘 이해한다”며 바이든의 당선을 반겼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후 크림반도 침공,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등을 이유로 러시아 기업과 주요 인물들을 제재 중이다.
 
  하지만 미국-우크라이나 관계는 예상 밖으로 복잡하다. 2021년 8월 우크라이나 학자·사회운동가·국회의원 및 전·현직 지도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에 항의하는 집단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백악관은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양국의 의견 불일치에 공개적으로 불평하는 것에 대해 언짢다는 뜻을 표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노드스트림 2
 
  갈등의 중심에는 노드스트림 2가 있다. 노드스트림 2는 발틱해저(海底)로 1230km에 달하는 송유관(送油管)을 독일에 연결하는 프로젝트이다. 전면 가동 시 독일의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이 2배가 될 예정이며, 독일에 도착하는 가스는 유럽 전역에 수출될 것이다. 2011년부터 작동 중인 노드스트림 1에 이어 노드스트림 2 또한 러시아 국영회사 가즈프롬이 운영하며 프랑스·오스트리아·네덜란드·독일 회사들이 공사에 참여해왔다. 워싱턴은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수출이 늘어날 경우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을 우려해 다양한 제동을 걸었다.
 
  노드스트림은 우크라이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러시아는 기존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통하는 송유관을 통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수출해왔고, 우크라이나에 정기적으로 통행수수료를 지불해왔다. 하지만 노드스트림 2 완공을 목전에 두면서 이미 지난 10개월간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가 30% 감소했다. 노드스트림 2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우크라이나는 매년 30억 달러의 수수료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은 그나마 가장 강력한 비(非)군사적 대러시아 억제력이다. 우크라이나에 내부적인 혼란이 생기면 러시아의 가스 수출길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중앙·동유럽 국가들은 워싱턴의 포기와 베를린의 이윤추구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라덱 시코르스키 전 폴란드 국방장관은 노드스트림 1을 몰로토프-리벤도르프 조약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역전략의 일부일 뿐
 
  워싱턴은 유사입장국(like-minded states)들의 연합으로 자유주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유럽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전쟁의 격전지이다. 독일·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에서 ‘푸틴 동조자(Putinversteher)’들의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워싱턴과 유럽주의자들은 트럼프 시절에 망가졌던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유로존 위기, 난민(難民) 문제 등으로 분열된 유럽을 단결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결국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노드스트림 2에 대한 최대 압박을 통해 시간을 조금 벌어주기보다는 대서양 관계 회복을 위해 노드스트림 2의 완공을 묵인하는 쪽을 선택했다. 노드스트림 2는 2021년 9월 완공됐다.
 
  대신 미국은 2021년 8월 독일과의 공동성명문에서 양국은 러시아가 노드스트림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공표하고,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대체 에너지 산업 육성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이 약속을 매우 시니컬하게 보고 있다.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항복문서가 아니냐는 거친 표현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노드스트림을 통해 유럽을 미국과 분리시키고, 유럽-중국, 유럽-러시아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지가 있다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음 또한 자명하다. 그러나 유럽과의 관계 경색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재를 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주저하는 이유는 결국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포괄적인 러시아 압박을 위해서는 유럽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도 결국 미국의 지역전략의 일부이지, 그 핵심은 아니다.
 
 
  한국의 포지셔닝은?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대에서 군사훈련 중인 러시아군. 2022년 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전체주의와의 범지구적인 대치 상황에서 우리의 포지셔닝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일관된 외교 노선을 위해서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국내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언론재갈법,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제정하고 북한의 인권유린, 중국의 국제질서 파괴에 침묵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국제사회도 조금씩 한국의 ‘일탈’을 주시하고 있다. 유엔은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했으며, 북한인권결의안을 주도하지 않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주시한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신장위구르 탄압, 홍콩 문제를 중국 내부 문제로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해당 이슈들을 보편적 가치가 아닌 ‘국가 특수성’의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당당한 중견국 외교’를 주장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범지구적 대치 상황에서 우리의 입장이 불분명해지는 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 또한 불분명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투쟁은 물리적으로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유럽에 러시아가 있다면 아시아에는 대만이 있다. 많은 서방 학자들이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군사협력을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주시한다. 두 권위주의 국가가 도발 타이밍을 공모하거나, 한쪽이 행동에 나서면 다른 나라가 미국의 시선이 돌아간 틈을 타 무력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워싱턴은 대중(對中) 신냉전의 주전장인 대만에 더 힘을 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만을 잃으면 반도체 핵심 설비가 중국의 손아귀에 넘어가며, 제1열도선이 관통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두 개의 대규모 분쟁에 대대적으로 개입할 여력이 없다. 펜타곤은 2010년 공식적으로 ‘두 개의 전쟁(Two War Doctrine)’을 포기했다. 두 개의 대규모 전면전(全面戰)을 동시에 치른다는 냉전시대 독트린을 철회한 것인데, 결국 그만큼 동맹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역할 또한 일정 부분 요구될 것이며, 주한미군 또한 차출될 것이다. 북한이 이 안보 공백을 악용하려 든다면, 그리고 미중 대결 속에서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 요구된다면, 우리 안보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가?
 
