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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남북-미북정상회담

주한 미국대사 문턱 못 넘은 빅터 차 지명 철회 막전막후

‘코피 전략’ 반대는 지명 철회의 진짜 이유인가?

글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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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 차에게 지명 철회 이유 묻는 이메일 보냈지만 묵묵부답
⊙ 내정 사실 보도된 지 4개월 후에 아그레망 요청… 마크 리퍼트는 아그레망 1주일 만에 신속 처리
⊙ CSIS가 국내 기업과 재단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이 문제됐다?
⊙ 빅터 차,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대북 온건론자’에 가까워
⊙ 빅터 차는 ‘틸러슨 라인’… 맥매스터와 틸러슨의 불화 때문에 밀렸다는 설도
⊙ 빅터 차도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CSIS 연설, 미국이 불만 가져
  지난해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석좌는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까지 받았음에도 미국 정부로부터 돌연 지명 철회를 통보받았다. 빅터 차 석좌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이견을 드러냈다는 게 지명 철회의 주된 배경으로 알려졌지만, 그에 관한 다른 추측도 나돌았다.
 
  《월간조선》은 지난 3월 6일 빅터 차 석좌에게 이메일을 보내 주한 미국대사직 문턱에 갔다가 지명 철회된 근본적인 이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전략에 반대해 낙마했다는 그간의 보도가 사실인지 등 총 네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기사 마감 시점(3월 14일)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빅터 차 석좌가 함구함에 따라 《월간조선》은 지명부터 철회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그가 한국에 부임할 수 없었던 이유를 분석해 봤다.
 
  빅터 차 석좌의 지명부터 지명 철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한미 양국이 동맹관계인 점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 한미 정상회담, 평창동계올림픽 등 한미 양국이 협조할 현안이 산적해 있었음에도 미국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주한 미국대사 임명을 주저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빅터 차 석좌를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국무부는 ‘내정된 적 없다’고 부인)했음에도 후속절차 진행은 미온적이었고, 결국 지명 철회라는 강수를 던졌다.
 
 
  더디게 진행된 임명 과정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CSIS 전경.
  빅터 차 석좌가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다는 첫 보도는 지난해 8월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으로부터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빅터 차 석좌를 주한 미 대사로 낙점했으며 조만간 그의 임명 소식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이 빅터 차의 신원 조회와 재무상태 조사 등 검증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취지의 보도였다. 그러면서 빅터 차 내정자에 대한 ‘복잡미묘한 절차(Byzantine process)’를 밟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공석인 주한 미국대사를 하루라도 빨리 임명해야 하는데 절차상의 문제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12월 11일 국내 언론은 미국 정부가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한 빅터 차에 대한 아그레망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빅터 차의 경우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와 비교했을 때, 아그레망 요청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미국 정부는 리퍼트를 내정한 이후 곧바로 아그레망을 요청했고, 우리 정부는 아그레망 접수 1주일 만에 신속하게 처리한 바 있다. 그간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는 빅터 차 석좌가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는 로이터발(發) 보도가 나온 지 약 4개월 후 우리 정부에 아그레망을 요청한 셈이다.
 
  결국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빅터 차를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로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나왔다. 아그레망 요청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후였다. 빅터 차의 지명 철회 과정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였다. 국내 언론은 주재국(한국)으로부터 아그레망 절차를 밟은 대사 내정자를 철회한 것을 두고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빅터 차 석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들에게 이른바 ‘코피 전략(Bloody Nose)’으로 알려진 제한적인 대북 공격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낸 게 지명 철회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지명 철회 이후 미 국무부는 “빅터 차를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한 적이 없다”고 부인, 의혹을 증폭시켰다.
 
  한 일간지는 한미 양국 소식통을 인용해 “빅터 차 석좌는 대북정책, 특히 군사옵션과 관련한 (백악관과의) 정책적 의견 충돌 때문에 낙마한 게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며 “다른 요인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개인 신상과 관련한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빅터 차 석좌를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몇 가지 정보를 들었다. 하나는 앞서 일간지가 보도한 빅터 차 석좌 개인에 관한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집안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의 지명 철회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갑작스러운 빅터 차 석좌 지명 철회에 어떤 배경이 있을거란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었다. 미확인설을 제외한 몇 가지 가능성을 상정하면 다음과 같이 압축할 수 있다.
 
 
  CSIS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 탓?
 
