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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亡國病’ 포퓰리즘

그리스 태생 기자가 말하는 ‘복지 파라다이스’ 그리스의 쇠락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줘라”

글 : 고윤상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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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계층 무상교육·무상의료, 출근시간 대중교통비 무료, 月貰 절반은 지자체 지원
⊙ 복지 포퓰리즘 편 파판드레우 집권 8년간 경제성장률 5.2%→1.5%로 추락
⊙ 포퓰리즘 개혁 추진해도 노조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 포퓰리즘으로 복귀
⊙ 그리스 평균 청년실업률은 유로존 평균의 5배 넘어, 월급 100만원도 안 돼… 공무원들은 연금·봉급 삭감

高允相
1988년생.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연금 삭감 등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그리스인들은 ‘우리는 살기 위해 싸운다’는 깃발을 앞세웠다. 사진=뉴시스/AP
  “2009년 그리스 재정위기가 터졌을 때 그리스에 오래 살았던 교민(僑民)들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죠. 그리스 국민들에게 깊게 뿌리내린 포퓰리즘이 그리스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그동안 너무나 잘 봐왔기 때문입니다. 남의 돈으로 큰 복지혜택을 누리면서도 옆집 부자와 옆 동네 기업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전혀 몰랐던 겁니다. 그리스 내 제조업은 무너졌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도 없습니다. 주변에 취직 못 해 힘들어하는 그리스 청년이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부모 세대가 누린 복지 때문에 자식 세대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 꼴이지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30년 넘게 산 한 교민이 최근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기자는 아테네에서 여행사 사업을 한 아버지 덕에 1988년 태어난 직후부터 4년가량 아테네에서 자랐다. 당시 그리스는 사회당(PASOK) 집권하에서 포퓰리즘이 정점(頂點)에 달한 때였다. 물론 어린아이였던 기자는 그때의 일들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자는 부모님, 그리고 그리스에서 살고 있는 여러 교민과 인터뷰를 해 1980년대 그리스가 어떤 포퓰리즘 정책을 폈는지 들어보았다. 우리가 1980년대 그리스 이야기에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는 자명(自明)하다. 그리스의 포퓰리즘 정책이 현재 한국의 그것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이야기다. ‘천국을 만들겠다’며 미래세대를 생각하지 않은 채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 정치인들 때문에 지금의 그리스 청년들은 지옥으로 내몰리고 있다.
 
 
  ‘無償 복지’의 元祖
 
그리스 포퓰리즘의 元祖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
  1981년 총선에서 좌파 성향인 사회당이 승리한 후 그리스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바뀌었다. 그리스 총리가 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를 전면에 내세워 국민들의 표를 얻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줘라”라는 그의 지시는 지금 들어도 파격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단초가 됐다.
 
  1988년 당시 그리스 아테네에 살던 교민들에 따르면, 정부는 출근시각인 오전 9시까지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영했다. 전 계층을 대상으로 무상(無償)교육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학비는 물론 교재를 사는 돈까지 모두 세금으로 지원했다.
 
  전 계층 무상의료도 했다. 한국 같은 건강보험이 없더라도 그리스 국민이라면 누구든 국립병원에서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까지 일부 무상의료 혜택을 줬다.
 
  국립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진료 한 번 받기도 어려워졌다. 간단한 진료조차 몇 날 며칠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수술 예약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뛰어난 의사들은 국립병원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개인병원을 차려 주로 부자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일반 그리스 국민들은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으면 이전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한 교민은 “국립병원에 근무하던 의사가 퇴근 후 자기 개인병원으로 출근해 일하기 바빴다”고 했다. 그리스는 지금도 무상의료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는 1980년대에 개인이 내는 월세(月貰)까지 국가에서 지원했다고 한다. 집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월세를 내고 산다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월세의 50%를 세금으로 지원했다는 게 교민들의 증언이다. 임차인(賃借人)이 임대인(賃貸人)에게 월세 확인 서류를 발급받아 지자체에 제출하면, 지자체가 임차인이 낸 월세의 반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리스는 지금도 자기 소유 집이 없는 65세 이상 국민에 대해서는 한 달에 최대 약 47만원(362유로)까지 주택수당을 주고 있다. 또 1인 가구에 대해 ‘사회연대소득’이라는 명목으로 매달 약 26만원(200유로)을 지원한다.
 