 
  미국의 ‘큰 그림’에 없으면 희생당할 수도
 
  셋째, 미국의 ‘큰 그림’에 없으면 희생당할 수 있다. 세계적인 지정학 석학 로버트 카플란은 최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동맹국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했다. 표현이 다소 직설적이지만 결국 미국의 큰 그림, 즉 대전략에서 실종된 국가는 필요시 희생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특정 콘텍스트에서 해당 국가가 전략적 중요성이 비교적 떨어질 때이다.
 
  둘째, 해당 국가의 지도부가 오판(誤判)할 때이다.
 
  노드스트림 이슈에서 외면받은 우크라이나는 첫 번째에 가깝다. 미국의 대서양 관계 재설정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중요도가 평가절하되는, 피할 수 없는 난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딜레마에서 안전한가? 지금 한국의 행보를 보았을 때는 두 번째 요인이 첫 번째 요인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결국 중국을 제1열도선 안에 가두고,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것이다. 워싱턴은 베이징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다. 헤리티지연구소 등 보수주의 싱크탱크에선 ‘경쟁자’라는 용어도 과분하며 사실상 적(敵)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고립주의 성향이 여전히 강한 미국 국내 여론을 생각해서라도 이러한 노력에서 미국 동맹국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미일동맹,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를 바탕으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한국 내에서는 이러한 소용돌이에서 양자택일(兩者擇一)은 위험하다는 주장이 보편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혹은 미중이 화해 단계에 들어설 때까지 전략적 인내심,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정답인가?
 
 
  “우크라이나는 이미 전쟁 치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초강대국이 아니다. 범세계적인 비전을 담은 세계 대전략을 수립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의 대전략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틈새시장’을 노려 지역전략을 설정하여야 한다. 미국의 큰 그림에 대한민국을 억지로 끼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 흐름에 맞춰 그에 부합하는 우리 스스로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차루크 총리는 스탠퍼드대학 연설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서방 진영이 이 위협의 심각성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이 전쟁을 대대적으로 치르고 있다. 이제 제2의 전선을 열어줘야 할 때다.”
 
  이러한 범지구적 대치 상황에서 우리의 역할과 입장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때이다.
 

  [인터뷰] 올렉시 혼차루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
  “우크라이나는 권위주의와의 全面戰의 最前線에 서 있다”

 
  ⊙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 지배를 원한다는 주장은 러시아의 정교한 조작”
  ⊙ “한국이 아시아의 모범이 되었듯이, 우크라이나의 성공도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의 모델이 될 것”
  ⊙ “권위주의와의 범지구적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스탠퍼드대 교정에 선 혼차루크 전 총리. 사진=홍태화
  2021년 12월 6일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올렉시 혼차루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를 인터뷰했다. 1984년생인 그는 경제발전·무역부 장관, 대통령실 부실장 등을 거쳐 2019년 8월~2020년 3월 우크라이나 총리를 지냈다. 현재 리오토 펠로로 스탠퍼드대학에 와 있는 그는 후드티에 오리털 조끼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필자에게 “올렉시라고 부르라”고 했다. 일국의 전직 총리가 아니라 대학교수, 아니 조교 같은 느낌이었다.
 
