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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新민족주의 시대가 오는가

사그라져가는 통합 유럽의 꿈, 파편화돼가는 유럽

세계화, 대량이민에 대한 반발이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야기

글 :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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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 이민 유입과 旣成 체제에 대한 반감이 주된 동기
⊙ 동유럽 국가들 편입으로 인구 이동이 더욱 늘면서 ‘문화적 반발’ 더욱 거세져
⊙ 헝가리·폴란드에서는 권위주의로 退行

李榮祚
1955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역임. 現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 저서 《현대정치경제학의 주요 이론가들》(공저) 등
영국이 EU 탈퇴를 공식 선언한 지난 1월 31일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런던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영국 국기와 ‘독립기념일’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했다. 사진=뉴시스/AP
  지난 2월 1일 영국이 드디어 유럽연합(EU)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2016년 6월 유럽연합 잔류와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수를 약간 넘는 51.9%의 유권자들이 탈퇴를 지지한 결과이다. 그동안 구체적인 탈퇴 방법을 두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실상 제2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로 불린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함으로써 드디어 확정이 된 것이다.
 
  영국의 탈퇴로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ECSC) 발족 이래 70년 가까이 진행돼온 유럽 통합의 꿈은 큰 상처가 났다. 교류가 확대되고 경제가 통합되고 국가 역할이 축소되면, 국가와 연결된 과거의 민족 정체성(nationalism)이 아닌 새로운 범(汎)유럽적 정체성(Europeanism)이 자라날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민족주의의 재등장은 국가 수준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한때 어쩔 수 없이 영토국가(territorial state)에 편입되었던 지역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당장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가 유럽연합 잔류를 명목으로 다시 한 번 연합왕국(United Kingdom·UK)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할 공산이 크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분리독립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래저래 통합유럽은 근대 초기의 사분오열(四分五裂)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한 인상이다.
 
  각국의 정치도 파편화(破片化)하고 있다. 주류(主流)를 형성했던 좌우 중도(中道)정당들이 세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사회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의 예에서 보듯이, 중도좌파 정당들이 특히 입지를 크게 상실하고 있다. 이들의 약화로 빈 공간을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채우고 있다. 세력이 약화된 중도우파 정당은 점점 더 오른쪽으로 이동해 급진화하고 있다. 이 정당들은 대개 통합유럽에 회의적이다. 유럽연합 수준에서도 회원국 수준에서도 통합회의론자들이 점점 득세하는 모습이다.
 
 
  브렉시트: 전체를 보여주는 부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에 답하기 앞서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을 잠시 살펴보는 게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과거에도 늘 ‘영광된 고립(splendid isolation)’을 내세우며 대륙과 거리를 유지해왔던 영국은 처음부터 유럽 통합에 참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마침내 1973년 유럽 통합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통화(通貨)정책의 자율성을 얼마간이라도 지키기 위해 통화 통합에서는 마지막 단계에서 빠졌다.
 
  2016년 당시 세계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통합에 회의적인 여론은 가입 당시에도 존재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크게 증폭되었다.
 
  통합회의론을 부추기며 동시에 이에 편승한 영국독립당(UKIP)의 약진은 보수당 내부의 갈등도 격화시켰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다문화(多文化)주의 이민정책 반대를 공약한 영국독립당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의석을 크게 늘렸다. 같은 해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27.5%의 득표율로 영국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했다.
 
  이것은 곧바로 집권 보수당 내부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을 달래고 지지층이 영국독립당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수당은 2017년 말까지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약했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의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이 탈퇴에 찬성한 주된 동기는 이민 유입과 기성(旣成) 체제에 대한 반감이었다. 탈퇴에 반대한 사람들은 탈퇴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중요한 결정 요인이었다. 사회인구학적인 균열도 선명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못사는 사람들은 대거 탈퇴에 찬성한 반면, 대학 교육을 받은 도시의 젊은 유권자들은 탈퇴에 반대했다. 지역적 분포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세계화와 유럽 통합으로 혜택을 받은 지역에서는 탈퇴 반대가 많았고,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탈퇴 찬성이 많았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탈퇴를 결정한 회원국은 없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가져온 정서는 특별히 영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화와 대량이민으로 낙오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그러한 변화를 환영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유럽 전역에서 통합에 회의적인 정당에 대한 지지를 증가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유럽의 정치 풍경을 파편화하고 있다.
 