  이 같은 복지 혜택은 지금 한국의 복지 수준과 비교해봐도 파격적이다. 한국은 1980년대 고속성장을 이루고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마당이었으니 그 괴리감은 더욱 컸다. 교민들이 고국의 지인(知人)들에게 “그리스는 이렇게 산다”고 얘기하면 “세상에 그런 천국이 있느냐”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공무원들, 오후 3시 반부터 ‘저녁 있는 삶’ 즐겨
 
  파판드레우는 이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기반으로 총 11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그리스는 그야말로 빚더미 위에 앉았다. 1974년 집권한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주당(ND)이 만든 ‘황금률(Golden Rule)’도 깨졌다. 신민주당의 황금률은 ‘국가재건을 위한 공공투자부문을 제외하고는 재정적자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그때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판드레우 총리가 취임 전인 1980년 22.5%였던 국가채무비율은 1983년 33.6%로 뛰어올랐다. 이듬해인 1984년에는 40.1%로 늘었다. 1993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은 100.3%까지 치솟았다. 15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1980년 9.9%였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도 1985년 15.4%로 늘었다.
 
  파판드레우 집권 전 50여 년(1929~ 1980) 동안 연(年)평균 5.2%로 세계 1, 2위를 다투던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집권 후 8년(1981~1989)간 평균 1.5%로 추락했다.
 
  경제성장률 악화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민간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대신 공공(公共)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식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공무원 처우도 끌어올렸다. 파판드레우 총리 취임 1년 만인 1982년 그리스의 공공부문 임금 지급액은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교민들은 당시 그리스는 공무원의 천국이었다고 회상한다. 한 교민의 증언이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여 분을 달리면 글리파다라는 곳에 닿습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고급 아파트가 늘어선 아테네 남부의 인기 거주지죠. 이곳의 해변은 오후 3시만 되면 그리스 여성들이 나타나 돗자리를 깔기 바빴어요. 오전 8시에 출근한 공무원들이 늦어도 오후 4시면 퇴근을 하거든요. 오후 3시 반만 돼도 바닷가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규정된 퇴근 시각 전에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일들이 많았던 거죠. 해가 질 때까지 고기를 구워 먹고 와인을 마시면서 그야말로 ‘저녁 있는 삶’을 누린 거지요. 한국이 지금 그토록 외치는 걸 그리스는 1988년에 누렸어요. 지금은 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공무원은 늘었지만 행정 시스템은 갈수록 효율이 떨어졌다. 뭐 하나 허가를 받으려면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잦았다.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등본 정도 되는 간단한 서류 발급조차 ‘도장 찍을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며칠씩 걸리기 부지기수였다.
 
  그리스 남성과 결혼해 그리스에서 30년 이상 산 한 교민의 이야기다.
 
  “공무원 1~2명이면 할 일을 3~4명씩 하다 보니 시간이 오히려 더 걸렸어요. 한국 사람들이 그리스 공무원들에게 빠른 일처리를 부탁하면 ‘천천히 하자’는 뜻의 ‘시가(σιγα´)’라는 답이 돌아왔죠. 한국이 ‘빨리빨리’를 외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그리스는 ‘시가시가’를 말하며 여유를 누렸어요. 일을 빨리 처리하려면 뒷돈을 찔러줘야 했죠. 전 여기서부터 그리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봐요.”
 
  한국은행 해외경제정보에 따르면 그리스 공공부문 종사자 4명 중 1명은 과잉인력으로 분석됐다.
 
 
  마약처럼 중독된 포퓰리즘
 
  겉은 천국이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파판드레우 총리 취임 단 3년 만에 20%대에서 40%대로 뛴 국가채무비율은 갈수록 악화일로였다. 파판드레우 총리조차 1985년 과도한 재정 확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긴축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포퓰리즘의 달콤함을 맛본 국민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1인 1표를 무기 삼아 긴축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쳐냈다. 그 사이 거대해진 공무원 조직과 해고가 불가능한 노동 경직성은 한국의 민노총 격인 그리스노조연맹을 강력한 이익단체로 키워냈다. 이들은 국가채무비율이 오를 때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서’라는 논리를 앞세워 국민들을 선동했다.
 
  포퓰리즘을 줄이려는 정치권의 시도도 번번이 좌절됐다. 그리스는 1974년 군사독재 종식 후 사회당과 신민주당이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형국이었다. 1990년 신민주당은 사회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했다. 국가채무비율이 100%에 육박하던 시기였던 만큼 과감한 긴축정책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노조연맹의 주도로 전국에서 파업이 잇달았다. 신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폭락했다. 결국 신민주당은 1993년 사회당에 정권을 다시 넘겨주어야 했다. 이는 군사독재 종식 후 재집권에 실패한 유일한 사례다. 사회당과 신민주당 양당 모두 포퓰리즘을 몰아낼 긴축재정을 쉽사리 꺼내 들지 못하게 된 배경이다.
 
