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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후다이비야(al-Hudaybiyyah) 평화협정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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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함마드, 메카에서 축출되어 메디나로 이주한 후 메카와 3차례 전쟁
⊙ 무함마드, 628년 알후다이비야에서 메카측과 정전(停戰)협정 맺어… 2년 후 메카 함락
⊙ 아라파트, 알후다이비야 협정에 비유하면서 오슬로 평화협정 수락
⊙ “예언자가 메카를 정복한 것처럼 결국 이란이 원하는 바를 이룰 것” (미·이란 제네바 핵협정 체결 후 이란 정치평론가 알후세이니)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무함마드는 알후다이비야에서 메카와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2년 후 메카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미래에 다가올 상황을 미리 재단하는 데 자주 거론되곤 한다. 최근 우리측 5명의 대북(對北) 특사(特使)가 북한 김정은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온 것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북한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다른 편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발표를 독일에 기만당한 줄도 모르고 1938년 9월 30일 뮌헨 협정을 맺은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in Our Time)’를 역설한 것에 빗대어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우리가 속고 있다며 경계의 눈빛을 풀지 못하고 있다. 평화를 갈구한 체임벌린 총리의 바람과 달리 히틀러는 1년 후 폴란드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세계에도 평화와 관련하여 늘 입에 오르내리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알후다이비야(al-Hudaybiyyah) 평화협정이다.
 
 
  헤지라
 
  알후다이비야는 지명으로 오늘날 메카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628년 3월에 예언자 무함마드가 자신의 반대자인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과 10년 기한의 평화협정을 맺었는데, 이를 ‘알후다이비야 평화협정’이라고 부른다.
 
  무슬림 전승(傳承)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40세에 아랍어로 유일신(唯一神)을 뜻하고 우리나라 무슬림들이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알라’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다고 한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632년에 죽었을 때 그의 나이가 60세 또는 63세 또는 65세였다는 전승기록을 감안하면 570년경에 태어났을 것이고, 그로부터 40년이니 대략 610년 전후인 셈이다.
 
  예언자로서 무함마드가 전한 가르침은 당시 고향 메카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그가 속한 쿠라이시 부족의 지도층은 무함마드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메카에 있는 다신교(多神敎) 신전 카으바 성원은 아랍인들의 순례지로 존중받았는데, 무함마드의 유일신 신앙이 이러한 다신 신앙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메카인들은 무함마드가 자신들의 전통적인 종교생활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결국 무함마드는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대로 고향 메카에 안착하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메카에서 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야스립(Yathrib)으로 도망치듯 떠나 도착했다. 야스립은 이후 예언자가 머문 도시이기에 예언자의 도시, 즉 마디나 안나비로 불렸는데, 이를 줄여서 마디나(메디나)로 칭한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긴 것을 역사적으로 히즈라(Hijrah)라고 한다. 아랍어로 ‘이주(移住)’라는 뜻이다. 이슬람력(曆)에서 히즈라가 이루어진 해를 기원으로 삼는데, 서력(西曆)으로 환산하면 622년이다.
 
  메디나의 삶은 고달펐다. 무함마드를 따라 메디나로 이주한 무슬림들은 새로운 땅에서 먹고살 기반이 없었다. 다행히 이들을 돌봐 주는 메디나 주민 조력자들이 있긴 했지만, 경제적 곤궁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도움은 되지 못했다. 메카인들과 벌인 첫 번째 전쟁의 원인이 된 메카 대상(隊商) 행렬 공격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다. 메디나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무슬림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고 박해한 메카인들은 단죄의 대상이었기에 이들의 상인 행렬은 공격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무함마드와 메카의 전쟁
 
627년 칸다끄 전투에서 무슬림군은 도랑을 파는 새로운 전술로 메카군을 물리쳤다.
  이에 분노한 메카가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여 공세를 취함에 따라 벌어진 것이 624년 바드르(Badr) 전투다. 군사력에서 절대적 약세였지만 무함마드의 무슬림군이 승리했다. 이로써 무함마드를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이 추종자들 사이에서 강해졌다. 이 전투에서 무슬림군이 패배했더라면 오늘날 이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메디나와 메카 간에는 624~625년 우후드(Uhud) 전투와 627년 칸다끄(Khandaq) 전투 등 2번의 싸움이 더 벌어졌다.
 
  우후드 전투는 메디나군이 승리를 앞둔 상태에서 전리품에 눈이 멀어 무슬림들의 대오가 흐트러지면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무함마드의 목숨도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메디나군은 많은 인명을 잃었다. 그러나 메디나군이 완전히 패배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싸움이었다. 어찌 되었든 메카군이 메디나를 굴복시키지 못한 상태로 철수했기 때문이다.
 
