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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연방(UAE)은 어떤 나라인가?

세습 ‘아미르’가 다스리는 7개 나라의 연방… ‘아미르’는 지도자·장군이라는 의미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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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맏형 격인 아부다비와 둘째 격인 두바이는 경쟁과 공존 관계… 두바이를 아부다비보다 우선시하다가 낭패 보기도
⊙ 종교·영토분쟁 등으로 이란을 주적(主敵)으로 여겨…, 프랑스군 기지 유치
⊙ 중국은 ‘아랍연합추장국’이라고 불러…, 연방대통령은 아부다비 아미르가 맡아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두바이의 상징인 부르즈 칼리파.
두바이가 건설을 시작했으나 자금난에 처했을 때 아부다비의 아미르 칼리파의 도움을 받아 완공한 후, 그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삼성물산 제공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아랍어는 더 심하다. 우리말에 없는 발음이 있기도 하지만 영어식으로 먼저 소개된 단어가 많아 원어(原語)대로 적으면 오히려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훗딘은 살라딘, 전통 이슬람 정치체제의 최고지도자인 칼리파는 칼리프라는 영어식 표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이슬람의 가장 큰 종파인 ‘순니(Sunni)’파의 아랍어 발음은 명확하게 ‘순니’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발음에 따라 자음이 nn, mm처럼 겹칠 때는 하나만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여 ‘수니’가 표준어다. ‘섬머(Summer)’ 대신 ‘서머’가 옳은 표기인 것처럼 말이다.
 
  서두부터 장황하게 아랍어 표기법을 설명하는 이유는 요즘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때문이다. ‘에미리트(Emirates)’라는 말은 아랍어 ‘이마라트(Imãrã)’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마라트’는 ‘이마라(Imarah)’의 복수인데, ‘이마라’는 ‘아미르(Amîr)가 다스리는 땅’을 뜻한다.
 
  무슬림세계에는 정치공동체 지도자를 부르는 명칭으로 칼리파(예언자 무함마드의 대리자), 말리크(왕), 술탄 등이 있다. ‘아미르’도 그중 하나로 ‘지도자’, ‘장군’을 뜻한다. ‘아미르’는 무함마드에게 붙은 명칭 중 하나이기도 하였는데, 이슬람의 예언자를 ‘신앙인의 지도자(아미르 알무으미닌)’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아미르’는 무슬림 정치체제에서 군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고, 아미르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마라’라고 한다. 토후국(土侯國)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아미르가 다스리니 아미르국이라고 표기해도 무방하다. 칼리파가 다스리는 칼리파국(킬라파), 왕이 다스리는 왕국(마믈라카), 술탄이 다스리는 술탄국(술타나)처럼 말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처럼 아미르가 통치하는 나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다. 공식 국호를 가급적 정확하게 옮기면 ‘아랍이마라트연방(聯邦)’ 또는 ‘아랍아미르국연방’이고, 이를 영어 약자로 UAE(United Arab Emirates)라고 적는다. 일본은 아랍수장국연방(首長國連邦), 중국은 아랍연합추장국(聯合酋長國)이라고 부른다.
 

 
  각각의 아미르국은 세습 왕정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아미르이다.
  오늘날 아랍에미리트연방은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아즈만(Ajman), 움물꾸와인(Umm al-Quwain), 푸자이라(Fujairah), 라으술카이마(Ras al-Khaimah) 등 총 7개의 아미르국이 연합하여 만든 국가다. 원래 이들 아미르국은 19세기 초 이래 각기 영국과 협약을 맺어 보호를 받는 협약국(Trucial States)이 되었다가 독립했다.
 
  라으술카이마를 제외한 여섯 아미르국이 1971년 12월 2일에 입헌연방국을 구성했다. 라으술카이마는 2달 후인 1972년 2월 10일에 7번째로 합류하여 아랍에미리트는 7개 아미르국이 뭉친 연방국가가 되었다. 총면적은 7만1024만km²로 9만9720km²인 우리나라보다 조금 작다. 그중 83.7%를 아부다비 아미르국이 차지하고 있다. 총인구는 약 910만명이다. 이 중 아부다비에 약 290만명, 두바이에 약 270만명이 거주한다.
 
  각각의 아미르국은 세습 왕정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연방을 이루고 있다. 연방 설립 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사실상 연방의 핵심 아미르국인데, 가장 면적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아부다비가 맏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연방헌법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는 ‘종교, 언어, 역사, 공동운명으로 결합된 대아랍국가의 일원’이고, 연방 국민은 ‘아랍공동체의 일원’이다(제6조). 또 연방의 공식 종교는 이슬람이고, 이슬람법이 연방법의 주요 원천이며, 연방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다(제7조). 연방의 수도는 원래 아부다비 아미르국과 두바이 아미르국 국경지역에 건설하여 알카라마라고 부르기로 하였지만, 1996년 7월에 아부다비 아미르국의 수도인 아부다비를 연방의 수도로 확정하였다.
 