 
  세계화와 국가 기능의 축소
 
  ‘민족’의 이름으로 빚어진 참극의 기억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정치적으로 바르지 않은’ 일종의 금기어(禁忌語)였다. 그러던 민족주의가 과거와 조금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부활한 것은 1970년대 이래 전개된 세계화(유럽의 경우 유럽 통합)의 심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에서 1970년대 초까지의 세계 경제질서는 자본주의 발달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보면 매우 예외적이었다. 기본적으로 경제에도 국경의 장벽이 높이 쳐진 시기로, 무역은 자유화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이를 제외한 경제활동은 국경 내부에 머물렀다. 자본도 국경 내에 머물렀다. 환율(換率)정책을 제외한 거시(巨視)경제정책은 철저히 각국의 주권 사항이었다.
 
  비교우위론이 설명하듯이 자유무역은 이에 참여하는 국가 모두가 혜택을 본다. 하지만 전체적인 국부(國富)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는 개인이나 집단, 부문이 발생할 수 있다. 개별 국가가 경제적 주권을 누리고 있던 이 시기에는 피해자들이 정치 과정을 통해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조절도 가능했다.
 
  하지만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전후 경제질서의 황금기는 끝이 났다. 그동안 독과점(獨寡占)의 과실(果實)을 누리며 국내에 머물던 자본은 좀 더 높은 이윤율을 찾아 국제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해외직접투자의 형태를 취했지만, 1980년대 이후 각국의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 축소와 자유화로 자본 자체의 국제적 이동성이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각국은 환율의 안정을 위해서는 거시경제정책, 특히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포기해야 했다. ‘자본의 이동성’ ‘환율의 안정’ ‘거시경제정책의 자율성’,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이를 입증한 캐나다의 로버트 먼델과 마커스 플레밍은 그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무역의 피해자나 기타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정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경기 조절 기능도 약화되었다.
 
  세계화는 마침내 사람의 이동으로도 이어졌다.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도 생산 요소 가운데 자본, 토지에 이어 노동은 가장 나중에 상품화되었다. 세계화 과정에서도 가장 늦게 국제적 이동이 시작된 것은 사람이었다.
 
  계속 낮아지는 국경 장벽은 결국 상당한 규모의 인구 이동을 가져왔다. 심리학자들의 실험에서 입증되었듯이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 증가는 이해보다는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민의 유입도 같은 효과를 냈다. 이질적인 문화와 관습, 언어,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근거리 접촉은 이해와 포용보다는 오해와 배척을 가져오는 한편, 기존 주민들로 하여금 문화적·언어적·종교적으로 익숙한 사람들과의 일체감을 강화시켰다.
 
 
  移民의 유입과 正體性의 정치
 
2015년 8월 철조망 밑을 통해 헝가리 국경을 넘는 시리아 난민들. 난민과 이민의 증가는 유럽의 신민족주의를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이다. 사진=뉴시스/AP
  유럽연합의 경우 통합의 정도가 높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도 컸지만 부정적 효과도 강하게 나타났다. 소박하게 공동시장으로 출발했던 유럽 통합은 마침내 통화 통합, 국경 철폐, 사법(司法)과 행정의 통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국가 주권의 핵심적인 측면들을 희석시켰다. 이제 국가는 거시경제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인력의 이동에 대한 통제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우선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에 대처하기 어렵게 되었다. 유럽연합은 역사적 경험, 경제 구조, 정치적 전통이 판이한 중부 및 동남부 유럽의 12개 국가도 가입시켰다. 유럽연합 수준의 결정 작성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동시에 유럽연합의 정책이 주민의 선호에 부응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전에는 참을 만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과 긴축을 필요로 했지만, 그 고통은 취약 국가와 취약 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었다. 회원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만큼 비난의 화살은 유럽연합으로 향했다. 그 결과, 통합회의론이 득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어쩌면 경제 문제보다 더 큰 충격은 유럽 통합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 이동에서 비롯했다(브렉시트 당시 영국의 외국 태생 주민은 전체의 15%에 달했다). 솅겐협약으로 사실상 국경이 사라지면서 이미 1990년대부터 오스트리아·네덜란드·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급진 우파정당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었다. 동유럽 국가들의 편입으로 인구 이동이 더욱 늘면서 ‘문화적 반발(cultural backlash·하버드대학 피파 노리스 교수의 표현)’은 더욱 거세졌다.
 