  — 일각에선 내년 초 러시아 침공이 임박했다고 우려하는데, 총리는 얼마 전 연설에서 전면전의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러시아의 입장에선 전술적인 부분보다 전략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쟁에서 지면 의미가 없다. 모두가 러시아의 침공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실수다. 크렘린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여 우크라이나인들을 단합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대신 계속해서 국경 긴장을 고조시키고, 난민 사태를 악용하고 에너지 협박을 통해 유럽을 조종하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전쟁’이다. 러시아는 이미 무고한 인명 피해를 내고 있고, 정적(政敵)을 암살하고 외부 사회와 정치를 사보타주하며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 아니면 무엇인가?”
 
 
  東西 우크라이나 갈등
 
2014년 3월 크림위기 당시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親러시아계 주민들은 러시아 깃발을 흔들며 러시아와의 합병에 찬성했다. 사진=AP/뉴시스
  — 서구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동부·서부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오랜 기간 형성된 상이한 문화와 역사를 생각했을 때 동부 지역이 러시아의 영향력에 들어가는 건 자연스럽다는 말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지역에 따라 친러시아·친서방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유럽에도 국가 내에 다른 지역들과 현저히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진 지역들이 있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만 봐도 그렇다.
 
  우크라이나에 지역별 문화적 차이는 있어도 이것이 친러·반러 구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하기 전까지 소위 ‘우크라이나 내부 갈등’은 존재하지도, 논의되지도 않았다. 물론 러시아는 지난 수백 년간 국경 근처의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자신의 문화권으로 동화(同化)시키려 했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다른 곳들보다 러시아의 정보전이 더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적 정체성, 키예프의 정부(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대한 지지는 국가적으로 골고루 강하게 분포되어 있다.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의 지배를 원한다는 주장은 러시아가 정교하게 조작해온 내러티브다.”
 
  —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있나.
 
  “일례로 러시아가 도네츠크에 진입하자 지역 유명 축구팀인 샤흐타르 도네츠크는 본부를 키예프로 옮겼다. 이때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팀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지역 간 다소 문화적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감정적·정치적 갈등의 골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
 
 
  “법의 지배 확립 필요”
 
  — 그렇다면 러시아 침공 전의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시아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떨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나.
 
  “동쪽으로 갈수록 친러시아 정치 세력들의 영향력이 강해진다는 주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지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가장 러시아에 호의적인 지역들도, 높이 잡아야 인구의 40% 이하만 푸틴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도 각 지역의 경제구조와 사회 모습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친러·반러 구분이 아니다. 동부 우크라이나에는 산업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서부보다 노조(勞組)의 입김이 강하다. 서부에도 러시아와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들이 있지만 주민들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내부적인 문제에 더 집중하고 싶어 한다.”
 
  — 어떤 문제들이 중요한 국내 정치 이슈인가.
 
  “무엇보다 ‘법의 지배’의 확립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평판이 지나치게 나쁘다. 부정부패가 판치는 나라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보통 사람들의 인식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문제도 있겠지만 러시아의 위협이 ‘우크라이나 디스카운트’를 가중시킨다. 지금처럼 러시아가 긴장을 고조시키면 투자 리스크가 증폭하고 자원 가격이 상승한다.”
 
 
  “서방의 태도 안일”
 
총리 재임 시절 의회에 출석한 혼차루크 전 총리. 사진=AP/뉴시스
  — 미국에 어떤 도움을 기대하나.
 
  “두 가지 측면을 기대한다. 첫째, 미국은 전 세계적인 부패와의 투쟁을 이끌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미 푸틴의 비자금과 비밀 계좌들을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계좌 동결 및 압수, 혹은 적어도 관련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둘째, 언급하였듯이 러시아의 도발은 우크라이나의 성장을 저지한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군사적·경제적 압력을 가해준다면 우크라이나 또한 성장 동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토가 흑해에서 존재감을 보여준다면 더 많은 투자자가 오데사를 찾을 것이다.
 
  한국·대만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또한 권위주의와의 전면전의 최전선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는 단순히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최전선에 서면서 받는 피해와 리스크를 후방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서방의 태도를 어떻게 보나.
 