  사회당이 집권하자 파판드레우가 다시 총리에 올라 포퓰리즘 정책을 강화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렸다. 1996년 파판드레우 총리가 건강상 이유로 사임하면서 총리로 선출된 사회당 코스타스 시미티스는 이전 총리와 달리 긴축재정, 국영기업 민영화, 연금(年金)개혁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조연맹의 반대 때문에 개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2004년 신민주당은 정권을 탈환해, 다시 긴축을 통한 개혁을 추진했다. 특히 경제자유, 노동유연성 확보 등의 정책을 폈다. 노조연맹은 더욱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에 맞서 신민주당은 2009년 조기총선이라는 결단을 내렸지만, 임금인상과 복지확대라는 포퓰리즘 공약으로 다시 무장한 사회당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30년 전 편하게 지낸 데 대한 청구서 지금 받아”
 
그리스 재정위기 발생 당시 그리스 총리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의 아들이다. 사진=뉴시스/AP
  이후 총리에 오른 건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였다. 게오르기오스는 확장 재정을 통한 내수 부양을 경제정책으로 제시하며 “구제금융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2010년 5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 손을 벌렸다. 2011년 취임 2년 만에 게오르기오스는 물러났다. 그리스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받은 세 차례 구제금융은 총 2600억 유로(약 342조원) 규모로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받아들인 긴축재정안은 1980년대 그리스 황금세대가 남긴 ‘청구서’였다. 2012년 7월 기준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55.6%로 같은 기간 유로존 청년실업률인 23.3%보다 2배 이상 높다. 지난 1월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39.7%를 기록했다. 지난 3월 유로존의 평균 청년실업률은 7.7%다. 독일은 5.6%, 네덜란드는 6.4%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일자리를 얻더라도 임금 수준이 낮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스는 2012년 의회에서 통과한 긴축재정안에 따라 최저임금부터 제약을 받았다. 그리스의 최저임금은 25세 이상 기준 월 586유로(약 77만원) 수준으로 정해졌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경제·사회연구소(WSI)에 따르면 이 같은 최저임금에 따른 구매력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브라질·아르헨티나 등과 비슷하다. 그리스는 최저임금을 올해 들어서야 8년 만에 650유로(약 83만원)로 11% 인상했다.
 
  아테네에 사는 한 교민은 그리스 국적을 가진 자신의 둘째 아들이 최근 그리스 최대 사립 보안회사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 교민의 둘째 아들이 3교대 주 5일 근무 조건으로 받는 월급은 750유로로 한화(韓貨)로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아들의 여자 친구는 대형 정육업체에 근무하는데 주 6일 일하고도 600유로(약 79만원)밖에 받지 못한다고 했다. 이 교민은 “지금 그리스 청년들이 받는 임금 수준은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수준”이라며 “임금 수준을 보고 있으면 한심할 정도다”고 말했다.
 
  긴축재정에 따라 판사·교수·경찰 및 군인 등 공무원에게 주어졌던 초봉 ·보너스 또한 삭감됐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공무원은 즉각 해고되거나 1년간 임금이 삭감됐다. 수만 명의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 아테네 현지 관계자는 “긴축재정으로 고액 연금을 수령할 예정이었던 공무원들은 연금이 반 토막 나다시피 됐다. 월급도 30% 이상 깎인 공무원이 수두룩하다”며 “실제 외부에 알려진 삭감률보다 실질 삭감률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30년 전에 편하게 지냈던 것에 대한 청구서를 지금에서야 받은 듯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시리자의 배신’
 
지난 2015년 7월 재정위기에 처한 그리스 정부는 1주일에 수령할 수 있는 연금을 120유로로 제한했다. 한 연금수급자가 은행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뉴시스/AP
  그리스는 아직도 포퓰리즘이 남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난 5월 28일 그리스 내무부가 발표한 유럽의회 선거 투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그리스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서 그리스 국민들은 집권당인 급진좌파연합당(시리자)이 아닌 신민주당을 지지했다. 총 59개 지역구 중 51개 지역구가 신민주당 측에 돌아갔다. 정당 지지율도 신민주당이 33.1%로 시리자(23.8%)를 이겼다.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는 2010년 IMF와 유럽 채권단의 구제금융 지원 협약에 서명한 사회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틈을 타 2012년 총선에서 긴축정책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내세워 제1야당이 됐다. 이후 2015년 조기(早期) 총선을 유도해 첫 집권에 성공했다. 1974년 군사독재 종료 이후 사회당과 신민주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던 역사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시리자는 집권 이후 이전 정부처럼 긴축안(案)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정권을 쥐고 보니 국제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긴축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리스 국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시리자의 배신’이었다.
 
  신민주당이 집권하면 그리스 경제에 대한 전망은 사뭇 밝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신민주당이 외국인 투자 환경 개선과 중산층 소득세 인하 등의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전히 그리스 국민들이 ‘허리띠 졸라매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스 내 노조연맹과 좌파세력들은 여전히 그리스의 재정적자 문제의 원인을 포퓰리즘 정책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벌이나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문제일 뿐이라고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포퓰리즘으로 인한 그리스의 비극(悲劇)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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