2017년 6월 30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CSIS 연설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빅터 차 석좌, 가운데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문 대통령 오른쪽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조지타운대 교수인 빅터 차 석좌가 몸담고 있는 CSIS는 1962년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데이비드 앱시러가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를 본떠 설립한 기구라고 한다. 정파성이 없는 중도 성향의 연구소로, 국제안보, 정치, 경제 및 경영에 관한 정책을 분석해 미국 정부에 건의도 하는 등의 연구를 펼치고 있다. 학계보다는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했던 정부 인사들이 상당수 소속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CSIS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가 빅터 차를 지명 철회한 이유 중 하나로 CSIS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CSIS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 CSIS가 트럼프의 안보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취재했던 A씨는 “2016년 4월경 CSIS 연구원 3명이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한국 안보무임승차론’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포린 폴리시(FP)》에 기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줄곧 한국의 방위비 분담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었다.
 
  A씨는 “CSIS는 다른 싱크탱크에 비해 트럼프의 안보정책에 비판을 비교적 자주 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빅터 차 지명 철회도 CSIS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누적돼 나타난 산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CSIS의 존 햄리 소장은 그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주한미군은 미국의 국익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가 있는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하며 트럼프의 ‘한국 안보무임승차론’이 근거가 없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빅터 차 석좌가 몸담고 있는 CSIS가 국내 기업은 물론 몇몇 국내 유수의 재단들로부터 후원 받은 게 그의 낙마 원인 중 하나라는 추정도 있다. CSIS 홈페이지는 후원 기관들의 명단이 금액에 따라 구분돼 나와 있다. 이 중 한국과 관련 있는 기관을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Foundation(재단)
  50만 달러 이상

  - Academy of Korean Studies(한국학중앙연구원)
  - Korea Foundation(한국국제교류재단)
  5000달러 이상 9만9999달러 이하
  - As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아산정책연구원)
 
  ●Corporation and Trade Association(기업 및 무역협회)
  6만5000달러 이상 9만9999달러 이하

  -Samsung Electronics Co., Ltd. (삼성전자)
  3만5000달러 이상 6만4999달러 이하
  - Korea Aerospace Industries Limited(한국항공우주)
 
  ●Government(정부)
  10만 달러 이상 49만9999달러 이하

  - South Korea(대한민국)
  (기간: 2016년 1월~2017년 9월 30일)
 
  이에 대해 주영 대사와 외교통상부 고위직을 지낸 B씨는 《월간조선》에 사견임을 전제한 뒤 “한국 정부나 유관기관의 재정지원을 받아 활동을 해 온 게 사실이라면 정치적 이유를 떠나 conflict of interest(이해 충돌) 기준에 걸릴 수 있고 청문회에서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의 CSIS에 대한 후원이 빅터 차 석좌 개인에 대한 후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빅터 차 석좌가 한국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후원으로 인해) 자칫 미국이 아닌 한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 것으로 백악관이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빅터 차는 ‘대북 강경론자’ 아닌 ‘대북 온건론자’?
 
존 햄리 CSIS 소장.
  국내 언론은 빅터 차 석좌가 ‘대북 강경파’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가 ‘대북 온건론자’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대북 지원’을 반대하는 등 큰 틀에선 대북 강경파로 볼 수 있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 석좌를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는 대화론자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2016년 2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열린 ‘북한인권 콘퍼런스’ 기조발언을 통해 “북한과 제대로 된 대화 창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일”이라며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대화 창구를 열어 둬야 한다”고 말한 게 비근한 예다.
 
  지난해 7월 빅터 차 석좌가 힐러리 클린턴 외교 참모 출신인 제이크 설리번(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보좌관)과 《워싱턴포스트》에 한 북핵 관련 공동 기고문도 또 다른 예다. 두 사람은 이 기고문에서 예전 방식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핵 시설 선제 타격에 나설 경우 수백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무력 사용은 북핵 문제 해결 옵션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이 미국과 북한 간 협상을 이끌어 내는 역할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협상의 당사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외교 소식통들은 “트럼프 행정부와 배치되는 이 기고문으로 인해 빅터 차 내정자가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빅터 차 석좌는 사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이른바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김대중 정부 첫 해인 1998년 5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북한대학원 개원을 기념해 ‘전환기 북한의 정책 선택’을 주제로 연 국제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 발제한 논문 〈탈냉전 기조의 문제점과 북한〉에서도 잘 드러난다. 논문의 요지는 포용 정책을 통해 북한에 어느 정도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북한 지도부가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평화를 유지하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시 빅터 차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는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북한을 봉쇄와 고립정책으로 대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북한에 대한 강경 혹은 온건 노선 모두가 기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최적 정책은 대북 포용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씨도 이런 말을 남겼다.
 