  사실 이 우파정당들의 경제적 메시지는 변화해왔다. 초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자유시장경제 정책을 표방했지만 현재는 보호주의적인 조치들을 선호하는 정당도 많다. 하지만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한 메시지에는 변화가 없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그리고 2014년 유럽연합 시장에 대한 접근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이민을 제한하려고 한 스위스에서 보듯이 때로는 통합 유럽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무시하기도 한다.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의 등장을 불평등의 심화 같은 경제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방증(傍證)이다. 그만큼 정체성의 새로운 자각과 관련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유입에 대한 공포와 반발은 2015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대규모로 난민이 유입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사실 유럽통합회의론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극단 모두에서 발견된다. 좌파는 유럽연합을 신(新)자유주의적 음모로 본다. 이들에게 유럽연합은 유리한 법률을 얻어내기 위해 로비를 펼치는 거대자본을 위한 존재이다. 우파는 유럽연합을 지나친 규제를 부과하며 노동의 이주를 조장해 전통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관료주의적 괴물로 본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은 ‘포퓰리스트 민족주의’이다. 포퓰리즘은 다른 특징도 있지만 기성 체제에 대한 반감과 ‘우리’와 ‘남’을 나누는 타자화(他者化·othering)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유럽연합이 외부의 적이라면 이민과 난민은 내부의 적이다. 소수자인 이민을 타자화함으로써 원래의 주민(민족)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는다. 혹시라도 민족 내부에서 이러한 사회적 오스트라시즘(ostracism·도편추방)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진정한 민족의 일원이 아니라거나 민족의 반역자라고 매도한다.
 
  물론 포퓰리스트 민족주의라고 해서 모두 같은 모습을 하지는 않는다. 각국의 특수한 상황과 사회적 단층선(斷層線)을 반영해서 각기 다른 내용과 형태를 취한다. 네덜란드의 자유당은 극렬하게 반(反)이슬람적 강령을 내걸고 있으며, ‘그리스판 나치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연합 ‘황금새벽(Golden Dawn·GD)’은 폭력행위도 불사한다. 헝가리의 청년민주동맹(Fidesz·피데스)은 기존 소수민족인 유대인과 집시에 더해 최근에는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북유럽에서는 지리적 균열과 중첩된다. 여기서는 ‘애국적인’ 농촌 주민들이 배알 없는 대도시 이웃들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폴란드의 민족주의도 북유럽과 비슷하게 농촌과 도시의 균열을 반영하지만, 과거 폴란드를 침공한 러시아와 독일인도 민족의 적이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AfD)’의 경우 이민에 반대하는 것은 여느 민족주의 정당과 다르지 않지만, 이에 더해 남부 유럽의 약체(弱體) 경제들을 구제하는 데도 반대한다. 그들은 ‘왜 열심히 일하는 우리가 저 게으른 자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 카탈루냐 민족주의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보인다. 물론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운동에서는 역사가 더 중요한 요인이지만, 왜 열심히 일해 더 잘사는 카탈루냐가 게으른 카스티야를 도와야 하는가 하는 사고도 이면에 깔려 있다.
 
  내셔널리즘이 포퓰리즘과 결부된 이상, 이들 세력이 집권한 곳에서는 권위주의적 퇴행이 일어날 수도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국민을 ‘보통 사람’과 청산 대상인 엘리트 기득권층으로 나눈다. 아울러 오직 자신들만이 정당한 권력의 원천인 전자(前者)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반(反)엘리트적일 뿐 아니라 반(反)다원주의적이다. 집권에 성공한 포퓰리스트들은 전통적인 엘리트들을 핵심 기구에서 영원히 몰아내기 위해 정치 과정을 폐쇄하려 든다. 이들은 선거에서 자신들이 대표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강한 지지를 내세워 이러한 폐쇄를 정당화한다.
 