  칸다끄 전투는 아랍인들에게 생소한 방어책인 도랑을 도입한 싸움이었다. 페르시아 출신 무슬림인 살만은 무슬림군에게 페르시아식 방어법인 ‘도랑(칸다끄)’을 방어진지 주변에 파서 적의 접근을 막도록 했다. 오늘날 이란인들은 초기 이슬람 공동체 방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살만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메카가 이끌고 온 대군은 처음 보는 도랑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27일간 포위만 하다가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대순례 때 메카의 카으바신전을 도는 무슬림들. 카으바신전 순례는 다신교 시절부터의 전통이다. 사진=뉴시스
  고향에서 쫓겨난 무함마드는 이처럼 고향 사람들에 맞서 모두 3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꿋꿋하게 신앙공동체를 이끌었다. 그런데 칸다끄 전투가 끝난 지 1년이 채 못 된 628년 3월 어느날 무함마드는 메카의 카으바 성원을 순례하는 꿈을 꾼다. 알와끼디(al-Waqidi, 약 747~823)는 그의 역작 《키타브 알마가지(Kitab al-Maghazi, 무함마드의 전투기)》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들은 말했다. 하나님의 사도는 꿈에서 ‘성원(카으바)’에 들어가고, 머리를 삭발하고, ‘성원’의 열쇠를 쥐며, 알아라파트(al-Arafat) 산에 섰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도는 교우들에게 ‘우므라(Umrah, 소순례)’를 행하라고 일렀고, 그들은 준비를 서둘렀다.
 
  연중 정해진 기간에 행하는 대순례 핫즈(Hajj)와 달리 소순례인 우므라는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다. 아라비아의 종교 관습인 순례는 그 대상지가 카으바 성원이다. 당시 카으바 성원은 다신교 신전이었다. 무함마드의 이슬람 운동이 아라비아를 통일하면서 다신교적인 순례가 유일신교 순례로 변환했다. 무슬림들의 전승에 따르면 원래 메카의 카으바 성원이 유일신 성원이었는데, 사람들이 진정한 유일신 신앙을 잃고 타락하여 다신론자들이 되면서 카으바가 다신 신전으로 추락했고, 이를 무함마드가 정화하여 원래의 유일신 전통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함마드의 이슬람 운동이 다신교 관습이었던 대순례와 소순례를 이슬람화한 것이지만, 무슬림 신앙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원래 유일신 전통으로 회귀가 되는 셈이다.
 
 
  무함마드의 순례
 
  무함마드의 꿈에 따라 소순례가 시작되었다. 무함마드를 따라 1400여 명의 무슬림들이 메디나를 떠나 메카를 향해 순례의 길에 올랐다. 메카의 공격에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순례이니만큼 비무장 상태였다. 메디나에서 대규모의 무슬림들이 소순례를 행한다는 소식이 메카에도 전해졌다. 서로 목숨을 앗겠다고 칼을 겨눈 지가 1년이 안 되었고 그동안 무려 3번의 큰 전투를 치르면서 서로 죽고 죽인 원수들이 자신들을 향해 온다는데 이를 반길 이가 어디 있을까!
 
  메카인들은 놀라서 바로 200명으로 구성한 기병대를 보내 소순례단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미리 정보를 입수한 무함마드는 메카군을 피해 험로(險路)를 택해 메카로 전진했고, 메카를 눈앞에 두고 알후다이비야에 정지했다. 낙타가 더 이상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기에 이를 하나님의 계시로 생각하여 선 것이다.
 
  알후다이비야에서 무함마드 일행과 메카는 상호 의향을 확인하고자 분주히 움직였다.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에게 보인 존경심은 대단했던 것 같다. 메카측 특사 우르와는 “이들의 존경심이 페르시아인·로마인·이디오피아인들이 각기 자신들의 왕에게 보여준 것과 비교가 되지 않게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 메카 지도자들에게 “무함마드 일행이 순례만을 목적으로 삼고 왔으니 메카 순례를 허락하라”고 조언했다. 그의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메카에 우스만(Uthman b. Affan)을 특사로 보냈다. 그런데 우스만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심지어는 메카인들이 우스만을 죽였다는 소문까지 들려 왔다. 이에 소순례에 나선 무슬림들은 적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나무 아래에서 무함마드에게 했다고 한다. 코란 48장 18절은 이를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무 아래에서 그대에게 서약을 한 신자들을 보고 기뻐하셨노라. 그들의 마음을 알고 평온을 내리시고 승리로 보답하셨노라.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했기에 나무 아래에서 한 결의를 ‘기쁨의 결의’라고 부른다. 한편 이 나무가 돔 형태였기에 하드바(Hadba)라고 했고, 여기에서 후다이비야라는 지명이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추측에 불과하다. 이 나무 자리에 모스크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15세기 초반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함마드, 협상에서 유연성 발휘
 
  메카는 문제가 불거지자 우스만을 석방한 후 수하일(Suhayl b. Amr)을 특사로 보내 무함마드와 협상을 시도했다. 오랜 의견 교환 끝에 협상문을 작성하려고 하자 우마르가 “다신교도와 어떻게 협상을 맺을 수 있느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우마르는 무함마드 사후(死後) 2대(代) 칼리파(무슬림의 최고종교지도자)가 되어 무슬림 세계를 10년간 다스린 사람이다. 이에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종이자 사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니 하나님이 자신을 패배자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협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우마르는 훗날 자신이 이날 자신의 생각이 더 낫다고 여기며 무함마드에게 한 말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희사와 단식과 예배를 계속 행하고 노예를 해방한다고 고백했다.
 