  “어느 순간부터 빅터 차가 한국에 대북 강경론자로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 그는 대북 온건론자에 가깝다. 이러한 기조는 노무현 정부 때도 이어졌고, 대북 포용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주장도 비교적 자주 해 왔다. 그런 그가 왜 대북 강경론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여기서 잠깐 빅터 차 석좌의 생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빅터 차의 부친 차문영씨는 1932년생으로 전남 강진 출신이다. 경기고를 졸업한 차문영씨는 1954년 도미,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유학했다. 1961년 미국에서 빅터 차를 낳은 그는 학업을 접고 뉴욕에서 ‘아시안 하우스’를 오픈해 동양 램프,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며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 덕에 차문영씨는 한인회 회장을 맡는 등 미국 내 교포 사회에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2005년 사망한 차문영씨는 ‘아시안 하우스’를 40년간 운영했다고 한다.
 
  빅터 차의 장인은 육사 11기로 전두환 정부에서 농수산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식씨다. 김식씨의 고향은 전남 영암으로 5공 당시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A씨는 “빅터 차의 본가와 처가가 모두 호남 출신이라 김대중 정부가 이 집안을 꽤나 예의주시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당시, 학위수여식의 사회자로 빅터 차 교수가 나선 적이 있다. 당시 37세였던 빅터 차 석좌가 사회자로 나선 데에는 이러한 배경도 무관치 않았을 것이라고 A씨는 추정했다.
 
 
  트럼프 정부 실세들과의 불화?
 
국무장관직에서 전격 해임된 렉스 틸러슨. 빅터 차는 ‘틸러슨계’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실세들과의 불화도 지명 철회의 원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 중심 인물은 전격적으로 해임된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과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정책고문, 그리고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다. 한때 빅터 차 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지명엔 틸러슨 전 장관의 입김이 있었다는 얘기가 워싱턴 정가에 나돌았다. 실제로 틸러슨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자주 경질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경질설의 배경엔 거의 모두 ‘대북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백악관과 자주 충돌했다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틸러슨은 자신의 입장과 거의 맥을 같이하는 빅터 차 석좌를 주한 미국대사직으로 밀었다는 것이다. 틸러슨은 엑슨모빌 CEO 시절 CSIS 이사회 멤버로 빅터 차 석좌와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워싱턴 안팎에선 빅터 차 석좌를 ‘틸러슨 라인’으로 보는 시각이 짙었다.
 
  이에 반해 맥매스터 보좌관과 스티븐 밀러 고문은 빅터 차의 한국행에 제동을 건 인사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맥매스터 보좌관과 틸러슨 장관의 불화 때문에 차 석좌가 배제된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대북 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의 이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5개국 순방 마지막 날을 필리핀 마닐라에서 보내고 있었다. 마닐라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수행기자들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대북 문제에 있어 미·중 간에 제재와 압박 외에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도 의견일치를 봤다’며 ‘좋은 일이다(Good working)’고 한다”는 취지의 질문을 맥매스터 보좌관에게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맥매스터 보좌관은 “그건 렉스(틸러슨)의 개인 생각이다. 우리 정부의 생각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고 한다.
 