  “서방 진영의 안일한 태도로는 지금의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 작금의 유럽에서 민주주의는 곧 약점(弱點)으로 치부된다. 권위주의 국가들은 위기에 빠르게 대응한다. 국가적 자원을 신속하게 총동원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적 합의와 절차적 정당성이 필요하다. 국가적 담론은 거의 늘 분열되어 있다. 러시아는 이러한 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주변국들의 국민들을 분열시키려 한다.”
 
  — 그러한 기울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계속해서 민주주의로 향해야 한다는 입장인가? 중국과 러시아는 바로 그런 ‘이점’들을 부각시켜 자신들의 정치 모델을 홍보한다.
 
  “권위주의는 장기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술적으로, 단기적으로는 유리한 부분이 크다. 이 지역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성이 국내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회를 만든다.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다. 개인의 자유가 그 핵심에 있다. 한 명의 개인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를 가지며 존중을 필요로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철권을 통한 통제사회보다 사회 구성원 간의 자발적인 협력이 더 견고하다. 장기적인 효율성을 보더라도, 열린 사회가 닫힌 사회보다 창의성을 배양하는 데 유리하다. 최근 유행하는 메타버스만 보더라도, 21세기 국가 발전은 결국 각국이 창의성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지가 결정한다고 본다.
 
  또한 권위주의 국가에선 체제 유지비용이 크다. 독재자들은 자국민들을 감시하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그리고 이러한 행보는 돌이킬 수 없다. 경제적 부담이 두려워 고삐를 늦추는 순간 반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수(少數) 혹은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사회는 권력 이양의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그 누구도 푸틴이 죽으면 러시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큰 약점이다.”
 
 
  푸틴의 러시아
 
  — 푸틴이 죽거나 사임한다면 러시아의 행보 또한 달라질까.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을 봤을 때, 문제의 핵심은 푸틴과 그의 세력들에게 있다. 일반 러시아 국민들은 우크라이나를 혐오하지 않는다. 푸틴이 물러난다면 새 지도자가 새 길을 개척할 수 있다.”
 
  —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는 진심이라고 보나.
 
  “이미 러시아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은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다수의 러시아 국민은 푸틴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이것은 푸틴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닌, 난세 속 영웅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는 외부 안보위협에 대한 편집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렘린은 정보 공작을 통해 국내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외부 세력들이 러시아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RT(러시아 투데이) 등의 관영매체, 정보기관을 통해 전파한다. 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 러시아인들은 이웃 국가들을 호의적으로 대하기 어렵다. 러시아 국민들이 이런 ‘독극물’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용감한 국민들이 폭군을 타도하는 예는 많지 않나.”
 
 
  “우크라이나, 중국에도 압박”
 
  — 소련 붕괴 이후 확산되어가던 동유럽의 민주주의가 최근 후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성공이 더욱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여러 국내 문제가 있지만 홀로 건강한 민주주의로 성장했다. 유럽연합 멤버인 헝가리와 폴란드의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는 갈수록 강해진다. 우크라이나의 성공이 계속되고 이것이 지역적인 움직임을 일으킨다면, 크렘린으로서는 당장 자신들의 안전부터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국가적으로는 두뇌 유출이 이어질 것이다.”
 
  — 최근 우크라이나와 더불어 대만을 둘러싼 긴장 또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권위주의와의 대치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나.
 
  “대만해협 상황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대만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전선이다.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러시아의 도발로 우크라이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대만의 상황도 위험해 보인다.”
 
  — 혹자는 미국이 이 두 개의 전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에 집중된 관심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서방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늘 강조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 그리고 러시아에 맞설 결의이다.
 
  미국에서조차 많은 이가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국의 성공적 민주주의가 아시아의 모범이 되었듯이, 우크라이나의 성공과 발전 또한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의 모델이 될 것이다. 비단 동유럽만의 일이 아니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도 우크라이나에 영감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중앙아시아 전체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와 중국을 긴장시킬 것이다. 권위주의와의 범지구적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우크라이나의 번영은 그 자체로, 그리고 파생되는 효과로 중국에도 큰 압박이 될 것이다.”
 
  — 권위주의와의 범세계적 대결에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많다. 이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윈스턴 처칠이 1938년 히틀러와의 뮌헨회담 후 귀국한 체임벌린 총리에게 던진 일침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당신은 전쟁과 불명예 중에서 불명예를 택했습니다만, 곧 전쟁도 오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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