 
  세계화의 勝者와 敗者
 
  빅토르로 오르반이 이끄는 헝가리의 피데스 정권과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 정권이 권위주의적 퇴행(退行)의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웃한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도 퇴행의 징후는 뚜렷하다. 이럴 경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法治)를 핵심 규범으로 삼는 유럽연합은 이런 국가를 연합 내에 유지하기 어려운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18~19세기 유럽의 내셔널리즘은 영토적 국가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언어·종교·인종 집단을 영토의 경계와 일치하는(coterminous) 정체성을 갖게 만들려는 사상이었다. 한마디로 국민(nation·네이션)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번역어 ‘민족주의’가 혈통집단을 연상시키는 것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중국에서는 네이션을 ‘국족(國族)’으로, 내셔널리즘을 ‘국족주의(國族主義)’로 번역한 사람도 있었는데, 민족·민족주의보다는 이 편이 역사적 의미에 좀 더 가까워 보인다.
 
  서구에서는 20세기 접어든 시점에서는 이 국민 건설 작업은 완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그 시금석(試金石)이었다. 전쟁을 위한 동원 과정에서 계급적 소속감보다는 국민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하다는 게 확인되었다.
 
  하지만 나치즘의 경험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적어도 서구에서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정치적 금기어가 되었다. 이렇게 사망한 줄로만 알았던 민족주의가 근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민족주의가 격세유전적(隔世遺傳的) 부활을 한 데는, 넓게는 세계화 좁게는 유럽화의 과정에 수반된 격차와 인구 이동의 증가가 큰 몫을 했다.
 
  세계화(유럽화)는 국민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자주 해외여행을 하며 외국어도 한두 개 할 줄 아는 전문직 종사자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는 곳을 떠나본 적도 없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의 상이(相異)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주의는 번창한다. 영국 에식스의 항구도시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든, 벨기에의 레이설에서 실업급여를 타고 있든 뒤처진 사람들은 공통의 열패감(劣敗感)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절을 가져온 유럽연합과 증가한 외국인 이민은 쉽게 분노 발산의 대상이 된다. 창의적인 정치인들(political entrepreneurs)이 바로 이러한 감정을 이용하거나 부추기면서 통합에 회의적인 포퓰리스트 민족주의가 새로운 운동, 새로운 정당으로 세(勢)를 불리고 있다.
 
 
  멀어져가는 ‘정치적 거인’의 꿈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대표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 결선까지 진출했다. 사진=뉴시스/AP
  전통적인 중도좌파·중도우파 정당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에서 이런 민족주의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당장에는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의 영국독립당이 그랬던 것처럼 기성 주류 정당의 강령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농후하다. 지방선거나 총선, 그리고 유럽의회선거에서 경쟁적 압력을 가해 주류 정당이 유권자를 잃지 않기 위해 정치적 노선을 바꾸게 만들 여지는 충분하다. 이미 영국의 영국독립당과 프랑스의 국민전선(Front National·FN)은 유럽의회에서는 각각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대 정당이다.
 
  두 가지 결과가 예상된다.
 
  첫째, 유럽통화회의론으로 기우는 정당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이것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첫 번째 국가이긴 하나 마지막 국가가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유럽 국내 정당 체제의 파편화와 양극화(兩極化)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미 벨기에 같은 나라는 만성적(慢性的) 정치 마비 상태이다. 2010년 선거 후 541일간 정부 구성을 하지 못했고, 2019년 선거 후에도 수개월간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스페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비교적 안정적인 독일에서조차 연립정부에 포함되는 정당 수가 늘고 있다. 유럽의회도 무수한 정당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유럽 전체를 통해 의사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유발했던 민족주의를 불식할 의도로 만들어진 유럽연합이 역설적으로 죽어가던 민족주의를 되살렸다. 그 결과, 유럽연합은 연합 수준에서도 회원국 수준에서도 파편화되고 있다. 과거 유럽연합을 두고 ‘경제적 거인이지만 정치적 난쟁이’라는 말이 있었다.
 
  심화냐 확대냐의 기로(岐路)에서 유럽연합은 ‘정치적 거인’의 꿈을 위해 확대의 길을 택했지만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 보인다.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 통합회의론이 득세할 가능성도 문제지만, 목전의 문제는 비셰그라드 4국(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이다. 권위주의적 퇴행이 계속되면 유럽연합의 규범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이들을 퇴출시켜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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