  메카 특사 수하일은 협상 문안에 상당히 민감한 모습을 보이며 무함마드측을 압박했지만 무함마드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협정문은 무함마드가 구술(口述)하고 알리가 받아 적었다. 무함마드가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하자 수하일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 당신의 이름으로”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무함마드는 그대로 따랐다. 또 “이것은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가 수하일과 합의한 것이다”라고 무함마드가 구술하자, 수하일은 “만일 내가 당신을 하나님의 사도라고 받아들였다면 당신과 싸우지 않았을 것이오.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이름을 쓰시오”라고 반대했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를 ‘압둘라의 아들 무함마드’로 고쳤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이때 문안을 작성하던 수하일이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를 지우라고 했으나 무함마드의 말을 따르지 않고 버티자 무함마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지웠다고 한다. 영국의 이슬람학자 와트(William Montgomerry Watt, 1909-2006)는 이처럼 무함마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지운 것을 보면 무슬림들의 믿음과 달리 무함마드가 문맹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전(停戰)협정 2년 후 메카 정복
 
  유연한 무함마드와 까탈스러운 수하일이 합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양측은 향후 10년 동안 적대적 행위를 중지한다.
 
  2. 원하는 사람이나 부족은 누구든지 양쪽 중 원하는 쪽에 가담하거나 원하는 쪽과 협정을 맺을 수 있다.
 
  3. 보호자의 허락 없이 메카 사람이 무함마드 진영에 가담할 경우 메카로 돌려보내야 하지만, 무함마드 쪽 사람이 메카에 가담할 경우에는 되돌려 보내지 않는다.
 
  4. 이번 해에는 순례를 할 수 없고 다음해에 3일간 소순례를 행한다.

 
  무슬림이 되겠다고 온 사람을 메카로 되돌려 보낸다는 합의내용 때문에 무함마드측 사람들의 동요가 일었다. 이슬람을 포기하고 메카로 가는 사람은 돌려받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를 넓게 보면 반드시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신앙을 버리고 가는 사람을 억지로 돌려받는 것이 좋을 리 없다. 또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이들이 메카에 남아 이슬람을 전파할 수 있으니 불리하다고만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협정은 무함마드의 이슬람 운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무함마드의 지도력을 메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싸움을 걸지 않는 한 무슬림들은 방해받지 않고 이슬람 선교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정전(停戰)은 2년을 넘지 못했다. 메카의 동맹 바크르(Bakr) 부족이 정전협정을 깨고 무함마드측 동맹인 쿠자아(Khuza'a) 부족을 공격했다. 이에 무함마드가 동맹 부족을 돕기 위하여 출병(出兵)하고 메카를 포위했다. 수세에 몰린 메카는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무함마드는 고향을 떠난 지 8년 만인 630년에 무혈(無血) 귀향에 성공했다. 알후다이비야 평화협정이 무슬림의 메카 정복으로 귀결된 것이다.
 
 
  알후다이비야의 재현 가능한가?
 
2013년 11월 미국과 체결한 제네바 협정을 이란인들은 알후다이비야 협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진=뉴시스
  무슬림들은 알후다이비야 평화협정을 성공신화로 여겨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가는 지표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는 종종 협정을 맺은 이들의 심경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끌던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규정한 오슬로 협정을 맺은 후 이렇게 말했다.
 
  “이 협정을 나는 우리의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라이시 부족이 맺은 협정과 다를 바 없다고 간주한다. 기억하다시피 우마르는 이 협정을 거부하면서 ‘경멸스러운 협약’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도 이 오슬로 평화협정을 수용한다.”
 
  2013년 이란이 미국을 위시한 6개국과 맺은 이란 핵관련 제네바 협정(JPOA, 공동행동계획)을 두고 하타미(Mohammad Khatami, 1943~ ) 전 대통령의 자문을 맡은 바 있는 정치평론가 알후세이니(Mohammed Sadeq al-Husseini)는 이를 알후다이비야 평화협정에 비유하면서 “예언자가 메카를 정복한 것처럼 결국 이란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파트나 알후세이니 두 사람 모두 궁극적으로 비록 오슬로 협정이나 제네바 협정은 지금은 자신들에게 불리하지만, 예언자가 알후다이비야 평화협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2년 후 승리했듯이 최후의 승자는 자신들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한 것이다. 협정을 맺은 상대방이 듣기에는 무척 불쾌한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은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2013년 제네바 협정은 2015년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으로 확장되어 발효되었지만,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계속 파기하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중이다. 알후다이비야가 재현될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7세기 무함마드의 무슬림공동체와 메카의 전력(戰力)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미국-이란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런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급선무다. 현실을 외면한 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역사 해석으로 애써 맺은 협정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진의를 의심받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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