  당초 빅터 차는 NSC 견제로 낙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정책 고문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스티븐 밀러는 백악관 내 강경 우파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한다. 지난 2월 3일자 《조선일보》는 빅터 차 석좌의 지명 철회 배후에 백악관이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일부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가운데)은 틸러슨 전 국무장관과 대북 문제에 있어 이견을 보였다. 그 바람에 ‘틸러슨계’로 분류된 빅터 차 석좌가 낙마했다는 설이 있다.
  〈빅터 차 석좌의 대사 내정 취소 배경에는 NSC가 아니라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정책 고문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의 복심’이라 불리는 밀러는 백악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경 우파로, 트럼프 정치 철학의 대변자이다. 그는 “트럼프에 대한 완벽한 충성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차 석좌가 이 정책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밀러 고문의 눈엔 ‘충성심 부족’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 NSC는 지난해 말 차기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였던 빅터 차 석좌에게 대북 군사 옵션을 위한 주한 미국인 소개(疏開) 작전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빅터 차 석좌의 지인은 “빅터 차 석좌가 당시 군사 옵션을 우려하는 견해와 함께 글 몇 편을 첨부해 보낸 이후 NSC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첨부된 글은 존 햄리 CSIS 소장이 지난해 말 쓴 것으로 “워싱턴에서 나오는 한반도 발언이 우려스럽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또 다른 글 한 편은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이 대북 군사 옵션을 비판한 글이었다. 두 글을 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필자들에게 강하게 항의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빅터 차 석좌와 친분이 있는 국내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C씨는 “빅터 차는 대북 강경파는 강경파인데, 트럼프 입장에서 봤을 땐 강경파가 아닌 걸로 비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중 CSIS 존 햄리 소장의 경우는 미국 민주당의 노선과 맥을 같이한다고 C씨는 주장했다. 존 햄리 소장은 “대북 제재 지속 조건이 유지만 된다면 남북 대화를 환영한다”는 입장이고, 마이클 그린 부소장은 “대북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은 더 큰 전쟁을 부를 수 있다”는 입장을 대체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보인 ‘대북 강경 노선’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이 CSIS에 불만을 품은 데에는 이러한 입장도 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 때문?
 
  트럼프 대통령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빅터 차 석좌가 지명 철회됐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CSIS 연설 당시 미국 측이 보인 반응이다. 문 대통령의 CSIS 연설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굳건한 한미 관계를 재확인했다”는 요지로 자찬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 정부 입장에선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이를 취재했던 모 중앙 일간지 워싱턴 특파원이 ‘관훈클럽’에 기고한 문 대통령 CSIS 연설 참관 후기에서 이러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문 대통령의 첫 방미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CSIS 특별강연 이후 열린 미국 주요 인사 리셉션에는 존 햄리 CSIS 소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거물급 인사가 참석했지만, 정작 한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맥인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는 없었다. VIP 초청 명단에서 누락된 일부 인사는 주미 대사관에 간접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문 대통령의 CSIS 특별강연에서는 통역기가 오작동하면서 상당수 인사가 제대로 강연을 듣지 못했다는 불평도 나왔다. 청중 질문도 3개에 한정되면서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평도 나왔다.〉
 
  이 특파원은 “내용 면에서도 한미 관계 ‘엇박자’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고 썼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주한 미 대사를 역임한 보수적 성향의 한 미국 인사는 CSIS 행사 뒤 기자와 만나 “문 대통령의 연설만으로는 대북·대미 정책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문 대통령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답습할 것이라는 워싱턴의 팽배한 우려를 해소하기에도 부족했다”면서 다소 박한 평가를 내렸다. 상견례 성격이 강한 첫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정반대 성격의 트럼프 대통령과 케미스트리를 구축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우회적인 불만을 피력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관 출신의 B씨는 “결론적으로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 빅터 차에 대한 불만, CSIS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 재생산돼 (빅터 차) 지명 철회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대목에서 ‘미국은 빅터 차와 문재인 정부를 어떤 관계라고 보는가’라고 묻자 그는 “기본적으로 CSIS에서 한국을 담당하는 그가 문재인 정부와 거리가 멀다고 미국이 보겠나”라고 반문했다. 미국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빅터 차’ 라는 식으로, 동류로 봤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대통령 당선에 즈음한 지난해 5월 9일(현지시간) 빅터 차 석좌는 리사 콜린스 연구원과 함께 작성한 〈한국 새 대통령이 직면한 과제는 무엇인가?(What Are Challenges for the New South Korean President?)〉란 글을 CSIS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여기서 빅터 차 석좌는 문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로, 탄핵돼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소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꼽았다. 그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의석수가 과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빅터 차 석좌의 이 글은 새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에 있어 나침반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현직 공무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이런 말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풀 카드 중 하나로 빅터 차 석좌를 고려한 건 맞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빅터 차가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제시해 주니까 현 정부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빅터 차 낙마 후, 조셉 윤까지…
 
  미 국무부의 6자회담 대표인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지난 2월 말 사퇴했다. 한국계이면서 미국 국무부 내 대표적 대북 대화론자였던 조셉 윤의 사퇴도 파장을 일으켰다. 조셉 윤은 “사퇴는 내 결정”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국내에선 빅터 차의 낙마와 맞물려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4월에 있을 남북 정상회담, 5월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시점에 주한 미국대사직의 장기간 공석, 미국 정부 내 한국계 인사들이 잇달아 자리 보전을 하지 못함으로써 향후 우리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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