  연방은 1971년 성립 이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5년 임기인 연방대통령은 현재 아부다비 아미르국의 셰이크 칼리파 국왕이 맡고 있다. 부통령은 두바이 아미르국의 무함마드 빈 라시드 국왕이다. 연방의 최고 권력기관은 7개 아미르국 통치자들이 참여하는 최고회의다. 이곳에서는 주요 안건을 5개 아미르국의 찬성을 얻어 결정하는데, 이 5표에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찬성표가 포함되지 않을 경우 안건은 자동적으로 부결된다.
 
 
  진주조개잡이로 시작
 

  아랍에미리트는 1953년 아부다비 아미르국의 무르반밥(Murban Bab)에서 처음으로 유전(油田)이 발견되어 자원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기 전까지 진주조개잡이가 주산업이었다. 진주조개를 채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해변에 몰려들어 살면서 아랍에미리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진주조개잡이는 아랍에미리트가 자랑하는 핵심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진주양식업으로 전통 진주생산 산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무르반밥 유전의 최초 원유 생산량은 불과 하루 3674배럴이었지만, 오늘날에는 25만 배럴이 나온다. 유전에서 112km 떨어진 제벨단나(Jebel Dhanna) 수출항까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여 처음으로 원유를 수출한 1963년 12월 14일 이래 아랍에미리트의 원유생산 시설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총 석유매장량은 세계 7위에 해당한다. 2016년 하루 평균 석유생산량은 370만 배럴이었는데, 이 중 순수 원유는 290만 배럴이었다. 아랍에미리트는 2020년까지 순수 원유 생산량을 일일 350만 배럴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산유국(産油國)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는 자원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이 점을 그 어떤 산유국보다 먼저 간파하고 혁신적으로 의존도를 줄이고자 노력해 왔고, 상당부분 성공하였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원유와 가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34.3%다.
 
 
  혁신의 선두 주자 두바이
 
두바이가 관광산업 유치를 위해 조성한 팜 아일랜드.
  산유국들은 차년도 예산안을 만들 때 당해 유가를 예측한 후 그에 맞추어 나라 살림살이 계획을 세운다. 예상보다 유가가 오르면 산타클로스 선물을 받은 것마냥 기쁘고 발걸음이 가볍지만, 유가가 예상치보다 떨어지면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불확실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자원에만 의존하여 손쉬운 돈벌이에만 전념하다 보니 비(非)석유가스 부문 산업이 취약하여 국가경제가 발전하기 어렵다.
 
  자원부국의 경제가 지닌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아미르국 중 제일 먼저 혁신에 나선 곳이 바로 두바이다. 바다를 메워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세계 어느 곳이나 10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앞세워 아랍에미리트항공을 키우고, 오일달러를 유치하여 중동(中東)을 넘어 런던, 싱가포르, 홍콩의 자리를 넘보는 금융허브로 변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금 두바이는 현대 중동에서 발전의 모델이요, 혁신의 선두주자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경쟁과 공존
 
에티하드항공은 UAE의 맹주 아부다비가 두바이의 아랍에미리트항공에 맞서 설립했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의 일등 아미르국은 두바이가 아니라 아부다비다. 아부다비는 두바이보다 15배 정도 더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 내 확인된 석유 매장량의 약 94%인 920억 배럴을 보유하고 있다. 두바이는 약 40억 배럴로 4%에 불과하다. 샤르자가 1.5%, 라으술카이마가 0.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두바이에 뒤질세라 아부다비도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여 아랍에미리트 전체 발전에 선순환(善循環)을 이루었다. 두바이의 아랍에미리트항공에 맞서 아부다비는 에티하드항공을, 크고 웅장한 두바이공항에 맞서 아부다비공항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또 두바이에 필적할 만큼 현대적인 마천루를 도심에 세워 올리고, 각종 국제기업체와 교육기관을 유치하였다. 그 결과 아랍에미리트는 비석유가스 부문 산업이 활성화되었고, 현재 GDP에서 30% 정도를 차지하는 자원산업 의존도를 2021년에는 20%로 낮추고, 50년 내에 아예 0%로 만드는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또 현재 약 80퍼센트에 달하는 재정수입의 석유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유가하락에 대응하기 위하여 올 1월 1일부터 5퍼센트 세율의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였다.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두바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었기에 비자원 부문 발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아부다비는 상대적으로 두바이보다 발전 계획에서 뒤처졌지만,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혁신에 속도를 내면서 두바이를 쉽게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 세평이다.
 
  사실 두 곳을 돌아보면 화려하고 번잡한 두바이가 서울 강남과 비슷하고, 아부다비는 조용한 성북동 부촌(富村)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아부다비가 돈줄을 끊으면 두바이의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공존과 경쟁관계를 잘 모르고 우리 정부 관계자나 기업인이 아랍에미리트 입국 시 별 생각 없이 두바이에 먼저 들렀다 아부다비로 갔다가 아부다비측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는 말도 있다.
 
 
  이란이 주적(主敵)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래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시아파 이란의 공화정과 순니파 아랍왕정국 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아랍, 이슬람, 왕정이라는 공통분모를 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과 함께 아랍에미리트는 걸프아랍국협력회의(GCC)라는 친미 정치・경제협의체를 만들어 이란에 대항해 왔다.
 
  그러나 작년 6월 아랍에미리트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카타르와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카타르가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에 따라 GCC가 내부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는 카타르와 외교를 단절하고 예멘 내전(內戰)에 참여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발을 맞추어 역내(域內) 대(對)이란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란을 자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로 간주하고 있다. 양국 간에는 영토분쟁이 미결과제로 남아 있다. 영국이 아랍에미리트 지역에서 철수하기 직전인 1971년 11월 30일부터 이란은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인근 유전지대의 아부무사(Abu Musa), 대(大)툰브(Tunb al-Kubra), 소(小)툰브(Tunb al-Sughra) 등 3개의 섬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이란은 이들 지역을 호르모즈간(Hormozgan)주의 영역으로 간주하지만, 아랍에미리트는 이들 섬을 라으술카이마 아미르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페르시아만을 여러 나라가 공유하다 보니 국익(國益)을 두고 종종 이웃과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수역(水域)문제로 갈등을 벌인 적이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아랍에미리트에 가장 위협적인 주적(主敵)은 이란이다.
 
 
  프랑스와 군사동맹
 
UAE에 만들어진 프랑스군 기지를 시찰하는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아랍에미리트는 그래서 2009년 이란의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군사협력을 맺어 아부다비에 영구 군사기지를 건설, 향후 50년간 사용권을 프랑스에 주었다. 프랑스 역사상 프랑스나 아프리카 외의 지역에 처음으로 만든 이 군사기지의 이름은 평화부대(Camp de la paix)다. 프랑스 육·해·공군이 사용하는데, 해군의 자예드(Zayed) 항구, 공군의 자프라(Dhafra) 기지와 400여 명의 병력을 수용하고 있는 병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사력 측면에서 보면 현재 아랍에미리트는 객관적인 전력(戰力)에서 이란의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세계 각국의 군사력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세계군사력(GFP·Global Fire Power)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이란은 133개국 중 21위, 아랍에미리트는 60위에 각각 올랐다.
 
  이란보다 모든 면에서 열세인 아랍에미리트가 자국의 안보를 수호하는 최상의 방법은 강대국과의 군사동맹일 것이다. 프랑스군 기지 유치는 바로 그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평화부대를 두고 “아랍에미리트의 안보가 위협을 받을 때 프랑스가 함께할 것”이라고 하면서 “페르시아만이라는 중요한 지역의 안보를 확보하는 데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 이란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란과 경협은 하더라도 안보는 아랍에미리트와 함께한다는 프랑스식 안(安)아랍에미리트-경(經)이란 전략이다. 프랑스는 아랍에미리트와의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원전(原電) 수주까지 노렸지만, 한국에 막판에 역전패당하고 말았다.
 
 
  중동의 복잡방정식
 
  요즘 우리나라와 아랍에미리트 간 말 못할 사연 때문에 정국(政局)이 시끄럽다. 경제로만 얽혔던 중동이었는데, 우리나라 국력이 커지면서 단순히 경제로만 관계를 맺기 어려운 시대가 왔는지도 모른다. 남북이 대치하고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외(對外)관계는 치밀하고 신중해야 한다.
 
  중동 국가와의 경제·안보협력도 마찬가지다. 중동은 열강과 역내 국가들의 정치·군사·종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곳이다. 특정 국가와의 밀접한 협력이 역내 다른 국가의 심기를 건드릴 가능성도 십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우리는 자신의 국력이 어느 정도인지, 국력에 걸맞은 우리의 외교 행보는 어때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돌이켜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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